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61)

* * *

돌아온 집은 늦가을 저녁바람을 흠뻑 머금어서 써늘했다. 주변의 이웃들은 언제들 떠났는지, 예전에 내 기억과 달리 불이 켜진 집이 드물었다. 밤에 낯선 사람이 도로에 들어오면 강아지가 짖던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의 행방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

세차를 언제 했는지, 먼지가 뿌옇게 쌓인 차의 문을 나서고 집 대문을 넘었다. 경첩에 기름칠을 까먹은 것인지 귀신처럼 끽끽대는 대문을 밀어내니 정원이 보였다. 가을 낙엽을 다 내보낸 정원이 앙상했다. 그나마 잘 자라던 감나무에서 떨어진 물렁감들은 흙바닥에 구르면서 썩다 못해 달큰한 냄새를 풍겼다.

정갈한 길이를 유지하면서 항상 푸르고 신선한 냄새를 풍기던 그 애의 집과 정원에 비하면 확연히 달랐다.

그 애에게서도 그런 냄새가 났는데.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향기가 나는 걸까.

앞에서 엄마가 걸어가면서 긴 꼬리처럼 남긴 향수 냄새를 맡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냄새를 따라 가는 내 발 밑에서 푸걱, 소리가 났다.

“아…….”

새것이 분명했던 하얀 운동화 위로 달라붙는 과실의 진득함에 기분이 저조해졌다. 황량하고 지저분한 정원에서 밟아 버린 썩은 감은,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얼떨떨하던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썩은 감을 밟은 채로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앞서 가던 엄마가 돌아보더니 신경질적이게 소리쳤다.

“얼른 오지 않고 뭐하니?”

“……갈게.”

내가 밟은 썩은 감에서 그 애와 먹었던 어떤 과일보다 달달한 냄새를 풍겼다. 앞에서 흘러들어오는 향수보다 진하게 풍기는 그 썩은 것의 향기는 집에 들어와서도 콧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들어간 집 안의 몰골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들여왔던 새 가구들은 상처 위 딱지처럼 남은 흠집과 앙상한 파편, 헤집은 상처 같은 속살을 드러냈다. 심지어 엄마가 아끼는 것들이 들어간 유리 장식장도 군데군데 깨져 있었다.

수시로 사람의 손을 타서 늘 정돈된 그 애의 집에 비하면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 몰골에 놀라서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자, 엄마는 슬리퍼로 갈아 신으면서 노란 비닐 장판 위에 늘어진 파편이나 깨진 가구조각들을 발로 쓱쓱 헤쳤다. 엄마는 머쓱한 얼굴로 잔뜩 구겨진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엄마가 바빠서, 가하 맞을 준비를 못했네. 이해 좀 해 줘.”

“……응.”

“밥 먹을래?”

엄마는 가방을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소파에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거실 탁자 위로 놓인 컵에 남아 있던 양주를 쭉 들이켰다.

“아니. 괜찮아.”

“그래. 그럼 들어가서 쉬렴. 지금은 늦었으니까 주현이네 전화하면 실례지.”

“…….”

“아빠 곧 오실 거니까 이따가 나와서 인사하고.”

“……응.”

크으. 엄마는 목구멍이 타는지 양주를 찡그리면서 다시 컵에 따랐다. 양주 특유의 향기에 간신히 눌러놓았던 구역질이 다시 올라 올 것 같았다. 그 냄새를 피해서 내 방으로 갈 때까지 그녀는 양주를 마시는 소리 외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호도 알아차린 내 멍든 다리를 엄마는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뭐, 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고.

오랜만에 들어간 내 방은 달라진 게 딱히 없었다. 내가 오지 않은 날만큼 먼지가 쌓여 있을 뿐이었다. 집 담벼락 쪽을 향하고 있는 창문을 열고 묵은 이불을 대충 털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퀘퀘한 먼지 냄새가 풍기는 침구에 나를 묻었다. 잠을 청하려 해도 계속된 긴장으로 오히려 정신은 말똥했고, 급격하게 쌓인 피곤은 쉽게 털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거렸을까. 고요해진 집 안을 깨우는 도어 록 소리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어?”

“……래! 그만 좀 해!”

“왜 나한테……! 내가……!”

얇은 방문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를 막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쌓인 피곤함 위에 더욱 무겁게 쌓이는 두 사람의 말싸움을 듣고 싶지 않아서 베개 위로 얼굴을 묻었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 고함을 치는 소리, 굵은 발걸음으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베개의 솜이 막아 주지 못하는 틈을 타고 내 귀에 꽂혔다. 어느 것 하나 내 신경을 건들지 않는 소리가 없었다.

이게 다 나쁜 꿈이고 일어나 보면 내 배 위에 주현이의 넓적다리가 있기를 바랄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꿈보다 잔혹한지라 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숨죽이고 몸을 웅크렸다. 그런다고 모든 게 끝나고 멈추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있으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된 상상을 꿈꾸는 와중에 옆방에서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앙…….”

애기 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나는 문득 다시 깨달았다. 동생. 엄마가 낳자마자 두고 가 버린 그 애. 괴물 같은 붉고 주름진 얼굴을 한 애. 방문 너머에서 점점 커져 가는 엄마 아빠의 고성을 고스란히 들으며 내 방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녹이 슬은 창문의 걸쇠는 거친 소리를 내며 드르륵 열렸다. 잔뜩 구겨진 교복을 파고드는 밤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졌다. 나와 동생의 방에 이어진 작은 발코니를 살금살금 걸어서 동생 방 창문은 밀었다.

“으앵, 으애앵…….”

“쉬, 쉬…….”

들어가자마자 터지는 애기 특유의 울음소리가 우렁찼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이걸 듣고 와서 시끄럽다 소리를 지를까 전전긍긍하면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진정시켰다. 그렇지만 애기는 어려서 말을 이해할 줄을 모르니 서럽게 옹알거릴 뿐이었다.

“……어쩌지.”

나는 박 씨 아줌마가 예전에 동생을 달래 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따라해 보려고 요람에서 동생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품에 안았다. 내가 느끼기에도 좀 어색하지만 나름 느릿하게 애를 흔들어 주고, 동생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게 다였다.

“자장, 자장…….”

내가 받았던 토닥임을 생각하면서, 그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고막을 찢을 것 같은 고성을 지워 보려했다. 내 노력일지, 혹은 내가 간직한 기억을 느껴 주었는지, 다행히 동생은 울음을 금방 멈추고 웃으며 옹알이를 했다.

“아부, 부부부…… 하부…… 하.”

멈출 줄 모르는 부모의 싸움 소리를 피해 보려 동생을 들고 방안을 서성이다가 내가 들어오면서 열린 창문에 눈이 갔다.

“…….”

마른 침을 삼키는 내 식도 아래 주현이가, 그 애가 남겨 준 힘이 느껴졌다.

나를 날 수 있게 해 주는, 그 힘.

“우리, 나갈까?”

“꾸?”

나는 품 안의 동생을 보다가 결정했다. 여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걸어온 좁은 발코니로 나가서 눈을 감았다. 그 애가 남겨 준 힘이 내 몸을 타고 다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써늘한 바람을 타고 그 애의 향기가 풍기는 착각도 들었다. 그 포근하고도 나른함에 취해서 한참 후에나 눈을 떴다.

나는 집의 지붕이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올라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법 높이 올라오니 나 스스로도 조금 겁이 나서 천천히 힘을 갈무리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품안의 동생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흐흐 웃을 뿐이었다.

“흐! 흐흐, 하부부…….”

“……좋아?”

“꺄. 까꾸…….”

좋다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주현이와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나와 동생은 아직 말이 통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가족이기 때문일까, 나는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느꼈다. 나는 지붕 위에 깔린 붉은 기와에 앉아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그때처럼 많지 않았지만 듬성듬성 보였다. 그 모습에 전에 주현이와 보았던 그 별 무리가 다시 생각이 났다.

그 좋았던 날.

슬픈 나를 위로해 주던 날. 기쁘게 해 주던 날.

웃는 나를 보고 더 행복하게 웃던 그 애.

“저기 봐봐. 별 보여?”

“부부, 부?”

“나중에, 크면 더 가까이서도 보여 줄게.”

동생은 내 말에 까르르, 하고 웃었다. 그 모습에 눈물이 조금 날 거 같았다. 그건 열린 창문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부모의 싸움 소리도 아니고, 나를 천진하게 바라보는 동생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이 시간과 이 공간에 그 애가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

혹은 이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었다. 마른 볼이 축축하게 젖어 가는 것을 두고 작고 부드러운 것이 내 볼을 톡톡 건드렸다.

“아바, 아바바…….”

동생이었다. 그 애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까만 눈으로 나를 보고 웃는 동생. 나는 그 생각에 동생을 꼭 껴안았다. 어쩌면 내게 남은 건, 이 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순수한 그 애를 닮은, 이 애.

하루하루 날이 갈 수 록, 내 일상은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더 이상 교복을 입지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엄마는 학교에 잠시 가족 여행을 간다 말했다고 했다.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은 까마득하게 예전인지라 그 말을 들은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걸 두고 엄마는 기분이 나쁘다며 내 뺨을 때렸다. 주현이가 가이딩을 한답시고 내 발목에 멍을 지운 것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더 아팠다. 그 후에 엄마는 친구를 만나서 돈을 빌리러 가겠다며 집을 나섰다.

배가 고파진 나는 대충 라면을 끓여 먹고, 배고프다 울어대는 동생의 이유식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첫 번째에는 너무 묽어서 실패했고 두 번째에는 너무 뻑뻑해서 실패했다. 세 번째 만든 이유식이 대충 그럴듯하게 만들어지자 내 동생은 그제야 늦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박 씨 아줌마가 하던 대로 대충 품에 안아서 얼러 주고, 새로 빨아 둔 침구를 깐 침대에 뉘이고서 거실로 나왔다. 살짝 열려 있는 안방의 문 틈 사이로 시끄럽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안방의 문을 소리 없이 닫고서 거실에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가전제품인 TV를 켰다.

―점심 뉴스입니다. 제계 25위 —그룹이 부도 선언을…….

―속보입니다. ——회사가 회생 신청을 했다는 소식입니다.

―환율과 유가가 급격하게 치솟는 것을 두고 정부는 고심하고 있습니다만…….

―최악의 실업율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채널을 돌리면 돌릴수록 내뱉는 내용은 비슷했다. 다만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영어 단어가 있었다.

IMF.

뉴스 앵커는 얼굴의 반을 가리는 네모나고 볼록한 안경을 쓴 채로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오늘의, 혹은 내일의, 어제의 소식들을 전했다. 어려운 말들이 내 머리 속을 통과하는 와중에 나는 대호의 말이 떠올랐다.

부도.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 우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한없이 올라갈 때는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줄만 알았는데.

흙바닥에 떨어진 썩은 감과 같이 이리 뒹굴어 버릴 것을 어찌 알았을까.

나는 구름 사이로 스미는 회색빛의 햇볕을 받으며 입에서 나는 단내를 쓰게 삼켰다. 소파에 무릎을 끌어안고서 앉아 있는데, 화면 밖에서 누군가가 뉴스 앵커에게 종이를 전달해 주었다. 앵커는 살짝 당황하는 듯, 안경테를 치켜 올리며 다시 진행을 이었다.

“예,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삼라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인 삼라 화학이 어제부로 부도 신청을 낸 바, 관련 거래처가 줄줄이 도산하여…….”

뉴스에는 손으로 적은 듯, 커다란 도화지에 도산 거래처의 이름이 마커로 죽죽 적혀 있었다. 나는 눈으로 그 이름들을 죽 읽다가, 익숙한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유하 석유’

명절 때마다 집으로 날라 오는 그득한 명절 선물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아빠의 회사이자 엄마의 자랑이었던.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불리고 나를 그 학교로 보내 주었던 그 회사.

결국 대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나는 대호의 그 불안한 얼굴을 떠올리며, 주현이의 날카로운 표정을 생각하며 눈을 깜빡였다.

이래서 나는 아무리 그 애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이 밥을 먹고 말을 해도 섞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들과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갈 때도 이렇게 예고 없이 나가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엄마의 거짓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졌다.

가족 여행,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아파져서 시골로 갔다고 할까. 그렇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의 입은 가볍기 짝이 없어서 하루만 되면 삽시간에 퍼졌고 그 밑의 공기를 마시는 애들에게도 퍼뜨려졌으니까. 혹은 다들 이미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 학교에서 내게 말을 걸던 사람은, 주현이와 대호를 빼면 없었으니 딱히 아쉽지도 않다. 그네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이치였으니까. 하지만 욱신대는 뺨만큼이나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면, 주현이에게 미리 말을 하지 못한 것.

‘사실 하기 싫어서 그랬지만.’

이런 상황이 오니 한번 말하고, 마지막으로도 안아 볼 걸 그랬나, 아쉬워졌다. 불편한 마음을 억지로 안고서 소파에 누웠다. 거실 창에서 들어오는 볕으로 부신 눈을 껌뻑였다. 배는 점심을 알리는 듯 꼬르륵대었지만 식욕은 일지 않았다. 누운 내 시야에 보이는 멀쩡한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이얼 전화기였다.

「보고 싶어, 가하.」

“나도…….”

나는 그 생각에 전에 주현이가 적어 준 전화번호가 생각났다.

전화, 해 볼까? 여행을 가느라, 이제야 전화한다고. 보고 싶었다고.

보고 싶다고.

고동치는 마음으로 고민하는 가운데 도어 록을 급히 여는 소리가 났다.

“가하야!”

엄마는 푸석푸석한 얼굴로 눈을 굴리다가 소파에 일어난 나를 발견하고 단박에 달려왔다. 얼굴 살이 빠져서 큰 눈이 툭, 튀어나와 보이는 게 어린 내 눈에는 기괴했다. 엄마는 내 어깨를 붙잡은 채로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간절하게 말했다.

“가하야, 너, 그 집 애 전화번호 모르니? 그 비서 더 이상 전화 안 받아. 어떡하니? 너 얘기 좀 들어보라고, 그랬는데…… 끊어 버리더니 이젠 전화를 꺼 버렸어…….”

바싹 마른 입술에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그 애의 번호였다.

그 애가 심심하면 전화하라고 적어 준, 그 번호. 그게 마치 복권에 당첨될 수 있는 번호처럼 엄마는 그 애의 전화번호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런 엄마를 보다가 나는 눈을 감았다.

“……몰라.”

“알지? 알잖아, 그 집에 계속 같이 살았잖아. 같이 있었잖아.”

“정말로, 나 몰라…… 엄마.”

그 절박한 손아귀에서 나와 보려고 몸을 비틀었다. 엄마는 믿기지가 않는 듯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화를 냈다. 너는,

“너는, 도대체 그 집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니? 엄마가 뭐라 했어!”

“…….”

매몰차게 쏟아지는 말 가운데 나는 그날 말하지 못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그 애에게 발견되지 않고 나 혼자 떠났던 게, 참 다행이라고. 말했더라면 나는 그 애에게 이렇게. 어른들만 이해하는, 우리로는 알 수 없는 말을 꺼내고 있었겠지.

그 애의 번호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 이건 일종의 반항이자 내 태생을 따르고 싶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 기분 좋으라고 그렇게 보낸 줄 알아? 너 혼자 다 누리고 입 싹 닦으면 다야?”

엄마같이 뻐꾸기가 되어 헛된 욕심 부리고 살고 싶지 않았다. 설령 이전과 같지 못하게 살게 될지라도.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숨이 차는 듯 벌건 얼굴로 나를 보다가 숨을 고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터지는 것은 날카로운 화풀이였다.

“아직도 자빠져 있어?”

“……조용히 좀 살자. 어?”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어음 막아야지! 누구는 아침부터 허리 숙이고 싶은 줄 아냐고!”

“다 네가 쓴 돈이야!”

다시 시작되는 절규에 나는 얼른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서, 동생을 품안에 안고, 내방에 책장을 뒤졌다.

전에, 쓰던 노트를 찾아야 했다. 엄마가 저러다 못해 내 방을 뒤져서 발견하기 전에. 나는 일기장과 그림 노트들 사이에 꽂혀 있던 닳아빠진 노트를 훅 꺼내서 펼쳤다.

‘이거다.‘

파르륵 하고 넘어가는 페이지를 펼치고 나는 빠르게 숫자를 찾았다. 그러자 파란 펜으로 또박또박 적은 그 애 특유의 글씨가 눈에 잡혔다. 나는 말라서 색이 조금 빠진 그 펜 잉크 자국을 쓸어 보다가 높아지는 고성에 노트 페이지를 죽, 찢었다. 그리고는 동생을 고쳐 안아서 다시 남은 힘으로 지붕위로 손쉽게 올라갔다.

아직까지는 그 애가 남겨 준 힘이 있어서, 매일 저녁마다 이렇게 올라가서 몇 시간이고 있었다. 그러다 집이 좀 조용해지면 내려오곤 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주현이가 작별을 할 줄 알고 내게 주었던 마지막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붕 위에 얹어져 있는 기와에 익숙하게 자리를 잡으며 주머니에 쑤셔 넣은 그 노트 조각을 꺼냈다.

[0222253567]

“아브, 브브브…….”

동생은 바람이 부니 추운지 입에 거품을 몽글몽글 만들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따스하기 짝이 없는 볕을 맞으면서 손에 쥔 그 종이를 와그작 구겨 버렸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조바심을 내며 그 구긴 종이를 입 안에 넣었다.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도록,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오직 나만이 알고, 나만이 가지고, 나만이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얇은 종이를 입 안의 침으로 축축하게 적셔 가며 꿀꺽 삼켰다.

그렇게 한창을 지붕 위에서 있었을까. 동생을 안고서 다시 잠잠해진 집안으로 내려갔다. 조금이나마 정리 되어 있던 집이 다시 폭풍을 맞은 것처럼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눈에 익어 버린 광경이었다. 동생을 요람에 눕혀 두고 거실로 나오자, 엄마가 안방을 나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만하면 될 거 아냐! 이만큼 올라오는데 뭐 내가 놀았어?”

“…….”

그녀는 안방 저 안쪽에서 묵혀지던 가방을 들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의 열려 있는 지퍼 사이로 튀어나온 옷가지를 애써 도로 쑤셔 넣는 게, 금방이라도 급하게 출발해야 하는 여행을 떠날 사람 같았다. 엄마가 앙칼지게 소리치며 고개를 돌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어디 가?”

“……엄마 할머니 집에 있다 올 거야.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그녀는 나를 스쳐지나가며 현관에서 낮은 구두를 급하게 신었다. 뒤축을 구겨 신으면서 도망치듯이 나가는 엄마를 두고 기대 없는 질문을 했다.

“언제 와?”

내 말에 엄마는 도어 록을 열다가 나를 향해 나붓이 미소 지었다.

“으응. 열 밤만 자고 올게.”

“……잘 가.”

그 얼굴이 거짓말을 할 때 나오는 얼굴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뻐꾸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뻐꾹, 뻐꾹…….

뜬 눈으로 지새는 밤에는 거실의 뻐꾸기시계가 어김없이 울었다. 몇 마리의 뻐꾸기가 차례를 바꾸어 가며 울었는지 모르겠다.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감고 있는 눈에서 엄마가 아른아른하게 떠올랐다. 엄마를 보낼 때에는, 올 게 왔구나 싶었지만 막상 사라지니 자꾸만 밟히고, 세상의 반쪽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미워도 가족이었고 우리 엄마였다.

동생의 요람 옆에서 요를 깔고 누워 있던 나는 마른 눈물로 쓰라린 눈꺼풀을 비볐다. 검푸른 새벽녘이 조용한 집 가운데 스며들고 있었다. 정신도 몸도 피곤했지만 한편으로는 뭐 어떤가 싶었다. 또래 애들이 들었으면 분명 부러워할 처지었다. 지겨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잔소리만 퍼붓는 엄마가 돌아올 일도 없다. 아빠가 당장이라도 사업이나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 상태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나는 뭉글 뭉글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접고 눈을 감았다. 새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새벽이 걷혀드는 게 아쉬웠다.

해가 뜨고 나면, 이 고요함도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뉴스들로 산산 조각나고 말 것을 알아서 더 그랬다.

꽝꽝!

아니나 다를까 부엌의 찬장이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요람에 누워 있는 동생이 간밤에 걷어찬 작은 이불을 다시 올려 주고 발끝을 올려서 방을 나왔다. 왜소한 어깨의 아빠가 언제 세탁한지 모를 누런 메리야스와 잠옷 바지를 입고서 부엌 찬장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빠가 뒤적거리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빠는 술기운으로 벌겋다 못해 보라색을 띄는 안색으로 나를 향해서 손가락질 했다.

“어, 가하. 깼어. 시끄럽지. 미안하다. 배가 고파서…….”

“아냐. 잠이 안 와서 깼어. 라면 끓여 줄까.”

“아, 애가 뭔 잠을 못자. 걱정 돼서 그래? 그러지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한다. 응?”

아빠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라면의 빨간 봉지를 아무렇게나 주르륵 뜯었다. 그 손짓에 스프 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빠는 그걸 줍는 것도 벅찬지 헛손질을 거듭했다. 보다 못한 내가 대신 주워서 부엌의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 냄비에 물을 받았다. 아빠가 멋쩍은지 입을 다시다가 식탁 의자에 풀썩 앉았다.

“……미안하다.”

“…….”

“삼라 이 새끼들이 뒤통수 칠 줄은…… 어쩐지 백지 어음을 너무 많이 줬어.”

아빠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거렸다.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이번에 새로 짓는 중공업 단지에다가 수주 넣어 주겠다고, 그렇게 말을 했으면서……. 이 씨펄놈의 박 상무새끼.”

불이 세서 그런가 가스레인지에 놓인 물은 금방 끓었다. 울먹거림이 서린 아빠의 말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흘려보내며 라면을 넣었다. 라면 스프 특유의 매콤한 향이 올라오며 눈을 따갑게 했다. 그래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많이 흘려서 그런가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었다.

“네 엄마가 말이다. 네가 그 삼라 자식새끼랑 잘 지내니까 기회 주는 거라고. 자꾸 그거 꼭 잡으라고 하는 고집만 듣지 않았어도 이 모양은 아니었을 텐데…….”

“……그릇에다가 줄까.”

“이 미친놈의 새끼들. 부도날 만한 사업 화학에다 다 꼴아 박고 정리해 버릴 줄이야. 개새끼들 진짜…… 다 됐냐. 뭘 그릇에 해. 그냥 먹자.”

“응.”

아빠는 걸쭉하게 욕을 퍼 붓다가 내 말에 목소리가 온순해졌다. 배고픔에는 아무리 큰 분노도 누그러지는 법이었다. 아빠는 뭐가 그리 억울한지 먼지 앉은 식탁에서 라면 국물을 후르륵 마시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어린 내가 알기에는 복잡한 말들이 얽혀 있어서 나는 이해를 못했다. 그저 아빠의 맞은편에 앉아 라면 가닥을 집어 먹는 것밖에는.

“박 상무라고, 너도 아나? 아빠랑 같이 거래하는 사람인데. 그동안 한 번도 밀리지 않고 돈을 잘 넣어 줬거든. 삼라. 대기업 아니냐. 워낙 하는 사업이 많고 크다 보니까 돈도 많이 주고. 아빠도 그땐 좋았지.”

아빠는 냉장고 구석에 묵은 김치를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서 속이 풀리지 않는지 라면 국물을 흡, 하고 마셨다. 맵고 뜨거운 국물을 고통스럽게 넘기면서 푸르딩딩한 입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야…… 근데 이번에 큰 거 하자고. 사장님 돈 쓸어 담을 기회라고 살살 꼬시는데…… 뭐라고 했더라. 지네 회장 손자랑 너랑 친하다고, 특별히 주는 기회라고 떠벌리는 거야. 하하, 내가 미쳤지. 미친놈의 새끼였지…….”

“…….”

“그때부터 좀 이상했는데. 그치? 걔네는 지네 자회사가 있어서 우리한테 다고다고 할 필요가 없었거든…… 에이 시펄…… 돈 좀 벌어 보자 하다가 이 꼴 났다. 그래도 아빠는 할 만큼 했어.”

아빠는 말하다가 못내 울컥 화가 치미는 듯 라면 국물을 비운 그릇을 탕, 내려놓았다. 순간 깨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낸 아빠가 나를 손가락질 했다.

“그래도 너 학교 하나는 번듯하게 보내 줬어. 좋은 옷 입히고, 좋은 거 먹이고. 그래도 이만하면 좀 행복했잖아? 응?”

“……응.”

내가 바란 행복은 아니지만 힘든 사람에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알아도 모른 척 해 주는 것. 내 대답에 아빠는 라면을 먹고 있는 내 머리를 기특하다는 듯이 쓸었다.

“야씨, 그래도 네가 낫다. 애미는 쪽팔린다고 지랄하다가……. 에이 됐다. 나쁜 거 말해 뭐해.”

“…….”

엄마가 열 밤 자고 오겠다고 했던 말은,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 않을 거 같았다. 가만히 있는 나와 아빠를 무심하게 지나갈 하루의 햇살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빠는 살짝 정신이 깨인 듯, 안방으로 비틀거리면서 들어가서 만 원짜리 지폐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그래, 가하야. 아빠 안방에서 잠 좀 잘 테니까 이따 슈퍼 열리면 라면이랑 동생 먹을 것 좀 사와라. 소주도.”

“응.”

나는 먹은 자리를 대충 치우고 남은 그릇들을 개수대로 모았다. 싱크대 물을 틀어서 슬쩍 기름기를 훔쳐내다가 젖은 손으로 그 돈을 받아들자 아빠가 순순히 지폐를 주지 않고 꼭 잡고서 망설이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근데,”

“어?”

“너, 학교에 좀 아는 애 없냐. 아빠가 은행장이라든지…… 아니면 그 삼라 애.”

“…….”

아빠는 비굴한 얼굴로 내게 넌지시 물었다.

“좀, 말해 볼 만한 애…… 없어?”

“……나 잘 몰라.”

반은 사실이었다. 그런 애들은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주현이는…….

주현이는.

내 대답에 아빠는 그러면 그렇지 싶은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래. 미안하다. 애한테 괜한 소리 했네. 됐다. 잊어버려.”

아빠는 안방으로 쓸쓸한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중얼거렸다.

“에스퍼라도 되면 능력이라도 좀 부리면서 푼돈이라도 벌 텐데, 에라.”

“……응.”

일반인인 아빠는 카르마 시스템에 속하지 못한 것을 투덜거리며 안방 문을 닫았다.

쾅.

나는 손안에 쥐어진 작은 지폐를 바지 주머니에 대충 넣었다. 나에게는 가늠할 수 없었던 돈. 그게 지금에서야 비로소 보인다는 게 이상했다. 우리 집의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어 버린 것도.

마치 초능력이 있었다가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기분이랄까.

돈이 많아도 불행하고, 없어도 불행하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었다. 가족이 없어도, 많아도 행복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배반적인 생각을 접어 두고 동생 방에 들어갔다. 동생은 먹은 것이 없어서 지쳤는지 잠을 곱게 자고 있었다.

“…….”

환하게 비추어 들어서 더욱 비참해지는 아침 해를 벽에 기대앉아서 맞이했다. 그렇게 뜬잠을 졸다가 나는 동생의 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으우……. 으아앙!”

“아.”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동생을 안아서 얼렀다. 이제는 익숙한 몸짓에 동생은 울다가도 히끅대다 울음을 멎었다. 착하다.

“착하다, 착하다…….”

누군가 내게 말해 주던 그 말을 떠올리면서 살살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금방 진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어서 동생을 먹이고 잘 눕힌 후에 집을 떠났다.

맨날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정치인들 욕을 잔뜩 하는 슈퍼 아저씨는 자주 오는 나를 알아보고 매대에 있던 사과 맛 팩 주스 하나를 서비스로 주었다. 불경기로 파리 날리는 슈퍼에 그나마 오는 손님이 나라는 이유였다.

한손에 라면과 소주가 들은 검은 봉다리를 달랑 달랑 들고, 다른 손에는 팩 주스를 쪽쪽 빨아먹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걸었다. 활기차던 골목은 잦은 이사와 야반도주로 텅 비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로 변모한지 오래였다. 그런 내가 녹슨 양철 대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조용해야할 집 앞이 사람들의 말소리로 북적였다.

“야, 야. 이거 저기다 실어라. 원 멀쩡한 게 있어야지.”

“그러게요. 값이나 나오려나 모르겠어요.”

“우린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돼. 토 달지 말고, 새꺄.”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은 언뜻 보아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한두 명도 아닌, 두 손을 합쳐도 넘는 숫자의 남자들은 옆구리에 집안의 물건을 들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가구를 두세 명이 힘을 합쳐서 들어냈다. 그런 난리통 중에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무슨 벌써부터 차압을 해? 아직 어음 기간 남았잖아!”

아빠였다. 그런 아빠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유 사장님, 그것도 어느 정도 희망이 보여야 기간을 지키죠. 불.”

“예.”

앞선 남자들과 같이,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까만 선글라스를 낀 상태로 담배를 내밀었다. 빡빡 머리의 남자가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자, 선글라스는 하얗게 타들어 가는 연기를 주위에 뭉게뭉게 풍겼다. 그 태도에 아빠는 할 말을 잃었는지 주춤하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우리 애가 삼라 회장 손자랑 아는 사이란 말이요! 어? 뭣하면 좀 기다려! 걔랑 말해서 바로 갚아 주면 될 거 아냐? 이 시펄…….”

아빠의 말에 남자가 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아~ 그 튀기?”

튀기? 나는 생소한 단어에 귀가 더욱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담배를 한 번 빨아들이면서 연기를 훅 뱉었다.

“우리 도련님 얼굴 완전 걸레짝으로 만든 새끼 알면, 뭐 어쩔 건데? 응? 그 새끼가 돈 갚아준다고 말이라도 했어?”

“뭐?”

“하 참, 안 그래도 그 애새끼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안 그래도 기분 나쁘구만. 별 거지새끼까지 이젠 지랄을 해요. 지랄을…….”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끌끌하고 찼다. 그러자 아빠가 고함을 질렀다.

“뭐? 거지새끼? 이 깡패 새끼가!”

“아이고, 유 씨. 돈 좀 만지니까 뵈는 게 없나 봐? 음?”

남자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아빠를 향해 너그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진정시키는 것은 경호원처럼 옆에 서 있던 남자들이었다.

“컥!”

“야그들아, 살살해라. 살살. 그러다 뒤지면 골치 아파요 또…….”

담배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는 남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조폭들은 아빠의 배와 얼굴 등에 주먹세례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 다리가 떨려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런 나를 발견한 조폭들 무리가 어, 어, 하고 소리를 내었다.

“얘, 집에 가라. 괜한 거 보지 말고.”

“그래.”

“엄마가 걱정하셔, 에비. 가라.”

그 소란에 신경이 끌렸는지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답을 찾은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야, 야. 너 유 씨 아들인가 봐?”

“가, 가하야, 도망가! 컥!”

“가긴 어딜 가. 요기 데꼬 와.”

조폭들이 들고 있던 물건을 내팽개치고 내 팔을 붙잡았다. 덩치나 인상만큼 거친 손길에 내가 들고 있던 봉지가 흙바닥으로 볼썽사납게 뒹굴었다. 선글라스를 쓴 사내가 혀를 차며 나를 데려 온 조폭의 머리를 퍽 소리 나게 쳤다.

“새끼들아 데려오랬지 어디 멱살을 잡으라고 했냐. 새 나라의 어린이인데. 그래. 우리 친구가, 가하?”

“…….”

“아유, 겁먹었나 봐. 형 무서운 사람 아냐.”

그렇게 말해 봤자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도 남았다. 그렇게 생각한 게 나뿐만이 아닌지 나를 데리고 온 조폭이 말했다.

“형님, 아까 다 본 거 같습니다만…….”

“……그래? 야, 미안하네. 어린 나이에 그런 거 보게 하고. 도련님 알면 나 죽이겠어 또. 정신계 쪽이라서 안 그래도 고문하기엔 딱이구만……. 우리 구면일 텐데.”

그는 호들갑을 떨다가 내 앞에서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올렸다. 그러자 훤칠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

전에, 대호네 집의 생일 파티를 갔을 때 보았던, 그 손가락 잘린……. 내 반응에 그는 반가운 얼굴로 씩 웃었다.

“기억하나 보네. 나도 머리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라 다 기억하거든.”

그는 마치 반가운 사람에게 인사를 하듯이 네 번째 손가락이 잘린 손을 흔들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뒤에서 내 어깨를 붙잡는 힘에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애꿎은 흙바닥에 발자국을 내었다. 사내가 낄낄 웃었다.

“우리 도련님이 그렇게 좋다좋다 하는데, 아 잊을 수가 있나. 지 애미 닮아서 얼굴값도 좀 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짧은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그는 내 얼굴을 훑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참, 무서운 꼬맹이들만 엮여가지고…… 너도 참 불쌍하다. 부모라고는 돈에 눈이 멀어서 이리 되고…… 야, 짱돌아.”

“네, 형님.”

“큰 형님한테 가서 연락드려라. 코 빠지도록 기다리시겠네.”

“예,”

짱돌이라 불린 사내는 어딘가로 가 버렸고, 나는 여전히 거북한 이 사내와 마주하고 있었다. 사내는 곤죽이 된 아빠를 까만 구두 굽으로 퍽퍽 쳐대며 말했다.

“유 씨, 지금 원금이 한참 모자라요. 이딴 쓰레기로는 이자도 안 되는 거 알지?”

“으, 으헉.”

“그래서, 남은 게 애덜 뿐이라. 지금 요 애 델고 가려고.”

“아, 안 돼.”

“안 되긴. 돈 없잖아요. 우리 피곤하게 하지 말자.”

나를 데리고 간다고? 나는 갑자기 닥쳐 온 상황에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무서웠다. 이 앞뒤로 가득 찬 조폭도, 죽을 듯이 누워 있는 아빠도……. 아빠는 코피를 질질 흘리면서 외쳤다.

“있어! 돈 있다고!”

“어디? 있으면 재깍재깍 주셔야지. 유 사장님.”

“애, 애들 엄마가 친정집에 돈 빌리러 갔어. 며칠 후에 오니까, 그때, 그때 줄게.”

덜덜덜 떨면서 말을 하는 아빠를 보던 사내는 음, 하고 고민을 했다. 그 와중에 짱돌이라 불린 조폭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행님.”

“어. 도련님 뭐라시냐.”

“저…… 오실 테니까 우선 손대지 말라고…….”

“뭐? 안 돼. 이미……. 에이 시펄, 되는 게 없네.”

그는 주위를 휘, 둘러보다가 머리를 짚었다.

“야…… 그래 그럼. 유 씨. 그렇게 합시다. 며칠 후에 올 테니까. 그때 돈 마련해 두고. 안 되면……. 애덜 데려 갈 테니 그리 아쇼.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자선사업을 안 해서 그렇지.”

“…….”

사내는 흙바닥에 침을 거세게 뱉고 내게 와서 목이 꺾이도록 거칠게 쓸었다.

“야그야, 오늘 본건 잊어버리고 우리 또 만나자고. 도련님이랑 같이, 응? 아참, 우린 앵벌이, 뭐 그런 건 안 시키니까 걱정 말고.”

그는 농담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호탕하게 내뱉으며 조폭들과 함께 녹슨 대문을 넘었다.

“울 막내 도련님이 그런 거 시키게 내비 둘 사람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알지?”

끼이이…….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고, 아빠는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최악의 하루였다.

“아으으……. 아야, 야야, 아파.”

“……여기?”

“으응. 거기.”

불어터진 막국수 마냥 까맣고 벌건 얼굴을 한 아빠의 몸에 덕지덕지 빨간약을 발랐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기 바빴다. 원래대로라면 병원을 가야하지만, 우리를 감시할 목적으로 집 거실에 자리를 잡은 조폭이 영 신경 쓰여 어디도 갈 수가 없었다.

거실 소파 옆, 거실 한복판에 꼿꼿이 허리를 들고 앉아 있는 젊은 사내를 힐끔대었다. 아까 폭풍처럼 들이찼던 조폭들 무리 중 한 명이었다.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 물건을 들어내지도 않았고 아빠를 두들겨 패지도 않았다. 다들 검은 차에 타고 갈 때 즈음에 와서 저렇게 앉아 있었다. 게다가 유난히 말이 없다는 점이, 스스로를 형이라고 부르던 선글라스 사내와 비교가 되었다. 아니면 그 선글라스가 조폭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무척 활발한 성격이었을 수도 있고.

차라리 저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가 나았다. 오히려 그 선글라스처럼 친근하게 구는 게 더 무서웠다. 저렇게 쌀쌀맞으면 그냥 내가 피하면 되지, 그렇게……. 나는 내 어깨를 붙잡고 아빠를 흠씬 두드려 패던 모습을 보게 하던 서글서글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자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 몸서리 쳤다. 앞에 앉아 있던 아빠가 구부린 허리를 조심조심 피면서 입안에 멎으라고 넣어 둔 핏빛 솜을 손에 퉤, 뱉었다.

“퉷, 퉤…….”

“괜찮아?”

“어? 어, 괜찮아. 그냥 좀 긁힌 거야.”

“…….”

아빠는 얼굴을 찡그리던 것을 애써 펴 보이며 뽀빠이 자세를 하다가 살이 터지도록 맞은 고통이 여전한지 아구구, 신음을 내었다. 괜찮기는……. 그 모습에 나는 어쩐지 아빠가 안쓰러웠다. 어린 나를 안심시켜 주려고 노력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안심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말았다.

검은 발자국이 남은 흙바닥에 그나마 멀쩡한 가구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집 안이 멀쩡한 것도 아니다. 부셔진 가구 곳곳에는 빨간 딱지가 대문짝만한 크기로 붙여져 있었다. 그 빨간 딱지를 읽던 내 눈 앞으로 아빠가 푸르게 퉁퉁 부은 손을 휘휘 흔들었다.

“뭣 하러 읽고 그래. 뭐 좋은 거라고. 방에 들어가서 책이나 봐라.”

“……응.”

이런 상황에 무엇을 본다고 한다 해도 눈에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헛기침을 하면서 안방으로 들어가다, 거실에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사내가 영 꺼림칙한지 소리쳤다.

“이봐요, 계속 여기 있을 거요?”

거실의 구석에서 조용히 말없이 앉아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예.”

“……준다고 했잖아. 그렇게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지 않아도…….”

“신경 쓰지 마시죠. 저는 제가 할 일을 하는 거니까.”

무뚝뚝한 대답에 아빠는 소리를 더하려 입을 크게 벌렸다가 이내 터진 입술가가 아픈지 아야야, 하고 다시 아파하며 붕대감은 손을 뻣뻣하게 올렸다.

“그, 우리 애들은 건들지 말아요. 건드렸다가는…….”

“안 건듭니다.”

아빠는 그나마 멀쩡한 반대 쪽 손으로 남자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경찰 부를 거요. 그, 내가 전화를 지금 안 해서 그렇지, 우리 고종사촌이 경찰 서장이라고.”

우리 사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던가? 나는 태어나고서 처음 들어 보는 말에 의아해졌다. 사내는 별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아빠의 말을 무 자르듯이 잘랐다.

“그러시죠. 뭣하면 지금 당장 그 고종사촌에게 전화하셔도 됩니다.”

“……뭐요?”

“저희는 채권자의 의무를 위임받아 이행할 뿐입니다. 그게 불만이시면 지금이라도 사장님 채권자에게 항의하셔도 됩니다.”

“……그 새끼가 그 새끼요! 어음 돈을 안 준 것도 박 상무고, 빌린 돈 내놔라하는 놈도 결국 박 상무네 윗대가리 아니냐고!”

“잘 알고 계시는군요.”

“아우! 이 시펄…….”

사내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어디 적혀져 있는 글을 읽듯이 딱딱하게 말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아빠의 말이 저 사람에게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아빠도 그것을 알았는지 항의하듯이 올린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사내가 나직하게 부탁했다.

“괜히 열 내지 마시고 들어가셔서 쉬십쇼. 유 사장님.”

“…….”

“에잇…….”

깍듯하게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내의 말에 아빠는 오히려 분이 막 치솟는지 꽝, 소리가 나게 안방의 문을 닫았다. 천둥 같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나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처음 보는 사내의 모습에, 그리고 아빠와 그 둘이 말한 지금의 상황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동시에 작은 의문이 들었다.

아빠가 말한, 엄마가 돌아온다는 거짓말이 끝나고 나면. 내가 어디로 갈지, 그는 알고 있을까.

그들을 따라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까…….

생각에 잠겨 소파에 앉으며 천천히 그를 바라보는 나와, 앉아 있던 사내가 눈을 마주쳤다.

“…….”

“…….”

눈을 마주친다고 해도 그는 신경 하나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나는 어색함에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아빠와 박 비서 아저씨, 혹은 슈퍼 아저씨, 주현이네 기사 아저씨, 학교의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처음 보는 나이 대와, 직업의 남자였다. 친척들과도 왕래가 잦지 않아서, 삼촌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젊은 편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선의 호기심을 가득 담아서 사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몸에 꼭 맞춘 검은 수트가 터질 듯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허벅지를 보고 나는 문득 다리가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나는 사내를 몰랐고, 사내도 내게 관심이 없는지 말없이 바라보는 채로 가만히 있었다. 우리 사이의 침묵을 깬 것은 놀랍게도 이 낯선 사내였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예?”

무슨 말? 누가?

“대호 도련님 짝꿍이셨다고요.”

“……아 ……지금은 아닌데요. 다른 반이라.”

대호였구나. 그러고 보니 대호네 집 사람이었지. 선글라스도, 이 사람도. 사내는 내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닌지 무덤덤하게 자기 할 말만 이어 갔다.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신가요.”

“……아빠만 좀 아프고 ……전 괜찮아요.”

내 건강을 살피는 말이 좀 어색했다. 얻어터진 사람은 아빠인데 왜 내 건강을 챙기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호의 친구라서? 긴장으로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 목마르세요?”

묵묵하게 있던 사내가 봇물 터진 것처럼 말을 하는 모습에 그냥, 목이 마르지 않을까 싶었다. 내 말을 들은 사내가 얼굴 근육을 당겨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저기 뒷산의 바윗돌 마냥 살벌했던 얼굴이 살짝 풀린 모습은 단단했던 이미지와 달리 산뜻했다.

“듣던 대로 정이 많으시군요.”

“……대호가 그랬…… 어요?”

멍청한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집에서 내 얘기를 할 사람은 당연히 대호밖에 없지. 도대체 나를 두고 무슨 말을 한 거지. 내 멍청한 대꾸에 남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답지 않은 농담도 곁들여 가면서.

“예. 전학 오신 날부터 집에 자랑을 얼마나 하시는지, 귀에 피가 나고 따가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요?”

첫날 천진하게 맞이하던 대호를 생각하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깍두기 탈출이라고 신나게 말하던 대호. 그 개구진 성격이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았겠지. 주현이가 온 이후로 서로 피하게 되고, 조금씩 말은 건네도 워낙 말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내는 머금었던 작은 웃음기를 간직한 채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에스퍼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별로 좋은 등급은 아니에요.”

물론 내 성격만 말했을 리가 없지. 나는 사내의 말에 변명처럼 덧붙였다. 나도 내 등급을 잘 알고 있으니 굳이 당신이 짚어 줄 필요는 없다는 일종의 방어였다.

인정하기엔 좀 슬프지만, 사실이니까. 나는 대호나 주현이만큼의 등급이 되지 않아서, 그들과 같이 중요한 인재가 아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권외자로 몰리곤 했다. 내 우려와 달리, 남자는 의외의 말을 했다.

“그게 그쪽에게 더 좋을 겁니다.”

“낮으면…… 별로 안 좋잖아요.”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등급이 낮은 에스퍼나 가이드를 이상형으로 뽑는 사람은 없었다. 기피하지는 않더라도 패배자로 보기 일쑤였다. 심지어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취급인데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지.

등급 때문에, 사람들은 싫어하고 미워하기 마련인데…….

점점 이해가 되지 않는 나를 두고 남자는 조곤히 말을 이어갔다.

“등급이 높을수록 가이드에게 종속될 확률도 높습니다. 에스퍼는 가이드의 힘이 없으면 평범한 일상이 유지가 되지 않으니까요.”

“…….”

“에스퍼의 등급이 낮을수록 자유롭게 살 수 있단 소리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내 솔직한 말에 남자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나를 바라보는 조각처럼 움직이지 않는 까만 동공이 날카롭게 빛났다.

“만약, 둘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면…… 저희 도련님을 선택하세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가끔 등급이 낮은 에스퍼는 더 높은 등급의 에스퍼와 각인을 하기도 하죠.”

그는 언젠가 대호가 한번 지나가듯이 말한 내용을 꺼냈다. 기시감에 내가 아, 하고 소리를 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인 참견입니다. 강요하는 건 아니고.”

그가 말을 하는 가운데 바깥의 양철 대문이 요란하게 깡깡,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큰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소파에서 일어서서 그가 하는 말을 미처 다 듣지 못했다.

“……단 한 번뿐이니까요.”

누구지, 정신을 확 끌어 잡는 시끄러운 대문 소리에 나는 거실의 발코니 쪽으로 다가갔다. 땅거미 그림자가 지기 시작하는 정원 쪽을 보자 다 떨어져 나간 양철 대문 앞에 조폭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아빠를 자비 한 점 없이 두들겨 패고, 저 거실에 앉아 있는 사내와 똑같은 차림을 본 내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가슴팍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창 구석에 간신히 달려있는 찢어진 커튼에 내 몸을 숨겼다. 거실에 앉아 있던 사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호 도련님이 오신 모양입니다.”

“……대호가요?”

“예.”

지금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한참동안 앉아 있던 다리가 저리지도 않는지 긴 다리를 쭉 일으켜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 그가 현관문을 반쯤 열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

“……안 만나십니까?”

“……왜, 요?”

만날 이유는 없었다. 무엇하러 만나겠는가. 이게 무슨 좋은 일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 있는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지. 가족 여행은커녕, 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몸을 감싼 커튼에서 나오지 않으려 서 있자, 사내가 내게 다가왔다. 아빠보다 큰 덩치를 가진 그는 천천히 다가올수록 오히려 위협적이었다. 내게 손을 올린 것도, 귀가 찢어지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닌데 그러했다. 그는 내 얼굴 가까이 와서 내 키 높이에 맞추어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대호 도련님이 여기 온 걸 알면 본가에서 제법 난리가 날겁니다.”

“…….”

무슨 난리일까. 나는 우락부락한 덩치와 험악한 분위기를 가진 사내들을 생각하며 도리질을 쳤다.

‘대호를, 때릴까?’

그 커다란 주먹들을 생각하니, 엄마가 나를 회초리로 때리는 정도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사내는 작게 웃었다.

“아마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벌을 받으시겠죠.”

“……근데 ……왜 와요?”

무엇하러…… 나는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조폭 떼거리들을 흘끔대며 작게 대꾸했다.

“글쎄요. 직접 물어보세요. 전 무식한 놈이라서 그런가 똑똑하신 도련님 생각을 잘 모르겠습니다.”

덤덤히 말하는 사내에게 나는 주현이가 하던 대로 눈을 가늘게 떴다. ……왠지는 몰라도 무식하다니, 전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내가 갈고 닦은 눈빛 공격에도 어른은 어른인지, 눈 한 번 깜빡이는 게 다였다.

“……가시겠습니까?”

“……그냥, 인사만……할 거예요.”

내 대답에 사내는 피식 웃었다.

“아주 기뻐하실 겁니다.”

내 걱정 어린 예상과 달리 사내의 말은 맞았다. 내가 예쁘게 다림질이 된 셔츠와 교복이 아닌, 구겨지고 더러운 옷을 입고 흙투성이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어도 대호는 만나지 못한 가족을 찾듯이 허겁지겁 내게 달려왔다.

“가하야!”

“도련님!”

“야! 잡아!”

그 마음이 주변 어른들 또한 해당되리라는 것은 아니기에, 다들 대호를 둘러싸고 내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기 바빴다. 그 모습에 대호를 만나 보라고 권유한 사내를 돌아보았다.

‘만나도 된다는 거, 전혀 아닌 것 같은데…….’

그는 잔잔히 웃어 보이다가, 앞을 가리켰다. 수많은 어깨들에게 파묻혀서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는 대호의 모습에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훅, 하고 부는 겨울바람과 함께, 대호가 가진 힘의 파장이 내 피부 위를 찌릿하게 스쳤다. 그걸 나만 느낀 게 아니었는지 머리를 잡고 흙바닥을 구르는 사내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어이고,”

“형님, 머리, 머리가 깨질 것 같…….”

“대호 도련님, 이러시면 안 되죠! 반칙입니다!”

쓰러져서 굴러다니는 조폭들 중 볼에 칼자국을 새긴 사내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마냥 머리를 짚고 거세게 항의했다. 바닥을 뒹구는 사내들의 얼굴에 운동화 자국을 예쁘게 남겨 주며 이쪽으로 넘어오던 대호가 코웃음을 쳤다.

“내 맘이야. 쌍칼아.”

“아이고! 지금 이러시는 거 패륜이라고요! 제가 도련님을 어떻게 키웠는데! 제가 손수 기저귀……. 으악!”

쌍칼이라 불린 사내가 아파하며 소리치는 가운데, 고통을 참을 수가 없는지 다시 무릎을 꺾고 피시식 쓰러졌다. 그나마 좀 나은 상태의 사내들이 여전히 머리를 짚으며 하나 둘씩 모였다. 그들은 형님, 형님 하고 신음하면서 방금 쓰러진 형님을 부축했다. 내 앞으로 온 대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와서 뒤로 작게 소리쳤다. 기저귀 얘기가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입 다물어.”

“도련님.”

내 뒤에 있던 사내가 대호를 불렀다. 그러자 대호는 내 어깨를 붙잡고 얼른 대답했다. 급하게 왔는지 대호의 입에서 더운 숨이 훅훅 풍겼다.

“성호 형. 고마워요.”

“아닙니다. 쌍칼이는 제가 저기 멀리 치워 두겠습니다. 그동안 말씀 편히 나누시죠.”

사내는 마치 쓰레기를 버리러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산같이 쌓여 있는 조폭들이 모인 양철 대문 앞으로 갔다.

“……가하야.”

“……응. 대호야…….”

그제야 우리 둘이 마주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가족 여행을 간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호는 나를 껴안았다. 주현이가 버릇처럼 나를 껴안는 것처럼 말이다. 대호는 나를 꼭 껴안고 속삭였다.

“……괜찮아?”

그 포옹에 문득, 이 자리에 없는 주현이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괜찮아.”

하지만 더 이상, 혹은…… 평생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애와, 이 애와. 나의 높이가 다른 것을 너무도 잘 아니까. 아무리 내 능력을 써서 날아간다고 해도, 나는 그 애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다. 나는 궁금했던 생각을 바로 지웠다. 내 대답에 대호는 낯빛이 훅 어두워지더니, 이윽고 사과했다.

“……미안.”

“뭐가, 나 괜찮아.”

“너네 아버지…… 다치셨다고 들었어.”

아.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대호의 얼굴에 이 애의 집을 떠올렸다. 맞다, 이 사람들 다…….

“대호 도련님! 학교 친구라고 그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작업하는데 오신 거 큰형님 아시면 난리 납니다!”

대호네 집 사람들이지.

쌍칼이라 불린 사내의 꽥꽥대는 외침을 들은 대호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손으로 짚었다.

“진짜 미안.”

대호는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대호가 한 일도 아닌데.

“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아까 왔던 사람들은 우리 큰형네 사람들이라서…… 난 나이 어리다고 내가 하는 말 잘 안 들어주거든…….”

그건 대호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었다. 우리 위에 있는 어른들의 잘못이었다. 우리 아빠의, 엄마의, 그리고 그 주변의 어른들. 그건 대호가 미안해야할 일도 아니고, 슬퍼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호는 마치 자기가 저지른 일 마냥 슬퍼하고 있었다.

나는 대호가 성호라고 불린 사내에게 나를 정이 많다고 소개했다던 말이 떠올렸다.

“괜찮아.”

오히려 정이 많은 건 대호였다. 대호가 정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이었다. 대호는 대답하는 나를 보았다가, 이윽고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며 입을 닫았다.

“…….”

“……있잖아.”

“훌쩍, 응.”

대호가 콧물을 흡, 삼키면서 대답했다. 코 주위가 빨갰다.

“아까 너네, 집에서 온 아저씨가 그랬는데.”

“……어? 어…… 성호형?”

“아니……. 선글라스, 낀…….”

“아, 지석이형……. 뭐라고 그랬는데?”

내 말에 대호가 깜짝 놀란 듯, 불안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잘게 떨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알까?

“……아빠가 돈 없으면 나 데려갈 거래.”

“…….”

“나, 어디로 가는지 알아?”

그게 대호네 집은 아닐 것은 알았다. 하지만 어디인지는 몰랐다. 어쩌면 대호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상황을 알고서 만나기 위해 뛰어온 걸 보면……. 내 말에 대호가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렸다.

“왜, 왜 그래.”

도리어 내가 당황해서 대호의 뺨을 그나마 깨끗한 소매 쪽으로 살살 닦아 주었다. 대호가 내 손을 잡고서 씨근덕대었다.

“너, 송주현이,”

“…….”

마음에 묻어 둔 이름이 남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기분은 조금 달랐다. 그 애는 눈물로 가려졌던 날카로운 눈매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송주현한테,”

그 애는 말을 하다 말고, 숨을 들이쉬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하, 하고 하늘을 바라보다가 내게 촉촉한 눈을 내렸다.

“……도와달라 해.”

“……어떻게 그래.”

“…….”

나는 엄마랑 비슷한 말을 하는 대호의 말에 씁쓸함을 느꼈다. 다들 그 애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슈퍼맨으로 보는 듯 했다. 대호의 눈물을 닦아 주던 소매를 등 뒤로 숨기고 다시 다짐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건 우리 부모님이 벌려 둔 일이였지, 주현이의 일이 아니었다.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심 알았다. 부모님의 넘쳐나는 욕심이 언젠가 무언가를 불러 올 거라고. 그게 지금일지는 몰랐지만.

“……그러면.”

대호는 멈추지 않고 나오는 눈물과 콧물이 짜증스러운지 자기 교복 셔츠로 북북 문대었다.

“너, 어떡할 건데.”

“……있잖아.”

“응.”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갈 때는 가더라도, 단 하나는 알고 싶었다. 내 말에 대호는 집중하는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던 이름을 힘겹게 꺼냈다.

“그……. 주현이.”

그 애는 나를 찾고 있을까? 내가 갔다는 가족 여행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까?

그 애의 옆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을까?

아니면 반의 누군가가 이미 차지했을까. 반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오히려 내가 없기를 바라던 애들이니 이미 차지하고도 남았을지도 모르지.

“잘…… 지내?”

“…….”

내 말을 듣자마자 거칠게 얼굴을 문대던 대호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냥, 나 이제 그 학교 안 갈 거 같아서. 인사라도 하고 싶은데.”

내 조심스러운 말에 대호가 딱딱한 말투로 답했다.

“……송주현 지금 스웨덴 갔어.”

“……스웨덴?”

예상하지 못한 대답과 장소였다. 대호는 마른입을 혀로 축이면서 꿋꿋이 말했다.

“……어머니 기일이래.”

아, 그렇구나. 생각지도 못한 주현이네 어머니 이야기로 내 입이 다물렸다. 기일. 죽은 사람의 날. 그렇다면 그 애도 힘든 날이 분명하다. 그게 둘 다 엄마 때문이라는 건, 어쩐지 나랑 닮은 거 같았다. 딱히 좋은 건 아니지만, 나쁜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건 핑계고. 송주현 네 기업도 구조 조정 하느라 엄청 시끄러워서 억지로 내보낸 거야. 걔가, 안 가려고…….”

“구……조 조정? 그게 뭐야?”

대호는 내가 모르는 말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엄마가 대호네 집은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욕하곤 했지만, 가만 보면 다들 똑똑했다. 아니면 나만 바보인가……. 내 말에 대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 일 없어지는 거. 백수 되는 거.”

“아…….”

나는 뉴스에서 나오던 실업자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그렇구나.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다가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눈물로 엉망인 얼굴이지만 뚜렷한 얼굴을 코앞에서 보자니 왜 반 여자애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로는 안 되겠어?”

“응?”

“……내가, 갚아 줄게.”

대호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무엇을 갚아 준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았다.

“…….”

“우리 집 와서 있자.”

나를 이렇게, 엄마 아빠를 저렇게 만든 것. 이웃들이 도망가게 만든 것.

“…….”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그렇지만 나는 차라리 이 상황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우리를 이렇게 만든 돈이 없어진다면.

그저 우리 집이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막연하고 천진한 상상을 품었다. 대호는 자신의 눈물을 닦던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내게 부탁해. 응? 내게 도와달라고 해. 나를 선택해.”

“…….”

“내가, 내가 좋다고 그래. 송주현한테, 이제 내가 훨씬 좋아져서 나랑 살겠다고 그래…….”

대호는 아까 거실에 있던 사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선택하라고.

갑작스러운 닥쳐온 선택지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늘 객관식 답안지가 나오면 답 사이로 가는 경향이 있었다.

‘카르마 시스템 각인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그냥, 편한 사람, 친한 사람이랑 하는 거 아닌가. 물론 높은 등급이면 사실상 결혼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그런 건 다들 비슷한 등급의, 잘난 사람하고 하고 싶은 거잖아. 나는 워낙 낮은 등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인의 중요성을 일러주는 사람도, 당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가이딩 없이 살아가도 별 지장이 없어서 일반인이나 다름없었기에 더 그러했다. 그것 외에도, 대호가 선택하라고 말한 말.

주현이에게 대호가 좋아졌다고 말하라는 것은.

“그렇게 말해…….”

“미안.”

거짓이라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대답에 대호는 그 진한 눈매를 가득 채우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애는. 내가 가질 수 있던 것 중에 가장 반짝거리고, 귀하고, 예쁜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소중한 것을 부모님의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나와 같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마음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이 나쁜 상황을 빠져나갈 구실로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어린 내가 아는 사랑의 전부였다.

우리에게 또 다른 무리의 조폭 무리가 다가왔다. 아까 본 쌍칼과 조폭떼보다 더 절도 있는 몸짓의 사내들이 대호에게 다가와 나에게서 거칠게 떼어놓았다. 그걸 두고 대호가 그들에게서 빠져나가려고 갖은 몸부림을 쳤다.

“이거 놔! 놓으라고!”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오십니까.”

새로운 사람의 딱딱하기 짝이 없는 대꾸에 대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내 친구네 집이야!”

“대호 도련님, 공구리치러 온 것을 어르신이 아시면 무척 화내실 겁니다. 이쯤에서 가시죠.”

“아빠한테 이미 말하고 왔어, 그러니까…….”

대호는 얼굴을 부풀리고 불만스럽게 자신을 잡고 있는 팔을 퍽퍽 때리면서 말했다. 그러나 이 사내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얼굴로 벽처럼 대꾸했다.

“성호 녀석까지 멋대로 데리고 가시고, 큰형님 이미 화 많이 나셨습니다. 지금 가셔도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으실 걸요.”

“…….”

그는 비어 있는 한쪽 손을 쫙 펼쳐 보이며 씩 웃어 보였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아서 무척 기괴한 표정이 되었다. 그 말은 대호에게 제법 효과적이었는지 대호의 처절한 몸부림이 멎었다. 저런 사람의 손으로 엉덩이를 맞는 건 모르는 내가 봐도 제법 아파 보였다. 대호는 이내 분한 얼굴을 하고 내게 외쳤다.

“가하!”

“응.”

또 다가온 이별의 시간이었다. 이별은 처음만 어렵지 그 다음은 점점 무뎌지고 마음을 빨리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은 엄마를 떠나보낼 때보다 좀 더 마음이 아팠다. 그건 내가 대호를 엄마보다 조금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대호를 이 다음에, 나중에 또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꼭, 데리러 올게.”

“……응.”

아마 없을 것이다.

이전의 내가 이러한 세계를, 이러한 학교를, 이러한 사람들을, 이러한 애들을 몰랐듯이.

우리는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몰랐던 사람으로 돌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섭섭해 졌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나쁜 날씨 속에서도 가끔은 좋은 햇볕이 있는 날처럼, 내게도 그러한 날들이 있었으니까.

“약속.”

“응. 약속.”

살벌한 사내의 옆구리 사이로 대롱대롱 매달린 대호가 내민 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었다. 살벌한 사내에게는 그게 한계였는지 바로 몸을 뒤로 물렸다. 그 덕에 우리가 걸었던 손가락이 힘없이 툭 풀렸다. 양철 대문으로 발걸음을 성큼성큼 옮기는 사내가 옆구리에 찬 대호에게 숨길 수 없는 진심을 잔뜩 담았다.

“한동안 방에서 근신하실 줄로 아세요.”

대호는 지지 않고 힘껏 외쳤다.

“진짜로, 꼭, 데리러 올게!”

“……응. 잘 가.”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을 알아서 나는 그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우는 모습보다는 그래도 웃는 모습으로 마지막을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대호가 데려왔다는 거실의 사내, 성호라고 불린 사내는 멀찍이서 대문을 나서다 말고 나를 향해 작게 목례했다. 그에 나도 허리를 굽혀서 인사했다.

엄마와 애들은 대호네 집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했지만, 꼭 그런 거 같지도 않았다. 폭풍같이 왔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쓸쓸해진 정원을 현관문 앞의 계단에 앉아서 가만히 보았다. 뒷산 너머로 저물기 시작하는 노을을 보면서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왜 왔는지 물어 보는 거 깜빡했네.”

자기네 집 사람들이 여기 오는 걸 어떻게 알고 왔지. 자기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듣고 온 걸까? 그래도 친구라고, 학교 안 오는 게 좀, 신경 쓰였던 걸까…… 생각하자니 그런 험악한 사람들 가운데 있던 대호가 어른이 되면 비슷한 사람이 된다는 게 잘 상상 가지 않았다.

대호도, 어른이 되면, 그 사람들처럼 칼자국과 상처를 달고 살까.

‘주현이도, 여전히 그 집에서 살까.’

나는 점점 옷을 파고드는 늦가을 바람에 몸을 떨면서 계단을 밟았다.

‘나 없이, 다시 혼자서…… 그 집에서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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