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여름이 막 오기 전, 학교는 중앙 방송을 실시했다. 교실 한 구석의 커다란 TV에는 중앙 방송실에서 틀어 주는 비디오를 재생해 주었다.
[카르마 시스템 학습 비디오]
다들, 뭐냐 뭐냐, 웅성거렸다.
‘카르마? 그게 뭐지.’
나는 교실 왼쪽의 맨 끝 창가, 대호의 옆 자리에서 가만히 그 방송을 보았다. 방송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들이 잔뜩 나왔다.
‘에스퍼와 가이드’, 같은 생소한 단어들.
같이 보던 대호가 옆에서 내 팔을 쿡 찔렀다.
“가하야.”
“응?”
“너 저거 알아?”
“아니……. 넌 알아?”
다들 모르니까 알려 주는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호는 큰 비밀을 얘기해 주는 것처럼, 내 귓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비밀스러운 간질거림에 내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나도 에스퍼래.”
화면 안에서는 에스퍼란 사람들이 나와서 각종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불이나 물을 쏘아 올리기도 하고, 날씨를 조종하기도 하는 것이 마치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하게 신기한 힘이었다.
‘너도 저런 사람이라고?’
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대호를 바라보았다. 대호는 뿌듯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가하 네가 가이드면 좋겠다.”
“가이드? 내가?”
“응. 그러면 내가 너랑 계속 짝꿍 할 수 있거든.”
“우리 이미 짝꿍이잖아.”
“응. 근데 가하 네가 가이드면, 우리 중학교나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어.”
TV 안에서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등급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앞 옆으로 나오는 말들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뭐인지는 몰라도. 나도 그런 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방송이 끝나고 나자, 선생님이 교탁으로 나와서 말했다.
“내일부터 우리 친구들 모두 다 카르마 시스템 진단을 실시할 거예요. 부모님에게 알림문 꼭 보여 주세요.”
나는 학교가 끝나고 엄마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 탄 채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왜?”
백미러로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꼬리가 제법 매서웠다. 나를 찌를 것 같은 눈길을 피하기 위해 뒷좌석에 발랑 누워서 물어보았다. 그 눈길은 싫었지만 궁금했다. 엄마도 알까?
“카르마 시스템 알아?”
“뭐?”
“학교에서 오늘 말해 줬어. 알림장 꼭 보여 주래.”
“이따 집에 가서 볼게.”
물론 집에 가서도 엄마는 내 알림장을 보지 않았다. 오후에 약속이 있다면서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나가 버린 탓이었다. 학교 숙제도 없어 무척 심심해진 나는 집에 있는 아주머니와 함께 TV를 봤다. 재방송 중인 드라마가 나오는 화면 아래에, 긴급 속보가 떴다.
[긴급 속보: 전 세계에서 출몰하고 있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묶어서 카르마 시스템이라고 분류하기로 서명했습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카르마 시스템의 검사를 실시하기로…….]
오늘 학교에서 봤던 익숙한 내용에 순간 기억이 났다. 맞다. 알림문.
“학교에서 나눠 줬어요. 알림장에 싸인 받고 오래요.”
내 말에 아줌마는 알림장을 보자며 가방을 가져왔다. 푸근한 인상의 그녀는 알림장을 꼼꼼히 읽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좋아했다. 아니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하거나.
“우리 가하는 착해서 좋은 등급이 나올 거야.”
“등급이요?”
“응. 어느 쪽이든 등급이 높으면 중요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는구나.”
‘등급이 높으면 중요한 사람.’
그렇구나. 나는 내일 받을 카르마 시스템 검사를 생각하며 알림장에 아주머니의 싸인을 대신 받았다. 항상 엄마가 늦게 오는 탓에, 대신 아주머니의 싸인을 받은 횟수가 두 손, 두 발가락을 넘었다. 어차피 나는 이 집의 뻐꾸기니까.
[보호자: 박말자]
그리고 다음날 검사 결과 나는, 에스퍼였다. 대호가 바라던 가이드가 아니라.
“너는 뭐야?”
“에스퍼. A.”
“에이. 나는 S급 가이드인데.”
“반장 너는?”
“나도 에스퍼야. A.”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등급표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선명하게 D라고 적혀 있는 등급은 우리 반에서 내가 유일했다. 오죽하면, 검사 결과지를 주던 보건 선생님이 내 등급을 두고 애써 위로를 할 지경이었다. 이 처량한 결과를 숨기고 싶었지만 반 애들의 호기심은 집요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직도 완벽히 섞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가하 너는?”
“그래, 가하 너는?”
“가이드지?”
대호는 내심, 저번에 속삭인 것처럼 내게 눈을 빛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스퍼.”
“에스퍼?”
대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그러자 반장이 뒤에서 내 교복 반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
“어디, 등급 좀 보자.”
“그래, 그래. 영 조용한게 SSS급, 아냐?”
“돌려 줘.”
그리고 내가 그 종이를 도로 되찾아 가기도 전에 반장이 등급표를 펼쳤고, 주위에 몰려 있던 애들은 전부 나의 등급을 보고 말았다.
“D……?”
“어……. 나 처음 봤어.”
“옆 반도 제일 낮은 등급이 B랬는데…….”
“……돌려 줘.”
당황한 애들은 내게 등급표를 돌려주었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나는 화장실로 갔다. 나는 수업 시작종이 치는 소리를 기다렸다가 반으로 돌아갔다. 아까 전 등급 결과 분위기와 달리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나도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내 앞 옆으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D래.”
“진짜?”
“뭐야, 완전 쓸모없잖아.”
“출신은 못 속인다니까.”
나는 그들과 같은 출신이라고 생각한 적도, 말한 적도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던 애들이 쏟아내는 말에 나는 책상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내 옆에서 대호가 소리쳤다.
“시끄러워.”
“…….”
애들은 금세 조용해졌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시끄럽게 쿵쿵쿵, 요동쳤다. 그 소리가 들릴 것 같아서 나는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내 등 위에 얹힌 작은 손바닥이 굽은 등을 서투르게 쓸었다. 대호겠지.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바쁜 엄마는 약속이 있다며 나를 집에 데려다주자 마자 나갔다. 엄마 대신 박 씨 아줌마와 나는 같이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피곤했다.
어김없이 해는 뜨고, 나는 학교를 갔다. 나에겐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그저 낯선 꼬리표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을 제외하고.
하지만 반 애들에게는, 모든 2학년 애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느라 내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내 뒤로 수군거림이 기다랗게 따라붙었다.
“쟤다.”
“진짜야?”
“차라리 가이드였으면 나았을 텐데. 가이드는 희귀하대잖아.”
“그거 알아? 쟤……. ……래.”
“진짜로? 그게 다 거짓말이야?”
‘D’
그게 마치 내 등 뒤에 찍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지나가는 길이면, 급식실이고, 도서관이고 운동장이고 D, D, D. 그 알파벳이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대호는 그런 것을 두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애들의 수군거림은 점점 커져서, 다른 이야기를 끌고 들어왔으니까.
“아파서 갑자기 들어 온 거라고 했는데, 그런 거 아니더라.”
“엄마가 그러는데 완전 근본 없는 집이라고 했어.”
“졸부래.”
“근데 쟤네 엄마, 남들한테는 외국에서 살다 온 것처럼 얘기한대.”
“다 거짓말이야.”
“그러니까 등급이 저렇지.”
“벌 받았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나는 더 이상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 왔을 때 친근하게 말을 걸어 주던 반장도, 반 애들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나의 짝꿍, 대호만이 유일하게 이전처럼 나와 밥을 먹고 말을 걸었다.
오히려 그게 더 비참했다.
마치 세상에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른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남은 학기를 버텼다.
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뉴스에 새로운 속보가 들어왔다.
[에스퍼 발생률이 가이드 발생률에 비해 높은 발생률을 보이는 바……. 1:1 매칭에 대한 불만 해소 방안에 대해 정부가 고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박 씨 아줌마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뉴스를 느긋하게 들었다. 어차피 나랑은 전혀 상관도 없는 소리였다.
‘어차피 나는 D니까.’
보건 선생님이 등급이 낮을수록 가이딩이 필요 없다고 했다.
가이드가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것도 행운이고, 어려운 것’ 이라며 나를 위로했었다. 그다지 큰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가하는 에스퍼라고 했지?”
“……네.”
“우리 가하도 좋은 가이드를 만나야 할 텐데.”
옆에 같이 앉은 아주머니는 버릇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와 달리 주름지고, 굳은살이 붙은 거칠거칠한 손. 그게 좋았다. 그 손길에 나는 문득, 그 풀장에서의 손이 생각났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투명하게 비춰지던 풀장. 그 안을 은색의 비늘처럼 반짝이며 넘실거리던 물, 그 안에서 내 발을 간질거리던……. 물과 같이 맑고 맑은, 파란 눈.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느릿했다. 다시금 그 감각을 떠올리자 내 발가락은 마치 그때처럼 오므라들었다.
‘주현.’
붉은 입술이 내뱉던 이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주현…….’
그 이후로 나는 가끔 혼자 있을 때, 속상할 때, 기쁠 때마다 그 애의 이름을 곱씹고, 나를 바라보던 그 파란 눈을 생각했다.
마치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막대사탕 마냥 아끼고 아껴서 그 애를 빨아 먹었다.
그것만으로도 내 기분은 좋아졌다.
그렇게 늦더위로 가득 찬 여름이 지나갔다.
춘추복을 입고 등교를 하는 날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지난여름이 너무 더워서 더 그렇게 느꼈을까. 이제 내 곁에 오는 애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D였으니까. 최저 등급의 에스퍼니까.
빈자리에 불어오는 찬바람이 더욱 시리게 느껴지는 날, 나는 애들이 반을 다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았다. 대호는 같이 축구하러 가자며 내 팔을 잡았지만 나는 도서관에 오늘까지 책 반납을 하려면, 못 다 읽은 책을 지금 다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남았다. 내가 들어도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대호는 여전히 나를 짝꿍으로 대하지만, 대호 주변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과 같은 신발을, 시계를 차도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달라지지 않았다. 두 눈에 서린 D라는 글자도 여전했다. 아쉬운 얼굴로 떠난 대호를 마지막으로 반이 텅텅 비고 나서야 나는 책을 덮고 급식을 먹으러 반을 나섰다. 배가 고팠다.
예전 학교는 메마른 흙바닥과 칠 벗겨진 콘크리트 건물 아래 있던 조그만 화단이 전부였다. 그와 다르게 이 학교는 학년 별 건물들 사이사이로 커다란 정원들이 제법 아름지게 가꾸어져 있었다. 식물은 사람과 달리 말이 없지만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있다. 혼자가 된 나는 도서관 앞의 정원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구경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갔다. 정원 앞 벤치에서 새로 빌린 책을 읽고 있다가, 대충 시간을 맞춰서 급식실로 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2학년 애들은 거의 없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아마 다른 학년의 식사 시간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러면 차라리 낫다. 이 학교의 사람들은 자신의 무리가 아니면 말을 걸지 않으니까.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하나. 적어도 내 뒤통수에 대고 속닥거리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나는 윗 학년의 뒤를 따라 줄을 섰고, 고소한 밥 냄새를 맡으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우리의 줄 너머로 네다섯 명 정도의 우리와 같은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걸어오는 소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별 신경도 쓰이지 않았을 텐데 내 눈이 움직인 것은, 그들의 낯선 언어 때문이었다.
“———,——.”
“——!”
“——,———?”
“——.”
우리와 같은 춘추용 교복을 입은 그들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그 차이점을 느낀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서 있는 줄에 서 있는 모두가 수군거렸다.
“귀국 자녀반 애들이다.”
“쟤네는 꼭 저렇게 영어 쓰더라.”
“다 뭐 외국 살다 왔으니까…….”
‘귀국 자녀반?’
이 학교에서 내게 생소하지 않은 것이 있던가 싶지만, 숫자로 구분되는 보통의 반 이름이 아닌 것은 특이하기 짝이 없었다. 호기심이 커진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 무리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여자애들 두 명과 남자 셋. 그 무리에 맨 뒤에는,
“——,——.”
그 애가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그 애가 있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만남에 나는 말을 걸어 볼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상급 학년의 등 뒤로 내 몸을 숨겼다.
‘주현.’
수십 번, 수백 번 불러 보던 그 이름을 속으로 되씹어 보았다. 같은 학교라는 기쁨과 동시에 괜히 슬퍼졌다. 이렇게 바보같이 혼자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돌보아 주던 다른 새 어미를 잃어버린, 못난 뻐꾸기 새끼 같은 모습. 그 와중에도 혼자 상상했다.
저 애도 그날의 나를, 그 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까?
“——,——.”
‘나는 빠짐없이 기억하는데…….’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 이질적인 언어를 빠짐없이 들었다. 그래도 그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그 애를 보냈다.
그렇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이질적인 언어의 그 애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