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앞에서 꼬리 치는 햄스터가 뒤에서 발꿈치 문다 (1)
슈의 눈동자에 서린 푸른빛은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카일은 침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도 당연했다. 슈의 안위에 제 목숨이 달린 사람처럼, 오로지 그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마력을 덜어 냈는데도 슈는 쉽사리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열까지 펄펄 끓었다.
“……슈.”
카일은 연인의 뺨을 손등으로 조심스레 문질렀다.
얕은 숨을 헐떡이는 그는 위태로워 보였고, 동시에 괴로워 보였다. 언제나 의연한 태도로 괜찮다고 하던 모습과 사뭇 달라 속이 쓰렸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파하는 그를 볼 때마다, 그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실감 날 때마다, 카일은 세상 모든 것이 하릴없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밤이 한참 무르익을 무렵이었다.
슈의 머리맡에 기대앉아 눈을 살짝 감고 있던 카일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
눈을 떠 둘러본 주변은 고요했다. 하지만, 평소와 무언가 달랐다. 누군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카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히 ‘사랑의 전서구’를 통해 온 메시지였지만, 슈가 보낸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글자마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카일의 온몸에 힘이 뻣뻣하게 들어갔다. 마치 예기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린 것처럼 그의 붉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간섭 □□□ □□□ □□ □□□□]
[□□□ 틈새□ □□□□ □□ □□]
눈앞이 살짝 어지러워졌다. 카일은 허공을 노려보았다. 지금 제게 말을 거는 이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는 본능적인 감에 가까웠다.
‘시스템.’
슈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자, 그가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존재. 이 모든 기현상의 중심에 있는 이.
카일은 슈에게 메시지를 쓰듯이 차분하게 답장했다.
[내게 알려 주고 싶은 게 있나?]
지금까지 카일이 지켜본 바로 시스템과는 오직 슈만이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일에게 시스템이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는 건 이것이 어떠한 편법을 썼거나 혹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단 뜻일 테다.
[내게는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슈의 상태가 나아졌으면 해. 도울 방법이 없나?]
잠깐 고민하듯이 파란 메시지 창이 깜빡거렸다. 이윽고, 조금 깨져서 내용을 온전히 알아볼 수 없는 메시지가 연이어 떠올랐다.
카일은 마치 제 뜻을 알아 달라고 피력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떴다가 사라지는 내용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시스템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변의 힘을 덜어 내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100퍼센트를 채운다면 완벽하겠지만, 섭리를 거스르는 힘은 슈의 육신을 파괴할 것이다. 슈의 육신은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준비는 끝났다.
“필요한 기적은 모두 채워졌으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배수현’은 예정된 죽음을 되돌리기 위해 이 세계에 왔고, 필요한 기적을 채우면 그가 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슈가 읽었다던 소설, <겨울의 심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해내면 된다. 마탑에서의 행동으로 슈는 충분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시스템이 조금 미안한 듯 깜빡거렸다. 카일은 마치 이지를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이어진 일련의 말들이 카일에게 불완전하게나마 제 뜻을 전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으므로 온전히 소통하기란 어려웠다.
[슈□ 살리고 □□□, □□ □□ 현실□ 정착하도록 □□□ □□.]
하지만 카일은 시스템이 하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동시에 모르고 싶기도 했다. 슈를 살리고 싶다면 그가 본디 살아온 세상에 정착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이겠지.
카일은 침통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이별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자 현실이 비정하게만 느껴졌다.
왜 제가 사랑하는 것은 이다지도 쉽게, 허망하게, 그리고 빠르게 제 곁을 떠나갈까? 그리 대단한 걸 바란 적도 없는데. 거창하고 위대한 것들이 아니었는데도.
[설득]
[필요]
그 메시지가 스르르 흩어지는 동시에 슈가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
눈을 떴을 때 보이는 풍경은 예상대로였다.
“슈.”
카일은 꼭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침착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듯 눈에 힘을 주었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애처로워 보였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걱정 많이 했겠네. 피까지 토했던 것 같은데.’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 보인 뒤, ‘어때요. 멀쩡하죠? 팔팔하다니까요!’ 같은 말로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힘이란 힘이 다 빠져 버린 몸뚱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몸을 살짝 들썩이자, 카일이 내 어깨를 받아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하루 지났다. 열이 높았었어.”
“그랬구나. 근데, 저 이제…….”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못 견디는 것 같아 힘은 좀 덜어 냈고.”
카일의 말에 나는 이변 간섭률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이변 간섭률 90%]
10%가 부족했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나중에 마법사들이랑 싸울 때 중요한데…….”
뚱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니 카일이 내 머리칼을 쓸어 주곤 달래는 어조로 속삭였다.
“중요하지. 하지만 네 안위를 저버릴 만큼 중요한 건 아니야.”
“으음.”
“네가 위험할 일이 없다면 더욱 좋겠지. 이곳은 곧 전쟁터가 될 테니까.”
카일의 목소리는 낮디낮았다.
그가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말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되지 않았나? 슈.”
그의 말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현재 기적 수치 100%]
[현실로 ‘불러오기’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세계에 떨어져서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드디어 기적을 다 모은 것이다.
나는 비로소 자유가 되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고,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돌아가서 몇 년간 고생했던 것에 대한 보상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이었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전하.”
그는 내 눈을 피했다. 시선을 창가에 고정한 채 카일이 주먹을 꽉 쥐었다.
“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안전하길 바라고. 네가 바라는 곳에서 바라는 형태의 삶을 살길 바란다.”
“…….”
“비록, 너와 내가 멀어지게 되더라도.”
한 자 한 자 힘주어 내뱉는 말은 무뚝뚝했다. 얼핏 듣기로는 매몰차게 딱 잘라 거리를 두는 양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이제 나는 그를 잘 안다. 지금 그는 일부러 슬픔을 눌러 참고 있었다. 내가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를 위해 선택하길 바라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발목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오직, 나를 위해서.
“저는…….”
나는 손을 뻗어 카일의 주먹을 부드럽게 감쌌다. 어찌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하얗게 도드라진 손마디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전하의 곁에서 행복했어요.”
“…….”
“언제나 전하께서 지켜 주셨고.”
“…….”
“비록 몸은 추워도, 마음은 조금도 춥지 않았어요. 그 기나긴 외로움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져서 숨통이 트였어요.”
“……슈.”
붉은 눈동자가 내 쪽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슬픔이 번진 듯 눈두덩이 불그스름했다.
“꼭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안 그래요? 북부의 일만 해결하고, 그다음에 진지하게 얘기합시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잖아요.”
“여기는…….”
“알아요. 여기는 전하의 세계죠. 전하가 나고 자란 전하의 현실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세계이기도 하고, 제가 지키고 싶은 곳이기도 해요.”
카일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여긴 네게 있어 소설 속이야, 슈.”
“뭐 어때요? 나한텐 지금 이곳이 어떤 현실보다도 생생한데.”
나는 카일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손을 잡아끌어 내 얼굴에 가져다 댔다.
손에 실려 있던 힘이 스르르 흩어졌다. 카일은 내 뺨을 한참이나 쓰다듬었다. 세상에서 더없이 귀한 것을 만지듯.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전하. 저를 위하는 말 말고요.”
한참의 침묵 후, 그가 대답했다.
“……가지 마.”
슬픈 듯, 후련한 듯, 또 미안한 듯 구겨진 카일의 얼굴에 필사적인 빛이 떠올랐다.
“네가 필요해, 슈. 우리 영지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를 위해서. 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어서, 네가 떠난 자리는 누구로도 채울 수 없을 것을 알아.”
“…….”
“나를 선택해 줘. 이 세계를 선택해 줘. 너를 외롭게 하지 않고, 끝없이 사랑하겠다는 약속만으로 네 여생을 달라 애걸하는 건…… 너무 비겁한 일일까.”
나는 카일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이건 중요한 선택이었다. 지금 당장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카일은 그것조차도 이해한다는 듯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진심을 말한 것으로 족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웃어 주기까지 했다.
“……여기가…….”
내가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 현실이라면 좋았을 텐데.”
카일이 나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상체를 바짝 붙인 채로 내 어깨에 턱을 괴고는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 온기가 좋아서, 나는 그에게 편안히 기댔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카일의 눈에만 보이는, 어떤 시스템 창이 뜨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소망과 염원이 모이면 기적이 됩니다.]
[나는 어떤 환상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서 만들어진…….]
[기적.]
[무엇이든지 이루는 힘.]
[몸이 아니라, 영혼에도 기적은 필요해.]
[현실을 환상으로, 환상을 현실로.]
[당신은 그의 세계가 되어 줄 자신이 있습니까?]
“…….”
[당신이 원한다면.]
북부대공의 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