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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58화 (5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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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빼도 박도 못하게 들켜 버렸다.

문가에 선 카일은 나를, 그리고 센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방금, 슈라고…….”

“…….”

센이 당황하며 둘러댔다.

“캐, 캐슈넛! 캐슈넛이라고 한 거예요. 캐슈넛이 재롱을 부리길래 귀여워서!”

카일의 붉은 눈동자가 다시금 내 모습을 담았다. 나는 두 팔에 호두 연고를 치덕치덕 묻힌 채 센의 손바닥에 앉아 있었다.

“햄스터가 되면, 이라고 말한 걸 들었다.”

“…….”

“슈는 어디에 있지?”

카일이 재차 물었다.

둘러댈 말이 없었다. 이 난장판에 밖으로 나갔다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거짓말하자니 이 상황을 모면하겠다고 그를 걱정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센의 눈길에 체념이 어렸다.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센에게 들킨 이상, 카일에게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언제든 일어날 일이었겠지만…….

나는 센에게 고개를 천천히 저어 보였다.

―찌익. (됐어.)

내가 설명해야 했다. 중요한 일인 만큼,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센은 눈치가 빨랐다. 그녀가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을 좀 빌릴게. 전하와 이야기하고 와.”

―…….

“……헉, 미안.”

카일이 눈썹을 삐딱하게 들어 올리자 센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여지없이 이 햄스터가 바로 슈입니다, 하고 증명한 꼴이었다.

“데려가마.”

카일이 내게 성큼 다가왔다.

처음으로 그늘진 그의 얼굴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

나는 카일에게 뒷덜미를 붙잡힌 채 그의 침실까지 왔다.

아무리 의심스럽다지만 사람을…… 아니, 네 반려 마수를 이런 식으로 들고 가는 게 어디 있어? 금이야 옥이야 품고 다닐 때는 언제고, 변신 쇼 한번 했다고 취급이 확 변했네.

―찍. (에휴.)

나는 한숨을 내쉬고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믿지 않는다기보다는 믿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다. 나를 마법사로 의심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이해하지만, 서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솔직히 말하려고 했으나,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비밀을 토로하기에는 최악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카일에게도 영 좋지 않은 시기였다. 오는 길에 만난 마법사 때문에 서리의 마탑 쪽에서 이상한 동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쯤 그는 생각이 많을 거다. 내가 자신을 속였다는 생각도, 어째서 접근했냐는 생각도.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하나.

갑작스럽게 끝나 버린 여름 방학에 덩그러니 숙제만 남아 버린 기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울적했다.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카일이 나를 침대에 내려놓곤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지. 아니어야지. 그건 말이 안 안 되잖나, 캐슈넛.”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햄스터의 모습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었대도 그의 저 얼굴과 목소리를 앞에 뒀다면 어떤 말도 못 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무심코 아니라고 말해 버렸을지도.

“……나는 너를 믿는다, 슈.”

그가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고 신중한 목소리였다.

“나를 해칠 목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닐 테지. 나와 블레이크 영지는 몇 번이나 너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카일의 눈빛이 일순 따뜻해졌다. 기분 좋은 기억이라도 떠올린 사람처럼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덩달아 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래. 그러니 네 사정을 듣는 것이 순서겠지. 비밀로 했던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

―…….

“그러니 부디 이대로 사라지지 말고, 내게 말해다오.”

두 손을 내 앞에 모은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작디작은 몸을 그에게 붙었다. 도망가지 않을 거라고, 이젠 모든 걸 설명해 주겠다고.

시간이 흘렀다. 내가 시계를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젓자, 그는 용케 뜻을 알아차렸다.

다시 인간이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한 카일은 기사단을 불러 바깥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벨리알이 센을 보호하고 있다더군. 황성은 아직 전반적으로 비상사태다.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바깥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 내가 동행할 수 없을 때는 블레이크 기사단과 움직여라.”

―찍. (네.)

“죄는 주례였던 체스틸 남작이 뒤집어썼다더군.”

지하 감옥으로 이송된 남작이 별안간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카일의 얼굴에는 그 어떤 동정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차가운 눈빛인 걸로 보아, 그 의문스러운 죽음 뒤에 마법사단이 있을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찌찍. (안 나가 보셔도 됩니까?)

당연히 그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기에, 나는 문가를 마구 손짓했다.

“괜찮다. 지금은 너에 관한 일이 더 중요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법사들에 대한 단서를 찾았으니 직접 알아보고 싶을 법도 한데. 그는 저 대신 기사들을 보내고 아침까지 내 곁에 있는 것을 선택했다.

검을 안은 채로 바닥에 걸터앉은 카일과 내 눈높이는 얼추 비슷했다. 그 덕분에 수많은 감정으로 넘실거리는 그의 시선이 내게 고스란히 쏟아졌다.

그 덕분에 시간이 멈춘 건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소거되고 나와 그만 남은 게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쯔하아암.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이 남았으니, 눈 좀 붙여라.”

그럼, 사양 않고.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고개를 단단한 손이 다가와 익숙하게 받쳤다.

따뜻한 피부밑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이 들리는 것 같아서, 나는 그대로 단잠을 청했다.

*

여섯 시 정각이 되자마자 나는 ‘불러오기’를 사용했다. 느슨하게 기댄 채로 나를 바라보던 카일은 내 작은 몸이 빛에 휩싸이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

미안하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불러오기’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카일이 떠 준 옷 덕에 알몸 신세는 면했다지만, 그래도 딸기 무늬 스웨터 하나만 덜렁 걸친 채로 태연하게 나타날 자신이 없었다.

미리 봐 둔 칸막이 너머로 몸을 피한 내가 머뭇거리며 카일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 옷 좀 빌려주시면…….”

하지만 대답 대신 팔이 먼저 불쑥 뻗어져 나왔다. 그가 내 손목을 쥐더니 홱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우뚱, 앞으로 기울어지자 그는 익숙하게 허리를 받쳐 내 몸을 받아 안았다.

“……슈.”

캐슈넛이 사라지자마자 내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고, 내 차림새…… 에 또 놀란 듯했다.

“……옷 좀 달라니까요.”

멍하니 나를 보던 그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럼, 캐스터네츠 상단에 나타났다던 변태가…….”

“입을 옷이 없는데 어쩌라고요! 또 변태랍니까? 미치겠네!”

내가 버럭 외치자, 카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푸훗.”

“…….”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하, 하하. 아하하.”

“……웃깁니까? 이 꼴을 보고 웃음이 나와요? 스웨터 하나 덜렁 입은 당신 햄스터를 보고도 웃을 생각이 든다고요?”

내가 핀잔하자, 이제 카일은 본격적으로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하하, 풋, 아하하, 미안, 미안하다. 근데 그…… 하하, 그 모습이, 정말…….”

“와, 사람 면전에 대고 이렇게 비웃기까지 하고.”

“아하하.”

그래도 이렇게 크게 소리 내어 웃는 건 처음 본다. 내내 시름에 잠겨 있던 얼굴이 그나마 밝아져서, 더 타박하기도 무안해졌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졌군.”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사선으로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제대로 약도 바르지 않아 피딱지만 겨우 앉았는데, 아마 작은 칼에 베여서 생겨난 듯했다.

“뭐가 그렇게 심각해서 상처를 그냥 놔둡니까? 덧나면 어쩌려고.”

잘생긴 얼굴 막 쓰지 말라고 구박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카일이 웃음을 참았는지 입술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저번에도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다시 이야기하자면 저, 마법사 아닙니다. 전하 편인 것도 맞고요. 그냥 좀, 설명하기 복잡한데…… 재수가 없어서 마수가 됐습니다.”

“…….”

별안간 카일이 손을 내밀어 내 양 뺨을 쥐었다. 그러고는 빤히 들여다보았다. 붉은 눈동자에 내 얼굴이 오롯하게 맺혔다.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집요하리만치 또렷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다시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바라볼 수는 없겠다는 느낌이 들 만큼.

“그래.”

한참의 침묵 후에 그가 대답했다. 낮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널 믿는다.”

“…….”

“네가 내 아군이라는 것. 우리가 운명 공동체로 묶여 있다는 것. 그리하여 네가 기적처럼 내게 왔다는 것, 모두.”

내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카일의 상처 부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말하려고 했어요. 다만, 워낙 황당한 일이다 보니 전하께서 제 말을 믿을지 알 수 없었어요. 설득할 자신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수상하게 여길 것 같기도 했고.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초지종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센은 알고 있던데.”

“들킨 지 며칠 안 됐어요. 티파티 때 들켰거든요. 그것도 말하자면 좀 길어요.”

“전부 이야기해다오. 들을 수 있어.”

“저, 말재주 없어서 횡설수설할 수도 있는데요.”

“상관없다.”

카일이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콩, 작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이마가 내 이마에 닿았다.

“상관없어, 정말로.”

그건 카일이 어렵게 꺼낸, 그의 진심이었다.

“네가 무엇이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

“곁에 있기만 해라. 사라지지 말고.”

그래서 나 또한 홀린 듯 그의 마음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전하 곁이 아니면 어디 있겠습니까?”

“…….”

“당신의 반려잖아요.”

그러자, 카일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진심으로 기뻐 보여서, 그 작은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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