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129화 (129/129)

129화. 북부에서 햄스터 난다 (3)

카일은 침착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서늘한 것이 가슴께를 틀어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서운함인지, 쓸쓸함인지, 아니면 미안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이 슬펐고, 어쩐지 꽤 오래도록 이별을 준비한 것처럼 느껴졌다.

―찍. (나는…….)

나는 괜찮지 않아.

나는, 우리가 멀어지는 게 두려워.

그 말대로 어디에 있든 사랑하겠지. 그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어디에 있든, 설령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세계의 벽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이 마음과 기억까지 송두리째 앗아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게 돼.’

결국 우리는 서로를 잊게 되겠지. 서로가 없는 일상에, 익숙하게 견뎌 왔던 그 외로움에 천천히 적응하겠지.

처음에는 맞잡은 손의 온기를, 다정하게 속삭이던 목소리를, 지긋하게 마주했던 눈빛을, 그리고 맞닿은 몸 너머로 느껴지던 심장 소리를…….

하나씩, 하나씩 잃고 나면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나는 싫어.]

너를 몰랐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도, 네가 없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싫다. 네가 없는 곳은 더는 의미가 없으니까.

메시지를 확인한 카일이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슈.”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카일은 여전히 무언가를 꾹 눌러 참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붉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며 속으로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내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남는 것도 가능한 거야?’

햄스터가 아니라 인간으로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시스템이 깜빡였다.

[현재 기적 수치 100%]

[현실로 ‘불러오기’ 하거나, 이곳으로의 ‘동기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동기화.

나는 그 낯선 단어를 입안으로 잠시 되뇌어 보았다.

[마지막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현실을 환상으로, 환상을 현실로.]

[또 다른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소망과 염원이 모이면 기적이 되며, 간절히 바란다면 환상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기적은 무엇이든지 이루는 힘이니까요!]

[조건 :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보상 : ‘동기화’]

나는 여러 개 떠오른 시스템 창을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몇 번씩이나 살펴보았다. ‘불러오기’가 아닌, ‘동기화’. 그 보상만 있으면 나는 이 세계에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아마 나를 제외한 타인의 마음이 있어야만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남기를 바라는 사람은 역시…….

‘전하뿐이겠지.’

나는 두 손을 모은 채 카일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카일은 내 시선을 오해한 듯, 특유의 덤덤한 미소를 보내며 대답했다.

“나는 괜찮다, 슈. 그러니까 네게 좋은 결정을 해.”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벌써 나를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욕심이 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서일까?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찍. (바보.)

나는 입을 비죽 내밀며 메시지를 보냈다.

[욕심내란 말입니다.]

카일은 내 메시지를 읽더니 조금 놀란 듯 입술을 달싹였다.

[왜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은 척해요?]

[정말 내가 그렇게 가 버려도 괜찮아요?]

가지 말라고 그랬으면서.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서 이 세계를 선택해 달라고 했던 주제에. 그렇게 간절하게 굴었던 게 다 꿈이라는 듯,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담담해질 수가 있을까.

[차라리 묶어 두면 도망은 안 가겠다면서 고민하던 때가 더 나았겠는데요.]

카일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손끝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슈, 나는…….”

나는 용기를 내, 어쩌면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일지도 모를 말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전하의 진심을 한 번만 더 듣고 싶어요.]

*

놓고 싶지 않았다.

놓고 싶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처음이었다. 늘 잃기만 했던 세상에서 이것 하나만 있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만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저와 비슷한 결의 외로움에 끌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정이거나 호기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제 마음을 몇 번이나 돌아보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사랑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것부터가 사랑이라는 증거였다.

“나는 언제나 네가 필요했어.”

세상에 영원한 건 무엇도 없겠지만, 너는 그래도 덧없이 사라지지 말고 나를 지켜 줄 수는 없을까.

“이곳이 네 현실이었으면 했어.”

소설 따위가 아닌, 네 고향이자 터전이 될 수 있다면.

“내 마음만으로 네 세계를 전부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한 점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이 네 남은 생과 내 남은 생을 맞바꾸자고 청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사랑이었다. 그만큼 사랑했고, 간절했다. 그러기에 오히려 마지막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이 마음의 밀도에 질식하는 건 아닐까. 간절함에 망설이다가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해 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말에는 힘이 있어서, 그 힘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게 될까 봐. 그게 실은 사랑이 아니라 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래서 카일은 제 손바닥 위에 올라올 만큼 조그만 생명체 앞에서 솔직해질 수 없었다.

“내 진심은…….”

파란 눈빛이었다. 기적을 상징하는 그 눈동자는 따뜻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여전해.”

카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슈, 네가 필요해.”

작고 따뜻한 반려 마수는 조용히 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사랑의 전서구’도 조용했다.

그 침묵 속에서 카일은 끝내 숨기고 싶었던 제 마음을 마주했다. 어렴풋이 알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간절해진, 자신의 가장 또렷한 진심을.

“너와 함께 깨어나고 함께 잠들고 싶다. 비록 한 해의 절반이 겨울인 척박한 땅이라도, 네 마음만큼은 사시사철 춥지 않게 내가 네 곁을 지키고 싶어. 네가 웃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축복이고, 네 눈물만큼 아프고 쓰린 것이 없어서…….”

―…….

“이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 하나만 믿고, 나를…… 선택해 줬으면 해.”

카일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다소 서툰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너를 사랑해.”

―…….

“너를 누구로도 대신할 수는 없으니, 나는 앞으로도 너만 사랑하겠지.”

―…….

“나를 네 세계의 중심으로 삼아 줄 수는 없을까.”

[당신은 그의 세계가 되어 줄 자신이 있습니까?]

그건, 언젠가 들었던 시스템의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나는 기꺼이 그럴 수 있는데.”

긴장 속에서 짧은 적막이 스쳤다. 그의 반려 마수, ‘캐슈넛’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카일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의 진심을 기다린 것처럼.

그리고, 그 뒤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잠시 뒤, 카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운명 공동체’의 연결이 견고해졌습니다.]

[소망과 염원이 기적으로, 그리하여 ‘불러오기’가 ‘동기화’로.]

[당신의 세계를 새로이 정의하겠습니까?]

캐슈넛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은 그저 홀린 듯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현실을 환상으로, 환상을 현실로.]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이 상태는 영원히 계속되며, 당신의 육신은 ‘현실’에서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동기화 이후, 시스템과의 연결은 끊어집니다.]

손바닥을 누르던 포근하고 가벼운 무게감이 사라졌다.

이내,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온 방을 환하게 물들였다. 빛이 어찌나 강한지 새하얗게 번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카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올려 두었던 반려 마수가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눈을 뜨는 일이 조금 두려웠다. 그 열렬한 대답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불안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작고 가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손이 카일의 어깨를 감았다. 그대로 목을 와락 껴안고 몸을 붙여 왔다.

두근, 두근, 두근.

너무나도 익숙한 온기와 심장 박동이 성큼 와 닿았다. 카일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랑해요.”

슈가 그의 품에 고개를 묻으며 속삭였다.

“저도 전하를 사랑해요. 이 말을 직접 하고 싶었습니다.”

“…….”

“전하가 계신 곳이 제가 있을 곳이에요. 전하가 제 세계의 중심이니까.”

“……슈.”

“가지 말라는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전하는 모르죠. 바보 같은 고민이나 하고.”

카일은 반쯤 쉰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네 미래를…… 그러니까, 발목을…… 잡는 거면…….”

“전하가 제 미래인데 왜 발목을 잡아요?”

“…….”

“대신, 약속해요.”

카일은 고민하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약속하마.”

슈가 맑게 웃으며 되받았다.

“뭔 줄 알고 약속해요?”

“내 목숨이라도 약속할 수 있는데 고민이 필요한가?”

“목숨은 됐고요. 전하께서 하셨던 말 그대로요.”

‘나를 선택해 줘. 이 세계를 선택해 줘. 너를 외롭게 하지 않고, 끝없이 사랑하겠다는 약속만으로 네 여생을 달라 애걸하는 건…… 너무 비겁한 일일까.’

“전하를 선택할게요. 이 세계에 남을 겁니다. 전하의 곁에 있으면 제 여생도 외로울 날이 없겠죠. 대신…….”

“대신.”

“저를 사랑한다는 그 약속을 지켜 주세요.”

카일은 슈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맑고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였다.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용감하고 사랑스러운 눈이었다.

그는 맹세하듯이 말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영원히?”

“영원히.”

두 사람의 몸이 틈 없이 바짝 붙었다.

그 사이로 누구도 보지 못한 시스템 창이 반짝, 기적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행운을 빌어요! (ෆ`꒳´ෆ)]

<끝.>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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