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106화 (106/129)

106화. 햄스터로 마탑 치기 (2)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4일 남았습니다.]

습관처럼 카일의 안전을 확인하자마자 시스템 창에 심상치 않은 문구가 떠올

랐다.

아니, 분명 한 달 정도는 남지 않았어? 앞에 숫자 하나 떨어진 거 아니야? 다

어디 갔어?

실험대에 걸터앉은 내가 주먹을 꽉 쥐고 가만히 있자, 단안경을 콧잔등에 걸

친 녹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안색이 정말 좋지 않은데. 정말 이대로 실험을 계속해도 되는 거겠지?”

나는 그에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오늘은 뭘 할 겁니까?”

“꼬마, 네 힘에 간섭해 보려고 해.”

“그건 저보다는…… 다른 존재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안경알 너머로 눈동자가 가늘게 휘었다.

“네가 설득해야지. 안 그래?”

나는 그를 무시하며 시스템에게 물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카일의 남은 수명이 나흘이라는 건…….’

분명히 부정적인 소식이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예상 사망 시간이

야 지금까지처럼 바꿀 수도 있고, 실제로 몇 번이나 그렇게 해냈으니까.

‘오늘은 무사하다는 거지?’

한마디로 나흘 후에는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괜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질문하던 나는 잠시 멈칫했다.

기분 탓인가? 문득, 내 목소리가 어디론가 퍼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

로 말한 것도 아닌데, 그럴 수도 있나?

[돌발 행동을 하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시스템의 대답이 살짝 흔들렸다. 글자들이 제자리에서 잘게 요동쳤다가 제자

리를 찾아왔다.

……기분 탓이 아니구나!

[ヽ(≧□≦)ノ]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녹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신사적인 것 같

으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인상이 묻어났다.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거야. 나는 고개를 홱 돌리며 매정하게 말했다.

“또 멋대로 엿보셨죠? 아무래도 화가 나서 설득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애석하게 됐군. 최대한 기척을 줄이려고 노력했는데.”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확실히 저번처럼 글자가 깨지거나 이상한 기호가 생

기지는 않았으니까.

어쨌든, 당장은 카일이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시스템에게 카일의 예

상 사망 시간이 1일 아래로 내려가면 꼭 알려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내가 다른 일 하다가 깜빡 잊을 수도 있으니까. 네가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꼭 알려 줘. 중요한 거잖아.’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녹스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내 어깨를

쥐었다.

“자나 깨나 대공 전하 생각이군.”

어떻게 알았냐. 설마, 시스템이랑 대화하는 걸 훔쳐보면서…… 그쪽에 전달

되는 내 혼잣말도 듣는 건가?

앞으로 녹스 앞에서는 더 조심해야겠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

다.

“당연하죠, 애인인데. 그쪽은 소중한 사람도 없습니까?”

“글쎄, 있었지. 하지만 아무리 소중한들 찰나에 불과해서.”

놈이 권태감에 푹 잠긴 목소리로 대꾸했다.

“내게는 닿고 싶은 경지가 있어. 하지만, 인간의 몸은 지나치게 연약하지. 그

래서 나는 그 죽음조차도 극복할 생각이고.”

나는 몸을 움직여, 머리맡에 걸터앉은 녹스와 조금 거리를 벌리기 위해 주춤

주춤 물러났다.

그가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며 이어 말했다. 그건 오늘이 되었

으니 들려주기로 한 그의 비밀일 것이다.

“그래. 나는 이미 죽었어. 하지만, 이렇게 움직이고 있지. 이 지긋지긋한 죽

음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야. 가족을 먹어 치우든, 숱

한 땅을 죽음으로 몰아넣든. 내가 바라는 것을 거머쥘 수만 있다면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거든.”

그는 ‘서리의 중독’처럼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던 몇 세기 전의 마법사였을 것

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렇듯 제게 다가오는 죽음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

다.

하지만 녹스는 어째서인지 다시 살아났다. 그의 몫으로 준비된 수명은 이미

끝났는데도.

답이야 뻔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집어삼키며 살아왔겠지. 그의 말대로 가

족의 목숨마저도 그의 영생을 위해 이용당하는 거다.

‘겨울의 심장’.

그건 녹스를 위해 만들어지는 그의 목숨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는 영생을

살며 마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하는 거다.

‘그렇게까지 삶에 집착할 수도 있는 건가?’

사는 게 다 뭐라고. 알면 알수록 역겨운 인간이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와 한마디도 더 섞고 싶지 않았지만, 약속은 약속이

니 그가 꺼낸 것과 비슷한 수준의 내 비밀을 말해야 했다.

“저는…….”

뭘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로 왔죠. 그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녹스의 눈에 흥미가 어렸다. 마치 내게서 어떤 동질감 같은 걸 얻어 낸, 묘한

충족감 같은 것이 비쳤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 내가 재빨리 외쳤다.

“영원히 살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죽으면 허무하니까! 고생만 하다

가 덜컥 죽었다고 하면 누가 아, 네. 그렇습니까? 하겠냐고요.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노력해 보는 게 사람 마음이지.”

“허무해? 충격적인 게 아니라?”

“네, 뭐…….”

충격적일 게 뭐가 있나.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다. 이는 어떤 예외

도 없는 만국 공통의 운명이다.

사실 삶이나 죽음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이 구르는 삶이기는 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삶이었다. 나 하나 죽는다고 해서 진심으로 울어 줄 사람이 아무

리 생각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삶.

그럼 나는 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나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

만, 문득 목에서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이 정도도 충분하다. 자발적으로 더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녹스가 흥미로운 듯 곧장 질문에 들어갔다.

“그럼 지금 네 몸은 네가 살았다던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건가? 생김새가 상

당히 이국적이거든.”

“네.”

“한 번 죽음을 거부한 사람에게 두 번, 세 번을 거부하는 일은 쉬워. 오히려

번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죽음이 억울하게 느껴지지. 어때? 꼬마, 너

는 정말로 영원히 살 생각이 없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네. 영원히 살 생각 없어요.”

영원히 산다는 건 들을 때나 매혹적으로 느껴지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유한한 모든 것을 끝없이 잃는다는 뜻과 다르지 않으니까. 게다가 영원히 살

기 위해 다른 것들을 삼켜야 하는 거라면, 그런 민폐 덩어리 인생 따위는 공짜

로 준대도 사양이다.

당연히 진심이었으니 목에서는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렇지

도 않게 굴자, 녹스가 신기한 듯 고개를 까딱였다.

“용감하군. 그래, 죽음이 두렵지 않은 생명체라.”

그가 손을 뻗어 내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싸늘한 손을 타고 조금 빠르게 두근거리는 내 심장 박동이 흘러 들어갔다. 반

면 그의 심장은 나보다 훨씬 느리게, 아주 느긋하게 쉬는 사람처럼 뛰고 있었―.

‘……심장이 뛴다고? 왜?’

죽은 사람이잖아? 음식을 먹을 필요도, 숨을 쉴 필요도 없는 사람의 심장이

왜 뛰고 있지?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오늘의 몫으로 허용된 질문을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저야, 그 세계에서 죽을 뻔한 몸뚱이를 ‘불러오기’ 했다지만, 그쪽은 왜 심

장이 뜁니까?”

“심장 소리로 들려?”

녹스가 내 손을 가볍게 낚아채 자신의 가슴팍에 올렸다. 나지막하게 뛰는 소

리는…… 자세히 들어 보니 심장 소리라기보다는 시계태엽이 맞물리는 것 같은

소리에 더 가까웠다.

“겨울의 심장…….”

“그래. 불완전하긴 하지만 이 안에 있거든. 똑똑한 녀석을 싫어하지는 않으

니, 이건 보너스인 셈 치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다고 내가 고마워할 줄 아냐?

“그럼 그쪽 무리가 북부를 노리는 건, 정확히 따지면 북부의 땅을 노리는 게

아니라…… 북부 사람들의 생명이 필요한 거겠군요.”

“그래.”

다른 이들의 목숨을 잡아먹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심장이니까.

그러고 나니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북부에서 카일과 함께 서류를 살폈을

때, 분명히……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마인하르트 전역에서 이루어진 실종 사건. 로렌츠가 정식으로 황위에 오른,

석 달 전부터 일어난 일.

‘단체 실종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이쪽으로 보고가 들어올 정도면 규모가

상당할 정도다. 어떤 빈민촌은 마을의 흔적만 놔두고, 사람들만 모두 사라졌다

고도 하더군. 영지 업무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라 소식만 전해 듣는 것이 전부였

지만…….’

흔적만 놔두고 사라진 사람들.

‘원작에서의 블레이크 영지가 그랬겠구나!’

블레이크 대공작이 죽고,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워 보려고 노력하던 제

임스 러셀마저도 죽었다.

그 뒤로 마법사들을 막아서는 이들이 없어지다시피 하자 성은 텅 비고, 북부

는 몇십 년 전의 황무지로 돌아가 버렸다.

아무리 황량하고 차디찬 땅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살던 땅이다.

실제로 겪어 본 그곳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영주와 영주 대리가 죽었다는 이유로 삽시간에 그곳을 벗어났을

리가 없다.

벗어난 게 아니라, 사라진 거구나. ‘겨울의 심장’의 연구 재료로 쓰인 거다.

그놈의 영생이 뭐라고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지? 세상을 구할 필요는 없다지

만,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필요도 없는 거잖아.

나는 적대적인 시선으로 녹스를 쏘아보며 말했다. 마지막 질문이 내 입에서

차갑게 흘러나왔다.

“마인하르트 제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

“…….”

“그 배후가 그쪽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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