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61)

* * *

“나 젓가락질 잘 해.”

밥 한술을 뜨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불고기 한 점을 얹어 주는 주현이에게 나는 밥을 입안으로 넣으면서 말했다. 같이 씹히는 불고기가 육즙이 촉촉해서 그런가 간장소스 맛이 깊었다. 주현이가 막 나물 반찬을 집는 내 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니야. 가하. 아직도 엑스자야. 그렇지?”

“…….”

“젓가락질, 이게 맞아. 가하, 아직 애기야. 애기.”

주현이는 자신의 올바른 젓가락질을 내 눈앞에서 까딱까딱 보여 주다가 푸스스 웃으면서 큼큼, 하고 목을 정리했다. 웃느라 먹던 밥알이 목에 걸린 모양이었다. 흥. 쌤통이다. 나는 내심 불만이 섞인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네가 더 애기 같다 뭐…….

“치, 젓가락질로 어른 되는 게 어디 있어. 너 생일 언제야?”

“음? 내 생일? 내 생일…….”

주현이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내가 뜬 밥 위에 시금치를 얹어 주며 말했다. 앗, 시금치 싫은데…….

“12월 21일이야.”

드디어! 나는 드디어 주현이보다 앞서는 것을 발견한 기쁨에 싫어하는 시금치가 올려 진 밥을 전투적으로 입 안에 밀어 넣고 말했다. 참기름에 버무려진 무침은 그래도 조금 쌉싸름했다.

“내가 생일 훨씬 빨라! 4월 5일!”

“그렇구나. 가하 생일 4월 5일?”

“응. 내가 더 일찍 태어났으니까, 형이야. 형이라고 불러.”

나는 반 장난식으로 우쭐해하며 말하자 주현이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붉은 입술을 오므렸다. 형.

“그래, 가하 형. 많이 먹어. 어서 커야지.”

“……계속 크고 있어. 우리 아빠랑 엄마 크니까. 나도 곧 클 거야.”

“그래? 그래도 작아. 가하 형. 나보다 작아. 그렇지?”

치사하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읊는 주현이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크고 있지만 주현이의 한 뼘 더 큰 덩치를 따라 잡기는 아직도 한참 멀었던 탓이었다.

“나중에 너보다 더 클 거야.”

“정말? 모르겠어. 나는.”

태연하게 자기 밥을 숟가락으로 뜨는 주현이의 말에 나는 괜히 오기가 생겨서 외쳤다.

“그럼 내기 해!”

“내기? 무슨 내기?”

“더 키 큰 사람이 나중에 형 하기로 해.”

내 말에 주현이는 자신이 넘치는지 여유로운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나는 몸이 더 달았다.

“좋아.”

“……정말? 네가 작으면, 나한테 형, 해야 해.”

“하하, 가하.”

그 애는 내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침 햇살을 받아서 새하얗게 웃는 그 애의 웃음이 눈부셨다. 그 빛을 타고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도 그러했다.

“그럴 리가 없어.”

“……너 약속 한 거다.”

“응. 약속.”

내밀어진 내 새끼손가락에 그 애는 손을 걸고, 손바닥을 스치며 복사를 하고, 서로의 손바닥에 엄지로 꾹꾹 눌러서 도장도 찍었다. 그 여유 만만한 모습에 도리어 내가 조금 불안해졌다. 진짜 이러다가 내가 형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기대 돼. 가하, 내게 형, 주현이 형. 하는 거. 그렇지?”

……어떡하긴 어떡해, 이제부터 학교에서 나오는 우유 급식 화장실에 버리지 말고 잘 마시면, 되겠지? 나는 다시금 불타오르는 경쟁심에 씹고 있던 밥을 목구멍으로 꿀떡 삼키며 투덜대었다.

“……꼭 그런 사람들이 반대로 되더라.”

그런 우리에게 복도너머로 특유의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의 비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주현 도련님,”

그는 우리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복도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선 조곤조곤히 말을 꺼냈다. 나는 낯선 그 몸짓에 밥술을 더 뜨지 못하고 숟가락 끝을 입술로 물고 있었다. 혹여나 소리 하나라도 내면, 큰일 날 법한 분위기였다. 눈알만 굴려서 주현이를 보니, 주현이는 비서 아저씨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내 밥공기 위에 자꾸 오색의 반찬을 하나씩 놓아주고 있었다.

“어.”

“가하 도련님 어머니가 전화 주셨습니다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길에 괜스레 양말 안에 있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엄마가? 나는 엄마가 전화를 했다는 소식에 심장이 콩콩, 울림을 크게 늘어뜨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학교에 가는 월요일이니, 학교 끝나고 집에 가라고 전화 했을까. 나가서 전화를 받아야 하는 걸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현이는 비서 아저씨의 말에 황동 그릇에 담긴 백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으려다 말고 비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가하 엄마?”

“예. 가하 도련님이랑 전화 하고 싶으시다고…….”

“음.”

주현이는 생각하는 듯, 마는 듯, 햇살이 쏟아지는 정원을 향해 눈을 깜빡이다가 가만히 있는 내게 눈길을 곧장 돌렸다.

“가하.”

“어……. 어?”

“집에 갈래?”

“…….”

“아니면 여기 있을래?”

여기 있고 싶다 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나는 주현이의 묘한 질문에 쉬이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린 내게 그 질문의 의미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친구 집에서 놀다가 더 있고 싶다는 말에 엄마가 알겠노라 해 놓고 저녁에 나를 찾으러 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집에 가서 호되게 혼이 났지. 오늘도 그때와 같이 엄마가 거짓말을 잘 한다는 것을 몰랐더라면, 나는 그래. 하고 대답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엄마는 늘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겠다 하고 엄마가 나를 찾으러 와서 다용도실에서 또, 회초리를 맞고 꼬집힘을 당하는 것은 싫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주현이가 카펫 위에 깔린 방석에서 내 옆으로 엉덩이를 미끄러뜨렸다.

“엄마 싫지? 그렇지?”

“…….”

“싫으면 여기 있어. 괜찮아.”

그 애는 문제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했다.

“아니야. 나 괜찮아.”

다시 오면 되지. 우린 친구니까, 또 올 수 있겠지. 이게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도 만날 거고.

“……가하?”

그 애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순수한 모습에 나는 애써 웃으려고 노력해보였다.

“또 오면 되잖아. 이러다가 엄마가 화나면, 나 여기 못 올지도 몰라.”

“가하, 그런 일 없어. 괜찮아. 있어도.”

“……그래도. 엄마랑 전화하고 올게.”

“…….”

수저를 상에다 놓고 천천히 일어서는 나를 향해 주현이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그것을 나는 이해의 의미로 알고 덩달아 같이 일어난 비서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저, 엄마에게 전화하고 싶은데요…….”

“……알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면 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주현 도련님.”

비서 아저씨는 서 있는 나를 보다가, 내 등 뒤에 앉아 있을 주현이를 보다가를 반복하고 손짓을 하며 나를 복도로 데려갔다.

그가 데려간 현관 문 근처에는 하얀 레이스 커버를 늘어뜨린 조그만 탁상 위에 그때와 같은 다이얼 전화기가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전화기는 우리 집에 있는 것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인 게, 거실의 장식장에 놓인 하얀 도자기와 같은 매끈함을 풍겼다. 비서 아저씨는 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더니 앞에 번호 두어 개를 차르륵차르륵 돌리고 나서 내게 건넸다.

“이제 집 전화번호 누르시면 연결 됩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통화가 끝나시면 방으로 돌아가세요. 그럼 전 이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복도 너머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나는 끼익 소리가 옅어질 무렵, 내가 들고 있는 묵직한 전화기에 가벼운 인사가 깃들었다.

―여보세요?

“……엄마.”

내 대답에 엄마의 말투가 뭉근히 쏘아 들어왔다.

―가하, 너니? 지금 어디야? 아직도 삼라 그룹 애네 집이니? 학교는?

학교는 곧 갈 건데.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귀가 바늘로 찌르는 고성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고 엄마의 고성이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말을 하지 않는 나를 두고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지 말을 이어갔다.

―너는, 친구 집에 가서 잘 거면 말을 해야지! 말도 없이 그렇게 가 버리면, 엄마가, 어?

나는 엄마가 더 화를 키우기 전에 말을 잘라 버렸다. 그게 쑥쑥 자라서 내 귀를 더 파고들면 괜히 눈물이 나올 거 같아서 그랬다. 나는 엄마가 소리를 지르는 게 싫었다. 무서웠다. 그 성난 노성을 듣기만 해도 손에 진동이 덜덜거리며 번졌다. 오늘 집에 갈 거라고, 그러니까 그만 소리 좀 지르라고…….

“엄마, 나 오늘 데리러 오면 안 돼?”

―왜?

“…….”

엄마의 대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라니, 그야…….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두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갑자기 살살 웃는 목소리를 내었다.

―거기 있어. 박 비서님이 그러는데 그 애가 너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한다며?

누가, 주현이가, 나를? 나는 따가운 소리들 가운데 퍼지는 파동에 입을 열었다.

“……비서 아저씨가, 그랬어?”

―그래, 너는 그런 것도 몰랐어? 아유, 그런 거면 좀 말을 했어야지!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그때 열만 내고. 너 때문에 엄마만 바보 됐어.

잘 들어주지도 않잖아.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대꾸를 다시 삼키고 엄마에게 말했다.

“……나 집에 안 가?”

―아, 맞아. 어. 거기 있어. 뭐 하러 오니? 어차피 너, 맨날 집에서 박 씨 아줌마랑 TV만 보잖아. 기껏 비싸고 좋은 학교 보내 줬더니만 애들이랑 어울리지도 못하고, 어휴.

내심 바라던 말이지만 막상 쉽게 나오자 나는 머리가 달아올랐다. 마치 나를 낡은 냉장고와 선풍기처럼 쉽게 버리고 가는 말 같았다. 거기 있어. 이제 오지 마.

“나, 나 갈래. 집에 가고 싶어.”

―됐어 너 때문에 학부모 모임 갈 때마다 얼마나 쪽팔리는지! 나까지 왜 D 등급 엄마로 불려야 하니? 웃겨 정말. 지들이 뭐라고. 나보다 등급 낮으면서 사람 좋은 척은 다하고. 이래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니까!

“가고 싶은데…….”

―그리고 감사한 줄 알아 너. 걔가 지금 뭘 몰라서 너랑 친하게 지내는 거야. 그런 등급인 너랑 유일하게 어울려 주는 애니까 잘 해, 외국에서 온 게 다행이지, 생긴 게 달라서 한국 적응도 못하고 외로워 죽는다는데 네가 짝꿍이어서 잘 돌봐준다며?

“…….”

또다시 나오는 나의 등급 얘기에 나는 입이 다물렸다. 주현이가 외로워한다고? 나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그런 거 같지는 않……. 아. 전날 밤에 가족이 없어서 외롭다고 말하던 그 애가 생각나서 나는 말하려던 것을 말았다. 엄마는 수화기에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나마 너를 좋게 봐서 다행이야. 너 아빠가 요즘 삼라랑 거래하고 있으니까, 밉보이면 절대 안 돼.

도자기로 만들어진 수화기가 유난히 철근마냥 무거웠다. 엄마에게도 나는 그저 D등급의 못난 새였던가 보다. 나는 문득 내 머리를 이유 없이 쓸어 주던 박 씨 아줌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손길이 그리웠다.

―나중 가서 크면 네가 나한테 고맙다고 할 날이 올 거야.

그러고 전화가 뚝 끊겼다. 뚜, 뚜, 뚜…….

눈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손등으로 꾹꾹 눌러대며 나는 밥을 먹었던 방으로 발을 옮겼다. 정말 내가 이렇게 커서 엄마에게 고맙다고 할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엄마의 말이 자꾸 마음속에서 톡톡 터지는 것을 느꼈다. 뭐가 고마운 걸까. 내가 커서 뭐가 될 거라 믿기에 고마워 할 거라는 걸까. 뻐꾸기가 커서 뻐꾸기가 될 뿐인데. 그게 좋은 걸까.

복도를 지나 열린 방문 앞으로 가자 그 방 안에는 아까와 같이 똑같은 자리에 미동 없이 앉아 있는 주현이가 있었다. 그 애는 팔을 뒤로 하고 카펫에 손바닥을 디딘 채로 등을 비스듬히 하고 있다가 내가 오자마자 살짝 웃다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일어났다.

“가하? 왜? 왜 그래? 울어? 속상해?”

내 볼을 자기 두 손에 쥐고 이리저리 살피는 그 푸른 눈은 한 점의 거짓도 없었다. 투명하고, 말갛게 나를 본다. 나는 웃기게도 그때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 작은 감사함을 느꼈다.

“아니, 그냥.”

“그냥? 그냥, 안 울어. 엄마 혼내? 가하?”

“아냐, 그런 거 아냐…….”

내 대답에 주현이의 발간 볼이 씰룩 거렸다. 그 귀여운 움직임에 나는 무심코 손을 올려서 그 애의 보드라운 뺨을 톡, 톡, 건드렸다. 그냥.

“그냥……. 기뻐서 그래.”

“……기뻐서? 울어? 왜?”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 내 기분을 살펴 주는 단 한 사람. 나를 바라봐 주는…….

“엄마가, 너랑 같이 있으래.”

그 애.

그 애를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그거 하나는 이 학교에 넣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 애의 집 2층에 뻐꾸기가 아닌, 놀이 친구로 자리를 잡았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살게 된 이 2층의 방이 살던 집 보다 못하냐,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좋은 편에 가까웠다. 주현이는 내가 있기로 한 날부터 비서 아저씨와 가정부 누나에게 얘기해서 온갖 것들을 사 들여 내 방에 채워 주었으니까. 사실 내 방이라고 하기도 좀 웃기지만, 아무튼 지금은 내가 둥지를 틀었으니, 나는 내 방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메이커의 운동화, 옷, 시계, 책, 컴퓨터, 게임기……. 하도 많이 채운 탓에 택을 제거하지 못한 새것도 제법 있었다. 어떤 신발은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제품이라고도 했다. 그 모든 게, 그 애의 말 한마디면 내 집의 방보다 큰 방이 쓸쓸함을 가둘 새도 없이 채워졌다. 부담스러워하는 나를 두고 그 애는 내가 받지 않겠다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하면 복도 마룻바닥을 청소라도 할 기세로 땡깡을 부리며 굴러다녔다. 결국 나는 피곤해지는 상황을 피해서 말없이 받았다.

새 것.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은 것.

그 애는 그러한 것을 좋아했다. 결벽증 가운데에서도 그런 점을 신경 쓰는 편이라고 가정부 누나가 말했다. 반찬도 밥도 매끼 남은 것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가야하고, 옷도 조금이라도 먼지가 묻거나 얼룩이 지면 버리고, 눈보다 하얗고 깨끗해도 가끔은 버리라고 신경질을 부린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 앞에서는 그러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가정부 누나가 낮에 주현이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같이 도란도란 대화를 하다가 나오는 이야기에 괴리를 느꼈다. 정말로, 내 앞에서는 화내는 모습이라든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떼를 쓰고, 귀엽게만 보이는 투정을 부리고…….

그렇지만 어른들은 늘 그렇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지 반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 끄덕거리며 같이 빳빳하게 마른 세탁물을 개어서 접곤 했다. 내 집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긴 하지만, 그냥. 여기는 내 집이 아니니까.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그렇게 한 주, 다음 주를 보냈을까. 나는 그동안 주현이와 같이 차에 타서 같이 내리고, 같이 같은 집에 가는 것을 반복했다. 더 이상 나를 태워 주는 아빠와 데리러오는 엄마 그리고 집에서 반겨 주는 박 씨 아줌마는 없었다.

그런 일상은 사라지고 주현이로 덧씌워져 버렸다.

처음에는 그게 좋았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전의 일상이 멀고, 아주 아득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런 날에 전화를 해 봤자 돌아오는 것들은 속살거리는 부탁밖에는 없었다.

「그 애 아빠는 봤니? 말 좀 해 달라고 해.」

나는 의미도 모를 부탁들을 늘어놓는 게 피곤해서 집에 전화를 걸지 않은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마지막으로 한 전화에서 엄마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아빠랑 삼라랑 한 계약이 잘 됐어! 네가 말 한 거니? 아니라고? 그래? ……박 씨 아줌마? 아직 집에서 일하지. 엄마 바쁜 사람이야.」

그 애와 함께하는 날들의 반복 속에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2학기를 맞아 가정통신문을 나눠 주었다.

“여러분도 이제 3학년이 되었으니까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될 거예요. 다들 하고 싶은 동아리 적어서 이번 주까지 내도록 해요.”

가정 통신문에는 ‘벼가 익어 가는 햇살과 높고 청명한 하늘……’로 시작하는 상투적이고 지루한 서두와 함께 격주 토요일마다 하는 동아리 활동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꽃꽂이, 자수, 오케스트라, 영어 토론, 독서, 로봇 만들기, 도예, 공예, 미술, 컴퓨터, 국악, 합창…… 이 작은 학교에 무슨 활동이 이렇게 많은지. 나는 뒷장까지 빼곡하게 적힌 회색 갱지를 보다가 대충 접어서 책가방 안에 넣었다. 나중에 생각해야지.

그렇게 까맣게 잊고 주현이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은 후, 같이 초저녁 가을 바람이 들어오는 복도 마루에 누워서 숙제를 하고 있는데, 책가방 앞주머니에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갱지가 보였다. 나는 그제야 그 종이를 집어 들어서 다시 살폈다. 그런 나를 두고 주현이가 비뚤빼뚤한 글씨로 하루 일기를 쓰다 말고 내게 말을 걸었다.

“뭐해, 가하?”

“동아리 목록 보고 있어. 아까 선생님이 준 거.”

“동……. 아리? 아. 클럽 액티비티.”

주현이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끄덕이며 일기를 마저 쓰고 마무리하며 그 일기를 덮었다.

“주현아, 너 동아리 정했어?”

“나? 응.”

정했다고? 나한테 말도 없이? 내게 말 한마디 없이 정했다는 주현이의 말을 듣고 의아해졌다.

“뭐 했어?”

“나? 오케스트라.”

주현이는 손을 올려서 마치 바이올린을 키듯이 팔을 부드럽게 슥, 슥 움직였다. 그 모습에 나는 의외의 모습을 느꼈다. 한 없이 애 같던 애가, 그렇게 폼을 잡으니까 제법 태가 났다. 이런 게 태생이 다르다는 걸까.

“……너 악기 연주 할 줄 알아?”

내 말에 뭐 그리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이 주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냉큼 대답했다.

“응!”

“뭐하는데?”

“나? 플루트. 가하, 알아? 플루트? 휘휘, 하면 소리나.”

그 애는 익숙하다는 듯이 어깨 높이로 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살짝 쥐듯이 곱아서 올렸다 말았다를 보여 주었다. 플루트? 가끔 윗 학년 애들이 토요일에 연습한다고 들고 다니던 그 은색의 반짝이는 악기? 나는 눈으로만 보던 그 악기를 주현이의 손에 상상하며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구나.”

“가하 해. 오케스트라. 나랑 연주해. 같이.”

“나 악기 할 줄 몰라.”

내 말에 주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하. 몰라? 악기?”

피아노 학원을 엄마가 보내 주긴 했지만 맨날 개인 실에 들어가서 띵동띵동 하고 건반가지고 대충 연습 시간을 때우다가, 학원 응접실에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실력이 늘어날 리가 있을까. 늘 제자리였다. 나는 과거의 나를 생각하니 왠지 부끄러워져서 주현이에게서 등을 보였다.

“……몰라. 난 오케스트라는 못하겠네.”

“안 돼, 안 돼. 나랑 해. 오케스트라. 응?”

주현이는 내 등 뒤로 뛰어 들다시피 해서 매달렸다. 나는 묵직한 주현이의 무게를 휘청거리면서도 견뎌내며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나 악기 못 해.”

진짜로. 나 못 한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해. 내 투정에 주현이가 아, 하고 좋은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나, 가하, 도와줘. 옆에서. 어때?”

“……네가 나 도와준다고? 플루트?”

“응. 나 잘해. 상도 있어. 봐봐.”

주현이는 살짝 의심이 서린 내 말에 옆에 앉아서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펴 보이더니, 벽장 어디에 쌓아져 있는 검은 표창장 커버 무더기에서 하나를 꺼내들었다. 펼쳐진 표창장은 온통 영어인지라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대충 알아듣는 척을 하면서 주현이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너 진짜 짱이다. 못 하는 게 없네.”

“……쨩? 내가 쨩이야? 쨩이 뭐야? 좋은 거지?”

주현이는 어설픈 발음과 내 엄지손가락을 따라하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의심스러울 때 나오는 얼굴이다. 하도 붙어 있다 보니 이제는 대충 주현이의 눈 언어를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무슨 눈으로 대화하는 고양이도 아니고……. 그래도 지금 보니까 눈매는 고양이 닮았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휘휘 끄덕였다. 아무튼 설명은 해 줘야지.

“어. 네가 최고라고. 탑, 탑이라고. 티오피.”

“탑? 아. 맞아. 나 1등이야. 예테보리 플루트 콩쿠르.”

무슨 보리? 무슨 쿠르? 나는 다시 생소한 말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으응, 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주현이가 눈을 다시 반짝반짝 빛내면서 졸라대었다.

“할거지, 오케스트라? 나랑?”

“……그래.”

그렇게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나는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악기를 하게 되었냐면,

“푸, 푸후…….”

“아니, 얘. 그렇게 세게 부는 거 아니야…….”

나는 숨이 차서 시뻘겋게 변했을 게 분명한 얼굴을 늘어뜨리면서 손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 나를 보고 플루트을 감독하는 보조 선생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애는 처음이라며 그녀는 나에게 삐죽거리는 눈빛을 보내다가 이내 동정의 눈길을 주면서 팔짱을 끼고 어깨에 두른 가디건 소매를 만지작대며 말했다.

“……얘, 다른 악기를 하는 건 어떻겠니?”

“……다른 악기요?”

“응. 아무래도 넌 플루트는 맞지 않는 거 같아서 그래. 지금 저기 애들 보이지?”

그녀는 내 옆에 와서 주현이와 플루트를 다루는 다른 학년 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쟤네는 이미 몇 년씩 한 애들이라서, 네가 못 따라 갈 거야.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어떠니?”

“……저 할 줄 아는 악기 없는데요.”

내 대답에 그녀는 양 눈썹을 찌그러뜨리며 호응했다. 쯧쯧. 마치 이 학교에 어디서 이런 애가 왔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 소리에 나는 더 작아지는 고동소리를 느꼈다. 예전에 있던 학교에는 피아노만 해도 제법 악기를 다룬다고들 했지만, 여기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트럭에 하프를 싣고 온 여자애도 있었고, 커다란 북을 가져오는 애도 있었다. 그녀는 내 힘 빠진 어깨를 탈탈 흔들며 말했다.

“내가 단장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올게. 너처럼 악기 처음 하는 친구들 있냐구.”

그렇게 그녀는 자리를 떠났고, 나는 저 건너 학교 안뜰에서 보면대를 펴 놓고 간드러지게 플루트 소리를 내놓는 주현이와 다른 학생들을 구경하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잘 하네.”

음악이고, 클래식이고 뭣도 모르는 나지만 주현이가 잘 한다는 것은 대충 알 거 같았다. 아까 선생님이 시범으로 보여 준 음을 곧게 내고, 귀에 거슬림 없이 청명한 소리를 내는 것이 분명히 잘하고도 남는 게 확실했다.

에잇, 괜히 들어왔어. 나는 안 그래도 바닥을 치는 자신감이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가는 비참함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날씨는 좋고,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플루트 소리는 감미로웠다.

한창 그렇게 합주를 하고 있었을까. 멍하니 연주를 마치고 플루트를 든 그 애의 팔이 내려갈 때 즈음, 보조 선생님이 살짝 흐트러진 단발머리를 귀 너머로 넘기면서 다가왔다.

“가하 학생, 이거 정리하고 저기 가자.”

“……저요?”

“으응, 단장 선생님이랑 얘기해 봤는데.”

내가 터벅터벅 가자 그녀는 나름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내 옆에 있던 플루트를 천으로 닦고, 케이스에 차곡차곡 넣어 주었다.

“첼로 반에 처음 하는 애들이 3명 있다고 그러시네. 너까지 오면 4명 되서 딱이야. 응?”

“첼로요?”

그 커다란 바이올린 같은 거?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악기 이름에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가는 동안 저쪽에 서있는 주현이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걸 발견한 주현이가 내게 소리쳤다.

“가하? 어디가?”

“나, 잠시만 갔다 올 게.”

“어디?”

그건 나도 몰라. 나는 멀어지는 주현이를 뒤로하고 그녀의 손을 잡고 음악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이올린이나 플루트와는 달리 큼직한 크기의 첼로가 삼삼오오 모여서 중후한 소리를 내다 말고 멈췄다. 어떤 애 곁에 앉아서 악보에 손가락을 대고 박자를 읽어 주던 남자 선생이 나와 보조 선생을 보고 일어섰다.

“투, 쓰리, 포……. 이 선생님? 웬일이세요?”

“아, 김 선생님. 이 애요. 첼로 할 거예요. 플루트는 싫대요.”

그녀는 내 어깨를 앞으로 밀면서 대충 설명했다. 싫다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는데. 없는 말을 하는 보조 선생은 억울한 내 눈길이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지 말을 이었다.

“여기 반에 첼로 처음 하는 애들 좀 있다면서요. 이 애도 처음이래요.”

“아, 네네. 그렇긴 해요……. 그럼 이 친구 오면 4명이니까 딱 좋긴 하겠네요. 그렇지 애들아? 깍두기 없겠네.”

“그렇죠? 잘됐다, 가하 학생. 그럼 이제부터 첼로 하는 거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음악실에 처음 보는 선생과 애들 사이에 두고 가 버렸다. 음악실 문이 탁 닫히고, 엉거주춤 플루트 케이스를 들고 있는 나에게 김 선생이라고 불린 사내가 다가와서 접이식 의자 하나를 펴 주었다.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지? 선생님은 첼로 담당 선생님이야. 김의훈. 5학년 3반 담임이고. 첼로 처음 해 본다고 그랬니?”

“네? 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살살 쓸어주었다.

“괜찮아. 3학년이지? 여기 3학년 친구도 처음 한다고 그랬어. 하다보면 금방금방 늘 거야. 여기 앉자.”

그가 의자를 손으로 두드리면서 나를 앉히고, 내 옆자리에 있는 애를 같은 학년이라며 가리켰다. 그 손끝을 따라서 눈을 돌리니, 거기에는 낯설지 않은 사람 하나가 있었다.

“……안녕.”

까만 눈을 깜빡이면서 작게 인사하는 3학년은 대호였다.

“어……. 안녕.”

그날 이후로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나를 피해 다니던, 대호.

조폭의 아들이라고 애들이 입 모아 말하던, 대호. 나는 그 애의 집에서 보았던 잘린 손가락이 생각나 그 애가 쥐고 있는 첼로의 쇠줄을 따라서 손가락을 살폈다. 어린 아이 특유의 하얗고 통통한 손가락은 어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우리의 어색한 인사가 끝나자 김 선생은 레슨을 봐 주고 있던 여자애에게 다가가 갔다.

“그럼, 다시 연습 좀 해 볼까?”

그날부터 나는 첼로 반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대호와 함께.

안녕.

잘 지냈어?

키가 좀 큰 거 같다.

나는 입 안에서 빙빙 맴도는 형태 없는 이야깃거리를 혓바닥 뒤에 꼭꼭 숨겨 두었다. 작년만 해도, 아니. 올해 초만 해도 우리는 눈이 마주치면 기쁘게 인사를 하던 사이였다. 하지만 그날, 대호가 나를 밀어내고, 내가 주현이의 집에 가기로 한 그날.

그날 이후로 나는 대호와 눈을 마주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

“…….”

마치 대호가 나를 투명 인간이나 된 듯이 피했기 때문이다. 내가 버릇처럼 손을 올려도 쌩하니 스쳐가는 그 냉랭함에 나는 때때로 부끄러워져서 입고 있던 감색 교복의 소매 단추를 만졌던 게 생각났다. 지금도, 교복 마이에 달린 금색 단추를 검지로 툭툭, 굴려대었다. 그래도, 그래도……. 주현이와 함께하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채웠다고 생각했는데. 살갗이 시려 오는 그 기억들을 대호와 마주치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 나는 어쩐지 이 애와 옆에 단 둘이 있는 게 조금, 아니 꽤 많이 어색했다.

“……가하.”

불편하고.

“……반가워.”

다시 떠오르는 기억들로 곤두선 신경이 온통 내 몸의 오른쪽에 몰려서 그 애의 반응을 한껏 예민하게 받았다. 지금, 나한테 인사……한 거지? 나는 상상도 못했던, 우리 말고는 누구도 듣지 못했을 조그만 인사를 건네는 대호에게 말문이 막힌 채로 바라보았다. 반갑다고? 나 같이 친구 없는 사람이 받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혼란스러움에 들고 있던 첼로 활의 털을 짧은 손톱으로 툭툭 긁어대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왜……. 왜 그랬어. 그렇지만, 그 작은 마주침에 나는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대호는, 내 친구였기 때문이다. 주현이가 오기 전까지, 늘 옆에 앉아 주고 말을 걸어 주던. 그런 좋은 친구. 나는 혀 밑에 숨겨 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잔뜩 긴장해서 다물린 입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내게 대호가 쓴 웃음을 지었다.

“……여전하구나.”

“……안녕.”

뒤늦게 나온 내 작은 인사는 대호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 인사를 들은 대호의 얼굴이 잠시 놀라더니 전에 늘 내게 웃어 주던 그 얼굴로 변했다. 그 모습에 나는 다시 시선을 보면대로 향했다. 까만 콩나물이 줄지어서 선 안에 가득 차 있는 게 내 눈을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미 나왔고, 다시 무시당할 것을 예상한 것과는 달리 예전처럼 웃는 모습에 나는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어쩌다 건넨 작은 인사에 대호가 지은 기쁜 표정은, 전에 나도 같이 대호를 피해 다니던 게 생각나서 마음에 가시가 콕콕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웃고 있을까. 나는 궁금함에 대호가 있는 쪽을 곁눈질했고, 대호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첼로의 활을 들어서 현을 켰다. 나직한 음이 우리 둘 옆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사이에 첼로를 담당하는 김 선생님은 다른 애들에게 가서 손바닥을 박자에 맞춰서 짝, 짝 치면서 레슨을 봐 주고 있었다.

“……첼로 좋아해?”

“아니.”

바로 나온 대답에 대호가 활로 현을 키는 것을 멈추고 나를 요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럼 왜 왔냐는 표정이었다. 그야……. 내가 멋쩍어서 머리를 긁자 대호는 다시 활을 고쳐 잡고 낮은 음을 천천히 내면서 말했다. 마치 제가 키는 첼로와 같이 나직나직한 목소리였다.

“난 네가 플루트 할 줄 알았어…… 송주현 따라서.”

첼로 현에 활의 끝 부분이 닿아서 여려지는 음이 날 때 작은 말이 작게 덧붙여졌다.

“……그냥. 여기가 더 잘 맞는 거 같아서.”

차마 플루트 소리를 내지 못해 쫓겨 왔다는 소리를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이 대충 얼버무렸다. 악보를 보고 있는 대호의 얼굴이 옅은 미소를 입 꼬리에 매달면서 대꾸했다.

“……그런 거 같다. 잘 어울려.”

잘 한다도 아니고 잘 어울린다니. 난생 처음 들어 보는 칭찬이었다. 그 말에 나는 대체 기뻐해야할지 말지를 몰라서 똑같이 말해 주었다.

“너도.”

“……나?”

“어. 너도 잘……. 어울리네.”

손가락 위치를 바꿔 가며 잔잔히 음을 내는 폼이 제법 해 본 솜씨를 풍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TV에 나오는 연주자 마냥 감색의 교복을 입어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첼로는 대호와 제법 잘 어울렸다. 내 말에 대호는 한창 소리를 내던 활을 멈추고 머쓱한 표정으로 조금 길어진 앞머리가 거슬리는지 연신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그 짧은 말 이후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게 만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반 안에서 주현이를 빼면 딱히 교류가 있는 애들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요즘 애들이 뭘 하고 노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주현이와의 이야기를 하기는 좀 그랬다. 그냥, 그 애는 우리와 같은 보통의 아이는 아니었기도 했고, 이미 대호랑 친한 사이였으니 내가 모르는 걸 더 잘 알 거 같았다. 물론 그때, 생일 파티 이후로 둘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 사이로 마치 백사장에서 멀쩡한 가리비 껍데기를 찾는 것처럼 헤매다가 종이 치는 소리가 나기까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귀에 익은 종소리에 김 선생님은 봐 주던 레슨을 마저 끝내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첼로 챙겨 가고 싶은 친구들은 챙겨 가도 돼요. 아니면 방과 후나 점심시간에 여기로 와서 연습해도 좋고. 숙제는 오늘 배운 거 연습해 오기.”

숙제라는 말에 학년을 막론하고 여기저기서 불평어린 신음이 쏟아졌다. 그러나 김 선생은 솜씨 좋게 애들을 타일렀다.

“자자, 그러지 말고. 다들 잘하면서 왜 못하는 척해? 응? 얼른 정리하자.”

그 말에 애들과 나는 첼로를 옆으로 뉘이고, 커다란 첼로 케이스를 열어서 하나씩 정리했다. 내가 다 정리를 끝냈을 무렵에는 음악실 안에 나와 대호, 그리고 김 선생님밖에 없었다. 나는 들고 있는 첼로를 가져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하는 와중에 김 선생님이 와서 말했다.

“가하 학생, 정리 다 끝났으면 가도 돼요.”

“아……. 네.”

“왜 그래요? 뭐 잊어버린 거 있어요? 참, 첼로 가져가서 연습해요.”

“……그.”

주현이의 집이라서 그런가, 내 집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가, 물건을 가져가도 되는지 마는지 나는 작은 고민에 빠졌다. 옆에서 어깨 한쪽에 첼로 케이스를 메고 있던 대호가 문득 내게 바짝 다가와서 내 첼로 케이스를 자기의 빈 어깨에 걸었다. 어? 내가 만류하기도 전에 대호는 음악실을 가로 질러나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키가 커서 그런지 보폭이 넓어 성큼성큼 빠르게 나가는지라 나는 김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고 황급히 따라 나갔다.

“아,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그래요. 다음에 봐요. 뛰지 말고.”

선생님의 당부와는 달리 나는 음악실을 나가서 저 멀리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대호에게 얼른 뛰어갔다. 고무로 된 실내화 바닥이 사람 없는 복도에 탕탕 울렸다. 뛰어가는 내 옆으로 ‘바르게 걷기’ 캠페인이 걸린 포스터가 스쳤다.

“대호, 야.”

“……어.”

빨리 걷던 대호는 내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나는 폐부를 송곳같이 찌르는 아픔을 억누르고 대호의 어께에서 첼로케이스를 당겼다.

“줘. 내가, 멜게.”

“……송주현네 차로 갖다 주면 되지?”

“어?”

어떻게 알지? 내게 대호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잡은 첼로를 무심하게 훅 잡아 당겼다.

“봤어. 늘 같이 가 길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대호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상하게 보일까? 그게, 엄마가 같이 있으래. 나도 주현이랑 있으면 좋긴 해서. 그냥……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 우리가 학교 건물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자 대호가 덤덤하게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는 채로 말했다.

“너 살쪘더라.”

“……뭐?”

살쪘다고? 이 황당한 말에 나는 제대로 된 대꾸도 못하고 대호를 쳐다보았고 대호는 내게 시선을 잠시 주다가 다시 첼로 케이스를 고쳐 메었다. 무거운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손을 가져다대자 대호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내가 들게. 떨어뜨리면 망가져.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그래.”

주현이네 집에서 너무 많이 먹었나? 맨날 주현이가 자꾸 반찬을 밥공기 위로 숟가락 위로 수북하게 얹어 줘서……. 나는 등 뒤로 내 허리께를 몰래 만져 보며 살을 가늠했다.

‘진짜로 조금, 쪘나?’

그러다가 문득, 잘 지낸다는 그 말이 내가 주현이네 집에서 사는 것을 알고 하는 말은 아닐지 괜히 불안감을 주었다. 나는 학교에서 말하는 애는 주현이 밖에 없고, 주현이도 딱히 다른 애들에게 시시콜콜한 말을 하는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알 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찝찝함이 들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내려가는 동안 대호는 내 비밀을 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엘리베이터가 층을 달리하는 동안 이상한 소리를 하나씩 툭툭 내뱉을 뿐이었다.

[3]

“너 첼로 못하더라. 처음 하는 거지?”

“…….”

아무래도 티가 나는 모양이었다.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어진 내게 대호는 바닥을 쳐다 보면서 말했다.

“잘 모르겠으면 나한테 물어봐. 김 선생님은 6학년 콩쿠르 나가는 거 때문에 신경 잘 안 쓰니까.”

“……그래.”

잘하는 애들에겐 신경이 쓰일 법도 했을 것이다. 김 선생님도 내게 올 때마다 활 자세를 지적했기 때문에 나는 대호의 말에 조금 부루퉁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못하는 거 나도 안다 뭐…….

[2]

“외국에서는 에스퍼 등급이 낮으면 가이드랑 각인이 잘 안 먹히기도 한대.”

“…….”

마치 나 들으라는. 아니 나를 향해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 학교에 D등급은 통틀어서 나 밖에 없었으니까. 조금 예전으로 돌아갔던 머리가 차갑게 식어 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너도……. 대호는 코가 간지러운지 콧등을 살짝 찡그렸다 말았다 하면서 말을 이었다. 욕하면 재채기 한다는 게 진짜인가 보다. 근데, 대호는 내 욕 안하나? 왜 난 재채기 안하지.

“그래서 그런 에스퍼랑 또 다른 에스퍼랑 사귀는 경우도 있대.”

“……나보고 다른 에스퍼랑 각인하라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주현이랑, 그런 높은 등급의 가이드랑 있는 게 나한테는 아까우니 비슷한 등급으로, 그나마 널린 수의 에스퍼를 찾아가란 소리인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호는 내 말에 무슨 큰 비밀이라도 들은 사람 마냥 고개를 크게 저었다.

“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들었다고. 어제 뉴스에서.”

“그래.”

어제 뉴스? 나도 봤는데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반 애들이 어려운 뉴스를 가져와서 으스대던 것을 생각하면, 대호는 그냥 잘난 척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또래는 작은 걸로 늘 확신을 받고 싶어 하니까. 내가 그렇듯이, 주현이가 그러하듯이. 대호라고 별 다른 건 아니었나 보다. 대호는 이윽고 작게 사래 들린 기침을 하다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띵 소리와 함께 지상에 도착했다.

[1]

“……유가하.”

“어?”

“힘든 거 있으면 말해.”

“……나?”

힘든 일? 언제는 살쪘다고, 잘 지내는 거 같다며.

도통 종잡을 수 없이 오락가락 하는 대호의 말에 대답의 갈피를 찾지 못하는 나는, 이 작은 엘리베이터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미로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바보라던가…….

대호는 엘리베이터 문 옆에 있는 열림 버튼을 누른 채로 바닥을 보다가 주저주저하며 나와 눈을 맞추었다. 이게, 마치 큰일이라도 되는 듯이.

마주친 대호는, 마주치지 못한 날 만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예를 들면, 살짝 올라간 눈매가 그 애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제법 남자답게 진한 느낌이 났다.

“그래. 너.”

“나 안 힘들어.”

내가……. 힘들어 보이나? 오히려 주현이랑 살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대호를 빤히 바라보자 대호는 괴로운 듯 고개를 엘리베이터 버튼 쪽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힘든 일 생기면. 내가 들어 준다고. 얼른 나가.”

얘가 갑자기 왜 그러나 싶은데,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대호는 이상한 말들을 이래저래 늘어놓고는 정작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마치 그러면 안 되는 사람처럼 무뚝뚝한, 평소의 내가 알던 대호로 돌아가 있었다. 우리 둘이 교문 밖에 바로 주차되어 있는 주현이네 차 앞에 가자, 차 앞의 조수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면 더 어깨를 으쓱이기 바쁜 박 비서 아저씨가 벌컥 하고 나왔다.

“가하 도련님. 아. 감사합니다. 대호 군.”

“아닙니다.”

대호는 그렇게 박 비서 아저씨에게 내 첼로를 건네주고 인사 없이 뒤돌아서 쌩하니 가 버렸다. 아까와는 달리 인사 하나 없는 냉정함에 내가 먼저 말했다.

“고마워.”

그 말에 대호가 잠시 걷는 것을 멈추다가 다시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오늘 본 대호는 내가 아는 대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변덕이 죽 끓고 종잡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것일까. 그냥, 골탕 먹여 보려고? 처음 보는 대호의 모습에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보다가도 끝에는 그날 내내 대호가 한 말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힘든 거 있으면 말해.」

「생기면, 내가 들어 준다고.」

어쩐지, 주현이가 하는 말이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만.

곰곰이 차창을 향해 그 말을 곱씹고 있는 나를 두고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주현이가 내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무슨 생각해, 가하?”

“어? 어……. 아니. 그냥.”

나를 향해 쳐다보는 그 맑은 눈에 나는 그냥, 하고 얼버무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첼로가 처음 하는 악기라 어려워서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내 말에 주현이는 아하, 하고 씨익 웃었다.

“괜찮아. 처음, 모두 다 어려워. 시간 지나. 괜찮아. 선생님 불러? 가하 연습하게?”

나름의 위로에 나는 주현이가 기특해 보일 지경이었다. 힘들어도, 금방 이렇게 알아차려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가. 대호의 요상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야. 내가 할래. 말만이라도 고마워, 주현아.”

“으응, 아냐. 가하 힘들어, 나 힘들어. 가하 슬퍼, 나도 슬퍼. 그렇지?”

힘들면, 이미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대호에게 말할 차례는 오지 않을 거였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로는.

판권

뻐꾸기 새장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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