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거짓된 운명이라 할지라도 Ⅰ(3)
―어쩌지. 엄청난 짓을 해버렸어…!
얼빠진 채로 저택으로 돌아온 알렉은 수풀 속에서 있었던 일의 의미를 떠올리며 겁에 질려있었다.
레너드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달콤해서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으로 돌아와 냉정함을 되찾자, 자신이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너드는 남자이고 알렉 자신도 남자다.
또한 레너드는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존재였다.
그런 가장 소중한 사람이 울고 있는 자신을 어르기 위해 해준 가벼운 키스에 몸이 달아오르고 말다니.
그치만 너무나도 다정한 레너드는 알렉의 성적 흥분까지 달래 주었다.
어째서 그런 음란한 자신을 레너드는 상냥하게 용서한 걸까?
그뿐 아니라 왜 내일도 오라는 말을 한 걸까?
당혹감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알렉은 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웅크리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면 무시무시한 결론에 다다를 것만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레너드의 속삭임이 귓불에 스치던 숨결과 함께 몇 번이나 되살아났다. 레너드는 싫어하는 내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싫어하긴커녕, 키스까지 몇 번이나 해주었다. 키스를 해주고, 꼭 안아주고. 자신은 그 손에 정액을 쏟아낸 것이다.
어릴 때부터 늘 알렉을 달래 주고 쓰다듬어 주던 손이 알렉을 만지고, 그리고….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 뜨거웠던 열기가 다시 머릿속에서 떠오르려고 해서 알렉은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애썼다.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남자끼리 그렇게 음란한 짓을 하다니,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너드는 내일도 그곳에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알렉은 응, 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뒤에 레너드가 해주었던 달콤한 포옹.
내일 그 장소에 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레너드는 또 그런 식으로 자신을 만지는 걸까?
“그런… 설마….”
알렉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자신이 키스에 반응해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결코 레너드의 진심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떨쳐내려고 할수록 뇌리에 하반신만 알몸이 된 자신이, 음란한 소리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냐. 레너드는 그럴 생각 따위 절대로 없을 거야.
알렉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자신의 엉큼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것은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
레너드는 그럴 생각으로 내일도 오라고 알렉을 부른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래. 분명, 알렉이 오늘 일이 창피해해서 레너드를 피하게 될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 불러주었을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라고.
레너드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같은 장소에 가도 괜찮다.
알렉은 몇 번이나 혼자서 그렇게 되뇌었다.
다음 날, 알렉은 터덜터덜 어제의 그 장소로 향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제 그런 추태를 보였으니 조금 부끄러운 것뿐이다.
그렇게 혼자서 변명하며 수풀로 들어섰다.
그 안은 푸른 나뭇잎 사이로 부드러운 햇살이 새어들고, 작은 새들의 노래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알렉은 돌이 있는 연못가로 향했다.
비밀 장소에 들어선 알렉의 눈이 커졌다.
“…없어.”
돌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렉은 속으로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실망했다.
―실망이라니, 난 대체 무슨 생각을….
자신의 감정에 당혹감을 느끼면서 알렉은 돌 위에 앉았다.
다리를 흔들거리며 랭스턴 백작 저택이 있는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레너드가 없어서 마음이 놓이는데, 왜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걸까?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기지는 않을지 반쯤은 두려워하면서도 반쯤은 기대하고 있던 걸까?
그런 바보 같은.
이대로 레너드가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알렉은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그래, 앞으로 하루 이틀만 지나면 마음속에서 술렁이는 이 부끄러운 감정도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레너드가 알렉을 특별하게 귀여워한다고 해도 앞으로 두 번 다시 어제와 같은 일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알렉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심장 소리가 가라앉으며 어제와 똑같은 말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알렉의 가슴이 뛰었다.
레너드다. 레너드가 온 것이다.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면서 알렉은 안절부절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쩌지…. 그냥 돌아갈까…? 틀림없이 그게 나을 거야….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사이, 레너드가 알렉이 앉아있는 바위 바로 아래까지 다가와 말에서 내렸다.
연못을 건너와 잔뜩 움츠린 알렉의 손을 잡았다.
몸이 움찔 떨렸지만, 레너드는 바위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알렉의 옆에 앉았다.
“다행이다. 와줘서….”
그 뺨에는 안도의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대로 알렉을 꼭 끌어안는다.
“…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알렉의 심장이 요란하게 뛰었다.
또다시 레너드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뜨거운 속삭임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어제 일로 내가 싫어졌으면 어쩌나 싶어서 밤새 한숨도 못 잤어. 와줘서, 고마워.”
“레너드… 아.”
턱을 잡고 키스를 한다. 입술을 살짝 빨아올리는 입맞춤을 받으며 알렉은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어제의 그 일은 어쩔 수 없이 한 것이었다고 열심히 되뇌고 또 되뇌었는데.
레너드도 마지못해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이런 키스를 받으면 자꾸만 착각하게 된다.
“…음… 후….”
혀가 입술을 한 번 핥더니 벌어진 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런 키스는 처음이라 겁먹은 알렉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읏…!”
레너드가 혀를 휘감아서 빨아올리자 온몸의 힘이 풀렸다.
―이런… 키스….
혀를 감아올리는 진한 키스를 알렉은 모른다.
입속 가득 레너드의 혀가 들어왔다. 알렉의 입안을 핥고 빨아올리는 바람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음… 으음….”
친애의 키스와는 전혀 다른 입맞춤에 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그것을 눈치챈 레너드가 다시 어제처럼 하반신을 더듬기 시작했다. 바지 위로 가볍게 쓰다듬었을 뿐인데 알렉의 코에서 달콤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읏….”
열기를 확인하듯 어루만지던 손은 곧바로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레너드는 키스를 하면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벨트를 풀었다.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린다.
설마, 어제와 똑같이 자신의 성기를 만질 생각인 걸까?
―레너드가 그런…!
어제 한 번뿐이라면 우연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레너드가 자신에게 키스를 하고,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다시 그의 품속에서 바지가 벗겨지자 알렉의 몸이 흠칫하고 굳었다.
“아, 안 돼… 레너드… 앗.”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했다.
레너드는 차분하게 알렉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예전같이 다정한 속삭임이었다.
“기분 좋게 해주려는 것뿐이야. 알렉은 착하니까, 힘을 빼고 내 손에 내보내도록 해. 이대로 있으면 괴롭잖아?”
“싫어… 안 돼… 읏!”
알렉은 필사적으로 거부했지만, 레너드는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알렉의 성기를 잡았다. 그대로 커다란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피한데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도 레너드의 손놀림에 알렉의 성기는 움찔움찔 떨면서 반응했다.
“싫어… 안 돼… 아아, 앗.”
알렉은 고개를 흔들며 레너드를 어떻게든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레너드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긴커녕, 뺨에 키스를 하면서 속삭였다.
“안 될 거 없어. 해도 돼. 알렉을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것뿐이니까.”
“으음… 하지만… 싫, 어…흣!”
천천히 움직이던 손이 기둥 전체를 감싸고 훑기 시작했다.
성기 끝에 이슬이 맺혔다.
“젖기 시작했어…. 기분 좋은 모양이네, 알렉.”
“아냐… 읏, 아앗!”
성기를 흔드는 손이 빨라졌다.
“싫어… 싫…!”
알렉은 어떻게든 버티려 했다. 그러나―.
“가도 돼.”
“하앗… 읏, 으응―…!”
레너드가 아래를 강하게 움켜쥐면서 성기 끝을 손톱으로 살짝 긁어 내리자, 알렉은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도달해 버렸다.
“아… 그런….”
믿을 수 없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또다시 레너드의 손길에 느끼고 사정해 버렸다.
넋이 나간 얼굴로 알렉은 중얼거렸다.
“왜… 이런 짓을…. 혼날 거야….”
동성의 손길에 이렇게 느끼는 자신은 이상한 게 아닐까?
그것도 너무나 좋아하는 레너드가 만질 때마다 음란하게 반응하다니. 가족에게 들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레너드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싫다고 말했는데 어째서 레너드는 이틀 연속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어째서… 레너드….”
울음을 터뜨린 알렉을 보며 레너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뺨에 입을 맞추며 알렉의 눈물을 핥아 올리고 자신의 뺨을 마주 댔다.
“이런 짓을 한 내가 싫어, 알렉?”
슬픔이 담긴 목소리에 알렉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싫다니, 그렇지는…!”
반대로 너무 좋아하니까, 음란한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웠다.
레너드에게 미움받게 되지는 않을까 겁이 나는 것이다.
매달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알렉에게 레너드가 사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질문했다.
“그럼, 내가 좋아?”
열기 어린 제비꽃 색 눈동자가 알렉을 가만히 응시했다.
흡사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알렉은 레너드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좋아하느냐니, 그런 질문….
대답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알렉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자신의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줄곧 좋아했다.
싫어하게 될 리가 없다.
“―좋아해.”
소리 내어 말하자 어째선지 몸이 찌릿하고 저렸다. 말이 주문이 되어 몸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아아, 그래. 난 지금껏 레너드를 좋아했던 거야….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하자 알렉은 이제야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린아이의 애정과는 다른, 레너드에게만 전부 허락한 연정.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럼, 조금 더 알렉을 만져도 될까?”
나직한 목소리로 물으며 레너드가 알렉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조금 전까지의 거부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진보라색 눈동자가 알렉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깊숙이.
―무엇을 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 목소리가 저 멀리 어디론가 흩어졌다.
레너드를 좋아한다.
레너드만이 알렉을 귀여워해 준다. 소중하게 대해준다.
그런 레너드가 바란다면―.
“―응.”
알렉이 허락하자, 옷자락 안으로 레너드의 손바닥이 들어왔다. 가슴을 더듬으며 다른 한 손은 알렉의 하반신을 더듬기 시작했다.
―창피해… 하지만….
셔츠가 흘러내려 맨 어깨에 햇살을 받은 나뭇잎의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레너드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알렉은 작게 신음했다.
“아…아아… 레너드, 아.”
레너드만이 전부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마치 불빛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알렉은 레너드와 약속한 장소로 찾아갔다.
그때마다 레너드는 연인끼리 하는 농밀한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여린 몸을 더듬었다.
“귀여워… 알렉.”
숨을 헐떡이며 도달한 알렉에게 레너드가 입을 맞췄다.
정액으로 더러워진 허벅지를 드러낸 채 알렉은 눈물을 흘렸다.
견딜 수 없이 부끄러운데도 레너드의 손길에 쾌감을 느끼는 자신은 틀림없이 어딘가 잘못됐다.
레너드가 왜 자신과 이런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반쯤 벗은 채 쾌락을 느끼는 자신이 한심하고 창피해서 알렉은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왜냐고 이유를 따져 묻기에는 알렉은 너무나도 레너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 미움받게 될까 봐 겁이 날 정도로.
“알렉, 왜 그래? 싫었어? 기분 나빴어? ―아니면 이런 걸 하는 내가 싫어졌어?”
싫어졌느냐고 묻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나직했다.
알렉은 고개를 들어 등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은 레너드를 올려다보았다.
“싫어지다니… 그런 게 아니라….”
알렉이 레너드를 싫어하게 될 리 없다. 싫지 않으니까 눈물이 나오는 건데.
하지만 이런 음란한 짓을 매일 하다 보면 언젠가 가족들에게 들킬 것 같아서, 그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레너드도 언젠가 음란한 자신에게 질려서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알렉은 예전에 미즈키의 어머니를 조롱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알렉은 그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레너드를 만나러 와서 음란한 손길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자신은 음탕하고, 추하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알렉을 보는 레너드의 얼굴이 괴로운 듯 흐려졌다.
“알렉이 싫으면 이제 안 할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분간 알렉을 만날 수 없을 거야.”
“뭐…?”
뜻밖의 말에 알렉의 눈이 커졌다.
안경을 벗은 알렉의 눈은 갓 돋아난 새싹 같은 녹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은 연민을 느끼게 했다.
레너드는 그 눈동자를 보며 안타까운 듯 웃었다.
“만지면 안 된다고 한다면 나는 당분간 알렉과 만날 수 없어. 만나면 만지고 싶어지니까 말이야. 이렇게 만지면서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니까. 알렉이 안 된다고 하면 만나지 않는 수밖에 없어.”
“그런…!”
알렉의 입술이 떨렸다.
레너드를 만나지 못하면 저택에서의 생활을 버틸 수가 없다.
형의 비아냥, 고용인들의 경멸 어린 태도, 주말마다 저택으로 돌아오는 부모님의 못마땅한 시선―.
그 모든 것을 레너드 없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특히나 미즈키들과 함께 했던 눈부시게 환한 나날들을 알아버린 지금은 냉랭한 후작가에서의 생활이 한층 더 괴로웠다.
알렉은 몸을 돌려 레너드의 셔츠에 매달렸다.
레너드가 없다면―.
눈물로 젖은 눈가에 레너드가 입을 맞췄다.
“이제 만나지 말까, 알렉? 이제 이런 거 싫지?”
“아니.”
순간적으로 알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고 말하면 레너드를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런 건 싫었다. 절대로 안 된다.
레너드가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조금 더 알렉을 만져도… 될까?”
“…좋아, 만져, 레너드.”
알렉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것은, 레너드뿐.
레너드가 없으면 알렉은 살아갈 수 없다.
레너드의 손이 닿은 하반신에 달콤한 전율이 스쳤다.
―창피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너드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알렉은 그 등에 매달리며 가장 좋아하는 그를 위해 몸의 힘을 뺐다.
레너드가, 알렉을 만지고 싶어 한다면―.
그렇게 도망치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괜찮다고 말한 이후로, 레너드는 몇 번이나 알렉의 성기를 만지고, 마치 체액을 짜내려는 듯이 더듬었다.
성기만이 아니라 가슴이며 목덜미에도 레너드의 입술이 훑고 지나갔다. 헤어지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레너드가 어루만지고 나면 온몸의 피부가 뜨거워졌다. 민감해진 채로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내일도 기다릴게, 알렉.”
마지막에 약속을 확인하는 레너드에게 알렉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내일도 그다음 내일도, 매일 매일 이런 짓을 하다 보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런 두려움보다 레너드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레너드만큼은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알렉에게 웃어주고, 귀여워해 주는 것은 오직 레너드뿐이었다.
그 사람을 잃게 되면 분명 견딜 수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레너드가 어떤 것을 바란다 해도 알렉은 거부할 수 없었다.
알렉은 힘없이 저택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갔다.
주말까지는 둘째 형과 단둘이 있어야 했다. 우울한 저녁 식사를 떠올리며, 알렉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택에 도착해 집사를 찾았다.
“내 앞으로 전화 온 거 없었어?”
그렇게 물으니 집사는 정중하지만 딱딱한 말투로 ‘없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열흘 남짓, 아직 미즈키에게서 전화가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화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하나? 전화를 걸었다가 혹시라도 미즈키가 쌀쌀맞게 대하면 어쩌지?
다른 사람도 아닌 미즈키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저택에서의 차디찬 나날은 알렉의 마음마저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잘도 매일매일 태평하게 놀러 다니는구나, 알렉.”
저녁 식사 자리에서 형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뭐, 너 같은 녀석이 학업을 계속할 필요 따윈 없지만, 최소한 창피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때? 이대로 가다간 그렌필드를 나오고 나면 아무리 아버님이라도 너에게 일자리를 찾아줄 수 없을걸? 머리에 너무 든 게 없어서 소개한 아버님의 체면이 구겨질 테니까.”
“…미안해.”
깨작깨작 밥을 먹으면서도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래알처럼 느껴지는 요리를 힘겹게 목으로 넘겼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도망치다시피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알렉을 집사가 불러 세웠다.
“알렉산더 님, 밖에서 노시는 것은 상관없습니다만, 조금 더 얌전히 놀아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매일 옷에 흙을 묻혀 오시면 가정부도 곤란합니다.”
어린애도 아니고, 하면서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쉰다.
알렉의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흙이 묻은 것은 숲이나 냇가에서 논 탓이 아니었다.
레너드와 야외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바로 짐작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집사에게 들켜서는 안 되었다.
“미, 미안해. 주의할게….”
우물우물 사과하고 알렉은 집사 앞에서 도망쳤다.
―아아, 어떡하지. 언젠가 모두에게 들키고 말 거야.
그러나 싫다고 말하면 레너드와 만날 수 없게 된다.
레너드와 만나지 못하는 것은 싫었다.
고민에 빠진 알렉은 옷을 갈아입는 것도 잊은 채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째서 미즈키는 전화를 하지 않는 걸까?
어째서 시간은 좀 더 빨리 흘러가지 않는 걸까?
훌쩍훌쩍 울면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햇살이 방으로 새어들고 있었다.
주름투성이 옷을 입은 채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집사가 꼭 아버지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알렉을 쳐다보고 있었다. 옷을 입은 채 잠들어 버린 것에 대한 무언의 비난이었다.
잠시 후, 가정부가 씩씩거리면서 다가왔다.
“알렉산더 님! 시트에도 흙이 묻었잖아요!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예요!”
“미, 미안해…!”
그러고 보니 바로 어제 매일같이 옷에 흙을 묻혀 온다고 쓴소리를 들었는데,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잠들어 버리다니,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걸까.
알렉은 황급히 사과했다.
잔뜩 화가 나서 세탁실로 가는 가정부 옆에서 집사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알렉은 참지 못하고 저택을 뛰쳐나갔다.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 어디에도 없다.
숨을 몰아쉬며 전력 질주해서 평소처럼 수풀로 도망쳐 갔다.
여기에 오면 언젠가 레너드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알렉이 도망칠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바위 위에 작게 웅크려 앉은 알렉은 안경을 벗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이윽고 알렉의 귀에 풀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레너드가 올 시간이었다.
“레너드….”
울먹거리는 자신의 얼굴은 상당히 보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도 레너드는 울고 있는 알렉의 곁으로 달려와서 자상하게 끌어안았다. 늘 이렇게, 응석을 받아준다.
“왜 그래? 또 무슨 말 들었어?”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뺨에 레너드가 살며시 키스를 하며 물었다.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는 잔뜩 있었다. 또 자신이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러 버린 일, 둘째 형한테서 머리가 나쁘다고 놀림을 당한 일, 그리고 미즈키가 전화를 하지 않는 일―.
알렉은 콧물을 훌쩍거리며 레너드에게 하소연했다.
“레너드는… 날 버리지 않을 거지? 날 싫어하지 않을 거지?”
레너드의 가슴에 매달려 알렉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사랑스러운 듯 알렉을 쓰다듬으면서 레너드가 미소 지었다.
“싫어할 리 없잖아? 알렉은 나한테 더없이 귀엽고 소중한걸.”
“정말?”
“당연하지. 넌 나를 위해 태어난 거야.”
다정한 속삭임에 알렉은 새빨개진 코를 한 번 훌쩍 들이마시고 다시 물었다.
“난, 레너드를 위해 태어났어?”
“그래. 넌, 나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거야. 너의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어, 알렉.”
레너드의 손가락이 알렉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라서 알렉은 얼른 몸을 비틀었다.
어제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목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몸을 비트는 알렉을 레너드가 힘껏 껴안았다.
“도망치지 마, 알렉.”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나, 샤워를 안 했어.”
작게 저항하는 알렉의 목덜미에 레너드가 코를 묻었다.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보다 알렉의 냄새가 진하게 나. 좋은 냄새야.”
“싫어, 안 돼….”
좋은 냄새가 날 리 없었다.
알렉은 필사적으로 레너드에게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멈칫 굳었다.
버둥거리던 손이 레너드의 단단한 열기에 닿아버린 것이다.
“레, 레너드….”
놀란 알렉의 눈에 레너드의 안타까움이 담긴 눈동자가 비쳤다.
레너드의 거기에 손이 닿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늘 레너드가 일방적으로 알렉을 만지고 옷을 벗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너드도 똑같이 뜨거웠다.
알렉을 만져서 레너드도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자신에게, 아름답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은 자신에게!
몸속 어딘가가 녹아내렸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아…, 나….”
“내가 무서워, 알렉?”
그렇게 묻는 레너드의 목소리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알렉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뜨거운 레너드의 몸과 마찬가지로 알렉의 열기도 급격히 상승하고 있었다.
레너드의 흥분이 알렉까지 흥분시킨 것이다.
“레너드, 도… 나, 를….”
“넌 나를 위해 태어났다고, 그렇게 말했지? 네가 이렇게 되기를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 나의 사랑스러운 알렉, 귀여운 알렉.”
그 시선에 못 박힌 것처럼 알렉은 꼼짝도 할 수가 없어졌다.
―네가 이렇게 되기를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어.
어느새 레너드가 알렉의 셔츠를 벗겨서 그것을 둥글게 말았다.
알렉은 더는 저항하지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셔츠를 베개처럼 머리 뒤에 받치고 알렉을 바위 위에 눕혔다.
“―전부, 내 거야, 알렉.”
마법의 주문 같은 레너드의 속삭임.
―난, 태어날 때부터 레너드의 것….
뜨거운 속삭임에 홀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레너드의 손이 바지를 잡고 천천히 끌어내렸다.
빼빼 마른 몸을 레너드가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알렉은 모든 것을 내어 주듯 눈을 감았다. 알몸으로 누워서 레너드가 옷 벗는 소리를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