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적산가옥(敵産家屋) (1)
평범함은 값비싸다.
어렸을 때는 그걸 몰랐다.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프던 행복이여.
차창 밖으로 보이는 4차선 대로는 출근시간대가 겹치는 바람에 줄줄이 늘어선 차들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 내려앉아 어두운 아스팔트 위를 줄지은 빨간 후미등들이 번쩍번쩍 밝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명나는 리듬에 맞춰 운전대를 쥐고 있는 손가락으로 클랙슨을 가볍게 툭, 툭 쳤다. 함바집 아저씨들이 무거운 아침잠을 깨는 데에는 트로트만한 것도 없다고 하던데. 그게 맞는 것도 같다. 지금처럼 지루한 교통체증 시간에는 없던 잠도 쏟아질 판이었다. 구성진 후렴구가 낡은 스피커를 울리는 동안 라디오 위에 있는 빨간 눈금의 전자시계의 숫자가 하나 넘어갔다.
[7:29]
[7:30]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는 시간이었지만, 괜히 신경이 쓰여 애꿎은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빠르게 톡톡톡 쳤다. 앉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달리 없어서, 백미러를 굳이 한번 보고, 살짝 들뜬 머리를 손으로 헤집었다. 덥수룩하게 자란 까만 머리는 한번 이발을 해 줄 때가 됐다. 머리를 살피던 백미러 너머로 출근 하는 차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보였다.
차창을 물들이는 푸르스름한 공기가 맴도는 하늘은 봄을 맞아서 그런가, 먹구름 한 점 보이지가 않았다. 어렸을 때만 해도, 봄의 하늘은 누르스름한 먼지투성이였는데. 말세, 말세 하지만 그래도 참 세상이 좋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왔다갈 한 번의 인생아.
이만하면 제법 잠이 깼다 싶어 반질하게 닳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돌렸다. 사실 난 트로트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냥, 잠 깨는데 즉효약이라 듣는 거지. 주파수가 달라진 라디오에서 교통정보를 알려 주는 안내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운전자 여러분들. 오늘도 참 좋은 날씨입니다. 기상청 소속 에스퍼의 말에 따르면 오늘 하루 내내 이 좋은 날씨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 하네요. 오늘 점심에는 작은 산책을 하며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떤가요?
여유 같은 건 없는 나지만, 그 말에 무심코 다시 멈춰있는 도로 위로 넓게 트인 하늘을 보았다.
“……확실히 날씨 하나는 좋네.”
‘뭐, 좋을 수밖에 없지. 에스퍼의 힘으로 만든 하늘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라디오의 명랑한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때 꽉 막혀있던 도로가 잠시나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도 트럭의 엑셀을 슬슬 밟으며 나아갔다. 하지만 도로가 막혀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멈췄다. 나는 솜이 다 죽어 버린 낡은 트럭의 좌석에 등을 기대고 계속해서 나오는 라디오 진행을 가만히 들었다. 이런 상태로는 달리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지루했던 탓이다.
―그리고 주기적인 가이딩은 에스퍼의 의무입니다! 잊지 마시고 각 지역의 가이딩 센터를…….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가이딩 센터 광고가 짜증스러워 라디오를 돌려 버렸다.
대기업들이 다 그렇지만, 애초에 삼라에서 가이딩 센터를 독점 운영 하는 탓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돈이 펑펑 벌릴 거면서 뭘 또 오라고 오라고 광고를 하나. 나는 함바집 식탁에 깔려 있던 신문에서 본 칼럼을 그럴싸하게 속으로 읊으며 고개를 저었다.
“의무 같은 소리하네…….”
‘가이딩이 뭐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색깔 하나는 죽여주는 하늘을 보면서 나는 투덜댔다. 뭐, 저 하늘을 만든 연봉 빵빵한 기상청 소속 에스퍼면 몰라도.
가이딩은, 나 같은 서민에게는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가이딩을 할 돈이 있으면 가연이 밥값이나 더 챙겨 주었겠지. 차라리 내가 날씨를 움직이는, 그런 큰 힘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기상청 같은 공기업에 취직해서 돈이라도 만져 보았을 것이다.
신은 너무나 공평해서 그런 힘은 주지 않았나 보다. 불행하게도 말이지.
나는 에스퍼다.
길가면 흔하게 발에 채일, 돌맹이 같은 D 등급의 에스퍼.
신호가 떨어졌는지 굼벵이 같은 차들이 간헐적으로 움직였다. 내 트럭도 바퀴를 드륵드륵 굴렸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에스퍼는 제법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보통은 특이한 힘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만든 기술로는 따라 잡을 수 없는, 그런 특별한 힘.
차는 얼마가지 못해서 다시 멈췄다. 나는 창가에 팔을 기대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엄청 막히네…….”
답답함에 도보를 보자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영이 보였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그 속도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에스퍼군.’
지금 시대에 에스퍼는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아까 본 것처럼 길가를 다니는 다수의 사람들은 에스퍼다.
그러니까, 개나 소나 에스퍼란 소리다.
나 같은 트럭 운전수도 에스퍼인 세상이니까. 차 뒤쪽에서 빵빵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소리에 클랙슨을 누르려던 손을 거두었다. 다행히 이 차도에 서있는 운전자들의 마음을 헤아린 것인지, 나가는 길이 점점 풀려나갔다.
‘다행이다.’
간격이 점점 벌어지는 차로를 지나면서 이 꽉 막혀 있던 교통체증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길가 한쪽에 사고가 났는지, 조금 찌그러진 승용차와 그 바로 옆의 도로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과 구급차가 있었다. 교통사고였다.
나는 옆 좌석으로 목을 돌려 그 모습을 보았다. 도로에 누워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출근하기 위해 입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푸른 셔츠 깃을 까맣게 물들이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딱한 모습에 혀를 차고 있는데 구급 요원의 차림을 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상처 부위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누워 있던 사람의 벌어진 붉은 상처가 멀쩡한 살결로 아물어 갔다.
에스퍼의 힘이었다.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닌가 방금까지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셔츠에 물든 핏자국들만 아니면 다친 사람은 멀쩡해 보였다. 그것도 잠시, 사이드미러에 상처를 치료한 에스퍼가 휘청거렸다. 다행히 다른 구급 요원이 그를 받아서 또 다른 환자를 만드는 것을 막았다.
힘 한 번 썼다고 저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보니, 등급이 낮은 에스퍼였던 모양이었다. B나 C정도의 등급.
아, 남의 말 할 건 아닌가.
‘난 D등급이잖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에스퍼의 등급을 짐작하는 동안, 약해진 에스퍼를 부축하고 있던 다른 구급 요원의 몸에서 하얀 빛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세상의 힘을 초월하는 에스퍼를 채워 주는 유일한 존재.
나는 한가해진 도로에 진입하자 트럭의 엑셀을 밟으며 속도를 냈다. 사고현장에 있던 에스퍼와 가이드의 형체도 조그맣게 멀어지다 못해 사라졌다.
‘나에겐 멀고도 낯선 존재.’
가이드.
이러한 가이드와 에스퍼의 관계를 두고 세상은 카르마 시스템이라고 불렀다.
낡은 트럭은 점점 속도를 더하며 높은 빌딩 사이에 뻗은 대로에 진입했다. 웬일인지 붉은 신호에 걸리거나 멈춰서는 것 없이 푸른 신호가 연달아 켜졌다.
‘운이 좋네.’
나는 운전대를 쥐고서 빨간 눈금의 전자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7:48]
연달은 푸른 신호로 시간이 넉넉했다.
‘그나저나 왜 카르마 시스템이라고 부른다고 했지…….’
가이드와 에스퍼도 절대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했었지, 아마? 나는 낮은 등급인지라 가이드를 배정 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가이딩 센터에 퍼부을 여윳돈도 없었다.
‘뭐, 가이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등급 높은 에스퍼도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낮은 등급의 에스퍼여서 딱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나는 에스퍼지만 가이드가 필요 없다는 거다. 높은 등급, SSS나 SS급의 에스퍼라면 초능력을 조절하는데 무척 힘이 들어 ‘폭주’ 같은 것을 진정 시켜 주는 가이드를 꼭 필요로 한다고 들었다.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 말로는 한번 폭주하는 순간 눈이 뒤집혀서 미쳐 돌아간다고 그러던데.’
반면 B, C등급은 고사하고 최하의 D등급 에스퍼인 내게 ‘폭주’라는 단어는 어색하고 낯설었다. 애초에 나는 대단한 능력도 없고, 그 탓에 가이드가 필요 없었으니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게 내 평범한 삶의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폭주, 비슷한 건 경험했었지?’
생각해 보니 아주, 없는 경험은 아니다.
20년 전, 빚에 쪼들려 내 앞의 보험금을 노렸던 아버지의 잔인한 행위를, 폭주인지 폭발인지 모를 것이 막아 주어 동생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우연히 찾아온 박 씨 아줌마와 함께 서울을 벗어나서도 그 나쁜 기억은 가끔씩 악몽처럼 나를 괴롭히곤 했다.
‘그래서 더 돌아오고 싶지 않았는데.’
그도 그럴게, 푸근한 박 씨 아줌마의 웃음 아래 자라나는 동생과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삶이 제법 행복하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좋은 사람은 하늘이 필요로 해서 먼저 데려간다고들 하던가. 박 씨 아줌마는 내 동생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어설픈 치료로 인해 비쩍 마른 얼굴을 하고, 나와 동생이 함께 해 줘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자식들 다 크고 떠나보낸 당신의 쓸쓸한 삶에 큰 기쁨이었다고.
소중했던 가족 하나를 아프게 떠나보내자 남은 가족은 나와 동생밖에 없었다. 아줌마가 늘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조금의 돈은 남아 있었지만, 한창 자라는 시기의 동생과 고등학생인 나를 감당하기엔 결국 부족했다. 그 이후로 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을 위해서 각종 돈벌이에 뛰어들게 됐다.
하지만 낮은 D등급의 에스퍼, 심지어 고등학교도 중퇴로 끝난 내게 그다지 많은 선택의 여유는 없었다. 이상한 사장 만나서 돈도 떼이고, 텃세도 당해 보니, 끼니 때 마다 챙겨 주고 하루 일 끝나면 일당 현찰로 바로 챙겨 주는 공사판을 전전하게 됐다. 힘들고 험한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
그렇게 힘들여 돌본 동생은 신기하게도 첼로에 재능이 제법 있어서 학교 선생의 추천을 받아 근처 광역시의 예술 중학교, 예술 고등학교를 다니며 첼로를 전공했다. 착한 내 동생은 남들 보다 부족한 상황이지만, 남들 보다 월등히 앞서가는 실력으로 재능을 입증했다. 그 증거로 수상한 상장과 트로피를 내가 다 기뻐서 거실에 보란 듯이 늘어놓은 것을 두고 쑥스러운 동생이 좀 치우라고 할 정도로 참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동생은 여기서 그칠게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할 수 없이 나는 동생이 예고를 졸업함과 동시에 같이 서울로 상경했다. 내가 생각한 바와 같이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의 음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좋은 학교의 좋은 교육은 제법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아마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것이기에 가치가 더 높은 거겠지. 결국 나는 공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내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날.
한창 트럭이 달리던 도로 위의 신호가 주황. 그리고 빨강으로 변했다. 나는 트럭의 브레이크를 최대한 부드럽게 밟으며 바뀔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 삶이었다. 하루 버티고, 하루 살아가는 일에 매몰되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에스퍼, 가이드, 그게 카르마인지 카스트인지 내 알바가 아니었다. 돈 벌기 바빠 죽겠는데 그런 일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나 같이 D등급의, 별 볼 일 없는 에스퍼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아무 데도 없지.’
쓸모없는 초능력을 가진 에스퍼는, 능력 좋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 애초에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었다. 쓸모없는 에스퍼에게는 가이드가 배정되지 않으니까. 신호등은 이제 푸른 불이 됐다. 트럭은 다시 빌딩 사이의 검은 아스팔트 위를 부드럽게 달렸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 이후로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노가다, 노가다, 하고 낮잡아 보지만 배운 거 하나 없는 사람에게 바로바로 돈을 주는 일은 이만한 것이 없다.
특히 나처럼 몸 조금 건강하고 힘든 날을 어떻게든 버틸 줄만 안다면, 제법 목돈을 모을 수 있다. 그 말은 반대로, 그런 일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저 위의 사람들이 즐기는 고상한 예술은, 나같이 하루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무척 어렵다는 소리도 된다.
그 예로 동생 주변의 또래 애들은 미팅이다 축제다 놀러 다니기 바쁜데, 내 여동생은 혼자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처럼 바빴다. 값비싼 등록금과 생활비, 따로 받는 레슨비. 아무리 애쓴다 한들, 나 혼자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 결코 아니었다. 결국 동생도 조금이라도 비는 시간이 있다면 빽빽하게 알바를 채워 넣었다.
어느 날은 성당 미사, 다음날은 교회 예배, 그 다음날은 축하 공연, 결혼식, 오케스트라 객원, 개인 레슨…… 돌림노래처럼 그 일의 종류에는 끝이 없었다.
‘동생도 열심히 사는데, 나도 잘 해야지.’
나는 트럭에서 조수석 발치에 던져 둔 작업화를 꺼내 신으면서 밀려오는 생각을 떨쳤다. 부모 없이 자란 애가 밝게 착하게 살 수 있는 건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지만……. 동생은 마치 그 동화 속에서 나온 애처럼 정말 착했다. 자기 시간 없이 바쁘게 일하는 것을 누구 원망하지 않고 불평 없이 묵묵하게 버텼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아침의 피곤함을 달랠 새도 없이 한창 작업 중인 공사현장으로 무거운 발을 움직였다. 패널로 대충 만든 휴게실에서 안전모와 작업 조끼를 챙기고 있으니 누워 있던 오 씨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어이, 유 씨. 이제 와? 웬일이야? 우리 바른생활 사나이가.”
“동생 아침밥 좀 해 주느라 좀 늦었어요. 작업반장님에게는 말했는데, 못 들으셨어요?”
내 대답에 오 씨 아저씨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떴다. 그래 봤자 눈 주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저씨의 눈 크기는 똑같았다. 팔을 끼워 입은 작업용 조끼의 중앙 지퍼를 직, 올리자 오 씨 아저씨가 눕힌 몸을 뻐근하게 일으켰다.
“아니, 유 씨가 동생이 있어? 난 처음 듣는 소린데……. 몇 살인가?”
“이제 막 대학 들어갔죠 뭐.”
내가 하얀색의 안전모 버클을 조정해서 턱 아래에 고정하는 동안 오 씨 아저씨가 아이고, 신음했다. 그 또한 내 동생 나이대의 아들자식이 있는 사람이라 동변상련을 느낀 모양이었다.
“에그, 젤 허리 휠 때구만. 울 집 새끼는 머리가 커 버려서 그런가, 갈수록 돈돈 할 때마다 무섭다니까. 애비가 돈을 어떻게 버는지 알아야 정신을 차리지…….”
“그러더라고요. 여기서 더 휘기 전에 바짝 벌어야죠.”
“유 씨도 참. 젊은 사람이 쉬엄쉬엄 살아. 울 집 애는, 말이야. 만날 어디 돈만 쓰러 다니고 집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꼴을 못 봤어. 에이.”
“저도 집에 가면 TV 보면서 퍼지도록 누워 있어요. 누구 나무랄 처지가 못 돼요.”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 주면서 내 동생을 떠올렸다. 내 부족함으로 일찍 철이 들은 내 동생을.
‘그러니까 우리 동생은 얼마나 착해? 공부에 알바에 무척 피곤할 텐데, 굳이 새벽마다 일어나서 일 잘 갔다 오라고 배웅도 해 주고 말이야.’
나는 마음 안쪽에 숨겨 둔 작은 행복이 자아내는 미소를 애써 지우며 오 씨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휴게실을 나섰다.
“전 갑니다.”
“어, 어. 그래. 이따 끝나고 한 잔 하자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오 씨 아저씨의 능청스러운 손짓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엊그제만 해도 간수치 높게 나왔다며 오늘내일 하네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사람이 한 잔이라니.
“안 돼요. 동생 저녁밥 해 줘야 해서.”
오 씨 아저씨는 쉬는 시간마다 자기 아들이 말을 안 듣네 어쩌네 저쩌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 씨 아저씨네 아들은 아저씨를 닮은 것 같다. 오 씨 아저씨는 기막힌 듯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탕, 쳤다.
“아니, 이렇게 일하고 가는데 동생이 밥도 안 해 줘?”
“곱게 키워서요. 손에 물을 묻힐 줄 몰라요.”
문을 닫고 나가는 길에 오 씨 아저씨가 혀를 차면서 궁시렁거렸다.
“애 그렇게 키우면 버릇 나빠져.”
‘걔는, 그래도 돼요.’
대답을 속마음으로 삼키며 나는 헬멧과 마스크를 찼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자 소중한 여동생이라, 원래라면 부모가 해 줘야 하는 것들을 나라도 최대한 해 주고 싶었다. 혹은 부모가 있었으면 안 해도 되었을 일들을 굳이 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그런 짐을 지는 건, 나 하나로 족했다. 나야 뭐, 나이 먹고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하지만 가연이는 아니었으면 했다. 그 애 만큼은 뭐든 하고 싶은 거 하고,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러다 나도 마음 편히 놓일 정도로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어.’
나는 공사장 바닥에 대기하고 있는 리프트를 타고 어제부터 한창 작업 중인 층을 눌렀다. 점점 올라가는 리프트의 칠 벗겨진 창살 사이로 공사판인 흙바닥에 물을 뿌리는 인부 아저씨가 보였다.
‘이런 먼지 나는 세상살이 말고, 그 애가 좋아하는 첼로 소리 마음껏 들으면서……. 그렇게 살면 좋겠다.’
한창 읏샤읏샤 소리가 나는 층에 도착한 나는 목장갑을 끼고 한창 슬래브 바닥에 철근을 심고 있는 아저씨들 사이로 갔다.
‘오늘 콘크리트 타설한다고 했던가? 아직 레미콘은 안 보이는데…….’
나는 제법 완성이 된 철근 조형을 보며 오늘 할 일을 대충 가늠했다. 한 층씩 차곡차곡 층수를 늘릴 때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참 높이도 올리는구나 싶다. 오늘은 몇 층이더라. 이제는 까먹어 버린 층수에 철근을 깔아 놓고 철골의 끄트머리쪽을 힐끗 보았다. 철골 아래로 펼쳐진 세상은 개미집보다 더 작게 보였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쳐들은 빌딩들을 보면 세상이 다 내 아래에 있는 묘한 기분도 든다. 내가 사는 반지하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나도 한때는 이 높은 곳들을 마음껏 날아다니던 시절이 있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아 본 기억을 떠올려 봐도 까마득하다. 나도 쌓인 나이만큼 점점 감성적으로 변하는 걸까. 이 높은 곳에 올 때마다 그때의 아찔한 감각이 살아나니 말이다. 특히나, 지상에서는 맡을 수 없는 이 차가운 공기가 훅, 몰아치는 그 오싹한 감각은……. 나는 구부렸던 허리를 피면서 철골 끝으로 발을 반쯤 걸치고 나를 감싸는 그 공기를 가득 몰아쉬었다.
많은 짐과 굴레에 얽힌 몸이 이때만큼은 자유로웠다. 아주 잠시만.
“유 씨! 위험하게 또 그러고 있어?”
“그냥 보는 거예요. 잠 깨려고.”
“그게 뭐 재밌다고 봐? 깨고 싶으면 믹스나 한 잔 마시고 작업해.”
동료 아저씨들의 잔소리에 나는 잘 배근된 철골 구조물에 다시 돌아와 쭈그리고 앉았다. 이런 나를 보고 몇몇 아저씨들은 높은 곳이 무섭지도 않냐며 도리질을 쳤다. 떨어져 봤자 죽고 말겠지. 뭐가 더 있을까. 물론 오늘도 죽지 않아야 가연이 먹을 저녁 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분명 아저씨들이 들으면 제발 좀 재수 없는 소리 말라고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교차된 철근에 갈고리를 걸어서 매듭을 지었다.
그때부터 긴 시간이 지났건만 사람은 그제나 이제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알 수 없는 힘을 낸다고 해도, 한 없이 높은 자리로 가고 싶은 욕망은 여전하니까. 나 또한 예전에 닿을 수 있었던 그 높은 하늘의 맑은 색과 차가운 공기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그와 별다를 것 없이 이 아파트만 해도,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기에 지어지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의 욕망이 있기에 나의 일용한 일당과 동생의 하루를 책임져 주니 욕망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참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그렇게 철근에 매듭을 거는 것을 반복했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저 밑에 설치된 함바집으로 내려갔다. 한창 작업을 마치고 땀 냄새 나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허기진 위에 점심밥을 퍽퍽 밀어 넣었다.
다시다가 비법이라는 함바집 이모의 반찬 솜씨에 감탄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먹기도 바쁜 입을 놀렸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 술도 마시지 못하니까 남는 거는 답답한 혀밖에 더 있겠는가.
사실 아저씨들이 하는 소리란 뻔했다. 주로 여우같은 부인들의 잔소리와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한 불평들이었다. 하도 듣고 들어서 지겨운 레퍼토리라는 게 좀 심심할 따름이지만. 한창 터져 나오는 불평에 취한 아저씨들 사이에 있는 오 씨 아저씨가 밥풀 붙은 쇠숟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참, 오늘 처음 들었네. 유 씨가 동생이 있다지 뭐야. 다들 알았어?”
“아니? 처음 듣는데. 진짜야 유 씨?”
“늘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 유 씨는 젊은 사람이 과묵해.”
그야, 나는 토끼 같은 마누라도, 여우같은 자식도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뿐인데 아저씨들은 마치 거짓을 고한 죄인을 보는 얼굴을 했다. 내가 아직 넘기지 못한 밥을 씹으며 대답을 못하는 동안, 우리를 감독하러 파견된 대형 건설사의 김 대리 형마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하야, 너 동생 있어?”
그제야 나는 밥을 꿀떡 넘기고 다시 숟가락으로 밥을 펐다. 저는 뭐 혼자 태어났나요.
“있죠. 가족도 없게 생겼어요?”
함바집 이모가 나한테만 특별히 챙겨 준 도라지 무침을 입안에 넣자 김 대리 형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남동생이야?”
“여동생이요.”
내 대답에 아저씨들이 와, 하고 자지러졌다. 뭐야. 처음 보는 아저씨들의 반응에 나는 밥을 먹다가 말고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죄인 취급하던 아저씨들은 먹던 숟가락으로 내 얼굴을 가리키면서 씩 웃었다.
“아유, 우리 유 씨 닮았으면 이쁘겠네.”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어. 기특하게 말이야. 그래, 오빠 되어서 여동생 혼수는 해 줘야지.”
“동생이 막 대학 들어갔다고 그러더라고. 그럼그럼.”
‘나는 모르겠고, 가연이는 좀 예쁘긴 하지.’
나는 대충 끄덕이며 다시 밥을 먹었다. 기특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나. 다 밥 먹자고 하는 일인데. 아저씨들은 부인들한테 옮은 것인지 호구조사에 관심이 유난히 많았다.
“그래서, 대학에서 뭐 공부해? 요즘은 공대가 취업에 좋다던데.”
“아 그러니까. 요즘 애들 취직이 안 되니까 하나같이 다들 공무원 시험, 그런 거 하잖아.”
“뭔 걱정을 해. 유 씨 닮아서 머리 좋겠지 뭐.”
아뇨, 저 닮으면 안 되는데요. 고등학교 졸업도 제대로 못한 저를 닮을 리가요. 걔는 대학 간 애에요. 혹시라도 아저씨들이 가연이는 내 머리를 닮았다는 소리를 계속 할까봐 나는 덧붙였다.
“동생 저 별로 안 닮았어요. 첼로 해요.”
“첼로?”
“그게 뭐냐?”
아저씨들이 다 벗겨진 머리를 밥 먹다 말고 긁었다. 내가 커다란 악기라고 설명하려는데, 어떤 아저씨가 수저로 공중을 슥, 슥 그었다.
“야, 그거 아냐. 클라식 음악. 고상하네 그려.”
내 건너편에 앉은 김 대리 형이 좀 의외라는 눈을 했다.
“동생 첼로 해? 음악?”
“네.”
도라지 맛있네. 가연이한테 해 줘야겠다. 매콤새콤한 게 가연이도 좋아하겠지? 이모한테 도라지 무침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김 대리 형이 나를 물끄러미 봤다.
“잘 어울린다. 너도 왠지 그런 거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저요?”
내가 고등학교 중퇴라는 사실을 김 대리 형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일일 잡부의 학력 따위를 어떻게 알겠어. 그리고 예전에 나도 첼로를 했었다는 사실은 더 모르겠지.
‘그나저나 첼로라는 게, 한 번 연주하면 뭐라도 묻어나와 내 얼굴에 남는 건가.’
“응. 나 처음 여기 왔을 때 가하 너 보고 무슨 영화 세트 온 줄 착각했었잖아. 아저씨들 보고 아닌 거 바로 알았지만.”
김 대리 형이 끄덕였다.
“아, 박 대리 거 너무한 거 아뇨? 유 씨도 우리 목수 일원인데.”
“야야, 말이야 바른 소리지. 유 씨가 그 뭐냐. 목수계의 탈렌트잖아.”
아저씨들의 장난스러운 빈말에 모두가 큭큭 웃었다. 탈렌트? 나이 먹으면 느는 건 허풍뿐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는 작게 웃으면서 밥을 먹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배우인지, 탤런트인지로 착각했다던 김 대리 형은 나름 진심이었는지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아 진짜라니까요? 가하 들어오는 시간이면 가끔 저기 펜스 너머로 근처 학교의 여자애들 보고 간단 말이에요. 우리 회사 골드미스 과장님도 저번에 감리하러 현장 왔다가 가하 보고 돌아가서 부서 사람들에게 얼마나 자랑했는데요.”
“엥? 진짜?”
“요 주변에서 교복 입은 여자애들 좀 본 거 같기도 하고…….”
아저씨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와중에 나는 그럴 리가 없다는 의미로 밥을 꼭꼭 씹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등하교 시간 겹친 거겠죠.”
그게 도화선이었는지 한 아저씨를 시작으로 다들 나에 대해 너스레를 떨었다.
“뭐, 가만 보면 유 씨가 깔끔하게 생기긴 했지?”
“아, 그렇지. 피부도 좋고.”
“요요, 뽀얀 거 봐. 유 씨는 우리랑 같이 맨날 밖에 있어도 어디 타는 걸 못 봤어.”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동안 나는 받아온 밥을 다 먹었다. 스뎅컵에 받아 둔 물로 입가심을 하고 나서 맞장구는 쳤다. 여기서 아저씨들에게 대꾸 안 해 주면 삐져서 좀 귀찮다.
“아무리 그래도 뭐 떨어지는 거 없어요.”
“이래야 유 씨지.”
“야 참, 야박하게 말하는 거 보니까 유 씨는 여자한테 인기는 없겠다. 어?”
“그래. 우리 김 대리처럼 좀 푸근해야 인기 있지.”
매몰찬 애정 어린 내 대답에 아저씨들이 나를 발판 삼아서 김 대리 형 기분을 띄워 주었다.
“……저요?”
그러자 김 대리 형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아저씨들, 여자한테 인기 운운하기 전에 여자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아저씨들의 섣부른 추측이 내 자존감에 더 큰 상처를 남기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아저씨들이 야야, 하면서 나를 가리켰다.
“유 씨, 오면서 믹스 좀.”
“나도.”
“난 그 카우로 줘.”
카누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을 떠났다.
“가하야, 도와줄…….”
그런 나를 김 대리 형이 따라오는지 아저씨들이 연신 앉아, 앉아 외쳤다. 안경을 쓴 푸근한 인상의 김 대리 형은 아저씨들 틈바구니에 잡혀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저러니까 아저씨들이 좋아하지.’
순진한 김 대리 형이 아저씨들의 다시 시작되는 지겨운 이야기를 듣는 것을 두고 나는 쯧쯧 혀를 찼다. 물론 잔반 처리 옆에 식기를 분리수거한 후에 아저씨들의 하루 낙인 믹스 커피를 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녹슨 철제 패널로 만든 함바집의 작은 창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오후의 하늘이 보였다. 한두 시간 후면 일도 끝나고, 무엇보다 동생 저녁밥을 하러 갈 시간이었다.
불에 올려 둔 주전자 물이 끓기를 기다며 바라본 정면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평소 같으면 별다른 생각도 없었을 텐데. 아저씨들이 아까 괜히 한 마디씩 던져서 그런가 좀, 신경이 쓰였다.
‘이런 피부가 좋은 건가?’
괜히 두 볼을 쓱쓱 쓸어 보면서 흘끔흘끔 내 얼굴을 뜯어보았다. 아침에도 봤지만 머리가 좀 자란 것도 같고. 염색 같은 것도 잘 안 해서 그런지 머리가 맨날 쑥쑥 자라는 게 생각보다 성가셨다.
‘이발소 가기 귀찮은데.’
나는 덥수룩한 뒷머리를 만지작대면서 아저씨들이 몰려 있는 저쪽을 곁눈질 했다. 이러고 있는 걸 아저씨들이 발견하면 분명 남은 작업시간동안 시도 때도 없이 놀려댈 게 뻔했으니까.
애초에 햇볕 아래에서 잘 타는 피부는 아닌 건 알았다. 시골 살 때도 박 씨 아주머니가 나는 어째 늘 하얗냐고, 참 곱다고 했으니 익숙한 소리였다. 적어도 저기 아저씨들처럼 막 거무스름한 얼굴은 아니었다. 눈의 속쌍꺼풀을 제외하면 아저씨들처럼 주름도 딱히 없고, 코도 뭐 어디 구부러진데 없고……. 입술도 적당한 모양이지. 아, 입술.
‘아, 고추장 묻었네. 참나. 인기 운운할 게 아니라 이런 거나 좀 알려 주지.’
민망해진 나는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딱 끊어서 입가를 쓱쓱 닦고, 닦은 휴지를 확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스스로를 이렇게 자세히 쳐다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좀 어색했다.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그다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하다못해 학창 시절에도 얼굴 같은 건 딱히 신경 쓰는 편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보기엔 전체적으로 보자면 특별히 어디 모난 곳이 없었다. 무난한 느낌.
“…….”
우르르 끓는 주전자를 들어서 종이컵에 뜨거운 물을 쪼르륵 부었다. 그러자 미리 담아 둔 고소한 커피믹스가 녹아들면서 특유의 달달한 냄새가 퍼져 올라왔다. 다 못 마친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얼굴 가지고 어디 기분 나쁘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으니, 그럼 된 거 아닌가.
‘내가 뭐 TV 나오는 연예인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사는 거지.’
일을 끝내자 어느새 어둑하게 저물어 있었다. 나는 집 근처 건강원에 트럭을 주차해 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길을 밝혀 주는 누런 불빛 가로등 아래를 걸었다. 일을 막 끝내고 와서 땀이 식지 않아 온 몸에서 땀냄새가 진동했다. 가로등 사이로 듬성듬성 심어진 꽃나무에서 향기가 바람에 훅 실려와 더 비교가 됐다.
‘우리 집 애는 오늘 학교에서 열심히 했을까. 알아서 어련히 잘 했겠지? 이제는 애가 아니니까…….’
오늘 일당으로 받은 지폐를 쥐고 있는 손을 얇은 회색 후드 주머니에 넣고서 길가에 있는 돌 부스러기를 툭툭 치면서 걸었다.
‘세월 참 빠르다. 눈도 못 뜨던 애가 어느새 대학생이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많이 일해 둬야 하는데. 간간히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도 식히지 못할 만큼 땀이 날 때까지 걷고 나서야 새벽같이 나섰던 반지하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분명 저녁밥을 기다리고 있을 토끼 같은 동생을 생각하며 열쇠 키로 문을 열었다.
“가연아, 오빠 왔어. 배고프…….”
‘없네.’
예상과 달리 동생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반 지하라 컴컴한 집은 기다리던 사람마저 없어서 휑했다.
‘요즘 알바가 늦게 끝나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우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쌀을 씻어서 안쳤다.
‘대충 저녁거리를 손질해 두고…….’
나는 쿰쿰한 땀 냄새가 풍기는 티셔츠를 끌어서 코에 대고 맡았다.
‘윽. 냄새나…….’
“빨리 샤워해야겠다.”
싼 가격만큼 포기해야하는 이점이 많은 집이라, 어디 한 곳이라도 냄새가 풍기면 잘 빠지지 않았다. 힘들게 알바하고 온 애한테 내 땀 냄새까지 맡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얼른 양파와 마늘을 까면서 국거리 준비만 해 두고 씻으러 가기 전, 현관문이 찰카닥하고 열렸다. 이제야 가연이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오빠! 미안, 알바 늦게 끝났어. 많이 기다렸어?”
첼로 가방을 맨 동생은 미안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현관에서 신발을 던지듯이 벗어 버리고 내게 뛰어들어 안겼다.
“윽, 첼로 조심해야지.
이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그대로라, 언제 이렇게 커서 대학까지 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에겐 어린 시절 그대로 애기 같은데.’
내 말에 가연이가 서운한 듯이 핑크빛 립스틱이 발라진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도 귀여웠다.
“에이, 요즘 오빠 영 재미없어. 나이 먹을수록 딱딱해지고.”
아야. 벌써부터 나이 먹었다고 찌르면 그건 좀 슬픈데. 나는 양파의 매운 향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을 속으로 훔치며 식칼을 꺼내들고 양파와 애호박을 깍둑 모양으로 썰었다.
“이젠 오빠도 슬슬 아저씨 나이야. 그나저나 너 알바는 괜찮아? 어디 저녁 예배나 행사 갔다 온 거야? 요즘 늦게 오는데.”
가연이는 이 집의 유일한 방이라고 할 수 있는 제 방에 카본으로 만들어진 검은 첼로 케이스를 내려놓고 얼른 내 옆으로 다가와서 다리 접힌 상을 집어 들었다.
“으응, 아니. 여기는 개인…….”
“레슨?”
나는 다시마를 넣어둔 물이 보글보글 끓는 것을 보면서 냉장고에 넣어둔 된장을 찾았다. 가연이는 거실에 상을 내려놓고 수저를 달그락 거리며 집었다.
“아니, 아니. 어떻게 보면, 연주?”
“개인 연주?”
그게 무슨 소리지. 개인에게 연주를 해? 가연이가 한다고?
‘뭔가 평소에 듣던 알바와 조금 다른 성격인거 같은데.’
보통은 취미나 전공으로 첼로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레슨을 해 주거나 오케스트라의 빈자리를 채워서 연주를 했는데. 내 궁금증이 서린 것을 알았는지 가연이가 나름 자세하게 조목조목 설명을 해 주었다.
“교수님이 소개 시켜 주셨어. 예전에 사고가 나서 후유증으로 저녁에 잠을 잘 못자는 사람이래. 오늘 된장국이야? 아싸.”
“응. 너 좋아하잖아. 후유증? 잠?”
된장국이 끓는 동안 나는 냉장고에 넣어 둔 반찬을 꺼내서 거실에 놓인 상 위로 가져갔다. 내 뒤를 따라오는 가연이가 내 품 안에 쌓인 반찬통 몇 개를 가져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첼로가 불면증에 좋잖아. 그 사람, 잠이 들 때까지 첼로 소리가 없으면 잠을 한숨도 못 잔대. 거기 갔다 왔어. 암튼, 페이가 세서 완전 땡 잡았지 뭐야. 다른 곳에 비해서 3배는 더 주는 거 같아. 역시 대…….”
가연이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말을 멈췄다.
‘돈을 많이 준다고? 다른 곳의 3배?’
세상에 눈 먼 돈이 없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지라 동생의 말에 이상한 불안이 고개를 쳐들었다.
‘아직 프로 첼리스트도 아닌, 고작 대학생 전공자에게, 왜?’
“너, 이상한 일 하는 거 아니지?”
“에이, 내가 왜.”
가연이는 애교스럽게 찡긋 웃으면서 내 품에 안겼다. 어딘가 켕기는 일이 있으면 으레 부리는 그 자연스러운 애교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그야, 세상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것도 예쁘고 사정이 어려운 여자애라면…….’
나는 땀 냄새가 풍기는 품에 좋다고 안기는 동생을 떼어내서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너, 그런 거 절대 하면 안 돼. 돈 필요하면 오빠한테 말해.”
내 말에 가연이가 작게 화를 냈다.
“오빠! 무슨 생각하는 거야. 이상한 거, 그런 거 아냐.”
“왜 돈을 많이 줘?”
“어, 그건…… 그게.”
내 추궁에 가연이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 쭈물거렸다.
“나 학과 사무실 찾아가서 물어 볼 거야. 너 그런 알바 알려 준 교수 누구냐고.”
“아, 왜 그래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알았어. 말해 줄게.”
내 말에 가연이가 기겁을 하며 말렸다. 내가 봐도 좀 유치한 협박이지만, 내겐 중요한 문제였다.
내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하나 남은 여동생밖에 없다. 더없이 사랑스럽고 재능 많은 그런, 가족. 지켜 주고 싶고, 꼭 지켜야 할 그런 어린애.
“오빠 이거 듣고서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들어보고.”
“아니, 약속해. 절대 말하면 안 돼. 나도 말하지 말라고 들어서 그래. 응?”
어린 시절처럼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애교를 피우는 모습에 나는 못이기는 척, 손가락을 걸었다. 그러자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동생의 얼굴이 밝게 펴졌다. 그걸 보는 나는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얼른 말해 봐. 그 사람이 왜 너한테 돈 많이 주는 거야.”
“그, 밤에 잠 못 잔다는 사람. 완전 부자다?”
그게 문제인가. 나는 새끼손가락을 꼈던 손을 풀어서 다시 팔짱을 낀 자세로 추궁했다.
“그 사람, 남자야, 여자야.”
그 사람이 밤에 잠을 못 자는 건 내 알바가 아니고, 다 큰 여자애가 밤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 있다 오는 게 영 마음에 걸렸다. 다 큰 남자애들도 요즘은 누가 나쁜 마음먹으면 어디 하나 병신 되는 세상인데. 딱딱한 대답에 가연이가 눈알을 굴렸다.
“어……. 남자인데.”
“당장 그만둬. 어디 위험하게 다 큰 여자애가 밤늦게까지 남자 집에 있어.”
된장국이 팔팔 끓는 소리에 나는 가스 불을 끄려고 일어섰다. 가연이는 내 뒤로 총총 따라와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오빠 진짜.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다 들어 봐. 그 사람 어린애나 마찬가지야.”
“……그게 무슨 소리야?”
얘가,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뉴스도 안 보고 다니는 거야? 가연이가 내 팔뚝을 고 작은 손으로 팍, 때렸다. 그래 봤자 어디 하나 아프지 않았다.
“아니. 말했잖아. 예전에 사고가 나서, 후유증이 있다고. 그 사고 때문에 정신이 어린 시절에 멈춰 있대. 그리고, 연주할 때 옆에 그 남자 분 어머니도 같이 계셔. 오빠가 생각하는 막 그런 이상한 일 없어. 진짜로! 어린애라고 했잖아. 그 사람 되게 순수해.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은데 나보고 막 누나라고 그러고……. 어머니도 되게 예쁘고 친절하셔. 그 정도 되는 집은 역시 다르구나 싶고.”
가연이는 칙칙 돌아가는 밥솥 앞에서 밥그릇을 들고 서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안 돼.”
나는 그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순수한 건 너야.’
도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겉모습에 마음을 놓고 있을까. 가진 사람이 더 독하게 사는 걸, 이리 모르나. 가연이가 괜히 찔리는지 뻣뻣하게 굳어 있는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를 주물러대었다.
“아니, 더 들어 봐! 이 알바 완전 이득인 게, 거기서 페이 세게 주셔서 나 다른 알바 안 하고 학교에서 합주 연습할 시간도 늘었구, 악기도 빌려주셔서…….”
‘악기?’
그 말에 나는 더 의아해졌다. 무슨 악기?
“악기?”
내 말에 가연이는 아차, 했는지 뒤늦게 입을 합, 다물었다. 나는 이제 동생이 변명으로 숨기고 감싸는 이 고용인이 점점 수상쩍어졌다. 첼로를 빌려준다고?
“너, 첼로 있잖아. 근데 무슨 악기를 빌려줘?”
“…….”
“유가연.”
딱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맛깔난 된장국 냄새가 풍김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기 하나 지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불안이 알 수 없는 동력을 주었다. 꺼진 가스레인지를 뒤로하고 옆에 서 있던 가연이의 손을 거실 쪽으로 끌어서 앉혔다.
“이리 와서 앉아 봐. 가연아.”
“…….”
“오빠가 너 혼내는 거 아냐. 알지.”
차분하게 말을 꺼내는데 가연이의 꾹 다물린 입은 풀릴 줄을 몰랐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네가 걱정되어서 그래. 오빠 가족 너 하나밖에 없는 거 알잖아. 응?”
“응……. 알아.”
“그럼 오빠한테 말해 봐. 그 사람이 너한테 왜 악기를 빌려줘.”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가연이의 커다란 검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모습에 도리어 내 마음이 아팠다. 애 속상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냥, 오빠로서, 가족으로서…….
“그 악기가 좋은 거라서, 소리가 좋아서…….”
“지금 첼로가 안 좋은 거야? 그럼 오빠가 첼로 새로 사 줄 테니까, 그 일 하지 말자. 응?”
내 말에 가연이가 서러운 사람 마냥 끅끅 울었다.
“오빠가 돈 모아서 사 줄게. 그거 하지 마.”
“……못 사.”
“응?”
“오빠는……. 그거 못 사…….”
도대체 얼마나 비싸길래? 나는 가연이가 들고 온 첼로 케이스를 향해 눈을 돌렸다.
가만, 케이스 색깔만 전에 쓰던 거랑 같았지, 케이스가 좀 달라보였다. 가연이에게 악기를 빌려주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가연이는 연신 훌쩍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거……. 20억짜리란 말이야…….”
“……뭐?”
‘가연이가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 돈을 모아 어렵게 샀던 첼로도 2천만 원짜리였는데. 20억?’
전혀 감이 오지 않는 가격대가 등장하는 바람에 내 목소리가 자연히 높아졌다.
‘집 한 채 값은 되는걸, 고작 알바 하는 애한테 빌려줬다고?’
“너, 무슨 생각으로 이런 악기를 받았어? 거기서 이거 주고 뭐 이상한 거 하라고 한 거야? 응? 얼른 말해, 유가연. 오빠 지금 화났어. 왜 안 말했어?”
“……이상한 거 없어……. 진짜 연주만 하고 오는 거란 말이야…….”
“누구야, 어느 집이야. 안 되겠다. 나 내일 학과 사무실 갈게. 가서 너한테 일 소개시켜 준 교수 누구냐고 물어볼 테니까 그렇게 알아.”
영 믿음이 가지 않는 동생의 말에 나는 한숨만 나왔다.
‘도대체……. 속 한 번 썩이지 않는다고 마음 놓았더니만…….’
그러자 동생이 발작하듯이 소리치면서 나를 붙잡았다.
“안 돼! 진짜, 안 돼…… 오빠, 나 이거 계속 연주하고 싶단 말이야. 제발 한 번만, 이번만 봐줘. 응?”
“유가연. 오빠 너 그런 사람으로 안 키웠어. 너 거기서 그 사람이랑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는데 오빠가 그냥 보고 있으라는 거야? 절대 안 돼.”
아무리 들어도 이상했다. 내 굳건한 반대에 가연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오빠는, 이거 못 사 주잖아…….”
“유가연.”
“……오빠는, 몰라. 우리 학교 애들, 다 유럽에서 사 온 악기로 연주하고……. 소리가 완전 다르단 말이야……. 나도 쓰고 싶었어…….”
“…….”
“나두, 그런 비싼 악기 있으면 더 괜찮은 연주 할 수 있단 말이야. 나중에 좋은 오케스트라도 들어가고…….”
동생은 그동안 숨겨 왔던 억울함을 토로하듯이 하나씩 뱉었다. 그 말이 하나하나 쌓여 갈수록, 나의 홧홧한 불안은 꺼져 가며 차게 식은 머리만 남았다.
“하지만 오빠는 못 사 줘. 그리고 동기들이 내 첼로 보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모르잖아. 하다못해 내가 레슨해 주는 예고 여자애가 나보다 더 좋은 악기 써……. 그래도 나 아무 말 안했어…….”
“…….”
마음이 찢어진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동생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집이. 내가 무능력하다 보니 이 애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펼칠 수 없게 한 것뿐이다. 그런 주제에 하지 마라, 쓰지 마라, 했으니 분명 아쉬웠을 것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서 악기가지고 평소에 속상했다면 더. 그걸 모르는 사람이 그랬다면, 더 더욱이…….
무지도, 가난도 각각은 죄가 아니지만, 이 무지와 가난이 함께한다면 그건 분명 보이지 않는 죄이자 십자가였다. 나는 입안이 쓰려 와서 꺽꺽 울어대는 동생을 안아서 토닥였다.
“……미안해.”
“흑, 흐흑……. 나 진짜 이상한 거 안 해. 그냥 연주만 하고 온단 말이야……. 오빠 왜 내 말 안 믿어 줘…….”
“그래, 미안해…….”
예쁜 얼굴을 울음으로 찡그리는 동생을 보면서 씻을 수 없는 미안함으로 눈과 입을 다물었다.
‘미안. 미안하다. 내가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어도…….’
가난한 집에 능력이 너무 좋아도 탈이었다.
높은 곳, 좋은 곳을 알아보는 눈은 있지만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게 어린 마음에 한이 맺혔겠지.
내가, 날아다니는 초능력이 있어도 가이딩을 받지 못해 어디로든 날아가지 못하고, 이 지리한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것처럼.
가난은 그렇게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세상에 묶어 두고 있었다.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