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웃는 사람. (6/6)

6. 웃는 사람.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차가운 복도에 기대선 채로 지한은 떨리지도 않는 가슴을 움켜쥐고 물었다. 이후의 손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던 순간, 심장이 끝 모를 벼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뒤늦게 그의 귓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울음 섞인 비명이었다. 모든 떨림이 순식간에 멈추었다. 꿈에서 현실로 갑자기 끌어내려져 그는 여기까지 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오기 위해 자신은 내내 어리석고 비겁하게 도망 다녔던 걸까.

이후가 정신을 잃은 후에 지한도 똑같이 졸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구급차를 불러야 했고, 패닉 상태인 민혜를 다독여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안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것은 지한도 마찬가지였다. 

지한은 그녀를 결코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함께 한 일. 지한은 그녀를 안은 채로 눈을 감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얼굴. 피로 물든 셔츠에서 계속해서 스며 나오는 피, 피, 붉은 피…….

지한은 죽은 동생의 시체를 떠올렸다. 죽음과 먼 편안한 얼굴, 그러나 처참히 뭉개진 몸.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져본 손끝은 차가웠다. 그 차가움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지한은 그를 만지지 못했다. 혼자서 죽어가고 있는 남자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

눈이 내리진 않지만 확실히 겨울의 풍경이었다. 구름과 하늘이 섞여 우중충한 회색빛으로 물든 하늘, 얼어붙은 듯 뻣뻣하게 서 있는 무미건조한 빌딩의 무리, 바람에 흔들리는 메마른 나무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 두꺼운 옷을 입고도 추워서 저마다 옷깃을 여미고 있었다. 

지한 자신도 저 매서운 바람 속을 뚫고 왔으므로 얼마나 추운지는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어린아이들만이 차가운 바람에도 신나는 얼굴로 거리를 뛰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겐 폐를 얼릴 것 같은 차가운 공기도 별 장애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유를 즐긴다. 는 말의 의미를 지한은 잘 알 수 없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제대로 논다고 마음껏 놀아본 일이 없는 지한은 갑자기 생겨난 어마어마한 시간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반쯤은 자의가 아니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경력 덕분에 재취업도 어렵지 않았지만 일단은 쉬기로 했다. -그만둔다는 얘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잽싸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온 회사도 있었다-덕분에 긴 휴가를 얻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긴 휴가는 처음이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해 보기도 했지만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마음도 굼떠 어딘가 떠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다시 일을 하게 되면 또다시 숨 쉴 새도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질 테니까. 그때까지는 이 지루할 정도의 시간을 마음껏 즐겨보자.

“회사 그만뒀다며?”

인사가 너무 밑도 끝도 없었다. 지한은 놀라서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재빨리 가져왔다. 그곳에 머리가 부쩍 짧아진 민혜가 서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는 조금 길어진 것이었다.

“인사도 안하고 질문 먼저 하는 게 어디 있어.”

“말 돌리지 말고 말해. 아니야?”

그것이 그렇게 큰 뉴스거리던가. 지한은 속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겸연쩍은 기분이었다. 사실 오늘 말해주려고 했던 건데 미리 알아버렸나 보다. 출처는 뻔했다. 아마도 그녀의 오지랖 넓은 친구일 것이다.

“그래. 그만 둔거 맞아.”

“왜?”

“일단 앉아서 얘기 해. 뭐 마실래? 커피는 싫어하던가. 그럼 따뜻한 걸로……. 레몬차 마실래?”

사실 차는 핑계였고 그녀의 사뭇 공격적이기까지 한 태도에 말을 꺼내기가 머뭇거려졌기 때문이었다. 메뉴판을 바라보던 시선을 그녀를 올려다보니 그제야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민혜와 지한은 결국 그 해 가을 결혼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기한 연기……라는 명목이었지만 사실상 파혼이었다. 지한의 부모님이나 그녀의 부모님도 이제는 그들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때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전쟁터 같았다.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터.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던 자신. 떠올리려고 해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두뇌는 멋대로 편집해 버렸다. 사람의 몸이란 상당히 편리한 구석이 있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건만 몇 개월 전을 생각하면 꿈같다. 아니, 자신들의 얼굴을 한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 같았다. 그때만 해도 서로의 가슴에 새긴 상처가 너무 커 다시는 이렇게 만날 수도, 얘기를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혹시 나 때문에 그만 둔거야?”

“아니.”

“정말 아니야?”

끈질긴 질문에 결국 지한은 웃었다.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결혼이 깨져 그 회사를 계속 다닌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이 계기일지언정 전부는 아니었다. 지한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그 첫 번째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도 몇 개월이 걸렸다.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고 달도 네 번이나 바뀌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지한을 바라보던 민혜가 백을 뒤져 담배케이스를 꺼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피우지 않다 뿐이던가, 담배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친구한테 배웠어.”

지한이 그것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다 그녀는 간단히 설명했다.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가볍고 즐거운 표정으로.

“왜 그런 걸 배워?”

“웃긴다. 자기도 피우면서.”

“난 끊었어.”

“정말?”

“응. 얼마 전에.”

민혜의 눈에 어떤 시간이 흘러갔다. 지한도 잘 아는 시간이. 두 사람이 함께 했던, 하지만 지금은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었다. 

“뭐야. 내가 그렇게 끊으라고 잔소리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다소 씁쓸한 목소리였다. 금연은 역시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법인 모양이었다. 주변에서 피우지 말란 소리를 들었을 때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더니 해야겠다. 마음먹은 순간에 모든 미련이 정리가 되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가능은 했다. 

어찌 보면 이것도 새로운 환경을 위한 일의 하나였다. 이렇게 하나씩 바꿔 모든 것을 바꾸고 싶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지한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희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쩔 작정인데?”

“글쎄. 별로 생각 안 해봤어.”

“허허. 대책 없는 사람이네.”

지한은 모든 것을 태우고 텅 빈 공터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스스로를 태울 뻔한 그 엄청난 불은 나쁜 감정의 찌꺼기까지 모두 태워버렸다. 지한은 더 이상 잠들지 못해 밤을 배회하지 않는다.

“그래. 뭐, 잘 생각 했어. 당신 같은 사람은 좀 쉬어야해. 스스로 쉴 생각을 안 하잖아. 결국 피로가 극에 달아서 쓰러질 때까지도 모르지. 되게 미련한 스타일이야. 알아?”

그녀의 말에 배어 있는 희미한 원망을, 지한은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런 미련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녀를 상처 입히고 말았다.  

“지한씨 혹시 그 사람 만난 적 있어?”

“누구?”

모호한 지칭에 지한은 퍼뜩 알아듣지 못했다. 민혜는 먼저 얘기를 꺼낸 사람답지 않게 대답을 뜸 들였다. 티스푼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들지 않던 그녀가 어떤 결심을 마친 듯 고개를 들었다.

“나 김이후씨 만났어.”

몇 달 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누가 말한 적도 없고, 스스로 입에 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덮어두고 치워둔 이름을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

*

이후의 상처는 다행히도 위중하지 않았다. 칼날이 깊이 들어가지 않았고 동맥도 전혀 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히 힘도 없는 여자가 한 짓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한은 그가 돌연 정신을 잃고 피를 많이 흘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여러 가지로 천만 다행인 일이었다. 그의 상처가 깊어 위중한 상태였지만 민혜 또한 상황이 나빴을 것이다. 엄연히 살인미수가 되는 것이었다. 살인이 돼 버리면 아무리 돈이 많은 그녀의 집에서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문제였다. 

하루도 안 채우고 두 번이나 응급실에 온 환자는 처음이라며 얼굴이 익은 간호사가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환자인데 너무한 게 아닌가, 정신을 차린 지한은 생각했다. 그는 기운을 차리자 쉽게 눈을 떴다. 

-원래 악당은 쉽게 죽지 않는 법이거든. 

지한의 무거운 시선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그는 농담 같은 말을 한다. 장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머리를 다쳤나. 잠깐 생각해보지만 원래가 이런 인간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살아나. 어설프게 착한 조연들보단 나아. 그런 인간들은 다 죽잖아. 

지한은 여전히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눈을 감고 있을 때까지는 내내 조마조마했던 마음으로 지켜보았었다. 하지만 그 애틋함을 날려버리는 뻔뻔한 태도는 좀 어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죽어. 

지한은 차갑게 반박했다. 비록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건만 얼굴은 환자답게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마른 목 위에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지한의 눈에는 재가 된 감정이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이후는 그것을 감흥 없이 마주보며 웃었다.   

-맞는 말이야. 큭……. 

무엇이 재밌는지 그의 웃음소리는 한참동안 멈추지 않았다. 웃다가 상처가 당겼던지 손을 뻗어 붕대를 감아놓은 상처를 눌렀다. 웃음이 멈춘 그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마치 스위치를 끈 것 같은 변화였다. 삽시간의 일이었다.

-내가 고마워 할 것 같아? 

-뭘? 

-내 대신 다친 거 말야.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하나도 고맙지 않아. 너 때문에 난 모든 걸 망쳤단 말이야. 

지한은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것은 차라리 자신을 향한 비난이었다. 이 모든 것에 함께 책임이 있었다. 그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발단은 이 남자였다고 해도 망친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그녀를 상처 입히고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은 모두 자신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한 일이었다. 지한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난 약혼녀에게 버림 받게 생겼어. 너 때문에 난 인생을 망쳤다구. 이젠 속이 시원해? 원하던 거였잖아? 

하지만 일부러 맘에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가 차라리 자신에게 화를 냈으면 해서.   

-그래. 정말 시원해. 

-……. 

-난 무지. 당신은 내가 꼴도 보기 싫겠군. 

그렇지만 이후는 그 맥락 없는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피하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있던 기력이 모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당연하잖아.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거야. 그런 얼굴, 마치 날 정말 사랑하는 것 같은 얼굴. 지한은 그의 선선한 표정이 괴로웠다. 차라리 미친 소리를 지껄이거나 화를 냈다면 좋았을 것을. 이후는 평범한 얼굴을 알고 있었다. 평범한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듯, 그 연인을 떠나보내는 듯. 그런 얼굴이었다. 

-그래도 난 좋아. 적어도 당신은 누구의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 게 되어주지도 않겠지만……. 

지한은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마지막이란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이제 자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그럴 것이란 절망이 눈앞을 막아섰다. 

-이상하네. 시원한데 눈물이 날 것 같아. 

정말 이상한 것은 지한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를 만나지 않는 앞으로의 시간을 절망으로 느낄까. 왜……. 

“왜 만났어? 아니면 그 사람이 먼저 만나자고 한 거야?”

지한은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물었다. 찾아온 다면 자신에게 찾아와야 할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한 번도 연락도 찾아온 적도 없어 완전히 안심하고 있었는데 왜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타난 것일까. 지한은 놀랍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걱정 마. 복수하겠다고 찾아온 건 아니었으니까.”

민혜는 지한의 당황한 표정을 보자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듯 했다. 그녀는 대화 사이에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내 말은……. 볼일이 없잖아. 이젠.”

“그렇지. 그런데 왜일까. 왜 날 찾아왔을까?”

그녀의 말투나 표정은, 마치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과 같았다. 수수께끼를 낸 장본인은 쉽게 답을 알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지한은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있잖아. 사실 난 그날 정말 당신을 죽이려고 했어. 그러려고 당신을 찾아갔던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야. 안 믿겨?”

이날까지 지한은 그날의 사고를, 그녀의 실수를 우발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너무나 큰 배신감에 상처를 입은 민혜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생긴 사고라고. 그래서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자신에겐 그녀를 원망할 자격이 없었다.

“당신은 날 어른스럽다고 말했지. 어른스럽고 속 깊은 여자라고. 다른 사람들도 날 그렇게 말해. 그런데 내가 어른스러울 수 있는 건 내가 부유하기 때문이야. 난 이날 이때까지 원하는 걸 빼앗겨 본적이 없어. 다 내 손에 쥐고 살았어. 그런 축복받은 사람이었지.”

그런 사람이었다. 지한은 지금도 그런 생각에 변함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그건 그저 사고일 뿐이었고, 착하고 좋은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은 자신이 누구보다 나쁜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본인은 지금 그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사실은 내가 그런 사람인줄 알았어. 그런데 당신에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눈치 챘을 때, 난 당장에 그 년인지 놈인지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 정말 고통스럽게 죽여 버리고 싶다고. 그런 격렬한 감정은 처음이었지.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사람을 사서 뒷조사를 시켰지. 그때 난 정말 이상했어. 바람난 남편을 감시하는 의처증 아내처럼 미쳐 있었어. 그러면서 당신 앞에선 하하, 호호 아무렇지 않은 척 연극을 하고 돌아서선 칼을 갈고······.”

민혜의 두 손이 뜨거운 찻잔을 꽉 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안에 있는 찻잔 안에 희미한 파동이 일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걸 알았을 때 제일 미웠던 사람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건 당신이었어. 어떻게 나에게 이런 배신감을 안겨주나, 기가 막히고 용납이 안 되었어. 난 그날 당신을 죽이려고 갔었어. 그래서 그 남자가 크게 다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몰라.”

그를 찔렀던 작은 나이프. 그것을 품고 자신에게 찾아왔던 그녀. 그런 것을 보통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그녀의 분노가 믿기지 않았던 지한이었다. 참 어리석었던, 그리고 여전히 어리석은.

“차라리 당신이 다쳤다면 난 후회하지 않았을 거야. 울지도 않았을 거고……. 만약 내가 살인자가 되었다고 해도 말야.”

민혜의 목소리는 차분하여 흥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차분하여 남의 얘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차올라 있었다. 충혈된 눈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아냐. 아무리 그래도, 널 그렇게 만든 내가 나빴어. 내가·····.”

지한이 알던 그녀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듯, 혹은 어떤 왜곡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만은 지한의 마음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됐어. 이제와 잘잘못 따지자는 게 아니야. 그건 그냥 그렇게 끝난 일이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지한은 그녀에게 어떤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상처를 준 본인이 위로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절했다. 지한은 잠자코 있었다. 사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에 무뎌지려면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아직은 어떤 얘기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지도 모른다.    “사실 그 남자가 날 찾아왔던 거 좀 오래됐어.”

“그래?”

“응. 사고가 있고 얼마 안 있어서였거든.”

다시 얘기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지한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왜 이후가 민혜를 찾아왔을까, 자신이 아니라 왜 그녀를…….

*

민혜는 남자를 보고 귀신을 본 듯 놀랐다. 아직도 그를 찌른 감각이 손끝에 생생히 살아있던 때였다. 그는 멀쩡한 낯을 하고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너무 놀라 돌아서 뛸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 남자가 자신을 만나러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모골이 송연해 졌다.

-귀신이라도 만난 표정이네. 

그녀에게 김이후는 귀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인물이었으니까. 

사고 후, 한 달여가 지난 후였다. 그동안 그녀는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순간의 분노로 일으킨 사고는, 그저 사고로 끝나지 않고 많은 일들로 번져갔다.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사고의 수습은 부모와 유능한 변호사가 맡아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설명할 정신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정신적 충격으로 입원을 해야 할 정도였다. 수습은 잘 되어 다행히 실형을 선고 받진 않았다. 피해자 측인 이 남자가 뜻밖에도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당연한 수순으로 깨졌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해도, 혹 지한이 매달렸다 해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헤어져 각자 살아가도 그날의 일을 계속 떠올릴게 분명한데 하물며 이 사람과는……. 민혜는 감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욱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으면서까지.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느라 실로 오랜만에 홀로 외출을 했던 때였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집 앞에 이 남자, 김이후가 서 있었다. 뭔가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자신이 악몽 속에 있거나.  

민혜는 그 일을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도 그날의 지옥 같은 광경은 때때로 떠오를 것이었다. 아무리 이런저런 핑계를 대 봐도 자신은 사람을 죽일 뻔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그가 나타나 것이었다. 

-살아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그거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 

-당신…당신 여기 어떻게 왔어, 왜 왔어요? 

그녀는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았다. 그는 웃고 있었고 달리 이상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으나 스스로의 한 일이 있어 안심할 수가 없었다. 절망적이게도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대문까지 힘껏 뛰면 될까.

-벼, 변호사를 통해서 보상은 충분히……. 

뒷걸음질 치며 눈치를 보았으나 덜컥 손을 붙잡히고 말았다. 그의 손에 잡히자 비명을 지를 뻔했다.

-누가 그 얘기 하러 왔는 줄 알아? 

-그럼요. 그럼 대체 뭘 하려고……. 

-긴장 풀어. 딱히 복수하러 온건 아니니까. 

복수. 머릿속에 희미하게 떠올리고 있던 말을 앞에서 들으니 낯선 기분이었다. 이후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그래도 손을 놓지는 않았다.   

-물론 아가씨가 내가 아니라, 당신 약혼자를 찔렀으면 똑같이 해줬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 

-나야, 내가 아가씨를 화나게 했으니까 할 말이 없죠. 죽었어도 억울하지 않았을 겁니다. 

떨림은 멈추었지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아무리 그쪽에서 나쁜 마음이 없다고 해도 민혜는 그의 존재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자신이 죽일 뻔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행복을 망친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그날 밤이 떠올랐다. 엉켜있던 두 개의 몸, 한데 섞여 있는 호흡과 열기,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던 남자가 타인의 몸 아래서 욕정하고 흥분하여 한껏 흐트러져 있었다. 혐오와 경악 이전에 치 떨리는 시기가 그녀의 가슴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두려움과 원망이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제 지한에 대한 감정을 모두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당연히 사랑 같은 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디 조용한데 가서 얘기 할까요. 

-내가 당신하고 왜! 

-조용한 데는 무서우시려나. 그럼 사람 많은데도 좋구요. 

민혜를 붙잡고 있던 손이 툭 하니 떨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눈빛이 그녀를 붙잡았다. 거기엔 어떤 분노도 섞여 있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제발. 부탁입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그녀 또한 궁금한 점도 있었다. 그 다음에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설마 자신이 사라진 자리를 고스란히 차지한 것은 아닐까. 포기했어도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강간이었습니다. 

노골적이며 생생한 단어에 잠깐 당황했다. 민혜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가 말 한대로 일부러 환하고 사람이 많은 장소를 택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얘기가 들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신경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말 그대로. 내가 억지로 한 관계였습니다. 

아연함이 차차 가라앉자 의아함이 고개를 들었다. 이 남자가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 그전에 그게 사실일까. 민혜가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고 조사를 통해 안 사실로, 그들은 최근 서로의 집을 오가며 꾸준히 관계를 이어왔다. 그 정도라면 친구,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함께 있던 둘의 미묘한 공기가 둘 사이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지한을 바라보는 눈길, 지한이 그를 대하는 긴장을 보고 똑똑히 알았다. 

-나보고 그걸 믿으란 거예요? 지금 와서? 

혹 지한이 그에게 변명을 해달라고 했을까. 파혼을 요구했을 때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이 사람까지 이용해서 변명을 할리가.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잡을 정도로 사랑한다면 애초에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원한 적 없었습니다. 내가 억지로 그랬습니다. 한 번을 빌미로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렇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그건 바람이나 배신이 아닙니다. 

-·······. 

-당신에게 알려 질까봐 두려워했거든요. 내가 당신에게 알린다고 협박했습니다. 그 다음엔 당신을 죽여 버린다고 했죠.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긴 했다. 그는 뭘 하든 거침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심지어 자신의 죄를 말하고 있음에도 시선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민혜는 자신의 죄를 고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런 짓을 했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이제와 그런 말을 해봤자, 우린 이미 틀렸어. 당신 때문에 모든 걸 망쳤어! 

-그래요. 내가 당신들을 망쳤죠. 잘 알기 때문에 말하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이 남자의 추진력은 뻔뻔함과는 틀렸다. 그럼 이 남자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담담한 걸까. 민혜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닐까 수없이 의심을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 

-나 같은 인간 때문에 포기 하지 말아요. 오랫동안 사귀었고 결혼까지 할 정도로 사랑했던 사람이잖아요. 아마 윤지한씨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비정상적인 사람이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지한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라는 것이다. 이 남자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녀 또한 지한을 사랑했으므로 그 마음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릇된 욕망만이 전부가 아닌 마음이었다. 

-잘 안다는 듯 말하지 말아요. 기분 나쁘니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얘기가 끝난 걸까. 민혜는 그가 혹 붙잡을까봐 얼른 몸을 일으켜 가게를 나왔다. 무척 불쾌하고 싫은 기분이었다. 이상한 패배감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돌아본 자리에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그렇게 사라진 후였다.

“어떻게 생각해?”

민혜가 물어왔다. 하지만 생각을 물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긴가, 똑같은 물음만을 계속 떠올릴 뿐이었다. 

민혜는 답을 재촉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지한이 말없이 생각 속을 헤매는 동안, 그녀는 찻잔을 비우고 리필을 했다. 그리고 담배를 한 개비 더 피웠다. 눈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냄새를 맡으니, 자신도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애써 금연을 했는데 이런 순간엔 참기가 힘들었다. 

지한은 머릿속에 이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가 말한 이후의 모습은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나 지한씨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거야.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결심으로 나왔어.”

왜? 라는 물음이 나오려다 말았다. 오늘의 만남도 사실은 기적 같았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그녀를 대했지만 자주 만났던 것은 아니다. 파혼 문제 때문에 만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길던 머리를 숏 컷으로 자른 그녀와 만났고 지금 그녀의 머리는 단발정도로 길어있었다. 결혼 직전에 깨진 연인들이 다시 만나는 일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자신들의 관계는 정상적이지 않은 과정으로 완전히 부서졌다. 마지막이라는 그녀의 말을 지한은 뒤늦게 이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 그 말이 사실이면 노력해 볼 수도 있어.”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야?”

“물론 당신은 그런 짓을 한 내가 소름끼치고 싫을 지도 모르겠지만.”

놀랐다. 하지만 놀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뜻으로 놀란 게 아니라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미워하고 있음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녀는 지금 용서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 오해하지 마.”

일단 지한은 고개를 저어 그녀가 덧붙인 말에 부정했다. 아무래도 그 일에 그녀는 자책하고 있는 듯 했다. 상처는 머리가 예전의 길이를 찾아도 그대로 일 것이다. 지한은 그것이 가슴 아팠다.

“고마워. 날 여전히 좋은 여자로 생각해줘서.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제 당신이 대답해 줄 차례야.”

대답. 지한은 지금 진실 혹은 진심을 말해야 할 때였다. 그것은 자신이 미루고 미뤄왔던 숙제였다. 

“그 남자가 한 말이 사실이야?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당한 피해자란 말이 사실이야?”

그랬던가. 그것은 일방적인 폭력이었나. 그래, 그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옥 같은 불행은 아니었다. 떠올려 보면 지나온 계절, 어쩐지 폭우가 내내 멈추지 않던 그 여름에 있었던 일들은 어쩐지 하나 같이 애처롭고 안타까운 기억만 남아있었다.  

“말해줘.”

지한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서 창가의 풍경으로 번져만 갔다. 이미 여름은 한참 전에 끝나 춥고 외로운 계절, 겨울이 거기에 있었다.

*

겨울의 이사는 좀 그렇지 않나 싶었지만 일단 몸만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집을 떠나는 날이었다. 얼마 전 어머니는 수술을 했고 전부터 말하던 대로 내외는 시골의 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개조했다.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몇 달간 아버지가 신경 써서 공사를 진행했다. 

“이 집은 팔 생각이다.”

짐은 옷가지가 전부였다. 가구는 새로 장만했으며 여기 있는 것들은 낡아서 처분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 집은 어떻게 되는가 싶더니 아버지는 선뜻 그렇게 말했다. 

이 집에 들어 온 지도 오래되었다. 예전엔 몰랐지만 아마 아버지가 지금의 어머니와 재혼하고 들어온 집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실 지한에게 그 전의 기억은 없다. 친모에 대한 기억도 할머니의 손에 끌려가 만난. 억지로 심어진 것 외에는 없었다.

“서운하네요.”

괜히 한 말이 아니었다. 정말 서운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십대시절 그렇게 뛰쳐나오고 싶던 곳이었는데 그런데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생각된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사실 나도 그렇단다. 굳이 팔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희 어머니가 그렇게 하자고 하더구나.”

“어머니가요?”

의외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집을 팔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어머니였다. 죽은 아들과의 추억이 있는 집인데 반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얘기를 보니 실상 달랐다. 아버지는 그냥 이 집을 팔지 않고 누군가에게 빌려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팔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술한 후에 사람이 좀 달라졌어. 전엔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고압적이었는데 조금 밝고 긍정적으로 변했지 뭐냐.”

큰 수술이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무탈하게 지냈지만, 수술하는 동안 그녀는 호흡을 멈추고 있었다. 잠시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비슷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큰 수술 후 라고 하니 어쩐지 납득이 갔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수술 후, 자신을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조금이지만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래요. 잘 됐네요.”

“솔직히 그 사람,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잖아. 그러니 어린 너는 오죽했겠니.”

새삼스러운 얘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의 기분을 알것 같았다. 미안하신 것이다. 차마 직접 꺼내지 못하는 얘기를 지한은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저도 대하기 좋은 아이는 아니었겠죠.”

지한의 대답에 아버지는 놀란 듯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헤매던 그는 끝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두 사람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해 지겠어요.”

정리를 끝낸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오랫동안 얘기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두르긴 해야 할 것이다. 지한은 아버지를 따라 일어났다. 그렇지만 조금 더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 집을 더 봐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넌 안 가니?”

현관을 나서던 어머니가 지한을 향해 물었다. 그가 외투를 입지 않고 나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것을 눈치 채지도 못했을 텐데 별일이다 싶었다.

“저는 조금 있다 가려구요.”

“그래. 그러렴.”

유난히 다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자신의 파혼 때에도 화를 내던 아버지를 말렸던 것이 그녀였다. 그리고 의외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여전히 이렇게 서먹하고 썰렁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로를 향해 독기를 뿜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어머니.”

차에 오른 그녀를 뒤늦게 불러 세웠다. 문을 닫으려던 그녀가 지한을 바라보았다. 

“저 부탁이 있는데요.”

두 사람을 보내고 지한은 집으로 돌아왔다. 이층 창가에 서니 멀어지는 아버지의 차가 보였다. 그들을 눈으로 마중하고 지한은 동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머니에게 동생의 물건을 한 개 가져도 되냐고 부탁했다. 거절을 당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쉽게 허락했다.

‘어차피 버릴 거니까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다 가져가렴.’

버리지 않고 평생 끌어안고 살 것처럼 굴던 그녀였다. 이제 어머니도 동생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자신이었다.

이제 그곳에 민한의 체취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몇 달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던 느낌이었건만, 아무래도 시간의 흐름은 모든 것을 씻어가는 법이었다. 기억도 마음도 감정도. 씻기고 씻겨도 분명 남아있는 것은 있겠지만.

지한은 서랍을 열어 지난번에 보았던 물건을 찾았다. 그것은 민한의 시계, 아니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시계였다. 시간은 어린 시절에서 멈추어 있었고 낡은 줄은 삯아 있었지만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지한은 그것을 손목에 채웠다. 자신의 차가운 마음이, 겨울보다 더욱 텅 빈 마음이 그 따스함에 위로받을 수 있도록. 

눈을 들어 창가로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어쩐지 누군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말도 안 되는, 그저 자신의 착각. 혹은 바람이었지만 지한은 거기에 동생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민한아.”

떨리는 음성이 다정하고 또 안타까웠다.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있었을까.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그저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던 어린 지한은 자신보다 더 작은 아이를 그렇게 불렀는지도 모른다. 부를 수 있을 때 불러줬으면 좋았을 텐데.  

“난 늘 후회만 해. 그런데 또 잘못한 걸까. 후회하게 될까.”

동생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은 한 번도 온전히 마음을 준 적이 없었다. 늘 거리를 재고 이익을 계산해왔다. 상처를 받거나 손해 볼 일이 없도록. 그런 관계에 진심이 있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 자신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한은 마지막으로 만난 약혼녀에게 처음으로 망설임 없는 진심을 말했다.

‘아니. 그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어.’

마지막이었을지 모를 기회였다. 하지만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그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모든 것을 부정해도 그를 원했던 자신의 감정이, 그 애틋하고도 뜨거웠던 순간까지 부정해야 할 테니까.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는데, 전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고 해도 분명히 존재했었다. 

‘내가 원했던 거야.’

솔직히 대답했던 것을 후회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녀를 잡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날이 올지도, 그러나 지금은 괜찮다. 지금은 후회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후, 그에겐 다른 고민이 괴로움이 생겨났다. 그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멈춰져 있던 감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으로, 또 그날 밤에서 지금으로. 앞으로의 일 따위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금은 없으면 죽을 것 같던 그 간절한 감정이 살아났다.    

“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 모습을 떠올리고 추억을 그리워하는 게 고작. 그렇지만 산 사람은 원하면 만날 수 있다. 달려가 껴안을 수도 있고 입 맞출 수도 있다. 원하면 그저 움직이면 된다. 참 쉬웠다.

하늘이 뿌옇게 흐려져 무언가를 쏟아낼 듯했다. 회색하늘 아래 마른 가지가 뻗어 있었다. 죽은 듯 마른 나무는 저래 뵈도 봄이면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매우 오랜만인 것 같다. 아니, 실제로 오랜만이었다. 

지한은 다시는 스스로 찾아오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남자의 집 앞에 와있었다. 퍽 오랜 시간을 돌아 먼 곳을 거쳐 이곳에 서 있었다. 

정말 이 집이 맞던가. 제대로 찾아오고도 의심스럽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는 아직 여름이었다. 죽음같은 비가 내리고 또 내리던 시간 동안 이곳에 그와 단둘뿐이었다. 돌려보내줄 것을 원하면서도 사실 이대로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절대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 희망적이지도 그렇다고 절망적인 기분도 아니었다. 이다음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를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냥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고장 난 상태였다. 고쳤을 리는 없었다.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뻗었으나 손이 힘없이 앞으로 밀려버렸다.

문은 닫히지 않고 열려 있었다. 예전, 그 여름 그대로. 그가 누구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놓은 지는 잘 알고 있었다. 지한은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웃었다. 남아있던 망설임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

“눈 온다.”

이후는 흐린 하늘을 응시하던 무표정한 눈에 웃음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곁에선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용한 숨소리만 들려올 뿐, 그는 몸을 일으키며 옆을 돌아보았다. 

“이봐. 자는 거야?”

물을 것도 없이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돌아오는 것은 얕은 숨소리 뿐 이었다. 아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아쉬움은 잠깐 뿐이었다. 어차피 앞으로는 시간이 많았다.   

오랜만에, 정말 너무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남자는 좀체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이후가 말을 걸자 그제야 쑥스럽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 

지한은 이후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다. 어색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입가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건드리면 그대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웃음이. 자신을 향해 그런 식으로 웃어준 적은 없었다. 늘 이후의 앞에선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힘겨움에 흔들리고 있던 얼굴이 자신 앞에서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이제 온전히 자신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시간이 보상되는 것 같았다. 

“잘 자는구나.”

잠들지 못한다고 괴롭게 울먹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아주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처럼 피로가 희미하게 내려앉은 뺨은 그래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뺨을 어루만졌다. 

너무 오래 참아왔던 얼굴이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질릴 틈은 없었다. 말라가고 있던 자신과 달리 그의 시간은 퍽이나 편안했던 모양이었다. 전보다 약간 살이 오른 뺨이 얄밉다고 생각했지만, 손을 뻗어 직접 끌어안고 보니 말라서 뻣뻣하던 예전보다 훨씬 느낌이 좋았다. 그의 몸은 따뜻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 따스함을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마음 조렸던가. 돌아오지 않을까봐, 참을성 없는 자신은 그만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내가 나쁜 게 아니야.”

이후는 끌어안고 있던 몸에서 아쉬운 듯 떨어졌다. 그리고 문득 시선을 들어 방 한 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석을 향해 말했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나뭇가지인지 커튼인지 모를 그림자가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후는 그것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사람이 스스로 걸어왔어. 내게로.”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는 보였다. 죽은 친구의 모습이. 그 묵묵한 비난의 시선이. 

“물론 난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어. 야비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도 내 모든 걸 걸었으니까.”

사실 생각보다 늦었다. 좀 더 빨리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결국 이긴 것은 자신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도박. 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감히 이 사람을 원했던 것이 잘못된 일이었을까, 이후는 죽을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미쳐 날 뛴 것은 차라리 이후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완전히 끝났다. 그것은 원하던 바였지만, 그 일의 충격과 죄책감으로 인해 혹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다. 

궁지에 몰린 그가 도망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후는, 차라리 자신이 먼저 물러나기로 했다. 이후는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척 했다. 약혼녀를 찾아가 자신이 했던 일들을 사과하고 그를 잘 부탁한다는 역겹기 그지없는 말까지 하며. 생각해보면 그때처럼 자신이 연기를 잘 한 적은 없었다. 

비겁하지만 그의 마음을 이용했다. 연민에 약한 그의 마음을, 죄책감에 쉽게 흔들리는 그 미련한 마음을.

“내가 이겼어. 이젠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나를 방해할 순 없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닫힌 창을 흔들었다. 웅성이던 바람은 유리창을 흔들다가 천천히 소멸했다. 

“어차피 넌 죽었잖아. 혼자 힘으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아니, 넌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마찬가지였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제 미련 떨지 말고 가버려. 그게 차라리 이 사람을 위하는 일이야.”

영혼의 그림자는 아직도 거기에 서 있었다. 변함없는 표정으로 그러나 서서히 흐릿해지는 듯했다. 그것은 영혼이라기보다는 망령이었다. 이후는 그렇게 생각했다. 살아있을 때도 죽어서도 그의 존재는 어차피 지한에게 짐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다르다. 이제부터 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었다. 그럴 마음도 몸도 있었다.  

“내가 그랬잖아. 후회할거라고…….”

아무것도 무서울 것은 없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형이 그랬듯이, 그리고 그 또한 어차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이젠 내 거야.”

지한의 곁에 남은 것은 자신이다. 이긴 것은 자신이었다. 이후는 잠든 몸을 끌어안은 채 어둠을 노려보았다. 잠결에 뒤척거리는 손을 붙잡아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는, 아니 그들은 함께 깊은 잠으로 가라앉았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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