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61)

* * *

아날렘마의 중간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 마냥 꼬여 있다. 법을 공부하기로 한 내 선택에 대해 형제들과 조직 사람들은 편한 길을 내버려두고 팔자를 꼰다고 그랬다.

가만히 있으면, 편하게 번듯한 대기업에 들어가서 보통의 회사원처럼 다니면서 승승장구 할 수 있는데 왜 그걸 걷어차고 법 따위를 공부 하냐고. 법 공부로 성공하려면 3년이고 5년이고 폐인 되어 공부한다는데 고생을 자처한다고, 무식한 조폭새끼 소리 안 듣도록 형들이 노력해서 꽃길 깔아 줬더니만 그걸 보란 듯이 걷어 찬 바보라고들 그랬다.

바보가 나쁜가? 나는 오히려 그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옳은 길을 찾아가는 거 아닌가.

그렇게 나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공평한 세월의 흐름을 타고 자랐다. 마찬가지로, 이제 중년의 나이로 달려가는 지석이 형은 내가 집에 들어오자 환영하다가, 내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법전을 보고 면상을 찌푸렸다.

“아이참, 도련님. 거, 무거운 데 야들한테 들고 다니라 해요. 새끼들, 이런 거 들고 다녀야지 무슨 순대만 처먹고 와서는…….”

그러자 내 뒤를 쫓아다니는 석원이가 집에 오기 전에 학교 앞에서 먹은 분식집의 순대 소금을 두툼한 손등으로 입가에 문대면서 변명했다.

“지석이 행님 우린 잘못 없어라……. 책에 손만 대면 도련님이 쥐어박는 데 어카요.”

“……그래도!”

못내 법전이 못마땅한지 지석이 형은 무겁지도 않냐며 혀를 내둘렀고, 나는 지석이 형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렸다.

“됐어. 내 책인데.”

“지석아, 냅둬라. 괜히 도련님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그 사이에 성호 형은 주차를 다 하고 왔는지 지석이 형을 진정시켰다. 그런 우리 다음으로 큰형이 일을 마치고 왔는지 현관에 입성했다. 그는 우리들을 보고 핀잔을 주었다.

“뭐 때문에 이리 모여 있어. 복잡하게……. 아, 대호냐. 학교 다녀왔어.”

“예.”

집에 돌아온 큰형은 내가 그들과 반하는 길을 가는 것을 두고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크게 내키지 않아했다. 그는 내 옆구리에 있는 법전을 보지 않으려고 내게 둔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며 나를 스쳐지나갔다.

“집에 왔으면 얼른 들어가라. 학생이 공부해야지 여기서 녀석들하고 수선 떨면 되겠어.”

“안 그래도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둘째 형도 막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지 현관에 심복들과 함께 들어왔다. 커다란 집의 너른 현관이 비좁아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 참, 송금 하나 복잡하게 하네. 애새끼 하나 때문에……. 음? 큰형님 오셨네. 어, 대호도 왔냐. 학교는.”

“끝났습니다.”

그런 집에서 내가 가는 길을 재밌게 봐 주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는데, 그건 둘째 형이었다. 그는 내 옆구리에 있는 법전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씩 웃었다.

“녀석, 열심히 해라. 이왕 시작한 거 영감님 되는 모습 함 봐야지 않겠냐.”

“……시끄럽게들 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라. 사내새끼들이 이리 몰려서…….”

“참, 나이 먹고 그러지 말어, 형님. 나이 먹고 그렇게 성질부리면 형수님만 고생한다고.”

둘째 형이 검사 가운 타령을 하는 동안에 큰형은 우리를 흘겨보며 자기 부인이 기다리고 있을 별채로 가 버렸다. 둘째 형은 그런 큰형을 놀리듯이 얘기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서, 고시는 언제 보냐? 그거 통과하는데 오래 걸린다며,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면 말하고. 형 좋은 게 뭐냐.”

그는 어깨를 으쓱대며 나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아마 보통의 집이었다면 그게 제법 든든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난 아니었다.

“고시 사라진지가 언젠데. 나 검사 같은 거 안 해.”

그리고 둘째 형이 나를 재밌게 보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게 집안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했다. 대놓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인 만큼, 그들을 언제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휘어잡을 그 테두리를 넘보다 못해 자기들의 영역으로 잠식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조직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구역을 확장하는 거니까.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러한 기대를 부흥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집안의 허수아비로 무력하게 사는 것은 어린 시절로 족했다. 단호한 내 대답에 둘째 형의 웃는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바로 펴졌다.

“영감 안하면, 뭐 하게. 어디 취직이나 되냐, 그 두꺼운 법전 외워서?”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내 차가운 반응에 둘째 형이 비웃었다.

“싸가지 하고는. 그 애새끼 친구 아니랄까 봐. 그나저나 너네 아직도 연락 하냐? 나 안 그래도 오늘 그 녀석 있는 곳으로 비자금 돌리고 왔다. 덜 떨어지니까 쓰는 돈이 배로 들어간다니까.”

“……아니. 안 해.”

오랜만에 나온 그 애의 소식에 나는 피곤으로 노곤했던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그 일 이후로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애였다. 물론 둘째 형이 삼라 건설에 들어간 이후로 돈 관리를 할 때마다 그 애의 이름이 식사시간 때 마다 간간히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긴 세월을 넘어서 오랜만에 듣는 그 소식이 반갑다는, 뭉클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유 없이 찝찝하면 모를까.

형은 그래?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 회장도 자식복은 참 없단 말야. 부회장인 아들은 지 손주가 좋다 좋다하는 간병인이랑 결혼하겠다고 설치고, 금쪽같은 손주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반병신 되고. 글치?”

그 애는,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유래 없는 폭주로 멀쩡했던 비행기에서 폭발을 일으켜 추락시키고, 그 사고의 여파로 정신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애와 연동된 힘, 가이딩의 연쇄 반응으로 가이드의 힘을 품고 있던 가하도…….

‘사라졌고.’

나는 죽었다는 말을 담기 싫어서, 눈을 꽉 감았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가하를 손에 넣으려고 그리 수를 쓰다가 도리어 자신이 그 수에 당했다는 게. 똑똑하다는 말을 넘어서 무섭다고 느껴질 정도의 그 애는, 마치 순수를 넘보았던 것에 대한 대가로 지울 수 없는 벌을 받은 것처럼 도리어 극점에 위치한 지능이 되어 버렸다.

그 일의 내용을 다 아는 내 입장에서는 아이러니하기가 짝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된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애의 그물에 잡혀서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상태로 살 바에야…….

“……그러게.”

그 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 이후로 그 애가 온전치 못한 상태로 한국에서 생활하기가 어렵다 생각해서 스웨덴으로 보내 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이만큼 자라기까지 한 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었으니까.

‘스웨덴에서 칩거에 가깝다 시피 한 세월이 벌써 십…… 십오 년쯤인가.’

나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 시절도 잠시, 잡을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흘러 버린 시간에 무색함을 느끼며 대충 둘째 형의 말에 대꾸했다. 그러자 형은 우리가 서로의 방으로 가기까지 그 비자금을 보내느라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지 이야기했다.

“제 정신도 아닌 새끼가 뭔 돈을 이리 물 쓰듯이 쓰는지. 첨엔 그 간병인이 꿍치는 건가 싶었는데 것도 아니라고 하고……. 너무 자주 보내도 감사에 걸리기 좋은데 말야. 암튼 대호야, 공부 열심히 해라. 응? 아버지나 형들처럼 남의 뒤치다꺼리 하러 살지 말고.”

형이 말하는 검사가 되면 오히려 남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들어가라.”

내 말에 둘째 형은 지친 얼굴로 손을 휘 흔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큰형과 달리 가족이나 여자에 큰 관심이 없어서 일이 끝나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서 방에 처박혀 있기 일쑤였다. 그가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을 만큼 큰 관심은 없어서, 나는 곧장 내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커 버린 나와 같이 어른이 된 내 방은 좀 더 커다랗게 변한 가구와 늘어난 책들을 빼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삼라의 뒤에서 일을 하는 우리 집은 그 거대한 기업만큼이나 돈이 풍족하리 만큼 넘치면 넘치지 마를 일이 없었고, 내가 다녔던 학교는 에스컬레이터 마냥 유초중고를 한 계단씩 올라가서 정상에 위치한 대학교를 순조로이 가게 했다.

겉으로 보면 내가 가는 궤도는 이탈 하나 없이 무탈한 궤적을 향하고 있었다.

“……공부나 하자.”

나는 갖은 핀잔과 구박을 거친 법전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대충 공부할 것들을 꺼내서 책상에 앉았다. 아직 로스쿨 졸업까지는 1년이 더 남았지만, 얼른 시험에 합격해서 이 집을 나가야지 하는 복잡한 마음이 나를 한시도 쉬지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그저 단순한 반항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집의 사람들과 같이 횡포를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었다.

가하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애가 무익한 욕심에 사라진 일이 내가 사는 세상에 다시는 없었으면 했다. 가하가 사라지고 난 후에 마음을 먹고 이제야 행동하는 게 이미 때를 놓치고 한참은 늦었을지는 몰라도, 그냥.

그렇게 한 발 한 발 멀리 가다 보면, 갈 길을 잃은 내 사랑이 어딘가 편안한 곳에 다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 * *

“축하해요, 선배!”

“같이 사진 찍어요!”

“……그래. 고마워.”

오가면서 인사만 몇 번 나눴던 동기나 후배들이 생각지도 못한 꽃다발과 선물로 보이는 쇼핑백들을 내게 안겨 주면서 쥐떼처럼 우르르 몰려왔다.

‘보통은, 졸업식 같은 거 잘 안 챙기지 않나. 그것도 대학원은.’

졸업 가운과 모자를 쓴 내 뒤로 지석이형이 카메라를 들고 쑥 튀어나왔다.

“우리 대호 도련님 친구 분들이신가? 하따, 아가씨들이 이리 아름다우셔서 카메라가 담을까 모르것네.”

“하하하, 대호 선배만 하겠어요.”

애들의 빈말에 지석이형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형도 참.’

나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중간에서 어정쩡하게 섰다. 그런 우리에게 지석이 형이 어디 사진사마냥 삼각대를 턱, 두고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대었다.

“암 그라지. 울 도련님이 젤 빛나지라. 여기 보시고, 하나 둘…….”

“치즈~!”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집에서 자라면서 보고 알게 된 크고 작은 불법적인 행위들은 역으로 내게 법을 잘 알게 했다. 그래서 남들보다는 법을 좀 더 쉽게 이해했다. 생각지 못한 집안의 혜택 덕분에 나는 변호사 시험을, 남들에 비해 빠른 기간인 2년 만에 통과했다. 나름 마음을 졸인 시험 후에 변호사 자격을 위한 연수가 마지막 관문으로 남아 있었다. 연수원으로는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둘째 형이 늘 노래를 부르던 검찰청도 있었고.

그렇지만 공직자의 길을 갈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우선 교수의 추천으로 큰 로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걸 두고 남들은 성적이 좋아서 그런 기회도 있는 거라고 부러워들 했지만, 나는 딱히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변호사 자격을 온전히 얻을 생각 밖에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생각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난 내 궤도를 올바르게 지켰을지도 모른다.

로펌에 들어가기 전, 내 인터뷰를 담당했던 중년의 변호사의 사무실에 약속한 시간에 맞춰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아, 시험 합격 다시 한 번 축하해요. 김 교수님한테서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예.”

그는 개인용 사무실에 나 있는 창문의 블라인드를 축, 치고 나이 있는 사람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내 양복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우, 젊은데 은근 강단 있는 분위기가 있는 게. 좋아. 얼굴도 잘생긴 게 우리 여직원들이 좋아하겠어.”

“……저는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보통 그런 말들은 딱히 대답할 만한 것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는 비서가 내온 뜨거운 차를 후룩 마시고 팔짱을 꼈다.

“아 그렇지. 부서 배정 좀 들어가야지. 우리 회사가 분야가 워낙 많아서. 뭐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 있습니까?”

“기업 관련 일들이면 좋겠습니다.”

이왕 배울 거면 이 로펌의 전문 분야를 배우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원하는 인권 관련 분야를 이미 들어온 이 로펌에서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 나름의 차선이기도 하고. 로펌들은 대체로 돈 되는 사건만 맡곤 하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쨌든 미리 찾아서 준비해 온 내 대답에 그는 정답을 찾은 사람마냥 빙그레 웃었다.

“그거야 말로 우리 로펌 전문이지요. 잘 온 것 같습니다. 저, 미스 박. 우리 황 변호사 5층으로 안내해 줘요.”

그는 책상의 수화기를 들어서 차를 내왔던 비서에게 연락했다. 내 몫으로 놓인 차는 줄어든 기색 없이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내게 다시 눈짓했다.

“이왕 온 거 잘 맞아서 우리 로펌에 계속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교수님이 그렇게 자랑을 하던 게 기대가 되서 말입니다, 인재는 늘 탐이 나거든요.”

“……예.”

딱히 김 교수와 그렇게 말을 많이 해 본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나는 그것을 사회에서 흔히 내뱉는 겉치레로 대충 알아듣고 그가 부른 비서의 안내를 따라 내가 앞으로 6개월간 일하게 될 사무실을 찾았다.

처음에는 책에서 나오는 사례가 아닌, 현실의 상황을 다룬다는 것에서 나는 조금 희열을 느꼈던 것도 같다. 그렇지만 그 작은 희열이 이윽고 커다란 모멸감으로 바뀌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긴 세월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6개월만 이 사무실의 구석에서 숨만 쉬고 있으면 자연스레 느끼게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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