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61)

[2-1]

우연찮게도 이전 학교에서 배정받은 반과 같았다. 파스텔 톤의 노란 여닫이문을 드르륵 밀어내자 그 안에는 똑같이 짜 맞춘 듯, 검은색으로 보일 만큼 어두운 감색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책상을 둘씩 짝지어서 앉아 있었다.

얌전히 앉아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게 못내 무서웠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이 감색의 교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잡은 내 손을 놓고 칠판에 크게 무언가를 적었다. 나는 그것을 확인할 정도로 담이 크지 못해 그저 바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깥과는 달리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상아색 바닥이었다. 선생님은 내 곁으로 와서 내 어깨를 붙잡고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우리 반에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이름은 유가하. 이름 참 예쁘죠? 가하야, 자기 소개할래?”

“아니……요.”

나는 길이 들지 않아서 빳빳한 운동화 앞 코를 계속 바라보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나 대신 계속해서 설명했다.

“가하는 몸이 좋지 않아서 시골에 있다가 왔대요. 여러분, 가하랑 잘 지내요.”

“네.”

아이들은 짜 맞춘 옷차림처럼 대답도 다같이 했다.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반갑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가하가 와서 우리 반이 딱 30명이 되었네. 자리는……. 저기, 혼자 앉아 있는 대호 옆에 앉으면 되겠다.”

그날부로 나는 대호라는 애 옆에 앉아서 [2-1]의 일원이 되었다. 교복을 입어 의젓해 보이던 애들은 애들이라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았다.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애들은 내게 다가와서 물었다.

“가하야, 너 유가하 맞지?”

“응…….”

“나 너 정문 앞에서 봤어.”

“나도, 나도. 엄마 손 잡고 온 거 봤어.”

“나는……. —야. 잘 지내자!”

하나둘씩 자기 이름을 말하던 애들은 이윽고 ‘진짜’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너 어디 살아?”

“너네 아버지는 뭐하셔?”

“어디 아팠어?”

“시골은 어때?”

하나같이 대답해 주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야, 시골에 살지도 않았고, 아픈 적도 없었으며, 아버지가 무엇으로 돈을 버는 지도 잘 몰랐고, 새 집의 주소도 아직 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다 새롭고 낯설었기 때문에.

“잘 몰라…….”

“그래?”

“에이 뭐야.”

“시시해.”

내 대답에 애들은 김이 샜다는 듯이 뿔뿔이 흩어지며 수업 시작하겠다며 자리에 앉았다. 종치는 소리가 창밖으로 울려 퍼지면서 나는 새로운 학교의 첫 수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혀 기대되지는 않았다.

* * *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던가.

새로운 집도, 새로운 학교도 그런 점에서 별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사는 곳과 다니는 사람들이 좀, 달랐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밥을 같이 먹으면서 하나둘씩 얼굴을 익혔을 무렵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애들의 부모들은 그 누구도 옆집 주호네 집처럼 슈퍼를 하지 않았고, 지운이네 집처럼 쌀 배달을 하지도 않았으며, 윤경이네 집처럼 안경점을 하지 않았다.

다들, 소위 ‘사’가 붙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우리 아빠는 뭐지.’

애들의 이름표가 하나 둘씩 머릿속에 외워질 무렵, 나는 이 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특징을 하나씩 찾아낼 수 있었다. 여자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머리 모양으로 자신을 표현했고, 남자애들은 색색깔의 손목시계나 최신 운동화로 자신의 모습을 으스대었다.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학교 규칙에 위반 되어서 그것만이 그들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전부였다.

매일 매일 바뀌는 머리끈 색과 장식, 운동화 브랜드와 종류, 시계들…….

나 또한 비슷하게 신발을 매일 매일 바꿔 신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끼었다. 처음에는 그들도 새로운 나를 환영했다. 그렇지만 그 환영의 분위기가 점점 으스스하게 변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그들과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처음은, 나와 짝을 했던 대호의 생일 파티였다.

내가 오기 전까지는 늘 29명의 반이었기 때문에 대호는 늘 외로웠다고 했다. 심지어 키도 크고 황 씨여서 출석 번호도 맨 끝이었다. 그런데 내가 전학을 오면서 출석 번호 30번을 가지고 대호는 비로소 꼴찌를 면하게 되었으니 무척 기뻤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짝꿍 대호는 내게 잘 해 주고 늘 같이 다녔다.

그날도, 그런 별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5월 쯤 되었을까. 아침 자습시간이 끝나자 막간을 통해 대호가 나에게 카드를 건넸다.

“이게 뭐야?”

“내 생일 파티. 가하 너도 올 거지?”

“생일? 너 언젠데?”

“5월 20일. 우리 반 애들 다 온다고 그랬어. 재밌는 거 많이 할 거니까 와야 돼?”

“응.”

‘재미있는 게 뭘까.’

보통은 치킨이랑 피자를 시켰으니까 오라고 할 텐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들이 사는 세계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수업 때 우리는 뻐꾸기에 대해서 배웠다. 우리 집에도 뻐꾸기시계가 있어서 그런가 내심 반가웠다. 이 좋은 학교에서 선행 학습으로 배우는 것 중에 내가 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말하길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고 했다.

이미 자리가 꽉 찬 둥지라면, ‘알 하나를 먹어 버리고 자신의 알을 끼워 넣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는 그 말에 애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반응에도 담임선생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잔인한 동물의 생리를 설명했다.

“둥지의 주인인 새가 뻐꾸기 엄마 대신 뻐꾸기 새끼를 기르고, 엄마 뻐꾸기는 몰래 몰래 와서 잘 키우나 보고 가요. 새들의 생존 본능을 이용해서 기르는 거랍니다.”

참 기막힌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자식을 자기가 아니라 남이 기르게 하다니. 그리고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다니.

‘사람이 아닌 짐승이라 그런 것이겠지.’

그런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선생님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뻐꾸기는 또 다시 다른 둥지로 가서 자신의 알을 낳고, 반복해서 살아간답니다…….”

학교가 끝나자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줌마가 나와서 인사했다.

“오셨어요, 사모님. 가하 왔니? 배고프지? 지금 밥 차려 줄까?”

네, 라고 말하려는 나를 두고 엄마가 호통을 쳤다.

“아줌마, 지금 뭐라고 그랬어요?”

“예?”

“우리 애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요. 도련님이라고 불러요. 웃겨서 정말……. 이래서 못 배운 사람들은…….”

“엄마, 난 괜찮…….”

“너도! 저러면 가만히 있지 말고!”

엄마는 성을 내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가만히 서서 풀 죽은 아줌마를 보았다.

‘난 괜찮은데.’

내 이름에 금칠을 한 것도 아니고, 어제 읽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도 아닌데 부르지 못할 것은 뭐란 말인가. 그러자 박 씨 아줌마가 내게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안해요, 도련님. 배고프죠? 얼른 밥 차려 줄게요.”

“아줌마.”

“응?”

아줌마는 수저를 놓다 말고 나에게 몸을 틀었다.

“제 이름 불러도 돼요.”

“……그래요. 사모님 안 계시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말끝을 흐렸다. 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내 이름에 뭐 잘난 것이 있다고 그렇게 말한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내 방이 어색했다. 그리고 하루걸러 바뀌어 가는 엄마의 태도도. 나에게 엄마는 살짝 늘어진 티셔츠로 반겨 주는 이미지였지 사람 수준 운운하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순간 거실에 걸려 있는 뻐꾸기시계가 작게 뻐꾹, 뻐꾹 하고 울었다.

‘뻐꾸기.’

남의 둥지를 빌려서 자식을 키운다는 새.

나는 아직도 어색한 방을 둘러보며 자조했다.

이 낯선 둥지에 있는 나는, 어쩌면 어미가 버린 새가 아닐까.

* * *

날이 흐르고 흘러 짝꿍 대호의 생일 날짜가 왔다. 카드에는 평범한 집 주소가 아니라 학교 앞이라고 적혀 있었다.

‘학교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파티를 하려던 걸까.’

나는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가서 사 온 선물을 손에 들고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학교 앞에 도착했다. 엄마는 정문 앞에 떡하니 서 있는 긴 버스를 두고 어떤 사람이 이런 대로에서 버스를 타냐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투덜거림에 대한 대답은 곧이어 풀릴 수 있었다. 내가 운동장 안에 주차된 차 밖으로 나오자 비슷하게 엄마 아빠 차를 타고 온 반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손짓하며 불렀다.

“가하야, 너도 왔구나!”

“어……. 응.”

“얼른 와, 네가 마지막이야.”

“어디로 가?”

내 질문에 애들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까르륵 웃었다. 마치 바보 같은 질문을 받은 사람들 양. 내 옆에 있는 반장이 말했다.

“가하 너, 생일 파티 처음 가 보니?”

“아니……. 그건 아닌데.”

안경을 쓴 반장은 우리가 서 있는 보도블록에 그늘이 질만큼 높은 버스를 가리키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우리에게 비추는 햇볕만큼 못내 따뜻했다.

“우리 이거 타고 가는 거야. 이거 대호네 별장 가는 버스거든.”

“별장?”

“응. 너희 집도 별장 있니?”

“그건 잘…….”

잘 모르겠다. 있는지 없는지. 내 대답에 등 뒤에서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가하야, 친구들이니? 안녕 얘들아, 가하 엄마야.”

“안녕하세요.”

엄마였다. 나는 다시 나온 엄마의 어색한 목소리에 괜히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애들이 한 마디씩을 더했다.

“가하야, 너희 엄마 되게 예쁘다.”

“엄마 닮았구나.”

칭찬일 게 분명한 말이지만 나는 그게 별로 달갑지 않았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애들은 얼른 타라는 버스 기사 아저씨의 말에 쪼르르 참새들 마냥 버스로 들어갔다. 나도 뒤따라 가는 길에 엄마가 내 팔을 살짝 꼬집으며 뾰족하게 말했다.

“너, 왜 대답을 안 하니?”

“그냥…….”

정말 그냥. 그냥……. 내 대답에 엄마는 빨간 입술을 목소리만큼이나 뾰족하게 내밀었다.

“너는 정말, 아빠를 닮아서 답답해.”

그 모습이 거실 벽에 걸려서 정각마다 나와 부리를 내미는 뻐꾸기와 닮았다고 하면, 억지일까?

달리기 시작하는 버스를 스쳐가는 풍경에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피곤했다. 엄마의 불평도, 애들의 악의 없는 말도, 그리고 편안한 리무진 버스의 가죽시트도…….

“가하야, 일어나.”

흔들리는 움직임에 짜증스러움을 느낄 때, 버스는 멈춰 있었고, 좌석의 중앙 통로로 애들과 애들의 부모님들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엄마의 손을 잡고 같이 내렸다. 번쩍번쩍하게 시야를 부수는 졸음을 쫓아내며 버스에서 내리자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산을 쏴아아 하고 스치는 바람이 나를 휘감았다. 마치 순간 이동 마법을 한 것처럼, 높다랗고 빽빽한 건물 숲은 없고 진짜 산이 우리가 있는 장소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 고요한 자연에 있는 사람은 우리 반 애들과, 보호자들, 그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리무진 버스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풍경을 보고 있는 동안 정갈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가씨들, 도련님들, 그리고 보호자 분들 여기로 오시죠. 대호 도련님의 생일을 축하하러 발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서 권율이라고 합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몇몇 사내들이 길을 만들며 애들과 보호자들을 숲 속 안쪽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펼쳐지는 산림의 모습은 과학 수업 시간 때 보던 숲의 모습과 제법 비슷해 보였다. 내가 정신없이 나무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는 동안 귓가에는 애들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퍼지고 있었다.

“대호네 집이 뭐하는 집이지?”

“야, 너 몰라?”

“대호네 조폭이잖아.”

“허얼……. 무서워.”

칼 쓰고 때리는 조폭? 나는 그 소리에 괜히 한 번 옆에 있던 검은 정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나쁘지 않게 생긴 외모의 사내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조폭으로 보기에는 조금…….’

내가 상상한 비주얼은 아니었다. 내가 TV를 너무 많이 봤나? 애들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온 건 아닌가? 그렇게 작게 실망하며 시선을 내리는데 턱,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사내의 왼손 약지가 다른 손가락보다 유난히 짧았다.

마치 잘린 것처럼.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나는 내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옆에서 걷던 엄마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멀쩡했다.

우리가 도착한 별장 안은 새로 지은 것인지, 새하얀 두부처럼 정갈하게 잘려 있었다. 두부 같은 빌딩 앞에는 푸른 타일이 시리게 반사되는 풀장도 길게 나 있었다. 그 모습에 애들과 보호자들 너나 할 것 없이 와, 하고 탄성을 내었다. 나도 속으로 조금 놀라고 있었다. 어디 외국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집이었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별장인가?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대호가 풀장 옆의 잔디밭을 걸어오며 우리를 반겼다.

“얘들아, 와 줘서 고마워.”

“대호야, 생일 축하해!”

“응, 다들 재밌게 놀다 갔으면 좋겠어. 권 비서.”

“네.”

대호는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익숙한 듯이 권 비서에게 턱짓을 하자 비서는 익숙하게 사람들을 이끌며 더 안쪽 정원으로 안내했다.

그제야 우리는 대호의 생일 파티 상을 볼 수 있었다. 몇 개의 테이블을 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개로 나눠진 테이블은 우리가 충분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길었다. 테이블 위에는 화려한 꽃무늬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고, 1, 2, 3……. 5단 케이크가 파란색으로 정교하게 쌓여 있었으며, 통구이로 보이는 커다란 닭과, 김이 오르는 스테이크, 수프, 샐러드, 과일들……. 어느 나라에서 온지 모르는 음식들이 여러 가지 수로 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음식들을 둘러싼 작은 종이들에는 반 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도 내 이름을 찾아서 앉았다. 공교롭게도 맨 안쪽의 자리였다. 마치 교실에서 내가 창가에 앉는 자리처럼, 중앙의 바로 왼쪽. 내 옆에는 반장이 앉았다.

“가하야, 바로 옆이네.”

“응.”

“대호가 여기 앉을 거야.”

“그렇구나.”

애들이 다 앉고, 보호자들도 통 유리창을 활짝 열어 둔 건물 내부의 식탁에 다 앉아 우리는 대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맞은편에는 아직 누구도 앉지를 않았다.

‘누가 앉을까?’

나는 내심 비어 있는 자리를 궁금해 하며, 대호를 기다렸다. 대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애와 함께 돌아왔다. 멀리서 보이는 대호의 모습에 나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대호도 나를 향해, 아니 우리 테이블을 향해 두 손을 크게 휘 휘 흔들었다.

그리고 그런 대호의 뒤로 좀 더 키가 큰 어떤 애가 하나 오고 있었다.

‘누구지?’

다가오면 다가올 수 록 난생 처음 보는 분위기에 나는 유심히 그 애를 살펴보았다.

잘 익은 벼처럼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갈색 머리, 엄마의 손바닥만한 작은 얼굴 안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어딘가 달랐다. 어디가 다른가 하면…….

“대호야, 걔는 누구야?”

“여기는 내 친구, 주현이야.”

멀리서 봤을 때는 우리랑 비슷한 얼굴이었다. 요상한 소리 같지만, 그랬다.

그렇지만 가까이서 보니, 우리랑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얇상한 코도, 하이얀 얼굴도, 엄마가 즐겨 바르는 루즈의 색깔과 같은 입술도. 한 눈에 봐도 무척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무엇보다도.

“눈이 파랗네.”

그 애는 눈이 파란색이었다.

나는 내 맞은편에 앉는 그 애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모르고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 애와 눈이 마주쳤다. 대호가 그런 나를 보면서 웃었다.

“주현이 눈 신기하지? 근데 너무 쳐다보지는 마. 얘 그런 거 싫어해.”

“아……. 미안.”

내가 머쓱함에 앞에 있는 포크를 쳐다보고 있는데 반장이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이름은 한국사람 같다.”

“주현이는 우리 아버지 친구 아들이야. 외국에서 자라서 한국어 잘 못해.”

“어디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뭐하시는데?”

“으응……. 그건 잘 모르겠고, 스웨덴에서 자랐대.”

늘 시원시원하던 대호가 주춤거리며 대답을 피했다. 나는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고 눈알만 살짝 굴리며 그 애가 있는 자리를 보았다. 테이블 위로 그 애가 입은 하얀 색 바탕에 만화 영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가 보였다.

‘나도, 저거 좋아하는데…….’

그 익숙한 그림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다가 다시, 그 애랑 눈이 마주쳤다. 태어나서 푸른 눈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그런가, 다시 보아도 신기하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애가 대호에게 말을 걸기 까지는…….

“——,——.”

“——,——.”

대호는 끄덕 끄덕 거리면서 그 애의 말에 대답했다. 나는 낯선 언어에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촛불에 불붙이겠습니다.”

권비서가 중앙에 있는 큰 파란색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동안 대호는 나의 어깨를 톡톡 쳤다.

“가하야,”

“응.”

“주현이 마음에 들어?”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나는 당황스러운 말에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아무튼 대호가 내 반응에 기쁜 듯이 살짝 웃었다.

“그렇지? 근데 외국에서는 쳐다보면 관심 있는 줄 알아. 너무 그러지 마. 내 친구인데 질투난다.”

“어, 어……. 조심할게. 미안. 쏘, 쏘리?”

나는 미안하다고 작게 그 애에게 말했고, 그 애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대호에게 뭐라 뭐라, 그랬다. 대호가 대답을 하다가 권 비서가 들고 오는 케이크로 인해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애들이 다 몰려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대호의~ 생일 축하합니다!”

애들의 엄마들까지 와서 노래를 부르고, 대호가 불을 끄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차려진 음식을 맛 볼 수 있었다. 아까 길 안내를 도맡던 아저씨들이 우리 테이블 사이사이에 서서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우리 몫의 그릇에 음식을 골고루 풍성하게 덜어서 돌려주었다.

그때서야 알았지만, 여기 있는 아저씨들 모두 누구 하나 손이 성한 사람이 없었다. 엄지나, 검지 혹은 새끼손가락이 조금씩 짧았다. 나는 다시 내 손을 펼쳐서 보다가 포크를 들었다.

“대호야.”

“응?”

“생일 케이크는 안 먹어?”

내 질문에 대호랑 애들이 웃었다.

“하하, 가하야. 저거 먹는 거 아니야.”

“시골에서 자라서 모르나 봐.”

케이크를 먹지 않는다니?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애들처럼 나도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중에 밥을 먹으면서 애들에게서 들었는데, 대호의 생일 케이크 같은 케이크는 먹는 것이 아니고 장식들을 보면서 즐기는 것이라고 했다. 썩지도 않아서 계속 보관도 할 수 있다는 말에 더 놀랐다. 고작 케이크 하나로도 나와 그들의 차이가 확 느껴졌다.

‘먹지 않는 생일 케이크…….’

즐거운 식사 시간도 그렇게 지나가고, 애들은 하나 둘씩 엄마들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갔다. 이제 집에 가는 시간인건가. 나는 작별 인사를 하려고 별장으로 들어가던 대호를 붙잡았다.

“대호야.”

그러자 대호가 어깨에 긴 수건을 걸치고 나를 훑어보았다.

“응? 가하 넌 옷 안 갈아입어?”

“옷?”

“응. 우리 이제 풀장에서 수영할 건데.”

대호의 말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수영?’

“아……. 어……. 수영복 안 가져왔는데.”

“아 그래? 카드 뒤에 써 놨는데…….”

“……미안.”

‘카드 뒤? 나는 앞에만 봤는데…….’

빠른 내 사과에 대호가 괜찮다며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는 늘 그렇듯이 미소 지었다.

“미안하긴, 우리가 너무 작게 썼나 봐. 아니면 내 수영복 빌려 줄까?”

“으응. 아니, 나 괜찮아.”

“그래. 좀 있으면 애들 나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

“응…….”

그렇게 대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건물 안에서는 정말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반 애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만 몰랐던 것이다. 나는 잔디밭에 가만히 서 있다가 별 수 없이 풀장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애들은 거리낄 것 없이 참방참방 소리를 줄줄이 만들며 풀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풀장 모서리에 앉아서 그걸 구경했다. 그런 내 옆으로 반장이 와서 말을 걸었다.

“가하, 너 수영 안 해?”

“나 수영복 안 가져왔거든.”

“아 그래? 아쉽다. 그래도 다음 달에 학교에서 수영 교실 가니까 그때 같이 수영하면 되지 뭐.”

“응.”

다음 달에 수영 교실이 있는지도 나는 몰랐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나한테 수영은 여름 방학에 바닷가에 가서 하는 건데…….’

학교에 수영을 하러 간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반장은 그렇게 말하고 내 옆에서 풀장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첨벙, 하고 크게 튀어 오른 물벼락에 눈앞이 물로 젖어들었다. 때 아닌 물벼락에 나는 목청 높여 반장을 불렀다.

“야, 반장!”

“헤헤, 이왕 온 거 이렇게라도 물 맛 좀 보고 가야지.”

그러면서 얄밉게 너른 풀장 중앙 쪽으로 수영을 하며 멀어졌다. 나는 일어서려다가 아까 잔뜩 먹은 음식들로 몸이 무거워서 팔 안에 무릎을 안고 도로 앉아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마르겠지.’

축축하게 젖은 옷 너머로 서늘하게 산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몸이 떨려서, 나는 젖은 셔츠의 물기를 비틀어 짰다. 몸을 간간이 바르르 떠는 내 머리 위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어?”

시야를 가릴 정도로 긴 무언가는 수건이었다. 나는 보들보들한 감촉을 가진 수건의 잡아 내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맑은 하늘을 등진 채로 나를 내려다보는 애는,

“…….”

그 애였다.

그 애는 나를 향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윽고 빙, 둘러서 풀장의 사다리 쪽으로 내려가서 풀장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애가 준 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고, 아직 추운 몸을 감쌌다. 그런 내가 있는 풀장의 끄트머리에 대호가 물속에서 팍 튀어 나왔다.

“푸하! 뭐야, 가하 너 다 젖었네.”

“……반장이 그랬어.”

“그으래? 반장 안 되겠네.”

대호가 주먹을 쥐고 반장 혼내 주겠다며 풀장 저만치로 사라졌고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리고 내가 있던 코너를 미미하게 부딪치던 너울 사이로 무언가가 촥, 솟아올랐다. 반장이 다시 물벼락을 뿌리나 싶어서 놀란 나는 얼른 일어나 뒷걸음질을 쳤다.

“…….”

다행히 반장도, 반장의 장난도 혹은 대호도 아니었다.

그 애였다.

그 애는 뚝뚝 물이 흐르는 머리를 넘기며 잔디밭 쪽으로 간 나를 향해 웃었다. 그러다 내가 앉아 있던 풀장의 턱 가까이 다가와, 두 팔을 포개어 턱을 기대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이질적인 시선에 나는 가만히, 얼어 있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 애는 손을 뻗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오라고?”

나는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근데 한국어 못 한다고 대호가 그랬는데. 알아 듣는 건가?’

내 고민이 무색하게 그 애는 연신 끄덕이면서 다시 손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나는 수건을 둘러싼 채로 천천히, 그 애에게 다가갔다. 맨발 아래 부드럽게 밟히는 풀이 자박한 소리를 내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애는 기대고 있던 풀장 턱에서 팔을 풀고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면서 자기가 기대고 있던 풀장 턱을 젖은 손으로 툭툭, 쳤다.

‘앉으라는 건가?’

나는, 물이 묻지 않은 풀장 턱으로 발을 옮겨서 앉았다. 아까처럼 다리를 안고 앉아 있으니 그 애가 내가 앉은 풀장 턱 옆으로 와서 손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그 손짓에도 나는 가만히 있었다.

처음 보는 낯선 애지만, 나를 해칠 것 같지 않았다.

그 애의 손등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기울어진 팔꿈치로 또르륵 또르륵 굴러가면서 내 발목을 적셨다.

내 발목을 잡은 그 손길은 서늘하고, 축축했다.

그러면서 내 다리를 살짝 살짝 당기는 것이, 내가 물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수영복이 없었으니까. 여기서 더 젖었다가는 집에 돌아가는 길이 찝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그 애가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발목을 살살 잡아 당겼다.

‘안 된다니까.’

그런 우리에게 대호가 다가왔다.

“주현아, 뭐해?”

“——,——…….”

대호는 그 애의 말에 아아, 하고 나를 봤다.

“발만 담가 보래.”

“아…….”

그런 뜻이구나.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다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서 다리를 풀장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 애가 잡고 있던 내 발목을 풀장의 물속으로 당겼다. 그 사이에 파릇한 풀물이 번진 발끝은 시원한 풀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발목 주위로 투명한 파란이 잔잔하게 일었다. 그래도 그 애는 여전히 내 발목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걸 보던 대호가 입을 열었다.

“——,——?”

“———,——.”

“——,——.”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디가지? 내 발을 자유롭게 해 주려던 것이 아니었나?’

나는 여전히 그 애에게 잡혀 있는 발목의 발가락을 가만히 꼼지락거렸다. 그 애는 그저 내 발 뒤꿈치를 잡고서 물속에서 살살, 흔들었다. 마치, 수영을 처음 가르쳐 주는 것처럼 발을 흔들 때에, 언뜻 언뜻 발가락이 물 밖으로 나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풀물이 물든 발가락 사이사이로 물이 차륵차륵 흐르며 간지럽혔다. 나는 오묘한 감각을 물속에서 즐거이 휘저으며 그 애를 보았다.

물에 젖은 파란 눈은 어쩐지 더욱 파랗게 보였다.

그러다가 그 애가 내 발을 흔들던 것을 멈추고, 내 왼쪽 발목을 잡고 발가락 사이를 살금살금 만져대었다. 말랑한 발밑을 더듬는 손길에 척추 부근이 쭈뼛 섰다. 하지만 그 애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발을 뺄 수도 없었다. 나는 결국 전달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했다.

“간지러워…….”

내 말을 들은 그 애는 나를 바라보더니 설핏 웃었다. 그리고는 검지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주현.”

주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그 애의 입술 사이로 나온 어눌한 단어. 대호가 말한 그 애의 이름이었다.

‘주현…….’

나는 입 안에서 그 이름을 한 번 곱씹어 보았다. 그 이름에서는 맑은 물처럼 촉촉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젖은 손가락의 방향은 이윽고 나를 향했다.

“주현.”

“주현.”

나는 그 애를 따라서 말했다. 그러자 그 애의 파란 눈이 접히고 입술에 미소를 머금으며 나를 가리켰다. 그때 알았다. 그 애가 내 이름을 물어보고 있다는 것을.

“가, 가하.”

“가가하?”

긴장으로 더듬은 말을 내 이름으로 알아들었는지 그 애는 내 발음을 흉내 내었다.

“아니, 아니. 가하. 그냥, 가하…….”

“아, 가하……. 가하.”

‘가하.’

내 이름을 중얼거리는 그 애가 아까처럼. 아니, 아까보다도 더 환히 웃었다. 그냥 내 이름을 불러 준 것 뿐인데. 나에겐 참 기분이 좋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내 이름이 무척 특별하게 들렸다.

그 어눌한 발음과, 파랗게 웃던 눈, 얇게 휘어지던 젖은 입술……. 그 모든 것들이 내 이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 애는 그날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