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61)

* * *

“가하, 괜찮아?”

“으응…….”

툇마루에 누워 있는 내 얼굴에 팔락거리는 둥근 부채의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며 귀밑 머리카락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으.’

나는 분명 빨갛게 익어 있을 얼굴이 민망해서 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샤워를 한 후에 주현이와 같이 욕조에 들어갔다가, 그 애가 언제 나가나 눈치를 보면서 버티는 바람에. 푹 익다 못해 거의 기어가는 상태로 욕실에서 나왔다.

그 애가 나가고 한참 후에 욕실에서 나오자, 언제 바꾸어 두었는지, 짚으로 짠 바구니에 내가 벗어 둔 옷이 아니라 처음 보는 새 옷이 들어가 있었다. 그걸 꿰어 입고 나오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결국 주현이의 부축 아래, 주현이 방 앞에 있는 툇마루의 덧문을 열고 서늘한 정원 쪽을 향한 마루 끝에 무릎을 걸친 채로 누워 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마루에서는 고소한 콩기름 냄새가 났다. 반질반질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 얼굴에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눈감고 즐기고 있는데 툇마루 코너의 저편에서 끼익끼익, 삐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오는 모양이었다.

“도련님들, 저녁 드세요. 어머. 주현 도련님, 친구 분 어디 아프세요?”

“가하, 욕조 뜨거워. 너무 너무.”

“아이구, 주현 도련님 나오실 때 같이 나오시지.”

그녀는 밥상을 들고 나를 딱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우리 옆에 밥상을 내려놓고 여전히 부채질을 해 주는 주현이에게 물어보았다.

“도련님, 얼음이라도 봉지에 넣어서 가져올까요?”

“음……. 응.”

“알겠습니다. 바로 가져올게요.”

그 애의 손이 아직 달아오른 내 뺨을 살짝 쓸었다. 내 뺨의 온도가 워낙 높아서 그런 것일까. 방금 목욕을 마치고 와서 따뜻해야 할 그 애의 손이 비교적 시원했다. 나는 그 애의 손에 깃든 나른한 차가운 온도를 즐기며 뺨을 갖다 대었다. 그 애의 손은 얼굴 옆에서 살랑이는 부채 바람보다 시원했다.

“응……. 시원해.”

“…….”

“주현아, 너 손 시원하네.”

‘손이 차가우면, 마음이 따뜻하다는데…….’

나는 언젠가 한 번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감았던 눈을 떴다. 주현이의 손에 있던 둥근 부채는 멈춰 있고, 나를 빠안히 바라보고 있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파란 눈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예쁘다……. 엄마 장식장에 있는 유리세공품 같아.’

나는 뺨에 있던 주현이의 손을 내 손으로 떼어내며 머쓱하게 시선을 천장으로 향했다. 나무 기둥 위로 격자로 짜인 나무 들보가 보기 좋게 있었다. 네모가 몇 개나 있을까, 눈으로 세고 있는데 떨어져 있던 손이 다시 내게 다가와서 나는 눈을 다시 마루 옆으로 돌렸다. 그 애의 길쭉한 손가락이 내 뺨에 착 붙었다. 그리고 그 애가 내 뺨을 손끝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부채 쥔 손을 내 머리 옆에 기대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가하…….”

“응……?”

그 애의 엄지손가락이, 살짝 말라서 튼 내 아랫입술 위를 스쳤다. 하마터면 손가락이 입 안에 들어갈 뻔 했을 정도로 가까웠다. 누워 있는 등 뒤에 툇마루가 있어서 나는 어디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어정쩡하게 입을 작게 벌린 채로 그 애를 바라보았다. 이거…….

“——.”

내가 보는 파란 눈은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온도가 느껴졌다. 그 나직하게 울리는 언어만큼이나.

“주현아, 뭐라고…….”

“도련님, 얼음 가져왔어요.”

삐걱, 삐걱 하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여자는 손에 꽃무늬 가제수건을 두른 얼음 봉지를 주현이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사이에 그 애가 무슨 말을 한 것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여자와 주현이가 누워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워서 앉은 후, 진지한 얼굴을 하고서 얼음을 내 머리 위로 올렸기 때문이다. 얼굴 주위를 가제수건으로 묶어서 턱 밑에 고정하고 나서야 그녀는 주현이의 옆에서 씰룩대는 입술을 손으로 애써 가리며 좋아했다.

“어머, 친구 분 너무 귀여우시다. 시골에 있는 여동생 같네. 그렇죠, 도련님?”

“…….”

촌스럽다는 말을 잘도 돌려서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 없던 주현이가 나를 품에 폭 안았다. 어머. 옆의 가정부가 작게 소리를 내었다. 안겨 있는 주현이의 목덜미에서는 아까 욕실에서 맡은 레몬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냄새…… 좋다.’

본능적인 느낌을 생각하다가 나는 그 애의 품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 말만 아니었으면.

“좋아, 가하. 내 에스퍼 해.”

“응?”

‘에스퍼? 내가 에스퍼이긴 하지만……. D인데.’

나는 학교에서 들었던 주현이의 가이드 등급을 생각하며 고개를 움직이는데 옆에 있는 여자가 일어섰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그러면서 부엌이 있을 복도 너머로 삐걱 삐걱, 끼익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주현이는 여전히 나를 안고 있는 채로 보챘다. 응?

“대답해. 가하.”

“어……. 나 D인데…….”

누구도 필요로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D.

픽 웃는 주현이의 웃음이 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마치, 그런 게 무어 상관있냐는 듯이.

“괜찮아. 내가, 가하 좋아해. 내꺼 해. 응?”

“그래…….”

나는 내 건데. 유치원생도 하지 않을 유치한 생각을 접어 두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말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의미도 없었다. 그냥 내가 아는 카르마 시스템은, 에스퍼와 그를 도와주는 가이드를 부르는 의미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뭐가 중요한지도, 만약 우리 둘이 매칭이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가이드가 딱히 필요 없는 최하급의 에스퍼 등급을 가진 터라 별 관심이 없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그 단순한 대답에 나를 안고 있는 주현이의 커다란 품이 잘게 떨렸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내 머리위로 흘렀다.

“그래. 가하, 내꺼야. 이제부터.”

“…….”

“다른 가이드 안 돼. 알았어?”

“나 좋아하는 가이드 없어…….”

엄마도, 가이드지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며 나에게 좋다, 좋다 하는 애의 등을 껴안았다.

“나 있잖아.”

머리 위에 서늘한 얼음이 그새 녹았는지 내 이마위로 물기가 비죽, 흘렀다.

나 있잖아.

내가 널 좋아하는 가이드잖아.

그 의미에 나는 그 품에 내 달아오른 뺨을 비볐다.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특별한 사람, 특별한 그 애가 좋다고 말해 주는 건, 생각보다도 기분 좋고……. 좋은 일이었다.

“응. 그러네.”

그런 친구들 사이의 우정을 누릴 참에, 내 배 안쪽에서 꼬르륵, 하는 민망한 소리가 났다.

“…….”

“…….”

그러자 안겨 있던 품이 또 잘게 떨렸다. 큭큭큭 하고 웃는 웃음소리도.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그 애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주현이가 나를 안은 채로 옆에 있는 밥상을 슬슬슬 당겼다.

“밥 먹자. 가하. 우리 집 밥, 맛있어.”

“응…….”

나는 여전히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그 위로 꽃무늬 가제 손수건을 얼굴에 둘러 맨 채였다. 그 애의 품 안에서 나가서, 내 맞은편에 있는 밥그릇 쪽에 앉으려고 했다. 일어서려던 내 몸을 밑에서 당기는 힘으로 인해 도로 제자리에 앉혀졌다. 나는 다시 그 애의 다리 사이에 앉은 채로 얼굴을 마주했다.

“어디 가?”

“밥……. 먹으려고.”

“여기, 먹어.”

그 애는 자기 품에 나를 다시 한 팔로 안아서 말했다. 나는 소심하게 밥상 건너편에 있는 밥그릇을 가리켰다.

“밥 저기 있는데.”

“가하 아파. 여기 앉아. 나, 도와 줘. 가하.”

그렇지만 주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반질반질한 황색 금속으로 된 수저로 밥을 한입 크기로 푸고, 뜨끈하게 오르는 김을 호호, 불었다. 그리고 그 수저의 종착점은 내 입이었다. 건조한 입술에 따뜻한 밥이 있는 숟가락이 톡톡 건드렸다.

“아, 해. 가하. 아-.”

“……내가 먹을 수 있다니까.”

“아-.”

간병인 놀이라도 심취한 것인지, 주현이는 내가 먹겠다고 손을 올리자 자기 손을 내 손이 닿지 않는 공중으로 쑥, 올렸다. 너……. 그리고 내 배 안에서는 다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

결국 나는 포기하고 입을 순순히 벌렸다. 그러자 주현이가 조심스럽게 내 입 안에 숟가락을 삭, 넣었다. 그러고는 얼른 젓가락으로 나물을 집어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주현이는 젓가락질을 아주 잘 했다. 사실 난 아직도 X자로 먹는데.

입 안에 들어온 초록 나물은 아작아작 씹히는 것은 달달한 시금치 무침이었다. 그러고는 짭조름한 불고기, 톡 쏘는 깻잎 조림, 매콤달콤한 진미채, 고소한 하얀 무 무침…….

반지르르한 황색 금속 그릇에 있는 밥과 반찬이 그 애의 부지런한 손길을 통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으로도 간간히 수저를 놀리곤 했다.

‘근데, 남이랑 닿는 게 싫으면…….’

나는 그 애의 품안에 등을 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팍의 숨을 느끼면서 조금, 의아해졌다.

‘수저나 그런 것도, 따로 쓰는 거 아닌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 수저를 쓰는 그 애의 행동에 나는 눈을 굴리다가 그 애의 눈과 딱, 마주쳤다. 나는 우물우물 씹던 입 안의 밥을 삼켰다.

“맛있어, 가하?”

“응……. 맛있네.”

“집, 맛있어? 여기 맛있어?”

그 애의 손가락이 내 입 꼬리 쪽을 훔치며 묻어 있던 밥알을 쏙 먹었다.

‘아…….’

나는 그 행동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그런 거는, 우리 엄마 아빠도 안 하는데……. 내가 말없이 있자 그 애는 내 어깨를 감싸고 목덜미에 대고 입을 묻었다. 보드라운 입술이 보송한 목덜미에 사부작거렸다.

“응? 대답해. 가하.”

“응……. 집……?”

여기도 맛있긴 하지만, 집에서 해 주는 아줌마의 반찬이 더 맛있었다. 그냥, 익숙해져서 그런가. 내 대답에 내 목덜미에서 입술이 떨어졌다.

“집? 집, 더 맛있어? 여기 아냐?”

“여기도 맛있긴 한데……. 집도 맛있고.”

“…….”

그 애가 말이 없었다. 나는 놀러온 주제에 괜한 말을 했나 싶어서 돌아보았다. 다행히 내 생각과는 달리 그 애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미소 짓고 있었다.

입술만.

그게 걸려서, 나는 감사를 표했다.

“여기도 맛있어. 고마워, 주현아.”

“……좋아. 가하. 내 이름, 불러 줘.”

“……주현아.”

그러자 눈이 설핏, 접히며 환하게 웃었다. 이름 부르는 걸 좋아하다니, 산책 가자는 걸 들은 강아지도 아니고. 나는 일요일 아침마다 아줌마랑 거실 소파에 앉아 TV에서 보던 ‘동물농장’에서 나올 법한 강아지 같은 반응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주현아.”

“응. 가하.”

우리가 앉아 있는 툇마루에 열려 있는 덧문 너머의 정원에서 귀뚜라미가 우는지 찌르르, 하는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바깥을 보니 벌써 해가 너울너울 저물어 가며 마지막 붉은 빛을 태우고 있었다.

외롭지 않은 토요일 주말이었다.

“자고 가, 가하. 응? 자고 가. 방 많아.”

주현이는 서늘한 저녁 바람이 맴도는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껴안고 매달렸다. 안 그래도 주현이는 나보다 덩치가 좀 더 커서, 나는 그 품 안에 폭 들어갔다. 무거워……. 나는 그 애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껴안은 채로 앉아서 반질반질한 툇마루를 손으로 득득, 긁었다.

주현이의 말마따나 이 집에 방은 많아 보였다. 2층 단독으로 지어진 집에는 일하는 사람들을 빼면 주현이만 사는 듯이 보였으니까.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이 집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물쭈물 말을 고르며 내 등 뒤에서 매달리는 애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했다.

“근데……. 엄마가 오랬어. 남의 집에서 자는 거, 예의 아니라고…….”

이 응석의 원인은 우리가 방 안에 있는 TV와 게임기를 연결해서 한창 놀고 있던 와중에 박 비서가 우리 엄마의 전화를 받고 우리 방 앞으로 온 것이었다.

“주현 도련님, 친구 분 어머니 전화 연결 원하시는데, 어떡할까요?”

“가하, 엄마?”

“네.”

“괜찮아.”

우리 엄마가 전화를 했다고? 우리는 한창 콘솔을 손에 들고 있다가 잠시 정지를 걸어 놓고 현관 쪽에 있는 전화기 앞으로 갔다. 빨간색 전화기의 수화기는 현관 입구 쪽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박 비서는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던 수화기를 들어서 내게 건넸다. 나는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수화기를 들어서 귀에 대었다.

“……엄마?”

―가하, 너. 지금 몇 신데 어디 있는 거야?

수화기에서는 야멸찬 소리가 날아왔다. 나는 수화기에서 귀를 살짝 떼면서 옆에서 나를 보는 주현이의 눈치를 보았다. 들리진 않겠지? 큰 소리가 더 날까봐 나는 조마조마하며 몸을 다시 돌려서 대답했다.

“친구 집…….”

―친구 이름 뭔데? 거기 어딘데?

“주현이라고……. 우리 반 친구.”

아줌마가 엄마에게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 하지만 전화가 온 걸 보면 그런 거 같지도 않고…….

나는 이 불편한 통화가 얼른 끝나기를 바라며 순순히 대답을 했다. 그러고 작은 아쉬움이 들었다. 밤이 깊어 올 때부터 마음이 쫓기더니만 결국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애, 혹시……. 삼라 그룹 애니? 송주현? 혼혈이라 눈이 파랗다는…….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수화기 너머로 종이 뒤지는 소리와 함께 갑자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삼라? 그룹?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솔직히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고……. 주현이 맞는 거 같은데……. 왜?”

―아냐, 됐다. 아무튼, 남의 집에 그렇게 예의도 없이 이 시간까지 있니? 너는 부모가 어떻게 길렀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얼른 와! 거기 주소 어디야? 으휴, 데리러 갈게.

엄마는 대충 얼버무리더니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엄마는 알고 보니 뻐꾸기가 아니라 딱따구리였던 걸까. 나는 귀를 터뜨릴 것처럼 짜증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주현이와 박 비서를 보며 대답했다.

“알았어……. 근데 주소는 몰라. 주현이가 데리러 왔었거든. 내가 물어볼게.”

―뭐어? 그 애가…….

길어지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놓고 나는 박 비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박 비서가 내게 눈을 맞추고 뒷짐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엄마가 데리러 온데요. 여기 주소가 어떻게 돼요?”

그러자 박 비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옆에 서 있던 주현이가 내 팔을 붙잡았다.

“가하, 집 가?”

“어……. 응. 엄마가 오래. 마리오 다음에 하자.”

“가지 마. 자고 가. 나랑 놀아. 응?”

주현이는 마치 우리 옆옆 집에 있는 새끼 강아지가 끄응끄응 거리듯이 내 팔을 붙잡고 졸라대었다. 그 모습에 잠시 마음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사실 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냥 무턱대고 안 갔다가 엄마한테 쥐어 터지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 엄마가 화나서……. 가야 돼.”

“엄마 화나? 왜? 가하 좋아. 왜 화나?”

주현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잡고 늘어지자 옆에 있던 박 비서가 내 손에 들린 수화기를 가져가며 주현이에게 말했다.

“주현 도련님, 제가 친구 분 어머니랑 얘기 해 볼 테니까 우선 방에 가 계세요.”

그러자 주현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다시 자기 방으로 끌고 갔다. 삐걱삐걱 대는 마루의 소음과 함께 박 비서가 전화하는 음성이 멀어졌다.

“전화 바꿨습니다. 주현 도련님 가택 비서…….”

“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내가 멀어지는 복도 끝을 돌아보는데 주현이가 내 손을 붙잡고 우탕탕, 마루를 뛰었다. 마치 현관 가까이 있으면 내가 가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 애는 방문도 되고 창문도 되는 한지가 발린 격자무늬의 장지문을 거칠게 열고 나를 그 안에 훅, 넣었다. 내가 방 카펫에 늘어놓은 게임기 본체와 콘솔을 밟지 않으려고 몸을 휘청이며 가까스로 서자 방 안의 장지문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그러자 문이 열려 있어서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던 아까와는 달리 방 안이 장지문으로 둘러진 채로 우리 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주현이는 방문을 열어 주지 않을 기세로 문 앞에 서서 손을 등 뒤로 하고 고개를 크게 저었다.

“가하, 가지마. 자고 가.”

“나도 그러고 싶은데…….”

“왜, 왜 엄마 화나? 이상해. 가하 착해. 가하 좋아.”

글쎄. 나도 엄마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내가 엄마를 고른 것이 아니니까……. 늘 생각하던 이유를 나는 목구멍 아래에 꾹꾹 눌러 참고 애써 웃었다. 엄마는 그렇다고 해도, 이 애는, 주현이는 나를 좋아해 주고, 착하다고 생각하면……. 된 거 아닐까.

“고마워. 근데 가야 돼 진짜. 동생도 돌봐 줘야 하고……. 아, 나 동생 생겼거든.”

“동생?”

“응.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서 요만해. 좀 귀여워.”

변명거리를 말하다가 나온 동생은 딱히 귀엽지는 않지만 나는 대충 에둘러서 말했다. 그러자 손을 등 뒤로 굳건하게 서 있던 주현이가 조용했다.

“…….”

“그리고 오늘만 있는 거 아니잖아. 우리 학교에서도 보고, 또 다음에 같이 놀면 되잖아.”

“가하, 가족 많아?”

“응?”

주현이는 잠시 바닥의 카펫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나를 보았다. 어쩐지 그 푸른 눈이 조금 촉촉하게 보였다.

“나 버리고, 가?”

그 말에 나는 당황해서 그 애에게 다가갔다.

“나 버리고, 엄마, 동생 가?”

“아니, 아니야. 내가 왜 너를 버리고 가. 나도 정말 있고 싶어.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무서워서 그래. 우리 엄마, 한번 화나면……. 무섭거든. 막, 꼬집고 때리고……. 그게 싫어서 그래…….”

그러자 주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마주친 푸른 눈에는 의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엄마 때려? 가하? 매일?”

“아니 그냥……. 매일은 아니고. 가끔. 다 그러잖아. 너네 집은……안 그래?”

나는 목덜미를 덮는 뒷머리 근처를 긁으며 이 대화를 수습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현이는 나를 자기 품 안에 꼭 껴안았다.

다시없을 소중한 것이라는 듯이, 내 등과 머리를 커다란 손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주현이는 가만 보면 덩치만 크지, 정이 참 많았다. 순수하고. 얼굴도 예쁘고, SSS급 가이드니까 보나마나 할 것도 없이 능력도 좋고……. 나는 주현이의 등을 토닥이면서 애써 달랬다.

“나 갈게. 주현아.”

“싫어…….”

“주현아.”

내가 주현이 이름을 재차 부르자 나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우리 둘 사이에 저녁 바람 한 줄기 들어올 틈새마저도 없었다. 마치 한 몸인 것처럼. 그 애의 떨리는 목소리와 손길이 옷에 걸친 천 너머로 느껴졌다.

“가하 때려? 가하 엄마 싫어. 가지마. 여기 있어. 내가 지켜 줘, 가하.”

“아니야. 안 그래…… 정말이야. 그냥, 가끔. 학교에서 선생님도 우리 규칙 어기면 손바닥 때리잖아.”

“…….”

“다시 올게. 약속해.”

그 애는 내가 올린 새끼손가락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우리가 있는 방의 미닫이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리더니 박 비서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현 도련님, 친구 분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차 대기 시켜 두었습니다.”

“……. 봐. 나 이제 가야 돼.”

나는 그 애의 팔이 풀리는 것을 기대하며 붙어 있던 몸을 떼었다. 오히려 그 애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럼. 인사, 해 줘. 가하.”

“응? 잘 있…….”

“아니.”

내 어깨를 여전히 안고 있는 그 애는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있던 얼굴을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밀었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애의 푸른 눈이 감기고, 반들거리는 붉은 입술이 말랑하게 닿았다. 나는 입술 안쪽을 살짝 오물거리다가 떨어지는 그 감촉에 눈 하나 깜빡이지도 못했다. 그 사이 그 애의 연한 갈색 속눈썹이 올라가며 감추었던 푸른 눈을 떠올렸다. 그 애는 가만히 있는 나를 보더니 다시 내 입술에 촉, 하고 닿았다. 붉은 입술은 호선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이거, 인사. 스웨덴 인사. 처음, 가하?”

“……어? 어……. 어…… 응…….”

남이랑 닿는 거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뽀뽀를 해 놓고 그 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외국……. 살아서 그렇구나.’

평생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적응하기 어려운 스킨십이었다. 삽시간에 얼굴에 퍼진 열을 주체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렸다. 앞에 선 그 애는 내 대답에 진하게 웃었다.

마치, 정글짐 맨 위를 처음 정복한 애의 얼굴이라고 할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제, 나랑 인사해. 이렇게. 알았지?”

“근데 이거…….”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인사 아닌데. 그렇게 말하려던 나를 막은 것은 여전히 방 밖의 장지문 근처에 서 있던 박 비서의 목소리였다.

“도련님, 시간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 합니다.”

그 재촉 덕분에 나는 내가 입고 왔던 옷으로 도로 갈아입고, 툇마루에 나와서 양말을 마저 신고 있었다. 그런 내 등 뒤에 주현이가 와서 가지 마라, 시위 하듯이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옷 다 갈아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집? 내 집, 남의 집? 왜? 가하, 남 아니야. 내 에스퍼야.”

“그야……. 가족은 아니니까?”

우리 집에서 일하는 박 씨 아줌마가 나를 아껴 주고 보살펴 준다 한들, 진짜 내 엄마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친구도 가족을 대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아는 내가 양말을 발목까지 잘 올려서 청바지 밑단을 내리자 주현이가 내 어깨 위에 턱을 꽂고 중얼거렸다.

“……가족…….”

“준비 다 되셨나요?”

삐걱대는 복도에서 박 비서가 나와서 툇마루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얼굴을 쏙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

주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애는 평소와 달리 드물게 침묵을 가진 상태로 나와 함께 차에 탔다. 나도 사실 돌아가는 길이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아서 그냥 창밖을 구경하면서 죽, 말없이 있었다. 그래도 안전벨트 아래에 꼼짝없이 고정된 내 손은 그 애의 커다란 손과 마주잡은 상태였다. 아까 전과 같이. 마주 잡은 손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살결의 온도가, 그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가 따뜻했다.

“…….”

“…….”

창밖에는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부터 강기슭까지, 깜깜한 저녁을 밝혀 주는 노란 가로등의 행렬이 보였다. 그 모습은 강을 두고 나뉜 우리들의 집과 같이,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강을 건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 앞에 차가 도착하자 박 비서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도착했습니다.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안전벨트를 풀면서 꾸벅 인사하자 옆에 있던 주현이가 흐흐, 하고 웃었다. 밤이 어두워서 그런가 아니면 담벼락에서부터 드리워진 까만 그림자 때문인가. 주현이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애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 갈게. 우리 학교에서 또 보자. 오늘 재밌었어. 고마워, 주현아.”

“응……. 가하.”

그 애랑 잡고 있던 손에서 손을 빼자마자 내 손목이 턱, 잡혔다.

“왜?”

“가기 전, 인사 해 줘.”

주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나는 그 모습에 뇌가 빠르게 역류하는 느낌을 받았다. 잡혀 있던 내 손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인사, 그……. 했잖아. 또 해?”

“응. 또 해. 지금 작별 인사. 집에서, 그냥 인사.”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말하고 싶지만, 내 손목에 들어가는 힘이 제법 단단했다. 그도 그럴게, 주현이는 말만 애기 같지, 몸은 저 꼭대기의 상급 학년만큼 크다 보니, 고집도, 힘도 장사였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주현이가 박 비서에게 고개를 돌렸다.

“——.”

“—?”

박 비서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주현이를 보다가 주현이가 대답하는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내 등 뒤에 있는 자동차 문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겼다. 아니, 차 안의 모든 문이 다 잠긴 거 같았다. 주현이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후, 다시 말했다. 그 애의 얼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때문일까?

어눌한 말투가…….

“얼른, 인사해. 가하.”

그때는,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칵. 띠리리…….

도어 록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하얀 타일이 깔린 현관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런 내 눈 앞에는 그 애처럼, 예쁘게 손질된 발톱이지만, 그 애와는 다르게 빨간 매니큐어가 깔끔하게 발라진 하얀 발이 보였다.

“너, 들어오는데 인사도 안하니?”

엄마였다. 나는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에 신발을 벗고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채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내 팔을 휙 잡아서 질질 끌고 갔다. 나는 훨씬 키가 큰 엄마를 따라 가려 발을 헛디디며 엄마의 큰 보폭에 맞춰 발을 굴렸다.

“너 이리 좀 와서 말해 봐. 도통 말을 안 하니 뭘 알 수가 있나.”

“…….”

그게 내 탓인가? 나는 커다란 식탁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피곤하다며 들어주지도 않고, 바쁘다며 자리를 비웠던 건 엄마인데……. 엄마는 부엌에 남겨 둔 와인 병을 들어서 볼록한 와인 잔에 따르고 내 앞으로 와서 앉았다. 그녀의 손 안에 있는 잔이 간헐적으로 흔들리는 손짓 아래 와인이 검붉은 자욱을 유리잔 안에 남겼다 말았다 했다. 그녀는 와인 잔을 붉은 립스틱이 발라진 입에 기울여서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그 입 안에서는 알코올 특유의 진한 향이 났다.

“너, 삼라 그룹 애랑 친하니?”

“…….”

“친하냐고 물어봤잖아.”

주현이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식탁 유리에 비춰지는 내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엄마가 허, 하고 웃었다.

“얼마나 친하니? 아니, 어떻게 친해진 거니?”

어떻게 친해졌냐니, 의미가 이상했다. 주현이가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친해질 수 없는, 깍두기거나.

“그냥……. 만났는데. 대호네 생일 파티에서.”

시원시원하고 늘 웃는 얼굴인 대호. 그날 이후로 우리 반에 찾아오지 않고 나를 보면 도망가기 바쁜 대호……. 조폭 집이라고 애들이 소근거렸던 대호의 생일 파티를 다시 떠올리니 투명한 식탁 유리 위로 그날의 물결이 그려졌다. 엄마는 아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 주먹 집 아들? 그러고 보니 그때 본 거 같기도……. 아무튼, 중요한 건. 너. 걔랑 잘 지내. 알겠어?”

“…….”

나는 그 말에 평소처럼 응, 하고 순순히 대답하기 싫었다. 그게 내가 그 애랑 잘 지내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게 관심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이상한 관심을 보이는 게……. 영 껄끄러웠다. 이런 내 태도가 짜증났는지 엄마는 식탁의 유리를 손을 팍 내리쳤다.

“대답 좀 해! 답답해서 원. 너도 이제 애기 아니야. 대답 정도는 퍼뜩 퍼뜩 할 수 있는 거 아니니?”

“왜?”

“뭐?”

고개를 들자 엄마의 얼굴이 구겨진 종이처럼 성을 냈다.

“그 애는……. 엄마가 말하는 수준이야?”

“얘도 참. 평소에는 조용하다가……. 그래. 수준이야. 삼라 그룹 애라고.”

엄마는 머리를 짚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팍, 떴다. 떠진 눈은 주방의 조명을 받아서 희번뜩하게 빛났다.

“혹시 아니? 친하게 지내면 뭐라도 해 줄지?”

“…….”

“그 사람들한테는 별 것도 아니야. 뭐 해 준다고 하면 잘 받아. 알겠어? 그래서, 걔네 집은 어때?”

“우리 집도 잘 살잖아. 왜 받아야 해?”

나는 그 눈이 싫어서 다시 식탁의 유리를 쳐다보았다.

삼라, 삼라, 삼라가 도대체 뭐길래.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친구라는 것은, 너무 다른 것 같다. 꼭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친구를 하던가? 그냥, 같이 있는 게 좋고, 즐거우면 된 거 아닌가. 내 말에 엄마가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깔깔 하고 소리 높여 웃었다.

“얘가, 얘가……. 네가 지금 어려서 뭘 몰라. 내 말 들어. 네가 걔 만난 것도 결국 내 덕 아니니? 그 학교 누가 찾아서 보내 줬다고 생각해? 어?”

“……나 잘래.”

물론 엄마였다. 그리고 돈을 벌어 준 아빠. 내가 원해서 그 학교에 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마저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을 사귀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무언가를 바라면서 친구로 있는 건……. 비겁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식탁 유리에 내 손바닥을 지지하며 식탁에서 떠나려 했다. 그러자 그런 내 손 위로 엄마의 손이 팍, 겹쳐졌다. 나는 그 독한 힘에 식탁을 떠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 말 명심해. 앞으로 걔가 하자는 거 있으면 다 해. 죽으라고 하면 죽고, 기라고 하면 기어. 알겠어?”

“…….”

뻐꾸기의 자식은 뻐꾸기로 자란다.

키워 준 엄마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그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 그건 참 애처로운 사실이다.

뻐꾸기는 뻐꾸기로 태어나고 싶었을까?

만약 자신의 상황을 안다면, 자신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는 다는 것을 안다면, 뻐꾸기는 과연 뻐꾸기로 계속 자라고 싶을까?

나는 그녀가 사는 방식을 지레 강요하는 것에 두고 마지못해서 대답했다.

“……알겠어.”

그렇지만, 나는 뻐꾸기로 자라지 않을 것이다.

「가하, 좋아.」

어눌한 말투가 귓가에서 울리는 동안 내 손을 누르고 있던 엄마의 손이 풀렸다. 내가 자유로워진 손을 되찾아 내 방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엄마의 목소리가 내 등을 쫓았다.

“다른 애들 말고 그 애만 잡아도 너 인생 역전 할 수 있어.”

「가하, 착해.」

남의 것을 탐하고, 욕심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새가 되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 애한테 만이라도…….

내가 방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현관의 도어 록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탁한 구두 소리와 함께 벌건 얼굴의 아빠가 비틀대며 들어왔다. 그 모습에 식탁에 있던 엄마가 다시 짜증을 내었다.

“어, 가하.”

“또 술 마시고 왔어?”

“당신도, 있네. 아씨, 사업하면 다 마시는 거지…….”

아빠는 기름이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비비다가 나한테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풀린 눈초리에 내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는 내게 다가와서 어깨를 붙잡고 숨을 토하다시피 입을 열었다. 썩은 술기운이 내 얼굴 앞으로 쏟아졌다.

“야, 가하야.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해? 어? 새 나라의……. 어린이면 얼른 얼른 자야지. 내일 학교 가잖아…….”

“오늘 일요일이야. 삼라 그룹 애랑 놀다 왔대.”

엄마의 얄미운 참견질에 아빠가 고개를 느릿하게 부엌으로 향했다가 다시 내게 향했다.

“어? 내가 방금……. 삼라 물산 부장이랑 마시고 왔는데……. 어디 부서 애인데?”

“회장 손자.”

엄마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엄마의 대답에 아빠가 우어! 하고 이상한 신음을 냈다. 아빠는 내 어깨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투박한 손아귀에 내 얼굴이 짜라지는 게 느껴졌다.

“야, 가하야 그거 진짜냐? 허……. 네가 나보다 낫다! 걔는 어떠냐? 삼라 놈들 딱딱한데 요구하는 건 존나 많아서…….”

아빠가 그렇게 말하면서 몸의 중심을 잃고 점점 바닥으로 쓰러졌다. 철푸덕, 하고 장판 바닥에 입을 벌린 채로 눈을 감고 누워 버리자 엄마가 골치 아프다는 얼굴로 슬리퍼를 질질 끌었다. 엄마는 대충 아빠를 편하게 눕히고 소파에 있던 담요를 가져와서 그 위로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거기서 뭐하니? 가서 자.”

“응…….”

“진짜, 퍼 마시기만 하고 실속은…….”

내가 방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자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서 투덜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방 안의 불을 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문에 기대어 있다가 등을 미끄러뜨리며 앉았다.

뺨에 자국처럼 남은 아빠의 손 기름이 진득하고, 불쾌한 술 내음을 풀풀 풍겼다. 나는 옷소매로 그 기름 자국을 문지르면서 무릎 위에 얼굴을 묻었다.

더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애가, 왜 결벽증이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사람이 그 학교에 유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우리 반의 반은 되겠지.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있다 보면, 없을 증상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성향이 없는 나도 지금 이런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금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집에서, 자고 올 걸. 그냥, 나중에 와서 혼나고 말걸. 좀 맞고 말걸.

그러면 보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고 있는 내 등 뒤의 문 너머로 거실에 있는 뻐꾸기시계가 뻐꾹, 뻐꾹 하고 애처롭게 울어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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