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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69화 (69/129)

69화. 햄스터도 두드려 보고 지나가라 (3)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물론 그것도 맞다. 그가 약하기 때문에, 그것도 맞았다. 어디에서 왔든, 언제 돌아갈 예정이든, 그가 지금 블레이크 영지의 사람이며 제가 아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 어깨를 꿰뚫릴 수도 있는 상황 앞에서도 카일 블레이크는 비켜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서는 안 되니까. 검을 고쳐 잡을 것도 없이 몸을 훌쩍 날려 피하기만 하면, 어깨든 목덜미든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괴조가 날개를 접고 날아드는 일직선의 궤적, 그 끝에는 슈와 센이 있었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두 사람은 반드시 부상당한다.

카일이 그 꼴을 두고 볼 리 없었다.

‘네 목숨 정도는 책임질 수 있다.’

아니, 책임져야만 했다.

카일은 의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슈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이 사지에 발을 들였다.

그러니 지켜 내야지.

그 정도 각오는 숲에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끝냈다. 심지어는 이 책임감이 기껍게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제 어깨를 내주고 슈의 목숨을 구한다.

카일은 왼쪽 어깨를 앞으로 내밀며 몸의 중심을 가볍게 반대로 실었다. 검으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면 제법 남는 장사다.

하지만 예상했던 부상은 없었다. 그의 몸은 멀쩡했다. 오히려 다친 건 독수리 쪽이었다.

무언가 푸른빛이 지척에서 터졌다. 어떤 예고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무언가에 호되게 부딪혀 날아간 괴조는 비명 한번 제대로 내지르지 못한 채 벨리알의 손에 숨통이 끊어졌다. 슈가 미리 알려 준 핵의 위치, 꽁지깃 쪽에서 심장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칼로 깔끔하게 베어 내 버린 것이다.

우우웅.

카일은 문득 제 손목에서 울리는 어떤 힘을 느꼈다. 그는 검을 들지 않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냥 부적 삼아 하나 가지고 계세요. 제 팔찌랑 비슷하잖습니까?’

그건 슈가 선물한 팔찌였다. 투박한 가죽끈에 매달린 작고 푸른 보석이 어떤 현상에 반응하기라도 한 것처럼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허.”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또한 그 녀석의 소행이겠지.

항상 이런 식이다. 놀라운 것을 넘어 터무니없고, 황당하게마저 느껴지는 일의 끝에는 언제나 슈가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돌연 개체마다 다른 핵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 주더니, 이젠 제게 가해질 공격마저 막아 낸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어느새 자리를 이탈해 말끔하게 숨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이다.

“또 어디로 간 건지.”

영리한 슈라면 어떻게 했을까. 카일은 퍽 유쾌해진 기분으로 그의 심산을 짐작해 보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 자신이 저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약점이 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겠지.

‘그렇다면, 햄스터로 돌아갔겠군.’

카일은 고개를 주억였다.

활을 쏘았다가는 아군이 다칠 테니 함부로 손을 보태지 않는다. 대신, 약점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몸을 숨기며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부피가 작으면 몸을 숨기기가 수월해질 테니, 굳이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멀리 가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카일의 안위를 제 목숨처럼 챙기는 녀석이니까. 마수의 공격은 막을 수 있되, 시선이 가로막히지 않는 곳에 숨어 있겠지.

그렇다면, 역시.

“슈, 이리 와.”

카일은 웃자란 풀 사이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후, 손바닥을 내밀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이에 살짝 숨어 있던 그의 반려 마수가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곤 파란 눈을 반짝이며 올려다보고 있었다.

―찍.

무어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답에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이제 괜찮다. 곧 해가 질 테니, 쉬러 가자꾸나.”

그리하여 자신이 책임지겠노라 기껍게 다짐한 그 작은 생명이, 그의 손바닥 위로 걸어 올라왔다.

*

그렇게 숲에서의 하루가 지났다.

독특한 건, 카일이 나무 위에서 야영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불을 피우거나 침낭을 펴지 않았다. 그 대신, 내게 불편할 테니 햄스터로 밤을 보내는 게 나을 거라고 했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약 161일 남았습니다.]

[카일 제일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약 1일 남았습니다.]

그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채 검을 쥐고 선잠을 청했다. 밧줄로 제 몸을 묶었으면 조금 더 깊이 잘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가는 습격에 곧장 대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의 앞주머니에 들어간 채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찍. (이게 정말 더 안전한 방법이야?)

알아들을 리 없었지만, 감정은 전해진 모양이었다. 카일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렌츠는 반드시 밤을 노려 습격할 것이다. 마수 사냥으로 지쳐 있으니, 적당한 곳에 터를 잡고 휴식할 거라고 생각하겠지. 특히,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너와 센이 있으니까.”

―찍. (그러네.)

“이럴 때 모여 있는 건 도움이 안 된다. 목표를 얌전히 모아 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날이 밝으면 합류하는 쪽이 나아.”

듣고 보니 그렇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일이 어렴풋이 웃으며 대답을 이어 갔다.

“긴장이 느슨해지는 순간만큼 숨통을 끊기 좋은 때가 없지. 내일부터는 숲 곳곳에 함정을 설치하고 우리가 걸려 들기만을 기다릴 거다.”

―…….

“방식은 상관없을 거다. 어쨌든, 죽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그 말은 조금 섬뜩하게 들렸다.

권력은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아니, 사람을 본인의 본성에 솔직해지도록 만든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평생 함께 살았던 형제도 예외는 없었다.

굶어 죽느니 제 몸집보다 더 큰 것을 꾸역꾸역 삼키다가 배가 터져 죽는 게 낫다는 걸까. 여전히 사람은 어렵다. 썩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악인의 상황을 이해해서 어디에 쓰려고.

나는 본능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짐승이 다른 이유는, 결국 본능과 욕망을 억눌러서라도 지키거나 이루고 싶은 어떤 가치를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카일이 이겼으면 좋겠다. 벨리알이나 로렌츠가 아니라, 꼭 카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는 적어도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잊지 않을 테니까.

―찌……. (어쩌다가…….)

그래. 정말 어쩌다가 이 이야기에 진심이 되어 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는 내 한탄을 피곤하다고 투정하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조금 눈 붙이거라.”

카일이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지켜 줄 테니.”

신기했다. 그 말에 날카롭게 벼려 두었던 긴장감이 허물어지면서 그에게 기대게 되었으니까. 느리게 뛰는 심장에, 선명한 체온에, 그리고 여과 없이 와 닿는 다정함이 마냥 좋았다.

‘뭐, 어쨌든 자 둬야지.’

내일도 그를 도와야 할 테니까. 무력하게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적의 급소를 알려 주고 필요할 때 보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욕이 났다.

그렇게 가물가물 내려앉던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의 품을 파고들 때였다.

“잠시.”

안온했던 분위기가 깨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카일이 나를 나뭇가지 위에 내려 두더니 빠르게 속삭였다.

“절대 이곳에서 움직이지 마라.”

그러더니 검을 쥔 채 그대로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게 아닌가.

카일은 검을 뽑아 든 채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을 불렀다. 순식간에 나타난 두 사람 역시 카일처럼 검을 뽑아 들고 좌우를 지켰다.

선명하게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그들은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접근하게 두지 않겠다는 듯 몸을 붙이고, 기척이 느껴졌던 수풀 근처로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오든 찔러 죽이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나왔을 때.

“…….”

카일은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 역시 긴 검을 휘둘렀고, 허공에서 날붙이가 맞부딪치는 예리한 소리가 울렸다.

검과 검이다. 즉, 어둠 속에서 나타난 건 마수나 짐승 따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와라.”

카일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답 대신 어둠 속에서 인영이 걸어 나왔다. 쏟아지는 창백한 달빛을 받은 이는…….

“벨리알 황자.”

카일은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차례대로 나타난 이는 벨리알, 그리고 그가 데리고 다니는 측근 기사 세 명, 그리고 단도를 곧게 든 센이었다.

“하루도 기다리지 못해서 등에 칼을 꽂으러 왔다, 이건가?”

“……허, 내가 할 말을 가로채는 걸 보니 그 뻔뻔함에 기가 차는군. 하긴, 여기서 나와 형님이 공멸한다면 누가 가장 이득이겠나? 내가 야수에게 등을 맡겼지.”

벨리알이 노기 가득한 음성으로 비아냥거렸다. 그의 주변으로 바짝 붙은 기사들 역시 블레이크 기사단의 기사들처럼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군끼리 목에 날붙이를 들이미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조금 당황한 시선으로 센을 바라보았다. 그녀라도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장 단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왜 우리를 습격하려 한 거지?”

“그런 적 없다.”

카일이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우린 이 근처에서 이탈한 적이 없다. 이 상황에서 동료를 배신해서 얻는 게 무엇이지?”

“공멸.”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그래서, 습격을 당했다는 증거는?”

“이 방향에서 작은 칼이 날아왔다. 살의가 담겨 있었다는 건 일곱 살짜리가 와도 알 수 있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라고 의심했다고.”

“아니지. 정확히는 습격한 이를 찾아오는 길에 대공을 만났다는 쪽이 정확하겠군.”

카일의 시선이 벨리알과 센, 그리고 그 주변을 호위하듯 둘러싼 세 명의 기사에게 향했다.

잠시 사람 수를 헤아리던 카일이 상황을 파악한 듯 침통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런 멍청한…….”

“…….”

“부상자.”

분노와 절망이 끓는 목소리로 카일이 말했다.

“……아까 전투로 어깨를 다친 기사는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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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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