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외전: ANALEMMA
누군가 지키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다. 돈, 명예, 권력 같은 거창한 것을 떠나서, 작은 기억, 낡은 추억이 담긴 물건 같은 것들.
혹은 사람.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학교를 가기 전 내게 그런 사람은 엄마였다. 형제들과 꽤 터울이 큰 나를 엄마는 유난히 사랑해 주었다. 어엿하게 큰 형들이 귀여운 구석 하나 없어 재미없다며 투덜거리는 게 그녀의 입버릇이었다. 그녀의 투정마저도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했다.
귀염성 없는 형들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느라 바쁘다 싶으면 엄마는 내 방의 문을 똑똑 두들기곤 했다. 내 방문이 열리면 환하게 웃는 엄마가 어떻게 막을 새도 없이 쳐들어오곤 했다. 그녀는 내 침대에 같이 앉아서, 심심하다며 도리어 내게 응석을 부리곤 했다. 그게 나는 좋아서 언제나 못이기는 척, 열어 주곤 했다. 매일 밤, 엄마와 나의 웃음소리로 마무리 되는 그 기분이 좋았으니까.
“대호야, 저기 봐봐. 큰곰자리야.”
“……모르겠는데.”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도심 속에서 별을 찾기란 모래 속에서 금붙이를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는 그저, 쪼개진 빛 부스러기로만 보였다. 아니, 사실 어렴풋이 상상은 가지만 나는 일부러 모른 척 했다. 그러자 엄마가 내 손을 꼭 쥐고 별자리를 하나하나 짚어 주기 시작했다. 그 따스한 손길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아니야, 자세히 봐봐. 여기, 여기, 여기 이렇게 이어 주면…… 너 닮은 작은곰자리도 있잖니.”
“……엄마 지금 나 놀리는 거죠?”
“어머, 알아차리는 게 빨라졌네. 쑥쑥 큰다, 우리 막둥이 대호.”
내 불만어린 항의에 엄마는 들켰다는 얼굴로 수줍게 입을 가리고 깔깔 웃었다.
이런 게, 좋았다. 어린 내 눈에도 딱딱하다 못해 말 수 없는 아버지, 형들과 달리 엄마는 늘 활기차고 사랑이 넘쳤다.
‘사랑스럽다는 게, 이런 걸까.’
시시때때로 나를 골탕 먹이려 애를 쓰는 그 모습이 전혀 밉지 않았다. 골탕 먹이지 않으면 오히려 더 아쉬울 따름이었다.
“우리 집 곰돌이, 대호…….”
일부러 말없이 부루퉁하게 있는 나를 엄마가 폭 껴안았다. 이런 기분이, 일상이 더 이상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눈앞에 있는 그녀와 이러한 나날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나 곰 안 해.”
내 귀밑머리를 한 올 한 올 넘겨주는 손길이 생의 마지막을 앞둔 듯 생기 없이 버석버석했다. 내 투정에 엄마는 마른 입술을 불만인 듯 내밀었다.
“그럼 엄마 곰돌이 이제 누가 해?”
“……몰라. 암튼 안 해.”
엄마가 집안에서 입고 다니던 고운 빛깔의 초록 원피스가 푸른색의 입원 복으로 바뀐 게 언제인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 나을 법하면 또 바꿔 입고, 또 악화되고 그래서 이제는 집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그마저도 참 잘 어울렸다. 깊은 아픔을 오랫동안 간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특유의 사랑스러움은 죽을 줄을 몰랐다.
그게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저 그 까슬한 재질로 이루어진 복장에 어린 불길함을 느끼며 심장 소리를 키울 뿐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를 두고 엄마가 못 말린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우리 대호, 무슨 생각하는지 엄마가 한번.”
“…….”
“맞춰 볼까?”
내 기분을 돋아 주려, 환한 얼굴로 밝은 척을 하고 애쓰는 엄마가 보기가 싫어 고개를 홱 돌렸다. 어째 걱정하는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나를 더 이상 못 보는 게 섭섭하지도 않은 걸까. 나랑 더 이상 웃고 침대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지 못하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런 내 반응에도 엄마는 버릇없다는 잔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저 진지한 고민을 거듭하는 사람처럼 흠, 하고 침음을 내었다.
“알겠다. 엄마 수술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들이 말한 말을 이미 들었기 때문에, 빈 말도, 거짓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
“……몰라.”
“에이, 그러지 말고 잘 될 거라 해 줘. 응?”
엄마는 내 귓불을 장난스럽게 당기면서 졸랐다. 죽음을 앞둔 사람치고는 어울리지 않은 반응이어서 나는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마지못해서 본 엄마의 얼굴은 참 밝고 밝아서, 나는 그게 못내 서러워졌다.
왜 엄마가 죽어야 하는 걸까.
엄마의 오랜 지병을 두고 간호사 누나들이 병동을 오가면서 ‘인과응보’라며 비밀스럽게 소곤거렸다. 어린 내게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누구를 해하거나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형들이었다. 가족들이 하는 나쁜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사람이 우리 엄마라니 그건 불공평하다.
‘우리 엄마는, 그런 거 안 했는데…….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 아닌데…….’
풀리지 않을 억울함으로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비비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살며시 안았다. 그녀에게서는 평소처럼 장밋빛을 띄던 향기가 아닌, 뻣뻣한 소독제 냄새가 풍기다 못해 내 코 안쪽에 찌릿하게 파고들었다.
“아유, 우리 대호, 정이 이리 많아서야 커서 어떡하지. 엄마 잠시 간다고 이리 울고…… 여자 친구 어디 간다 하면 이렇게 울 거야? 그러면 여자 친구가 안 좋아할 거야 대호야. 쿨하 게 보내 줘야지. 형들처럼, 응?”
“싫어…… 가지 마, 엄마…….”
쿨한 거 안 해도 되니까 가지마. 참다못해 터지는 울음에 엄마는 웃으면서 내 짧은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리 달라.”
“…….”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엄마는 작게 속삭였다.
“대호야, 엄마 어디 안가.”
갈 거잖아.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잖아.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릴 거면서, 거짓말쟁이…….
훌쩍대는 나를 두고 엄마는 병원 침대 맡 서랍에서 작은 수첩을 하나 꺼냈다. 그녀가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보았다. 엄마는 쥐면 부러질 듯 가는 손으로 수첩의 페이지를 스륵스륵 넘기다가 중간 즈음에 멈춰서 끼워 둔 사진 하나를 내게 들이밀었다.
“봐봐.”
“……흡.”
“이거 봐봐. 대호야. 이게 뭔지 알아?”
사진 안에 푸른 하늘의 한가운데로 구슬처럼 동그란 빛들이 8자 모양으로 점점이 찍혀 있었다. 묘한 모양이 찍혀 있는 사진에 눈이 이끌렸다. 엄마는 젖은 내 볼을 티슈로 부드럽게 훔치고 내 어깨를 사이좋게 꼭 끌어안았다.
“이게 태양이 가는 길이야. 봐, 어디 멀리 가는 거 같다가도 이렇게, 다시 돌아오잖아. 그치? 이거 찍느라 진짜 힘들었다? 이거 찍으려면 1년 동안 똑같은 자리에 가야한단 말이야.”
엄마는 자랑스럽게 자랑했다.
“……엄마도 이렇게 잠시 멀리 가는 거야.”
안 올 거잖아. 돌아오지 않을 거잖아. 이미 알고 있는 말을 나는 덜덜 떨리는 목구멍에 깊이깊이 쑤셔 넣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끅끅대는 나를 두고 안아 주던 엄마가 내 등을 토닥, 토닥 쓸었다.
“괜찮아. 지금은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거 같아도, 이 태양처럼 우리도 언젠가 하늘에서 만날 거야…….”
“……정말?”
그 사진이 주는 묘한 궤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자신 있게 말하는 그 약속 때문이었을까, 나는 작은 희망을 가졌다. 정말 그러지 않을까, 싶은.
“정말. 엄마 거짓말 하는 거 봤어? 자, 약속.”
“……약속…….”
“갈 땐 가더라도 우리 대호 색시는 보고 가야지! 이렇게 정이 많아서야 나중에 나쁜 여자 친구 만날까 봐 엄마 걱정이야. 응?”
엄마는 나와 새끼손가락을 탁, 걸고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손바닥 복사를 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엄지로 지장을 서로 찍어 주지 않아서 그랬을까. 그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제법 유명한 외국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다는 엄마는 순회공연으로 한국에 들어온 첫날, 자동차 접촉 사고로 마주친 아버지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걸 두고 엄마는 늘 내게 얘기해 주곤 했다.
「엄마가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내 손을 막 덜덜덜 떨면서 쥐는 거야. 괜찮냐구……. 얼굴은 험악한데! 아니, 그래도 가만 보면 괜찮아. 잘생겼어. 큰형이 아빠 많이 닮아서 학교에서 인기 좋잖니. 응? 아니라구? 아무튼, 매번 공연 끝날 때까지 엄마 손 지켜 주겠다고 따라다니는 거 있지. 엄마가 공연장 갈 때 마다 말이지. 다친 손 쓰지 말라며 엄마 첼로도 대신 짊어지고, 연습실 구석에 앉아 있다가 쉬는 시간마다 물도 막 떠다 주고, 장난으로 다리도 아프다고 하면 업어 주고…… 다시 생각해도 너무 귀엽지 뭐야.」
그렇게 옛 기억을 더듬어 가고 나면 엄마는 그녀에 비해 비교적 작은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니까 대호야, 네가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꼭 잡아야 해.」
「그게 사랑이야…….」
지켜 주고 싶은 사람, 그게 생기면 분명 사랑이라고 했다.
그 사랑 속에 있어서 엄마는 행복했노라고, 쓸쓸한 눈을 떨치며 회상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엄마가 외로워 보여서 이제 내가 엄마를 지켜 주겠다고 큰 소리를 치곤했다. 그러면, 엄마가 이런 건 꼭 아빠를 닮았다고 속삭이면서 나를 껴안고 서로의 뺨을 비비곤 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전에 말한 것과는 달리 엄마를 지켜 주지 못했다. 밝고 향기로운 음악소리가 늘 넘치던 엄마의 세상과 달리, 아버지의 시커먼 조폭 집안은 이전과 같은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첼로가 전부였던 삶이 무거운 사랑으로 덮여지는 답답함에도 엄마는 나와 형들이 있어서 좋다며 그저 즐거워했다. 그 북적함에서 오는 외로움은 숨기고 덮으려 해도 그럴 수가 없던 모양이었다.
가끔 엄마의 마음이 가을바람처럼 흔들리고 나면, 그녀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습실에 갔다. 특히 예전에 활동하던 오케스트라의 음반을 반주로 팔이 올라가지 않을 때까지 첼로를 연주했다. 동시에 내가 외톨이가 되는 날이었다. 형들은 내가 너무 어리다고 피하기 바빴던 탓에, 이 집에서 나를 늘 안아 주고 재밌게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 좋자고 엄마의 첼로 연주를 방해하기도 싫었다. 나는 꾹 참고 엄마의 연습실 밖의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문틈으로 간간히 들리는 그 부드럽고도 격정적인 선율을 들으면서…….
그녀가 마지막은 늘 가라앉은 곡조로 마무리하고 나올 때, 그 어두운 검은 눈빛이 나를 보면 훅, 누그러진다는 것을 아는 아버지가 나를 일부러 앉혀 둔 것이지만 당시에 나는 어려서 그것을 몰랐다.
「우리 대호, 엄마 기다렸어? 심심해?」
그저 예전처럼 나를 안아 주는 그 손길이 따뜻하기를, 늘 내게 머무르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꾹꾹 눌러 버린 땅이 온전할 리가 없다. 우리도 모르는 새에 속으로 몇 번씩 지진을 겪은 엄마의 마음은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골을 만들었다.
지켜 주겠다던 아버지의 말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 풍파를 견딜 만큼의 힘이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의 약속이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던 엄마의 세계에 불협화음을 만들었던 것처럼, 메마르고 병든 마음의 땅을 깊게 파고들어 결국 생의 그림자를 지워 버렸다.
매일 밤 그녀와 함께 보던 하늘로 날아가는 회색의 향 연기를 보면서, 나는 사랑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환하게 웃는 영정 사진 속의 얼굴은 여전한데도, 우리의 사랑은 그대로인데도.
아버지와 형들은 내 옆에 벽처럼 단단하게 서서 평소보다 조금 더 굳은 얼굴로 장례를 마쳤다. 나는 그녀의 약속을 떠올리며, 내게 마지막으로 주었던 그 태양의 사진을 쥐고 저 매캐한 향의 연기 아래 그리움을 하늘 위로 태워 보냈다.
언제쯤이면 그녀가, 혹은 내가 그 아름다운 궤도로 돌아갈지를 상상하면서…….
‘아날렘마.’
그게 그녀가 내게 보여 준 사진의 이름이었다. 그 낭만적인 궤도를 두고 엄마는 내게만 비밀스러운 것을 알려 주는 듯 속삭였다.
「대호야, 명심해야 할 건. 태양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면 계속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해…….」
엄마가 일러준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남아서 외로운 궤도를 반복했고, 아버지와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인과응보라는 말을 믿지 않는지 그들이 걷고 있는 궤도를 떠나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뿐이었다. 아니면 벗어나기에는 겁이 나거나.
어찌되었든 그들은 그들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업이란 이름을 가장한 폭력을 썼고 그 결과로 밤하늘의 별 만큼 수를 늘려 갔다. 그러한 집에 부족함은 없었다. 내 마음의 작은 공간을 제외하면, 풍족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이 엄마에게 가지고 있던 사랑이 거짓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랑했으면서, 엄마를 죽게 만든 일을 계속하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지켜 준다고 해 놓고 결국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방식이, 내게는 모순 그 자체였다. 생각이 물꼬를 틀고 이어지다가, 그러한 일을 일찍이 그만뒀으면. 어쩌면 엄마가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원망도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런 짧은 생각을 숨기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막내야. 어느 사내자식이 밥을 그리 먹어. 얼른 퍽퍽 퍼먹지 못해.”
“……아버지.”
저녁 식사시간에 밥을 먹던 내 머리 속에는 셀 수 없는 물음표가 쏟아졌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왜 일을 그만두지 않죠?”
당신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했나요? 나는 그게 궁금해졌다. 진정으로 사랑했는데도, 왜 그만두지 않죠? 아버지는 한 대 크게 얻어맞은 표정을 했다. 그가 그런 적은 없지만, 그런 얼굴이었다.
“……뭐?”
“엄마는 아버지가 하는 일 때문에 죽은 거래요.”
내 말에 다들 부지런히 놀리던 손을 동시에 딱 멈췄다.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쇠 젓가락으로 육전을 집다 말고 손으로 얼굴을 무겁게 짚었다.
“누가 그러던.”
침울한 아버지를 두고 옆에 앉은 둘째 형이 나를 나무랐다.
“대호야, 식사 시간에 그런…….”
“용호야, 냅둬라.”
아버지는 그런 형을 만류하면서 내게 눈을 맞췄다.
“네 생각은 그래서, 그런 거 같으냐.”
“…….”
말이 없는 나를 보던 아버지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너도 살면 알 테지만.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 부모도 이러했고, 내 평생 배운 게 이런 짓이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이다. 네 엄마는…….”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운이 좋지 않았어.”
그 말에 나는 처음으로 공감이 되었다.
그래, 정말로 운이 좋지 않았다.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그러다가 아버지의 일로 인해서 마음의 병을 얻어서 죽은 건 참으로 운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켜 주겠다고 하고 지켜 주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것도, 참 운이 없는 일이다.
“왜 엄마를 만났어요?”
왜 당신 같은 사람이 만나서, 그 사랑스러운 사람을 당신 때문에 괴롭게 하고, 말라 죽게 만들었나요?
‘그런 게, 사랑인가?’
“…….”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아버지의 반응이 낯설었다. 어느 곳에서든, 무슨 일이든 그는 늘 당당했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일에도 엄마가 자랑하는 그 어깨와 등을 굽힐 줄을 몰랐다. 그게 내가 가졌던 아버지의 이미지였다.
“……미안하다.”
깊게 다물린 입에서 짧지만 묵직한 말이 나오며 나를 울렸다.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떤 죄인에도 비할 수 없는 비참한 모습으로 말했다.
“……미안해. 다…… 나 때문이다…….”
쇠약한 노인처럼 중얼거리는 얼굴. 난생 처음 보는 표정을 가린 손 틈 사이로 강인하던 사내의 눈이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크게 상처받았을 사람.
그리고 아주 미련한 사람.
자신의 사랑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저 살아가느라 떠나가는 사랑을 다시 잡아 보려 했을 때는 이미 없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미련한 사람.
스스로의 손이 자신의 사랑을 죽여 버린 것을 뒤늦게 알고 평생을 후회로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사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하던 그 일밖에는 없었으니까.
우리의 식사는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로 끝났다.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방으로 돌아와서 밤이 깊도록 엄마가 남겨 준 아날렘마 사진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있었다. 그런 내 방 바깥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게 큰형이리라 예상하며 얼른 침대 맡 전등을 끄고 사진을 베개 밑에 숨긴 후, 자는 척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늦은 밤에 자고 있지 않으면 큰형은 내 엉덩이를 그 무쇠 손으로 곤장 패듯이 때렸기 때문이다. 머리는 무식하지 않은 사람이 손버릇은 제법 무식했다.
내가 잠을 자는 듯이 보이려고 숨을 고르게 쉬면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끼긱, 하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발걸음의 주인은 잠시 멈춰 있다가 이윽고 내 침대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형이라고 하기엔 너무 주도면밀하게 살피러 오는 모양새에 나는 긴장되었다. 누구지. 둘째 형인가.
“자냐.”
나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방의 방문자는 형들이 아닌 아버지였다.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슥슥 쓸었다. 무뚝뚝하기만 했던 그가 평소에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 의외성에 내 몸이 작게 굳었다.
“미안하다, 대호야.”
그는 식사 때와 같은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나쁜 짓을 하는 애비를 둬서, 미안하다고.
“애비 원망스러운 거 다 안다. 미안하다…… 네 엄마도, 그만두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한숨을 쉬는 듯, 내 머리를 쓸다가 토닥였다. 그의 손가락에 걸린 금반지가 분명할 금속이 내 머리 속 피부를 잔잔히 긁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듯, 그는 일어서다가 갑자기 내게 가까이 몸을 대었다.
“이거…….”
아버지는 내 베개 밑에 손을 슥 대어서 무언가를 꺼내갔다. 나는 그 팔랑거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엄마가 남겨 준, 사진…….
그 사진을 보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버지가 혼을 낼까 조금 무서워서 바닥 쪽을 항해 고개를 푹 숙였다.
“너…….”
그는 한참을 사진을 보다가 나에게 입을 열었다.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디서 가져온 거야. 사진첩에 있는 사진들 건들지 말라 했잖냐. 당장 도로 갖다 둬.”
“엄마가…… 주신 건데요.”
나는 뺏기기 싫었던지라 용기 내어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입맛이 쓴 듯 혀를 하며 내게 사진을 다시 돌려주었다.
“……어쩐지. 이게 없었어.”
잃어버리지 마라. 방을 나서는 그를 나는 다시 붙잡았다.
“그만 두지 않을 거죠?”
“……애가 너무 많은 거 신경 써도 탈이다.”
연약한 속을 보인 것도 잠시 아버지는 무심히 대답하고 나가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점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도, 나랑 같은 말을 했다고. 그럼에도 그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버지가 어린 내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지 않지. 왜? 정말로 사랑한다면,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거잖아.
그 와중에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과연 내 형들과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는, 이런 더러운 일들을 계속 할까?
“아버지는, 형들이나 내가 죽어도 계속 할 건가요?”
“……대호야.”
아버지는 내 방을 나가다 말고 씁쓸하게 웃었다.
“애비 밑에 자식이 너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살자고 그 녀석들 다 버리고 가면 어떡하겠냐.”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도망치듯이 방을 나섰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나는 손에 쥔 사진을 다시 보았다.
나에겐 지킬 사람이 엄마 하나였지만, 아버지에겐 지켜야할 게 너무 많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나와, 형들 말고도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검은 양복의 사람들.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그는 쉽게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모든 것을 가지려는 이기적이고도, 다 잃고 나서도 고집하는 미련한 사랑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나 형들이 하는 일에 대해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않았다. 다 큰 그들은 그 조직 안에서 지키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터울이 많은 나만이 아직까지 자유로웠다. 그래서 나는 조직에서 지켜야 할 것, 책임져야 할 것을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엄마를 아프게 하던 그것들을, 나는 책임지지 않을 거라고.
이기적인 아버지처럼 사랑을 떠나보내고 나서 뒤늦은 후회로 미련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라고.
그게 내가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던 단 한 사람에 대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조직의 사람을 붙여 줘도 정을 들이지 않는 나를 두고 형들은 신경이 쓰이는 듯 몇 번씩 불러서 나와 대화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런 나에 대해 아버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그리고 그가 선택해야 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듯. 그 반응에 나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이 집을 나가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게 되었다. 어서 나가서, 집안일에 엮이지 않고, 책임을 지거나 지키려하지 않겠다고.
엄마를 아프게 한 그 불의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언제쯤 난 어른이 될지, 시간이 왜 이리 느리게 흐르는지 불평하면서.
그런 날 중에 하루는 한 애가 전학을 왔다. 홀수인 반을 짝수로, 짝이 없는 내게 짝꿍이 된 그 애는 부끄러움을 제법 타는지 조용했다.
가하. 그게 그 애의 이름이었다.
마치 한글에서 첫 자와 끝 자를 이어 만든 이름의 애는 몸이 아파 시골에서 왔다고 했다. 그렇구나. 시골에서 올라온 애 치고는 얼굴이 하얀 게 나는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보는 조직 사람들 중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늘 까무잡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그런 점이 관심을 끌었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이자, 처음 보는 아이에 대한 작은 호기심. 돌아가신 엄마와 달리 항상 차분하고, 말이 없는, 그런 또래 애들과는 조금 유별난 구석이 시선을 잡았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우리 엄마가 유난히 내게 유치하게 굴었던 것도 같다.
아무튼, 그 애는 반 애들과 늘 다르게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 ‘무’에 가까운 느낌이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가하야, 이거 봐. 나 신발 새로 샀다.”
“응, 멋있다 반장. 나도 사고 싶던데.”
반장이 운동장의 우레탄 트랙을 달리고 나서 발을 공중으로 휙휙 차며 보란 듯이 자랑했다. 가하는 체육복 가슴팍을 잡고 휘휘 털면서 더운 기운을 떨치며 호응했다. 나도 괜히 오, 하고 소리를 내며 가하를 쳐다보았다. 뱉은 말과는 달리 가하는 반장의 새 신발에 큰 관심이 있어보이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게 자꾸만 눈에 띄었다.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으니까.
반장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지 우쭐한 얼굴로 동그란 안경을 햇볕에 반사되도록 치켜 올렸다.
“흠, 이번 받아쓰기 시험 백점 맞아서 엄마가 사 준거야.”
애들이 반장의 소리에 어디 나도 보자며 뭉게뭉게 몰려드는 틈에 한 애가 가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근데 가하 너도 이번에 새로 나온 시계 샀네! 나 이거 엄마한테 사 달라고 했다가 혼났는데.”
“아……. 응. 쓰던 게 고장나서.”
가하는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꺼림칙한 표정을 했다. 그럼에도 애들은 유난히 들러붙었다. 어차피 저들이 차고, 신고 있는 물건들도 새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유난히 가하가 가진 것에 은근한 관심을 표했다.
“보자, 보자. 나도 저번에 백화점 구경 갔다가 사려고 찜해 놨단 말야.”
“나두.”
하나가 둘이 되고, 이제는 관심도 없는 애들마저 점점 다들 구경하자며 개떼같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 애는 부담스러운, 아니 질린 얼굴을 했다. 보통의 또래라면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보란 듯이 굴 텐데. 그 애는 또래 애들과 비슷한 신발과 시계를 차면서도, 한 번도 자랑하거나 남의 것을 부럽게 보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 욕심이 없다고 할까. 아니, 그런 욕구가 비어 있다고나 할까.
그런 구석이 자꾸 내 마음을 끌었다.
나는 의도치 않은 관심에 괴로워하는 그 애의 팔을 잡고 그 패거리에서 훅 당겼다. 가하는 억지로 데려가는 나를 향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대호……야.”
그러니까, 이런 얼굴. 괴로워하면서도 먼저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지도 않는 이런 얼굴.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이 얼굴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어? 야, 대호! 어디가!”
“술래잡기 하자, 나랑 가하 술래 한다.”
“뭐?”
애들은 불만을 하면서도 술래잡기를 하기 위해 운동장 멀리로 퍼지고 우리에게서 떨어졌다. 물론 도망가는 우리를 보고 나중에서야 이게 술래잡기가 아닌 것을 깨달은 얼굴들을 했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어차피 내버려두면 알아서 지들끼리 놀 것이었다. 가하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 손에 잡혀서 같이 뛰었다. 우리는 운동장 멀리 떨어진 교내 공원 벤치에 다다르고 나서야 멈췄고, 나는 애들이 쫓아오지 않는지 살피다가 피어오르는 쑥스러움을 숨기려 가하를 잡은 손을 툭 놨다.
“으아, 애들 진짜 유치하다. 이게 다 뭐라고.”
내가 그 애에게 넌지시 말하며 공원 벤치에 털썩 앉자 가하가 주춤주춤 다가와서 내 옆에 앉았다.
“……고마워, 대호야.”
무의 상태와 다름없는 그 애가, 내게는 이렇게 감정을 조금씩 드러내는 게 좋았다.
“……뭘. 우리 여기 있다가 종 울리면 교실 들어가자.”
“응.”
가끔 그 백지 같은 상태에서 보여 주는 그 희미한 미소는 무척 특별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저 흠집 같은 미소는 나만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보석이었다. 그게 못내 기쁘고, 각별해서 나는 이 애가, 늘 이대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물들어 버린 애들처럼 그릇된 욕심을 부리며 사는 게 아니라.
깨끗한 저 마음 그대로, 지켜졌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