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햄스터 귀에 경 읽기 (3)
죽긴 누가 죽어!
상황인즉, 서재를 정리하러 들어온 하인이 내가 죽었다고 착각한 듯했다.
보아하니 그간 서재를 청소하는 김에 내가 배고플 게 걱정되어 먹이를 챙겨 주었는데, 먹이가 쌓이기만 할 뿐 조금도 줄어들지 않자 죽었다고 결론 내린 듯했다.
지금 나 역시 구석에 박힌 채 기척일랑 내지 않고, 그가 떠나길 기다리고 있으니 더더욱.
그는 맨손으로 차마 마수의 사체를 만지는 게 싫었는지 내 집을 통째로 흔들었다. 덕분에 물그릇에서 빠져나온 얼음이 날아와 내 얼굴을 철썩 때렸다.
―찌익! (아! 좀!)
내가 비명을 꽥 지르자, 집을 흔들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
“……뭐야, 며칠을 굶었는데 살아 있다고? 이게 말이 되나?”
내 불만스러운 시선이 향한 곳은 난리 통 속에서 내용물을 다 쏟아 버린 밥그릇이었다.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으라며 카일이 이것저것 넣어 두기는 했지만, 요즘은 인간으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서 손댈 일이 없었다.
‘이걸 확인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무래도 요즘 내가 너무 허술하게 지낸 모양이다. 나는 무안한 기분에 콧잔등을 긁었다.
하인이 다급히 방 안 불을 밝히곤 내 집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숨집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내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안도와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다. 집을 다 엎어 버렸네.”
그래. 남의 세간살이를 다 부숴 놨으면 미안해야 하는 게 맞지.
나는 아니꼬운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감정은 통한 건지, 한결 미안한 눈빛이 짙어졌다.
남자는 자리를 잡고 앉아 며칠쯤 지나 눅눅해진 견과류를 버리고, 새 물을 담아 준 뒤 톱밥마저 폭신폭신하게 깔아 주었다.
나는 눈치껏 그의 청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끄럼틀에 끼어 있다가 그가 사라진 뒤, 새로 놓인 캐슈넛 하나를 쥐어 입에 가져다 댔다.
―…….
북부대공의 반려 마수에게 주는 것이니,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급품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떨떠름하고 텁텁한 감각만이 혀 위에 감돌 뿐이었다. 한 입 만에 의욕을 잃은 나는, 캐슈넛을 대충 손에서 내려놓았다.
‘……빨리 와, 카일.’
보고 싶어.
*
그로부터 사흘 뒤, 카일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간 달리 할 일도 없이 하인이 가져다주는 견과류만 씹으며 시간을 녹이던 나는 그 소식에 벌떡 일어났다.
물론 지금 당장 나타나면 의심을 사겠지만, 뒤늦게 나타나도 사지 멀쩡하게 돌아온 이상 추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니까. 적당한 핑곗거리도 생각해 뒀다. 사실은 이런저런 이유를 다 차치하고서라도 카일이 보고 싶었다.
나는 하인이 나가자마자 ‘불러오기’를 하고는 인벤토리에서 따뜻한 망토를 꺼내 가볍게 둘렀다.
“으으음…….”
사소한 문제가 있었으나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야 했다. 나는 불편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무엇보다 카일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멀쩡하다고. 괜찮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네? 신광산은 영지에서 제법 멀잖아.”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그냥 다녀오기만 하셨어도 설명할 수 없는 속도야. 문제를 해결하셨다면 서둘러 돌아오실 필요가 없었을 텐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서 있던 나는,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카일 일행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았다. 성큼 앞으로 나선 내 몸을 서늘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북부라고는 해도 오늘따라 춥게 느껴졌다. 햄스터와 달리 두툼한 털 코트 같은 걸 걸치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건가. 그래도 여름인데.
내가 몸을 부르르 떨며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데, 얼굴을 알아본 영지민 몇이 다가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오, 마수학자님.”
“마중 나오셨습니까? 웬일로 이번에는 함께 안 가셨네요?”
“이봐, 마수학자님이 그런 험한 곳에 어떻게 가시나? 광부들 중에서도 억센 이들만 골라 데려갔는데도 돌아오고서는 다들 앓아누웠잖아.”
기사단 내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진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내 존재를 그리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사이, 말에서 내린 카일이 군중을 한차례 살폈다. 냉철해 보이면서도 간절함을 꾹꾹 담은 눈길이 우리를 훑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멋대로 시큰거렸다. 나는 금방이라도 인파를 헤치고 달려 나가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그를 불렀다.
“전하.”
그때, 거짓말처럼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먼 거리였다. 그러니만큼 그가 내 목소리를 들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기적처럼 맞물린 시선은 서로에게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카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울컥 치민 어떤 감정을 참는 것 같았다. 그는 제임스에게 무어라 말하더니 바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붉은 눈동자가 끓는 것 같았다.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가 꾹 다물렸다.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얌전히 서서 그가 내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카일이 내 몸을 당겨 안았다. 따뜻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가볍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겠어요.”
“상관없다.”
“북방의 패자가 비리비리한 사내 하나 때문에 속을 절절 끓인다는 소문이 퍼지면…….”
카일이 내 몸을 더욱 바짝 당겨 안으며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관없어.”
그가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불러오기’ 덕분에 언제든 한 번은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사이 녹스가 내게 몹쓸 짓이라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초조해하는 것이다.
그건 내가 다소 이기적인 방식으로 실감한 그의 애정이었다.
“잘 기다리고 있었다니 다행이다.”
“전 다행히 아닌 것 같은데요. 누가 이렇게 무리해서 돌아옵니까? 누구 죽일 일 있어요?”
“아무도 안 죽었다.”
“멀쩡한 거 확인하셨으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나는 카일의 어깨 너머로 기사들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토할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간신히 서 있었다. 앞에 서 있던 몇몇 기사들은 나를 보고 얼굴이 더 창백하게 질렸다.
이제 그만 떨어지시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그리고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내 처지를 열심히 변명해 주기도 해야 한다.
나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달래고자 했다. 하지만, 시도에서 그쳤다.
“……윽.”
“슈?”
돌연 팔꿈치 언저리에서 아릿한 통증이 일더니, 이내 어깻죽지까지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시리고 저린 감각이 뼈를 쿡쿡 찌르는 듯한 고통에 몸이 퍼뜩 굳고, 입에선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참을 새도 없이 튀어나온 반응에 당황하여 가만히 있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카일이 나를 품에서 떼어 냈다.
팔이 조금 불편했다. 기실 인간으로 ‘불러오기’ 하자마자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분명히 처음에 옷을 갈아입을 때는 팔을 오르내리는 게 조금 불편한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어깨 아래로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오른팔을 억지로나마 조금 더 움직여 보았지만, 얼어 버린 근육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만을 느낄 뿐이었다. 이마 위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그만.”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카일이 낮게 말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헐렁한 소매를 재빨리 걷어붙였다.
손목과 팔꿈치 사이로 파르스름하게 남은 자국이 보였다. 큼직한 손이 내 팔을 힘주어 쥐었다가 놓은 듯한 흔적은 얼핏 어떤 낙인처럼 보였다.
“서리의 낙인…….”
누가 남겼는지는 안 봐도 훤했다. 사라지기 직전, 녹스가 내게 낙인을 남겨 둔 것이다.
나를 추적하기 위해서?
혹은, 멀어지는 나를 해칠 요량으로?
이미 멀리 떨어진 이의 의도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건, 낙인의 진행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카일의 얼굴이 무시무시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내 내 왼쪽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마법사.”
“…….”
“영지의 모든 마법사를 불러와라!”
“전하, 일단 진정부터 하세요.”
내가 재빨리 멀쩡한 쪽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싸고 토닥였다.
“저, 아직 시간 많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괜찮다니까요.”
“이게 지금 괜찮은 사람의 팔인가?”
카일은 진심으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당장에라도 나를 들쳐 안고 성으로 올라가고 싶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꾹 참고 있는 듯했다.
“……말씨름할 필요는 없겠지. 우선, 성으로 간다. 이리 와.”
그는 습관적으로 내 어깨를 감싸려다가 혀를 차고는 팔을 뻗어 허리를 감아 바짝 당겼다.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그에게서는 가죽, 바람, 습한 흙과 얼음의 서늘한 냄새가 뒤섞여 풍겼다.
내가 얌전히 카일의 장단에 맞추려던 때였다.
“전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제임스가 딱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특유의 깐깐한 눈동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평소에도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눈길에 대고 비교하자면 이전은 온건하고 부드럽게 보일 정도였다.
그 정도로 지금의 그는…….
“마수학자를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제임스는 검을 뽑아냈다. 오는 길에 마수들을 만났는지 검붉은 피와 녹색 진액으로 찐득찐득하게 얼룩진 검을 내게 겨눈 채, 그가 적대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법사단 놈들과 내통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끌고 가서 추궁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검을 거둬라.”
카일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치우라고 했다, 제임스 러셀.”
“…….”
“부상자다. 팔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서리의 중독’에 당했고, 이대로라면 며칠 안에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카일의 목소리에는 고저가 없어서, 마치 지독하게 잔인한 단어로만 적어 내린 책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추궁하겠나?”
제임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 걸음 물러났다. 여전히 나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그가 카일의 선택과 명령을 어기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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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