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예?”
슈엘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넋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슈엘을 보며
이안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사리엘이 사라졌어, 반려님.”
<< 반려로 맞아주세요 >>
아직 연회장에선 아름다운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아직 쌀쌀한 바람에도 물씬 풍겨오는 봄향기.
유난히 부드러운 후안의 얼굴.
... 바로 몇 분전까지 이곳은 천국이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라고...
그렇게 생각 했다.
“조금 전에 후궁 전에 다녀왔어.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더군.
알다시피 함부로 어딜 다닐 사람이 아냐. 그리고... 그럴 입장도 못되고.
방은 텅텅 비어있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온했지. 하지만...”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슈엘을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까만 눈동자가 불안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피냄새가 났어.”
“!!!!”
순간 다리에 힘이 빠져 슈엘은 비틀거렸다.
이안이 순간적으로 슈엘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쓰러져 버릴 정도로
슈엘은 온 힘이 빠져 있었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듣는 거야?
안돼. 슈엘. 더 이상 생각하지마!!
끔찍한 상상 따윈 하지마!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음이 있다.
새빨간 피와 금발의 아름다운 형이 겹쳐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런... 심장이 타는 듯한 불안함은.
“형을 찾아야겠어요!!”
어찌할 수 없는 불안감이 슈엘을 감쌌다.
절대 있을수 없어, 이런 일은!!
슈엘은 후궁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누군가의 발소리에 슈엘은 걸음을 멈추었다.
... ... 고개를 돌리자 너무도 익숙한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연회장 밖에서 은밀히 무슨 이야기중이지?”
밖으로 나간 슈엘이 신경 쓰여 따라 나온 후안이었다.
하- 두 사람이 동시에 없어졌나 했더니 역시나 같이 있었나.
예상했던 장면이기에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후안이 분노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왜 또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자신을 보는 슈엘의 표정이 방금 전까지완 전혀 달랐다.
생글생글 웃던 녀석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님, 급한 일이 있으니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이안의 말에 후안은 슈엘의 어깨를 잡았다.
“넌 나의 반려로 계속 남아야해! 슈엘·알스·슈!”
신경질적인 외침에 슈엘은 놀란 눈으로 후안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라면 기뻤을 그의 말이 너무나 힘겹게 들려왔다.
그토록 원하던 축제인데...
이제는 즐길 수 없어요.
아아- 형을 잊고 있었다니.
나만이 이렇게 행복한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니.
마음깊이 묻어두었던 죄책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후안님, 제발. 보내주세요. ... 급한, 일이예요.”
슈엘의 눈가에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후안은 더더욱 분노에 차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라는 거냐!
무슨 일 이길래 이안과 둘이 그렇게 다급하다는 거냐.
대체 뭐가!!!
슈엘의 부탁과는 상관없이 후안의 손은 점점 강하게
슈엘의 어깨를 잡았다.
아파올정도로 잡혀오는 어깨를 보며 슈엘은 이를 악물었다.
“제발, 놓아주세요, 후안님.”
“무슨 일로 그러는 거지? 난 알권리가 있다! 슈엘·알스·슈!”
“... ...”
슈엘이 불안한 눈동자로 후안을 바라보았다.
... 이런 순간에도 아름다운 자신의 형이
후안에게 안겨있는 모습을 떠올라버린다.
정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인 나.
당장이라도 '형'을 찾아 가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선뜻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반려님의 시종이 사라졌습니다, 형님.”
... 슈엘을 대신해 입을 연 것은 이안이었다.
이안은 진지한 얼굴로 후안을 바라보았다.
“그를... 찾으러 가야 합니다.”
“.... ....”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단지 후안의 눈에 남은 것은 슈엘의 표정이었다.
하-?!
겨우 시종 따위의 실종에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이런 절박한 눈빛을 하고 그를 찾으러 간다고?!
겨우... 시종 따위에?!
수면위로 가라앉았던 의혹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안의 잠자리 상대고 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역시, 단순한 시종과 주인관계가 아니다.
슈엘·알스·슈. 네가 아무리 왕족답지 않게 소탈하고 바보스러워도
일개 시종에게 그런 표정을 짓지 못하지.
너의 그 표정은.
-마치 연인이라도 잊어버린 듯한 표정이야!
“좋아,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야-”
“.... ...”
슈엘의 얼굴에 잠시 화색이 돋았다.
후안의 손이 떨어진 자리가 금방이라도 부어오를 듯 아파왔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후안님께서 이해해주셨어.
... 그것만으로
다행이...
야...?
슈엘의 심장이 철컹 내려앉았다.
또... 그런 눈빛이다.
아까의 다정함이 뭍어나오는 눈빛과는 전혀 다른.
경멸스러워 하는.
그
.차가운 눈빛.
“그러나 이걸 알아둬, 슈엘·알스·슈.
너는 건방지게도 제국황제의 반려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연회를 떠났어.
그것도 네 시종을 찾는다는 시시한 이유로.
... 너에겐 나중에 벌을 내리겠다!”
“형님!!!”
이안이 소리쳤지만 이미 후안의 얼굴을 냉소를 머금고 있었다.
슈엘은 고개를 숙였다.
“.... 예. 어떤 벌이든...받겠습니다. 폐하.”
후안이 눈썹을 찌푸렸지만 슈엘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하며 후궁전으로 발을 내딛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향하며 슈엘은 팔을 올렸다.
쓰윽- 눈가를 닦으며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제국수도, 성근 처에 위치한 대저택 레이크백작가.
유난히 저택의 병사들이 많은 것은
로빈에 의해 은밀한 범죄자가 잡혀오는 일이 잦기 때문이었다.
특히 황제암살범과 같은.
“다시 한번 묻겠다. 네가 속한 조직에 대해 말해라.”
“... ...”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 앞의 남자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흥- 정말 운이 없군.
하필이면 은빛의 레이크님께 모습을 들키다니! 크크”
은빛의 레이크.
이름보다 유명한 로빈의 칭호였다.
로빈은 남자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지하실의 차가운 벽에 양쪽 팔 다리가 묶여진 남자의 몸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고문할 것도 없이 애초에 남자의 몸은 난도질되있었다.
이렇게 살아서 말 할수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가 나있었다.
잔혹할 정도로 급소를 제외한 난도질.
발견했을 당시의 피투성이 몸을 생각하며 로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사형이야. 마지막 기회니 어서 대답해.“
“하- 하하하하. 암살자 따위에게 참 친절하군,
역시 소문대로 사람 좋은 레이크님이야.”
로빈이 황제의 직속호위기사나 백작이라는 높은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 좋다는 것은 제국에 유명했다.
덕분에 평민들에게 인기는 좋지만 이런 무리들에겐
상당히 우습게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에 신경 쓰는 로빈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질문을 바꿔보지.”
“ ?!”
“너를 이렇게 만든 녀석의 정체가 대체 뭐냐.”
“!!”
낄낄 웃던 남자의 표정이 순간 바뀌었다.
굳어진 그의 얼굴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굉장하구나, 그 녀석.
로빈은 숨을 꿀꺽 내쉬며 남자를 주시했다.
“귀신...이야 그건.”
남자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듯 목소리를 떨었다.
로빈을 피해 들어간 방... 불빛하나 없는 아무도 없는 방.
어디론 가에 숨으려 생각하는 찰나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검이 자신을 향했다.
암살자인 자신도 피하지 못할 정도로 재빠른 기습이었다.
몇 번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어둠이 눈에 익은 암살자는
그제야 자신의 상대를 볼 수 있었다.
하얀 달빛에 비취는 선명한 금발.
...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그 얼굴은 분명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야 말로 묻고싶다구!! 대체 그 귀신은 뭐지?!!”
남자의 몸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새하얀 옷 깊숙이 독이 묻은 검을 찔러 넣었음에도
금발의 귀신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을 공격했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미성을 내뱉으며...
[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네 목숨은 없다.]
새파랗게 질린 남자를 보며 로빈은 머리를 긁적였다.
“... 미안하지만 사실 나도 아는 바가 없어서 말이지-.”
감옥을 나오며 로빈은 생각에 잠겼다.
으으으으- 역시 알아낸바가 없군! 도대체 그 녀석은 뭐냔 말야.
헉- 소리 나올 정도로 아름답게 생겨선
어울리지 않는 잔인함에 검실력이라-.
[ 나를 황제에게 보이지마 ]
그 말이 신경 쓰여 폐하께 보고도 하지 않고 은밀히 저택에 데려온지
삼일 째.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언제나 우위였던 로빈 으로선
상당히 찝찝한 일을 벌인 셈이다.
사리엘은 로빈의 침실에 눕혀져 있었다.
상처는 대충 치료해놨지만 아마 정신을 차리는데 는 며칠이 걸릴 것이다.
상처도 상처지만 녀석이 중독된 독은 안죽은게
신기할 정도로 맹독이니까.
문을 여는 순간 로빈은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분명 누워있어야할 그가 없었다.
휑하니 비어있는 침대를 놀란 눈으로 보는 찰나-
“!!!!”
로빈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덕에 어깨의 옷깃이 조금 찢겨나갔다.
하하- 이거 정말 걸작인데.
... 로빈은 자신을 습격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휘날리는 금빛의 머리카락.
핏기 없는 얼굴과는 달리 녹색눈동자는 독하게 빛나고 있다.
손에 들린 작은 쇳조각은 어느 검보다 위협적이었다.
여인처럼 여리하게 생긴 사내가
독뭍은 검을 맞고 며칠을 앓았던 자가
눈을 뜨자마자 습격이라-.
“당신은 누구죠?! 날... 어떻게 할 셈입니까!”
말투는 완전 명령조주제에 존댓말은 잊지 않는다.
“이것 봐 그걸 묻기 전에 그 위험한! 물건부터 내려놓으라고!!!”
로빈이 욱한 심정으로 소리 질렀지만 사리엘은 쇳조각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안의 장식품에서 떼어낸 것이 분명한 쇳조각은
어떤 검보다도 위협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저히 부상자로는 보이지 않는 날렵함으로 사리엘은 로빈을 공격했다.
사리엘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로빈이 외쳤다.
“이봐, ... 진정해!”
“내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내 이름은 로빈·레이크· 그리고.... 널 어떻게 할지는...”
순간 로빈을 공격하던 사리엘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내 인상을 쓰며 바닥에 털썩 내려앉았다.
“아악!....으으................으...”
“-나도 모른다고!!! 젠장!!”
주저앉아 배를 감싸는 사리엘을 보며 로빈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하얀 사리엘의 피부와 붕대위에 잔인할 만큼 선명한 핏자국이 뭍어나왔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상처를 입고 날뛰니까 상처가 벌어졌잖아.
대체 뭐야.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거야?”
“.... 으... 우으....”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사리엘은 로빈을 바라보았다.
녹색 눈동자에 담긴 것은 경계와 원망이었다.
사리엘을 부축하며 로빈이 피곤한 듯 되내였다.
“네가 죄를 짓지 않았다면 절대 널 해치진 않아.
절대 널 폐하께 보이는 일도 없을 거야.
...기사의 검을 걸고 맹세하지.”
“... ...”
사리엘의 눈이 일순 흔들렸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남색 눈동자가 너무도 정직했다.
어쩐지 맑은 눈매가 슈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사리엘은 정신을 잃었다.
******
밤새도록 후궁구석부터 드넓은 성의 주변을 샅샅이 뒤진 슈엘은
기운 없이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가시 박힌 나무들도 개의치 않고 들춰냈던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지만
슈엘은 상관하지 않았다.
멍한 눈으로 자신뿐인 방을 바라보았다.
“... ...”
상처를 입고 돌아오면 언제나 웃어주곤 했었다.
웃으며.
기운 내라고.
... 그렇게 말해주곤 했었는데...
왜... 없는 거야...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왜...
날 바라봐주지 않는 거야...
피잉- 이제는 메말라 나올 것 같지 않았던 눈물이 고였지만
슈엘은 참지 않았다.
언제 나처럼 참지 않고 닦지도 않고 그저 얼굴가득 물기가
번지는 대로 놔두었다.
“... ... 일주일째야...형... ”
메마른 목소리.
일주일동안이나 형을 보지 않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옆에서 나를 바라봐준 아름다운 사람...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벌써 70일 7개월 7년이라도 된 듯... 그리움이 사무치는데.
그 얼굴을 너무도 보고 싶은데.
아아-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이곳의 반려로 오겠다고 하지 않았어도...
형을 얼굴없는 시종으로 만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 ... 형을. 혼자 두지만 않았어도-.
“큰 상처라도 입었으면 어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으면 어떻게 해..”
며칠째 밥을 굶은 것따위.
후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것 조차도 상관없었다.
지금 슈엘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사리엘의 흔적이었다.
건강히 있다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세상의 무엇보다도 간절했다.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벽에 걸린...하얀색. 정장.
봄축제의 첫날밤.
단 하루, 입었던 꿈같던 밤의 옷. ...
“... 이제... 끝나는구나. 봄축제.”
봄축제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줄 은 몰랐다.
후안님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던 일이...
먼. 꿈만 같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차가운 눈동자만이 생각날 뿐이다.
오늘은 봄축제의 마지막 날...
후안님은 나 아닌 다른 아름다운 사람과. 짝을 맺으시고
그 사람과 행복하게 웃으며
춤을 추셨...겠.지...
갑자기 들어오는 질투심에 슈엘은 콰앙- 바닥을 쳤다.
이미 상처투성이인 주먹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이런 와중에 또야, 슈엘·알스·슈?!!!
그만해, 제발.
"...지금은 형이 먼저야!”
-그때였다.
며칠 새 들을 수 없었던 문소리가 들린 것은.
슈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 형?!!
어두웠던 방안에 문이 열리고. 슈엘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커다란 키의... 선명한 붉은색 머리카락.
“... ...후안...님?”
방안으로 들어온 후안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냐 이 꼴은!!
인기척도 없는 방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주인 없는 방보다도 휑한 방.
이런 곳엔 어울릴 래야 어울릴 수 없는 녀석이 있었다.
캄캄한 방안에 기운 없이 앉아 있는 모습.
벌써 일주일째 미친 듯이 성주변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보고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엉망진창인 얼굴과 옷.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한순간 보인 실망의 빛이었다.
하...하하!!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찾는 시종 따위가 아니라 실망인 모양이구나.
슈엘!
“... ...”
한편 슈엘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후안이 이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후안은 후궁전엔 한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후궁이라고는 자신뿐인 이곳에 후안이 발을 끊은 것은 당연했다.
밤의 반려라고도 인정하지 않는 나를 안기위해 올 리가 없잖아.
그래도 정말 바보 같게도 저 얼굴을 보자
심장이 두근거려오는건 멈출 수가 없다.
웃는 것 조차 힘든 상황인데도 조각상과같이 멋진 저 얼굴을 보자
한순간 마음이 놓이는 건 어째서 일까...
“아... 후안님... 죄송해요. 저 지금 너무 보기 흉하죠.”
그제야 스스로의 모습이 엉망이란 걸 안 슈엘이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안이 자신의 방을 찾아와준 이상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었다.
최소한- 옷에 붙은 나뭇잎들이라도.
엉망이된 머리카락이라도-.
... 최대한 좋은 모습을. 기억하실 수 있게...
떨리는 손으로 옷을 털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후안이 한 발짝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슈엘은 흠짓하며 고개를 돌렸다.
“?!!!”
순식간에 다가온 후안의 얼굴에 놀랄 틈도 없이 입술이 맞닿았다.
강하게 파고드는 혀에 슈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우읍... 하으...”
슈엘이 거부할 틈도 없이 입속을 침투한 혀는
농락이라도 하듯 곳곳을 간지럽힌다.
가지런한 앞니에서 어금니 깊숙한 곳까지 부드러운 혀의 느낌이 와 닿았다.
서로의 타액이 섞여가는 걸 느낄 만큼 강한 입맞춤.
정신이 아찔해진 슈엘은 후안이 입을 뗄 때까지
반항 한번 할 수 없었다.
“하아... 하아...”
한참 후에야 끝난 입맞춤.
슈엘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후안을 바라보았다.
“?!”
뭐지... 저 눈은... ?
슈엘은 서늘한 오한을 느꼈다.
차가운 눈동자 속에 붉은 안광이 서려있었다.
“후안님, 대체 왜...”
촤악- 슈엘의 목깃을 잡은 후안의 손이 거칠게 아래를 향하며
단추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두려워하는 슈엘의 눈동자에 후안은 미소를 지었다.
“대체 뭐가 두렵지, 슈엘·알스·슈?!
넌 어차피 밤의 반려로 온 것이 아닌가!
이 몸이 드디어 널 안아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뻐해야하지!
살랑살랑 꼬리라도 흔들며 감사해야지!”
“... ....”
“기뻐해라, 슈엘. 드디어 내가 너를 찾은 첫날밤 이니까.”
후안에게 두 손을 잡히자 슈엘이 비명을 질렀다.
순간 사리엘의 얼굴이 슈엘을 스쳤다.
... 지금은 안돼. 지금만큼은-
당신에게 안길 수 없어!!!
“흥, 벌써 잊었나?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벌이다.”
"!!"
[... 너에겐 나중에 벌을 내리겠다!]
그제야 슈엘의 머릿속의 일주일전의 그때가 떠올랐다.
이게... 당신이 주는... 벌이라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슈엘의 손을 잡고 후안은 거칠게 침대로 밀어버렸다.
침대에 쓰러진 슈엘의 위를 후안이 막았다.
한손은 슈엘의 두 손을 잡고 한손으론 슈엘의 옷을 벗겨나갔다.
창백해진 표정의 슈엘에서 후안은 분명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 까만 눈동자가 일주일동안 단한차례도 나를 찾지 않고
다른 자만을 생각했단 사실이
화가 날정도로 싫었다.
겨우 일개 시종 따위를 미친 듯이 찾아해맨다는 보고에
더 이상 축제 따위는 즐길 수 없었다.
그래, 인정하지!
이건...질투다!
겨우 너 따위가, 밤의 반려 따위가
이 몸보다 하찮은 존재를
소중히 하는 것에서 오는 질투란 말이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후안님.
그를 찾은 뒤라면 얼마든지 좋으니까,
오늘만큼은...
지금 만큼은...”
떨리는 까만 눈동자.
후안은 웃었다.
하하!!! ‘그’를 찾은 뒤라고?
그까짓 시종이 없어졌다 고해서 내게 안길 수 없다고?!
웃길 정도로 애틋한 감정이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필사적으로 자신을 밀어내는 슈엘의 두 손을 잡았다.
천으로 묶으려는 찰나 그제야 깨달은 건
피투성이가 된 슈엘의 두 손이었다.
“눈물이 나올 정도군.
손이 이렇게 될 정도로 그를 찾아 헤맸다니.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
“...으윽!!!”
제대로 된 치료도 없이 상처 난 손을 후안이 핥자 슈엘은 눈썹을 찡그렸다.
손 곳곳이 아프다며 비명을 질렀지만
슈엘은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엉망이된 손을 핥던 후안은 피투성이가 된 손을 묶어
침대의 기둥에 매달았다.
“...후안님! 제발, 제발요. 제발!!”
절박한 슈엘의 목소리 따위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후안은 슈엘의 몸위의 몸을 겹쳤다.
"싫어요... 싫어요.... .... 제발..."
밤이 깊어지고 새벽이 오도록 슈엘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강제로 안긴 것이라고 하면 이전의 두 번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은 그와는 달랐다.
격렬한 반항.
마음속 깊은 곳의 거부하는 마음.
후안은 그것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엘의 손이 자신을 거부할수록 더더욱 거칠게 슈엘의 속을 파고들었다.
"아으..."
인상을 쓰고 눈물을 찡그리며 이를 악무는 모습...
보이지마.
보이지마.
그런 모습을 보려고 널 안는 게 아냐!!!!
그러나 후안의 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성은 이미 저 건너편으로 남자로서의 본능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후안은 눈을 감았다.
"흐읍-"
이번 밤에 몇 번일지도 모르는 사정이 또 한번 이루어졌고
후안의 가슴을 밀치던 슈엘의 손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나갔다.
... 포기가 아니었다.
... 정신을 잃은 것이다 ...
슈엘의 눈은 감기고 더 이상 까만 눈은 원망과 슬픔을 가득 띄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하하. 이제야 나를 보지 않는 거냐..
이제야.
이제야...
후안은 슈엘의 몸을 안았다.
-원망하는 눈동자 따위. 보고 싶지 않았어...
이전과 같은 밤이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것처럼... 그때처럼 보름달이 떠있는 밤.
강제로... 반려를 안은 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곳이 슈엘의 방이라는 것이다.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슈엘의 옆에 누워 후안을 방을 바라보았다.
... 커다란. 방이다.
.... 공허할 정도로 있는 것이 없다.
생각해보면 일국의 왕자가 반려로 온 것임에도
후안에게 바치는 혼수품 외엔 뭐하나 제대로 들고온게 없었다.
후궁의 각방마다 딸려있는 가구만이 이방의 전부다.
무엇하나 슈엘의 물건으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커다랗게만 보이는 방.
분명 후안의 방보다도 작을 것이 분명한 방이
너무도 커 보이고.
추워 보인다.
이 커다란 방에 녀석 혼자 살았던 것인가...
혼자 잠을 자고.
혼자 눈을 뜨고.
"... 너에겐. 어울리지 않는군."
눈을 감고 있는 슈엘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후안이 되내였다.
빛이... 어울리는 남자다.
봄빛에 쌓여 활짝 웃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알스의 반려...
하하-.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너를 안은 후에... 왜 이렇게 가슴이 충만해지는지.
그리고 또... 너의 눈물자국이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알 수가 없다.
슈엘의 볼을 만져보자
자신이 던진 보석에 난 상처는 이미 아문 후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후안이다.
"... ... 그. 시종은 대체 뭐지."
슈엘을 안으며 물어봤지만 슈엘은 고개를 저었다.
'제발... 하지마세요, 후안님...' 이라고 되내일뿐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 고문해서라도! 입을 열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그따위 시종에게 왜 그렇게 애를 태우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때리고 상처 입혀서라도 알아내 비웃어줄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방에 멍한 눈으로 앉아있는 슈엘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비추는 까만 눈동자에 주체할 수 없는 욕구가 달아올랐다.
"정말. 겨우 너따위가 날 이렇게 만들어버리다니."
천하의 나를.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버리다니...
후안은 상처투성이의 슈엘을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성안의 곳곳을 헤맨 맨손은 피투성이.
...상처투성이의.
나의 .
반려....
후안은 고개를 숙여 슈엘의 상처 입은 손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