저기 아래 시골에서 살던 집과 달리 이 커다란 도시에 나와 동생을 위한 자리는, 어디 껴들어 갈 틈도 주지 않을 듯이 비좁기만 했다. 겨우 찾은 곳은 여자애 혼자 저녁에 집에 돌아와도 안심될 정도로 안전한 동네였지만 그 값을 했다. 다른 동네에 비해 값이 비쌌다.
그걸 감당하기 위해 지상에 발을 딛고 살던 우리는 지하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동생의 학교랑 가까웠고, 좋은 동네는 동생의 실력을 뽐낼 곳이 많았으니까. 그런 반 지하 집에서 화장실을 뺀 유일한 방을 동생에게 주고 나니 내게 남은 공간은 TV 앞의 거실이었다.
지상이라고는 천장 쪽 작은 창문으로 빠끔히 보이는 게 전부인 반 지하 집 거실에서 잠이 드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 중간에 잠이 깨서 신새벽이 오기 전 눈을 뜨면 지상의 가로등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캄캄했다.
가끔은, 내가 누워 있는 이 비좁은 공간이 무덤같이 느껴질 정도로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눈을 붙여도 깨어질 기미가 없는 어둠에 불안해진 나는, 거실 바닥 위로 펼쳐진 이부자리에서 뉘인 몸을 뒤척거렸다. 다시 잠에 들긴 영 그른 모양이라 나는 누운 채로 팔을 올려 지끈대는 이마 위에 올려 두었다. 그렇게 피곤함이 감도는 뜬눈으로 어두웠던 지하방을 푸르게 밝혀 오는 익숙한 새벽녘을 맞았다.
“몇 시지…….”
솜이 죽은 베개 옆에 둔 낡은 폴더 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때맞춰 주말 빼고 맞춰 둔 핸드폰 알람소리가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하고 시원스레 울리는 알람을 얼른 끄면서 나는 거실에 이부자리를 대충 정리했다. 내 기척에 혹시라도 가연이가 깰까, 주의하며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공사장에 나갈 채비를 했다.
마음이 피곤하고,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고, 몸 어디가 아프다 하더라도 당장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빠는 못 사 줘.」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더 더욱이.
졸린 얼굴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지친 몸에 옷가지를 다 꿰어 입을 때까지도, 동생의 방문은 동생의 마음처럼 열릴 기미가 없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내 핸드폰 알람소리에 같이 깨서 졸린 눈을 비비고 내가 일 나가는 길을 배웅해 줬을 텐데. 익숙한 게 참 무서운 거라고,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참.”
‘내 부족함으로 동생을 울려 놓고, 잘 갔다 오라는 소리 못 들어서 속상하다니.’
나이 먹을수록 늘어나는 건 쓸데없는 감수성이라 내가 우스워져서 피식 웃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전날 신었던 낡은 운동화를 다시 신고 일어섰다.
집을 나서기 위해 현관문의 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가, 마음 한쪽에 꺼지지 않는 미련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동생의 문 앞을 한 번 쳐다봤다. 동생이 잘 갔다 와, 하면 무슨 상황이든지 난 늘 힘차게 나갔는데. 나도 사람인지라 어젯밤 언쟁으로 힘이 쭉 빠졌다.
‘가연이는 울다가 지쳐가지고 곤히 잠들어 있겠지…….’
동생이 사춘기 이후로 그렇게 서럽게 우는 것을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멈추지 않는 눈물을 티슈로 닦아 주고 들썩이는 등을 토닥여 주지 못했다. 사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눈물을 참는 것 말고는 어떻게 이겨내는지 나는 잘 몰랐으니까. 결국 나는 신었던 낡은 운동화를 급하게 벗어 던지고 동생의 방문 앞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자고 있겠지…….’
동생의 마음처럼 요원히 닫혀 있는 방문을 가만히 보다가, 버릇처럼 방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려서 가연이의 방문 문고리를 소리 없이 내렸다. 컴컴한 거실을 밝히던 아스라한 새벽의 빛이 동생이 잠든 침대 이불 위로 쪼개졌다. 나는 둔한 발끝을 살살 들어서 조용히 동생의 침대 맡으로 갔다.
“…….”
동생은 이불을 눈 밑까지 꼭 덮은 채로 고른 숨을 색색대며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 펑펑 운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꼭 감긴 두 눈이 책상에 올려 둔 개구리 인형마냥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그 발갛게 물들은 눈꼬리처럼 내 마음도 벌겋게 쓰렸다. 나는 착잡한 마음을 애써 갈무리하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가. 혹시라도 바깥일로 거칠어진 내 손에 애가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 들었던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오늘은 울면 안 돼. 오늘은 행복해야 해. 알았지.”
‘오빠는 네가 하루하루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을 일만 많았으면 좋겠어…….’
동생을 그렇게 만들지 못한 내가 조금 답답해져서 참을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었더니, 그 나이 또래가 자연히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속상해져 울고 마는 어린 애였다. 나는 메여 오는 목울대를 간신히 넘겼다.
‘내가 좀 더, 나은 등급이면, 뭐 하나 잘하는 게 있었더라면. 너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좋아 하는 거 실컷 다 하게 해 줄 텐데…….’
방을 나가기 전, 지상이 보이는 창문을 막기 위해 펼쳐 둔 커튼 밑으로 가려진 첼로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일의 원흉. 그 생각에 나는 눈 사이를 찌푸렸다.
‘저 조그만 게 2천만 원도, 2억도 아닌 20억짜리라니…….’
서울도 아닌 광역시의 예중 예고를 다니는 애들도 나름 그 지역에서 날고 긴다 하는 애들이라, 삐까번쩍하게 다니는 게 일상인 것을 아무리 나라고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고, 열심히 살았지만 펴지지 않는 세월의 주름처럼 구겨진 형편은 펴질 줄을 몰랐다. 동생도 그걸 내심 알고 있어서 더 서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이런 걸 받아 와, 이 바보야…….”
네 연주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리 마음 좋고, 하다못해 보호자가 함께 너를 지켜본다고 해도, 내 입장에서 마음이 전혀 놓이지가 않았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내게 남은 사람은 가연이 밖에 없는데.
‘이 애마저 잘못되면, 난…….’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는 몸을 일으키며 동생이 잠든 방을 조용히 나섰다. 아무리 가치 없는 삶이라지만, 살아가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어디에도 눈 먼 돈은 없다는 것. 모든 대가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고층 빌딩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대신에 얹어 주는 안전수당이 더 나오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공사판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낀 운동화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것을 다시 고쳐 신으면서 현관문의 걸쇠를 열었다.
‘……차라리 내가 저녁에 알바를 뛰어서, 저것보단 못해도 더 좋은 첼로를 새로 사 주는 게 낫지.’
이따가 오후에 인력 사무소를 한번 들리거나, 집 주변 고깃집들 중에서 사람을 구하지는 않는지 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어젯밤 트럭을 주차해 둔 건강원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나저나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집 3채 값을 육박하는 이 고가의 첼로를, 네게 미끼처럼 안겨 준…….
그 수상한 사람.
차가운 새벽 공기를 물리는 아침 햇살이 밝아 오는 공사장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작업반장 아저씨를 찾았다. 작업반장인 주 씨 아저씨는 작업화를 신고 온 나를 알아보고 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털털 달렸다.
“유 씨, 오늘 좀 일찍 왔네?”
“영 잠이 안 와서 그냥 일찍 왔어요. 참, 반장님, 부탁 좀 하고 싶은데요.”
내 말에 주 씨 아저씨는 희한하다는 얼굴을 했다.
“무슨 부탁? 설마 또 저번처럼 두 배로 일하게? 근데 동생 입시 끝나서 이제 큰 돈 없어도 된다고 접때 그랬잖아. 아우, 그러지마. 젊은 사람이, 그러다가 진짜 훅 간다.”
그는 내가 예전에 가연이 입시 때 첼로 값과 레슨비를 마련하던 것을 말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로 해결이 되면 벌써 부탁하고도 남았겠지.’
“아뇨, 그런 일은 아니고요.”
“어? 그라면?”
“저 오늘만 오전 작업하고 일찍 가도 괜찮을까요. 점심 먹고 어딜 좀 가야해서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예정 하나 없이 급하게 부탁한 것에도 불구하고 주 씨 아저씨는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능글맞은 얼굴로 웃었다. 오히려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즐거워했다.
“아 뭐 그게 어려운 거라고. 그나저나 웬일이야, 우리 돈 귀신 유 씨가? 요즘, 날씨가 좋으니까 젊은 사람이라 몸이 막 쑤시지? 더 늙고 후회하기 전에 좀 놀아도 돼. 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오늘만요. 내일부턴 원래대로 일 할 거예요.”
내 말에 주 씨 아저씨는 웃던 얼굴을 금방 물리고 혀를 찼다.
“참 독하다, 독해. 알았어. 누가 그 자리 안 뺏어가니까, 걱정은 하지 말아. 일당은……. 뭐, 원래라면 반만 줘야 하는 거지만……. 오늘 내가 하루 다 일했다고 써 놓을게.”
“감사합니다.”
푸근하게 웃는 주 씨 아저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름 오래 본 사이라고, 챙겨 주는 게 고마웠다. 그것도 오늘처럼 마음이 유난히 허하게 느껴지는 날이라면 더 위로가 되었다.
“뭘. 우리 사이에. 저기 가서 좀 쉬다가 늙은이들 오면 슬슬 시작하자고. 아, 그렇다고 너무 설렁설렁하면 들키니까, 구색은 맞춰 줘. 알지?”
“네. 잘할게요.”
“하하, 내가 딸 하나 있었으면 우리 유 씨 소개시켜 줄 텐데. 아쉽네 그려.”
“에이, 더 좋은 사람 만나야죠.”
아들만 셋인 주 씨 아저씨는 내 말에 익, 하고 나를 두둔했다.
“에이, 유 씨 정도면 얼마나 좋아? 응? 잘생겼지, 착하지, 성실하지, 가만 보면 센스도 있잖어. 지금 여자 친구 없지? 응?”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바빠서요.”
동생을 돌보는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내게는 사치나 다름없다. 동생 하나에게 줄 수 있는 애정과 노력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나는 참견쟁이 주 씨 아저씨가 중매쟁이로 변모하기 전에 휴게실이 있는 컨테이너로 후다닥 도망쳤다. 그런 내게 주 씨 아저씨는 소리쳤다.
“……어디가, 유 씨! 정 그러면 우리 친척 애는 어때?”
‘멀쩡한 여자애 삶을 망치려고 작정을 하셨네.’
나는 오늘도 한 층 높이 쌓아진 철골에 철근을 날라서 촘촘하게 배근하고, 와이어로 고정을 시켰다. 내가 점심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입었던 안전모와 작업조끼를 벗으며 땀에 절은 머리를 옅은 봄바람에 말리는 동안 공사장에 레미콘이 들어왔다. 전날 배근한 슬래브 위로 콘크리트를 타설할 계획이었나 보다.
‘아깝네, 저거 층 작업 도와주면 수당 더 챙길 수도 있는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점심시간을 맞아서 나온 직장인들 무리가 지나가는 도로 틈으로 트럭을 운전하며 공사장을 나섰다.
고층빌딩을 한창 짓고 있던 공사장이 위치한 비싼 지역과 동생의 대학은 그리 멀지 않아서, 머리에 흐르는 땀이 마르기 전에 금방 도착했다. 입학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왔었던, 동생의 음악 대학 건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더듬더듬 읽으면서 트럭의 핸들을 어색하게 몰았다.
“……도착했다.”
음대 건물이 위치한 언덕배기의 주차장에는 깨끗한 상태의 외제차들이 즐비했다. 딱, 봐도 비싸 보였다. 혹시 가까이 주차했다가 어디 한 군데라도 긁는 불상사가 일어날까, 나는 저 멀리 텅 빈 구석 자리에 대충 주차를 마쳤다. 트럭에서 나와 건물로 들어가기 전, 급하게 달려온 마음을 조금 가다듬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동생 걱정만으로 머리가 꽉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바람에 내가 공사장에서 막 작업을 마치고 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목욕탕 갔다 올 걸 그랬나.”
‘어쩌지. 이미 학교 다 왔는데.’
아직 흠뻑 젖어 있는 등허리 쪽을 손으로 땀을 훔쳐내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트럭으로 돌아가 조수석에 구겨진 채로 놓인 검은 볼 캡을 대충 눌러썼다.
‘뭐, 오늘 보고 말 사람들이니…….’
대학은 사람이 많으니 나 같은 사람은 딱히 신경 쓰지도 않을 거라 생각하며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하얀 회벽으로 커다랗게 지어진 음대 건물 뒤에 위치한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땀에 젖은 체크남방 허리 쪽을 식혀 주었다. 간간히 층마다 열려 있는 창문 사이로 클래식 악기 연주 소리가 섞여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명 저 중에 가연이가 연주하는 첼로 소리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영 문외한이라 개중에 동생이 연주하는 소리가 어느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좋은 소리라는 것은, 안다.
나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서 건물의 맨 위층에 자리 잡은 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뭣도 모르는 내 눈에도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일이 바쁜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무심한 목소리로 내게 인사했다. 사실 인사라고 하기엔, 좀. 아닌 것도 같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고등학교 때 교무실을 제외하면 이렇게 학교 일 관련한 사무실에 들어와 본 적이 없었다. 어색한 시선을 사무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두면서 인사했다. 그 중에 맨 앞에 앉아 있는 여자가 모니터 너머로 나를 흘끗 봤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 교수님 한 분 뵙고 싶은데요.”
내 대답에 저 뒤에 앉아 있는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예상하지 못한 그 기세에 조금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어, 어느 교수님이요?”
“그게…….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내 동생 알바 자리 소개시켜 준 교수 다들 아냐, 하면, 알까? 나는 설명에는 재주가 없어서 축축하게 땀으로 젖은 뒷덜미를 버릇처럼 만지작대었다. 아까의 무심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사무실의 직원들이 내게 손짓하며 빠릿빠릿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여기 와서 앉아 보세요. 어느 과예요?”
“아니, 이름이 뭐에요? 처음 보는데.”
“군대 갔다 왔나? 아니면 편입?”
“그러게? 어느 과에 이런 친구가 있었지?”
‘요즘 세상에 참 돈 벌기 힘드네. 학생들 비위도 이렇게 맞춰 주고.’
순식간에 바뀐 태도를 나는 얼떨떨하게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질문에 속으로 대답했다.
“밖에 덥죠? 땀 좀 봐~ 이거 하나 먹어요.”
그 옆의 또 다른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앞선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좀 더 지긋해 보이는 여직원은 언제 가져왔는지 차가운 김이 서린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게 당황스럽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아뇨, 저 괜찮…….”
“먹어요, 더울 때마다 와서 먹어도 돼. 우리 과에 요런 게 차고 넘치니까 먹고 가.”
“예? 아니…….”
녹기 전에 먹으라는 소리에 나는 한 손에 딸기향이 풍기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동네 아줌마가 인사 잘한다고 쭈쭈바 사 주는 느낌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 그런 내게 처음에 말을 걸었던 맨 앞의 여학생이 야무진 태도로 물어봤다.
“어느 교수님 찾아오셨어요?”
“이름은 모르고……. 첼로 교수님인 것만 알아요.”
내말에 직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그렇구나! 잘 어울려.”
‘그 소리 저번에도 들었던 거 같은데.’
“첼로과? 첼로과 학생이구나? 이름이 뭐예요?”
나를 학생으로 보는 게 겉치레로 말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원래 나이 보다 어려 보이는 거니까 좋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나는 자꾸 학생으로 착각하는 직원들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다니는 게 아니라. 동생이 다녀서요. 전 보호자예요.”
내 말에 다들 무슨 충격적인 말을 들은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 하게 커졌다.
“동생?”
“동생이요? 동생이 누군데요?”
“가연이요. 유가연.”
내 말에 다들, 아. 하고 말했다. 아는 눈치였다.
“아, 그 애.”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한 직원은 책상에 놓인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내게 눈길을 보냈다.
“아. 그렇구나. 보호자 되신다구요? 잠시만요. 첼로과 교수님이면……. 지도 교수가……. 김 교수님이시네. 무슨 일로 오셨다고 전해 드릴까요?”
“앗…….”
나는 손등에 흐르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체 못하다가 주변에 화장지가 보이지 않아서, 이 하얀 액체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대충 입술로 훑으며 대답했다.
“그 교수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쩝. 가연이에게 소개시켜 준 알바에 대해서 좀 물어볼게 있어서요. 그렇게 전해 주세요.”
내가 손등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대충 핥아내고, 입가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그 흔적을 혀로 슬슬 훔쳐내자, 휴지를 뽑고 있던 앞의 여학생이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심지어 그 뒤에 키보드를 두드리던 직원도 마찬가지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뭘 잘못 말했나, 곰곰이 생각했다. 아, 맞다.
“그, 동생에게는 제가 왔다고 말하지 마세요. 동생 모르게 온 거라.”
내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직원들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아, 예.”
“아……. 네.”
“……네. 그럴게요.”
그러게 대답하고는 그들은 가만히 아이스크림을 한 입 한 입 해치우고 있는 나를 보았다. 어디 귀신에게 홀린 것 마냥 벙찐 얼굴을 하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저기요.”
“……예?”
다 큰 사내자식이 녹아 가는 아이스크림을 쩝쩝 먹는 것을 사람들이 서서 지켜보는 건 아무리 공사판에서 구르고 구른 나라도 좀 민망했다. 결국 나는 직원들에게 다시 말을 걸어야했다.
“저, 그 교수님 어디 계신지 좀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아, 네……. 이리로 오세요.”
맨 앞에 있는 학생이 눈에 총기를 되찾고 내게 스르륵 다가왔다. 근데 왜 팔짱을 끼지? 나는 땀에 젖은 등이 신경 쓰여서 잡힌 팔을 털어내려는데, 뒤에 서 있던 직원들이 총알같이 튀어나오며 그 학생을 말렸다.
“아니, 지연아, 내가 갈게.”
“아뇨. 선생님, 제가 갈게요.”
내 팔을 잡은 학생이 일생일대의 가보를 뺏긴 사람마냥 흐린 눈에 불을 켰다.
“아니에요. 선생님들, 제가 갈게요. 저 김 교수님이랑 완전 친해요.”
“아냐 아냐, 내가 갈게. 요즘 김 교수님 신경 날카로우셔. 너 잘못 갔다가 찍힌다?”
“…….”
‘이래서 다들 국립대를 가는 건가? 일하는 사람들 되게 친절하네.’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건 좋지만, 누구든지 좀 빨리 정해서 그 김 교수가 어디 있는지 좀 알려 주면 좋겠는데. 나는 그들의 친절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달달한 우유가 듬뿍 들어간 맛의 딸기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도 좀 지나서야 그들은 과도한 친절을 멈출 수 있었고, 나는 제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직원을 따라서 그 김 교수라는 사람의 연구실에 안내 받을 수 있었다. 안내를 자처한 이 선생이라는 여자는 그 투철한 친절 정신이 어디 죽지가 않는지 멀쩡한 나를 두고 나를 대신해서 문도 두드려 주고, 간드러지게 말도 해 주었다.
“네, 들어오세요.”
심지어 문도 대신 열어 주었다. 역시 국립대구나. 음대라 워낙 비싸긴 하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등록금인 것도 그렇고, 직원들도 이렇게 친절한 걸 보니 분명 교육도 잘 할 것 같았다. 물론 내가 대학을 다녀 본 적이 없어서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연이가 가고 싶어 했고 나름 자부심을 가지니 그거면 됐다.
“김 교수님, 저 아까 전화로 연락드렸어요. 여기 유가연 학생 보호자 되시는 분 오셨는데요.”
“아, 이 선생님 네, 아까 문자 봤어요. 그래요. 가연이……. 아. 들어오세요.”
김 교수라고 불린 중년의 여자는 나를 연구실에 놓인 응접실로 초대했다.
나는 그녀가 여는 문 뒤에 서서 공사판 먼지 낀 머리를 가릴 작정으로 썼던 모자를 벗었다. 연구실로 들어가기 전에 팔에 소름이 돋게 할 정도로 불어오는 거센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조금 땀이 식은 머리를 탈탈 털었다.
‘땀 냄새가 너무 심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그녀는 살짝 미소 지었다.
“네에. 그래서, 어떻게 오셨죠? 가연 학생 보호자시면…….”
“네, 전 가연이 오빠 됩니다. 그게.”
내가 교수의 맞은편 소파에 등을 세우고 앉으며 말을 하려는 순간, 내 옆자리에 툭 느껴지는 무게감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거기에는 학과 사무실의 ‘이 선생’이라 불린 직원이 수줍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응?’
내 반응과 마찬가지로 김 교수도 의아한지 그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 선생님?”
“아유,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말씀들 하세요.”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예전에 가연이가 예고 다닐 무렵에 학부모 초청으로 상담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아니면 대학에서는 다들 이러나?
‘내가 대학을 다녀 봤어야 뭘 알지.’ 나는 의문어린 눈으로 김 교수를 향해 바라보았고, 그녀는 황당한 얼굴로 이 선생을 손을 휘휘 내저으며 쫓았다.
“무슨 소리세요. 어서 사무실로 가세요, 이 선생님.”
“아유, 더 보고 싶은데 너무하네…….”
그러자 이 선생은 눈에 띄게 실망한 얼굴로 연구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는 길에 연구실 문이 열리자 아까 학과 사무실에서 봤던 직원들이 열린 문 너머의 복도에 줄줄이 푸다닥 넘어져 있었다.
“악!”
“아야!”
“……어?”
“……이게 뭐예요?”
그들은 김 교수의 말을 듣고 후다닥 일어나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그렇지만 무릎이 제법 빨간 게, 무척 아파보였다. 국립대라 그런지는 몰라도 돈이 넘치는 건 맞는지 복도 바닥 마감이 대리석이었으니까.
“복도에 뭐가 엎질러져 있다고 그래서. 미끄럽네요.”
“아, 그러니까요. 애들 악기 들고 다니다가 엎어지면 문제 아니겠어요? 호호.”
“…….”
‘2천 만 원짜리 악기가 기본도 안 되는 곳이니 그건 맞는 말이지.’
아무튼, 그 작은 소동 후에야 나와 김 교수는 비로소 마주볼 수 있었다. 하늘하늘한 재질의 길고 검은색을 띠는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우윳빛이 나는 진주로 된 귀걸이와 팔찌를 하고서 내게 뜨거운 차를 내왔다. 한 눈에 봐도 고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연이 오빠 되신다고요.”
그녀가 내온 차는 아까 먹은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달리, 뜨거운 김이 오르고 있었다. 더운 날에 뜨거운 게 웬 말이냐 싶지만. 별로 상관은 없는 게, 그녀가 몸에 칭칭 감듯이 입은 원피스의 면적을 고려한 것인지, 연구실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내 머리카락 사이로 흘렀던 땀이 확 식다 못해 건조하게 말라붙을 정도였다.
“네.”
내 대답에 그녀는 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살풋 웃었다.
“가연이에게 이런 멋진 오빠가 있는지는 몰랐는데. 열심히 사느라 지쳐서 그런지 워낙 말이 없어서요. 무슨 일을 하시죠?”
교수도 가연이가 알바를 많이 하는지 아는 눈치였다. 나는 그 말에 뜨거운 차가 지나간 목구멍이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 저는 그냥.”
“그냥?”
“그냥……. 공사장에서 일……. 합니다.”
내 일이 어디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 앞에서 말하자니 괜히 위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짧은 배움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삶에 이런 식으로 문득문득 현실을 깨닫게 하니까. 내 말에 교수는 표정 변화 없이 대답했다.
“아.”
그 짧은 탄성이 오히려 비참한 기분을 일으켜서 나는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메여 오는 목울대를 간신히 눌렀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면서 나직하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가연이, 제가 가르친 애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학생이에요. 이대로만 해도 우리나라에 있는 유명 오케스트라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요.”
“……좋은 교수님 덕분이겠죠.”
잘하리라는 것은 어련히 알았다. 예중, 예고 시절에도 학교에서나 지방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콩쿠르나 여기 서울에서 열리는 콩쿠르도 곧잘 입상해서 왔으니까. 그런 동생의 칭찬은 들어도 들어도 지치거나 물리는 법이 없어서, 나는 축 내려갔던 입 꼬리가 작게 달싹거리는 느낌이 났다. 그런데 김 교수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교수 입장에서는 아까울 따름이죠. 그 애가 조금만 더 형편이 나았어도, 유학 가라고 권유할 텐데.”
“…….”
“그럴 수가 없어서 좀, 안타까워요. 그 애, 더 클 수 있는데. 나름 아끼는 제자거든요.”
그녀는 작은 미소를 덧붙이면서 마주쳤던 눈을 피했다. 그게 마치 내게 알려 주는 듯 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라고.
그 냉소가 섞인 말에 나는 비로소 내가 온 목적을 깨우칠 수 있었다. 아낀다고?
“아끼셔서, 그런 알바를……. 소개시켜 주셨습니까?”
그녀는 그런 나를 비웃듯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끼니까 제일 먼저 알려 준 거예요.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이면 악기 하나는 꽤 좋은 걸로 빌려줄 테니까. 뭐, 몬타냐나를 그렇게 선뜻 구해 올 줄은 몰랐지만……. 어쩌면 평생에 연이 없을 악기인데 그렇게라도 만져 보면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녀가 말하는 ‘그 악기’가, 동생이 울면서 고집을 부리던 20억짜리 첼로라는 것은 배움이 짧은 나도 알 수 있었다. 교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걸로 자극을 받아서 크게 되고 싶다면 더 좋은 거고. 그리고 사람일은 또 몰라요. 가연이 그 애 나쁘게 생긴 건 아니니까. 또 아나. 그 마나님이나 그 자식 눈에 들어서 어디 유학이라도 보내 줄지? 가족으로서, 그 애가 잘되는 거 보고 싶은 거 아닌가요?”
그래, 그 애가 잘되는 걸 보고 싶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잘되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심지어 얼핏 나온 교수의 진심을 듣고나니 떨고 싶지 않아도 절로 떨리는 목소리를 나는 꾹꾹 눌러가며 대꾸했다.
“……전, 그 애의 오빠로서 그런 일 하는 거 그냥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해해요.”
태연한 반응에 나는 도리어 화가 났다.
“교수님 자식이어도 그런 알바 소개시켜 주시겠습니까?”
어딘가 아픈 남자의 집에, 그것도 늦은 시간까지 머무르며……. 아무리 귀한 악기를 빌려준다고 해도, 유명인, 재벌, 하다못해 대통령이 와도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만약 친척 중에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난 절대로 안 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긍정했다.
“내가 그런 형편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요. 삶이 다 그런 게 아니겠어요. 하나를 얻으려면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죠. 그 정도 사람들은 엮이기만 해도 제법 괜찮은 대가를 약속하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찻잔의 차를 다 마셨는지 빈 컵을 응접실의 테이블에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런 인내, 감내와 같은 과정도 없이 무언가가 똑 떨어지기를 바라는 거야 말로 과욕 아니겠어요?”
“…….”
“그런 형편이라면, 더 그렇죠. 차 더 드릴까요?”
그녀는 고고한 얼굴로 내게 권유했다. 나는 가만히 그 얄쌍한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찻물이 가득 차 있는 컵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뇨.”
갈증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 이상 대꾸할 수 있는 말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잔인하리만큼 현실을 일깨우는 그녀의 말은 내 아픈 부분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난 그저, 그 애가 좋아하는 것을 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빠듯하지만 감당은 되었기에 그게 분에 넘치는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욕심이 과했다고 하는 교수의 말에 감정이 뚫린 둑 마냥 울컥울컥 터져 나왔다.
‘그래서, 당신이 말하는 그 정도의 사람들은 누구 길래. 그렇게 엮어 주려고 애를 쓰나.’
“……누군가요?”
“알고 있어서 이렇게 찾아 온 거 아니었어요?”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뇨.”
“아무리 말하지 말라고 해도 가족한테도 말 안 했을 줄은 몰랐네. 참 착하다고 해야 할지.”
그녀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다시 눈을 맞추고 말했다.
“삼라 그룹.”
“……예?”
뭐라고? 나는 환청을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그런 형편이어도 그 이름은 알죠?”
“…….”
모를 리가. 나는 오랜만에 듣는 그 이름에 정신이 멍해졌다. ‘삼라’. 동시에 잊고 있던 이름이 내 마음속 자리한 깊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뭐, 가족이니까 알고 계세요. 아끼는 동생, 어디 잘못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입단속 하시고.”
그녀는 무덤덤하게 읊었다.
“그 집 아들이 예전에 사고가 나서 정신이 좀 어려요. 사고 후유증도 있어서 불면증도 심하고.”
사고, 아들, 그 단편적인 단어가 내 머리 속을 가득하게 채웠다. 설마.
“……주현, 이.”
‘그 애.’
얼마 없던 소중한 추억의 이름, 기억, 빛나는 날들.
자연스럽게 불러오는 이름에 종일 무감각한 얼굴을 하던 교수는 놀란 얼굴을 했다.
“그 이름, 어떻게 알아요? 이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가연이가, 말 안 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말……. 안 했습니다.”
그저, 내가 그 애를 아는 것뿐.
아득한 기억 속에서도 선명한 그 이름. 그리움으로 갈라지는 마른 목구멍 사이에서 그 이름을 소리 없이 토해냈다.
주현이, 나를 서툴게 가하, 하고 부르던 그 애.
투명하기 짝이 없는 푸른 눈을 반짝이며 나를 가족보다도 소중하게 여겨 주던 그 애.
언제나 외톨이었던 시절의…….
유일한 내, 친구.
“그 애……. 집에 가서 연주, 를 하는……. 건가요?”
“최근에 돌아왔다는 소식 못 들었어요? 아는 사이면 보러 가지 그래요. 그 아들, 어렸을 적에 떠나서 이제 한국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뭘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교수의 말에 나는 건조한 눈가를 거친 손마디로 쓸었다.
아는 사이라.
이전에는 그러했을지 몰라도. 현실의 내 주제가 어떠한지 파악이 되지 않는 놈은 아니었다.
“아뇨, 아닙니다. 이제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요.”
이제는. 멀고도 먼 세계. 걸어서도, 날아서도 갈 수 없는 그들의 세계.
내가 지은 그 높은 건물에서 고고하게 치켜들고 살다가 가끔 아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 어디 내려올 일이 없는 삶을 찾아가라니, 지하 속의 삶으로 내려가고 있는 나와 너무 다른 방향이었다.
“…….”
새끼손가락을 살짝 치켜든 채로, 차를 마시는 교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두 손을 맞잡고 떨리는 고동을 지워 보려 애썼다. 이제 그런 건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내가 찾아온 목적이 달라질 이유도 되지 않고.
“……제 마음 같아선, 동생 알바 그만뒀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찾아왔고요. 교수님이, 소개시켜 주셨다고 동생이 그래서…….”
“그래요? 아깝네.”
나는 굳이 뭐가 아까운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동생의 실력일지, 그 애가 쥐어 준 첼로일지.
혹은.
“가연이도 그만둔다고 그러던가요?”
오랜만에 찾은 인연일지.
“……아뇨. 동생에게 말 안 하고…… 찾아온 겁니다.”
내 무거운 대답에 교수는 눈을 내리깔고 흠, 하고 대답했다.
“그 마음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난 가연이에게 소개만 시켜 준거지, 직접 고용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러면, 어떡하면 좋습니까.”
“글쎄요. 내가 얼핏 듣기론 중간에 그 계약 깨면 안 된다고만 들었고……. 빌린 첼로에 보험이 걸려 있는데, 그게 워낙 비싸서 말이야. 그동안 사용한 기간만이라도 물어내라고 하려나.”
“…….”
교수는 책상 서랍에서 무언가를 뒤지더니 명함 케이스에서 어떤 명함을 꺼냈다.
“내가 알기론, 가연이가 이 사람에게 가서 계약서 쓴 걸로 알거든요. 그거 관련해서 얘기 한번 나눠 봐요. 계약은 내가 뭐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준 명함에는 심플하기 짝이 없는 회사 로고와 이름, 그리고 직함이 적혀져 있었다.
[삼라 건설 법무팀 소속 변호사 황대호]
대호?
마주한 이름에서, 20년의 세월을 날카롭게 꿰뚫는 기시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