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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80화 (80/129)

80화. 햄스터도 석 달이면 활을 쏜다 (2)

내 허리를 당겨 안은 채 얼굴을 살피던 카일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불가능해. 삼림 지대 중에서도 깊은 곳이다. 저번에 너와 함께 갔던 곳과는 차원이 달라.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너를 위험한 곳에 데려가고 싶지 않다.”

“위험한 곳?”

“그래.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해 주고 있다. 업무도 상당히 많이 도와주고 있지. 그러니, 이번 탐사에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 안전한 곳에 있어.”

그 말은 내게 어떤 무력감마저 주었다.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며 그의 부고를 얌전히 듣기라도 하란 말인가?

“저를 좋아하니까 안전한 곳에만 두고 싶다고요? 귀중품처럼 아껴 주면서?”

나는 카일의 팔을 붙잡고 날카롭게 물었다.

감정적인 반응인 건 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가야 한다. 이대로 보낸다면 그가 예정대로 죽게 되니까.

알고 있다.

그가 보기에는 그저 객기에 불과하겠지. 그러니 침착하게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정심을 찾기 어려웠다. 심장이 불쾌할 정도로 쿵쿵 뛰어 댔다.

“그게 이상한가?”

카일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물었다.

나는 입을 잠시 다물었다가 손을 조금 내려 그의 손등 위에 포갰다. 그렇게 심호흡한 뒤, 떨림을 최대한 잠재우며 말했다.

“당연히 이상하죠. 사냥도 같이 갔던 사인데.”

“그래. 그러니까 더욱 그렇다.”

카일이 마치 그때의 제 선택을 후회한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거기서 네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끔찍한 경험이었지. 또다시 너를 그런 식으로 사지로 내몰고 싶지 않다. 널 좋아하니까, 보호하고 싶은 건 당연해.”

“그건 보호가 아닙니다.”

“…….”

“그건 그저 전하의 운명은 물론이고, 제 운명까지 전하가 혼자 책임진다는 뜻이잖아요.”

목소리에 묻어나는 속상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일그러지는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동체라고 했으면서, 전하 혼자 다 하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저는 그럼 전하의 등에 업힌 수많은 짐과 의무와 무엇이 다르죠?”

그걸 공동체라고 부르면 안 되지. 나는 적어도 그에게 업혀서, 그의 능력에 기대서 살아남고 싶지 않다.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증명이 필요하다면, 증명하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대화가 조금 컸는지, 훈련을 마친 기사들이 웅성거리며 계단 쪽으로 다가왔다.

카일이 목소리를 낮추며 빠르게 속삭였다.

“따로 이야기하지.”

“아뇨, 여기서 대답해 주세요.”

“슈.”

“제가 제 몸 하나 못 지킬 것 같으면 두고 가셔도 됩니다.”

“…….”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그의 말이 옳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 속에 몸을 내던지는 건 미련한 짓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 혼자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려 했던 그까지 죽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치열하게 연습했다. 그의 일을 돕는 것만큼이나 그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

물론 카일의 눈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적어도 석 달 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해졌다.

“전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을 읽었기 때문일까? 카일은 결국 알았다고 대답한 뒤, 조금 골이 난 얼굴로 내 손을 붙잡았다.

“……알겠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마.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버티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 침실로 향했다.

끼익, 하는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침대에 앉아 나를 무릎 위에 올린 그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며 속삭였다.

“이번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테지?”

“네.”

“…….”

“제가 야속하세요?”

얼굴은 그래 죽겠다는 표정인데 결국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설핏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말대로 네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건 나의 이기심이다. 네가 내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도 말이 안 돼.”

“…….”

“하지만, 네 말대로 증명은 필요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끈기 하나는 제가 또 알아줄 만하잖아요.”

“그래서 걱정이라는 거지.”

한탄하듯 말한 그가 나를 보며 불퉁한 얼굴을 했다. 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그의 뺨을 다정하게 매만졌다.

“전하 입장에서는 제가 많이 약해 보인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약하다고 손 놓고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요.”

“……그래.”

“그러니, 믿어 주세요. 반려 안 믿으면 누굴 믿으려고?”

너스레에 낮게 웃은 그가 내 허리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얼떨결에 끌려간 나는 그가 내 가슴팍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히 감싸 안았다.

‘불러오기’는 앞으로 삼십 분 정도 남았다. 그러니까, 종일 바쁘게 움직인 내 운명 공동체에게 잠깐의 휴식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d=====( ̄/// ̄*)b]

물론, 그런 와중에도 주책맞게 뜬 시스템을 밀어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

이튿날.

‘불러오기’ 후 그를 만난 곳은 대여섯 개의 과녁이 길게 늘어져 있는 연무장의 구석이었다.

나는 너무 많이 당겨 너덜너덜해진 활을 쥐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시원한 바람이 날아와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지만, 시선만큼은 계속 과녁을 향한 채다.

곧 손가락 끝에 걸린 시위를 놓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 뒤로 날카로운 촉이 나무판자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맞았다. 그러나, 중앙은 아니었다. 만약 저것이 과녁이 아니라 마수였다면 단번에 숨통을 끊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책이 내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다.

나는 깊게 심호흡한 뒤, 다시 시위를 당긴 채로 정신을 집중했다. 목표가 오롯이 한 점으로 모아질 때까지.

퉁. 다시 쏘아진 화살이 이번에는 정확히 중심을 꿰뚫었다.

한 발 더, 그리고 다시 한 발 더.

여덟 발 중 일곱 발이 과녁의 중심에 날아가 꽂혔다. 처음 활을 쥐었을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후우.”

그렇게 내가 아홉 번째 화살을 막 쏘았을 때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카일이 마법사에게 무어라 지시하더니, 이내 가만히 있던 과녁들이 불규칙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

중앙을 겨냥한 채 쏘았던 화살이 과녁의 끄트머리를 꿰뚫었다. 나는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가 카일을 바라보며 불만을 표했다.

“너무하잖아요!”

“그럼, 마수들이 활시위를 당길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줄 것 같았나?”

“…….”

“그래도 확실히 노력했군. 움직이는 과녁에 맞추기는 했으니까. 중앙은 아니라도.”

마지막 말이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내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열 번째 화살을 쥔 나는 어느 때보다도 팽팽하게 시위를 당겼다.

열의에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과녁만을 노려보고 있는데,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것이 어느 순간 뚝 멈추었다. 심지어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멈추어서일까? 마지막 과녁은 이전보다 가까워져 있었다.

‘이 정도면 한쪽 눈 감고도 맞춘다.’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다시 과녁의 붉은 부분으로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시위를 쥔 손에 힘을 풀려고 할 때.

“잠, 잠깐만!”

카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과녁의 근처까지 걸어왔다. 깜짝 놀란 나는 그대로 화살을 놓치고 말았다.

쐐애액! 화살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내가 카일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한데 뒤엉켜 요란한 소음을 만들었다.

동시에 검집에서 검이 뽑혀 나오면서, 카일은 제게 날아오는 화살을 가볍게 쳐 냈다.

나는 활을 놓고 서둘러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데 과녁에 다가가면 어떡합니까?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아군을 잡은 적을 쏘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건.”

“실력이 늘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마. 확실히 너는 성장이 빠르고, 네 활 솜씨는 정교한 편이다. 근력이 자라고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다면 어쩌면 기사단 입단도 노릴 수 있을 만큼.”

“…….”

“하지만, 슈. 내가 너를 데려가고자 하는 곳은 새로 깎아 만든 연무장 따위가 아니다. 실전은 현실과 달라.”

말의 내용은 단단했고, 그만큼 냉철했다.

블레이크 기사단의 단장이자 한 영지를 이끄는 카일 블레이크로서의 충고. 더없이 이성적이고 정론에 가까운 말이었다.

평소였으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아니, 바깥에서 그저 활자를 읽는 독자였으면 분명 그의 판단에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내 삶이었다. 벨리알도 센도 카일도 전부 각자의 삶이 있듯이, 이건 배수현이자 슈인 내 삶이었다.

“그럼, 다 벼려질 때까지 기다리실래요?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요. 일 년? 십 년? 이십 년? 전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뒤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하는 건 싫어요.”

“…….”

“저는…… 정쟁 때와 비슷한 순간이 찾아오면, 이젠 선택할 겁니다.”

그때는 선택하지 못했다.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이 현실이 아닌, 소설 속 세계라는 핑계를 대며 회피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곳은 그저 내가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치는 단순한 과정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이곳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카일을 좋아했으며, 그들의 동료가 되어 직접 지켜 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포기할 수 없다.

카일은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내 눈동자에 서린 결심을 낱낱이 읽어 내려는 듯 빤히 응시하던 그가, 이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알고 있다. 이건 카일의 뜻이 아니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싶은 만큼, 그는 나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카일의 전부가 아니다. 그는 나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만큼 내 뜻을 존중하고 싶어 한다.

“기사들은 듣도록.”

곧, 카일의 선언이 이어졌다.

“열흘 뒤, 북부 신광산 조사에 슈가 함께한다. 기사단 소속 궁수들에게 주는 보급품을 준비하고, 공동 훈련에 참여시키도록 해라. 이상!”

연무장 전체가 울릴 만큼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대공 전하의 명을 받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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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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