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61)

* * *

“어머, 왔구나. 가하야.”

안락한 차 시트에 파묻히다시피 해서 온 나와 주현이의 시간은 집 앞에서 기다리던 엄마의 부름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벌컥,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쪽으로 열린 차의 문짝 틈새로 선팅이 되지 않아 반짝거리는 오후의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엄마의 반갑다 못해 까르륵 웃어대는 소리에 뒷목이 빳빳하게 굳었다. 주현이는 내 손을 잡고서는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가 주현이구나! 가하한테 많이 들었어. 고마워, 가하가 몸이 약해서 친구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주현이 너를 만나서…… 얘, 뭐하니. 내려야지.”

“…….”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챙겼다고. 나는 되도 않는 엄마의 달콤한 말들을 듣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하면서 주현이가 내게 매어 준 안전벨트를 풀었다. 내 팔을 죽죽 당기는 것을 보던 주현이의 눈이 느리게 깜빡이더니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아줌마.”

“얘, 꾸물대지 말고! 어, 응? 나 부른 거니?”

주현이의 부름에 엄마는 뾰족한 목소리를 다시 애처롭게 가다듬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주현이는 씩 웃었다.

“가하, 우리 집에 두고 갔어요. 중요한 거. 다시 가야해.”

“뭐? 가하야, 너 뭐 두고 왔니?”

“어? 어…….”

나는 두고 온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주현이의 눈은 거짓 한 점 없이 맑아서, 그것이 진실인 거 같은 착각을 일게 했다. 엄마는 내 팔을 거칠게 흔들다가 답답한지 주현이에게 다시 말했다.

“주현아, 가하가 뭐 두고 왔는지 알려 줄래? 아줌마도 같이 갈까?”

허리를 숙이고 상냥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이지만 나는 그 웃는 눈에 어두운 욕심이 드리워진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엄마의 아들이라서 일까. 내가 고개를 흔들며 나중에 오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주현이의 인형처럼 완벽한 대칭을 이루던 입술 끝이 살짝 휘어졌다.

“안 돼. 아줌마.”

“……뭐? 아니, 왜 그러니? 아줌마 이상한 사람 아니야, 가하가 두고 온 물건 같이 가지러 가는 거야, 주현아.”

단호한 그 대답에 엄마는 당황스러운 듯,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는 보이지 않는 가슴 안쪽에서 두방망이질 하는 것이 느껴졌고, 주현이와 맞잡은 손에 땀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주현이는 그런 미소를 지었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눈을 불안하게 굴리며 평소에 말하는 낯선 언어로 비서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 ——.”

“아……. ——. ——?”

비서 아저씨는 나와 주현이 그리고 엄마를 번갈아 보다가 주현이의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조수석에서 내렸다.

“——. 어머니, 저랑 잠시만 얘기 좀 하실까요?”

“어머, 도대체 뭘 두고 왔길래…….”

엄마는 불만이 어린, 그렇지만 내심 그들의 말이 궁금했는지 비서 아저씨가 부르는 말에 차 문을 휑하니 열어 두고 슬리퍼 차림으로 따라갔다. 차창너머, 엄마와 비서 아저씨가 저쪽 담벼락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 주현이가 내 쪽으로 다가와서 열려 있던 차문을 닫았다.

탕, 하고 문이 닫히자 나는 주현이에게 참았던 말을 꺼냈다.

“……왜 그랬어?”

“무슨 말, 가하?”

빙그레 웃는 주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를 향해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는…….

“나 두고 온 거 없어.”

“아? 응. 아니야. 벽장에 있어. 가하 물건.”

“……거짓말.”

“왜?”

주현이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왜? 아니라고는 하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싫어?”

“…….”

그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차창 너머에서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 엄마와 비서 아저씨를 몰래 곁눈질하면서 나는 주현이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럴 거 같았어. 가하.”

주현이는 그렇게 말하고서 앉아 있는 내 허벅지 위에 벌렁 누워서 제 뺨을 비벼대었다. 산들산들하게 퍼지는 그 애의 머리카락을 나는 눈으로 세면서 조용히 추궁했다.

“어떻게 알았어?”

내가, 가기 싫다는 것을, 주현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게 티가 나는 걸까. 아무리 자식이고 가족이라 해도? 내 말에 주현이는 뭐 그리 간단한 것을 물어보냐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 애를 향해 숙여진 내 얼굴을 분홍빛이 도는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면서 빙긋 웃었다.

“난 가하 가이드야. 나, 가하는, 모든 거 다 알아.”

‘난 네 가이드야.’

간단하고도 명료한 그 말은 어쩐지 마법 주문 같이 들렸다. 가시덤불이나 다름없던 아까의 분위기를 헤쳐 나가 주는 용사의 주문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켜 줄게. 가하.”

“……에스퍼가 가이드를 지키는 거야.”

너도 같이 배웠잖아. 배운 것과는 반대로 말하는 것을 두고 나는 맥이 풀려서 피식 웃었다. 그러자 주현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의문에 찬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해. 가하. 몰라?”

“그래도, 초능력을 쓰는 건 에스퍼라고 그랬어…….”

등급이 낮다 해도 나는 에스퍼였다. 일반 사람들이 쓸 수 없는 능력을 쓰는, 그런 에스퍼. 그렇게 말하는 내가 나도 모르게 입술을 내밀고 있었던 건지 주현이는 검지로 내 입술을 톡, 톡 건드리면서 까르르 웃었다. 마치 더도 없는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가하, 모르는 구나. 가이드, 에스퍼 힘 조종해. 이렇게.”

그렇게 말하며 그 애는 입술을 활짝 휘면서 검지로 내 코끝을 톡 건드렸다. 그 애와 나의 눈이 마주치고, 더 없이 순수한 그 눈망울에 내가 비춰질 때, 파란 눈이 붉게 번쩍이는 것을 보았다. 어? 이거……. 어제, 잘 때……. 나는 얼굴부터 해서 갑자기 나른하게 풀리는 감각에 주현이를 찾았다.

“주, 주현……. 아…….”

그 부름이 무색하게 내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암전되기 시작했다. 점점 무뎌지는 몸이 어딘가에 툭, 기대어졌다. 그렇지만 다른 신체 부위와 달리 귀는 계속해서 주현이의 목소리를 전해 주었다. 이게……. 그 애가 일어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가죽시트에 축, 늘어졌다. 멍한 머리가 그 애의 손이 분명할 차가운 손에 살짝 들리면서 부드러운 천에 기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내 머리 위로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이 이어졌다.

“괜찮아. 걱정 하지 마, 가하. 누구도 데려가지 않아. 소리 지르지 않아.”

“…….”

감긴 눈과 늘어지는 몸을 두고 나는 말해 보려고 입을 달싹였지만 나오는 것은 허한 공기뿐이었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나는 작은 공포를 느꼈다.

‘이게, 가이드의 능력이라고?’

토닥토닥, 그 애는 내 어깨를 토닥이다가 아까 전 엄마가 당기던 팔의 소매를 걷어서 쪽쪽 소리를 내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흔적이 내리 이어졌다. 그러다가 코를 묻고 살 내음을 맡는지 숨을 들이쉬다가 잘게 웃는 진동이 내 저린 피부 위로 전해졌다. 무딘 감각에도 신경을 긁는 간지러움은 은근히 느껴졌다.

“잘 자, 가하.”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내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어스름한 빛을 띠는 하얀 솜이불이었다. 비단천이 매끄럽게 감싸져 있는, 내가 어젯밤 덮고 자던 그 이불. 고작 주말 이틀을 같이 보낸 이불이지만서도 이 방과 이 안에 놓인 가구들은 마치 내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했다.

“…….”

남의 집인데, 우리 집보다 익숙한 기분이라니. 어스름한 생각을 요요히 비추는 것은 침대 옆에 있던 키다리 전등의 오축 전구였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나른한 몸에 기운을 되찾아보려고 했다. 이 나른한 감각만 아니었다면, 낮의 일이 모두 꿈인 마냥 느껴질 정도로 방 안의 모든 것은 어제 저녁처럼, 오늘 아침처럼 가지런했다. 집에 가기 싫었던 내가, 악몽을 꾼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가 이 원인 모를 현실의 상실감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동안, 엷은 장지문 너머로 속삭이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분은 아직 주무시죠?”

“네. 아까 확인했어요, 권 비서님. 근데 어쩌다가 다시 돌아오신 거래요? 주현 도련님이 그러신 거죠?”

가정부 누나의 궁금함이 깃든 목소리에 비서 아저씨의 그림자가 살짝 일렁였다.

“예. 가하 군 어머니가 좀…… 아무튼 도련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으시니, 오늘은 모든 일에 신경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비서 아저씨의 말에 가정부 누나의 머리 부분이 기울어진 듯, 살짝 음영이 졌다.

“어머 그래요? 가하 도련님은 의젓하기가 따로 없어서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고 생각했는데요. 도대체 어머니가 어찌 하셨길래……. 아무튼 알겠습니다. 저녁은 어떻게 준비할까요?”

“아, 도련님이 말해 주신 바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좋겠다고……. 가면서 이야기하죠. 친구 분 주무시고 계시는데 깨면 안 되니까.”

“손이 많이 가는 건 도련님들이 아직 어리셔서 먹기 어려울 텐데……. 네.”

나는 복도를 타고 나즈막이 울려오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귀로 쫓다가, 방안을 밝히는 누런 전등 빛을 한 번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주현이는 어디 있지.’

내가 침대에서 내려와서 카펫에 발을 딛자 문 너머 복도에서 작게 삐걱대는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삐걱, 삐걱, 삐걱……. 끼익, 드르륵…….

“가하, 일어났어?”

문이 열리자 내가 찾던 주현이, 그 애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다 하얀 양말이 씌워진 그 애의 발이 내게 툭, 툭 가까워지며 나를 폭 안았다.

“응.”

그건 꿈이 아니었고, 진짜였다.

“나 잘했지?”

잘했냐고? 마치 담임선생님이 규칙에 따라 생활하거나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 사물함에 걸린 채점표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주는 것처럼, 그 애는 내게 푸른 눈을 반짝이며 호소했다.

잘했다고 해.

그 애는 그렇게 바라보며 내게 채근했다.

“응?”

“……고마워.”

나는 차마 그게 잘한 일인지를 몰라서 작게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엄마를 좋아하지만 그게 지금의 엄마는 아니었다. 우리 가족에게 달라진 것은 걸치는 옷과 사는 장소뿐인데, 사람은 똑같을 뿐인데……. 마치 롯데월드의 너구리 탈 인형처럼, 탈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마냥 달랐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다. 가족이기에 나는 어떻게라도 엄마에게, 그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새가 어떠한 일이 있다 해도 둥지를 잊지 못하고 돌아오는 회귀 본능처럼.

“가하, 있어도 돼. 계속.”

“……아니야. 괜찮아.”

그게 가족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안겨 있던 주현이의 품에 우울한 생각을 감췄다.

‘괜찮아.’

정말 괜찮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말에는 무게도 마법도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실상, 뻐꾸기라고 엄마가 없는 것도 아니고, 집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다른 사람 마냥, 혹은 다른 사람의 집 마냥 사는 것 일 뿐.

불행과 아픔은 다 제각각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나를 위로해 주는 이 애가 불완전한 가족 안에 사는 것처럼……. 내 대답에 주현이는 자기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는 나의 등판을 살살 서툰 손길로 쓸어내렸다. 사악사악 하고 옷감 특유의 스치는 소리와 함께 그 애가 말했다.

“가하, 슬프구나. 그렇지?”

“……모르겠어.”

“음…….”

이게 슬픈 걸까? 아픈 걸까? 나는 이 복잡한 감정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내 모호한 대답에 주현이가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말했다.

“그래. 내가 해 줄게. 가하. 가하, 기분 좋게.”

“……어떻게?”

지금의 내 기분은 그저 그랬다. 이런 우중충한 기분으로 게임보이나 모노폴리, 맛있는 밥도, 주현이의 빛나는 눈도, 아니. 그 무엇을 한다고 해도 딱히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았다. 주현이는 나를 일으켜서 방문을 밀어서 열고 복도에 닫혀 있던 덧문도 이어서 열었다. 그런 우리를 본 박 비서 아저씨의 목소리가 의아하게 복도에 울렸다.

“주현 도련님? 어디 가세요?”

“박 비서, 기다려.”

“……주현아, 헉, 우리, 어디가?”

시원한 초저녁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그 애는 신발도 신지 않고 양말 바람으로 넓은 정원의 풀밭을 가로질러 갔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를 당기는 강한 손길에 나 또한 거절하지 못하고 그 옆을 같이 달렸다.

얼마나 갔을까. 우리가 있던 이층집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무렵에야 우리는 멈춰 섰다. 양말을 신은 발바닥이 축축하게 느껴지는 게, 어슴푸레한 밤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새카맣게 변해 있을 게 뻔했다.

나는 급하게 달리느라 가빠진 숨을 고르고, 무거웠던 생각을 가볍게 만드는 이 바람에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주현이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주현이가 나를 향해 씩 웃었다. 뭐하는 거냐고, 물어보려던 내 입은 그 미소에 다물렸다. 그 애는 잠자코 서서 어둡다 못해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밤하늘로 고개를 뻗었다. 그 모습에 나도 절로 하늘로 고개를 뻗었다.

“와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속에서도 아른거리는 오색찬란한 별빛의 무리가 죽, 펼쳐져 있었다.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나는 넋을 놓고 그저 바라보았고, 주현이는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빼서 깍지를 끼고 잡았다. 그 행동에 내가 은하수를 보던 눈을 내리자 그 애가 눈을 감았다. 마치, 무언가를 향해 집중하는 사람처럼.

“주현아……?”

“응.”

그 애의 대답과 함께 깍지를 낀 손이 마치 불에 덴 듯 뜨거워졌다. 나는 그 열렬한 기운에 손을 빼려고 했지만 단단히 내 손을 붙잡고 있는 주현이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주, 주현아, 나 손이 너무 뜨거워.”

나의 당황스러운 반응에도 주현이는 빛내던 눈을 뜰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손을 타고 오묘한 감각이 손등으로, 손목으로, 팔을 타고 점점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낮처럼. 전날 밤처럼. 익숙한 감각에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주현이의 눈이 뜨였다.

“……어?”

양말이 신겨진 내 발 밑은 오후 내내 스프링클러를 돌려대느라 축축한 흙 대신에 서늘한 바람이 스쳤다. 그런 내 눈 앞에 서 있는 주현이의 머리카락이 한 가닥, 두 가닥, 살랑살랑 흔들리며 올라갔다. 옅은 보리색 머리카락은 밤의 그림자를 머금고 창백한 회색빛을 띄었다. 나는 갑작스레 둥실둥실 올라가는 발에, 아니 몸에 불안해져서 주현이의 팔목을 급하게 잡았다. 황급히 내려다본 검은 풀밭은 우리 둘의 그림자로 유난히 그을린 응달을 머금었다. 갑작스러운 가이딩에 나는 당황스러움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주현이에게 돌렸다.

“주, 주현아.”

“응.”

나는 기적과도 같은 신기함에 믿기지가 않아서 그 애를 바라보았고 주현이는 내 부름에 눈을 가늘게 접고는 미소 지었다.

“주현이 너도, 같이……올라가네? 우와. 선생님이, 난 등급이 낮아서 나밖에 못 올라간다고, 분명 그랬는데…….”

“아하. 내 힘, 가이딩 강해. 아주아주. 그러니까 같이. 이렇게”

그 애는 나와 꼭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웃었다. 아, 그렇구나. 이 애는 그런 애지. 열 손가락에 꼽는다는 SSS급 가이드. 에스퍼는 가이드의 등급에 따라서 더 좋은 출력을 내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나는 이 평소 같지 않은 힘의 결과에 수긍하며 주현이의 볼을 콕콕 찔렀다.

“좋겠다.”

“왜?”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되묻는 주현이의 보드라운 볼에서 손을 뒷짐으로 감추고 작게 얼버무렸다. 부러움에 괜히 나를 순수하게 바라보는 애를 찔러보는 내가 유치했다.

“강해서.”

누구에게나, 어느 에스퍼에게나 가도 이 애는 늘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D등급이 다시 떠오르며 살짝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 내 앞의 주현이가 응, 하고 대답했다.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응. 나 강해. 가하. 그러니까 가하, 지켜 줄게.”

“……또 네가 아빠 한다고?”

“물론.”

이 고집을 누가 말릴까. 그렇지만 이 애는 늘 한결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름을 불러 주면 이 애는 늘, 이렇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선을 그리며 웃었다. 내가 그 사실을 생각하며 픽 웃었을 때에는, 우리 둘의 높이가 옆에 아름 드리워진 전나무의 제일 높은 가지에 다다를 정도였다. 나는 다리를 스치는 까실까실한 전나무 잎의 간지러움에 무심코 아래를 향해 내려다보았다.

“헉.”

그제야 훅 떨어진 지상과의 거리가 비로소 체감되었다. 에스퍼로서 각성을 체험했던 강당의 높이를 훌쩍 넘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예전에 갔었던 윤경이네 주공아파트의 7층 높이 복도에서 주차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빨아 당길 듯이 끌어당기는 어지러운 감각에 나는 본능적으로 발 디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발을 허우적대어도, 발밑을 스치는 것은 앙상한 어린 가지뿐이라 땅을 떠나왔다는 그 자연적인 공포감에 사로 잡혔다.

“무, 무서워. 주, 주현아. 나, 헉. 나 내려가고 싶어, 내려갈래.”

“…….”

나는 금방이라도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숨이 막혀 오다 못해, 눈을 질끈 감고 내 앞에 있는 유일한 사람, 주현이를 꼭 껴안았다. 내가 떨어진다면, 주현이도, 어쩌면 같이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는 그 애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안정감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주현이의 너른 품에 안기니, 이 공중에, 깜깜한 밤에 내가 혼자라는 게 아니라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도 내 귓가를 스치는, 마치 휘파람 같은 밤바람 소리는 한 번 깨어난 공포를 자극했다. 입 안의 맞물려 있는 이가 딱딱 부딪치고, 몸이 통제를 잃고 잔잔히 떨리는데 주현이가 팔을 고쳐서 나를 단단히 메었다. 마치 안전벨트를 매어 줄 때처럼.

“괜찮아, 가하.”

“우, 리. 내려가자, 응? 내려가면 안 돼?”

뭐가 괜찮다는 걸까. 분명히 내가 떨리는 걸 느낄 텐데. 그 품안에서 고개를 들고 주현이의 얼굴을 보자 그 애의 깊숙이 음영 진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마치, 가정부 누나가 말한 인형처럼, 완벽하게 빚어서 구워내어 흠 하나 없이. 주현이는 나와 달리 지상에 있을 때와 별다르지 않은 얼굴이라 나는 의아했다.

‘주현이는, 이런 게 안 무섭나?’

늘 애 같이 굴던 애가 정작 이럴 때는 어른스럽기가 짝이 없었다. 나는 디딜 곳 없는 다리를 주현이의 다리에 덩굴처럼 옭아매면서 그 애가 그래, 라고 대답해 주기를 재촉했다. 주현이는 이해 가지 않는 다는 듯이 내게 그 큰 눈을 깜빡였다.

“왜? 무서워? 괜찮아. 이번에, 안 떨어져. 가이드, 나야.”

“저, 저번에, 막……. 떨어졌잖아. 그러면 어떡해.”

나는 저번에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에스퍼 각성 시간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뚝, 하고 떨어지던 끔직한 그날. 그런 날은, 한 번이면 족했다. 두 번 했다가는……심장마비로 일찍 죽을지도 몰랐다. 놀이공원을 가도 자이로드롭 같은 것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스스로를 알기 때문이다. 난 알라딘의 매직카펫도 겨우 타는 편이었다. 내 말에 주현이는 고개를 갸웃, 하고 기울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아니야, 가하. 저번에, 내가 가이딩, 반대로. 그래서…….”

주현이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뭐가 생각났는지 이제는 조그맣다 못해 개미만 해 보이는 주현이 자신의 집을 내려다 보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가이딩을, 반대로?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주현이 가슴팍에 파묻었던 눈을 슬쩍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가이딩이, 반대라니?”

반대라니, 그럼 가이딩에 올바른 방향도 있단 말인가? 나는 주현이가 대답을 해 주기 전에 학교에서 배운 가이딩 이론을 곰곰이 떠올렸다. 가이딩은, 신체적인 접촉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보통은 가벼운 악수라든지, 이마를 맞댄다던지……. 아니면 우리 둘이 하고 있는 것처럼, 안거나 손을 잡는다든지. 주현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웃었다.

“음, 몰라. 잘 모르겠어, 가하. 한국말, 어려워. 너무너무.”

“괜찮아. 너 영어 잘하잖아. 난 영어 어려운걸.”

그 애가 기운이 빠진 얼굴로, 시무룩하게 한국어 투정을 하자 나는 그러려니, 하고 위로했다. 영어를 한국말로 하다가 꼬인 모양이었다. 내가 영어 시간에 회화를 할 때 버벅대다가 말을 얼버무리는 상황처럼 말이다. 가끔 문제를 풀다가 낑낑대고 있으면 답을 찾지 못하면 옆에서 주현이가 슬쩍 샤프로 답 옆에 점을 콕콕 찍어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러 그러라고 부탁한건 아니었다. 그냥, 그 애가 씩 웃으면서……. 나는 때늦은 컨닝 생각에 주현이의 품에 다시 얼굴을 폭 묻었다. 에잇. 한국 사는데 영어가 무슨 소용이람. 주현이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내려 들어왔다.

“그렇지. 대신 가하, 한국어 잘하지.”

“난 한국인이니까 당연한 거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 주현이에게 나는 푸념하듯이 말했다. 주현이는 눈썹을 살짝 오므라들게 찡그리면서 불쌍함이 묻은 표정으로 부탁했다.

“그럼 내 곁에서 계속 계속, 알려 줘. 한국어. 응? 알았지? 나 정말 못 해. 한국어. 자신 없어.”

“……당연하지.”

가끔 일기를 쓰다보면 받침을 헷갈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국어 성적은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난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친구니까. 그런 것은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내 대답에 주현이는 골치 아픈 것을 덜었다는, 후련한 표정으로 웃다가 문득, 내 머리 위를 가리켰다. 뭐지?

“가하, 저기 하늘 봐. 오늘, 별 많아. 아주 많아.”

“……별?”

아까 전 지상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많이, 수 없이 찬란하게 펼쳐진 별들의 무리가 눈앞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과학 시간에 시청각 사진으로만 보던 은하수였다. 그 광경에 나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와아…….”

“예쁘지? 반짝반짝.”

“응……. 주현이 네 눈 같다.”

파랗고 하얗고 보랏빛을 띤, 뒤엉킨 그 색들의 눈부심에 빠져서 나는 무심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주현이가 흐음,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 같아, 내 눈? 별?”

“어? 어……. 너도, 눈, 반짝거리고, 파……랗고.”

예전에 대호가 주현이는 눈 얘기 하는 거 싫어한다고 그랬는데, 나는 괜히 주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조심조심 눈치를 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주현이가 환하게 웃었다.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그 애의 말을 들었다.

“가하, 아주 로맨틱한 남자야. 그렇지?”

“……뭐?”

“옛날 사람들, 여자 꼬셔. 눈에 별 있어요. 예뻐요. 하하, 가하, 나를 꼬셔. 그렇지?”

“아, 아니야! 나 그런 거 아니야!”

처음에 들던 공포감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불거진 주현이의 오해에 나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지만 주현이는 상관없다는 듯이 흠흠, 콧노래를 불렀다.

“괜찮아. 가하. 나는 가하 좋아해.”

“…….”

거기에다 대고 나는 너 안 좋아해, 할 수도 없고. 나는 이길 수 없는 이 말싸움에 그저 머리 위로 펼쳐진 별들을 보는 수밖에는 별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난 주현이랑 얘기하면서 이긴 적이 없으니까. 이기고 싶지도 않았다. 주현이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였지 적대하고, 경쟁하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좋은, 그런 친구.

“별, 좋지. 가하?”

“응.”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아름다움이 저 너머로 있었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이 공중의 정원에서 우리만이, 볼 수 있는 저 너머의 아름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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