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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거짓된 운명이라 할지라도 Ⅰ(5) (5/11)

비록 거짓된 운명이라 할지라도 Ⅰ(5)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네… 네, 그럼 이만.”

알렉은 조용히 수화기를 내려놓은 레너드를 마른 침을 삼키며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없이 집을 뛰쳐나온 자신을 레너드는 다정하게 맞이하고 정성껏 돌봐주었다.

욕실에서 안긴 뒤에도 알렉을 품 안에서 놓지 않으려는 듯 꼭 끌어안은 채 정성 들여 저녁밥을 먹이고 부모님에게 전화까지 대신해준 것이다. 알렉이 직접 하는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

원래는 미즈키에게 전화 한 통만 걸겠다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렇지만 레너드와의 관계가 너무나 달콤해서 일단 그 품에 안기고 나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레너드에게 맡기기만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님과의 통화는 어땠을까, 꾸중을 듣지는 않았을까?

알렉은 안경 너머로 눈을 크게 뜨고 레너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산 다람쥐 같은 눈이었다.

레너드가 알렉에게 자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받았어. 여름 방학 동안 쭉 나와 함께 지내도 상관없다고 하시는군.”

“정말로?!”

아버님이 몰래 집을 빠져나온 것을 용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여름 방학 동안 레너드와 같이 지내는 것까지 허락하시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레너드는 분명 부모님의 마음을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마법의 주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알렉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는 알렉을 보며 레너드가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뺨을 쓰다듬자 알렉은 조심스레 레너드에게 몸을 기댔다.

망설이는 알렉을 레너드가 힘껏 끌어안았다.

“고마워, 레너드.”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일은 아닌데. 알렉하고 같이 있고 싶은 건 나니까.”

레너드는 알렉을 가볍게 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다시금 사랑스러운 듯이 끌어안긴 알렉은 얼굴을 붉혔다.

달콤한 포옹은 두 사람이 연인임을 의미하고 있었다. 레너드는 더 이상 알렉의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 형이 아니었다.

알렉은 레너드의 것이었다. 자신은 레너드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이 몸도, 마음도 레너드의 것이다.

레너드는 아무런 쓸모없는 짐짝 같은 알렉을 사랑해주었다.

레너드만이 언제나 변함없이 알렉을 사랑했다.

“…레너드, 아.”

레너드가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알렉의 입술을 빨아올렸다. 스치듯 닿았다가 살짝 빨아올리며 조금씩 입맞춤이 깊어졌다.

―아, 어쩌지… 또….

미끄러져 들어온 혀가 입안을 핥아 올리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낮에, 그리고 조금 전에도 레너드에게 안겼는데 키스를 받자 또다시 몸이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도대체 얼마나 음란해져 버린 걸까. 레너드에게 닿기만 해도 이렇게 되다니.

“…곤란한걸. 제어 장치가 망가졌나 봐.”

그렇게 말하는 레너드의 속삭임도 뜨거웠다. 알렉만이 흥분한 것이 아니었다.

아직 한 가지 더, 중요한 일이 있는데―.

몽롱한 머리로 알렉은 간신히 원래 하려던 부탁을 떠올렸다.

미즈키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약속을 잊지 않고 몇 번이나 알렉의 집에 전화를 걸어주었으니까.

―그 마음에 답해야만 해….

그런데 레너드의 손길이 닿으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좀 더 이대로 쭉 만져주길 바랄 뿐이었다.

미즈키에 대한 마음과는 반대로 알렉의 입술에서는 재촉하는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레너드가 원하는 만큼… 해도 돼.”

레너드의 연한 제비꽃 색 눈동자가 지금은 욕망에 물들어서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으로 변해 있었다.

알렉을 원하는 색이었다.

“나쁜 아이구나, 알렉. 내일 틀림없이 못 일어나게 될 거야.”

“괜찮아, 그런 건. 레너드가 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어떤 것이든 알렉의 기쁨이었다.

몸이 둥실 떠올랐다.

레너드는 알렉을 안아 들고 침실로 이어지는 문으로 데려갔다.

“갖고 싶어서… 너를 갖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알렉.”

정열적인 레너드의 말에 알렉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강렬하게 자신을 원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못생긴 자신과 달리 레너드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데.

레너드라면 미남이든 미녀든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레너드가 바라는 것은 알렉 자신이다. 아무 쓸모 없는 자신을 이렇게나 원해준다. 사랑해준다.

알렉의 눈동자가 젖어들었다.

안타깝고 괴로워서 레너드의 어깨에 꼭 매달렸다.

“레너드… 정말 좋아해. 레너드뿐이야….”

사랑받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윽고 침실에 다다른 레너드는 알렉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곧바로 레너드가 몸을 겹쳐오자, 잠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알렉은 팔을 뻗었다.

“알렉, 사랑해.”

“…나도 좋아해. 사랑해, 레너드…. 레너드, 좋아해….”

레너드에게 사랑받는 것이 알렉의 전부였다.

다음날, 레너드의 말대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알렉은 온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침실에서 보냈다.

눈을 뜨자 레너드가 이것저것 정성껏 돌봐주었다.

목이 마르냐고 물어본 뒤, 입으로 물을 옮겨서 마시게 하고, 배가 고픈지 확인하더니 어린아이처럼 스푼으로 음식을 입에 넣어주었다.

허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버린 알렉을 화장실까지 데려가 준 것도 레너드였다.

“사실은 전부 도와주고 싶은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서지 못하는 알렉을 대신해 잠옷 바지와 속옷을 벗겨주고, 알렉이 볼일을 다 보자 다시 화장실에 들어와 입혀주었다.

다정하게 보살펴 주다가도 이따금 장난치듯 다가오는 애무에 완전히 녹아내린 알렉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그런 달콤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이 되자 알렉은 레너드에게 안겨 차에 올라탔다.

“슬슬 런던으로 돌아가야 해. 차로 이동해야 하니까 피곤하겠지만…. 미안해, 알렉.”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해하는 레너드의 말에 알렉은 괜찮다고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설령 일 때문에 레너드가 낮 동안 곁에 없어도 그 집에서 쭉 레너드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저택에서 형이나 고용인들에게 무시당하며 지내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일이었다.

알렉의 대답에 레너드도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다행이다. 조금… 억지로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됐었거든.”

“그렇지 않아….”

레너드가 그런 걱정을 하다니 뜻밖이었다.

자신 같은 못난이를 이렇게나 소중히 대해주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는 행운인데.

이런 식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니 알렉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지금, 알렉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넋이 나가 있던 알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내 짐….”

짐을 가지러 집에 들러야 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든 집안사람들의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터였다.

레너드를 따라가는 알렉에게 둘째 형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어째서 레너드가 너 같은 구제불능을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라고.

핼쑥해진 얼굴로 가슴을 누르는 알렉을 레너드가 살짝 끌어안았다. 알렉의 불안도 걱정도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는 레너드는 한발 앞서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아, 알렉. 필요한 짐은 아침에 사람을 보내서 가져오게 했어. 세인트 올즈리에 들르지 않고 곧장 런던으로 갈 거야.”

“정말이야… 레너드?”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바보구나. 귀여운 알렉을 눈곱만큼이라도 괴롭게 만들 리 없잖아.”

가볍게 코를 꼬집자 알렉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귀여운 알렉―.

다른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 칠만큼 못생긴 자신이지만 레너드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사랑해준다.

“꿈만 같아.”

뒷좌석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는 레너드의 손길을 느끼면서 알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너드가 그 말을 듣고 알렉의 턱을 간질였다.

“뭐가 꿈만 같다는 거야?”

“쭉 레너드와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거기다….”

알렉은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렸다.

형과 동생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알렉은 아직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 레너드가 자신의 연인이 되다니.

그것을 말로 하는 게 좀 더 부끄러웠다.

알렉은 단 한 번도 그런 불손한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보니, 사실은 자신도 줄곧 레너드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으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레너드가 시작한 새로운 관계를 자신은 이렇게나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스럼없는 정도가 아니라 기쁘게.

뺨에만 머물러있던 붉은빛이 목덜미까지 번졌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레너드를 받아들이고 안겼는지 떠오르는 바람에 알렉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그렇게 음란했다니 레너드와의 행위 전까지는 알렉 자신도 몰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방면으로는 몹시 소극적이었고, 자신의 외모나 성격, 능력을 생각하면 평생 연인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그리고 아마도 유일하게―생긴 연인이 레너드라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알렉은 조심스레 옆에 앉은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알렉의 시선을 바로 눈치챈 레너드가 따뜻한 눈빛으로 알렉으로 마주 본다.

아니, 따뜻한 정도가 아니라 뜨겁다고 해야 할까.

알렉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 눈빛만으로 레너드의 마음이 전해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줄곧 괴롭힘만 당하고, 가족에게서도 따돌림받던 알렉을 레너드는 사랑해주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나 같은 건 레너드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게 뻔한데―….

더구나 레너드와 알렉은 둘 다 남자였다.

교회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관계.

―하지만 그 레너드가 나를….

사랑받는 기쁨이 금기를 어긴다는 죄책감보다 훨씬 더 컸다.

레너드의 손이 알렉의 머리와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허리를 쓰다듬었을 때는 허리 안쪽이 욱신 저렸지만 차 안에서 그 이상의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운전기사의 시선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신경을 쓴다 해도 노골적으로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 정도일 뿐이었지만.

레너드는 고용인들에게 이미 자신들의 관계를 얘기한 것인지, 끊임없이 알렉에게 장난치듯 입을 맞추고 끌어안곤 했다.

운전기사 역시 뒷좌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위의 의미를 눈치챘을 텐데도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이쪽을 힐끗힐끗 살피지도 않았다.

애정이 듬뿍 담긴 손길에 취해 있는 사이에 차는 런던으로 들어서 두 사람을 레너드의 펜트하우스로 데려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에 출발했는데 이미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혀 모르고 있었어….

알렉의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레너드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있던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레너드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머리카락에 키스를 했다.

“귀여워, 알렉.”

레너드의 속삭임에 알렉은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에 현기증이 났다.

레너드가 거주하는 런던의 아파트는 외관은 무척 고풍스러웠지만,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자 사실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아한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고풍스럽게 지은 것이다.

그 건물의 최상층이 레너드의 펜트하우스였다.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알렉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고 레너드가 안으로 이끌었다.

“이쪽이 엘리베이터야.”

연인에게 하는 것처럼 에스코트하는 레너드의 태도에 알렉은 내심 조마조마했다.

고용인들은 입막음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곳은 건물 전체가 레너드의 소유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거주민들에게 자신들의 관계를 들키면 곤란하지 않을까, 알렉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입구의 경비실을 조심스레 살펴봐도 경비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끼리 찰싹 달라붙어 있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사이좋은 형제라도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연인 사이로 보이지 않는구나….

생각해보면 레너드가 차 안에서처럼 알렉에게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아파트에 찾아온 남동생 같은 소년을 그저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는 것뿐이었다. 형제라면 딱히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겠지. 우리가 연인 사이로… 보일 리가 없어….

자신은 이렇게나 못생겼다.

레너드같이 근사한 남자의 연인이 이런 녀석이라고는 오해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시름 놓아야 하는데 알렉의 마음은 조금 우울해졌다.

거기에 더해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고 우울함이 한층 커졌다.

거기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에 알렉은 어깨를 떨어뜨렸다.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알렉의 빨간 머리카락은 부스스하게 사방으로 뻗쳐있고,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도 보기 흉했다.

살짝 들린 코끝도 알렉을 어린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이 안 그래도 한심한 얼굴을 더욱 보기 싫게 만들고 있었다.

한편, 슈트 차림의 레너드는 깔끔하게 빗어 넘긴 윤기 있는 브라운 머리카락도, 오뚝하게 솟은 콧날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과 알렉이 연인이라니, 누가 봐도 믿지 못할 것이다.

어째서 레너드는 알렉을 좋아해 주는 걸까?

한동안 잊고 있었던 불안이 솟구쳤다.

형제처럼 귀여움받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안이었다.

“왜 그래, 알렉?”

“…아.”

단둘이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레너드가 장난을 치듯이 귓불을 간질였다.

사랑스러운 듯 미소 짓는 보라색 눈동자는 한없이 다정했다.

“그게….”

무심코 알렉은 원망스러운 눈빛을 거울로 향했다.

레너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귀여운 알렉. 토라지니까 더 귀여운걸.”

“레너드!”

알렉을 번쩍 안아 들고 입을 맞추었다.

엘리베이터가 정지하는 소리에 알렉은 크게 당황했다.

문밖에 누가 있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괜찮아. 이 층은 전부 내 집이니까.”

“어?”

레너드는 신부를 안아 들듯이 그대로 알렉을 집으로 데려갔다.

실내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식당으로 가자 식사 준비까지 되어 있었다. 레너드가 빈틈없이 지시했는지 고용인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음식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레너드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한 시간인가. 미안해, 알렉. 오후부터는 일을 하러 가야 해서 조금 서두르는 편이 좋겠어.”

“일이 있잖아, 알았어.”

레너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알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서두르겠다고 말해놓고 레너드는 여전히 알렉을 세심하게 보살폈다.

무릎 위에 알렉을 앉히고 반쯤 습관이 되어버린 것처럼 알렉의 입에 스푼과 포크로 음식을 옮겨 넣었다.

입에 다 들어가지 않아서 소스가 턱에 묻자 레너드가 혀로 낼름 핥았다.

식사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침실에서 하던 애무의 연속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이번에는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유서 깊은 링컨셔의 저택과 달리 런던에 있는 레너드의 펜트하우스는 기능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방 하나하나의 크기가 여유로웠다.

방금 식사를 했던 식당도, 지금 들어온 침실도 링컨셔의 저택에 있는 것과 비슷한 넓이였다.

레너드가 알렉을 침대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진한 초록색을 바탕으로 한 빅토리아 왕조 후기풍의 링컨셔의 저택과 대조적인 흑백으로 통일된 모던한 침실이었다.

레너드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쉬고 있으라는 뜻일까?

알렉은 괜찮아, 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에 알렉을 눕힌 레너드가 알렉의 벨트로 손을 뻗어 능숙하게 알렉의 바지를 벗겨냈다.

“레, 레너드?”

식사를 하기 전에 앞으로 한 시간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시계를 힐끔 보니 느긋하게 식사를 한 탓에 앞으로 2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레너드가 지각할지도 모른다.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리는 알렉의 입술에 레너드가 쉬잇 하고 손가락을 갖다 댔다.

“끝까지는 안 해. 그냥 식후의 디저트를 먹고 싶어서 그래.”

“뭐? …앗.”

밖으로 드러난 알렉의 성기를 레너드가 갑자기 입술로 확 덮었다. 달래듯이 입안에서 이리저리 핥자 알렉의 등줄기에 경련이 일었다. 입안의 뜨거운 열기에 흥분이 고조됐다.

“응… 아앗….”

억누를 틈도 없이 부끄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진 다른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기분 좋은지 전혀 모르고 있던 순수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레너드의 애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알렉의 그곳은 부끄러울 정도로 금세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주머니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레너드의 입술이 성기를 물고 빨아올렸다. 입 전체를 사용한 교묘한 애무에 알렉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아… 싫어…!”

뜨거운 혀가 기둥을 휘감고 츄릅 소리를 내며 알렉의 성기를 핥았다. 레너드가 자신의 성기를 입에 넣고 있었다.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알렉은 점점 강하게 느끼고 말았다.

“안 돼… 안 돼…. 레너드… 읏!”

허리가 움찔 떨리면서 알렉은 순식간에 희뿌연 액체를 쏟아냈다. 머릿속에 찌잉 하고 이명이 들리고 숨이 찼다.

―또… 레너드의 입에….

그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창피한데 누워있는 알렉의 귀에 꿀꺽하고 레너드가 알렉의 것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맛있어.”

레너드가 속삭이는 말을 듣고 알렉의 온몸이 빨갛게 물들었다.

레너드가 어루만지고 있는 허벅지도 잘 익은 복숭아색으로 변했다.

“그런 게… 맛있을 리….”

없어, 라고 알렉은 말하려 했지만 그와 동시에 입술에 묻은 것을 레너드가 혀로 핥는 것이 보였다.

“…아.”

알렉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꼭 자신의 성기를 한 번 더 핥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몸이 뜨거워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욕망이 타오른 레너드의 눈빛에 알렉은 터무니없는 바람이 떠올라 버렸다.

어쩌지. 이런 말을 했다간 레너드가 경멸하지 않을까?

하지만….

알렉은 절정의 여운이 남아있는 몸을 일으켰다.

불안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욕망이 알렉의 입을 열게 했다.

“저기… 나….”

“왜 그래, 알렉?”

따뜻한 손바닥이 알렉의 뺨을 쓰다듬는다.

뒷말을 재촉하는 동작에 알렉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괜찮을까? 아아, 그치만….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처럼 알렉의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나도… 하고 싶어….”

강렬한 욕망 때문에 잔뜩 잠긴 목소리.

알렉 자신도 알지 못했던 자신 안에 있는 음란함에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알렉도 레너드를 원하고 있었다.

레너드의 것…을.

자신이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이런 걸 바라게 되다니.

레너드가 쿡, 하고 웃었다.

그 얼굴이 알렉의 귓가로 스윽 다가왔다.

“뭘 하고 싶은데, 알렉?”

그렇게 속삭이면서 귓불을 가볍게 깨물었다.

알렉의 몸 안에 오싹한 전율이 스쳤다.

―어떡하지….

너무나도 뻔뻔하고 음란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알렉은 열기에 젖은 눈으로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입술의 움직임을 막을 수가 없었다. 몸이 뜨거웠다.

“나도… 디저트….”

레너드가 싫어하면 어쩌나 겁이 나는데도 말이 멋대로 튀어나왔다. 알렉은 레너드의 슈트 자락을 잡고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줘.”

“나쁜 아이로군.”

알렉의 심장이 따끔하게 아팠다.

레너드가 슈트를 잡은 알렉의 손을 살짝 떼어냈다.

―역시… 말하지 말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알렉의 귀에 레너드가 겉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철컥철컥하고 벨트를 푸는 소리도.

“레너드…?”

알렉은 느릿느릿 눈을 떴다.

그 앞에서 레너드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리 와, 알렉.”

손짓을 하면서 레너드는 알렉의 안경을 조심스레 벗겨냈다.

그리고 알렉의 손을 레너드의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괘, 괜찮아?”

알렉은 믿어지지 않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레너드는 화가 난 게 아니었다. 화내기는커녕 기쁜 듯이 알렉을 보며 웃고 있었다.

“물론. 기뻐, 알렉.”

그러고 나서 알렉의 손을 자신의 크고 단단한 성기에 얹었다.

뜨거운 질감과 머리카락보다 아주 조금 진한 색의 수풀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으로 움켜쥐자 레너드의 수컷이 아주 조금 더 단단해졌다.

느끼고 있다. 알렉의 손길에 레너드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기쁨이 알렉의 가슴을 가득 채워갔다.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기쁜 일이라는 사실을 알렉은 알지 못했다.

레너드를 즐겁게 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더 많이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마음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충동에 이끌려 알렉은 레너드의 다리 사이로 허리를 숙였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레너드가 해준 것처럼 자신도 입으로 레너드를 사랑하고 싶었다.

“…으음.”

뜨거운 한숨을 코로 내쉬며 알렉은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입안에 머금었다.

―뜨거워… 레너드….

그러나 혐오감은 없었다.

똑같은 남자의 것인데 오히려 넋을 잃을 정도의 황홀함이 알렉을 채우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만족스러운 듯한 레너드의 한숨이 들려왔다.

“좋아, 알렉. 잘하는구나.”

칭찬하는 말에 몸이 뜨거워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 이렇게나 자신에게 충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렉은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알렉이 느끼는 쾌감을 레너드도 느끼고 있었다.

정신없이 레너드의 수컷을 핥아 올리는 알렉에게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알렉의 밀크를 더 마시고 싶은걸.”

“…응?”

알렉은 놀랐다.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알렉이 레너드를 기분 좋게 해주어야 하는데.

레너드가 갑자기 알렉의 다리를 잡더니 침대에 누웠다.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는 감각에 놀라서 고개를 들자, 알렉의 다리를 아래로 잡아당기며 똑바로 누워있는 레너드의 위에 걸터앉도록 이끌었다.

“레, 레너드….”

“자, 다리를 벌리고 내 얼굴 쪽으로 허리를 내려.”

“하,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앗!”

하체를 레너드의 얼굴 앞에 들이대는 자세가 창피해서 거부하자, 레너드는 억지로 알렉의 허벅지를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 위에 걸치게 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아앗.

레너드의 눈앞에 엉덩이를 들이민 알렉의 온몸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레너드를 기분 좋게 하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자신은 아직 하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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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레너드가 나직하게 웃었다.

“내 걸 만지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진 거야? 귀여운 알렉.”

“싫어… 하지 마, 레너드…!”

부끄러워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알렉의 그곳은 레너드를 애무하는 사이 완전히 원상복귀 되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되자, 알렉은 수치심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러나 레너드는 작게 웃으면서 알렉의 거기에 입을 맞췄다. 이어서 단단해지기 시작한 성기를 덥석 입에 물어버렸다.

“아앗… 읏, 안 돼… 아, 아아… 흐읏, 아.”

지금은 자신이 레너드를 즐겁게 해줄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알렉의 성기는 참을 수 없는 쾌락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알렉은 어쩔 줄 몰랐다.

“으응… 싫어….”

레너드의 혀가 성기를 핥기도 하고 입안 깊숙이 넣기도 했다.

나중에는 뒤쪽 입구까지 손가락으로 슬쩍슬쩍 건드렸다.

―나도… 레너드를….

알렉은 필사적으로 다시 애무하기 위해 레너드의 성기에 손을 뻗었지만, 입을 벌리자 신음이 흘러나와 정작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으읏… 으응… 앗.”

“알렉, 왜 그래? 입이 쉬고 있잖아.”

웃음 섞인 속삭임에 황급히 레너드의 수컷에 혀를 댔다.

하지만 레너드가 성기와 뒤쪽을 동시에 애무하고 있는 탓에 핥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아… 싫어, 레너드… 하지 마… 내 거 핥지 말아줘, 하아.”

애무를 멈추면 레너드를 기쁘게 해줄 수 있을 텐데.

레너드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신음하면서 알렉은 필사적으로 우뚝 솟은 성기에 혀를 내밀었다.

해야만 돼.

힘겹게 입을 벌리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뒤쪽 구멍으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아, 아아앗… 읏.”

알렉의 등줄기가 흠칫 뒤로 젖혀졌다.

처음에는 아픔이 섞인 쾌감밖에 없었던 그곳은 요 며칠 동안 완전히 길이 들어서 레너드의 욕망을 삼키는 것을 기쁨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 곳을 혀로 듬뿍 핥고 나서 손가락을 밀어 넣은 것이다. 짜릿하고 달콤한 쾌감이 손가락을 삼킨 곳에서부터 퍼져갔다.

“…싫어… 싫어, 레너드…!”

“응, 맛있게 익었는걸, 알렉.”

“읏… 으응….”

레너드가 긴 혀로 알렉의 것을 끈적하게 핥아 올렸다.

뒤쪽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수컷을 이리저리 핥아대니 알렉은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레너드의 뜨거운 수컷을 손에 쥐고 입술만 갖다 댄 채 끊임없이 달콤한 신음을 흘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아…아… 레너드….”

“자아, 밀크를 내보내, 알렉.”

“싫어―…읏!”

이윽고 뒤쪽으로 손가락이 깊숙이 들어온 순간, 알렉은 두 번째 꿀을 레너드 위에 걸터앉은 자세로 입안에 토해냈다.

“아…아아…아…앗!”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 마신 레너드가 성기에 묻은 액체를 마저 핥았다.

알렉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그저 숨을 헐떡거렸다.

“최고로 달콤한 밀크야. 맛있었어, 알렉.”

그렇게 칭찬하고 나서 레너드는 축 늘어진 알렉의 몸을 시트에 눕혔다. 힘이 빠진 알렉의 손에서 아직 뜨거운 레너드의 수컷이 스륵 빠져나갔다.

“아… 레너드….”

결국, 알렉이 마지막까지 하도록 해주지 않는 걸까?

알렉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누워있는 알렉의 가슴 위에 레너드가 걸터앉았다.

레너드의 힘차게 솟은 수컷이 눈앞에 보였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알렉은 숨을 몰아쉬면서 눈앞의 단단한 성기를 바라보았다.

레너드가 알렉에게 미소 지었다.

“자, 네 몫의 디저트야.”

“…아.”

레너드는 알렉이 이어서 할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알렉은 뺨을 붉히며 사랑스러운 사람의 다리 아래에서 입을 벌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알렉에게 잘 보이는 위치에서 레너드가 자신의 수컷을 움켜쥐고 한 번 두 번 가볍게 위아래로 쓸었다.

“알렉, 눈을 감아.”

레너드의 명령에 알렉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뜨거운 액체가 얼굴에 뿌려졌다.

“읏… 뭐야….”

따뜻한 것이 알렉의 얼굴을 더럽혔다.

알렉이 조심스레 눈을 뜨니 눈앞에서 레너드의 손안에 있는 것이 막 도달한 직후인 것처럼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럼, 설마….

알렉은 눈이 커졌다.

자신의 얼굴을 더럽히고 끈적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액체, 이것은―.

얼이 빠져 있는 알렉의 뺨을 레너드가 손가락으로 살짝 닦아냈다. 그 손끝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레너드가 막 내보낸 것이 묻어 있었다.

입 앞으로 그 손가락이 다가오자 알렉은 자연스럽게 입술을 벌렸다.

“…으음.”

비릿한 맛이 나는 하얀 액체를 알렉은 홀린 듯이 핥았다.

다시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어쩌지. 점점 음란한 몸이 되어 가고 있어….

레너드와 이렇게 되기 전까지는 쾌락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는데 고작 며칠 만에 이렇게 음란해지다니, 알렉은 그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시 레너드의 손가락에 묻은 정액이 입에 들어오자 알렉의 몸은 짜릿하게 저려왔다.

머리가 멍해졌다.

다정하게 레너드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간 다 됐어. 귀여운 알렉, 내가 없는 동안 혼자서 기분 좋은 거 하면 안 돼. 알렉의 밀크는….”

“…앗.”

다시 단단해지기 시작한 성기를 레너드가 가볍게 움켜쥔다.

“전부 내 거거든. 혼자 노는 건 금지야.”

그렇게 말한 레너드는 침대에서 내려가 옷차림을 가다듬고 나가버렸다.

―그런….

혼자 남겨진 알렉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호흡이 뜨거웠다.

가볍게 움켜쥐던 손길에, 그리고 얼굴에 뿌려진 레너드의 꿀에 몸이 견딜 수 없이 뜨거웠다.

그런데 이대로 내팽개치고 나가버리니 알렉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레너드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혼자서 하는 건… 안 돼….”

그 대신 알렉은 눈을 감고 얼굴에 묻어 있는 꿀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손끝으로 닦아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욕망의 증거를 소중하게 핥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핥는 것은 금지하지 않았으니까.

레너드의 흔적이 사랑스러웠다.

“으음… 맛있어….”

코로 한숨을 내쉬면서 알렉은 레너드의 정액이 묻은 손가락을 핥았다. 그러자 괜히 더 몸이 욱신거렸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알렉은 레너드가 준 디저트를 전부 핥아 먹고 화끈거리는 몸을 끌어안았다.

끝까지 참아내야 한다. 전부, 레너드의 것이니까―.

뜨거운 숨을 토해내면서 알렉은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른함을 느끼며 알렉은 눈을 떴다.

정오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순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뒤로 만 하루가 지난 걸까? 아니….

그래, 하고 조금씩 기억이 떠올랐다.

어제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대낮부터 레너드의 사랑을 받고 몸이 달아오른 채로 계속 참고 있어야 했다.

밤이 되어도 그 열이 식지 않아서 머릿속이 멍해져 있었다.

그리고 레너드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먹여주고, 그리고, 그리고….

―음란한 짓을 잔뜩….

목이 쉴 정도로 신음하면서 몇 번이고 레너드에게 안겼던 것을 떠올리고 알렉은 얼굴을 붉혔다.

집사나 고용인이 항상 근무하고 있는 링컨셔의 저택과 달리 이곳 런던의 펜트하우스는 사람이 없어서 쥐죽은 듯 고요했다.

어제 점심과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던 것을 보면, 누군가 집안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항상 이 집에 머무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때문일까.

레너드의 행위는 링컨셔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격렬했다.

어젯밤에도 몇 번이나 안겼는지 모른다. 지금도 아직 뒤쪽에 레너드가 들어있는 것 같은 위화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의 몸 상태가 개운한 걸 보면 잠들어 있는 동안에 레너드가 깨끗하게 닦아준 것 같았다.

조금 부끄러운 기분으로 레너드가 입혀준 잠옷을 내려다보니 벌어진 앞자락 사이로 가슴의 키스 마크가 보였다.

순간. 알렉은 귀까지 새빨개졌다.

몸 안쪽에서부터 수치심의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우우… 정말….”

뜨거운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알렉은 반동을 이용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금 휘청거린 것이 무척 창피했다.

“정말….”

알렉은 작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레너드의 집에 오고 나서부터 내내 안겨 있기만 했다.

음란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흐물흐물 녹을 때까지 사랑받는 순간 알렉은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사랑받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좋을 텐데.

얼굴을 붉히면서 알렉은 연인이 된 뒤로 레너드가 보여준 수많은 행동을 떠올렸다.

레너드는 보통의 연인보다―아니, 영화나 소설에서도 본 적 없을 정도로―달콤하고 다정하게 자신을 대해주었다.

알렉 자신조차 스스로에게 그렇게 너그럽지 않은데.

그것도 레너드라는 완벽하고 결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다.

레너드와의 감미로운 추억에 잠겨 들 뻔한 알렉은 직전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레너드와의 추억은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음란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창피해져서 알렉은 침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레너드가 없는 시간에 혼자 음란한 기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다.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자는 생각에 알렉은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사이드 테이블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문득 전화기가 시야에 들어오자 알렉은 퍼뜩 떠올렸다.

―그렇지, 미즈키한테 전화…!

아무리 레너드의 사랑에 넋이 나가 있었다 해도 미즈키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순간, 죄책감이 솟구쳤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나서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에 미즈키는 여러 번 알렉에게 전화를 했는데 알렉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는 전화를 해야 했는데. 애초에 그것 때문에 레너드의 집으로 도망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참, 나도… 정말이지, 멍청이야.

아무리 레너드와의 밀월에 취해 있었다 해도 친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건데.

미즈키는 알렉에게 생긴 첫 번째 친구인 것이다.

“좋아, 레너드가 돌아오기 전에 미즈키한테 전화를 하자.”

레너드가 돌아오면 전화를 걸 여유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전에도 레너드는 가장 특별한 존재였지만, 연인이 된 뒤로는 레너드와 함께 있으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이겠지.

또 멍하니 레너드를 떠올리던 알렉은 얼른 정신을 추스르고 머리를 붕붕 저었다.

“안 돼, 안 된다고.”

가볍게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알렉은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거기에 며칠째 놓여 있던 짐들을 풀어헤쳤다. 그 속에 미즈키의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수첩이 있는 것이다.

곧바로 찾아내어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어디….”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미즈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알렉이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아무리 미즈키라도 화가 나 있을지 모른다. 이제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면 어쩌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알렉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신호음이 들리고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는 기척이 느껴졌다.

‘예, 글램스코트 백작가입니다.’

차분한 집사의 목소리에 알렉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이름을 댔다.

“아! 여보세요, 전 알렉산더 스테이플턴이라고 합니다. 미즈키는….”

그러나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가 갑자기 뚝 끊겼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야?

알렉은 놀라서 몇 번이나 수화기에 대고 외쳤다.

“왜 이러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한 번 걸어보자.

알렉은 수화기를 귀에서 떼고 번호를 누르려 했다.

그 귀에 의미심장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쁜 아이로군.”

“어…?”

레너드의 목소리에 알렉은 뒤를 돌아보았다.

일을 하러 갔던 게 아니었나?

알렉의 눈이 커졌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레너드의 손에 뽑힌 전화선이 들려 있기 때문이었다.

“레너드…, 뭐하는 거야…?”

어째서 레너드가 전화선을 뽑은 걸까? 왜, 미즈키와의 통화를 막는 거지?

알렉의 머리는 혼란에 빠졌고, 동시에 레너드에게 묘한 두려움을 느꼈다.

―레너드, 왜….

전화선을 집어 던진 레너드가 성큼 다가왔다.

알렉은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숨도 쉴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경직된 알렉의 뺨을 레너드가 다정하게―평소보다 더욱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입가에는 늘 알렉에게 보여주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알렉을 바라보는 눈빛도 애정이 듬뿍 담긴 달콤한 시선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을까 해서 돌아온 건데 오길 잘했는걸. 내가 없는 틈에 전화를 걸려고 하다니, 나쁜 아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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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하지만 깊고 낮은 목소리였다.

알렉을 비난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지만 공포심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정말로 알렉이 알고 있는 레너드인 걸까?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상냥한 레너드인 걸까?

어서 평소의 레너드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에 알렉은 힘겹게 가슴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나오는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레너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자신은 나쁜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미즈키가 알렉에게 생긴 첫 번째 친구라는 것을 레너드 역시 알고 있지 않은가.

왜 그 미즈키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나쁜 행동인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화기를 꽉 움켜쥔 채 알렉은 어딘가 사람이 달라진 것 같은 레너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알렉이 처음으로 본, 레너드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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