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햄스터도 석 달이면 활을 쏜다 (3)
카일 블레이크는 이 땅의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는 신광산 탐사에 참여했던 광부들을 보살폈다. 마법사와 의사를 지원한 것은 물론이고, 칩거 중이라던 이의 자택까지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보고서의 내용대로였다. 그들의 증상은 ‘서리의 중독’과 일치했다.
다만 그간 보았던 중독 현상보다 더 심각했는데, 블레이크 성 소속 마법사는 그 원인이 시전자에게 있을 거라고 예측했다.
“최대한 조치해 두기는 했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낙인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는 일이 최선입니다.”
마법사는 자신의 무능함을 실토하는 것 같아 겸연쩍었는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했다.
그러나 카일은 그를 탓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저 마법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금 더 수고해 달라고 격려할 뿐이었다.
‘서리의 중독’. 당연히 금지된 마법이다. 원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마법에 당하게 되면 대상자의 몸에 푸른 낙인이 새겨진다.
그리고 이 낙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넓어지며 온몸에 냉기를 퍼뜨린다.
체온이 서서히 떨어지기 때문에 냉기가 퍼지는 동안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고, 종내엔 심장이 얼어 죽음에 이르고 마는 위험하고 악의적인 마법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금지된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이가 드물다는 점이었다.
또한 다른 이의 마력을 써서 몰아내면 낙인을 지울 수 있었기에, 제때 마법사의 치료를 받기만 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귀한 인력들까지 움직였건만, 누구도 그 낙인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다행히 더 악화하지 않게끔 막긴 했다지만, 이 마법이 시전자가 직접 나선 게 아니라 폭탄 속에 숨겨, 간접적으로 퍼뜨린 마법이라는 사실을 참고해서 판단하자면…….
“거물이 직접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겠군.”
카일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뒤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척에 카일이 고개를 까딱였다.
“제임스 경.”
제임스 러셀. 그와 더불어 블레이크 영지의 건립을 도운 인물로, 카일이 그를 마음 깊이 신뢰하여 블레이크 기사단의 단장직으로 직접 임명했었다.
“근처 치안에는 이상 없습니다. 성벽도 한 바퀴 둘러보았고요.”
“그래. 다행이군.”
“그나저나, 이 정도의 실력자가 갑자기 신광산 지대까지 내려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놈들과 우리가 이 차디찬 땅덩이를 두고 싸운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카일의 음성에 경멸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설산 지대도 이제 위험 구역으로 구분해야 할 거다. 당분간 사람들이 영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물자 보급 일정도 앞당기도록.”
“명을 받듭니다, 전하.”
“성으로 돌아가지.”
이번 신광산 폭발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마법사단의 선전 포고, 과시, 혹은 견제의 의도.
기실 그들이 이런 식으로 음험하게 구는 것이야 처음 있었던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기사나 병사가 아닌, 일반인에 가까운 광부들이 아닌가. 카일은 불쾌함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야 말았다.
갈 곳 없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일군 터전이다. 그러니만큼 그 땅의 주인인 카일이, 생명을 우습게 여기는 무법 지대 마법사들을 역겹게 여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아들은 잘 지내나?”
가라앉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카일이 화제를 돌렸다.
제임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겠습니까? 어디 보자…… 곧 열 살이 되겠군요. 누굴 더 닮았을지 궁금합니다.”
제임스는 농담처럼 몇 마디 덧붙이려다 그만두었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 때문인지, 핑계 같은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소식을 듣습니다.”
“상단과 정식으로 교역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수월해지겠지.”
러셀 자작가의 삼남인 제임스는 캐스터네츠 남작의 어린 여동생과 결혼해, 그 사이에 아들을 두었다. 그 덕에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도 블레이크 영지와 상단의 교역을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종종 내려가서 아버지 노릇도 좀 하고 오지.”
카일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권했다.
“아무리 캐스터네츠 남작가의 성씨를 잇게 하기로 했다지만, 아이가 외로워하겠어.”
“기사 단장 노릇은 어쩌고요. 매정한 말이겠지만…… 그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기사들을 위험하게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제임스는 카일만큼이나 블레이크 영지와 기사단에 강한 애착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의 좌천되다시피 북부로 떠밀려 왔지만, 어느새 소중한 터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저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법이기에 카일은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제임스와 가족들의 미묘한 어긋남이 언젠가 해소되기만을 바랐다.
“내일이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 나가다가, 성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출정 준비는?”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움직일 수 있게 조치를 끝냈습니다.”
제임스가 조금 고민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런데……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나를 걱정하는 기사가 있을 줄은.”
“아뇨, 그게 아니라. 마수학자님 말입니다.”
기사 단장의 신중한 음성이 이어졌다.
“여러모로 불분명하고 수상한 분이지만, 전하께서 신임하시는 것 같기에 그간 문제 삼은 적은 없었습니다. 영지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저희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고요.”
“그래.”
“하지만, 전하. 이번 일은 신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제임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이번 신광산 탐사는 단순한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 마법사와 접촉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전투 또한 불가피하다.
슈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기사단과 함께할 만한 실력은 아니다. 기껏해야 견습 기사 정도의 실력으로, 위급할 때 전력이 되는 게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쪽에 속한다.
제임스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 건, 카일의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전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습니다.”
“……확실히 그렇지.”
카일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슈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탐사대에 합류하는 일을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전력을 잘못 평가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잃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카일은 슈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가 보여 준 증명이 충분해서는 아니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카일이 단호하게 말했다.
슈에게는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했다. 마수로 변하거나, 특별한 기능을 가진 간식거리, 또는 마수의 핵을 구분하는 눈이나 이따금 사용하는 푸른 방어 마법 같은 것이 그 예시였다.
다만, 제임스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슈의 능력이 이용당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한 걸음 떨어져서 걷던 제임스는 카일의 표정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신은 모르는 특별한 능력이 슈에게 있을 것이다. 혹은, 카일이 어떻게든 그를 보호할 생각이겠지.
어느 쪽이든 주군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제임스는 걱정을 애써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밀어 두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지?”
“정규 훈련 중일 겁니다. 슬슬 끝날 시간이겠군요. 보러 가시겠습니까?”
카일은 슈를 특별하게 여긴다. 그러니, 당연히 그러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제임스의 예상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괜찮다.”
“……예?”
“연무장을 둘러볼 거라면, 그 녀석에게 끝나는 대로 올라오라고 말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로…….”
무얼 더 물어보기도 전에 카일이 빠르게 앞서 나갔다. 그는 계단을 두어 개씩 성큼성큼 올라, 순식간에 제임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으신 건가?”
기사 단장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연무장으로 가서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기사들을 살폈다.
제임스는 그 사이에서 유독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청년을 발견하곤,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슈 님.”
“……아, 기사 단장님. 훈련 중에는 편하게 말씀하세요.”
오랜 시간 동안 기초 훈련을 받아 온 기사들과 달리, 근육이 단단히 잡히지 않은 몸이었다. 훈련이 버겁게 느껴질 만도 하건만, 슈는 입을 꾹 다물고 불평을 참고 있었다.
“대공 전하께서 찾으셨다.”
“그래요? 성 밖으로 나가신다더니.”
“방금 돌아오셨다.”
“어디로 오라는 말씀은요?”
“없었다만…….”
슈는 짐작 가는 곳이 있는지,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대체 대낮부터…… 아, 해 다 졌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것 같으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푹 쉬도록. 내일부터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까.”
“그럼요.”
슈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발을 끌며 연무장을 나갔다.
아무리 봐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든 견뎌 내는 꼴이 퍽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둘만의 밀회 장소라도 따로 있는 건가? 어디로 오라고 말도 전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 건지.
제임스는 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대체…… 두 분은 무슨 사이지?’
*
“흐아…….”
나는 비척비척 계단을 오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인가 실컷 헛돌며 시간을 낭비한 뒤로, 카일은 나를 부를 때 위치를 정확히 지정하는 편이었다.
대개 서재에서 만났는데, 오늘은 서재로 오라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이야 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당히 서재로 부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침실로 부른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허공에 팔을 흔들며 분개하자, 눈앞으로 푸른색 시스템 창이 하나 떠올랐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요! (/▽\)]
“아악!”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분개했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카일 블레이크의 침실을 향해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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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