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다 된 마법에 햄스터 뿌리기 (4)
오늘분으로 허락된 세 가지 질문.
물어보고 싶은 거야 많았다. 기회가 한정되어 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최대한 신중하게…….’
나는 실험대에 걸터앉은 채 끙, 하고 낮게 앓는 소리를 냈다. 녹스는 내내 고
민하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어쩐 일이래? 저 심술궂은 마법사 양반이.
아까의 대화로 손에 넣은 정보는 꽤 많았다. 지난밤에 몰래 엿들은 그들의 대
화까지 참고해 보자면, 지금 북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는…….
“‘공허한 넋’, ‘익사체’, ‘장의사’, 그리고 ‘하얀 망령’.”
단안경을 쓴 녹스는 여전히 뜻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뻐하는 건지, 경
계하는 건지, 놀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살의를 느끼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 어
려웠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궁금한 건 직접 묻고,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내
힘으로 찾아내면 그만이다.
“북부 마법사단의 핵심이라고 불릴 수 있는 마법사는 이렇게 네 명입니까?”
우선, 무엇부터 조사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어떤 일이든 시
작하기 전에 해야 할 범위를 명확히 하고, 알아야 할 대상부터 인지해야 하니
까.
녹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확해.”
“그리고 그중 ‘공허한 넋’이라고 불리는 루키트는 오래전에 이미 죽은 사람
이죠. 영혼이 갈기갈기 찢긴 나머지 텅 빈 육신만 남았을 거고.”
백 년 전에 일어난 사고로 루키트는 죽었다. 이건 영지에서 조사했던 내용이
다. 그리고 그 사실에 어제 놈들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더하면…….
“루키트의 빈 육신을 통로처럼 이용해서 세 사람이 소통하고 있는 거죠? 제
시스템처럼.”
“똑똑하네. 마법사의 자질이 있어.”
놈이 싱글싱글 웃으며 덧붙였다.
“제자로 거둬서 키워 버릴까?”
“제자는 무슨 얼어 죽을 제자. 사양합니다.”
“아쉬워라. 흔치 않은 기회인데.”
“흔치 않은 기회고 나발이고. 그래서, 대답은요?”
“그것도, 응.”
녹스의 눈이 가뿐하게 휘었다.
“그나저나, 네 조력자 말이지. ‘시스템’이라고 하는구나.”
……아차. 그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괜히 저놈 좋은 일 하나 해 준 셈
이었다.
내가 혀를 차자, 녹스가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라며 검지로 내 어깨를 쿡 찔
러 왔다.
“좋아하는 표정이나 좀 숨기고 말씀하시죠. 어쨌든…… 좋아요. 그 정도면 충
분한 수확이니까. 그럼, 다음 질문으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오래 고민한 것치고는 거침없이 질문하네?”
“오래 고민했으니까요. 그리고 설령 자잘한 것쯤은 좀 놓친다고 해도, 내일
이 있으니까.”
“내일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네.”
나는 그 말에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를. 전하가 저를 죽게 둘 리가 없잖습니까.”
“으흠…….”
녹스가 어깨를 으쓱하는 사이, 내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마인하르트 전역에서 발생하는 그 실종 사건.”
“배후는 내가 아니라고 했을 텐데, 꼬마. 저번에 질문했잖아.”
“아뇨. 오늘은 그걸 묻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나와 녹스의 목에 걸린 올가미는 ‘거짓말’에만 반응한다. 요컨대, 진실을 교
묘하게 감추는 편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소리였다.
녹스는 일련의 실종 사건을 직접 지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내게
거짓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면.
“그 실종 사건은 ‘겨울의 심장’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일입니까?”
“…….”
짧은 침묵이 흘렀다. 녹스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었다.
아, 이젠 알 것 같다. 이 한기가 뭘 뜻하는지.
호기심이 반, 그리고 적대감이 반이다. 성큼 다가와 멋대로 저를 간파하려는
상대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이었다.
“생각보다 배우는 게 빠르단 말이야. 대담하기도 하고.”
“대답해 주셔야죠.”
“……뭐, 좋아. 어차피 들킨 마당에.”
녹스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까보다 훨씬 더 부자연스러운, 위기감마저도 느껴지
는 적막이었다. 어쩐지 목덜미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건가.’
설마하니 날 실험대에 묶어 두고 갈라 보려고 들진 않겠지? 그래도 마법 계
약서까지 썼는데, 그렇게까지 조급하게 굴려고.
그때, 눈앞에 파란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슈]
사랑의 전서구!
카일의 전언이었다. 나도 모르게 허리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미처 답하기도 전에 메시지가 몇 통 더 도착했다.
[문]
[갇혔다]
[공격]
[시체]
[지금너에게]
‘……뭐?’
심상치 않은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 결국, 나는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자
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데? 어떻게 된 건데?
무슨 일이지? 혹시, 카일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어지간히 급하지 않
고서야 이런 메시지를 연달아 보낼 리가 없다.
우선, 카일의 예상 시간부터 알아봐야…….
“뭘 그렇게 열심히 볼까.”
그때, 벼락같이 다가온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를 틀어쥐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녹스의 새파란 눈동자가 서늘한 이채를 띤 채 반짝이고 있었다.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어. 여섯 시간이 다 지나려면 앞으로도 두 시간은
남았거든, 꼬마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나는 목이 졸린 상태로도 버둥거리며 그의 손목을 마주 틀어쥐었다.
“……뜯을 만큼 뜯으신 것 같은데, 오늘은 좀 일찍 끝내 준다는 선택지는
요?”
“애석하게도 내키지 않아. 아픈 녀석의 사정을 봐준 지 사흘도 지나지 않았
거든.”
“…….”
카일…… 카일의 남은 시간만이라도.
하지만 시스템을 부르려는 순간,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이 더 실렸다. 목숨을
위협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숨쉬기는 퍽 버거웠다.
“꼭 어디론가 가고 싶은 모양이네. 사랑하는 전하께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
하기라도 한 건가?”
마치 내가 왜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지 안다는 듯한 태도다.
‘역시 다 알고 이러는 거지.’
언제 봐도 재수 없는 자식이다.
“탑에 부하들을 많이도 심은 둔 모양입니다. 산 사람은 많이 못 본 것 같은
데.”
“잘 봤어. 산 것들이 많이 돌아다니면 거슬려서, 웬만하면 두지 않는 편이거
든. 꼬마와 대공 전하는 조금 특별한 예외라고 해 둘까.”
그러고 보니, 살아 있는 부하들이 움직이며 카일을 감시했다고 하더라도 곧
장 알 수 없다. 우리가 들어온 이후로 누구도 연구실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으니
까.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와 소통하는 거라면.’
마법사들과도 소통하는 마당에 하인들이라고 못할 건 없으니까, 그쪽이라면
가능성이 좀 있다.
새삼스럽게 녹스가 쓰는 힘인 ‘이변’과 내가 쓰는 ‘기적’이 비슷한 결을 가졌
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해 보이네, 꼬마야.”
나는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신경 끄십쇼.”
목을 틀어쥔 손에서 힘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마른기침 몇 번을 하고 나자,
목에 퍼져 있던 아릿한 불쾌감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목을 가다듬던 찰나, 연구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노크는커녕
평범하게 문고리를 돌려 연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로 차면 쓰나.”
녹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문 너머에는 카일이 서 있었다. 카일은 검을 빼 든 채 형형하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로 이쪽을 살피고 있었는데, 시커먼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전하.”
나는 한달음에 그에게 달려갔다. 카일은 피가 묻어 있어서인지 망설였지만,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무사했군. 데리러 왔다.”
“계약도 했는데, 신뢰가 너무 없는 거 아닌가? 난 꼬마를 해칠 생각이 없어,
대공.”
“하지만, 네 하인들은 내게 살의를 보이더군.”
“아직은 탑에서 나갈 때가 아니니까. 문을 억지로 열려 했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내가 멍하니 물었다.
“……문?”
그러고 보니, 나가는 길을 찾아본다고 했었지.
아마 외부와 이어진 문을 열려고 했고…… 잠금장치를 억지로 부수거나 해제
하려다가 하인들과 갈등을 빚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부패하지 않게 처리된 시체일 뿐이니, 카일이 뒤집어쓴 피가 검붉은
것도 이해가 됐다.
“꽤 화려하게 싸운 모양이야.”
무언가를 잠시 헤아리던 녹스가 씩 웃었다. 카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
다.
“이쪽도 목숨을 위협당하는 판국에 봐줄 이유가 있나.”
“아, 그건 오해야. 그런 시시한 공격으로는 절대 죽지 않을 걸 알았거든. 어
쨌든, 그 덕분에 계약 위반도 아니고.”
“말장난은 집어치워. 슈는 데려가겠다.”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카일의 팔을 잡았다.
아까 녹스가 분명히 안 된다고 했는데, 데려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면 다
투게 될까? 지쳐 있는 카일과 아직 팔팔한 녹스를 붙여 두기에는 영 걱정스러
웠다.
[현재 이변 간섭률 30%]
꽤 늘어나긴 했지만, 이 정도의 간섭률로는 큰 도움도 되지 못할 거고.
‘어쩌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의외로 녹스가 물러났다.
“뭐, 좋아.”
아깐 안 좋다며! 카일하고 연락만 해도 목을 냅다 조른 주제에!
내가 날카롭게 노려보자, 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일 할 만한 실험이 생각났거든. 질문거리도 그렇고. 고된 하루가 될 테니,
미리미리 쉬어 둬.”
“…….”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야, 꼬마.”
대체 뭘 물어보려는 거지. 설마, 나에 대해 뭔가 알아챈 건가?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지만, 동요하는 모습을 두 사람 앞에서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최대한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양 않고 갑니다.”
“목욕물 정도는 올려 보내 주지.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
녹스가 귀찮게 굴지 않을 것을 확인한 카일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일 초
라도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하! 걸어갈 수 있어요!”
“알아.”
알기만 한 것 같은데. 전혀 참고가 안 된 것 같은데.
‘나도 사지 멀쩡하고, 씩씩한 사내놈이란 말이다!’
내 마음속 외침과는 상관없이 카일은 나를 안은 채 계단을 세 칸씩 잘도 걸어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날카로운 눈길로 주변을 경계하는 건 기본이었다.
순식간에 방에 도착했는데도 카일은 안심한 기색이 아니었다. 카일은 주위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한쪽 무릎을 꿇더니, 내 안색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불안해 보여, 슈.”
아까 들었던 것과 똑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가 말했다는 것만
으로도 마음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젠 표정만 봐도 압니까?”
그가 발그스름한 손자국이 남은 내 목덜미를 쓸며 쓰게 웃었다.
“네게 관심이 많으니까.”
“그건 그렇죠. 저를 좋아하시니까.”
“응.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네가 안전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인 걸까.”
카일이 내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꼭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태도였다.
“아무래도 제 팔자가 영 사나운가 봅니다. 마음대로 안 되셔서 낙담하셨습니
까?”
내 품에 고개를 묻은 채로 카일이 웅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아니.”
“…….”
그가 다짐하듯이, 그리고 맹세하듯이 말했다.
“뭐든 상관없어. 반드시 지켜 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