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61)

그리고 살이 통통하게 배긴 굴비 살은, 씹히는 잔가시 하나 없이 보드라운 살만 잘 발라져 있었다. 밥 위에 올려서 텁, 먹자, 솔직한 혀는 내게 솔직한 감상을 뇌로 전달했다. 진짜 꿀맛이었다. 내가 입안에 감도는 짭조름한 굴비 맛을 다시 떠올릴 때 쯤, 부엌 쪽에서 삐걱 삐걱하고 마루를 걷는 걸음 소리와 함께 가정부 누나가 손에 둥그런 소반을 들고 왔다.

“도련님들, 멜론 드세요. 잘 익어서 그런가 잘 썰리던 게, 맛있을 거 같아요.”

“와아. 감사합니다.”

“고마워.”

정말 누나의 말대로, 잘 익은 멜론은 어두운 실내 가운데에서도 물기가 주르르 흐르는 진한 연두색의 모습을 띠고 있어서 입안의 침이 고였다. 그녀는 우리가 있는 자리 뒤에 소반을 두고 작게 웃으면서 떠나갔다.

“뭘요. 저는 위층에 가하 도련님 방에 잠자리 준비하러 가 있을게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세요.”

“네.”

“응.”

우리는 나무로 만들어진 손가락 세 마디 정도 길이의 과일용 포크로 한 입 크기로 썰어진 멜론을 차례로 입에 넣었다. 아, 달달해. 식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신선한 과즙이 입안에 와작와작 퍼지는 것을 즐기고 있는데 주현이가 나무 포크를 입에 문 채로 나를 빠안히 바라보았다.

“왜?”

“가하, 좋아해? 멜론?”

“응. 나 과일 좋아해.”

“무슨 과일 좋아해?”

“어려운 질문인데……. 나 과일 거의 다 좋아해. 너는?”

난 딱히 싫어하는 과일도 없었다. 그저 먹기 쉬운 과일이냐, 아니냐 인거지. 먹기 쉬운 건 둘째 치고 오늘 같은 경우에는 가정부 누나가 깎아 줘서 그런가 더 맛있었다. 원래 남이 깎아준 과일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히히.

내가 또 이빨을 점점 잃어 가는 멜론 한 조각을 콕 찍어서 입에 날름 삼키자 주현이도 하나 찍어서 찹, 먹었다.

“나도.”

“그래? 혹시 너도 엄마가 배에 너 있을 때 과일 많이 먹었다고 했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나 가졌을 때 과일을 되게 많이 먹었대. 그래서 과일 많이 먹는 거 같다고 엄마가 그랬어.”

그 말을 했던 그때는,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에 과일을 사 오기만 하면 내가 정신없이 먹을 때 나온 말이었다. 지금이야 집 냉장고 밑에 칸에 널린 게 각종 과일이지만……. 주현이는 볼에 밀어 넣은 멜론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음……. 애기, 과일 많이 먹어, 여자 애기.”

“아, 맞아. 그래서 엄마도 내가 여자애일 줄 알았대. 뭐, 결론은 아니지만…….”

주현이가 우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갑자기 내 배에다가 자기 머리를 대었다. 나는 묵직하게 아랫배를 누르는 머리에 달린 말랑한 백설기 떡 같은 뺨을 살짝 꼬집다가, 녹색 과즙이 줄줄 흐르고 있는 멜론을 또 콕 찍어서 먹었다.

“뭐해, 나 배불러.”

“가하 여보, 우리 애기. 여자애?”

“너…….”

주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짓궂게 웃었다.

또 시작된 여보 타령에 내가 멜론을 꿀떡 삼키고 말을 하려했다. 그때 주현이가 팔을 뻗어서 마지막 남은 멜론 하나를 콕 찝어서 내 입에 쏙 넣었다. 말을 만들던 혀는 입 안에 들어온 멜론 조각의 무게로 가라앉았다.

“느허, 메혼 즈다고 내하 바즈허가타?”(너, 멜론 준다고 내가 봐줄 거 같아?)

그래도 우선 입 안에 있는 멜론을 아작아작 씹었다. 그 사이에 주현이가 포크를 소반에 내려놓고 내 배 위에다가 손을 살포시 올려두더니, 느리게 살살 문질렀다.

“화내지마, 가하 여보. 애기 놀라. 예쁜 말, 예쁜 생각, 예쁜 애기.”

“……우리 이혼하자.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놈의 여보 타령,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어야겠다. 그래봤자 3주 후에 보겠지만 말이다. 아줌마와 저녁때마다 보던 ‘사랑과 전쟁’에서 나온 대사를 쳤다. 내가 장단을 맞춰 주는 건 결코 마지막 남은 멜론을 내게 줘서 그런 건 아니다. 아, 달달해서 혀가 아리네. 내 말에 주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어서 놀란 듯이.

“왜? 여보, 안 돼. 애기 이름, 이미 있어.”

“……너 아역 배우 같은 거 하는 거 어때? 애기 이름 뭔데.”

잠시만,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주말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불량 주부 같잖아. 주현이는 내 손을 하나 집어서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슥슥 글자를 한 자, 한 자, 그렸다. 그 얼굴이 장난치고는 제법 진지했다.

“내 이름 주현, 가하 이름 가하. 하나, 하나……. 그래서 여자애 가현, 남자애 주하.”

“……나중에 작명소 해라 너.”

주현이가 지은 이름은 내가 들어도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소질 있네. 나는 가현, 주하……. 이름을 곱씹으며 그 앞에 내 성을 붙여 보았다. 유가현, 유주하…….

“가하 여보 애기 이름 집? 얼마나 많이? 난 둘 좋아. 셋 이상……. 생각해 봐야 해.”

얼씨구. 내가 언제 낳아 준다고 그랬나. 나는 얼토당토않은 농담에 같이 심각한 얼굴로 손바닥을 보여 주며 말했다.

“뭐야, 아빠가 애기 셋도 책임 못 져? 그럼 이혼해. 얼른 싸인 해. 능력 없는 남자는 싫어. 나 더 좋은 사람 찾아서 갈래.”

“가하 선녀야?”

“뭐?”

“선녀와 나무꾼. 애기 셋 낳아. 둘 낳으면 선녀 날아가.”

푸하, 나는 주현이의 기발한 상상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날 수 있는 초능력을 가져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 말이 좀 웃겨서, 일종의 자포자기 같은 심정으로 주현이의 장난을 계속해서 받아주었다.

“그래. 그러니까 이름 하나 더 생각해 봐. 내가 아이 둘하고만 같이 날아가 버리지 않게.”

“알았어. 막내 이름……. 음…….”

주현이는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송주하, 송가현, 송……. 송하현!”

“잠시만, 왜 송 씨야?”

주현이는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냐하면, 나 아빠. 애들 성, 아빠 성 따라가.”

“내가 아빠하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유 씨지.”

주현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결혼하면 여보 성, 아빠 성 따라가. 유가하 아냐. 송가하.”

“……난 우리 아빠 아들인데.”

유철수 씨네 독자……. 는 이제 동생이 생겼으니, 아니고 장남. 나는 졸지에 주현이에게 아빠의 자격도, 성도 빼앗겨 버렸다. 심지어 애도 셋이나 낳아서 주현이 성을 줘야한다니. 이건 불공평해! 주현이는 내 배 위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결혼하면, 가하 유 씨 사람 아냐. 송 씨 사람.”

“그런 게 어디 있어. 너무해. 너만 다 가져가고. 아빠도, 성도, 애도 다 네 거야?”

내 볼멘소리에 주현이가 씩 웃었다.

“응. 다 내꺼야. 그래도 나는, 가하 거야.”

“……그래. 너 다 가져.”

나는 더 이상 장난을 이어 줄 기력도 없어서 주현이 옆에 벌렁 누워 버렸다. 주현이도 우리 사이에 있던 소반을 밀어서 공간을 만들더니만 내 옆으로 와서 찰싹 붙었다. 나는 괜히 심술이 나서 그 애의 허리를 쿡 찔렀다.

“붙지 마. 이 욕심쟁이야.”

“왜에. 여보.”

주현이의 앙탈에 나는 이제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그놈의 여보.

“……너 왜 이렇게 가족놀이 하고 싶어 해.”

“음……. 나, 가족, 만들고 싶어. 많이 많이. 우리 집, 아빠랑 할아버지 있어. 할머니, 엄마 없어…….”

주현이가 누운 채로 천장을 보다가 내게 고개를 돌려서 말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웃는 얼굴인데,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조금, 서글프게 보였다. 나는 조심히 말했다.

“엄마……. 안 계셔?”

“죽었어. 나, 유치원 때. 할머니는 나 태어나기 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나는 그제야 왜 주현이가 나이에 안 어울리는 가족 놀이를 나에게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는 아무리 싫고 싫다지만 엄마가 있었다. 아무리 밉고 짜증나고 보기 싫어도 집에 가면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집에 없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다는 거…….’

심지어 이 애는 스스로가 말하길 친구도, 나밖에는 없다 하고.

그래서 일하는 아저씨랑 누나가 다들 입 모아서, 주현이가 나와 있으면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들 그랬던 걸까. 자리를 비운 가족들의 빈자리로, 외로웠기 때문에…….

나는 그 애의 푸른 눈을 가만히 보다가 조금,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학교 사람들이 다 좋아해도, 자신의 증상 때문에 다른 사람하고는 가까워질 수도 없고, 잘 산다고 해도 없는 죽은 엄마가 돌아올 수는 없다.

그렇게 보니 인생은 공평한 듯, 불공평한 듯, 아슬아슬한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가진 거 같아도, 사실 가진 게 없을 수도 있다고.

“미안.”

“아냐. 이제 괜찮아.”

그렇게 말하는 게 어쩐지 더 내 마음을 동하게 해서,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집도 큰데 셋 말고 더 낳자. 많이 낳아서 축구단으로 만들어 버리자. 그럼 심심하지 않고 좋지 뭐.”

“하하, 가하, 애기 축구단 만들어? 나랑?”

명랑하게 터지는 웃음에 실눈을 떠보니 주현이가 무척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감당 못할 거면…… 각방 써.”

이혼, 말고 다른 말을 고르다가 저번에 아줌마와 보던 드라마에서 나온 말을 쓰자 주현이가 몸을 내 쪽으로 돌려서 말했다.

“그건 안 돼. 가하 같이 없어, 나 슬퍼. 애기 많이 낳아도 돼. 내 곁에 있어, 가하…….”

그러면서 주현이가 내 몸을 폭 껴안았다. 그 애의 숨에서 달짝지근한 멜론 향이 솔솔 풍겼다.

“……날아가지 마.”

주현이가 작게, 덧붙였다. 나는 저녁에 후식까지 먹고 한창 떠드니 밀려오는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응, 안 가…….”

어차피 나는 가이딩을 주지 않으면 날아다닐 수도 없으니 날아가지 말라는 건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차피 사람은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하는걸.

그리고 우리가 친구인 이상, 언제나 곁에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이 애가 그 학교의 유일한 친구이자 짝꿍인건 마찬가지니까. 반 애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 가운데 홀로 부어 주는 그 정은, 한 번 맛본 이상 떨쳐내기도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일관적이지 못한 부모도, 학교 애들도, 선생들도 채워 줄 수 없는 맹목적인 정은, 나도 모르게 스며오는 힘이 있었다.

가끔, 집에 홀로 있으면 나도 주현이가 떠오르곤 하니까…….

“착해, 가하.”

누워 있는 우리에게, 이름 모를 꽃향기를 담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생기를 뿜어내던 하늘이 어둑하게 저물고, 우리의 기력도 슬슬 가라앉았다. 저녁 이후로 주현이와 같이 게임보이를 했지만 눈이 감기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기를 결국 내려놓았다.

욕실 쪽에 있던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마친 우리가 방으로 돌아오자 복도 쪽에 위치한 덧문을 닫던 가정부 누나가 우리와 마주쳤다. 그녀는 상냥한 얼굴로 내가 미처 닦아내지 못한 얼굴의 물기를 내 목에 걸려 있던 수건을 끌러서 살살 훔쳐 주며 말했다.

“잘 말리고 다니세요. 낮에는 따뜻하지만 밤에는 추워서 감기 걸려요. 참, 주현 도련님, 2층에 가하 도련님 이부자리…….”

“아, 그……. 감사합니다.”

그녀가 나를 마치, 칠칠맞은 애로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그렇지만 그 손길이 나쁘지 않아서 살짝 멋쩍은 기분으로 인사했다. 옆에 가만히 있던 주현이가 돌연 가정부 누나의 손에 들려 있던 수건을 홱 뺏어들었다.

“내가 할래.”

주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른 수건을 내 얼굴에 폭 파묻고 문댔다. 우리 집에서 쓰는 수건보다는 보드랍지만 얼굴에 문대면 문댈수록 은근히 까슬까슬함을 전해 주는지라 나는 주현이의 손을 붙잡아야했다.

“……주현아, 나 이제 얼굴 따가워.”

그런 우리를 두고 가정부 누나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수줍게 웃었다.

“어머나. 웬일이세요.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시면서……. 아유. 가하 도련님이 그렇게 좋으세요?”

주현이는 놀리는 누나의 말투를 알아차린 것인지 파란 눈을 누나에게 시퍼렇게 뜨고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파란 눈이 더욱 시려보였다.

“손, 대지마.”

“주현아, 누나한테 왜 그래.”

“마른 수건 하나 더 가져올게요. 잠시만 계세요.”

누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현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누……나? 누나 아냐. 가하. 호박이야.”

“주, 주현아.”

나는 혹여나 복도를 가고 있던 누나가 들었을까, 고개를 복도 너머로 휘휘 돌리면서 눈치를 살폈다. 주현이는 은근히, 아니 대체로 어른이고 선생님이고 너 나 할 거 없이 혹독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행히 가정부 누나는 듣지 못한 것인지, 손에 수건을 하나 더 가져와서 거친 세수로 머리카락 끝이 젖은 내 머리를 살살 털어 주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머금은 복도였지만, 그 손길은 제법 온기가 서려 있었다.

“가하 도련님은 저 따라오세요. 주현 도련님, 안녕히 주무세요.”

“싫어.”

“아…… 네. 주현아 잘 자.”

같이 자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닌가? 우리 둘의 상반된 대답은 동시에 나왔고, 나는 예전에 놀러가곤 했던 친구들 집을 생각하면서 어색하게 복도를 스쳐가는 누나를 따라가며 멀뚱히 서 있는 주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내일, 또 놀자.”

“……응. 가하 잘 자.”

누나는 주현이의 대답도, 눈짓도 신경 쓰이지 않는 다는 듯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주현이는 누나가 떠나자 거친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복도 끝의 모퉁이를 돌자 격자가 들어간 미닫이문이 탕, 소리가 나게 닫혔다. 그 튀는 소리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두고 앞에 가던 가정부 누나가 내게 말했다.

“가하 도련님, 괜찮아요. 어서 오세요. 졸리시죠?”

“저……. 주현이 화난 거 같은데…….”

나는 신경이 쓰여서 계단으로 향하는 발을 미적미적거리며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치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가정부 누나는 작게 웃었다.

“주현 도련님이요? 아니에요. 아, 화나신 걸 못 보셨나? 요즘 기분 되게 좋으신 거예요. 한국어도 배울 생각 없던 분이……. 여기에요.”

“그……래요?”

저게 화가 나지 않은 거라고? 누가 봐도 화난 게, 아니. 삐진 게 당연하잖아.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머리를 긁어대며 가정부 누나가 열어 주는 2층의 한 방문 너머로 들어갔다.

주현이의 방보다는 조금 더 작지만 아담한 구성 자체가 비슷한 방이었다. 저녁이어서 그런지 구석에 세워진 키다리 전등 말고는 방을 밝혀 주는 빛이 없었다.

그 방 안에 발을 디디자 내 발 밑으로 이 방 아래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누군지는 대충 알거 같다. 바닥에는 가정부 누나가 깔아 준 게 분명한 두툼한 솜이불이 깔려 있었다. 누나는 잘 덮여져 있는 이부자리의 한 쪽을 살짝 들춰서 손바닥으로 톡톡 오라고 두드렸다.

“그럼요. 얼른 누우세요. 아유, 왜 안하던 짓을 하시나 했더니…….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딱인가 봐요. 박 비서님도 주현 도련님이 이제야 제 나이 같다고 그러시는 걸요.”

“……?주현이가 나이가 더 많아요?”

나는 누나의 말에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 따라 강남 간다고? 주현이는 우리 집에 온 적이 없는데……. 내가 눕자 누나는 옆에서 내 이불을 어디 바람 하나 들어오지 않게 꼭꼭 여며 주면서 미소 지었다. 작은 방에 켜진 키다리 전등은 누나의 작은 얼굴에 닿지 않아서 희끗한 음영이 져 있었다.

“아, 그런 게 아니라……. 음……. 그냥, 가하 도련님이 와서 주현 도련님이 생기가 많아지셨어요. 예전에는 뭐라고 하나……. 너무 가만히 있고 말도 없으셔서……. 인형? 그래, 인형 같다고들 했거든요.”

“아…….”

나는 주현이의 그 이국적인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얼굴을 떠올리며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에서도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은 독보적이었다. 누구라고 해도 그 얼굴을 좋아하고 사랑해 줄만했다. 나 또한 그 애를 그저 가만히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콩닥거리는 걸.’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누나는 추운지 콜록 거리며 방 한 쪽에 켜져 있는 키다리 램프의 전원 줄을 당겼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노오란 오축 전구 불이 꺼지며 깜깜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했다. 내가 아직 어둠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사람 좋은 얼굴로 그녀는 입 꼬리를 올리며 검지를 동시에 입에 대었다.

“주현 도련님한테 제가 말했다고는 하지 마시구요. 우리끼리, 비밀이에요?”

그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면서 검지를 조그맣게 들었다. 사실, 뭐 말할 사람도 없겠지만. 엄마가 물어본다고 해도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 애와 나의 일은 그냥, 우리 둘만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 누구도 밟을 수 없는 영역으로, 남기를 바랐다.

“네.”

“도련님이 자기 얘기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셔서……. 아무튼!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닫았다.

그녀가 미닫이문에 발라진 한지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를 천천히 지워나가고, 2층의 불을 하나둘 씩 꺼뜨린 후, 삐걱 대는 계단 소리와 사라졌을 때에야 나는 혼자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불 안은 비단 천 특유의 매끄러움과 함께 따끈따끈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에는 온돌 같은 난열 기구가 없어서 그런가, 한지가 발라진 벽이자 문 역할을 하는 미닫이 사이로 불어오는 외풍에 콧등이 조금 시렸다. 그래도 잠을 자기에는 충분한 온난함은 있었다.

남의 집에서, 그것도 친구 집에서 자 본 적은 몇 번 있긴 했지만……. 따로 따로 자는 것은 처음이었고. 이렇게 큰 집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야, 옛날에 놀던 친구들의 집은 다 거기서 거기였고, 다들 비슷한 식구 구성에, 비슷한…….

나는 옆으로 몸을 뒤척이면서 가정부 누나가 애써 여며준 이불을 풀썩풀썩 소리 내며 흩트렸다.

아까만 해도 꽤 졸음이 쏟아졌는데, 어색한 이 방, 이 집, 그리고 사람들 때문일까? 나는 눈을 감고도 잠에 쉬이 들지 못했다. 그저 두터운 이불 밑에서 숨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게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조용하던 이 2층을 파고드는 미세한 소음에 감았던 눈이 반짝 떠졌다.

……누구지? 가정부 누나? 아니면 비서 아저씨?

주현이는 밑에서 자고 있을 텐데. 혹시나 전화를 한 엄마 때문에 비서 아저씨가 나를 데리러 온 것은 아닐까, 괜한 불안을 마음속으로 빚어내며 나는 이불 안으로 숨었다. 숨는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드르륵, 하는 진동과 함께 열린 문은 다시 조심스럽게 닫혔다. 진동하는 발걸음이 이부자리 너머 마루에서 전해져 왔다. 방의 마루는 좀 더 새것인지, 복도만큼 심하게 삐걱대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무튼, 발걸음의 주인은 내 옆으로 살금살금, 천천히, 점점 다가왔다. 나는 그 묘한 태도에 이불에서 꿈쩍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두고 발걸음의 주인은 내 등 뒤쪽의 이불을 살짝 걷어 올리더니, 서늘한 방의 공기와 함께 내 곁으로 쏙, 들어와서 누웠다. 누가…….

“……주현이야?”

“……응. 가하, 안 자?”

주현이는 마치 중요한 것을 도둑맞은 얼굴을 하고 내게 속삭였다.

“잠이 안 와서…….”

“나도. 잠이 안 와.”

주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누워 있던 나를 발랑 껴안았다. 나보다 덩치가 큰 주현이인지라, 나는 그 품안에 쏙 들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분명 같은 나이인데. 제 나이대로 보인다는 박 비서 아저씨의 말은 틀린 게 분명하다. 내가 형이면 모를까……. 덩치만 빼고. 그 애의 잠옷 옷깃 너머로 솔솔 퍼져오는 레몬 향을 살금살금 맡으면서 나는 말했다.

“주현아.”

“응.”

곧장 대답하는 주현이를 두고 내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퍼지는 게 느껴졌다. 생기가 생겨서 좋다니, 그럼 도대체 예전에는 어떠했을까. 나는 짐작하기 어려운, 생기 없는 주현이의 태도를 상상하며 주현이의 볼을 살짝 살짝 손가락으로 찔러보았다.

“나 아까 너 화난 줄 알았어.”

“……나? 화, 아냐.”

“문도 쾅, 하고 닫고. 누나가 그런 말 들으면…….”

속상하겠다고, 말하려는 참에 주현이는 그런 나를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중얼거렸다.

“누나……그거, 마음에 안 들어.”

설마 누나를 그거라고 하는 거야? 너…….

“주현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왜?”

“그야, 어른들한테, 주현이 네가 나쁜 애로 생각되면 어떡해…… 너 좋은 사람이잖아.”

내가 주현이의 손을 잡고 살짝 흔들면서 말했다. 지금은 어떻게 넘어간다고 해도, 나중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혹여나 나쁜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되었다. 마치, 3-2반의 그 담임처럼, 첫 가이딩을 하던 날의 부장 선생처럼…….

지난날의 어른들을 떠올리고 있는 나를 곰곰이 보던 주현이가 뾰족하도록 가늘게 뜬 눈을 살짝 누그러뜨렸다. 두툼한 솜이불이 우리의 숨소리에 오르락내리락 거릴 때 쯤, 주현이의 붉은 입술에서 서툰 말이 나왔다.

“말해, 가하. 다시.”

“응?”

“내 이름, 말해.”

“주현……아.”

갑자기 이름은 왜? 나는 통 알 수 없는 행동 투성이인 주현이를 두고 천천히 그 이름을 입으로 굴렸다. 주현.

“음.”

내 부름에 주현이는 마치 달콤한 케이크를 먹은 사람마냥 배부르게 웃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애였다. 그렇지만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의 생각은 감추려 해도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이 짐작하기 어렵고 답이 나오지 않는, 무언가로 정형화 될 수 없는 주현이가 내게는 그저 좋았다.

친구에게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조금, 이상한 거 같아서 굳이 말로는 하지 않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낯간지러운 생각을 하던 참에 주현이는 많이 양보하는 사람처럼 검지를 올리고 콧등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마치, 주의를 주는 것처럼.

“이번만. 다른 사람, 가하 만지는 거. 안 돼.”

“……그래.”

“괜찮아. 나도, 다른 사람 못 만져.”

“상관없는데…….”

난 결벽증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이 만져도 딱히. 별다른 반응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두고 주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야. 더러워, 다른 사람. 알겠지? 다른 사람, 안 돼. 가하 만지는 거.”

“알겠어.”

결벽증이라고 하더니, 그게 친구에게도 해당이 되는 거였나 보다. 나는 대충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주현이는 내 손을 잡아서 두툼한 솜이불 사이로 이끌었다.

“주현아.”

“응.”

내가 이불 사이로 들어가며 꾸물대는 순간 몸 위로 두툼한 모양새만큼 무거운 이불이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얹혀졌다. 눈을 돌려서 보니, 주현이의 잠옷 다리가 내 몸 위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덩치 값을 하는지 주현이의 다리는 제법 무거웠다. 나는 눈을 위로 뜨고 어둑하게 자리 잡은 주현이의 인영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중요한건 이런 게 아니었다.

“……나중에 우리 집에도 놀러 올래?”

“가하 집?”

“응. 자고 가지 않아도…… 우리 집 근처에 놀이터도 새로 생겼고, 오락실도 있어.”

낮에는 엄마가 없으니까, 나는 주현이가 해준 것처럼, 아줌마의 맛있는 밥을 같이 먹고 싶었고, 우리 집에 있는 낡은 보드 게임도 하고 싶었으며, 집 근처의 오락실에서 버블버블도 하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와중에 주현이가 흐음, 하고 특유의 소리를 내었다.

“좋아, 가하. 약속해. 자아.”

그 애는 내 코 위에 자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내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으면서 눈을 기쁘게 접었다. 내가 약속을 안 지킬 것 같이 생겼나. 유난히 약속, 약속하는 주현이가 내 눈에는 귀여워서 나는 안겨 있던 주현이를 폭, 하고 마주 안았다. 따뜻하다. 아줌마가 가끔 나를 안으면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다고 하던데, 주현이도 내게 그러했다. 그런 내게 주현이가 픽 웃었다.

“가하, 좋아? 내가 가서?”

“응. 너 오락실에서 버블버블 해 봤어?”

“버……블, 버블? 오락실? 그게 뭐야?”

“그게, 공룡 나와서…….”

내가 신나게 이전에 했던 버블 버블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사각 사각거리는 이불 소리와 함께 다른 한 명의 숨소리가 이 어두운 방안을 파고들었다. 어린애 특유의 새액, 새액하는 그 숨소리. 어느 날 들어갔던 동생 방에 놓인 아기 침대 맡에서 들려오던 그런 소리.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맞춰 갈 무렵, 바스락 하는 이불 소리와 함께 주현이의 목소리가 형형한 밤을 파고들었다.

“그렇구나……. 가하, 우리 가면 집에 있어, 가족?”

“음…… 아니. 아빠는 일하러 가고, 엄마는 모임…… 아. 집에 동생 있어. 아줌마가 늘 봐주셔. 아직 어려서 말은 못하고.”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동생의 존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주현이가 다시 흐음, 하고 나를 품에 폭 안았다.

“가하, 가족 몇 명?”

“나까지 합쳐서 넷. 엄마랑, 아빠랑, 동생…….”

“가족 많아.”

주현이의 대답에 나는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주현이는 아빠랑 할아버지밖에 없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늘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

“많다고 좋은 건 아냐.”

다들 가족이 많으면 화목하구나, 좋겠다, 외롭지 않겠다, 흔히들 그러지만 글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 말에 주현이는 의외인 말을 꺼냈다.

“맞아. 많은 거, 좋지 않아.”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응.”

“의외네.”

“왜?”

“그냥……. 아까 많으면 좋다고 그랬잖아.”

애기 많았으면 좋겠다고 그랬던 건 어디의 누구더라. 내 말에 주현이는 아아, 하고 대답했다.

“그건, 가하니까.”

“나?”

“응. 소중한 사람이 가족, 그러면 좋아.”

그러고는 주현이는 작게 웃었다. 그 해맑은 웃음에 나도 웃음이 피식 나왔다. 가족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 준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남이 그렇게 말해 주니 어쩐지 간지러우면서도…….

참 좋았다.

그 생각에 나는 무심코 말을 꺼냈다.

“나도 네가 가족이면 좋았을 거 같아. 동생이나, 형 같은 거.”

“……정말?”

바삭, 하는 이불 특유의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주현이의 숨이 색색 하고 내 대답을 기다렸다. 응. 정말. 내 말에 주현이는 갑자기 말을 꺼냈다.

“가하, 나랑 가족하고 싶어?”

“그냥…….”

나는 주현이가 있는 베갯잇을 흘끗흘끗 보다가 그 밑의 검은 공간에 눈을 두었다. 그냥.

“너랑 있으면…… 심심하지도 않고…… 재미있고…….”

외롭지 않아서. 나를 괴롭히는 집도, 학교도 아무렇지 않아지고 생각도 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내 말에 주현이가 작게 말했다.

“가하, 외로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을 읽는 사람마냥, 나오는 주현이의 말에 나는 혹여나 중요한 물건을 훔친 도둑처럼 숨을 흡, 삼켰다. 주현이는 그런 나를 모르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나랑 있으면, 안 외로워?”

“……응.”

“그래.”

주현이의 대답과 동시에 이불 안에서 나를 감은 팔에 힘이 좀 더 강하게 들어갔다.

조용한 밤을 쪼개어드는 그 온기와 숨소리가 전해 들어갈수록 내게 생생한 감각들이 전달되었다. 단순히 그 애가 들어오면서 같이 데리고 온, 이제는 훈훈해진 공기뿐만이 아니라, 바르작거리는 발가락과, 나보다 조금 더 넓고, 커다란 어깨를 가진 그 애. 주현이는 어둠속에서도 형형한 파란 눈을 빛내며 배시시 웃었다.

“나랑 가하, 이제 안 외로워.”

“응?”

“나도 외로워, 가하도 외로워. 하지만 우리 둘이, 같이. 안 외로워. 그렇지?”

“응…….”

외국에서 자라서 그런 걸까. 가끔 이렇게 스스럼없이 치고 들어올 때면 난 어찌해야 하는 건지. 싫지도 않아서, 더, 모르겠다.

“……난 가끔 너를 잘 모르겠어.”

그런 내 말에 주현이는 커다란 파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왜? 난 가하 잘 알아.”

“아니야, 너 나 하나도 몰라.”

“……그래?”

주현이의 파란 눈은 미닫이에 발라진 한지 너머로 은은히 들어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반짝거리며 나를 온전히 그 안에 담았다.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나는 그 눈빛에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그 애의 색색이는 숨결이 내 귓가로 불어올 때서야, 주현이가 내 곁에 바짝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애는 이제 숨결이 불어질 때 마다 팔랑이는 마른 머리카락 사이로 조곤하게 속삭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너를 알까?”

그 애의 마른 입술이 내 귓바퀴를 촉촉이 적시다가, 내 볼 위로 숨결 따라 스르르 내려오다가…….

“알려 줘, 가하.”

그 애를 향해 있는 내 입술 쪽으로, 스치며 말했다.

“가하, 네가 좋아. 더 알고 싶어. 응?”

주현이의 파란 눈이 불그스레 변하면서, 내 감각을 나른하게 흩트려 놓았다. 따뜻한 이불 속 온도와, 내 볼에 불어오는 규칙적인 숨결 소리, 그 모든 게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갑자기 불어오는 마약 같은 졸음에 주현이의 입술이 가까워지는 것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쪽. 아직 감기지 않은 귓가에 찰싹 붙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자, 가하.”

너어, 인사……. 안 하기로 했잖아…….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할 기력을 내지도 못하고 잠의 세계로 깊이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왜지…… 저물어가는 정신 너머로 나는 작은 궁금증이 들었다.

아까…… 그게 뭐였을까……?

‘그, 붉은색.’

어디선가 들려오는 짹짹이는 새소리에 나는 무거운 눈을 열었다. 눈곱이 끼었는지 뻑뻑한 눈을 끔뻑거리는데, 무딘 감각이 둔하게 전달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몸을 쓸어내리는 손길에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스슥, 하는 소리와 함께 입고 있는 잠옷 사이로 들어온 손은, 내 등 뒤에 바짝 붙어서 내 정수리 맡에 숨을 색색 불어대는 주현이의 것이었다.

“으응……가하…….”

잠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어 보이는 주현이는 내 잠옷 안쪽의 복부로 손을 슬슬 문질렀다. 잘 다듬어진 손톱이 내 갈빗대 쪽을 긁자 기분이, 오묘했다. 마치 개미가 줄지어 가는 것 마냥 간질간질하고, 음……. 나는 척추를 타고 흐르는 아찔한 감각에 엄지발가락을 사정없이 구부렸다.

‘안 되겠다. 깨워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딱 그 애가 있는 쪽으로 몸을 휙 돌리자 무거운 이불이 살짝 들썩 거리며 다시 천천히 우리의 몸 위로 가라앉았다.

“주…….”

장난으로 주현이의 코를 쥐거나 콧구멍에 슬쩍 손가락을 넣으려 했으나, 호오호오 하고 불어오는 그 애의 입김과 밝아 오는 아침 햇살을 유유하게 받아 평안한 그 애의 작은 얼굴이 나를 만류했다. 나는 이불속에서 들어 올렸던 손을 다시 이불 안으로 넣을까 하다가, 슬며시 검지를 피고 그 곧은 코끝에 가져다 대었다. 비현실적인 얼굴이라서, 이렇게 톡, 대는 순간,

“…….”

사라질 거 같아서.

나는 졸음에 부은 눈을 다시 깜빡대며 그 애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푹신한 베개에 볼을 파묻고 있는 주현이의 콧날은 어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오뚝했다. 더불어 감겨 있는 눈꺼풀 위로, 파란 눈만큼이나 퍼런 핏줄이 움푹 들어가, 그 눈매에 새겨져 있었다, 성냥개비를 올려둔다 한들 끄떡없을 정도로 촘촘한 뻗은 연갈색의 속눈썹이 눈 밑에 작은 응달을 만들 정도였다. 가끔 아줌마와 거실에서 TV를 보면, 어디 세계 기행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교회의 벽에 그려진 그림처럼 생겼다고 할까. 경건하다, 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서투르게 내 이름을 부르고, 가끔 감당이 되지 않는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는 게 영락없는 어린애지만. 동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내 ‘집’에 있는 말 못하는 괴물과 같은 쭈글쭈글한 얼굴의 동생을 생각하며 주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무심코 입이 움직였다.

“네가 내 동생이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 놓고 나는 그 애가 혹여나 깨기라도 할까 봐 숨을 살짝 멈추었다. 다행이도 주현이는 깊은 잠 속을 헤매고 있는지 아까와 같이, 내 허리께에 손을 얹은 채로 여전히 평온했다.

‘네가 내 동생이면, 네 말대로 나는 외롭지 않을 텐데.’

그 애의 손이 내 숨 쉬는 박자에 맞추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할 때 쯤, 나는 안심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점점 내 눈가를 향해 햇빛이 비춰 오고 그 사이로 부셔드는 먼지 아지랑이가 내 숨을 타고 춤을 추었다. 그 모습에 나는 조심조심해서 내 고개를 돌리며 내 등 뒤에 서 있던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그게 일요일 아침이라면 더더욱 이를 시간. 나는 오늘이 벌써 일요일이라는 사실에 조금 아쉬워지면서도, 오랜만에 느껴 본 ‘친구’와의 시간에 알 수 없이 들떴다. 꼼짝없이 그 애의 품에 안겨 있는 이 시간이 그대로고,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 할 정도로, ‘좋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 애와 내가 가족이면 계속 이렇게 놀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이. 현실성 없는 생각에도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마른 입술의 껍질이 트도록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그 애의 얼굴을 감상하고 있는데 한지가 발라진 미닫이 문 너머로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툭, 툭,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햇볕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미닫이 문 쪽을 향해 눈알을 돌렸고, 마치 그림자놀이처럼 희끄무레한 인영이 미닫이문에 얼룩을 만들면서 속삭였다.

“주현 도련님, 식사 준비 되었습니다.”

“아, 그…….”

주현이 아직 자는데……. 아침식사를 알리는 비서 아저씨의 목소리에 나는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하려 했다. 그런 내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알았어. 기다려.”

“예. 김 양에게 곧 간다고 일러놓겠습니다.”

어?

나는 생각하지도 못한 목소리의 주인에 내가 누워 있었던 자리를 향해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엷은 머리카락들이 까치집처럼 부풀어 오른 채로 진한 하품을 하는 주현이가 있었다. 너……. 자고 있던 거, 아니었어? 갑작스러운 기상에 그 애를 바라만 보고 있는데 아직 졸린 기운이 가시지 않은 주현이가 흐, 하고 웃으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가하, 좋은 아침.”

“어? 어…….”

멍하니 눈을 깜빡이는 동안 비서 아저씨가 복도를 걸어 돌아가는 삐걱대는 소리가 미닫이 문 너머로 났다.

삐걱, 끼이이…….

그 소리처럼 내 생각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있는데 주현이는 다시 이부자리에 벌렁 누워서 나를 쳐다봤다.

“언제 깼어?”

“방금.”

“……아까 내가…….”

만져서, 말해서 깼을까? 나는 혹시 내 말을 주현이가 들은 건 아닌가 싶어서 심장이 괜히 빨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그 애는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내가 누워 있던 하얀 솜 이부자리를 손으로 턱턱, 두드렸다. 마치, 다시 누워 있으라는 듯이.

“졸려, 가하. 누워.”

“……밥 먹으라고 비서 아저씨가 그랬잖아.”

“괜찮아. 기다려. 더 있어. 여기.”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듯, 그 애는 태연한 얼굴로 손을 머리에 기대고서 다시 내가 누워 있었던 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내가 미닫이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에, 반쯤 몸을 일으킨 내 팔을 붙잡는 힘에 나는 어찌할 새도 없이 다시 푹신한 이부자리에 풀썩하고 눕혀졌다. 푹, 하고 던져지는 내 몸을 받는 이부자리에서 훅, 하고 먼지자락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바뀌어 버린 시야에는 어두침침한 그늘이 져 있는 목재가 빈틈없이 짜인 천장과…….

“자장, 자장, 가하 잘 잔다…….”

“……너.”

파란 눈을 장난스럽게 빛내며 나를 덮고 있는 이불 위로 토닥이는 주현이가 있었다. 그 유치하고도 태연자약한 모습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토닥, 토닥, 그 조용한 리듬이 방 안을 채우는 동안 나는 그저 주현이의 내리깐 눈을 훔쳐보았다. 아침의 밝은 빛은 한지에 한 번 걸러져서 부드럽게 그 애의 얼굴을 비추고, 그 덕에 안 그래도 깊은 눈매가 더욱이 깊어 보였다. 말할 때는 영락없는 아이인데, 말없이 내 옆에 이렇게 있는 걸 보니 미용실에서나 볼법한 잡지에 나오는 성숙한 외국인 같다고 느꼈다.

‘아니, 외국인이 맞나?’

나는 주현이를 한국인인지, 외국인인지 어떻게 나눠야 할지 고민하는 가운데 주현이가 나를 보면서 졸음에 잠겨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해?”

“어? 어……. 그냥. 너는?”

나는 이 사소하고도 부끄러운 생각을 말할 수 없어서 얼버무리고 도리어 그 애에게 물어보았다. 별 생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애는 투명하고도 시린 눈을 한 번 껌뻑, 이면서 나긋하게 말했다.

“매일 매일 보고 싶어. 가하.”

부시럭, 대는 소리와 함께 내 정수리 위로 그 애의 손이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 손은 가볍게 내 정수리를 쥐었다가, 머리카락을 타고 매끄럽게 내려와서 귀밑의 턱을 쓸어내렸다. 닿을 듯 말 듯 그 조심스러운 손짓과 내 목 밑을 스치는 그 손의 무게감으로 침을 삼키지 못한 내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침도, 밤도, 언제나. 이렇게.”

“…….”

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랑?’

나는 그 애에게 하등 중요할 게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주현이만큼 좋은 등급을 가진 에스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부모님이 자랑할 만한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그런 조건을 가진 애들 사이에서 왜 나랑……. 특별함 하나 없는 자신에게 한심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주현이의 손이 베개 맡에 있는 내 손을 가볍게 쥐었다.

“이 집, 크고, 넓어.”

“…….”

마치 반 여자애들이 친한 친구와 손을 잡듯이, 그 애의 좀 더 큰 손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끼워졌다. 그 감촉에 나는 입 안에 고인 침을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켰다. 그 애의 붉은 입술에서는 조금 더 또렷해진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나. 외로워. 가족…… 없어. 아빠, 할아버지 모두 바빠. 어른들…… 바빠…… 하지만 가하, 좋아. 재밌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 애는 나와 잡은 손깍지를 꼭 쥐었다. 외로워. 그 한마디에 나는 기분이 어지러웠다. 내가, 그리고 이 애가 끌리는 것은 우리 둘 다 비슷한 외로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래서 자꾸 생각이 나고, 바라보게 되었던 걸까.’

나는 가감 없이 나온 주현이의 말에 목구멍이 시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아무도 없는 사막과 발 디딜 땅 하나 없는 바다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찾았다는 그 느낌. 그게 나쁘지 않았다. 반가웠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옛날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기분이었다.

“나도, 나도…….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된다면 너랑 계속 있고 싶어. 나는 솔직한 마음을 한 구석에 잠시 숨겨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무엇으로도 판단하지 않고 좋아해 주는 네가 좋아.

그렇지만 이 말을 하면, 혹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대답을 받을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에게 진심을 말하면 내가 바랬던 대답과 정 반대로 말하곤 했으니까…… 엄마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 애는 그러지 않기를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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