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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50화 (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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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전신의 피가 싸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센을 바라보면서 캐슈넛이 사라졌어, 라는 여덟 글자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캐슈넛. 즉, 내가 사라졌다.

어디서?

어디겠냐! 햄스터 집이겠지!

입꼬리가 바르르 경련했다. 감히 대공작의 방에 누가 들어갈까 싶어 카일만 주시했던 게 문제였다.

센이 왜 그 방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캐슈넛이 햄스터 집에 없다, 라는 사실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침착하자. 침착해.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나는 얼른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 목록을 훑었다. 다행히 일전에 사 두고 사용하지 않은 레플리카 햄스터가 남아 있었다.

일단 이걸로 적당히 둘러댄 뒤에, 센이 안심하거든 ‘불러오기’를 해제해서 바꿔야겠다.

“캐슈넛! 이라면 나랑 같이 있지!”

“……너랑? 언제 데려갔어? 벨리알 전하랑 같이 간 거 아니었어?”

“그랬다가 이야기가 끝났길래 잠깐 들었어. 놀아 주기도 하고, 간식도 좀 주고. 캐슈넛이 바람을 좀 쐬고 싶어 하는 것 같길래.”

쾌활하게 대답한 나는 내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몸을 슬쩍 돌려 센의 시야를 가리고 레플리카 햄스터를 꺼냈다.

‘시스템, 찍! 울음소리! 당장!’

―찍.

레플리카 햄스터가 감동의 첫 울음을 뗐다. 평소 내 목소리와 똑같다.

나는 양손으로 햄스터를 받쳐 들며 센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미안, 미안. 누가 찾을 줄 몰랐네.”

“아…… 다행이다. 정말 놀랐어. 캐슈넛이 사라지기라도 한 줄 알고…….”

그녀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놀랐나?’

그러고 보니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었지.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그녀에게 햄스터를 더 보여 주었다. 봐라. 얘 캐슈넛이랑 똑같이 생겼지? 완전 캐슈넛 그 자체지?

“부르셨습니까.”

“아, 마법사님.”

마법사?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일전에 나를 상대로 연구니 나발이니를 하고 싶다던 그 사람이었다.

황실 직속 마법사가 성에 있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생리적인 거부감이라고 해야 할까? 묘하게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눈빛을 가지고 있어서 부담스럽단 말이야.

“이제 괜찮아요. 카일 전하의 마수가 사라져서 도움을 요청할까 했거든요. 어차피 캐슈넛은 마력의 흐름으로 찾을 수 없다고 했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일 전하의 마수요?”

“네. 이 아이예요. 아주 귀엽죠?”

센이 웃으며 내 손바닥 위에 있는 햄스터를 쓰다듬었다. 찍, 하며 우는 소리가 정말 내가 캐슈넛으로 내는 소리와 꼭 닮아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눈치 못 채야지. 내가 봐도 다른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카일이 특이한 거다, 카일이.

“흠.”

그러나, 특이한 사람이 눈앞에 한 명 더 등장한 듯했다.

마법사는 미간을 좁히며 가만히 햄스터를 바라보았다. 그 기묘하고 이상한 낌새에 나는 손바닥으로 슬쩍 햄스터를 가렸다.

하지만 내가 레플리카 햄스터를 가리는 것보다 마법사가 입을 여는 게 더욱 빨랐다.

“이거, 진짜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모조품이라는 소립니다.”

마법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속이려고 하는 걸 안 건가?

“금단의 마법 중에 이런 마법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복제해,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요. 이것도 아마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모양입니다.”

“……네? 그럼…….”

“마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센과 마법사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한 단어가 지나가고 있었다.

‘엿 됐다.’

그래. 정말 엿 됐다.

*

변명의 여지도 없는 확실한 사형 선고 이후, 나는 센에게 저 마법사는 빼고 둘만의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머리를 아무리 굴리고 굴려도 솔직하게 말하고 비밀을 함구해 달라고 비는 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서 잡아떼려니 또 쓸데없는 의심만 증폭시킬 것 같고, 그러다 카일까지 불려 오면 그땐 진짜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릴 테니까.

그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카일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나는 마른세수를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였다.

이래서 사람이 죄짓고 살면 안 되는 건데.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한 건 없지만, 너무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말을 하려니 자꾸만 긴장이 됐다.

“왜 그래, 슈?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빨리 캐슈넛을 찾아봐야지! 그 가짜 캐슈넛은 누가 어떻게 들여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걸 만든 사람도 빨리 찾아봐야 하고……!”

센의 얼굴에 갖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문을 힐끔거리는 그녀의 눈길에, 나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나야, 그거.”

“뭐?”

“모조품을 사용한 것도 나고, 캐슈넛도 나야.”

“……그게 무슨 소리야?”

흡사 미친놈, 아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보는 듯한 눈길로 센이 나를 바라봤다.

그렇지. 나라도 그랬을 거다. 어디 아픈 것 아니냐며 당장에 의사를 불러다가 우리 애가 이상하다며 사정했겠지.

그런 의미로 떨리는 눈을 하고서도 일단 들어 보고자 하는 센의 태도는…… 정말이지.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었다.

나는 속으로 눈물을 훔치며 최대한 간결하고 확실하게 내 상태를 전했다. 물론 이 세상이 책 속이고, 차에 치인 나는 현실 세계에 혼수상태인 몸뚱어리가 있다는 말은 빼고 말이다.

“그러니까…… 저주에 걸려서 햄스터가 되었다고?”

“그렇지.”

“게다가 겨우 하루에 네 시간만 사람으로 있을 수 있고, 아닐 때는 캐슈넛으로 있다고?”

“바로 그거야.”

“세상을 구하면 사람이 될 수 있는 거고…….”

“지은 죄는 없는데, 대충 그렇게 됐어.”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센은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린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그야…….”

마침, 고민하는 내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앞으로 1분 뒤 ‘불러오기’가 해제됩니다.]

‘시스템. 불러오기 해제. 위치는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으로.’

[٩( ᐛ )و]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부탁했다.

“내가 마수로 돌아가면 잘 좀 둘러대 줘. 전하께는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

“부탁이야.”

센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남은 1분간, 심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지나 ‘불러오기’가 해제되자, 내 몸이 흰빛에 둘러싸이며…….

―찍. (봐, 진짜라니까.)

옷가지 속에서 튀어나온 내가 허리에 손을 척 얹어 보였다.

“와…….”

센은 자신의 뺨을 쭉 늘렸다. 찹쌀떡처럼 쭈욱 늘어난 볼은 손가락이 떨어지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프다. 진짜네…….”

―찌직. (그럼 아프지, 안 아프겠냐.)

“사람 말은 못 하는 거야?”

―찍. (당연하지.)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바라보던 센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찌지직. (알아서 알아들어라.)

“좋아. 그럼 ‘응’, ‘아니’로 대답해 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찍. (응.)

그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찌직. (아니.)

센은 이 기묘한 상황이 웃긴 듯 자꾸만 피식피식 웃으며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네가 정말 슈야?”

―찍. (응.)

“그때도 내 손에 이렇게 올라왔잖아. 일부러 날 찾아왔던 거야?

―찍. (응.)

“난 진짜 햄스터인 줄로만 알고 밀웜이나 먹이려고 했는데…….”

그래, 그 원수 같은 밀웜!

내가 센을 홱 째려보자, 그녀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 미안. 하지만 누가 햄스터를 보고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어! 다신 안 갖다줄게.”

―……찍. (응.)

센은 어쨌든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카일의 방으로 다시 향했다.

“카일 전하께서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성 밖으로 잠시 나가셨어. 아마 슬슬 돌아오실 때가 되었겠지만…… 내가 잘 둘러대 줄게. 같이 산책했다고 하면 되겠다.”

나를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싸 안고 걸음을 옮기던 센이 아, 하고 작게 탄식했다.

“그러고 보니 경황이 없어 묻지도 못했네. 아까 다쳤잖아. 많이 다쳤어?”

―찌직. (아니.)

그 정도야 약 바르면 금방 낫는다. 며칠 좀 욱신거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햄스터일 때 꼬박꼬박 휴식을 취하니까.

“전하께서 많이 걱정하셨어. 널 살펴 달라고 하셨거든.”

그 말에 나는 센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카일이 나를? 하긴, 함께 다니곤 했으니까 걱정하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있잖아. 너랑 전하는 무슨 사이야?”

―찍? (뭐?)

“알잖아. 나는 워낙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살다 보니까, 눈치가 정말 빠르거든. 그래서 이따금 사람들의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이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

“그런데 두 사람은 가끔, 서로를 정말 강렬하게 바라볼 때가 있어. 더 바라볼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또렷하게. 마치, 세상에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어느새 방에 도착한 센이 햄스터 집에 나를 넣어 주며 물었다.

“어때, 슈? 너는 카일 전하를 좋아해?”

찍, 은 응.

찌직, 은 아니.

센은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손에 턱을 괸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대답하지 못했다. 분명히 알아듣게 말할 수 있는데도, 두 개뿐인 선택지 중 아무것도 고르지 않아서 침묵할 뿐이었다.

하지만 센은 내 대답을 들은 것처럼 살짝 웃어 보였다.

“잘 생각해 봐.”

센이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방을 나서고, 홀로 남아 쳇바퀴에 걸터앉은 나는 심장께에 손을 얹어 보았다.

‘내가 카일을 좋아하긴 무슨.’

하지만 그 생각에 반박하듯 뇌리에 그의 미소가 떠올랐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선선히 짓던 웃음이, 어깨를 감쌀 때 느껴졌던 온기가. 슈. 나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낮게 울리던 목소리가.

그가 내게 건넸던 모든 것이―.

‘설마…….’

조금 전, 아무렇지 않게 부정한 생각이 무색하리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 카일 좋아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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