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109화 (109/129)

109화. 햄스터로 마탑 치기 (5)

[✪ ω ✪]

‘신났네, 신났어.’

시스템은 그야말로 흥에 겨워 들썩거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그 질문을 하기

만을 기다린 것처럼.

이변 간섭률은 현재 약 15퍼센트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오래 간섭할 수는

없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완전히 훔쳐볼 수도 없다고 했지.’

그렇다면 녹스가 시스템에 간섭했을 때 글자가 깨졌던 것과 비슷한 원리일

것이다. 그래도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것보다 몇몇 단어라도 주워들으면 도움

이 될 테니까.

[몇 분 정도는 괜찮을 거예요. 연습하면 더 좋아질 거고요!]

연습까지 해야 하는 거냐. 그건 좀.

[제가 도와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ノシ]

의욕에 불타고 있네. 그래, 네가 행복하니 됐다.

그리고 카일은 내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얌전히 기다

렸다. 내가 종종 둘러대던 그 ‘절대자’의 존재가 궁금하고 미심쩍기는 한 모양

이었지만, 내가 먼저 설명하기 전에는 캐묻지 않으려고 꾹 참는 것 같았다.

“전하.”

어쩐지 미안해진 나는 그를 불렀다. 이어 침대에 올라오라고 말하자, 그가 무

장한 상태로 올라와 침대 헤드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앉아 내 어깨를 감쌌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네요.”

“유능하군.”

“가끔은 그래요. 네, 뭐. 제가 멍하니 있거나 혼잣말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

지 마시고요.”

“따지고 보면…….”

카일이 농담조로 말했다.

“네가 내 반려 마수라는 것만큼 이상한 건 없지 않나.”

하긴. 사람이었다가 햄스터였다가 하는 판국에 지금 다른 걸 따질 땐가? 일

리 있는 말이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몸에 힘을 빼고 그에게 기댔다.

“그럼 잠시만요.”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시스템에게 물었다.

‘조심해야 할 건 없어?’

조금 뒤, 시스템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키는 힘’을 ‘침투하는 힘’으로, ‘막는 힘’을 ‘연결하는 힘’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확인되지 않은 반동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람?

나는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거지?’

[물론입니다! 최소한의 방어는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영 미심쩍기는 하지만, 적어도 여태껏 시스템은 내 편이었다. 거짓말한 적은

없으니 그 점만큼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죽지 않는다면야. 그럼 됐지, 뭐.

[연결을 시도합니다.]

시스템 창이 꺼지자마자 눈앞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나는 조금 당황해서 눈

을 깜빡였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떠도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있었다. 카일이 내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그래서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내게 일어날 어떤 변화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쩌

면 그들도 ‘시스템’을 두고 대화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메신저처럼 쪽지

를 주고받는다거나.

“…….”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싸늘한 정적뿐이었다. 마치, 관처럼 비좁은 공

간에 갇힌 것처럼 숨이 턱 막혀 왔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가?’

내가 온종일 시스템과 대화하는 게 아닌 것처럼 그들도 항상 이야기하라는

법은 없었다.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긴 한데 앳된 소년의 비명에 더 가

까웠다.

“조심하세요!”

“……형! 뒤에!”

“아아악!”

이상했다. 누군가 내게 한 말 같았는데, 이건 어딘가에서 훔쳐 들은 소리보다

는…… 내 안에서 울려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건 마탑주 놈들의 대화가 아니다. 어딘가에 연결되었기 때문에 들려온 소

리가 아니라, 어떤 장벽을 넘지 못한 채 내 안에 갇혀 있던 기억이었다.

‘제기랄. 부작용 같은 거구나.’

아직 제대로 된 효과도 못 봤는데, 냅다 반동부터 오는 거냐고! 억울하다!

시스템에게 뭐라도 항의해 보려던 내가 뻣뻣하게 굳은 건 바로 그 무렵이었

다.

눈앞으로 몇 개의 장면이 빠르게 지나갔다. 무엇을 봤는지 알 듯 모를 듯 모

호했는데도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차갑게 식으며 벌벌 떨리기 시작

했다.

‘설마, 이거…….’

전신을 뒤덮는 한 쌍의 창백한 불빛, 경적처럼 울리는 소리, 그리고 전신을

뒤덮는 것 같은 아릿한 통증, 부유감, 아득해지는 감각…….

숨이 턱 막혔다.

내내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이 어떤 벽이 허물어진 틈을 타서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뜨겁게 끓는 대지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가, 또 반쯤 얼어붙은 바다에

빠져 버린 듯하기도 했다.

“그만해.”

누군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그건 정말 내게 건넨 말이었을까? 하염없이 멀게 들렸던 것도 같다. 마치 책

의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나는 눈을 힘껏 부릅떴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둠에 잠긴 거리, 길게 뻗어진 8차선 대로, 내게 달려오는 트럭과 누군가의

고함, 사람들의 비명,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 바닥을 긁고, 무언가 허공에 떠

올랐다가 가라앉는 감각까지.

“슈! 이제 그만해!”

막아 두었던 감각은 폭력에 가까울 정도로 난폭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

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버둥거리는 내 몸을 누군가 끌어안았다. 주먹을 휘둘렀던 것 같은데, 상대가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몸부림치는 나를 품에 가두듯이 당겨 안은 그가 내 이름

을 불렀다.

“슈.”

“…….”

“슈,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

가라앉았던 의식이 겨우 깨어났다.

카일이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내게 상체를 바짝 붙인 채 내 등과 허리

에 손을 얹고,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간절하게 이름을 불렀다.

“……헉.”

식은땀에 푹 젖은 내 손이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벌벌 떨리는 손 위로 그의

손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가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내 손을 말아 쥐고 속삭였

다.

“괜찮다. 너는 여기 있어. 살아 있고.”

“큭, 허억…… 헉, 흐…….”

“괜한 말을 했군. 이건 그만하는 게 좋겠어. 힘을 거둬라. 응?”

그가 다른 손으로 내 뺨을 쥐며 눈을 맞추었다. 흐릿해졌던 시야가 맑아지며

그의 얼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할 뻔했다. 어쩌면 자각

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망령, 거기…….]

그 순간, 낯선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가 뻣뻣하게 굳자, 카일은 내가 다시 아파하는 줄 알았는지 이를 악물며 내

몸을 더욱 단단히 붙들어 안았다.

이번엔 고통은 없었다. 잡음이 잔뜩 낀 사이로 낯선 이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

올 뿐이었다.

[……누구지?]

[바보…… 은 소리, 여기에…… 말고, 누가…….]

마법사단 놈들이다!

나는 재빨리 카일의 손을 쥐었다. 입을 벙긋거리다가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

어서, 그리고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서 꾹 다물

었다. 그리고 그의 손등에 재빨리 글씨를 써 보였다.

카일은 눈치 빠르게 옆 탁자에서 양피지 조각과 펜을 낚아채 내게 쥐여 주었

다.

[망령. 왜 이렇게 계획이…… 되는 거야? 시간이…….]

나는 소리 없이 입을 벙긋거렸다. ‘계획’, ‘시간’.

글로 옮겨 적으려고 했으나 정신이 분산되니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몇 번씩 헛손질하자, 카일이 깃펜을 가져가 자신이 받아 적기 시작했다.

큼직하고 따뜻한 손이 다가와 내 입가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입 모양을 읽겠

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의 손바닥에 입술을 묻은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곧 황제가…… 으로 갈 거야.]

이변 간섭률을 더 부지런히 올려 둘 걸 그랬다.

나는 ‘황제’라는 단어를 벙긋거렸다. 조금 놀랐는지 카일이 내 입술을 만지작

거렸다. 그는 내가 몇 번을 더 말해 준 뒤에야 재빨리 받아 적었다.

황제가 어디로 간다는 거지? 영지? 아니면, 다른 곳? ‘겨울의 심장’을 완성할

제물을 모으는 건가? 역시, 로렌츠를 말하는 거겠지.

속이 울렁거렸다. 연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작용이 엄청난 모양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속을 할퀴는 기분이라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카일이 나를 단단히 붙들어 안지 않았더라면 아마 볼썽사납게 쓰러졌을지도 모

른다.

그때, 메슥거림이 조금 줄어들면서 목소리가 조금씩 더 선명해졌다.

[‘하얀 망령’. 연구 성과는?]

[아직. 데려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어.]

[차라리 전부 녹여서 삼키는 건 어때? 네 전문이잖아.]

연신 벙긋거리며 최대한 온전히 대화를 전달하려던 내 입이 멈추었다. 돌연

오싹해졌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를 삼켜 버릴 것처럼 쳐다보던 녹스의 시선이, 정말로 통째로 먹어

치울까 고민했던 거였구나.

[캐낼 게 상당히 많아. 그쪽에 확실한 조력자가 있어. 우리처럼 루키트를 이

용하는 게 아니라, 분명 자아를 가진 것과 대화하고 있었어.]

[하지만 자아가 되살아나면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없어. 소리가 울리지 않는

다고. ‘장의사’가 어떤 마음으로 ‘공허한 넋’을 만들어 냈는지 잊은 거야?]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지!]

환희에 젖은 목소리가 신경질적인 여자의 말을 잘랐다.

[연구를 계속해. 원하는 건 뭐든지 지원하겠어. 바깥일은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내가 하면 돼. 북부 영지의 녀석이라고 했지? 황제는 설득하면 그만이잖

아!]

[……결국 그건 내 일이잖아.]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 익사체? 여의치 않으면 황제를 죽여 버리고 그 자리

에 앉자!]

대화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그들의 대화를 다 이해하기도 전에 녹스가 두

여인의 정신없는 대화를 끊었다.

[진정해. 나도 영원히 매달려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일주일 내로 해결한 뒤,

결과를 알려 줄게. 끌어들이든, 삼키든, 부수든.]

[알겠어. 기다릴게. 황제는 어떻게 할까?]

[참을성이 떨어질 것 같으면 당근을 하나 쥐여 줘. 그 정도면 되겠지.]

[좋아, 그럼 난 좀 자야겠어. 최근 이곳저곳을 나다녔더니 힘이 떨어졌거든.

새 황제 말이야, 귀찮을 정도로 꼼꼼하고 부지런하더라고. 쯧.]

마치 단체 통화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끝났다. 나는 여전히

꼼꼼히 내 입가를 만지작거리는 카일의 손바닥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만큼은 잘 들려서 다행이다. 슬슬 연결을 끊어야

겠지.’

그때, 내 앞으로 새파랗게 질린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꼬마〉의 궁금』증¿¿은 해결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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