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61)

* * *

“나 과학 보고서 아직 안 썼어.”

“나도. 같이 해, 가하.”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가는 가하는 아무리 봐도 자신의 집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애와 웃으면서 등교하고 하교하는 얼굴에 먹구름 같은 걱정 한 점 드리워진 자국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기 집이 망할 거라 알고 있는 애의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옆에서 모른 척 웃고 있는 그 애의 가증스러운 얼굴이면 몰라도.

“응. 우리 텃밭에 새싹 얼른 자랐으면 좋겠다.”

“쑥쑥? 나처럼? 아니야. 새싹, 아직 작아. 가하처럼. 그렇지?”

“씨, 지금은 그래도 나도 곧 클 거야.”

나는 집에서 온 차에 타기 전에 그 애들을 향해 쳐다보았고,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애가 나를 향해 쳐다보았다. 마치 오늘 날씨 마냥 파란 눈의 주인은 내게 가늘게 눈을 접어서 웃었다. 거리를 두고 있는 내 행동, 혹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일에 만족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은, 배부른 짐승과도 같았다.

“……이씨, 저게…….”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리고 걸려서, 나는 결국 가하와 첼로 반이 된 것을 핑계로 가하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여전하구나.”

솔직히, 가하는 그 애의 집에 간 이후로 얼굴빛이 더 좋아졌다. 그 애가, 답지 않게 갖은 관심과 욕구를 보이는 만큼, 잘해 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둘째 형의 말에 의하면 가하네 집과 하는 사업의 물꼬를 틀어 주라고 그 애가 직접 지시 할 정도라고 했으니까. 그 정도면 누가 봐도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흔치 않은 일을 벌인지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승냥이 같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쉬웠고.

결국 그 애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는 가하와 가하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들러붙기 시작했는데, 그 애의 둥지에서 안락하게 보호 받는 가하 대신 가하의 부모가 그런 사람들에게 이끌렸다.

부리는 욕심에 비해 머리는 좋지 않은 편인지 그들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대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이미 큰형네 회사에서 제법 큰돈을 빌렸다고 했다. 그 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맞춰진 것처럼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 나는 이제 그 애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무서워졌다.

한번도, 누구에게도 작은 관심 한 톨 주지 않던 애가, 처음으로 애정을 자각하고 난 후에 벌이는 일들은 어린 내가 봐도 겁이 났다. 관심을 빌미로 부모에게서 떨어뜨리고, 돌아가지 못하게 집안을 망가뜨리고, 결국엔 자기 빼고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만들 셈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 애는 고집이 센 편이어서 내가 몇 마디 해도 지나치면 그만이었고, 나를 자기 아버지 심복의 아들로 생각할 뿐이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기도 싫었다.

엄마는, 태양이 내게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그랬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가하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테니까.

그런 건 싫었다.

나는 가하가 첼로를 가져갈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에 가하의 첼로를 대신 잡아서 내 어깨에 멨다.

“……송주현네 차로 갖다 주면 되지?”

마치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러고 싶었다.

“어?”

가하는 내가 둘이 같이 사는 사실을 모르리라 생각했는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나는 그 결 고운 얼굴에 시선이 걸려 잠시 바라보다가 모르는 척 말을 지었다.

“봤어. 늘 같이 가 길래.”

나는 그 애의 마음을, 그 하얀 마음을 지켜 주고 싶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해 보고 가하가 떠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싶지 않았다. 예전에 엄마를 그렇게 보냈던 것처럼, 엄마가 떠나간 자리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그 자리에만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가하가, 영문도 모른 채 상처받고 우는 것은 더 싫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가하가 에스퍼여서 단념해야 했던 나의 마음에 조그만 희망이 생겼다. 그 애의 집이 바이오 헬스 관련 사업을 시작하면서 에스퍼와 가이드 관련 연구를 심도 있게 들어갔고 최근에 발표한 결과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에스퍼와 에스퍼도 서로 각인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단, 한쪽이 월등히 낮은 등급일 경우에만.

그 기사를 지나가면서 본 나는 내 궤도의 방향이 이제야 정 방향을 향하는 건 아닐까, 희망을 품었다. 내 힘으로 가하를 덮으면, 가이드의 각인과 같은 효과를 보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잘하면.’

그 애보다 먼저 가하를 내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 애가 가하의 유일한 가이드라는 명분도 들이대지 못하게.

내가 먼저 가하를 찾은 것처럼, 내가 먼저 가질 수도 있다는 그 작은 상상.

내가 너를 지킬 수 있다는 행복.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결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어느 때보다 분주한 집안의 분위기에 나는 직감적으로 오늘이 ‘그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 며칠간 가하는 가족 여행을 핑계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집의 사람들은 어디를 가는지 차고에 세워 둔 봉고차에 시동을 키면서 우르르 타고 있었으니 당연한 생각의 결과였다.

결국, 왔구나.

그런 무리들 앞에서 지석이 형이 목소리를 높여서 지휘하고 있었다.

“야야, 차 두개에 나눠 타라. 뭐? 자리가 부족하다고? 새끼들, 살 좀 빼라 했냐 안 했냐.”

큰형이 보냈을 게 분명한 조폭들 무리 중 대장격인 지석이 형에게 다가갔다.

“형.”

“이 무식한 돼지 새끼들 때문에 더 좁아졌어. 이? 도련님, 뭔 일이요?”

그는 마무리로 선글라스를 쓰다 말고 내 키에 맞추어 허리를 굽혔다.

“일하러 가?”

“아, 그라믄요. 오늘 힘 좀 쓰고 와야 고 사장 부부덜 겁 좀 먹죠. 그게 호락호락한 년놈은 아니요. 둘 다 은근 독한 끼가 보였거든.”

지석이 형은 그렇게 덧붙이면서 선글라스를 꼈다. 그래? 그런 사람들 밑에 어떻게 가하가 나왔지……. 나는 그런 생각도 잠시, 눈을 크게 뜨고 지석이 형의 현란한 무늬의 셔츠자락을 잡았다.

“형 오늘 완전 멋있는데.”

“아, 그래요? 뭐, 좀 신경은 썼소. 우리 조직의 얼굴이니까. 흠흠.”

내 침 바른 칭찬에 자식이 없지만 애는 제법 좋아하는 지석이 형의 얼굴이 싱그럽게 변했다. 사람 패고 다니는 사람이 애를 좋아한다는 건 좀 웃기지만. 아무튼 큰형이 지석이 형을 보내는 이유도, 가하를 데려오는 일이다 보니, 애를 좋아하는 편인 그가 오는 길에 가하를 잘 챙기리라 생각한 거 같았다. 내가 봐도 좋은 선택이었고.

“어디로 가?”

“아, 서초동 조지러 갑니다. 우리 큰형님이 고이 풀어 주신 푸릇푸릇한 배춧잎들 찾으러 가야죠. 이럴 때가 아니지. 저는 갑니다, 도련님. 성호랑 놀고 계시요.”

이건, 누가 봐도 가하의 집을 말하는 거였다. 둘째 형이, 가하의 집을 돈으로 뒤집을 거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채비를 마친 지석이 형은 기분 좋게 봉고차에 올라탔다. 이런, 우선 행선지는 알았으니까……. 이미 일이 벌어지는 걸 크게 막을 수 없는 것을 아는 나는 그들이 떠나자마자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호 형의 다리를 잡았다.

“형, 형. 나 좀 도와 줘.”

그는 사과를 깎다 말고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대호 도련님? 무슨 일이세요.”

나는 급한 숨을 거르면서 겨우 말을 이었다.

“헉, 내 친구. 오늘 지석이 형이 잡으러 갔어. 내가, 내가 가서 얘기 좀 해 볼 테니까 걔 손 못 대게 얼른 가 줘. 응?”

“아, 지석이가 그러고 보니 오늘 공구리 하러 간다 했지요.”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과도를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서 일어섰다.

“제가 어찌할까요? 아시겠지만 큰일은 못 합니다. 큰형님 일에 방해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나는 조직의 일을 맡은 사람도 아니고, 내 세력이라고 할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끌려오는 와중에 아픈 일은 없게 해주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지켜 주고 싶었다.

“나도 아버지한테 말하고 따라 갈 테니까……. 그동안 걔 옆에서 지켜 줘. 그거면 돼.”

“알겠습니다.”

그는 풀었던 양복의 마이 단추를 잠그면서 내게 짧게 목례하고 떠났다. 나는 그를 떠나보내자마자 우선 아버지가 계실 본가 서재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한창 일을 하는지 형들처럼 안경을 쓰고 서류를 보기 바빴다. 그러다가 뒤늦게 서재에 들어온 나를 보고 쥐고 있었던 만년필을 내려두었다.

“무슨 일이냐?”

“아버지.”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하얗게 센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이리 와서 말해 봐라.”

“오늘 지석이 형이 데려 올 애. 우리 집에 두면 안 돼요?”

“지석이?…… 아. 그 송 회장 손자네 담보?”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안 돼.”

“왜요? 걔네 부모가 빌려 간 돈 제가 가진 배당금으로 대신 갚아 줄 테니까 우리 집에 데려와요. 네?”

내 몫으로 둔 주식을 주겠다는 내 말에 철없는 애를 보듯 아버지가 혀를 찼다.

“녀석, 돈이 문제가 아냐. 그 손주 녀석은 그 애가 결국은 목적인 거 같던데. 넌 또 오랜만에 이리 와서 그러냐.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면 그 녀석 성격 알지 않던? 그놈이 욕심내는 거 남들이 손대다가 잘되는 거 봤어?”

“…….”

없었다.

그 애는 그런 애였다. 전부가 아니면 누구도 손을 못 대도록 박살을 내고 말았다.

그 애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누가 달라고 했다가 그 장난감을 아무도 탐내지 못하도록 그 회사를 통째로 사서 그 장난감 라인을 혼자에게만 독점 납품하게 한 건 유명한 비화였다. 내가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막막함에 눈을 찡그리자 아버지가 귀찮은 파리를 내쫓듯 손을 문 쪽으로 휘휘 저었다.

“아무튼 안 돼. 가서 공부나 해라. 곧 중학교 갈 텐데 언제까지 떼만 쓰고 살 거야.”

나는 작은 분노,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허탈감에 서재를 거칠게 박차고 나섰다. 아버지는 그런 내 등에 대고 엄하게 소리쳤다.

“너 대호 이 녀석, 일 방해하는 짓거리는 꿈도 꾸지 말아라!”

‘내 말 들어주지도 않는데, 내가 왜 아버지 말을 들어야 해.’

나는 작은 반항심에 집의 운전기사를 닦달해서 성호 형이 알려 준 소식을 따라 가하네 집을 갔다. 제법 괜찮은 동네에 위치한 가하네 집은 커다란 크기에 비해 태풍이 한바탕 쓸고 간 듯, 엉망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보낸 성호 형과 함께 가하가 그 집의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가하야.”

가하는 요 며칠 못 본 사이에 얼굴이 제법 상해서, 가하의 초능력 마냥 어디로 훅, 날아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 도착지가, 내 옆이라면 더 없이 좋겠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이 애를 여기서 어떻게 온전히 지킬지,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상처받게 할지 고민하며 꼭 안았다.

“……괜찮아?"

그런 가하를 내 품에 안은 그 순간이었다. 가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쌍칼이를 정신 조종으로 때려눕히느라 온몸에 잔상처럼 남아 있는 힘의 여파로, 살을 맞대고 있는 가하의 생각이 내 머리 속에 라디오처럼 흘러들어 왔다.

‘주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 애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열쇠는 그 애의 마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게, 내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나는 너를 기다렸는데, 너에게 다가갔는데…….’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있던 궤도를 나온 탓일까, 기다리던 태양은 내 바람과 달리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게 속상하다는 감정을 넘어, 이젠 분하기까지 했다.

너에게 난…… 뭐야? 왜 난 안 되는 거야…….

내가, 내가 너를 먼저 알아봤어. 내가 너를 먼저 사랑하고 있었어…….

내가 꼬여 가는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 와중에 가하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빠가 돈 없으면 나 데려갈 거래. 나, 어디로 가는지 알아?”

물론 나는 알았다. 그 애의 집이라는 것을. 그 끌려가는 과정을 계획하는 사람은 내 형들이었고 매일 식사시간마다 나오는 얘기를 빠짐없이 듣는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 과정에 순탄치 않는 부분이 제법 있어도, 결국 도착할 곳은 그 애의 집이었다. 진한 그림자를 머금은 그 애의 집. 그렇게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가하를 구할 수 없는 나, 그리고 그러기를 바랐던 바보 같은 나, 그리고 이런 상황에도 야속하게 그 애를 찾는 가하……. 나는 치미는 질투심과 속상함을 감추고 최선의 선택을 말했다.

“……송주현한테, 도와 달라 해.”

그 애를 불러, 그 애에게 부탁해.

구해 달라고.

너를 괴롭히는 이 사람들을 다 치워 달라고.

그럼 그 애는 분명 기다렸다는 듯이 가하를 구해낼 것이었다. 저 볼록 튀어나온 손목 뼈마디 하나 남겨 두지 않고 샅샅이 먹어 버릴 것이었다. 내 말에 가하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러냐며, 쓰게 웃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더 아파졌다.

‘너는 이런 애를…….’

나는 이제 그 애가 미워지다 못해 죽여 버리고 싶었다.

‘저 애는, 너에게 도움하나 구하지 못하고 참는데 너는…….’

예전에 아버지가 너무 많이 알아도 탈이라고 하더니 딱 그 꼴이었다.

나는 가하를 사랑하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았고, 그 애의 마음도 다 알았으며, 가하의 마음도 지금에서야 알아차리고 말아서 괴로웠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눈만큼 온몸이 아프고, 따가웠다.

엄마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내게 돌아올 사랑이 없다는 건, 보답 받을 수 없는 마음을 품은 건, 어린 내가 견디기엔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가하에게 자포자기로 말했다. 나를 선택하라고.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내게 부탁해. 응? 내게 도와달라고 해. 나를 선택해.”

나는 너를 아프지 않게 할게.

너를 지켜 줄게.

그러니까…….

“내가, 내가 좋다고 그래. 송주현한테, 이제 내가 훨씬 좋아져서 나랑 살겠다고 그래…….”

내게, 와 주면 안 될까.

그 깨어지지 않는 궤도처럼, 내게…….

“……미안.”

그렇지만 가하는 그저 웃는 얼굴로 나를 보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가하의 마지막이었다.

가하는 그날 이후로 궤도를 이탈하다 못해 어디에서도 찾을 수도 없게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사라진 내 태양의 길을 영영 찾을 수 없었다.

그 상실감으로 방 안에 박혀서 그 애와 함께하던 날들을 추억하던 나는 이제 눈물도 나오지 않는 눈을 껌뻑였다.

“가하…….”

나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가하를 자꾸 떠올리며 내 몸을 둥글게 부둥켜안고 매일 밤 엉엉 울었다. 어쩌면 엄마가 죽었을 때보다도 더…….

약속한 날에 다시 찾아간 그 엉망진창인 집구석에 ‘그 애’의 힘, ‘가이드의 보호’가 발동되어 폭발로 인한 죽은 시체 하나를 빼면 죽은 사람도, 산 사람이 없었다. 그 남은 사람마저 짐승마냥 추악한 모습으로 그을리게 한 건 누가 봐도 그 애의 힘이었다.

보호를 남겨 두었다니. 어린 애라서 각인을 하지 못한 게 다행인가. 검사 결과에 의하면 그 시체는 가하가 아니었지만 상상조차 가지 않는 그 커다란 폭발 속에서, 그것도 그 애의 강력한 힘을 품었던 최하 등급의 에스퍼로서는 살아있으리라 보기 어려운 현장이었다.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다는 게 더 그 불안한 상상에 박차를 가했다.

억지로라도, 데려올걸.

아버지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 그 애가 나를 그 강력한 가이딩으로 죽이려고 했어도, 혹은 죽인다고 해도 그냥 그 자리에서. 온전히 무사한 상태로 데려 올 것을. 가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은, 죽게 된 것은, 그 애의 힘도 한 몫 했지만 가이드의 보호가 깨어나도록 몰아친 우리 집 사람들의 작업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나는 직접적으로 가담하진 않았지만 나 또한 그 사람들의 가족이었다.

무력하다는 이유로 결국 그 애를 그 곳에 방치해서 죽게 만든…….

그렇게 생각하니 아픈 마음에 더욱 골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미 집안의 궤도에서 움직여 버린 몸, 더 멀리 가자고 다짐했다.

이 길을, 가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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