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112화 (112/129)

112화. 다 된 마법에 햄스터 뿌리기 (3)

겨울의 심장을 조종할 수 있다, 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정확히는 녹스를 비롯한 북부 마법사단이 순수한

마음으로 로렌츠와 손을 잡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대로 ‘겨울의 심장’이 완성된다면 영생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

다. 녹스는 자신의 끝없는 갈망을 채우기 위해 죽음조차 초월하고 싶어 했으니

까. 그 심장이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겠지.

하지만, 그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물건이 아니다. 녹스는 이 연구에 꼬박

몇백 년을 매달렸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영생은커녕 시체를 썩히지 않기 위해 이 추운 땅에서 떠나지도 못했다.

“네가 예상하는 것이 대개 맞을 거야. 넌 똑똑하니까.”

녹스가 웃으며 말했다. 마치 놀리는 것 같았다.

“물론, 우리 오만하신 황제 폐하께서는 드디어 이 무법 지대를 손에 넣어 간

다고 생각하시지만 말이야. 비밀은 지켜 주겠지?”

로렌츠도 적, 그리고 녹스도 적이다. 둘이 싸운다면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

다.

다만, 둘 중 한 명을 골라서 상대해야 한다면 누굴 선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하께 상담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아하하. 비밀을 지켜 달라는 조건도 넣을 걸 그랬군!”

“어차피 상관없다고 생각하셨을 거면서.”

“그건 그래.”

녹스가 내 어깨를 꾹 눌려 실험대에 눕혔다. 철제 침대 특유의 냉기가 등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오늘은 내게 질문할 게 많겠지?”

어젯밤의 대화를 떠올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면 뭐부터 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예요.”

“그럼, 천천히 고민해 봐. 질문은 내가 먼저 할 테니.”

그가 신중한 눈길로 나를 살폈다. 사람을 바라본다기보다는 마법 물품 같은

것을 감정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꼬마, 너는 햄스터라고 했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

나?”

“……아뇨.”

녹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너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나?”

“네.”

“그 미래를 바꾸고, 이 세계의 일에 간섭해야만 네가 살아날 수 있나?”

뭐야? 그건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지금껏 죽었다는 말을 한 적도 없고, 되살아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은 더더욱 한 적 없다.

약점 잡히기 쉬운 단서이기도 하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비밀이랍시고 털어

놓는 쪽이 정보를 하나라도 더 얻어 내는 길이었으니까.

“대답해야지.”

녹스가 부드럽게 채근했다. 목덜미가 화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

놈은 잠시간 침묵했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양 내 주변을 돌기도 했는

데, 아무래도 내게서 얻어 낸 정보를 제 안에서 나름대로 정리하는 듯했다.

녹스의 얇은 입술이 몇 차례 달싹거렸다. ‘매개’, ‘화신체’, ‘대가’ 같은 것을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말이야, 꼬마.”

녹스가 내 머리맡에 파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보석 두 개를 내려놓았다. 보석

이라기보다는…… 주먹만 한 돌에 더 가까운가?

그러더니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된 주문 몇 마디를 빠르게 외웠다.

그러자 돌이 떨리기 시작했다.

“네 힘의 이름은 뭐지?”

“…….”

“세계의 섭리를 부수는 힘. 운명을 깨뜨리고 개척하는 힘. 마법사들에게 그

힘은, ‘이변’이라 불리지.”

나는 녹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돌은 여전히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저게 어떤 원리로 그렇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설명해 준다고 한들 이해할 자신도 없었다.

그저 직감적으로 그 힘이 내 힘과 그의 힘을 닮은, 어떤 외부의 힘이라는 것

만을 느낄 뿐이었다.

“놀라지 않는군.”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역시.”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줄 의무 같은 건 없었지만, 들은 게 있으니 하나 정도

는 알려 줄까.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꾸했다.

“기적.”

녹스가 입술을 달싹이며 내 대답을 되뇌였다.

“기적, 이라.”

“네.”

그가 무심한 손길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내게 돌을 건넸다.

“쥐어 봐.”

뭔데. 혹시, 위험한 거 아니야? 순순히 받아 드는 대신 노려보고 있자, 그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착하게 굴면 상을 줄 테니까, 얼른.”

“제가 앱니까?”

“아냐? 이렇게 작은데.”

“당신이 무식하게 큰 겁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작은 키 아니거든요?”

“하지만 나보다…….”

“주십쇼, 그거.”

나는 얄미운 놈의 손에서 돌을 재빨리 낚아챘다.

마치 얼음을 깎아 만든 것처럼 차가운 돌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손바

닥을 타고 몸 안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만히 쥐고 있자니 푸른빛이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전부 사라진 건 아

니고, 희미한 빛이 어른거리는 정도로는 남았다.

“8할 정도군. 아니, 9할에 더 가깝나?”

녹스가 중얼거렸다.

8할? 9할? 그게 무슨…….

‘잠깐, 지금 내 기적 수치가…….’

[현재 기적 수치 88.1%]

……설마, 이걸 잰 건가?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속내를 들킨 기분이라 소름이 돋았다.

나는 돌을 그의 앞에 살짝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래서, 상이 뭡니까? 실험의 원리라도 좀 설명해 주시죠.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얌전히 협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왕이면 초심

자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이렇게까지 마법에 지식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설명해 본 적은 없는데.”

녹스가 얄밉게 웃어 보였다. 아, 딱 한 대만 쳐 보고 싶다.

“매개물.”

“예?”

“매개물이라고, 네가. 정확히는 네 본체가. 그 햄스터 말이지.”

“북부 들쥐입니다만.”

대공 전하의 소중한 반려 마수다. 물론, 햄스터나 북부 들쥐나 생긴 건 그게

그거지만.

“어쨌든, 이 세계의 짐승이라는 점에서는 별다를 게 없어.”

녹스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계의 경계는 지고해. 다른 세계의 존재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한 세계

에 속한 존재를 다른 세계로 옮기고 싶다고 해서 쉬이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는 뜻이지.”

“이변이든 기적이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넘어온 게 아니겠어요?”

“글쎄. 아무리 대단한 기적이든, 이변이든…… 세계의 벽을 두 번이나 허물

수는 없을걸. 한 세계가 불완전하다면 모를까.”

그 말에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녹스의 말대로라면…… 혹시, 이 세계가 불완전한 세계인 걸까? 소설 속이니

까, 내 기준에서 보면 이곳이 일종의 공상에 더 가까우니까.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본 녹스가 미간을 검지로 꾹 누르며 웃었다.

“이건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문제야.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꼬마야. 난 궁

금한 건 뭐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니, 이 원리도 금세 깨우치고야 말겠지. 중

요한 건 네가 왔다던 세계와 지금 이 세계 중 어디가 불완전하고, 너를 감싸는

‘기적’이 얼마나 대단한지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요?”

“내가 매개물이라는 말을 했지. 네 존재를 충격 없이 이쪽 세계로 옮겨 오기

위한 매개물이 그 북부 들쥐라는 뜻이야. 다른 말로는 화신체라고도 하지. 반발

을 줄이기 위해 이 세계에 있는 것에 네 영혼을 먼저 심고, 단계적으로 허용치

를 늘려 가며 네 본래의 육신을 불러오는 거야.”

그래서 스킬 이름이 ‘불러오기’인 건가? 어쩐지 설득력이 느껴지는 설명이었

다.

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싸하네요.”

“널 도와주는 이가 있겠지. 너는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게 아닌 듯하니, 그것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여 도움을 얻는 식일 거고.”

어차피 시스템과 내 대화를 몇 번이나 훔쳐보았으니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

다. 어느새 빛을 완전히 잃은 돌을 바라보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녀석이에요.”

내 말에 시스템이 기쁜 듯 대꾸해 왔다.

[(^U^)ノ]

하지만, 녹스는 달랐다.

늘 실실거리던 얼굴에 보기 드문 냉랭한 무표정이 어렸다. 놈이 고개를 삐딱

하게 꺾으며 내게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무렴 그쪽보다 나쁘겠습니까.”

“그건 너와 나의 뜻이 서로 상충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이야.”

녹스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장막처럼 드리워지며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꼬마. 넌 네 동료를 믿어?”

[o(TヘTo)]

[당신의 친절한 시스템!]

녹스와 내 얼굴 사이로 푸른빛이 일렁거렸다가, 그의 간섭 때문에 세차게 흔

들렸다.

“동료하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 그건 사람이 아니니까.”

“저랑 멀쩡히 대화도 하는데요.”

“인격의 흔적 정도는 남을 수 있어. 루키트도 그렇거든. 정확히 말하면 어떤

‘뜻’이나 ‘목적’만이 남은 거야. 나머지는 텅 비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마법사라 그런가, 하는 말들이 죄다 추상적이다. 내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대

답하자, 녹스가 기대도 안 했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게 온전한 사람이라거나 인격일 거라는 기대는 접으라는 뜻이야, 꼬마.

충고하건대, 진심으로 믿지는 마.”

“…….”

“간절한 마음은 먹이가 될 수 있거든. 점점 망가져서 위대한 뜻에 따라 휘둘

리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 거야.”

“당신처럼요?”

학구열에 미쳐서 인간성을 다 내버리고 영생을 손에 얻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괴물.

내 눈에 녹스는 딱 그렇게 보였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에 삼켜진 채로

주변을 끝없이 파괴하기만 한다.

하지만, 녹스는 내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보다는 ‘장의사’가 그렇지. 녀석은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이거든. 이젠 관

에서 나오지도 않아. 덕분에 다른 녀석이 일을 죄다 떠맡고 있는 형국이고.”

“…….”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겠지만, 그 이상은 안 돼. 아직 오늘 분의 질문을 하

지 않았으니, 세 개 정도는 대답해 줄 수 있겠네.”

녹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모쪼록 신중하게 골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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