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4/25)

<23>

“하..아..젠장! 움직여라, 이 놈의 다리!!”

비틀거리며 후안은 달렸다. 

늦은 시간임에도 알스의 밤은 환했다. 

유난히 하얗고 밝은 달빛과 하얀 알스의 성.  

그리고 성안을 가득 매운 하얀 꽃잎 때문이었다. 

땀투성이가 되어 달리는 후안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설마... 이 알스의 왕가가 겨우 황제의 명이 무서워 

소중한 왕자를 보냈겠는가?]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소년이었던 폐하께서 알스에 왔던 그 날부터네.]

그 녀석이 제국에 왔던 그 날. 

그 까만 눈동자가 유독 빛났던 건... 

단순히 녀석이 아이처럼 순수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그 날부터 슈 녀석은 아주 긴... 사랑에 빠졌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어.

<< 반려로 맞아주세요 >>

그의 말로는 슬픈 일이 있을 때면 

언제고 이 곳에 숨는 다 했다. 

벚꽃이 가득한 정원. 

커다란 나무들 사이에 혼자 울곤 한다고 했다. 

목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을 내쉬며 후안은 걸음을 멈췄다. 

까만 밤하들과 하얀 벚꽃. 사이로 

그 녀석이 있었다.

무릎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모습을 보자 

후안의 가슴이 아파왔다. 

울고... 있을까?

녀석이 소리내어 우는 걸 본 건 단 한번이었다. 

필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고백을 했던 그 날-. 

까만 눈동자 가득 눈물이 맺혀선 아이처럼 울었었다.

네가 울 거라고는 난, 생각도 못했었다. 

언제나 밝게 웃고 있어서... 

네가. 상처받는 다는걸. 잊고 있었다.

왜. 몰랐던걸까.

네 눈가가 빨갛게 부어올랐던 날이 

그렇게 많았었는데...

"... ..."

이상하게 목이 아프다. 

너의 이름을 부르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네 얼굴이 보일 텐데. 

... 너의 이름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조심히... 입을 열어본다.

“... 슈.”

쏴아아.... 

바람의 소리와 함께 하얀 벚꽃이 휘날렸다.

“... 슈...”

쏴아아아... 

하얀 벚꽃이 다시 한번 휘날리는 순간... 

하얀 얼굴이 고개를 들었다. 

까만 눈동자엔 물기가 가득했다. 

떨리는 두 손을 꼬옥-마주잡고 일어선 슈엘은 후안을 바라보았다. 

후안은 그런 슈엘의 모습이 낯설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나를 쳐다보는 모습 따위, 처음이었다. 

제국에 왔을때는 그토록 당당히 나를 바라봤었는데.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의 시선을 피하는 일은...없었는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은 걸까, 저 눈동자는.

그 상처가 더 깊어질 것 같아 

후안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속삭이듯 작은 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그렇게 다친거예요.”

“... ...”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잖아요.

왜... 이렇게...

까만 눈동자 가득 걱정이 이자 후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 눈이다.

저 눈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준다는 게

나를

사랑해준다는게..

가슴이 벅차오른다.

“후...안님?”

후안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슈엘은 혼란스러웠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다가가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다가갈 수 없는 선이 있었다.

한 발작...

슈엘에게 후안이 다가오지 슈엘은 뒷걸음질쳤다.

오지 마요.

더 이상 내게...오지 마요!

도망가려던 슈엘을 후안은 붙잡았다.

자신의 팔을 잡는 강한 손에 슈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 그 커다란 손이 떨고있다는게 느껴지자

슈엘은 놀란 눈으로 후안을 바라보았다.

“처음엔... 널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어.”

“.........”

심장이. 찢어져 오는 그 말.

귀를 막아보있지만 그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그런데 점점 네가 신경 쓰였어. 

그리고 어느 날부터...“

“..........”

“네가. 사랑스러워졌어.”

“거짓말.........”

이건...거짓말이야.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슈엘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사라질거잖아요.

내게 차가운 미소를 보이고 이제 사라져야 하잖아요.

슈엘의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왔다.

슈엘이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대로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 슈엘의 앞에 후안이 무릎을 꿇었다.

“이제부턴..,널 상처 주는 일은 없을 거다.

너 외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부디...“

가여울정도로 떨고 있는 하얀 손에 후안을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냈다.

붉은...루비의 반지.

슈엘의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며 후안은 말했다.

“하나뿐인 나의... 반려가 되어줘.”

... ...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안의 붉은 눈동자에 고인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진 순간

슈엘은 그를 껴안았다.

“흑.....흐윽...................”

“-미안.”

“흐........흐으..........으으.........윽...”

“첫 눈이 왔던 날.... 널...울게 해서 미안해...”

슈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내리고 있는걸요...”

“......................”

“새하얀.....첫 눈이 내리고 있잖아요..”

슈엘과 후안의 위로 새하얀 벚꽃이 내리고 있었다.

마치 첫 눈처럼..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을 듯

달콤한 꽃잎이 두 사람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첫 눈이 오는 날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야.]

-오랫동안 기도했던 

나의 행복이...

이루어졌다-.

******

“저어- 정말 꿈이 아닌 거죠?”

“-아니야.”

“정말정말 꿈이 아닌 거지요?”

“-응. 아니야.”

“... ...헤...헤헤... ”

그제야 실실 웃으며 슈엘은 후안을 바라보았다. 

후안은 눈썹을 찡그리며 슈엘의 눈가로 손을 가져다 댔다.

“무슨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 거냐.”

“어쩔 수 없어요. 

...심장이 두근거릴 때면 절대 멈추지 않는걸요. 헤헷....”

눈물이 가득 고여선 빙긋이 웃는 얼굴에 

후안은 쓴웃음을 내쉬었다. 

긴 입맞춤과 동시에 슈엘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낸 후안은 

조심히 슈엘을 바라보았다. 

하얀 얼굴- 

까만 눈동자- 

정말 못당해내겠군.

너무-.예뻐.

하얀 알몸을 찬찬히 살펴보며 후안은 말했다.

“... 상처는... 괜찮은 거냐?”

“... ...”

까만 눈동자가 또 감동을 받았나 보다. 

겨우 그런 질문 하나에. 

네, 네, 괜찮아요. 라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슈엘의 모습이 

너무도 고맙고 귀여워 후안은 웃었다. 

아직 상처가 남아있는 배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두근거림을 멈추지 않는 따뜻한 가슴에 입을 맞춘다. 

하얀 목에 입을 맞추고 그리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춘다. 

츕- 하고 입맞춤이 끝나자마자 

후안의 입술이 슈엘의 눈가를 향한다. 

눈물이 고여 있는 눈가엔 짠맛이 가득하다.

“-짜.”

“거긴, 키스 안하셔도 되요! 그러니까...”

당황해서 외치는 슈엘에게 후안은 속삭였다.

“앞으론 짜지 않게 할게."

“... ....”

“내 눈가가 언제나 달콤할 수 있도록... 널. 사랑해줄게.”

화아악- 빨개진 얼굴로 슈엘의 눈가엔 또다시 눈물이 맺혔다. 

다시 한번 터진 눈물을 흘리며 슈엘이 하하 웃었다.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네요, 후안님.”

“으...아으..”

슈엘이 후안의 목을 껴안았다. 

아픔과 쾌락이 뒤섞인 느낌에 이를 악문 

그 표정에 후안은 점점 더 흥분이 됐다.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남성을 슈엘의 

안에 놓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슈엘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아..윽... 읏...하아...”

“슈.... 왜. 소리를 내지 않는거냐...”

그래. 한번도 소리를 맘껏 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이 녀석은 저렇게 신음소리를 참곤 했다. 

길다란 키스가 끝난 후에야 

나지막이 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안님께서...”

“... ....”

“저 같은 남자를... 안으시는 것... 

.... 싫어할 거라 생각..해서...”

“... ...”

하하하... 정말 그만좀해. 슈. 

나의 반려여. 

이제 됐으니까 그만 좀... 

나를 감동시켜. 

눈썹을 찡그리며 후안은 웃었다. 

“듣고싶어.”

“... ....”

“난 네 목소리 또한 좋아한다. 슈.”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꼬리를 휘이며 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한번 후안이 자신의 안으로 들어왔을 때 

슈엘은 처음으로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붉은 눈동자가 너무나 부드러워 

슈엘은 또 한번 울어버리고 말았다.

따뜻한 온기. 부드러운 느낌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후안이 눈을 떴다. 

자신에게 안겨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자 그는 안심이 되었다. 

빨개진 얼굴로 후안을 바라보며 슈엘이 인사했다.

“조...좋은 아침입니다, 후안님.”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후안을 보며 슈엘은 당황한 눈치였다. 

“왜 그러지? 뭐가 잘못됐나?”

“아, 아뇨! 아무것도.”

고개를 내저으며 슈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에 후안님께 안긴 것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도 후안님께서 잠들어계실 때 

몰래 후안님 얼굴을 바라본 것... 들킬 수야 없지. 

-이렇게 부끄러운데.

하하하- 웃는 슈엘의 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후안이 말했다.

“... 근데. 언제부터였지?”

“네?”

“... ... 그러니까...”

그답지 않게 몇 번이나 말을 집어넣으며 

후안이 힘겹게 질문을 꺼내놓았다.

“언제부터... 나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묻는 거다.”

“... ...”

화끈- 하고 열이오른 얼굴로 슈엘은 

두 손으로 두 볼을 매만졌다. 

소녀 같은 반응에 후안이 겨우 웃음을 참으며 슈엘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주제에 슈엘의 대답소리는 컸다.

“처음부터요!”

하얀 벚꽃이 내리던 날. 

후안님을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새빨간 머리카락이 너무나 예쁘게 빛났는걸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때를 떠올리며 

슈엘은 두 눈이 부드럽게 휘였다.

“-처음부터예요. 처음부터...”

그 미소에 후안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찰나 

슈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그럼...”

“?”

“후안님은요?”

“... 뭐...?”

“후안님은 언제부터 저를... .... 좋아하게 되셨나요?”

“!!!”

평화로웠던 후안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꼬이기 시작했다. 

평생토록 사랑이라곤 모르고 살아왔던 후안이다.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인정한 것도 겨우 며칠 전인데 

그런 걸 묻는 거냐 너는.

.. 하지만 까만 눈동자가 너무나 진지해 

도저히 대답을 회피할 수 없었다. 

후안은 슈엘을 좀 더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후안은 

가까워진 슈엘에게 속삭였다.

“-처음부터.”

그래....

아마 처음부터.

[ 슈엘·알스·슈 입니다. 안녕하세요, 후안님! ]

-너를 처음 본 그때부터 반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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