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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118화 (118/129)

118화. 느린 햄스터도 성낼 적이 있다 (5)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벨리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열심히 숨기기는 했지만, 마인하르트를 벗어나

지 않은 이상 로렌츠가 영원히 모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것보다 시기가 일러 조금 당황했을 뿐이

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니까, 내 쪽 비밀 역시 적당히 털어놓아도 되겠

다.

“나는 그쪽이 가진 힘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 될 겁니다.”

이변 간섭률에 관한 이야기였다.

100퍼센트를 채우기만 하면 변이종과 마법사는 내 적수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북부에도 승산이 있다.

이전에 했던 몇몇 실험을 떠올렸는지, 녹스가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의 계약을 맺은 게 아쉽단 말이야, 이럴 때는.”

명백한 살기가 흘러들어 왔다.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과 그가 평생을 들여 일군 터전의 안전이 걸린 일

이다. 이깟 무서움 따위에 지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 행운을 단순히 방어하는 데만 쓰는 게 아니라, 기적 수치나 하트처

럼 여러 가지로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운이 좋아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시스템은 잠시 고민하더니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

[간섭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했다고는 안 했다.

나는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얼른! 뭐라도 좀 만들어 내! 다른 데서는 몰라도, 여기서는 상황이 다르잖

아!’

악덕 클라이언트의 주문에 시스템이 슬퍼하며 시스템 창을 띄웠다.

[NOW LOADING…….]

그사이 카일은 착실하게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와 메

시지를 몇 개 더 주고받으며 그의 예상 사망 시간을 확인했다.

녹스는 눈을 내리깐 채 다른 마법사들과 이야기하는 듯 홀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았다.

[슈. 맨 아래층까지 왔다.]

[시종들이 공격하기 시작했어.]

[시종들의 심장에 마석이 있다. 변이종에서 보이는 마수의 핵과 같은 것으로

보이는군.]

마수의 핵! 그걸 흡수하면 행운 수치를 올릴 수 있다.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핵을 모아 주세요. 필요합니다. 맨 아래층에 뭐가 있어요?]

[침실.]

그때, 녹스의 눈이 휘어졌다. 제 시종들이 카일의 손에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연구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새삼 ‘피의 계약’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없었더라면 난 지

금쯤 갈기갈기 찢기고도 남았을 테니까.

[녹스의…… 관이 있다.]

그 순간, 내 앞으로 경고하듯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0일 남았습니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0일 남았습니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0일 남았습니다.]

……카일이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위험해요.]

[열지 마요]

[조심]

동시에 녹스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손을 뻗어 왔다.

저번처럼 목이라도 조르려는 건가? 나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싸늘한 철제 선반이 등에 닿았다.

두려운 동시에 뿌듯했다. 놈이 이렇게까지 반응한다는 건 겨울의 심장을 지

하에 곱게 모셔 놨다는 반증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목을 꺾어 버리고 싶은데…….”

녹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님이 왔어. 귀찮은 장난은 그만두고, 네 대공에게 응접실로 올라오라고

전해.”

“우릴 보러 온 손님도 아닐 텐데요.”

“하지만, 만나고 싶을걸.”

그 한마디에 나는 손님이 누군지 곧장 알아차렸다.

“황제가 왔군요.”

분노가 울컥 솟았다.

황제가 됐으면 그만이지, 왜 정쟁에서 진 상대까지 굳이 찾아내서 죽이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제가 되고서도 이렇게까지 할 만큼 황위가 대단한 자

리인 걸까?

‘그냥 잘 먹고 잘살기나 할 것이지. 잘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까지 들쑤시니까

문제가 되는 거잖아. 하여간, 욕심이 사람을 다 망친다니까.’

그래, 녹스의 말마따나 직접 만나 봐야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 봐야

하고, 벨리알의 생존을 알아차린 그가 어떻게 행동할지도 가늠할 필요가 있다.

“궁금하지 않아? 꼬마야.”

응접실로 와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데, 녹스가 나를 부르며 웃어 보였다.

“과연 우리 중 누가 끝까지 살아남을까. 누가 누굴 죽이고, 누가 죽음으로부

터 도망칠 수 있을까.”

나는 씩 웃으며 대꾸해 주었다.

“고생 좀 하시겠어요. 저희는 생존 전문가들이거든요.”

*

응접실 중앙의 두꺼운 카펫을 걷어 내니, 황성과 연결된 마법진이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블레이크 영지가 버티고 있는 데다가 거리도 상당히 멀어서 일반적인 방법으

로 지나다니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로렌츠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는 꼴을 보자 속이 꼬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볼 것 없어.”

로렌츠가 그 특유의 우울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황실과 북부 마법사단의 협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정적을 제거하기 위

해 손을 빌려야 할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

어느새 내 곁으로 돌아온 카일이 검을 뽑아, 방어 태세를 취했다.

나는 그의 뒤에 바짝 붙으며 물었다.

“전하도 아셨어요?”

“어렴풋이 예상은 했다. 황성과 직접 연결할 정도로 썩어 있는 줄은 몰랐지

만.”

마법진을 타고 나타난 로렌츠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 우리에게도 앉으라

는 듯 건너편을 눈짓했지만, 나와 카일은 뻣뻣하게 선 채 로렌츠와 녹스를 내려

다보았다.

로렌츠가 녹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만난다고는 하지 않았잖아.”

“어차피 독 안에 든 쥐 신세이니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아 두기라도 하라는

뜻이지요. 일종의 여흥처럼.”

그 말은 곧, 녹스가 우리 두 사람을 마탑에 가두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분명

히 로렌츠의 요청 때문이겠지.

아까 놈이 말해 주었던 사실이 얼핏 떠올랐다.

황제가 벨리알의 생존을 눈치챘고, 그걸 핑계 삼아 북부를 토벌한다고 했지.

녹스는 그 사이에서 ‘겨울의 심장’의 재료를 수급해 연구를 완벽하게 마칠 셈이

었다.

그러려면 카일을 가둬 두는 쪽이 황제에게 유리하다. 구심점을 잃은 군대야

말로 무너뜨리기 좋은 상대니까.

현재 서리의 마탑은 잠겨 있다. 외부와 이어진 문을 열기도 쉽지 않거니와,

어떻게든 마탑 밖으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영지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적잖이

걸릴 거다.

녹스의 표현이 짜증 날 정도로 옳았다.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나는 ‘불러오기’를 해제해서 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지만…….’

문제는 카일이다. 그를 여기에 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

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력감이 불쾌할 정도로 선명하게 나를 찔러 댔다.

‘시스템. 어떻게 안 되겠어? 이대로 둘 다 죽을 수는 없잖아!’

잠시 후,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한정판 행운 코너!☆]

[이변의 영역에서만 아이템 추가가 가능하며, 영역을 벗어나면 업데이트가

중지됩니다.]

역시, 녹스의 영역 안에 있으니까 그나마 간섭할 수 있다는 건가. 저 망할 마

법사도 도움이 되는 순간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나는 어서 보여 달라는 듯, 허공을 열렬하게 눈짓했다.

[행운의 나침반 | ♣×5000 | 1회에 한하여 이동 마법진의 경로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경로가 변경된 마법진은 사용 후 파괴됩니다.]

[행운의 자명종 | ♣×3000 | 영혼까지 깨워 주는!]

[현재 보유 현황 | ♣×50]

‘자명종은 대체 어디에 쓰는 거야? 설명이 왜 저러냐고. 그리고…… 나침반

은 마침 쓸모가 있겠는데.’

다행히도 이동 마법진이 눈앞에 떡하니 있다.

마탑의 응접실과 황성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그 경로를 블레이크 성으로

바꾸어 우리 두 사람이 빠르게 돌아간 뒤, 마법진을 파괴해 버리면 무사히 탈출

하는 것만으로 모자라 놈들을 잠시간 이곳에 묶어 둘 수도 있다.

그러려면 저 어마어마한 행운 수치를 채워야 하는데…….

‘100개를 채웠을 때 피를 토할 정도였으니까, 5,000개를 강제 충전하면 죽을

지도 몰라.’

내 생명력은 쓸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여기서 카일을 빼내 봤자, 그는 기뻐하

지 않을 테니까.

나는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카일의 옆구리를 슬쩍 찌르며 메

신저로 속삭였다.

[아까 시종들의 심장에 있다던 핵 말이에요. 챙겨 왔어요?]

내가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카일과 녹스, 그리고 로렌츠가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카일의 표정이 험악한 걸 보니 썩 평화로운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카일은 로렌츠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시에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내게

은밀히 전했다.

역시나, 마수의 핵이었다.

조그만 돌 안에 익숙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마석을 가

만히 쥐고 그 힘을 차분하게 빨아들였다.

[현재 보유 현황 | ♣×55]

‘이거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아까 녹스와의 문답에서 그는 ‘겨울의 심장’이 이 탑에 보관되어 있다고 말했

다. 그리고 그건 탑의 최하층, 녹스의 관에 보관되어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그리고 그 겨울의 심장, 마수의 핵, 시종들의 심장에 있는 마석은 모두 타인

의 생명력을 뽑아 만든 물건이다.

그러니까, 이 탑의 곳곳에 내 행운이 널려 있다는 뜻이었다.

[전하.]

나는 피곤한 척 카일에게 슬쩍 기대며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제가 하자는 대로 다 해 주셔야 해요. 알

겠죠?]

카일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더없이 다정한 미소가 떠올

라 있었다.

[난 언제나 네 뜻을 존중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아군과 함께 마탑에 있는 모든 행운을 싹 털어먹을 시

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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