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선글라스 조폭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거실 바닥에는 초록빛 소주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게 마치 담벼락 밑 그늘진 아래에서 자라나는 이끼처럼 보였다. 동시에 크리스털 재떨이에 쌓여 가는 담배꽁초도, 화장실 하수구에 서식하는 날벌레마냥 빠르게 증식했다.
나는 추위로 시린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숨을 참았다. 잿더미가 코에 들어가면 텁텁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못했다. 까만 비닐봉지에 내 마음처럼 까맣게 타다 못해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잿더미를 탈탈 털었다. 털어지지 않는 회색 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재떨이를 차가운 물에 대충 헹구었다.
대충 식탁 정리를 마치고 연체된 전기 요금 때문에 더 이상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끼니를 맞추어 불려 둔 쌀은 어제 저녁을 마지막으로 동이 났다. 나는 미지근한 냉장고 문을 닫고 얼른 부엌 한 쪽에 밀어 둔 빈 소주병들을 한손에 두세 개씩 한꺼번에 집었다. 빈 병을 슈퍼에 가져가서 쌀이나 라면으로 바꿔 와야 했다.
정원의 앙상한 가지들을 흔드는 겨울바람을 보면서 옷을 최대한 껴입은 나는 책가방과 실내화 가방에 소주병을 가득 넣어서 늘 가던 동네 슈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길이고, 추위를 감안해서 옷을 제법 껴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몸 안쪽은 시려웠다.
“으응, 왔니.”
다리 하나가 부서진 빨간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앉아 있던 슈퍼 아저씨는, 안테나가 부러진 TV를 두툼한 손으로 쾅쾅 치다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어어.”
나는 묵직한 소주병이 혹시라도 기울어진 책가방에서 쏟아지는 바람에 몽땅 깨지는 참사를 다시 겪을까봐, 고개만 푹 숙여서 인사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안다는 듯, 지직거리는 TV를 두고 맨발 차림의 삼선 슬리퍼를 직직 끌었다.
“그래, 오늘은 얼마나 가져왔는지 볼까.”
아저씨는 내 손에 들린 실내화 주머니를 받아들면서 병을 빠르게 셌다. 나는 책가방 안에 있는 소주병이 깨지지 않도록 책가방을 어께에서 조심조심 끌러서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사이에 아저씨가 틀어둔 고물 TV에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IMF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한 정부는…….
“한 마리, 두시기, 석삼, 너구리…….”
슈퍼 아저씨는 노래를 하듯이 리듬을 타 가며 소주병의 개수를 셌다. 부지런히 소주병을 세는 아저씨의 의자 옆으로 차곡차곡 꺼내다가 뉴스를 보았다. 한 남자가 나와서 학교 강당에서나 볼법한 단상 위에서 연설문 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오늘과 같이 어려운 과정을 자초한데 대하여 정부는 실로 깊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여덟…… 에이, 도둑놈의 새끼들! 맨날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뭐 하는 게 있어서! 이러니까 나라가 이 모양이 됐지.”
작은 슈퍼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에 내 어깨가 들썩였다. 슈퍼 아저씨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내게 종이쪽지와 모나미 펜을 한 자루 주었다.
“자, 오늘 살 거 적어라. 병 가격만큼 깎아서 말해 줄게.”
“네.”
나는 라면과, 쌀, 미역, 따위를 적다가. 귓가를 파고드는 뉴스에 신경이 끌렸다.
―삼라 그룹의 오너와 경제부 차관보가 함께 스웨덴으로 재정 융자 지원을 받으러 떠나는 모습을 전해 드립니다…….
TV에 하얀 비행기가 커다랗게 보였다. 하얀 비행기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 앞으로 빨간 카펫이 깔려 있었다. 나이를 제법 먹은 아저씨들이 그 빨간 길을 겨울 코트차림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 볼펜 떨어졌다. 뭘 보느라……. 아.”
그 애가, 지직대는 TV 안에서 얼굴의 반을 가리는 까만 코트를 꼭꼭 동여매고 비행기 입구 쪽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코트자락이 거친 겨울바람에 휘날리는 뒷모습에 가슴 한쪽이 저릿저릿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내게 좋다좋다 하며 매달리던 그 애가 TV 안에 있었다.
“쌀……. 라면은 여기 있고. 마른 미역은 창고에 있나 보다. 가져 오마. 2500원만 주면 된다.”
아저씨는 내 손에 적혀 있던 식료품을 슬쩍 보고는 비닐봉지 안에 챙겨 주다가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돈을 꺼내면서 고이는 눈물을 몰래 훔쳤다. 늘 같이 있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게. 다른 세상에 떨어진 사람마냥 살게 되었다는 게 실감이 뒤늦게, 그제야 났다.
나는 평생, 그 애를 TV로 나마 조금씩 보겠지.
그 애는, 아마 나 같은 사람은 까맣게 잊고 살아가겠지.
평범하다고 무시 받는 삶을 살아가는 건 익숙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취급을 한다면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그 애의 기억에 나라는 사람이, 먼지만도 못한 존재로 변해 갈 거라고 생각하니 그건 조금 속상했다.
나는 살아가면서 힘들면, 기쁘면, 속상하면, 행복하면. 그 애를 계속해서 떠올릴 텐데.
그 애도 나같이 그러할까.
아마 옆에 있었다면 그 애는 그렇다고 냉큼 대답했을 것이다.
“자. 여기 있다. 다음에 또 오고. 아빠 술 그만 좀 드시라고 해라. 원. 없는 살림에 술까지 마시면 되겠냐. 널 봐서라도 얼른 일어서야지…….”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잔돈을 거슬러 주고 내게 과자 한 봉지를 서비스로 안겨 주며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따갑게 메이는 목을 간신히 넘기며 책가방에 식료품을 대충 쑤셔 넣었다. 그 애의 모습을 비춰 주는 TV를 조금 더 보다가 슈퍼에서 나왔다. 그런 내 뒤로 슈퍼 아저씨의 안타까운 말이 따라붙었다.
“……애는 착한데 ……안 됐어. 쯧쯧.”
나는 집에 돌아와서 쌀을 불리고, 내 몫의 라면을 먼저 끓여서 먹었다. 그러고 나서 동생 몫의 죽을 끓이고 제법 먹인 후에 잘 얼러서 재웠다. 이 반복된 일상이 동생도 이제는 익숙한지 밥을 줄 때마다 허겁지겁 받아먹기 바빴다. 먹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죽을 다 먹은 동생은 밖에 나가고 싶은지 계속 창문 쪽으로 몸을 기울였지만, 이 추운 겨울에 나가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가 아프다. 병원 갈 돈도 없고.
무엇보다, 주현이가 가이딩으로 주었던 힘이 거의 바닥난 지 오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힘을 조금 아껴 쓸 것을.
나는 후회를 뒤로하고 동생 방을 나섰다. 거실로 나오자 안방에서 깡깡대는, 빈 병이 부딪치는 특유의 소리가 났다. 아빠가 깨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부엌에 가서 아빠 몫의 라면 물을 성냥불로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안방 문이 끼이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빠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왔다.
“……라면 다 됐냐.”
“지금 물 끓이고 있어.”
“……그래.”
어른이 어린 내게 보살핌을 받는 반대의 상황이지만 그게 우습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힘들 때는 모두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갓난아이로 돌아간다. 내가 힘들 때에 그 애의 보살핌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아빠는 수 일째 깎지 못한 시퍼런 수염을 벅벅 긁으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파 뒤 벽걸이 달력에 빨간 색연필로 둥글게 표시해 둔 날짜가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였다.
대호네 조폭들이 아빠에게 돈을, 빚을 받으러 오는 날이 내일이었다.
하지만 거짓말로 시간을 벌은 우리 상황에 큰돈이 당장 생길 리가 없었다. 처음엔 아빠도 그나마 깨끗한 옷을 입고 부지런히 나서서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
그렇지만 불행은 전염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나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뿐만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번번이 거절당하며 좁은 어깨를 보이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안방에는 알콜 냄새가 점점 곰팡이처럼 물들기 시작했다. 처진 어깨에 달린 빈손에 로또 영수증이 하나둘 씩 들려져 왔다. 내가 늘 객관식 답 사이로 가는 것처럼, 아빠도 그 행운의 숫자를 둘, 셋 차이로 맞추지 못했다. 행운을 가져 오는 종이는 불쏘시개도 못하는 휴지조각이 되어 집구석을 굴러다녔다.
식탁 의자에 불안정하게 걸터앉은 아빠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올려 둔 물이 끓자, 나는 아빠 몫의 라면을 끓여서 식탁에 내놓았다. 아빠가 뻣뻣하게 자란 수염에 붉은 국물을 적시는 동안 나는 온수 표시로 돌려도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욕실에서 며칠 동안 하지 못한 샤워를 했다. 불을 붙일 수 있는 성냥도 얼마 남지 않아서, 동생을 씻길 때 빼고는 성냥을 쓰지 않았다. 차가운 계절만큼이나 시린 온도의 물에 몸을 덜덜 떨어가면서 해묵은 더러움을 씻어 내렸다. 샤워가 끝나자마자 방에 두 겹으로 쌓아 둔 이불 더미에 들어가 차가운 몸을 녹일 상상을 하며 욕실을 나왔다.
라면을 다 먹은 아빠가 그릇을 식탁에 그대로 둔 채로 담배를 피어올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쉰내가 나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의 찬물을 털어내며 붉은 기름기가 범벅인 그릇을 집었다. 그러자 아빠가 내 손을 턱, 잡았다.
“가하야.”
며칠 동안 씻지 않은 입에서 담배 찌든 내와 음식물이 부패한 썩은 내, 그리고 라면의 아릿한 매운 향기가 났다. 자연스러운 불쾌감에 나는 코끝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왜.”
“좀 앉아 봐라. 아빠가 생각 좀 해 봤는데.”
“응.”
나는 내심, 예상되는 말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했다. 내일, 그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그러겠지. 혹은 가지 말라고 할까.
아니면, 도망가자고 할까.
나는 야반도주를 한 이웃들을 생각하며 이제 우리 차례인가, 덤덤히 받아들이려 했다. 내 생각과 달리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장롱 밑에서 뭐 좀 없나 찾다가…… 이걸 찾았지 뭐냐.”
아빠는 갈색의 종이봉투에서 습기 때문에 누런색으로 변한 종이 뭉치를 꺼내들었다.
[보험증서]
“이게…… 뭔데?”
돈인가? 아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보면서 조금 기대하며 나는 그 아래 적혀 있는 조항들을 천천히 읽었다.
[피보험자의 상해 시 10억 배상]
아빠가 핏줄 터진 눈을 불안하게 떨면서 더듬, 더듬 말했다.
“아프면, 돈을 주는 거야. 조금만, 조금만 아파도 돼.”
“……누가?”
그리고 내가 읽은 마지막 사인 란에는 모를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피보험자: 유 가 하]
나?
나는 그것을 읽자마자 아빠에게 다시 시선을 올렸고, 아빠는 마치 죽기 직전의 죄수마냥 변명을 늘어놓았다.
“네 엄마가 모임에 가서 별 이상한 짓하면서 만든 모양이야. 그래도 말이지,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냐. 이거면 그 놈들도 별말 안하고 돌아갈 거야. 원금의 반은 되니까.”
“…….”
그래서, 지금, 나를……. 나는 말을 줄줄이 길게 늘어놓는 아빠를 가만히 쳐다보았고 숨이 차오른 아빠가 헉헉 대며 내 손을 붙잡았다.
“하루라도 더 빨리 찾았더라면, 이자를 하루라도 줄였을 텐데. 그치? 이것만 받으면 그래도 걱정은 말아. 아빠가, 알아서 다 할게. 그 정도는 금방 벌 거야. 예전엔, 이것보다 훨씬 많이 벌었는걸. 벌어서, 네 학교도 다시 보내 주고, 그 정신 나간 여자 말고, 좋은 새 엄마도 찾아주고, 못 먹은 만큼 더, 더…….”
“싫……어.”
갈피 없는 말들의 향연에 고개를 저으며 식탁에서 벗어나려 했다. 아빠는 내말이 들리지 않는지 내 손을 잡다 못해 질질 끌어서 부엌의 서랍으로 가까이 걸어갔다. 나는, 아빠가 서랍을 뒤적거릴 때마다 상상이 가는 그 도구의 모양에 아빠의 굵은 다리를 발로 퍽퍽 쳐대며 반항했다.
“싫어, 싫어! 나 아픈 거 싫어!”
“가하야. 못난 부모 때문에 미안하다.”
“아빠, 아빠……. 이러지마, 아빠.”
“그래도 어쩌겠냐. 우리가 살 길은 이거밖에 없다. 아빠도 노력했어. 정말. 너랑 네 동생 살려 보겠다고…….”
참고 참았던 눈물과 한 가닥 남은 희망이 같이 딸려 오는 것을 느꼈다. 아빠의 누런 눈이 번득 번득거리면서, 부엌에서 한동안 보지 못했던 큰 식칼을 꺼냈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그 시퍼렇고 섬뜩한 모습에 나는 아빠의 잠옷 바지를 붙잡고 애원했다.
“아빠, 미안해. 잘못했어. 아빠, 제발요. 싫어요.”
나는 몸을 구부리고 붙잡힌 손을 억지로라도 빼내려고 했지만 내말을 듣지 못하는 상태의 아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빠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보다가 이윽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한마디만, 요만큼만…….”
그건,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의 탈을 쓴, 무언가.
괴물이었다.
눈물로 축축이 젖은 속눈썹을 찡그리며 나는 제발, 제발하고 빌었다.
나를 좀 구해 줘, 아프고 싶지 않아.
누가, 누가 좀 도와 줘.
“눈 감아라. 잠시면 되니까…….”
손마디에 닿는 날붙이의 서늘함으로 점점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나는 그 애를 떠올렸다. 주현이.
‘주현아.’
그때에는 내 마음속으로 포기했던, 그 이름을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그 애는 비행기를 타고 멀리 떠나 여기에 없고 이 상황을 모를 테지만, 내게 다가올 아픔을 그 애로 지워 볼 생각이었다.
그 애가 없는 모든 순간에 그 애를 떠올리며 내 외로움을, 아픔을 달랬던 것처럼.
손마디를 파고드는 따끔함에 다물린 내 입에서 힘이 풀렸다. 동시에 아빠의 흥분된 숨이 손 위로 쏟아지는 것도.
“……주, 현아…….”
나는 눈을 감았다.
주현아, 나 무서워. 지켜 준다고 했잖아…….
‘구해 줘.’
마지막으로 소리 없는 절규를 하면서 눈을 떴다.
그 순간, 내 몸 안쪽에서 강력한 힘의 진동과 함께, 붉은 빛이 내 눈앞을 강렬하게 뒤덮으며 커다란 굉음을 내었다.
쾅!
“으아아아아악!”
주현아,
구해 줘.
나는 에스퍼지만 이렇다 할 힘이 없었다.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화려하고 강력한 힘들은 남의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힘은 고작 공중을, 하늘을 조금 나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니까 아빠가 내 앞에서 몸 전체를 감싼 붉은 빛 덩어리를 끄기 위해 구르는 모습.
흡사 지옥 불처럼 아빠를 삼켜들고 괴롭히는 붉은 화마는, 내 힘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악!”
아빠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절규를 내뿜었다. 그 붉은 불꽃은 색깔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탓에 아빠의 살이 엿가락처럼 줄줄 녹아내리며 비닐코팅 된 장판 바닥 위로 쩍쩍 달라붙었다.
타오르는 저 불을 꺼야 하는데.
내 안의 두려움은 커지다 못해 도움이 필요한 절규를 덮어 버렸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해골에서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났다. 그저 몸이 겁이 나서, 아빠라고 볼 수 없는 형체로부터 떨어지려 떨리는 팔을 뒤로 주춤 주춤 밀었다. 저것이, 일어서면…… 저기 장판에 떨어뜨린 칼을 들고서 나를 다시 찌를 것 같아 그저 겁이 났다.
처음이,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점점 무뎌진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았다.
엄마가, 아빠가 그랬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되었으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게 계속될수록 불편한 양심도 지워 버리게 되는 것처럼.
“…….”
그 작은 일이 반복되다 보면 커다란 일은 어느새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러니 나의 이 조그만 아픔도 누군가에는 커다란 아픔일 수도 있다. 반대로 내 커다란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고통일 수도 있고.
조금만 참으면 아무렇지 않게 될, 그런 고통.
내가 죽어야만 해도, 돈이 만들어내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허억! 아, 아파! 가, 가하야. 살려 줘, 이게, 이게 으아악!”
아빠는 악취 가득한 숨을 거칠고 가쁘게 쉬면서 손을 뻗었다. 그 뻗친 손이 혹시라도 나를 잡을까 떨리는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아빠는 벌겋게 터진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다 제대로 된 말 하나 못하고 짐승과 같이 신음했다.
“아아악! 허헉, 아, 아, 으윽!”
그 눈에서 검붉고 진득한 액체가 장판 위로 뚝뚝 떨어지며 내 발 근처로 흘러 들어왔다. 그 핏줄기를 피해 내 등에 벽이 닿을 때까지 몸을 뒤로 밀었다. 그것에 닿으면, 나도 저리 변할 것 같았다.
괴물처럼.
“……흑.”
등 뒤에 벽이 턱, 닿자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고, 그 벽을 디딘 내 손가락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빠가 칼을 댔던 손가락은, 다행히 잘리기 전에 일어난 폭발로 긁힌 생채기를 빼면 멀쩡했다. 그것도 잠시, 여기 가만히 있다가는 저렇게. 아빠처럼 괴물로 변하다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꾸만 풀리는 몸에 힘을 간신히 모아서, 부서지다 못해 기울어진 식탁 다리를 겨우 부여잡고 비틀대는 몸을 일으켰다.
“……아.”
기울어지는 몸과 마찬가지로 앞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시야로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부엌이 마치 폭탄이 터진 전쟁터 마냥 난장판이었다. 고지서가 연체 되다 결국 가스가 끊겨 불이 붙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만에 하나 불이 났더라면 난 이미…….
나는 불길한 상상을 떨치고 아직 몸 안에 미미하게 흐르는 힘을 느끼며 손으로 배 언저리를 쓸었다. 그 애가, 고양이를 구해 줄 양으로 내게 입을 맞추고 넘겨 준 힘.
그 애의 힘.
이게, 이 모든 게. 그 애의 힘이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 다리를 붙잡던 그 붉은 빛. 아빠를 고통스럽게 감싸는 저 붉은 빛.
그리고 나를 보호하듯이 감싸 안아 주던 이, 붉은 빛.
나는 가이드의 힘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학교에서도, 카르마 시스템 훈련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책에서도, TV에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듣지 못한 이 기이한 상황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심지어 매일 밤 지붕 위로 도망치느라 그 애가 주었던 힘을 거의 다 써 버렸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아니. 무엇보다도 주현이는 에스퍼가 아니었다. 그저 에스퍼를 보조해 주는 가이드라서 이런 힘을, 초능력을 쓰지 못하는 걸로 아는데. 이건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현이가 이곳에 있지 않고서야…….
순간 작은 희망과 의심이 한쪽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혹시, 그 애가. 주현이가 이곳에 있는 걸까.
‘전에 본 만화처럼, 영화처럼, 내 생각을 읽고 나를 구해 주러 막, 날아온 건 아닐까.’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얼른 나를 안아 줄 그 싱그러운 향기의 품을 기대했다. 간절히 바랬다.
‘가하’, 하고 부르며 나를 꼭, 소중하게 안아 줄 그 애의 팔을. 내 떨리는 몸을 가득 품어 줄 가슴팍을.
그리고 아픈 내 손을 잡아 줄 티 없는 그 하얀 손을.
그렇지만 내 부푼 기대와 달리 아빠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빼면 그 어디서도 서투른 어투의 한국어나, 내 이름을 부르는 그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방과 옷장 서랍 어디를 열고 뒤져 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기대한 만큼 배로 돌아오는 실망으로 마지막으로 들어간 동생 방에 주저앉았다.
‘주현아, 넌 지금 어디에 있어?’
아직, 그 비행기를 타고 내게서 멀리멀리 떠나가고 있을까. 내가 허무함에 눈물이 찔끔 나와 팔죽지로 눈을 비비고 있을 때, 아빠는 고통이 조금 가셨는지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너, 너. 네가 이러면 내가……악! 가, 이대로……으윽!”
우레처럼 집을 울리는 쇳소리에 나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괴물이 금방이라도 나와 동생이 있는 방으로 들어와 바닥에 떨어뜨렸던 그 시퍼런 칼을 들이댈 기세였다.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됐다. 어디든, 어디든 가야 했다. 나는 우선 동생을 두툼한 요에 싸서 안았다. 나는 대신 동생을 안아서 떨리는 몸을 진정시켜 보려했다.
그 애가, 나를 안아 주었던 것처럼.
“부, 부브…….”
동생은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쥐고서 옹알거렸다. 잔뜩 흘린 땀으로 식은 내 피부를 작고 따뜻한 그 손길이 일깨웠다. 연약하고 작은 애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무사했다. 그렇지만……. 그 보험증서가 나만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고, 언제 어떻게 나와 같은 꼴을 당할지 몰랐다.
“가하야! 아빠, 죽는다…… 119, 119 불러 줘!”
방문을 사정없이 때리는 걸걸한 괴물의 목소리가 섬뜩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등에 동생을 단단히 메고 발코니로 향하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칼날 같은 겨울 밤바람이 맨발을 찢어버릴 듯이 파고들었다. 열린 창문 너머를 올려다보니 내 마음과 같이 깜깜하기 짝이 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떠나야했다.
어디든, 여기만 아니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방금 폭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작은 상흔처럼 남겨진 미미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
딱 한 번을 날 수 있을 만큼의 힘. 몸에 잠들어 있는 그 힘을 최대한 모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에스퍼로서 마지막으로 썼던 힘이었다.
도망치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으응, 꺄. 아바, 아바바…….”
힘이 떨어진 이후로 집 안에만 머무르다 오랜만에 하늘을 날아서 그런가. 내 등 뒤에 매달린 동생이 잔뜩 웅얼거렸다. 지붕 위가 조그맣게 보일 정도의 높이로 가로지르는 게 신이 나는지 내 어깨를 그 조그만 손으로 툭툭 치기도 했다. 내 머리카락과 옷을 잔뜩 흩뜨리는 거센 겨울바람을 헤치면서 동생이 떨어지지 않도록, 포대기 아래를 손으로 받치고 있느라 그 두드림을 받아주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며 그 칭얼거리는 것을 받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그 집이 보일 거 같아서. 그것에 또 다른 생각이 나를 짓누르고, 그러다 미련이 남고, 이내 붙잡으러 올 거 같았다. 저 땅 위에 디디고 있지 않아도, 이 공중에 있는 나를 잡아가다 못해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부러 앞을 보고 대답했다.
“응. 가자.”
이 집을 나가서, 우리 둘이 살자. 엄마도, 아빠도 없는 어딘가로.
어쩌면 위험하고, 좋은 방법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 한들,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거나 ‘손가락 없이’ 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때, 남아 있던 힘이 사막처럼 바짝 말라가며 바닥나는 게 느껴졌다. 힘이 다 떨어지기 전에 바닥을 보이는 힘을 긁어모아서 아스팔트 지면으로 슬슬 내려갔다.
차가운 도로에 맨 발바닥으로 막 닿았을 때, 그나마 남아 있던 그 애의 힘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애가 남겨 준 마지막 흔적과 같은 그 힘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서 하늘을 날고 있을 그 애를 떠올리며 밤하늘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
내가 너를 지켜 줄 거라고 그랬는데, 너는 내 곁에 없어도 나를 지켜 주는구나.
정말로, 그 애는 나를 지켜 주었다.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그 힘은, 그 애의 힘이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았다.
붉고, 강력한, 그 힘.
그렇게 생각하자니 아무런 힘없는 이 몸이 조금은 소중했다. 등급도 낮고, 가이드의 힘도 없는,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힘과 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애에게는 힘을 나눠받을 만한 소중한, 몸이라는 것. 그 소중한 마음과 작은 기적이 내게 보이지 않는 힘을 주어 앞으로 걷게 했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늦은 저녁 시간대의 좁은 샛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고민했다. 나와 동생을 스쳐지나가는 자동차가 연신 바람을 일으키고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빛이 내 눈을 번쩍번쩍 부시게 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집을 등지고, 부모님도 없고, 어디 하나 갈 곳 없는 내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호에게 갈 수도 없었다. 염치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 집에 갔다가는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른다. 대호는 나쁜 사람이 아니지만, 대호네 어른들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사람을 패고 쥐어짜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작정 우선 걸었다.
예전 동네로 가다 보면 아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가서 잠시만 있게 해 달라, 부탁하면 되지 않을까. 윤경이나, 태준이……. 아니면. 고아원, 그런 데라도 가야하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집도 어딘지도 모르겠고, 부모님도 누군지 모른다고 그럴까. 잔뜩 우울한 생각을 지고 맨발이 쓰리도록 걷는 와중에, 주황빛을 띄는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에그머니나!”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보도블록 개수를 세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어?
그리고 거기에는 아주, 아주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가하야!”
예전에 우리 집에서 일하던 박 씨 아줌마였다. 그녀는 어디를 먼 곳을 다녀왔는지 골프 가방 같은 것을 손에 들고서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아……줌마.”
짐 가방을 바닥에 툭, 떨어뜨린 그녀는 푸드덕 날라 와서 황급히 나를 붙잡고 살폈다. 마치 병아리를 살피는 암탉처럼. 그녀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더듬더듬 이었다.
“이게 무슨…… 아니 사모님이랑 사장님 어쩌고 여기 이러고 있어. 신발은 어디다 팔아 두고…… 세상에!”
그녀는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손으로 내 뺨을 살뜰히 쓸었다. 엄마 기준으로 치면 촌스럽게 빠글빠글 말은 파마머리와 햇볕이 좋을 때 마다 빨래를 말리며 잔뜩 그을린 얼굴. 꿈일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도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던 그대로였다.
“……아줌마.”
“그래. 아줌마야. 기억하지? 안 그래도, 가하 너 잘 지내나 궁금해 가지고. 서울 온 김에 들리려고 했어. 접때 전화해도 받지를 않기에 좀 걱정이 되어서……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그 애를 빼고, 처음으로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한 방울씩 스며들던 게 이제는 참지 못할 만큼 모였다. 톡, 건드리면 팍, 하고 터질 만큼. 그리고 왠지 아줌마는 이렇게 꾹꾹 참은 것들을 터뜨려도 빠짐없이 받아 줄 것 같았다. 진짜 그럴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랬다. 아줌마는 피딱지가 얹은 내 손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은 또 왜…… 가하 너 어디 다쳤니?”
“흐흑…… 어엉…… 아줌마.”
눈물이 눈앞에 가득 차다 못해 모든 것을 흐리게 했다.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폐허로 변해 버린 집, 거짓말로 치장하고 웃으며 떠나 버린 엄마, 미안하다 울던 대호, 식칼을 잡고 기분 나쁘게 웃던 아빠.
그리고…… TV너머로 마주쳤던, 그 애.
이제는 만날 수 없을 나의 파란색.
“으엉…… 흐, 어어…….”
“아이고, 세상에…… 가하야…….”
아줌마는 길바닥 한가운데에서 서럽게 우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래, 그래…… 괜찮아. 울어도 돼. 힘든 일 많았구나…….”
“아, 아줌마…….”
토닥토닥, 하고 어깨를 두드리는 그 소리에 꿋꿋이 지켰던 불안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줌마는 내가 우는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힘들었지, 괜찮아, 다 털어내자 하고 반복하며 내가 진정될 때까지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애처럼.
그러다 점점 울음을 멈추는 내 손을 잡고 우선 배고프지 않냐며 가까운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줌마는 꽃무늬 스티커가 붙여진 철제 미닫이문을 열고 국밥집 종업원에게 익숙한 말투로 외쳤다.
“여기 두 그릇!”
“예~.”
“배고프지? 울고 나면 꼭 밥 먹어야해. 세상 끝날 거 같아도 밥 든든히 먹으면 또 힘이 난다니까.”
“…….”
그러고 내게 고개를 돌려서 씩 웃었다. 나는 국밥집을 둘러보았다. 누런 신문지로 벽을 빼곡히 붙여 놓고, 어디서 주워 온 드럼통으로 상을 만들어 놓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뜨끈한 김이 오르는 국밥에 소주를 곁들이는 회사원과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는 일하는 아줌마를 빼면 사람이 없었다. 그 구석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국밥집 구석에 지직대는 TV를 보면서 양파를 까고 있었다.
“예쁜 애가 얼굴이 반쪽이 됐네. 애기 일로 줘, 아줌마가 안고 있을게.”
그녀는 익숙한 몸짓으로 동생을 둥기둥기 흔들어대며 혼자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걸 조용히 들었다. 주로 그동안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따위에 대한 것들이었다.
“전전 달부터 사모님이 더 이상 나오지 마시라, 그러면서 퇴직금 주셨지. 나도 이제 나이는 못 속인다고, 마침 몸이 좀 안 좋았어. 배운 거라고는 집안일이 전부니…… 고향 말고 갈 곳이 없더라. 그동안 모은 돈으로 작은 집 하나 마련하니 돈이 조금 남아서 그걸로 조그만 텃밭 하나 만들었어. 기억날까, 가하랑 같이 키웠던 방울토마토? 텃밭에 자란 토마토는 말이야, 요 애기 손만큼 커.”
“건더기 팍팍 넣었슈.”
국밥집 아줌마가 우리 자리에 두 그릇의 국밥을 내려놓고 갔다. 아줌마는 그게 기쁜지 까르르 웃었다.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소한 것에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보통의 사람.
“아유, 고마워요. 가하야, 먹어 봐.”
오랜만에 맡는 음식다운 음식 냄새에 쉬이 밥숟가락을 뜨지 못하고 느리게 먹었다. 내가 한 술을 떠서 입에 넣자 그제야 아줌마도 국밥을 먹기 시작하며 끊긴 말을 이었다. 그녀는 말하면서 먹다, 웃다 말고 문득 씁쓸한 얼굴을 했다.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좀 헛헛하지 뭐야.”
“…….”
“남은 자식들도 다 크고 도시에 사니 볼 일도 없고. 집에 매일 나 혼자 있으니까 영, 기분이 그렇더라구. 예전에 가하가 있어서 그런가 하루 종일 일 해도 외롭지 않았는데. 막 드라마두 같이 보구, 나쁜 놈 나오면 같이 까대고!”
허름한 외관과 달리 국밥은 제법 맛이 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날들을 읊으며 킥킥 웃었다. 나 또한 행복한 날이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처럼.
“살림은 좀 나아져도 뭐……. 사람 그리운 건 마찬가지더라구.”
“…….”
“전에 가하, 네가 강아지 기르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장에서 백구 하나 주워 왔는데…… 사람만은 못하구.”
“……아부아부우…….”
아줌마는 품에 안고 있던 동생의 몫으로 밥을 좀 덜어서 물과 섞어서 천천히 먹였다. 아줌마는 동생이 트름을 할 때까지 양껏 먹이고는 식은 국밥을 다시 뜨면서 얌얌 먹다가 서비스로 나온 숭늉을 한입 마시고 입을 다셨다.
“있지, 가하네 집처럼 넓고, 좋은 집은 아니야. 작고, 가구도 좀, 오래 된 거고. 그래도 깨끗해.”
아줌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나를 쳐다봤다. 까만 단춧구멍 같은 눈은 우리 엄마만큼 예쁘지 않았다.
“아줌마랑 같이 갈래?”
그렇지만 그녀 안에는 내가 늘 그리워하던 온기가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온도에 나는 아줌마의 말에 숟가락을 더 뜨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뜨거운 것을 먹지 않아도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줌마는 쑥스러운 얼굴로 스프링 같은 파마머리를 삭삭 긁었다.
“그냥. 전에 우리 딸 닮아서 그런가. 이렇게 우는 거 보니, 자다가도 자꾸 생각 날 거 같아서 그래. 아줌마는 에스퍼니, 가이드니 그런 것두 아니고, 다른 건 잘 못해 줘도…… 가하 좋아하는 반찬이랑…….”
“……정말요?”
오래전, 묻어 두었던 그 작은 소원이 오늘 비로소 이루어지는 기적에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는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더 많은 주름을 더했다. 매끈한 피부결을 가진 엄마와는 달랐다.
하지만 그게 훨씬 더 사람다웠다.
내가 아는, 그런 보통의 사람. 헛된 욕심도 뭣도 없는 그런 사람.
“그럼. 맛있는 간식도 해 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줌마가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었다.
“잘 됐다! 같이 사는 기념으로 신발부터 새로 살까? 이래가지고는 우리 집에 가는 길에 발이 남아나지 않겠어.”
내게서 뻐꾸기는 날아가 버렸지만 대신, 조금 더 뒤뚱거리고 날지 못하는 암탉이 왔다.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특별하지 않아도 나를 안아 주고 품어 주는 그런 암탉.
엄마는 좋은 신발을 신어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했지만 나는 상처투성이 맨발로 마주한 길바닥에서 진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거꾸로 가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 방향이 이러했던 것일까. 적어도 어른들이 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고 떠나와서야 나는 바라던 것을 얻었다.
예를 들면 어디서 만들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이 상표 모를 새 신발이라든지. 피가 이어지지 않아도, 나를 피 흘리지 않게 할 따뜻한 가족.
근처 상점에서 급하게 산 운동화를 신고서 아줌마의 고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거세어지는 겨울바람은 나와 아줌마의 맞잡은 손과 얼굴을 땡땡하게 얼렸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뜨겁게 들떴다. 나는 따뜻한 입김을 호호 불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길에 새 신발을 이리저리 구경하다, 역 바닥에 늘어진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으으…… 추워…….”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어디서 왔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무리 중 한 사람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리 앞을 스쳐지나갔다. 그 모습에 반사적으로 아줌마와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어쩐지 아빠와 닮은 듯도 해서. 아니면 정말 혹시 있는 건 아닐까. 아빠가 나를 보고 뛰어나오면 어떡하지. 그 괴물 같은 모습이 다시 떠올라 눈을 꼭 감았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아줌마는 잡은 손을 살살 흔들면서 말했다.
“으응, 괜찮아. 얼른 가면 돼.”
아줌마는 나를 이끌고 그들을 지나쳐 역 안쪽의 대기실에 나를 앉혔다.
“가하야. 여기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아줌마가 기차표 사서 얼른 올게.”
“……네.”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 해. 사자마자 올 거야. 알았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열차를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자리를 잡았다. 대기실 앞에 크게 틀어 논 광고용 TV가 있었는데, 손에 신문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것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늦은 밤에도 TV에는 뉴스가 시끄럽게 어떤 사고영상을 반복해서 보여 주고 있었다.
―러시아 상공을 통과하던 스웨덴 스톡홀름 행 비행기가 폭발사고로…….
비행기 폭발사고?
언뜻 들어도 커다란 사고 소식에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흘러나오는 뉴스를 집중해서 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불행이 가시고 난 뒤라서 그런가 이제야 남의 이야기가 들어왔다.
―기장의 발 빠른 비상착륙으로, 다행히 대부분의 탑승객은 경미한 부상…….
“저게 그 아침에 떴던 비행기인가?”
내 앞에 앉은 나이 지긋한 사람이 계란을 우물우물 까먹으면서 옆의 비교적 젊은 아저씨에게 물어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예.”
아침…… 비행기? 나는 여기서 문득 좋지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계속 이어지던 뉴스에서 앵커가 사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아침에 보셨던 삼라그룹 오너와 동행한 경제부 차관보 등이 중상을 입고 모스크바 공항의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커다란 화면에 중상을 입은 사람의 이름과 나이, 직책 따위가 줄줄이 올라왔다. 더불어 아침에 본 낯익은 아저씨들의 얼굴이 보이면서 내 심장이 더 빠르게 콩콩대었다.
설마.
탑승객의 이름과 나이를 보다가 한 숫자, 비교적 아주 작은 숫자에 눈에 이끌렸다. 나랑 나이가 같아서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 탓이다.
10. 열. 열 살 애도 비행기에 탔던 모양이었다. 근데, 분명…….
[송주현(10)-의식불명]
“…….”
아까 그 아저씨들과 같이 그 애도 탔었지.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눈을 세 번이나 비빈 후에 다시 보았다. 그렇지만 똑같은 철자의 이름이 전광판에 아른거렸다.
아침만 해도, 멀쩡하게, 계단을 오르고 있던 애였는데. 나는 이게 꿈이라면 정말 나쁜 꿈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 생각해 보니 아빠가 나를 죽이려 하고, 그러다 죽고,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오다가 아줌마와 가족이 되고…… 그 애가 다친 것. 이 모든 게 꿈이 아니라면 설명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눈이 찡그려지도록 감고 속으로 외쳤다.
꿈이야, 아주 나쁜 꿈. 그러니 얼른 깨어나자. 바닥이 꺼지고 몸이 훅 떨어져야 해…….
그렇게 되뇌이며 다시 눈을 떠도 화면에 떠오른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내 현실도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아저씨는 친했던 사이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열 살? 새파랗게 어린애가 의식불명이라니…… 에잉, 부모 애가 타겠구만…… 쯧쯧.”
“구조조정 한다고 그렇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해고하더니 자식이 대신 벌 받았나 봐요.”
아저씨는 은근히 시원한 얼굴로 자기 친구도 삼라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짤렸다며 한탄했다.
그러다가 주현이가 대신 벌 받았다는 소리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 때문일까.’
구해 달라고 그래서, 내가 맞아야할 불행을 네가 대신 맞은 걸까.
내가, 내가 너를 찾지 않았더라면, 그냥 아빠 말대로 아픈 거, 그거 조금만 참았더라면…….
뒤늦은 후회에 내 몸이 떨렸다. 그런 내게 아줌마가 다가왔다.
“가하야, 얼른 가자. 기차 곧 간대. 이 열차 놓치면 우리 한참 기다려야 해. 아니,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화장실 가고 싶어?”
“……아뇨. 그냥…… 속이 좋지 않아서…….”
“아줌마가 열차에서 식혜 사 줄게. 단 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걸음을 바쁘게 구르는 그녀와 나는 정신없이 역 대기실을 나섰다. 달려가는 내 눈 앞이 노랗게 변하면서 빙글빙글 도는 착각이 들었다.
나 때문이야, 내가 불러서, 그 애를 원해서…….
그런 우리 뒤로 뉴스 앵커의 참담한 목소리가 따라왔다.
―사고 원인은 아직까지 불명입니다만, 사고 비행기에 탑승한 목격자에 의하면 삼라그룹 오너의 자제가 이상을 호소…….
“참, 우리 뻥튀기 하나 사서 같이 먹자.”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는 그저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미 열차가 도착해 있는 승강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가스난로 열기로 따뜻했던 대기실과 달리 바깥은 살을 찢어드는 추위가 몰아치고 있었다. 따뜻했던 볼이 얼어붙으면서 내 앞으로 하얀 입김이 호호 나왔다. 바쁘게 승강장 계단을 내려가다가 아줌마 코트 주머니에서 툭 떨어진 표를 주웠다.
[무궁화호 - 97년 12월 21일]
표에 적힌 날짜는 그 애의 생일이었다. 아줌마는 저 앞에 동생과 가방을 양손에 들고 가다가 호들갑을 떨며 내게 뒤돌아서 웃었다.
“어머, 눈 오네! 첫눈인 거 같은데! 봐봐, 가하야.”
“…….”
금방이라도 떠날듯이 칙칙대는 소리가 나는 열차 위로 먼지덩이 같은 눈발이 하나둘 씩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너를 불러서 일어난 일이라면…….
“가하야, 소원 빌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좋은 일이요?”
“응!”
나는 싱글벙글 웃는 아줌마의 머리 위로 내리는 첫 눈을 보았다. 뻗은 손에 톡 닿자마자 삽시간에 녹아드는 게 참 연약하기가 짝이 없었다. 이런 게 내 소원을 이뤄 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력해 보였다.
그렇지만, 정말로, 된다면. 이루어진다면…….
추운 몸을 잠시 녹여 주는 열차 칸에 들어가 아줌마 옆에 자리를 잡았다. 창문가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생일 축하 대신 그 애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지금이라도 나와 그 애의 불행을 바꿔 주세요.’
“졸리지. 가하야, 좀 자고 있어. 아침에 도착할거니까.”
아줌마는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서 나를 꼭 덮어 주었다. 열차는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가진 거 없이 떠나는 길에 가슴 안쪽이 유난히 저리다 못해 무거워서 심장을 짓눌렀다.
‘그 애가, 아픈 곳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 소원을 반복해서 속으로 읊었다.
비록 나 같은 애는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해도, 다른 좋은 기억들로 그 애의 행복만을 소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