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4/35)

막내아들에게는 한없이 약한 장 대표가 자동차 열쇠를 가지러 안으로 들어갔다. 열린 문틈으로 회의 중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펌의 대표 이사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꽤 굵직한 클라이언트인 모양이었다. 장석민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장 변호사님. 잠시만요."

뒤에서 나타난 비서가 장석민에게 비켜달라는 손짓을 했다. 트레이를 든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상기되어 있음을, 눈치 빠른 장석민은 바로 알아챘다.

"오늘 온 손님 잘생겼나 봐요?"

장석민이 웃으며 말을 건네자 비서가 얼굴을 붉히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대박. 무슨 왕자님이 걸어들어오는 줄 알았다니까요."

"설마 나보다 잘생겼어요?"

장석민이 손으로 턱을 받치는 시늉을 하며 농을 건넸다.

"어, 죄송해요."

비서가 장석민의 농담을 받아주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장석민은 어라,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당연히 이 로펌의 대표 이사의 아들인 자신이 잘생겼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 터다.

아니.예의상이라도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은 정색에 가까웠다. 마치 세계 제일 추남이 자신이 이만하면 낫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장면을 본 여자의 표정이다.

내가 그럴 리는 없고, 그렇다면 …….…….

장석민이 눈을 흡뜨고 대표실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진회색의 고급 수트를 입은 유난히 어깨가 넓은 남자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장석민은 홀린 듯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야 인마."

자동차 열쇠를 가져온 장 대표가 멍한 얼굴로 대표실 안으로 들어온 아들을 발견하고 재빨리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다른 대표들이 장석민을 알아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석민아.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아버지 오늘은 늦으실 텐데, 먼저 들어가라."

어릴 때부터 친구의 아들을 봐왔던 터라 다들 친근하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장석민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회사의 대표들에게 인사를 건넬 정신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회색 수트를 입은 남자에게 매여 있었다.

"장석민."

장 대표가 장석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앉아있던 남자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장석민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죄송합니다. 제 아들인데, 잠깐 서류를 건넬 것이 있어서.」

장 대표가 남자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자 그가 우아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장석민은 눈을 껌뻑였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는 인식해도 머리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오랜만입니다.」

남자가 장석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장석민은 멍하니 있다가 엉겁결에 그 손을 맞잡는다.

「손이 여전히 차갑군요.」

「……예, ……. …….」

「둘이 아는 사이입니까?」

장 대표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다.

「이전에 아드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장 변호사랑 아는 사이라서 우리 회사에 투자를 제안하셨나 봅니다.」

앉아있던 다른 대표가 너스레를 떨었지만 장석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간신이 입술을 움직여 뱉은 한마디였다.

「해를 넘기고 싶지 않아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답이었다.

「아까 말씀드렸던 조건대로 계약을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더 조정하실 부분이 있으면 제 비서와 얘기를 나누시면 됩니다. 저는 이만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장석민의 눈에 그제야 맞은편에 앉아있는 라겔이 들어왔다. 그가 장석민에게 묵례를 했다. 장석민도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했다.

「그럼, 이만.」

반듯하게 인사하고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비서가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장석민은 그림을 옆에 끼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바로 뒤따라 나갔다.

"장석민! 자동차 열쇠 달라며!"

장 대표가 아들을 불렀지만 그의 모습은 복도 끝으로 사라져 버린 후였다.

"석민이 쟤가 요즘 정신이 좀 나가있는 거 같지 않아?"

"중동 공주랑 이루지 못할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지."

대표들도 익히 들은 뜬소문을 나누며 웃음을 터트렸다. 장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럼 아까 말씀드렸던 조건대로 계약을 진행하도록 할가요.」

막내아들에 대한 걱정은 일이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도 장석민은 여전히 얼떨떨했다.

"세상에, 진짜 잘생겼다."

"배우 아니야?"

옆에 선 여자들의 숙덕거림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을 장석민은 알고 있었다. 장석민은 다시 한 번,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자하르다.

넥타이를 매고 수트를 입은, 자하르가 서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자하르가 장석민의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왜라니, ……, 하, ……, ……됐습니다.」

장석민이 불퉁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자신과는 다르게 지극히 이성적인 자하르의 태도에 심사가 뒤틀렸다. 17층이 되자 여자 둘이 내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둘만 남게 되자, 자하르가 입을 열었다.

「주말이니 오늘부터 이틀은 회사에 안 가셔도 되겠군요.」

「네. ……?」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자하르가 장석민에게 내리라고 눈짓했다. 얼떨떨한 얼굴로 자하르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장석민은 대체 이놈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온다면 온다고 말을 하든가, 아니 갑자기 회사에 나타날 것은 뭔데, 그림은 왜 택배로 보내, 그리고, ……!

자하르가 장석민의 팔을 쥐고 방으로 잡아끌었다. 무슨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괜히 고층에 방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올라오는 내내 쟝의 아래를 먹어치울 생각에, ──힘들었습니다.」

자하르가 재킷을 벗었다. 넥타이를 끌러서 발치에 던졌다. 장석민은 아직 코트도 벗지 않은 채였다.

「주말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겁니다.」

「네? 그럼.──.」

집에 연락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하르가 장석민을 벽에 몰아세우고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장석민은 입을 벌렸다. 혀가 섞이고 호흡이 엉켰다. 눈을 껌뻑거리는 사이, 몸에 열기가 퍼져갔다. 장석민의 입술에서 밭은 숨소리가 터졌다.

"하아……."

자하르의 입술이 멀어졌다. 코끝이 닿는 거리에서 자하르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럼 약속했던 대로, ……증명해드리죠.」

자하르가 장석민의 머리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바지 퍼스너를 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미 선단이 젖기 시작한 성기가 속옷 사이에서 불거져 나왔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자하르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이, 머리를 스쳤다. 장석민의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자하르가 비스듬히 웃으며 장석민의 머리를 가볍게 눌렀다.

「……만나자마자, …….」

장석민이 불퉁하게 중얼거리고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억보다 왠지 더 큰 것 같아. 보기만 해도 턱이 아프다.

장석민은 남자의 커다란 성기 앞에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게 드시고 싶습니까?」

「──!」

「오늘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여드리죠.」

자하르가 장석민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슬쩍 눌렀다. 입을 벌리라는 신호였다. 장석민은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기엔 글렀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 ──. ──!」

벌써 다섯 번째 사정이다. 몸을 부르르 떨던 장석민이 힘없이 자하르 위로 늘어졌다. 그러나 아직 절정에 다다르지 않은 자하르는, 장석민을 끌어안고 거칠게 허리를 박아 올렸다.

「쟝, …….」

그가 장석민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벌어진 아래가 헐었는지 아프고 쓰라렸다. 하지만 자하르가 이름을 부르며 아래를 가득 메워올 때마다, 배 아래에서 뜨끈한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아, ──.」

장석민이 손을 뻗어 자하르의 목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허리를 움직일 힘도 없었지만 그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계속,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고, 계속 머릿속에서 이 구멍에 성기를 꽂아 넣었단 말입니다.」

자하르가 거칠게 성기를 내벽에 문질렀다. 장석민이 헐떡거리면서 자하르를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말해주세요.」

「──?」

「안을 적셔달라고, 정액을 싸서, 씨를 갖게 해달라고 말해주세요.」

장석민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남자가 무슨, 애를──읏.」

「듣고 싶은 겁니다. 쟝이 제 성기를 아래에 꽂아 넣고, 헐떡거리면서 임신시켜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장석민이 고집스럽게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하르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의 단단한 성기가 구멍을 한껏 벌려 그 안을 쳐댔다. 퍽, 퍽, 하고 흉표하게 들어오는 감각에 장석민은 호흡이 힘들었다.

「말해요.」

「……. …….」

「말해주기 전까지 성기를 빼지 않을 겁니다. 호텔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이 몸에서 나가지 않겠습니다.」

농담이 아니었다. 자하르는 지금 다섯 시간 째 아래를 세우고 있었다.이상한 약을 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이미 세 번째, 사정을 할 무렵에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동안 수절을 해서 그렇습니다, 따위의 대답을 들을 줄 알았다면 물어보지도 않았을 텐데.

장석민이 울상이 되어 입술을 깨물었다. 자하르가 장석민의 몸을 끌어 안고 채근했다. 몇 번이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살댔다.

「……, 하고, ……해주세요.」

결국에 혼미해질 때까지 시달린 장석민의 입에서 울음 섞인 그 말이 나오고 난 후에야, 자하르가 토정했다.

「──, ──.」

그간 수절을 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 몇 번의 사정을 했음에도 진한 액체가 울컥, 울컥, 쏟아져 나왔다. 아래가 뜨뜻하게 젖어가는 감각을 느끼며 장석민은 눈을 감았다.

까무룩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자하르가 자신의 성기를 입안에 머금는 것을 보고는, 욕을 집어 삼킨 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래서요?」

「저는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당분간은 누구도 비로 맞이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완전 나쁜 놈이 됐잖아!」

장석민이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숟가락을 휘두르며 화를 냈다.자하르의 말을 종합해보면 자신은 그를 구해준 뒤, 마음도 받아주지 않고 고국으로 도망가 버린 천하의 개쌍놈이 되어 있었다.

「싫습니까?」

「당연히 싫, ……. …….」

자하르의 손가락이 장석민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장석민의 몸이 흠칫 떨렸다. 몇 번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에, 장석민은 울면서 자하르에게 빌었다. 저 죽어요, 한 번 더 하면 저 죽어요. 왕자님. 끝내주는 생존본능이 발동한 덕에 지금 그나마 아이스크림을 퍼먹을 기운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라고 장석민은 믿었다.

「닦아드린 겁니다.」

「……죽이지 마세요.」

자하르가 짧게 웃었다.

「죽일 생각이었다면 바쁜 시간에 틈을 내어 오지 않고 암살단을 보냈을 겁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 뼈가 있었다. 자하르가 했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간, 그가 지내온 시간들은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리는 대충 끝나신 겁니까?」

「아직 좀 남아있습니다.」

「후계자 문제는…….」

자하르가 말없이 웃었다. 그날 벙커에서 자하르가 보였던 태도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무크라르 왕이 자하르를 후계자로 지목할 가능성은 없었다.

「……, 괜찮으세요?」

장석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잘 해결될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하지만 장석민은 자하르가 그렇게 말을 하니 마음이 놓였다. 자하르라면 어떻게든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왜 오신 겁니까?」

「해외 법무법인을 만드는 조건으로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그거 미국지사랑 홍콩지사도 있는데 또 늘린대요? 안 늘릴 텐데.」

아버지가 관리 문제로 더 이상은 해외 지사를 늘리지 않겠다는 말을 한 기억이 떠오른 터다.

「쟝, 중요한 부분이 뭔지 생각해보셔야죠.」

그제야 장석민의 머리에 '투자'라는 단어가 주는 중대한 의미가 떠올랐다.

「……, 얼마를 투자하셨기에.」

「저는 해외, 라고 생각했는데요.」

「……, ……, 그 지점이 어디에 세워질지──. 제가 생각하는 그곳일까요?」

「그곳보다는 조금 아래일 겁니다. 서류상으로는.」

장석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자신이 제 발로 걸어 들어갈 것 같지 않으니 자하르가 아예 장석민이 생활을 할 환경을,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싫으십니까?」

자하르가 물었다. 장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싫은 게 아니라, 너무 급작스러워서, 말이라도 해주시면 생각을 좀 해보고…….」

「말을 해드리죠.」

자하르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제 생각 같아서는 쟝의 입에 물린 아이스크림 스푼을 빼고 제 것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쟝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제 정액으로 흠뻑 적셔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용기로 타르카로 데리고 가서, 누구도 보지 못하도록 가둬두고 매일 밤 가랑이를 벌리고 범하고 싶습니다. 임신이 되면 좋겠지만 임신이 되지 않는 몸이니, 정액으로 그 납작한 배를 불룩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에는──.」

「……일 하겠습니다. 거기서.」

장석민은 해외 지사 근무를 수락하자 자하르가 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두드린다. 잘했어요, 다정한 말이 뒤따르자 장석민은 에휴 내 팔자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쟝.」

자하르가 장석민의 이름을 불렀다. 온전치 않은 이름인데도, 장석민은 그 부름이 마음에 들었다. 자하르의 입술이 다가왔다.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장석민은 눈을 슬쩍 감았다. 맞물린 입술에서 상대의 웃음이 느껴졌다. 심장이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침대는, ──도착했스니까?」

「무슨, ──하아.」

짧은 입맞춤에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장석민이 밭은 숨을 모라우시며 자하르를 바라보았다.

「쟝이 좋아하는 침대를 보냈습니다. 집으로.」

자하르의 손이 장석민의 어깻죽지를 잡아 그를 끌어안았다.

「침대, 아, ──에?!」

장석민이 자하르의 몸을 밀어냈다.

「침대를 보냈다고요? 우리 집에?」

자하르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자신이 거부의 몸짓을 보이는 것에 자하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장석민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집에 침대를 보냈습니까?」

「네,」

자하르의 단호한 대답에 장석민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망했다, 망했어. 어머니가 보고 대체 뭐라고 생각했을까. 미친 아들이 한 달에 23만 5천원을 받는 주제에 침대를 샀다고 분명, ……. …….

"으악!!!!"

장석민이 침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허겁지겁 침실 밖으로 달려가 벗어놓은 코트를 뒤적였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 76통이 찍혀있었다.

"망했어. 난 죽었어, 아아, 난 죽었어."

통화 목록도 다양했다.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큰형, 둘째형, 아버지,어머니,셋째형, …….

「무슨 일인가요.」

「집에 전화했어야 했는데…….」

장석민이 울상을 짓고 말하자 자하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다.

「몇 살입니까. 쟝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요. 한 달 넘게 행방불명되었다가 돌아온 놈인데 당연히 걱정을, ……, 잠깐만요. 저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장석민이 핸드폰을 들고 희게 질린 얼굴로 저쪽 방으로 건너갔다.

"아니요, 아니요, 아버지, 그게 아니고, ……, 죄송, 아니요, 그게요, 잠깐, 여보세요?"

장석민이 핸드폰을 들고 소리치다가 죽을상이 되어 돌아와, 우물쭈물 말을 건넸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인데요. 제가 지금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자하르가 짧게 웃었다.

「부모님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고, ……경찰에 또 신고도 하셨다고 그러고, 형들까지 지금 다 와서, …….」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는 장석민을 보고 자하르가 다정하게 그의 어깨를 도닥여주었다.

「괜찮습니다. 저는 아버님과 반목을 한 이후로, 공적인 일 외에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물론 눈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

「이번 일정을 빼려고 일주일간 합쳐서 열 시간도 자지 못하고 일에 매달렸지만, 뭐 어떻습니까.」

「……. …….」

아아, 얘는 정말이지 남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데, 엄청난 재능이 있어.

「그래요, 집에 가보셔야 한다고요?」

자하르의 눈이 길게 웃었다.

「이쪽이에요.」

집에 잠깐, 아주 잠깐만 갔다가 호텔로 다시 올게요, 30분만,네? 바로 올게요, 내가 한국 관광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젠장, ……도 해주고, ……도 해줄 테니까, 네?!!

결국 장석민의 ……과 ……이라는 조건에 자신도 집에 가겠다는 조건을 하나 더 내건 뒤에, 자하르는 장석민이 호텔 밖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여기가 다 쟝의 집입니까?」

제법 나쁘지 않군요, 하고 중얼거리는 자하르의 말에 장석민의 얼굴이 굳었다.

「이 빌라 한 채가 얼마인데 이 한 동이 어떻게 다, ……아닙니다. 말을 말아야지.」

장석민이 투덜거리며 빌라 현관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장석민은 자하르에게 아까 했던 말을 반복했다.

「부탁입니다. 결혼 얘기는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

장석민은 속이 타들어갔다. 이 미친놈이 설마 결혼 얘기를 하지 않겠지 싶어 그건 말 하면 안 됩니다, 했더니 끝까지 대답을 안 하는 것이다.

「왕자님, 부탁드릴게요. 동양의 정서는 아직 그게 아닙니다.」

장석민이 애절하게 부탁을 하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추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네 이놈, 하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장석민이 이크, 어깨를 움츠리는 사이 자하르가 먼저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장석민의 아버지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장석민의 형들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집안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쳐다보았다.

「아니, 여기는 어쩐 일로, ……. 일단, 들어오세요.」

장석민으 아버지인 장성문이 다급하게 골프채를 뒤로 숨기며 인사를 건넸다. 장석민은 골프채를 보고 저걸로 때리지도 않으실 거면서 왜 매번 들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신발을 벗었다.

"너는 대체 어떻게 된 애가, ……누구셔?"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아, ……친구. ……."

자하르가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장석민은 대답했다.

"친구? 너한테 저런 친구가 어디 있어."

대뜸 둘째 형이 시비를 걸어오자 장석민이 다급하게 유학 때 만났거든, 하면서 받아쳤다.

"……야, 되게 잘생겼다."

"알아듣지도 못해. 그냥 크게 말해."

"야! 존나 잘생겼다."

셋째 형이 큰 소리로 감탄하며 자하르의 얼굴을 살폈다. 장석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사람이 호랑이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니.

"너 나중에 손님 가고 보자."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잇새로 말했다. 장석민은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영어로 말해야 하나? 난 영어 잘 못하는데."

장석민의 어머니가 웃으면서 자하르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감사합니다.」

자하르의 우아한 발음에 큰형이 장석민의 옆구리를 찔렀다.

"너 미국으로 갔다 왔잖아. 쟤는 영국식 발음인데?"

"아, 몰라.별 걸 다 트집 잡아,형은."

자하르와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장석민은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요한 클라이언트인 자하르 앞에서 크게 혼이 날 리는 없는 것이다. ……잘 데려온건가.

"그건 뭐니?"

어머니가 장석민의 옆구리에 있는 액자를 가리켰다.

"아, 이거요, ……그림이요."

"어머, 엄마가 이 그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거실에 걸어둘까? 얘, 이거 진짜 같다"

엄마, ……그거 아무래도 진짜인 거 같아.

장석민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우울하게 삼켰다.

"차라도 내 와야지. 그럼 앉아 있어. 아주머니하고 준비해서 내올테니까."

어머니가 화사하게 웃으며 사라지자 자하르가 옆으로 와서 낮게 속삭였다.

「쟝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군요.」

「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왕자, ……, 자하르 씨도 어머니를 많이 닮으셨잖아요.」

다행히 아버지는 자하르가 일국의 왕자가 아닌 돈 많은 중동의 귀족갑부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행스런 일이었다. 왕자랑 친구라는 얘기가 가족들에게 호락호락 먹힐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앉으세요.」

장성문이 자하르에게 소파를 권했다.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은 자하르를 보며 장석민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왕, ……자하르 씨, 여기 앉으세요.」

장석민이 자신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자하르가 언뜻 생각하다가 웃으면서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장 씨 집안의 남자들이 주르륵 앉았다. 장석민이 이 어색한 조합을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식은땀을 흘렸다.

"야, 코가 무슨 조각상 같다. 저렇게 잘생긴 애가 너하고 어찌 친구를 해줬냐?"

"형, 나도 잘생겼거든!"

장석민이 발끈해서 외쳤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떠올리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석민이하고는 유학 시절의 친구인가요?」

장성문의 물음에 자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맞추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장석민은 안도했다.

「말씀하신 해외 지사 설립은, …….」

"아버지 일 얘기는 나중에 하시면 안 돼요?"

"……일 얘기를 제외하면 할 얘기가 없어서 그런다."

"……죄송합니다."

장석민이 풀이 죽어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자하르는 즐겁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우리 석민이가 좀 특이하긴 하지만 나쁜 애는 아닙니다.」

큰형의 발언에 장석민이 아 또 왜애,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전형적인 막내의 모습이었다.

「특이한가요?──아, 그러고 보면 좀 그런 구석이 있군요.」

「여자라면 아주 환장을 해서, 이 녀석 영어를 이렇게 잘 하는 것도 다 레이라 덕에──.」

장석민이 기겁하며 셋째 형의 입을 틀어막았다. 빌어먹을 이 집 사람들은 왜 다 영어로 회화가 가능해서, 이 사달이야.

「레이라?」

자하르의 눈썹이 위로 휜다. 장석민이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동네 사시는 미국인 교수님 딸이었는데 이 녀석이 예쁜 여자애한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려고 어릴 때 영어 공부를 혼자……!」

장석민은 이번에 첫째 형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자하르의 미소가 진해졌다.

「그렇군요. 저도 쟝의 영어는 몹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석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집에는 데려오기 싫었는데.어머니가 과일과 차를 가져왔다. 장석민은 눈치를 살피느라 자신이 커피를 마시는 것인지 사약을 마시는 것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쟤도 결혼을 해야 정신을 차릴 텐데.」

공통의 화제가 장석민뿐이었기에 장석민은 오늘의 제물이 되어 껌처럼 씹히고 있었다. 첫째 형의 한탄 섞인 말에 자하르가 그런가요, 하고 웃었다. 장석민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내가 무슨 결혼이야, 하고 얼버무렸다.

「쟝도 결혼 할 나이가 되긴 했지요.」

「빨리 해야 합니다. 저런 애들은 빨리 해야 한다고요. 그러고 보니 자하르 씨는 결혼하셨나요?」

「저도 곧 해야 합니다.」

장석민은 아아, 하고 시선을 돌렸다. 자하르가 웃으며 입을 열였다.

「제가 모르는 쟝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군요.」

「예전에는 또…….」

자하르의 말에 셋째 형의 방언이 터지려는 것을 장석민은 간신히 막아냈다.

「제 방, 제 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제 방을, ……그러니까, 구경 가요.」

장석민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자하르를 바라보았다. 제발이요, 네? 더 이상 있다가는 나 쪽팔려서 죽을 거 같아서 그렇습니다, 네?

무언의 간청을 알아들었는지 자하르가 선선히 장석민을 따라 일어섰다. 더 이상 장석민을 씹을 거리도 없었기에, 다른 식구들도 안도하는 눈치였다. 장석민은 자하르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끝에 있는 방으로 데려가 문을 열었다.

「여기가 제 방입니다.」

방을 둘러본 자하르가 음, 하고 입을 다물었다.

「왜요?」

「생각보다 좁군요.」

「…….」

할 말이 없었다. 장석민이 살고 있는 곳은 150평짜리 고급 빌라였다. 게다가 큰형과 둘째형이 결혼을 한 이후로 2층은 장석민이 모두 쓰고 있었다. 그런데, 뭐? 좁아?

「물론 궁에 비하면 좁겠지만, 이 정도는…….」

「그 많은 가족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시느라, 답답하시겠군요.」

「……아니요. 큰형하고 둘째형은 결혼을 해서, ……아니에요. 답답합니다.」

말해 무엇 할까.

장석민은 힘없이 손을 내저으며 건성으로 방을 안내해주었다.

「저기가 책장, 저기가 욕실, 저기는 침대, 저기가 운동하는 곳입니다. 좁아서 잘 모르시겠지만 저 옆에는 음악 감상하는 곳도 있습니다.」

자하르가 장석민의 방을 찬찬히 살폈다. 그의 시선이 장석민의 졸업사진에 머물렀다.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이건 대학교요.」

「변한 게 없군요.」

「네.제가 좀 동안이죠. 그래도 왕자님보다,……!」

자하르의 손이 장석민의 목을 뒤에서 움켜쥐었다. 오랜만에 온몸의 세포가 곤두서는 공포가 일었다. 그의 다른 손이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가리켰다.

「이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신 거군요. 영어를 참 잘한다 했더니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

자하르의 음성이 사납게 일렁였다. 장석민은 레이라 얘기가 그의 심기를 뒤틀리게 했음을 알고 있었다.

「……아랍어 배울게요.」

「타르쿤입니다.」

「그것도 배울게요.」

「오실 때마다 튜터를 붙여드리죠.」

장석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 지사에 일 년에 과연 볓 번이나 나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그에게 맞춰주자고 마음먹었다.

「앨범이라도 보실래요? 아니면, 제가──.」

갑작스럽게 다가온 입술에 뒷말이 타액과 함께 목안으로 삼켜졌다. 입술이 맞물리고 그 사이를 흐트러진 숨소리가 메웠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랐다. 성적인 키스였다. 혀를 세워 장석민의 입안을 핥은 뒤에 자하르가 낮게 속삭였다.

「──다정한 친구 흉내는 그만내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나른한 그의 표정을 보며 장석민은 남자에게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호텔로.」

"난 죽을 거야"

장석민의 힘없는 중얼거림에 자하르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장석민이 아니에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침대 위로 늘어진 그의 몸에 정사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자하르는 장석민의 음모에 말라붙어 있는 정액을 보며 민틋하게 웃었다.

「이틀 사이에 배가 좀 부른 것 같긴 하군요.」

자하르의 손이 장석민의 배를 문질렀다.

「설마요.」

「더 부어드릴까요.」

장석민이 아니요, 하고 제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불렀네요. 충분히.」

자하르가 장석민의 어깨를 끌어안고 땀으로 젖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장석민의 얼굴이 단숨에 발갛게 익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하르는 웃었다.

「성기를 만져줄 때보다 입을 맞추면 더 수줍어하는군요. 특이한 사람입니다.」

「……. 왕자님도 특이하세요. 매우.」

장석민은 주말동안, 그간 자신이 얼마나 건전한 섹스를 해왔는지 온몸으로 학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제 손으로 안 내려오는 거군요.」

자하르가 그 새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장석민은 몸을 뒤척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려갔으면 좋겠습니까?」

장석민의 물음에 자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비스듬히 누운 채, 자하르는 장석민의 얼굴을 시선으로 더듬었다.

「내일, …….」

장석민이 입술을 달싹거리다 묻는다.

「몇 시 비행기인가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아, 맞다. 전용기 타고 오셨죠.」

장석민은 쳇, 하고 혀를 찼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는데도 이렇게 주눅이 들어야 한다니.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17인승이라 쟝을 태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또 결근하면 잘립니다.」

한 달간 무단결근을 하고도 잘리지 않은 것은 대표 이사가 아버지, 라는 이유 한 줄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번이지, 두 번은 아무리 그로서도 면목이 없는 것이다.

「이번에 가면 당분간은 좀 힘들 겁니다.」

자하르의 목소리가 문득, 낮아진다. 장석민은 고개를 돌렸다.

「그럼 언제…….」

「장담은 못 하겠군요.」

그 말에 장석민의 낯이 흐려진다. 자하르가 손으로 장석민의 얼굴을 감싸 쥐고 말했다.

「쟝이 저로 인해 그런 얼굴을 할 때마다, ──잔인한 생각이 듭니다.」

「…….」

「끝까지 몰아붙이고 싶어집니다.」

「……그러니까 새가 안 돌아오는 거래도요.」

자하르가 장석민을 그대로 바투 끌어안았다. 커다란 손이 그 존재를 확인하듯 장석민의 등을 더듬어 내렸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

「괜찮습니다. 밤하늘 어딘가를 날고 있다고 믿으면 됩니다.」

「……낮에도 날아다닐 걸요.」

「피곤하겠군요. 내려왔으니 이젠 쉬셔야죠.」

자하르의 손이 장석민의 어깨를 덮었다. 툭툭, 두드리며 그가 주무세요, 하고 속삭였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자하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장석민은 눈을 감았다.

사락사락 내리는 눈이 온 세상을 뒤덮어 마치 백색의 사막에 갇힌 듯했다. 머리 위에서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평온한 밤이었다.

「수속을 다 마쳤습니다.」

라겔의 말에 자하르가 장석민을 돌아보았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전보다 더 단호한 태도였다. 이별의 입맞춤은 커녕 포옹도 악수도 없다. 침대 위에서 짐승처럼 달려들던 남자의 모습을 온데간데없다. 이중인격의 극치였다.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가려는 자하르를 장석민이 잠시만요, 하고 불러 세웠다.

「──?」

「저기, ……, 1월 말에 우리나라에 휴가가 있거든요.」

「그러시군요.」

「……가겠다고요. 그쪽으로, 제가.」

기약 없는 이별은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장석민이 얼굴을 붉힌 채로 어물어물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하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전용기에 장석민을 태워서 돌아가고 싶었다.

「1월 언제인가요.」

그가 라겔에게 눈짓하자 라겔이 재빨리 태블릿PC를 꺼내들었다.

「어, 1월 30일부터, ……4일 연휴네요.」

라겔이 체크를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하르가 입을 열었다.

「그럼 비행기를 보내겠습니다.」

「네? 왜요?」

「타르카는 아직 위험합니다. 다른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다른 곳, 이라는 표현에 라겔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진다. 그가 날짜를 손으로 헤아리며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본, 장석민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설마, ……거긴 아니죠?」

자하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석민은 지구본을 잘못 돌리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떠올리며 침중하게 입을 내리 물었다.

「그럼, 이만.」

자하르가 반듯하게 인사를 한 후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까치발을 들고 지켜보던 장석민은 자하르의 모습이 완전 사라지고 난 후에야, 공항을 나섰다.

눈발이 더 거세어져 있어 눈을 뜨기 힘들었다. 머리 위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를 보며 저기에 자하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을 흘렸다. 어느 비행깅 타고 있으면 어떻단 말인가. 어쨌든 하늘 아래에서 그 역시 날고 있을 텐데.

하늘에서 하얀 새가 날개를 펼치고 땅으로 수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느 사막에서도 눈이 내리길 기원하며, 장석민은 사박사박 쌓인 눈을 밟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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