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부 그 애 (2)
그렇게 또 한 주가 흘렀다. 주현이와 나의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내가 가끔 2층 방에서 첼로를 연습하고 있으면 주현이가 정원이 훤히 보이는 2층의 난간에 기대어서 듣곤 하는 게 우리 일상의 조그마한 변화였다. 그럴 때마다 가을의 곡식이 익어 가는 햇볕을 내리쬐며 미소 띤 얼굴로 듣는 그 애의 모습이 좋아서 나는 언제나 생각했던 연습량 보다 훨씬 많이 하곤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매일 저녁마다 오른쪽 팔뚝이 뻐근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 감각이 이제는 조금 익숙하다고 느껴질 무렵, 선선하기만 했던 가을바람은 점점 세기를 더해가 교복 마이 안에 목 폴라나 조끼를 입고 등교하는 애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별다를 바 없이 가정부 누나가 챙겨 준 검은 목 폴라를 입고 주현이와 함께 등교했다. 새로 산 목 폴라는 쫀쫀하다 못해 내 목을 졸라매어서 양모 특유의 근질거림과 답답함이 내 손을 자꾸 목 근처로 올리게 했다. 주현이는 스웨덴에서 자라서 추위를 많이 안 타는지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서, 목 폴라 속 목덜미를 긁고 싶은 내 손을 꼭 쥐고 말리기 바빴다.
결국 쉬는 시간이 되서야 나는 드디어 목을 시원하게 벅벅 긁으면서 사물함에 있는 국어 교과서를 꺼내드는데, 그 근처 책상에서 떠드는 애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우리 아빠가 반 애들 다 오라고 주셨어.”
그 말과 함께 애들이 오버할 때 나오는 특유의 과장된 목소리로 헐, 헐, 하고 탄성을 질렀다. 뭘까.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진 나도 잘만 정리되어 있는 사물함 근처에서 괜히 교과서를 찾는 척, 서성거렸다.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애들은 그저 탄성을 이어 갔다.
“우와, 네버랜드! 짱이다.”
네버랜드라면, 삼라가 만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놀이동산이었다. 낯익은 명칭에 나는 아주 예전, TV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고 엄마랑 아빠에게 가자고가자고 졸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물론 티켓 가격도 너무 비싸고, 집에서 너무 멀어서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지금이라면 가고도 남겠지만……. 아닌가.
이제는 같이 갈 사람이 없으니, 그때와 다를 바가 없을까.
“이거 네버랜드 티켓이지?”
어떤 애의 질문에 티켓 주인이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응. 우리 아빠 삼라 전자에서 일하거든. 다음 주 토요일에 우리 다 같이 가자.”
그 말과 함께 어떤 애들이 그들의 부모님들이 말해 주었을 것을 조잘조잘 떠들었다.
“얘네 아빠 높은 사람이랬어.”
“진짜?”
“맞아. 저번에 신문에 나온 거 봤어.”
“청와대도 갔다 오고, 태국도 갔다 왔다고 그랬어.”
우와, 하고 다들 속닥거리는 가운데 어떤 여자애가 보란 듯이 외쳤다.
“야, 우리 엄마도 삼라 병원에서 일하는데 달마다 이거 나와.”
이런 자랑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들이었다. 나도 그래. 너만 그런 줄 알아? 그래야만 애들도 서로를 인정하고 끼워 주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나와는 먼 이야기다.
다른 애들이 점점 모여 들면서 말했다.
“야, 너도 아빠 삼라 물산 일한다고 그랬잖아. 너네도 받아?”
“어? 아, 어……근데 자리 남으면 가끔…….”
“뭐야? 다 받는 게 아니야?”
누군가의 의문에 말했던 애가 죄지은 사람마냥 살살 눈치를 보더니 얼버무렸다.
“몰라, 학원 때문에 바빠서……. 많이 안 가 봤어. 나 화장실 좀.”
“하긴. 너 맨날 학원 있다고 그랬지. 자, 여기 티켓.”
“고마워!”
학원이 많다고 말하는 애는 책가방 안쪽에 네버랜드 티켓을 꼭꼭 넣어 두고 ‘너네 아빠도 일하지 않냐’고 물어본 애랑 교실을 나갔다. 그 애들이 나가면서 교실 문을 닫기 전에 소곤대는 소리가 내 책상으로 돌아가는 내게도 들렸다. 학생 수 대비 큰 교실은 아무리 작게 말해도 다 들리기 마련이었다.
“뭐야, 삼라 일하면 다 받는 게 아니야?”
“응. 쟤네 아빠는 임원이니까 저렇게 주는 거야. 아까 걔네 아빠는 만년 과장이라고 우리 아빠가 그랬어.”
“헐. 능력이 없나 봐.”
탁, 소리가 나며 교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창문가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주현이는 책을 보다 말고 내게 말을 걸었다. 애들이 한 구석에서 몰려서 웅성거리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왜, 저래. 가하?”
나는 주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애들을 대충 훑고서 설명해 주었다.
“아……. 애들 놀러 가나 봐.”
“놀러 가? 어디?”
“놀이동산. 네버랜드.”
아까 티켓을 주던 애가 우리 쪽 책상 분단에 와서도 네버랜드 입장표가 틀림없을 봉투를 애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내 대답에 주현이는 이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버랜드? 아.”
주현이는 파란 눈을 도르륵도르륵 굴리다가 이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거, 내 것인데. 가하 좋아해? 놀이동산?”
“아……. 어. 뭐…….”
맞다, 얘는 그런 애였지. 그 단순한 대답에 실려 있는 무게를 느낀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주현이가 말하니까 그 커다란 놀이동산이 마치 애들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리고 티켓을 나눠 주던 애는 결국 주현이의 책상으로도 왔다.
“저, 주현아.”
“어.”
주현이는 나를 바라보는 채로 대답했다. 고개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주현이 옆인 내 자리에서 표를 나눠 주려던 애의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누가 봐도 무시하는 주현이의 반응에 도리어 내가 눈치가 보여서 책상 밑으로 있는 주현이의 허벅지 위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쟤, 쟤 보고 말해야지.’
그러자 주현이는 웃음을 삭 머금더니 책상 위에 벌렁 머리를 뉘였다. 나는 이게 주현이가 자주 부리는 심술이라는 것을 안다. 이 애는, 늘 싫음과 좋음이 너무나도 확실했다. 그게 순수에서 나오는 것을 알아서 누구도 그것에 대해 잘 말을 하지 못했다. 나 또한 그러했고. 티켓을 나눠 주는 애도 그것을 알기에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가 주셨어. 주현이 너도 같이 올래?”
“어디?”
주현이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고정한 채로, 내가 찔러대던 손가락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제 손 안에 쥐고 있었다. 나는 주현이의 고집에 더 이상 간섭할 수 없었다. 표를 주던 애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말했다.
“네버랜드…….”
“아.”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흐음, 하고 특유의 소리를 내는 주현이의 모습에 표를 주던 애가 그나마 얼굴이 희망차게 밝아져서 말했다.
“올 거야?”
“아니.”
긍정적인 반응과는 달리, 주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정 반대의 말이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주현이를 쳐다보았고, 표를 주는 애도 그러한지 급하게 말했다.
“왜, 왜? 반 애들 다 갈 거야. 너도 와. 아빠가 회사 버스도 빌려주신 댔어. 다 같이 가라고…….”
“안 가.”
“…….”
“그 버스 내 거야. 그렇지 가하?”
“…….”
주현이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대답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가하, 버스 좋아해?”
“어?”
“줄까?”
나는 당황해서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애와 주현이를 번갈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주현이는 짐짓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가하는 버스 싫구나. 그럼 비행기?”
점점 커지는 물건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린애가 하는 서툰 말이라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을 안다. 전에 내가 꽃이 하나 예쁘다고 했다가 온 집안을 그 꽃으로 채우다시피 한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애는 그런 애였다.
“아니아니, 나 그런 거 안 좋아해.”
“그래? 뭐가 좋아 가하?”
주현이 등 뒤로 터질 거 같은 얼굴을 한 애를 보면서 나는 주현이의 손을 살짝 잡고 슬슬 흔들었다. 박 씨 아줌마가 내가 고집을 부리면 늘 내 손을 잡고 살살 흔들면서 회유하는 것처럼.
“주현아. 쟤가 물어봤잖아. 네버랜드 가자고…….”
“아. 그거.”
주현이는 그제야 생각이 난 듯, 특유의 엷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꼬았다.
“가하, 가?”
“어?”
“가하, 가? 안 가?”
갑자기 내게 돌려진 관심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표를 주고 싶어 하는 애와 주현이를 번갈아 보았다.
나는…… 내게 선택지가 있던가?
나는 표를 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초대받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주현이는 그런 걸 모르는지. 아니, 모르겠지. 모르는 게 분명하니 이러고 물어 보는 거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아, 나 못가. 그, 첼로 시작한 게 어려워서……. 연습해야 돼. 내가 제일 못해.”
“으응……. 안 가?”
“안 가는 거 아니라……못 가.”
“그래? 그럼 나도 안 가. 가하 안 가, 나도 안 가.”
주현이는 그렇게 땅땅, 못을 박듯이 말했다. 그 애가 생각하지 못한 주현이의 말에 눈알을 굴리면서 느릿느릿하게 자기 품에 있는 표를 주었다.
“아, 그. 가하도 주려고 했어. 여, 여기. 올 거지? 응?”
나를 향해 눈에 힘을 주고 오라고 오라고 말하는 애의 표정에,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주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나를 쳐다볼 뿐이었고, 그 외의 스물여덟 쌍의 눈알이 나를 바라보았다. 적의와 불쾌, 그리고 악의로 가득 찬 눈이 내게 은근한 압력을 주고 있었다.
간다고 하라고.
나는 받기 싫은 표를 보다가 눈을 살짝 감고 손을 뻗었다.
“응. 고마워…….”
그리고 그 애의 감색 교복 마이에 하얗게 수놓아진 이름을 어색하게 읽었다. 이 애와 나의 사이는 딱 거기까지였다.
“지석아.”
최지석. 처음 불러 보는 반 친구의 이름. 그게 그 애의 이름이었다. 나는 꼬깃하게 쥐여 준 봉투를 주현이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가자, 주현아. 나도 갈게.”
“응? 가하 가? 안 가, 했잖아.”
“으응, 근데…….”
아, 그랬지. 나는 다시 꼬인 대답에 우물쭈물 하다가 대충 둘러대었다. 어쩐다…….
“그냥……. 가 보고 싶어서. 너랑, 너랑 가 본 적 없으니까. 주현이 너 네버랜드 가 봤어?”
“나랑? 아하. 음, 아니. 안 가 봤어. 계속 계속, 스웨덴 살았어. 나.”
주현이는 내 대답에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배시시 웃었다. 내가 같이 간다는 말에 좋은 모양이었다. 휴. 그리고 주현이 뒤로 있는 애들의 눈도 작은 기쁨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내가 가서가 아니라…….
“그렇구나. 이번에 같이 가 보면 되겠다.”
“응. 좋아. 가하랑 같이.”
주현이가 가서 그럴 것이다. 그것을 알리가 없는 주현이는 씩 웃으면서 나를 폭 안았다. 갑작스러운 그 반응에 나는 조금 부끄러워서 주현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원체 큰 체격에 힘이 센지라 떨어지지가 않았다.
“데이트다, 그렇지?”
“아니, 그런 거 아니라……이러면 안 돼. 사람 많잖아…….”
“흐……흐흑, 으아앙…….”
표를 주던 지석이는 주현이의 무시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나는 절로 손이 나갔지만 주현이가 꼭 껴안은 손을 풀어 주지 않았다. 뻗은 내 손은 그 애에게 닿지 못했다. 그 애의 주변에 있던 다른 반 애들의 수많은 손들이 대신 그 애를 위로했다. 나는 갈 곳을 잃은 손을 내리며 주현이의 등을 대신 토닥였다.
“주현아…….”
왜 그래. 쟤는 너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나 기분 좋아. 가하랑, 놀이동산. 흐흐.”
“……나도.”
쟤는 나보다 에스퍼 등급도 높고, 공부도 잘하니까 너한테 어른들이 말하는, ‘더 좋은 친구’가 될 텐데. 나는 그런 생각들을 애써 누르며 주현이의 고집을 다독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게 다였다. 꺾이지 않는 고집을 살살 꾀어서 그나마 반 애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 사실 그게 주현이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잘난 거 하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이 좋다고 하는 애한테 뭐라 하기도 좀 그래서 나는 입을 무겁게 닫았다. 의도치 않은 순수로 만들어진 한 공간에서 우는 애와 웃는 애가 함께 있는 광경에 피부가 따갑게 느껴졌다. 그건 내가 주현이를 알아서, 애들의 생각을 알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혹여나 반 애들과 눈을 마주칠까, 나를 안은 주현이의 어깨 맡에 눈을 묻었다.
네버랜드 이야기로 방방 떠올랐던 교실의 분위기는 한층 가라앉았다. 그 경직된 분위기는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정리가 되었다. 나는 다음 수업 시작 전에 주현이 품에서 풀려날 수 있었고, 그제야 지석이가 준 표를 책가방에 안쪽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 표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찾아보지 않았다.
나를 위하지 않은 표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과 함께, 나와 주현이는 교실을 나섰다. 손을 꼭 맞잡은 채로. 내가 어디 도망 갈 것도 아닌데, 주현이는 학교 끝나거나 쉬는 시간에 어디를 가든지 꼭, 내 손에 깍지를 끼고 갔다. 그 손 마디마디 사이로 주현이 특유의 잔잔한 가이딩이 들어오는 것은 덤이었다. 전에 경험했던 것처럼 나를 무너뜨리는 힘은 아니었다.
‘뭔가 따뜻하고, 포근하다고 할까…….’
나도 사내자식인지라 그게 못내 낯간지러워, 주현이가 손을 잡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피하려 노력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포기해서 이러고 간다. 포기가 빠를수록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살면서 내가 깨우친 진리 중에 하나였다.
우리가 배웅해 주는 선생님을 따라서 교문으로 가자 늘 그렇듯이, 애들을 마중하러 온 차들이 도로 옆으로 줄줄이 서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늘 맨 앞에 주차되어 있던 주현이네 집 차를 찾았다. 맨날 차를 샤워시키는 기사 아저씨 덕분에 까맣게 윤이 나고, 은색의 동상이 차 얼굴에 세워져 있는. 그런…….
“……안 보이네.”
어디 갔지? 나는 특이한 그 차를 찾으려고 주변으로 고개를 연신 저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주현이도 내 고개 방향을 따라서 같이 두리번거리더니 맞장구를 쳤다.
“응. 가하. 오늘, 차 안 보여.”
“차가 밀리나 봐. 곧 오시겠지.”
드물지만, 가끔 강을 건너오는 길이 막혀서 조금씩 늦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주현이와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을 때우려고 서로 반대 방향에서 서서 교문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만 밟으라는 규칙을 정한 다음, 폴짝폴짝 뜀박질을 했다. 그런 우리들 옆으로 각기 다른 학년 애들은 기다리던 차를 타고 떠나기가 바빴다. 개중에는 학원차가 분명해 보이는 노란 봉고차를 타는 애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림자가 조금 더 짙어져서 빛이 드리워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때. 떠나는 애들을 가만히 눈으로 세고 있는 와중에 교문 담벼락 맡에 삼삼오오 몰려 있는 애들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주현이의 손을 잡은 채로 뭐가 있나 구경을 하러 갔다.
“뭐야, 뭐야. 가하?”
“몰라. 보러 가 보자. 궁금해.”
거기에는 허름한 골판지 박스 안에 작은 동물들이 삑삑, 헥헥 소리를 내며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가아끔, 아주 가아끔 있는 광경에 나는 반가움을 느꼈다. 예전의 학교 앞에서는 이런 갓난 동물들을 파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늘 있었는데, 담벼락이 높은 이놈의 학교는 그런 것을 유해하다는 명목으로 단속하겠다며 가정통신문을 보내기 바빴다. 역시 어른들은, 재미를 모르는 게 분명하다. 나는 혹시라도 이 아저씨가 저어기 있는 경비 아저씨에게 들킬까, 키 큰 주현이를 1, 2학년으로 보이는 애들 뒤에다 세워서 가림막으로 두었다. 혹시라도 움직일까 나도 옆에 서서 손을 잡았고.
“……왜, 가하?”
“……아니.”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주현이는 그저 그런 나를 보고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 미소에 나는 양심이 조금 찔렸다. 그렇지만,
“와아. 귀여워.”
귀여운 동물들이 쫓겨 가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이, 얘는 무슨 종이에요?”
어떤 애의 질문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는 해병대 모자를 고쳐 쓰며 대충 대답했다.
“얘? 백구.”
“진돗개인가 봐.”
한 애는 이미 산 것인지 손에 노란 햇병아리 하나를 들고서 눈을 빛냈다.
“아저씨 이 병아리 키우면 진짜로 닭 돼요?”
“그으럼. 닭 되면 알도 낳고, 울기도 해.”
“그럼 저도 하나 살래요.”
“저두요.”
그 말에 애들이 순식간에 하나둘 씩 병아리를 사갔다. 그렇지만 애들이 선뜻 강아지나 고양이를 사 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강아지도 귀여운데. 사가지 그래.”
아저씨의 은근한 권유에도 애들은 난색을 표했다.
“집에 이미 강아지 있어요.”
“우리 집은 엄마가 털 알레르기 있어요.”
“아빠가 고양이는 싫어해요.”
“할머니가 잡종은 기르지 말랬어요. 버릇없대요.”
그렇게 새침하게 말하고는 다들 마중 나온 차에 냉큼 타서 가 버리고 말았다. 아저씨가 가져온 박스에 남은 동물은, 다 찢어진 박스에 기대어서 신나게 헥헥대는 꼬질꼬질한 강아지 한 마리와 둥글게 몸을 말고 잠을 자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그 모습에 나는 다가가서 다리를 접고 앉아서 신나게 구경했다. 구경하던 대부분의 애들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활발한 이 강아지의 관심은 다 내가 독차지 할 수 있었다. 이 어린 동물은 무척 귀엽기 짝이 없었다. 만약 엄마가 강아지를 기르게 해 주었다면, 원래 집의 정원이 조금 멀쩡한 편이라면 나는 이 강아지를 사서 갔을 정도로. 그런 내 옆에 다가와서 같이 다리를 접고 앉은 주현이가 나를 보다가 말했다.
“가하.”
“응?”
나는 손을 조심스레 박스에 넣어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아저씨는 허허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얘가, 얘가. 주인 알아본다. 귀엽지? 하나 데려가.”
“강아지 좋아해?”
“응.”
털은 보들보들하고, 헥헥대는 숨에 뿜어져 나오는 숨은 손을 축축하게 적셨다. 꼬질꼬질한 몰골 덕분인지 더러운 박스 때문인지 풍겨 오는 냄새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 씻으면 괜찮으니까.
“……강아지.”
내 대답에 주현이는 흐음. 하고 말하면서 물끄러미 박스 안에 있던 고양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결벽증이 있기 때문에 주현이는 만지지 않을 것이다. 아, 근데 이미 나 만졌는데. 닦아야겠다. 나는 그 생각에 강아지에게서 손을 떼고, 손을 닦기 위해 가정부 누나가 챙겨 준 물티슈를 책가방에서 꺼내려는데 우리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도련님들, 죄송합니다. 반포대교 길이 막혀서…… 어서 가시죠. 차 대기해 두었습니다.”
박 비서 아저씨였다. 나는 그 목소리에 접었던 다리를 펴서 일어났고, 박스 안에서 내 손길을 받던 강아지가 낑낑대며 내 손길을 쫓다가 박스 뒤로 벌렁 넘어졌다. 주현이도 나를 따라서 일어났다. 그러자 해병대 모자를 쓴 아저씨가 우리에게 큰 소리를 쳤다.
“어이고. 사람 손 다 태우고 그냥 갈라고?”
“예?”
“어이, 거기가 보호자 같은데, 이미 애들이 만졌으니 사가쇼. 이대로는 못 파니까. 이 녀석들이 충성심이 강해서 한 번 만진 사람 아니면 못 판다고.”
박 비서 아저씨는 나와 주현이를 번갈아 보다가, 결벽증을 가진 주현이 보다는 내가 좀 더 의심스러운지 나를 쳐다보았다.
“도련님, 만지셨어요?”
“…….”
나는 그 눈빛에 찔려서 고개를 끄덕였고, 박 비서 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서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이거면 됩니까?”
“아유. 고맙습니다. 순한 녀석이니까 애들하고 키우면 정서에 아주! 좋을 겁니다.”
“아뇨. 안 가져갑니다. 그냥 도로 가져가세요.”
“아니, 거 이왕 돈 냈으니까 가져가서 이웃 주쇼.”
박 비서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자 강아지 주인아저씨는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계속 낑낑대는 강아지를 바라보다가 등 뒤에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데려가고 싶지만, 주현이가 싫어할 터였다. 박 비서 아저씨도 그걸 알기에 저렇게 말하는 거고. 그때 주현이의 입이 열렸다.
“박 비서.”
“괜찮다니까요. 네? 도련님.”
“가져가.”
“……예?”
그 단순한 말에 나도, 박 비서 아저씨도 조금 놀랐다. 정말? 나는 등 뒤로 맞잡은 손에 살짝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주현이는 로봇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져가.”
“도련님.”
박 비서 아저씨의 부름에 주현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 나 손 아직 안 씻었는데…….
“————. ————.”
게다가 땀도 조금 배어 있어서. 나는 손을 빼려고 했지만 주현이는 차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걸어가는 그 애의 입에서 나온 건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빠른 영어였고, 나는 주현이 손에 이끌려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박 비서 아저씨가 그나마 깨끗한 상자 하나를 잡아서 낑낑대는 남은 그 강아지와 고양이를 담고 있었다.
“주현아.”
“응?”
“……비서 아저씨한테 뭐라고 그랬어?”
주현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뭐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이.
“강아지. 우리 집 가자고.”
“……너 괜찮아?”
너, 더러운 거 싫어하잖아. 나는 그 말을 할까 말까 하는데, 주현이가 뒷좌석 문을 벌컥, 하고 열면서 내게 눈짓했다. 들어가.
“가하가 좋아해. 그렇지?”
“……너 안 좋아하잖아.”
“괜찮아.”
“……뭐가?”
뭐가 괜찮은 건데? 평소에 지저분한 게 보이면 질색하는 것을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나? 가정부 누나의 말대로, 내가 곁에 없을 때 영어로 뭐라 하는 것을 몇 번 들어서 그런가 주현이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내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제법 톤이 빠르고 높은 걸로 보아 좋지 않다는 것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내가 뒷좌석 안쪽으로 들어가자 주현이도 같이 들어와서 차 문을 닫고서 바로 차 뒷좌석의 창문을 내렸다.
“나는, 이해심 넓어. 좋은 남자야.”
“…….”
그 말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정말 고민이 들었다. 고마워? 잘했어? 아니면, 너 진짜 괜찮은 거야? 내 말을 대신 해 준 것은 창문 너머로 허리를 숙인 채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박 비서 아저씨였다.
“도련님, 어디다……. 둘까요? 트렁크에 넣을까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은 박 비서 아저씨는 그 해병대 모자를 쓴 아저씨가 팔던 강아지와 고양이가 들어 있는 박스를 품에 안고 있었다. 트렁크? 그 말에 나는 손을 뻗었다.
“그, 제 책가방에 넣을게요. 주현이가 만지지 않게 제가 잡고 있을게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박 비서 아저씨는 주현이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내게 줄까 말까 눈썹을 들썩거렸다. 그러자 주현이는 안전벨트를 탁 매면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정말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 했다.
“괜찮아. 가하 해.”
“아……. 괜찮아?”
“나 괜찮아. 가하 해. 가하, 강아지 좋아해.”
“……고마워.”
“응.”
해맑게 웃는 표정은 티가 없어서, 나는 우선 의심 없이 주현이의 말을 받아들였다. 주현이가 채워 준 그 어느 것 보다도, 이런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작은 생물이 내가 받은 것 중에 가장 좋았다. 물론 숨길 수 없는 작은 불안이 튀어나와, 집에 도착해서 주현이에게 물어보았다.
“고양이는 왜 데려왔어? 너 고양이 좋아해?”
나랑 가정부 누나는 정원이 보이는 마루에 앉아서 깨끗하게 씻긴 이 두 녀석들을 보송한 수건에 살살 문대었다. 활발한 성격의 강아지는 내가 쥐고 있는 수건을 어설프게 으르렁 으르렁대며 물었다 놓았다 장난을 쳤다. 그게 왠지 주현이를 닮았다고 나는 생각하며 전전날 밤에 즈음 자는 동안에 주현이에게 베어 물린 팔뚝의 잇자국을 손끝으로 쓸었다.
“고양이? 아아…… 아니.”
카펫 바닥에 누워 있는 주현이는 일기를 쓰는지 영어로 슥슥 쓰다가 나에게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어쩐지 그 눈이 내가 만지는 팔뚝을 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 애의 대답은 늘 그렇듯이 예상을 빗나가는 말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싫은 건 죽도록 싫어하는 이 애가 지금 뭐라 한 거지?
“……근데 왜 가져왔어?”
“왜? 혼자야, 고양이.”
“…….”
“이거.”
그렇네. 허를 찌르는 주현이의 대답에 나는 까만 윤기가 흐르는 고양이를 들어서 보았다. 아마 우리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나처럼, 되었을까.’
“…….”
나처럼,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혹여나 간다고 해도…….
“그러게. 다행이다…….”
그곳이 과연 좋은 곳일지는 모를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있던 학교가, 서초동의 집이 그러하듯. 어딘가 이 작은 동물들에게서 작은 동질감을 느끼며 나는 고양이를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고양이는 아직 새끼라서 그런가 주현이처럼 눈이 파랬다.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주현이는 쓰고 있던 노란 연필 끝의 분홍 지우개 부분으로 내 머리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가하 닮았어. 까만 머리. 그렇지?”
“……너 닮은 거 같은데.”
이거 봐. 나는 내 손을 어린 이빨로 앙앙 물어대는 고양이를 두 손으로 들어서 일기를 쓰는 주현이의 손등을 훅훅 위협했다. 너처럼 물어 버리잖아. 그 생각이 미친 나는 늘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고 생각한 항의를 드디어 꺼내들었다.
“나 잘 때마다 무는 거 너지.”
“응?”
주현의 얼굴이 은근히 장난기를 머금은 채로, 천장으로 보란 듯이 그 큰 눈을 굴렸다. 아닌 척 하는 거 봐! 내가 속을 줄 알아?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째려보자, 주현이가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야, 가하 내가 말했지. 이 집에 유령 살아. 뱀파이어 알아? 밤에 돌아다니다가, 예쁜 에스퍼 보면 앙.”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이따가 잘 때 목 잘 간수해! 내가 너 자자마자 물어 버릴 거니까!”
두 손을 내밀어서 앙, 하고 흉내를 내는 주현이의 모습은 얄밉기만 했다. 터진 내 분통에 뭐가 웃긴지 주현이가 씩 웃으며 내 볼에 슥 다가왔다. 너 아프다고 울어도 나 봐 주지 않고 계속 물어 버릴 거야, 진짜로!
“지금 해도 되는데. 가하.”
쪽, 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떨어지면서 즐거운 목소리가 뜨거운 내 얼굴을 울렸다. 그 애는 진심이라는 듯, 고라니 마냥 긴 목에 꼭꼭 채운 하늘빛 셔츠의 목 단추를 두어 개 풀었다. 그 깃 사이로 언뜻 보이는 하얀 살결이 즐거이 웃었다.
“너어…….”
내가 인사, 안 된다고 했지…… 내 얼굴이 터질 거 같은 것을 겨우겨우 부여잡고 있는데 주현이는 겁을 먹은 얼굴을 만들었다.
“이크, 얘들아 너네 엄마 화났어. 우리 도망가자.”
그러고 벌떡 일어나서 옆구리에 강아지랑 고양이를 각각 껴안고, 복도를 쿵쾅쿵쾅 울리며 도망갔다. 너!
“송주현! 너 거기 서!”
내가 마루 복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주현이를 쫓아가는 동안 주현이는 우리가 데려온 동물을 얼굴 앞으로 들어서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이 속삭였다.
“안 돼. 아빠는 엄마 못 이겨. 그렇지?”
“애옹.”
“왕!”
새로운 식구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영어를 못했고 주현이는 한국어를 잘 못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를 우리로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일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식구를 맞이했다고, 나는 그날 일기에 썼다.
“밥 진짜 많이 먹는다.”
“응.”
나랑 주현이는 학교 앞에서 사온 강아지와 고양이가 정원 한 쪽에 둔 사료 그릇을 윤이 나도록 싹싹 해치우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았다.
아쉬운 듯 비어 버린 그릇을 계속 핥던 강아지는 나한테 왕, 하고 달려들었다. 아직은 작은 강아지인지라 내 품 안에 쏙 안기는 것에 불과했지만.
“으아, 하지 마……. 아.”
강아지는 사료 냄새를 잔뜩 풍기는 입과 혀로 내 얼굴에 대고 방금 싹 해치운 밥그릇마냥 핥았다. 사료 특유의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에 나는 강아지를 꼭 붙잡고 그 폭발적인 애정을 피하기 바빴다. 으으.
“강아지 가하 좋아해. 아주 많이. 그렇지?”
내 옆에 있던 주현이에게는 까만 고양이가 그 애의 구부린 무릎 위로 톡 하고 올라앉아서 앞발을 분홍색 혀로 싹싹 핥기 바빴다. 어딘가 새침한 고양이의 분위기와 그 고양이를 쓰다듬는 주현이의 작은 미소 띤 얼굴이 언뜻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말도 듣지 않고, 잡고 있는 손마저 너른 혀로 핥으며, 위협적이지 않은 유치로 앙앙 물어대는 강아지를 내 얼굴과 마주하고서 엄하게 꾸중했다.
“그만하랬지.”
“왕!”
아이씨…… 알아듣는 건지 마는지. 반항적으로 대꾸를 하는 강아지의 모습에 괜히 빈정이 상했다. 주먹을 쥐어서 하얀 털의 보송한 이마에 꿀밤을 먹여 주려다가 까만 눈으로 천진하게 헥헥대며 쳐다보는 강아지의 모습에 말았다. 대신에 강아지를 정원 바닥에 놓아주고 나는 꿀밤을 쥔 손을 풀어서 머리를 슬슬 쓸어 주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은지 강아지가 배를 덜렁 드러내며 끙끙대었다. 더 해 달라는 듯이. 못 말려. 나는 불만을 담은 눈빛으로 강아지를 쏘아보면서도 이기지 못하고 그 통통한 핑크빛 배를 살살 긁어 주었다.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정신이 사나운거야…….”
다른 집 강아지들 보면 목줄에 매달아서 얌전하기만 하던데. 우리가 데려온 강아지는 짧은 꼬리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으으. 나는 저녁밥을 든든히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허기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우리를 보고 주현이가 고양이의 턱을 나른하게 긁어 주면서 대답했다.
“강아지는 주인 닮아 가. 알아, 가하?”
“……내가 보기엔 얘는 너 닮았거든.”
설마 나를 닮았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뭐하다가 안겨 오고 매달려 오고 떼 쓸 때 바닥 굴러다니는 게 누군데! 나는 모른 척 하는 주현이를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의 눈빛을 보냈다. 옆에서 가만 보면 주현이는 정말 ‘개’ 같다.
“하하, 그래? 나 강아지야?”
“……말을 말자.”
주현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나는 바보같이 깜빡했다. 저 반응을 보니 ‘개’같다는 의미를 모르는 게 분명해. 에잇. 답답해진 나는 강아지의 배에서 손을 떼고 앞으로 펼쳐진 정원을 냅다 뛰었다. 그러자 짧은 다리 길이의 강아지가 분홍 혀를 빼어들고 신나게 나를 쫓았다. 나는 강아지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뛰었고, 주현이의 웃음소리가 조금 더 커지는 것을 어질어질한 시야 속에서도 들었다.
“아하, 하아, 힘들다.”
“왕!”
“……넌 지치지도 않아?”
“왕왕!”
나는 강아지와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어들도록 뛰어 놀고 나서야 지쳐서 고르게 손질된 잔디밭에 덜렁 누웠다. 지친 기색이라고는 없는 강아지가 다가와서 내 목을 파고들며 애교를 부렸다. 촉촉한 까만 코가 내 턱밑을 문지르는 기분은 제법 간지러웠다. 이러는 건 딱, 주현이다. 밤마다 잘 때면 벽이 무섭다는 이유로 나를 곰돌이 인형마냥 바짝 안고 자는 주현이와 똑 닮았다.
그걸 떠올리는 마당에 주현이가 노을 지는 보랏빛 하늘을 등지고 고양이를 품에 매달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워 있는 내 시야에서 바삭바삭하고 밟히는 잔디의 특유의 꺾이는 소리와 함께 주현이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둥근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훑으면서 누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하, 신났어.”
“예전부터 키우고 싶긴 했거든. 이렇게 키울 줄은 몰랐지만……아, 힘들다.”
내가 지쳐서 하늘을 바라보며 후, 한숨을 쉬자 주현이가 품에 안고 있던 고양이를 제 얼굴 높이로 올려서 가는 가성을 내었다.
“그래? 가하, 강아지 키우고 싶었어?”
“……뭐해.”
무슨, 유치원 때 보는 인형극도 아니고. 나는 유치한 주현이의 연극에 다시 정원에 벌렁 누워 버렸다. 주현이는 꿋꿋이 고양이를 자기 얼굴 앞에 두고 내게 몸을 기울였다.
“강아지 하나 더 키워.”
“……너 강아지 더 키우고 싶어?”
이게 무슨 소리람. 나는 희한한 소리에 누운 채로 주현이의 얼굴을 맡은 고양이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삭삭 긁어 주었다. 그러자 고양이가 기분이 좋은지 기다란 하얀 수염이 씰룩 씰룩거렸다.
“나도, 강아지라고 했잖아. 방금.”
“…….”
“나도 주워 가. 가하 주인님.”
주현이는 이렇게 진지할 때가 있어서 농담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저번에 비행기 주겠다는 말처럼. 나는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주현이가 고양이를 정원의 풀밭에 내려놓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었다.
“나, 말 잘 들어. 손, 하면 이렇게 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주현이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푸하. 나는 그 진지한 어필에 웃음이 터졌다. 주현이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진정, 쉴 새 없이 흔드는 모습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으래?”
“정말.”
“그거가지고 모르겠는 걸…… 또 잘하는 거 없어?”
“잘하는 거? 으음…….”
내가 어디 심사위원처럼 거만하게 입 꼬리를 내리고 팔짱을 끼자 주현이는 웃음을 머금은 채로 고민하는 얼굴을 했다. 내 팔 밑으로 풀밭을 총총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바짝 서 있는 털 복숭이 꼬리가 살랑살랑 스쳐지나갔다.
“아하. 나 힘세. 아주, 아주.”
어린애가 얼마나 세면 세겠는가. 부풀린 자랑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보여 줄까?”
“왕! 왕왕!”
그래, 보여 줘. 나는 그렇게 말하려는데 강아지의 울음소리에 고개가 자연히 소리의 방향으로 돌아갔다. 거기에는 언제 올라갔는지, 고양이가 내 키의 다섯 배쯤 되는 전나무 가지에 자그만 몸집을 웅크린 채로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아니, 저기는 도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야. 나는 활발한 강아지와 달리 조용한 고양이가 은근히 만든 사고에 입이 벌어졌다. 박 비서 아저씨를 불러야하나? 내가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주현이가 내 손을 잡았다.
“가하.”
“어?”
너무 높은데, 저만한 사다리가 있을까? 나는 나무의 몸통을 손으로 툭툭 치면서 고양이의 시선을 끌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겁에 질렸는지 꼬리를 몸에 잔뜩 말은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현이가 내게 말했다.
“가하가, 올라가.”
“……내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초능력이 있지. 그것도 지금 상황에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능력. 마침 주현이도 옆에 있으니 가이딩을 받기만 하면 저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었다. 전에 밤하늘에 닿을 듯이 올라갔던 날처럼. 그 생각에 나는 주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현아, 나 가이딩…….”
좀 해 줘, 라는 말은 내 입에 맞춰 오는 입술에 막혔다. 등 뒤에 닿는 까슬한 전나무 몸통에 붙은 껍질이, 맞닿은 가슴팍에는 점점 빨라지는 고동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전처럼 생소함에 낯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맨날 같이 살을 부비며 잠이 들고, 밥을 먹고, 목욕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전보다는 조금……. 하지만 아찔한 감각은 여전해서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기 전에 주현이를 밀었다. 주현이는 가볍게 뽀뽀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순순히 밀려나갔다. 몇 번씩, 주현이의 예상치 못한 스킨십을 받으면서 알게 된 버릇. 나는 전나무 몸통에 등을 기대고 겨우 서 있는 채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얼굴이 제법 홧홧한 게, 분명 빨갛게 터져 버릴 게 분명했다.
“너, 너…….”
주현이는 마치, 맛있는 것을 먹은 사람, 아니 아까 강아지처럼, 투명하게 번들거리는 입술을 붉은 혀로 쓸었다.
내가 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현이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예민해, 가하.”
“……인사, 하지 않기로 했잖아…….”
“응? 가이딩이야. 가하.”
항의하는 나를 두고 주현이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만족스러운 듯, 배부른 듯, 내 턱을 잡고 가까이서 속삭였다. 가이딩이야.
“가이딩 전달 해. 몸 안에, 가하 힘 세져. 그렇지?”
그러면서 턱부터 시작해서 목, 가슴팍, 아랫배까지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여기.
“여기, 내가 들어가면.”
그 애는 정원의 풀로 지저분해진 내 셔츠의 단추사이로 손마디를 집어넣었다. 유난히 온도가 낮은 그 애의 손이 안 그래도 열이 오르는 내 아랫배에 닿자 반사적으로 흠칫대었다.
“가하, 날아다닐 수 있어.”
사람 같지 않은 그 온도가 오싹했다.
“영원히.”
나를 가두어 두는 그 파란 눈처럼, 그러했다. 아랫배를 지분대는 그 은근한 손길에 나는 몸을 억지로 뒤로 빼다가 전나무의 뿌리에 발이 걸려서 몸이 뒤로 넘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닥쳐올 아픔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는데, 그러한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
내가 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나처럼. 가이딩으로 인한 초능력이 바로 나오는 것에 나는 얼떨떨해서 공중에서 몸을 허우적대는데 머리 위에서 야옹, 하고 애달픈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고양이의 존재를 다시 떠올렸다. 그런 나에게 주현이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갔다 와, 가하. 고양이, 가하 필요해.”
“어……응…….”
나는 어색하게 말하고는 내 배 안쪽에서 흐르는, 그 애의 차갑고 뜨거운 힘을 느끼며 보통 사람이라면 올라가지 못할 높이의 나뭇가지에 발을 디뎠다. 나는 굵직한 나뭇가지에 말을 타듯이 앉아서, 겁에 질려서 벌벌 떠는 고양이를 조심조심해서 품안에 잡았다. 그러자 주현이가 저어기 밑에서 소리를 높였다.
“가하, 잡았어?”
“응.”
“그래. 보여 줄게.”
“뭐?”
나는 어딘가 맞지 않는 주현이의 대답에 다시 아래를 향해 소리쳤으나, 내 발목을 잘라 버릴 듯이 죄여드는 압박에 정신을 빼앗겼다. 이거…… 뭐야?
“아, 아파. 주, 주현아.”
내 발목을 조여 드는 것은, 붉은 빛의 띠였다. 그것은 마치 풍선에 매달린 끈처럼, 내 왼쪽 발목을 칭칭 감고 밑으로, 아래를 향해서 늘여 뜨려져 있었다. 나는 급하게 주현이를 부르며, 그 붉은 빛의 근원을 따라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조금만 참아. 가하.”
그 붉은 빛의 끈은 마치 풍선을 놓치기 싫은 아이처럼 주현이의 손에 칭칭 묶여 있었다.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입을 벙긋거리는데, 주현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몸이 아래로 훅, 떨어지는 느낌이 나를 덮쳤다.
‘나, 힘 안 썼는데…….’
나는 예고 없는 낙하로 인한 공포감으로 눈을 질끈 감고, 품안에 있는 고양이에게 얼굴을 묻었다. 옷자락이 퍼득퍼득하고 피부를 때리다가, 급격하게 멎고, 무언가가 나를 툭, 받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하나씩 떴고, 점차 올라가는 시선에는 하얀 그 애의 미소가 들어왔다.
“무서웠구나, 가하.”
“…….”
무서웠다. 아주, 아니. 이건 단순히 무서운 게 아니라…….
“나, 힘세지?”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였다.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를 두고 주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왜 그래? 나 생각 많이 했어.”
“…….”
“저번에, 가하가 날아서, 나를 떠나 버릴 거 같아서.”
“……너.”
“슬펐어. 아주 많이. 왜냐하면, 난 가하 가이드니까. 우린 같이 있어야 해. 늘.”
그 애는 그날을 떠올리는 듯,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활짝 얼굴을 피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내 발목을 단단히 옭아맨 붉은 빛의 끈을 보며 나를 꼭 껴안았다.
“이러면, 괜찮아. 난 힘세니까.”
안긴 품에 닿은 코끝에는 그 애 특유의 상큼하기 짝이 없는 레몬 향의 바디 워시 냄새가 풍겼다.
“좋아해, 가하.”
“……응.”
나도 주현이를 좋아하지만, 이런 식의 줄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건, 어린애가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전부터 살짝 느꼈던 위화감이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우리를 향해 멀리서 가정부 누나가 1층의 복도의 덧문을 열고 말했다.
“도련님들, 간식 드세요.”
여느 날과 같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저녁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