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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46화 (4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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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잘 듣기로 한 것까지는 좋은데, 티파티에 나도 참석해야 하는 거였다면 미리 언급했어야 할 것 아냐!

나는 뚱한 표정으로 카일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도 약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어 둔 옷이 있어서, 추레한 꼴로 귀족들의 틈바구니에 섞이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물론 시스템이 원작 내용을 알려 줄 테니까, 내가 직접 참석하는 게 더 편하기야 할 테지만…….

“이것도 먹어 봐라.”

카일이 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내 앞접시에 온갖 디저트를 손수 덜어 주기 시작했다.

“저것도 맛있어 보이는구나. 차를 더 마실 테냐.”

나는 포크를 들어 먹기 좋게 잘린 머핀을 쿡 찍었다. 심술궂게 구겨져 있던 표정이 잠시간 녹아내릴 정도로 맛있었다.

내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본 카일이 본격적으로 내게 이것저것 주기 시작했다. 머핀, 스콘, 마카롱은 물론이고 혀가 아릴 정도로 달콤한 무스 케이크에 초콜릿까지.

내가 끝없이 날라지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상석에 앉은 센이 살짝 웃어 보였다.

“여전히 잘 먹네.”

“……아, 응. 아니…….”

먹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센은 황성에 온 뒤로 잃어버린 이름을 찾았다고 했다. 친모가 멸문한 랑드 남작가의 영애였다고 했나?

그건 아마 벨리알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북부에서 함께 온 일개 하녀와 약혼한다고 하면, 모두가 비웃을 테니까.

그동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민인 내가 여기서 센을 허물없이 대한다면 센이 다른 귀족 영애들에게 얕잡아 보일 것이다.

“황자비 전하…… 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 약혼하지 않았으니까, 랑드 공녀라고 불러요.”

“네, 랑드 공녀.”

그러자 부채로 얼굴을 가린 귀부인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돌아가신 랑드 남작 부인을 꼭 닮으셨습니다. 다시 돌아오셨다고 해도 믿겠어요. 하긴, 남작 부인이라면 다시는 돌아오시지 않으셨겠지만요.”

맑게 이어지는 웃음소리와 달리, 말에는 뼈가 있었다.

센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제가 평민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나온 아이라 다행이지 않나요? 제 어머니께서 궁에 계실 동안 태어났더라면, 제게 이런 말씀은 감히 못하셨을 테니까요.”

그들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는 내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가볍게 떠올랐다.

[랑드 남작 부인은 세 번째 세레나 후보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집안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황제의 편에 서서 클라인 공작가를 견제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러나 클라인 공작과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하여 쫓겨났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자마자 누명을 쓴 채 비참하게 죽었다.]

센이 일전에 내게 해 주었던 말 그대로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황후에게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 벨리알을 이용해 황실에 뿌리를 내리려는 것이다.

나는 센의 옆자리에 앉은 벨리알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센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두 사람은 연인이라기에는 너무 건조하고 침착해 보였다.

이상했다.

센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에게 이름을 찾아 준 데다 약혼까지 한다고? 랑드 남작 가문에 대해 들었다면, 그게 제 친모의 정적이나 다름없다는 사실도 알았을 텐데?

“입맛이 없느냐?”

그 와중에 카일은 여전히 나를 살뜰하게 챙기고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놓인 잔에 잠시 손을 대 보더니, 얼음물이 담긴 잔을 옆에 끌어다 주었다.

“차는 아직 뜨거우니, 목이 마르거든 이걸 마셔라.”

“……아, 네.”

꼼꼼하기도 하다.

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보지 말고 얘기를 좀 해라, 얘기를. 북부에 호의적인 귀족들을 가려내겠다며?

에휴, 앓느니 죽지. 내가 봐준다. 어차피 이거 봐주려고 따라온 거니까.

‘조연 프로필도 볼 수 있냐?’

시스템을 부르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냉큼 튀어나왔다.

[o(* ̄▽ ̄*)o]

좋아. 준비 좀 했다 이거지. 바로 확인 들어간다.

나는 반대편 끝에 앉은 나이 든 남자를 바라보았다. 잿빛 수염을 만지작거리는 그는 무언가를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 아는 게 상당히 많아 보였다. 썩 진중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론 캐스터네츠. 캐스터네츠 남작 가문의 차남이자 캐스터네츠 상단주. 동북부 지역에서 가장 큰 영지를 가지고 있음.]

캐스터네츠 상단주가 이 사람이었구나. 수완은 좋은 모양이다.

[상단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북쪽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중.]

하긴, 이 넓은 땅덩이에 상단이 하나만 있을 리는 없다.

남쪽에 있는 경쟁자가 상단을 압박하는 상황이라면, 슬슬 블레이크 영지를 계산에 넣을 법도 했다. 척박한 땅이니만큼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웃돈을 들여서라도 살 마음이 가득할 테니까.

차남이니 가문을 잇지는 않을 거고, 그렇다면 상단을 쭉 꾸릴 텐데 네 번째로 큰 상단이라는 위치에 만족할 리가 없다.

‘잘 구슬리면 적어도 쓸모는 있을 것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 좀 들어나 볼까.’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마침 크게 웃음을 터뜨린 론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딸기 무늬 스웨터를 입은 그분이 맨발로 들어와서는!”

……그만 듣기로 하자.

아니, 대체 그 망할 놈의 딸기 무늬 스웨터에 대한 소문은 어디까지 퍼지는 거야? 마침 상단주가 수도까지 왔다고 보고라도 한 거냐고! 고객의 개인사를 이렇게 까발리다니!

내 시선을 따라 반대편을 덩달아 보던 카일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딸기 무늬?”

“세상에 그런 스웨터도 파는 줄은 몰랐더랍니다. 초보자가 직접 뜬 것처럼 엉성한데, 그게 또 억지로 크기를 늘린 것처럼…….”

카일은 내게 떠 주었던 햄스터용 딸기 스웨터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 그게 맞긴 맞는데. 사실은 그 스웨터가 커졌다고 할 수도 없잖아.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카일의 시야를 막아 버렸다.

“하하, 요새 딸기 무늬가 유행인 모양입니다.”

“……그런가? 그럼 캐슈넛에게 딸기 무늬 모자라도…….”

“아니, 아니죠. 그게 아니라.”

딸기 풀 세트로 입고 다닐 일 있냐! 다른 것 좀 떠라!

어쨌든 지금은 말고, 화제가 좀 지나가고 나면 말이라도 걸어 봐야겠다. 카일에게 살짝 귀띔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른 귀족들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이든 피로크, 클라인 공작가의 먼 사촌. 비열한 성격으로 공작가의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아 처리.]

얘는 안 되겠고.

[포핀스 백작, 클라인 공작과 적대하는 사이.]

‘……응?’

클라인 공작과 사이가 안 좋다고? 벨리알이랑 저렇게 사이좋게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나는 외조부의 원수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벨리알을 어색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주변으로 몇몇 귀족이 말을 얹고 있었는데, 시스템이 불쑥불쑥 나타나며 그들이 클라인 공작가와 어떤 관계였는지 알려 주었다.

[본래 수도의 저택에 거주하고 있었던 집안. 광산을 소유하고 있어 보석을 납품했지만, 황후의 눈 밖에 난 후로 판매처를 잃었다.]

[1황자 로렌츠에게 모욕을 당해 쫓겨난…….]

[랑드 남작가와 오랜 친우로…….]

‘……?’

뭔가 이상했다.

내가 신원을 조회한 이들은 대부분 벨리알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멸문했던 랑드 남작가와 인연이 있거나 그의 외가인 클라인 공작가와 사이가 나빴다.

미묘한 기류가 느껴졌다. 정확히는 귀족들이 크게 반으로 분류된 듯했다. 벨리알과 친하거나 혹은 황후와 로렌츠 쪽에 가깝거나.

[乂(>◇< );;;] 나약한 소리 마라, 더 내놔. 지금 분위기 안 보여? 언제 이렇게 모일지 모른다고. 약혼식 때는 정신 없단 말이야! [(x_x)] 뻗지 마! 밥값 해! 내가 허공을 노려보며 시스템을 타박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전하의 일행이십니까?” 내가 움찔하며 돌아보는 동시에 시스템 창이 얼른 흩어져 사라졌다.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마법사이십니까?” “예? 아닌데요.” 누구지?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모르겠다. 시스템한테 물어볼까? 시스템에게 누군지 확인해 달라고 하려는 순간,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습니까? 아까부터 당신에게서 마력의 기척이 느껴져서요.” 남자는 나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혹시, 아까부터 지켜봤었나? 귀족들을 훑어보며 시스템을 통해 신원을 파악하는 장면을 봤다면, 마법을 쓰고 있다고 오해할 법도 했다. ‘뭐라고 둘러대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순식간에 곤란해진 내가 적당한 핑계를 고를 때였다. “이것 때문인 모양이군.” 카일이 내 손목을 가볍게 쥐어 올렸다. 반짝이는 파란 보석이 햇빛 아래에서 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력을 담은 물건이다. 내가 선물했지. 아마 이것과 헷갈린 듯하군.” “…….” “이의라도 있나?” “……아뇨, 없습니다.” 나는 손목을 잡힌 채 카일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저 말을 안 믿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일행이라고 감싸 주는 건가? 다행히도 우리 사이의 어색한 침묵은 금방 사라졌다. 건너편에서 의외의 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센 공녀께서는 하녀들에게도 친절하시군요?” 상석에 가까이 앉아 있는 귀족 영애 한 명이 공작 깃털로 장식한 부채를 흔들며 웃었다. 아니,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하녀 출신이어서 그런가? 서슴없어 보이시기도 하고요. 카일 전하께서 데려온 평민하고도…… 아, 북부의 하인 숙소에서 만난 사이라던가?” “그게 무슨…….” 갑자기 나까지 걸고넘어진다. 발끈한 내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카일이 내 손목을 쥐어 만류했다. “끼어들지 마. 1황자의 사촌이다.” 클라인 공작가를 뒤에 업었다, 그 말이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마침 벨리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클라인 공작 가문과 가까운 이들이 기회를 노려 센을 깎아내리는 듯했다. “하긴, 보고 배운 것은 무서운 법이지요.” 황제가 평민 출신이었던 카일의 모친, 제인을 하녀로 들였던 것을 꼬집는 말투였다. “…….” 내 손목을 잡은 카일의 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날 잡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모친이 모욕당한 데 화가 나서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겠지.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참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1황자의 사촌이면 벨리알의 사촌인 거랑 마찬가지잖아? ……이거, 막장 집안 아니야? 이래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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