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부 그 애 (1)
사람이란 늘 높은 곳을 갈망한다.
설령 좀 더 높은 곳에 있다고 해도 이전의 낮은 자리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좀더, 좀 더, 높은 곳을 향할 뿐이다. 모든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욕망인 것도 같다. 아니, 욕망하기에 사람일 수도 모르겠다.
나의 부모도 그런 사람들과 별다르지 않았다.
소심한 월급쟁이였던 아버지가 악덕 사장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차렸다. 작게 시작한 사업은 호조인 경기를 타고 제법 잘 되었다. 얼마나 잘 되었냐 하면, 하루는 엄마가 비싸다고 사 주지 않은 메이커의 운동화를 사 온 날이 있었다. 나는 엄마가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내가 없는 사이에 환불을 할까 봐, 받자마자 신고 나가서 동네 애들에게 혹독한 새 신발 환영식을 받았다. 하얀 운동화가 애들의 발길질로 거뭇거뭇하게 때가 타고나서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새 운동화를 으스대며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고, 그 즈음에는 부엌에 처음 보는 가전이 자리를 차지했다. 전에 거실에서 엄마가 보다말고 펼쳐 둔 여성 잡지의 광고지 한 장을 가득하게 채우던 냉장고였다. 나는 이게 어디서 났냐고, 내 키의 두 배만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러자 엄마가 수줍게 웃었다.
“어디긴.”
그 대답에도 우리 집이 돈을 제법 벌고 있다는 게,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그날을 기점으로 하루, 이틀, 삼일, 가전이 하나씩 손자국 하나 없는 것들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낡은 가전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슬슬 자라는 내 키를 체크해 주던 냉장고도, 두어 번 때려야 아나운서의 얼굴을 보여 주던 TV도, 여름마다 과부하로 인해 털털 흔들리며 멈추는 선풍기도. 집밖에 반쯤 허물어진 담벼락 아래 세워 두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가 가져가고 없었다.
새것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흔적과 기억을 차지한 가전들이 사라져 가는 게 조금 아쉽긴 해도 싫지는 않았다. 어쨌건, 저녁밥을 먹을 때 흘러가듯 무언가를 말하면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아빠가 퇴근길에 사 오곤 했으니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맞춰 살던 평범한 우리 집이 변하기 시작했던 게, 그때부터였다.
하루는,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 커다란 탑차가 세워져 있었다.
‘이 좁은 골목길에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걸까?’
그런 막연한 의문이 들 정도로 커다란 차였다.
‘누가 이사를 가나?’
나랑은 전혀 상관없을 차를 지나쳐서 나는 우리 집이 있을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학기가 끝난 오늘, 놀이터에서 반 친구들과 모아둔 포켓몬 딱지를 가져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들어간 골목길에서 땀내 나는 옷을 입은 아저씨들이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와 박스 따위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얘, 비켜, 비켜!”
그저 아저씨들의 귀찮음이 역력한 목소리에 순순히 피해 가며 집으로 향했다. 담벼락이 좀 무너진, 파란 양철 문이 달린 우리 집으로.
‘근데, 왜 아저씨들이 우리 집에서 나오는 거지?’
나는 우리 집을, 마치 남의 집에 온 사람처럼 조심스레 곁문을 열고 빌라의 옆쪽 계단을 달음박질했다. 현관 앞에 가자 늘 닫혀 있던 검은 철문은 활짝 열려있고 신발장 근처에, 구겨진 신문지 따위가 잔뜩 널려 있었다.
“엄마?”
‘여기 우리 집, 맞는데.’
나는 초인종 위에 있는 명패를 다시 보았다. 한자는 잘 못 읽지만, 까맣게 패인 한자가 그제와 별다르지 않았다.
[유철수]
눈을 비비고 봐도 우리 아빠 이름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에서 거실 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손안에 플라스틱 박스와 들여온 지 얼마 안 된 새 가전들을 들고 방 사이를 분주하게 다니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눈을 껌뻑거리기만 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내가 멀뚱히 현관에 서 있는 동안 엄마가 안방에서 낡은 단화를 신은 채로 거실에서 항아리를 포장하던 아저씨 옆으로 가서 부탁했다.
“이거는 뽁뽁이로 싸 주세요. 중요한 거예요.”
“예.”
“엄마!”
그 모습에 내가 나름 힘껏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그제야 나를 알아차린 듯, 현관에 있는 나를 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가하야! 학교 벌써 끝났니?”
“어? 어……. 우리…… 이사 가?”
내 말에 엄마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새 집 가잖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안 했는데…….”
기어들어 가는 내 대답에 엄마는 미용실에서 비싸게 돈을 주고 한 파마머리를 긁었다. 그러면서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내 두 팔을 붙잡고 물어봤다.
“어머, 그래? 아무튼, 지금 알면 됐지 뭐. 우리 오늘 새로운 집 갈 거야, 기대되지 않니?”
“…….”
너무 갑작스러운 이사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엄마가 내게 말하는 것을 까먹어서 그랬을까, 나는 쉽게 ‘좋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적지근한 내 반응에도 엄마는 자랑스레 새 집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새 집은, 방도 더 크고, 길거리도 더 깔끔하고, 이웃들도 괜찮고. 작지만 마당도 있으니까 네가 기르고 싶었던 강아지도 기를 수 있을 거야. 응? 좋지 않아?”
“학교는?”
애들이랑 오늘부터 방학 내내 매일매일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나는 오늘 수업에서 같이 떠들던 친구들의 까만 얼굴들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은연중에 가기 싫다는 뜻을 내비쳤다.
가구는 바꿀 수 있지만 친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냥 싫었다. 그러자 엄마는 웃기지도 않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어차피 새 학년으로 올라가니 잘 됐지. 이참에 그런 애들을 잊어버리고, 가서 더 좋은 친구들 사귀어.”
“걔네도 좋은 애들인데…….
“좋기는!”
엄마는 눈썹을 찌그러뜨리며 내 팔을 찰싹, 때렸다.
‘그럼 좋지 않다는 건가?’
전에 친구들이 집에 왔을 때 엄마는 좋은 친구들이 나와 잘 지내 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나는 엄마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인 아픔을 느끼며 감상을 말했다.
“아야.”
“너 이제 걔네랑 같은 수준 아니야. 알겠어?”
수준이라니. 나는 따가운 팔을 문지르며 엄마의 번득거리는 눈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엄마는 내심 뿌듯한 얼굴로 내게 신신당부 했다.
“너도 위쪽 공기 좀 마셔 봐야지. 언제까지 이 바닥에서 구르려고 그래.”
위쪽 공기는 뭐고, 바닥은 뭐란 말인가?
사람이라면 바닥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던가.
내 어린 머리로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말이지만, 하나는 알았다.
이 집에 더 이상 살지 않을 거라는 것.
나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서, 뽑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도 반질반질한 광을 내는 검은색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는 책가방을 팔로 감싼 채로 얌전히 창밖을 구경했다. 강 너머를 이어 주는 커다란 다리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새 차도 어색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반듯반듯하게 썰어 둔 무처럼 늘어진 아파트들도 영 적응 되지 않았다. 나는 앉은 자리 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남산을 괜히 돌아서 보았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보이는 그곳이, 내 눈에 익숙한 편안함을 주었다. 그러자 아빠가 가만히 좀 앉아 있으라고 했다. 나는 순순히 제대로 앉아서 다시 어색한 풍경을 구경했다.
회색빛의 강은 내 굳은 마음도 모르고 다리 밑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 * *
새 집은 컸다.
얼마나 컸냐면, 우선 안방과 내 방 말고도 방이 다섯 개는 더 되었다. 그것을 두고 아빠는 서재를 만들 거라고, 엄마는 동생 방으로 딱이라며 웃었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임신을 한 것을. 엄마 아빠는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아니면 일찍 치매가 왔거나.
새로운 집의 짐 정리는 해가 저물기 전에 끝났다. 그건, 이전 집보다 새 집이 커서 공간이 넉넉하다 보니 빨리빨리 정리가 된 것도 있었고. 웬만한 물건은 이미 옛 집이 있던 동네에 다 버렸기 때문에 별다른 짐이 없었던 이유도 한 몫 했다. 예를 들면 엄마가 큰마음을 먹고 산 덕분에 내 유치원 시절을 책임져 준 세계 동화 전집 같은 것. 이사하는 김에 내버린 가구와 가전을 눈치 보다가, 하나 둘씩 주워 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두고 엄마는 구질구질하다며 도리질을 쳤다.
‘하지만 엄마도 예전에는 주워 오곤 했었는데.’
나는 엄마가 때린 팔이 아직까지도 얼얼해서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새로운 집의 청소까지 다 마치고 나서야 엄마와 아빠는 피곤하다며 짜장면 배달 그릇을 새 집의 튼튼하고 높은 담벼락 밑에 던져두고, 넓고 넓은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피곤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라서 곧장 내 방으로 들어가서 며칠 전 새로 들인 침대 위에 누웠다. 뻑뻑한 눈을 감자 교실에서 매일 매일 보자고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생각났다.
‘영우, 윤경이, 지운이, 주호…….’
나는 결리는 곳 하나 없는 침대에 누워서도 피곤한 듯 아닌 듯, 생소한 감각에 잠이 오지 않아 연신 너른 침대 위를 뒤척거렸다. 그 애들의 얼굴과 이름이 내 머리 속을 돌아다녔다. 나는 말도 하지 못하고 친구들을 등지고 와 버린 셈이었다. 그게 어쩐지 만화 속에서 보던 배신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불확실한 죄책감에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침대 맡 위로 쏟아지는 은은한 달빛이 어두운 내 방 구석을 밝혀 주었다.
엄마는 같은 수준이 아니니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왜 우리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걸까.’
어째서 나는 떠나와야 했는지, 또 왜 많은 것들을 두고 와야 하는지 몰랐다.
그건 이 낯선 방의 모습만큼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에 들뜬 잠을 자며 새벽을 맞았다.
새 집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우리 가족의 도톰한 옷차림은 얇게 변해 갔다. 동시에 엄마의 불룩한 배도 숨기지 못하고 달덩이처럼 둥그렇게 드러났다. 그리고 집에는 엄마가 임신으로 거동이 불편해질 테니 가사를 도와주는 아줌마가 오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온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내가 갈 학교에 대해서 으레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주 유서 깊은 사립학교라고 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고, 예쁜 남색의 교복을 입어야 하며, 한 반에 30명도 안 되니 두루두루 친해질 수 있으니 더 좋을 거다. 이전과 다르게 예쁘고 의젓한 친구들이 참 많을 것이라고. 그런 학교에 내가 가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며, 앞으로는 이전 학교에서 하던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 등.
그러면서 엄마 아빠 친척을 통틀어 이런 학교에 가는 건 나밖에 없다며 뿌듯함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그 학교에 대해 어떠한 장점과 자랑거리를 늘어놓아도, 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흐린 미련이 남아 있어서 그런가, 마음속에 깊이 닿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명동 입구 쪽 양장점에 데리고 가서 교복을 맞출 때에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마치 TV에서 보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일어나면 사실 모든 것이 다 꿈이고, 난 끄트머리가 노랗게 물든 벽지가 발라진 방에서 깨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교복을 맞춘 기념으로, 엄마가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 가서 새 구두와 나이키 운동화를 맞춰 주어도 딱히 기분이 좋다거나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점원이 신겨 준 새 신발을 신고도 뚱한 나를 두고 엄마는 말을 꺼냈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준대. 좋은 학교에 가게 되었으니까 사 주는 거야.”
“…….”
“싫니?”
“그건 아닌데…….”
좋은 학교라는 것은, 엄마가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지 않은가.
달갑지 않는 내 태도에 엄마는 배가 아주 불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차라리 그런 태도가 학교 가서 더 나을 수도 있다며 히죽거렸다.
확실히, 예전 같으면 나는 운동화를 두고 신이 나서 사자마자 신고 가겠다며 생떼를 썼을 것이다. 그런 나를 두고 엄마는 혹시 모르니까 애써 달래 주며 헌 운동화를 신겼겠지. 만에 하나로 환불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엄마가 점원과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하얗고 빳빳한 운동화 코를 바닥에 콕콕 찔렀다. 길이 들지 않은 운동화 특유의 빳빳함이 발끝을 타고 느껴졌다. 이런 길이 들지 않은 운동화는 몇 개인지는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방 안에 쌓아 올릴 정도로 제법 수가 되었다.
그러면, 이건 몇 번째일까.
* * *
첫 등교 날, 나는 아빠가 주말에 반짝반짝 빛나도록 닦은 세단을 타고 등교했다. 운전대에 앉은 아빠는 나를 데려다주면서 더 이상 낡은 양복이 아닌, 실밥 하나 보이지 않는 새 정장을 입었다.
빨간 벽돌이 높다랗게 쌓여서 담이 쳐진 학교의 정문 앞에 나를 내려주면서 같이 내린 엄마는 연신 주변을 살폈다. 나도, 반사적으로 엄마처럼 주변을 살폈다.
뭐 신기한 거라도 있는 걸까? 살피는 내 눈에 잡힌 운전석의 아빠도 은근히 차창을 내리면서 주변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정문 주변에, 부모의 손을 잡고 오는 애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차에서 내리는 같은 교복 차림의 애들도 꽤 보였다. 개중에는 각진 모자까지 쓴 한 아저씨는 애가 내리는 차문을 잡고 있기도 했고, 안경을 쓴 예쁜 누나가 허리가 꺾어지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들 앵무새처럼 입에 똑같은 호칭을 잊지 않았다.
‘도련님, 아가씨.’
언젠가 엄마가 보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호칭에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빠의 팔을 잡자 아빠가 차창 너머로 팔을 내밀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응?”
그렇다고 나를 이 학교에서 도로 데리고 가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떠나가 버린 아빠의 차를 보면서 나는 실망감을 간직한 채로 엄마와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할 때 쯤, 서 있던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보고 사람 좋게 웃었다.
“전학 오셨군요. 연락 받았습니다.”
“예. 교무실이 어디죠?”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어떻게 내가 전학 온 걸 알았을까?’
나는 말도 없이 꿰뚫어 보는 남자에게 오싹함을 느끼며 로봇이 그려진 책가방을 동아줄처럼 쥐었다.
내 오싹함의 답은 어렵지 않게 풀렸다. 옆을 스치는 아이들의 은근한 시선을 피하다가 보았다. 애들의 교복 가슴팍 위에 수놓아진 이름들을. 나만이 유일하게 이름이 없었다. 혼자만 다르다는 기분과, 애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마주치고 싶지 않으려고 담벼락과 마찬가지로 바닥의 빨간 보도블록을 쳐다보면서 걸었다.
“보통 이 시기에는 잘 들어 안 오는데 말이에요.”
“아유, 저희 애가 몸이 약해서 시골에 있다가 오느라…….
처음 듣는 소리에 나는 바닥을 보던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엄마의 흘기는 눈빛과 마주쳤다. 엄마가 잡은 손바닥을 손톱으로 살짝 긁었다.
‘조용히 해.’
그 신호에 나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그렇지만 그걸 물어봤다가는 집에 가서 내 팔이 성하지 않을 것을 아는 나는 가만히 바닥으로 고개를 떨궜다. 아침 햇빛을 받은 회색 보도블록의 틈바구니로 노란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그 좁은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린 것이 신기했다.
“가끔 그런 학생들도 있지요. 지금은 괜찮은가요?”
“그럼요, 아주 씩씩해요. 그렇지 가하야……? 애가 시골에서 자라서 좀 숫기가 없어요. 호호…….”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내게서 관심을 거두고 수다를 시작했다. 그런 어른들을 따라 한참을 따라서 걸어가자 내 눈 앞에는 도어 매트가 보였다. 조금 색이 바란 연한 병아리 색 칠이 된 3층의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내부는 꽤 깔끔한 모양새를 띄었다.
그 내부 모습에, 마치 내가 새 집에 처음 온 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지지 않을 그 모습에 괜히 움츠려져, 나는 엄마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우리는 건물 안쪽의 가장 큰 방으로 가서 교장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배가 조금 나오고 하얗게 샌 머리와 잘 다듬어진 수염을 가진 교장은 우리를 웃는 낯으로 환영했다. 우리는 초록빛을 띠는 유리가 깔려진 응접용 테이블 주위에 앉아서 그야말로 쓸데없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엄마한테 많이 듣고 들어서 질리는 이야기였다.
“우리 학교에 오는 자제분들이야 말로 한국의, 서울의 1%라고 자부합니다. 입학 허가서를 쉽게 내드리지 않거든요. 보통 졸업하신 분들의 자제분들이 이어서 계속 오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가하 군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어머, 그럼요. 애가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지라……. 어쩔 수 없이 이리 늦게 오고 말았어요.”
“정 그렇다면 옆에 보조 선생님이라도…….”
“어머, 어머, 아니에요. 지금은 건강하답니다. 저……. 이거.”
엄마는 난생 처음 듣는 목소리로 손을 내저으며 무릎 위에 올려 둔 작은 핸드백에서 하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그러자 교장이 짐짓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저희는 이런 거…….”
“아유, 새로 들어가는 만큼 선생님들 고생이 크실 거 같아서요. 회식이라도 한 번 하시라구……. 제 마음이니 거절하지 마시구요.”
“아, 뭐 그렇다면야…….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럼, 나가면서 담임선생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교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툼한 손에 하얀 봉투를 조심스레 쥐어서 양복 안주머니에 챙겼다. 교장실을 나가자 밖에는 중년의 서글서글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교장은 그 아주머니가 나의 담임선생님이라며 소개했고, 엄마는 샐샐 웃으며 잘 부탁드린다며 그녀에게 나를 넘겼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우리 도련님?”
“…….”
나는 낯선 호칭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도련님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얘, 대답해야지. 얘가 좀 숫기가 없어요. 가하예요. 유가하.”
“가하. 이름이 참 예쁘다. 선생님은…….”
나는 미적지근한 담임선생님의 손을 잡고 여전히 교장과 시답잖은 말을 하며 웃고 있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예전과는 달리 백화점에서 사 입은 고운 핑크빛 투피스에 검은 핸드백을 맨 엄마의 얼굴은 광채로 번들번들했다.
‘그 광채의 근원은 어디일까.’
그녀는 쳐다보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잘 다녀오렴, 하교 시간 맞춰서 데리러 올게.”
“응.”
“그럼 우린 갈까, 가하야.”
나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반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