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45화 (4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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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에게 팔찌를 선물한 것이 원작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내 기적 수치는 40퍼센트를 넘어섰다.

‘불러오기’ 시간이 무려 네 시간이라니. 넉넉하다 못해 적응이 안 될 지경이었다.

어차피 급할 때 이것저것 사다 보면 또 깎이는 게 기적 수치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으다 보면 언젠가 100퍼센트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인물, ‘세레나’가 삭제되었습니다.]

물론 근래 가장 많은 기적 수치를 얻게 된 계기는 어딘가 석연치 않고, 아직까진 알게 된 것도 별로 없긴 하지만…….

‘조금만 더하면 절반이다, 이거지.’

내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 기적 수치는 불가피하다. 석연찮다고 계속 머뭇거릴 순 없다.

그러니 무조건 아껴 쓴다. 악착같이 모아 준다.

“보이느냐?”

적당한 ‘불러오기’ 타이밍을 재고 있던 나는, 삐딱하게 누운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햄스터 집에 가까이 다가온 카일이 내 앞에 보란 듯 손목을 내밀었다.

“예쁘지 않느냐. 그 녀석이 선물해 주었다.”

그러더니 내게 가까이 댄 손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보석을 자세히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걸 사 줄 것을 그랬다.

―찍.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자세히 보거라. 정말 마력이 들었다더구나.”

그것까지 주워들었냐. 청력 좋네.

“같은 물건이라…….”

카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평소와 같은 무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부드러운 분위기가 묻어났다.

그렇게 기쁠까.

―찌익. 찌직. (알았다, 알았어. 다음엔 더 좋은 걸로 사 줄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네가 가장 좋다.”

―찍. (어휴.)

수도까지 내려와서도 이 주접은 건재하구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카일이 쏟아붓는 뽀뽀를 적당히 받아넘겼다. 기분이 좋아 보이니까 열 번쯤 하려나.

그러나 카일이 나를 양손으로 안은 채 세 번쯤 뽀뽀했을 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카일 전하. 황실 마법사를 모셔 왔습니다.”

……황실 마법사? 갑자기?

“들어오도록.”

설마, 마수학자에게 캐슈넛을 보이라던 말을 정말 그대로 이행한 거야? 아직 약혼식은 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행동력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그의 손을 걷어차고는 미끄럼틀 뒤로 숨었다. 임시 거처 주제에 화려하게도 이것저것 챙겨서, 몸을 숨길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물론, 소용없었지만.

“조금만 참거라.”

카일이 아예 미끄럼틀을 번쩍 들어 빼 버리더니 나를 쥐어 올렸기 때문이다.

―찌직! (이거 놔!)

“잠깐이면 된다. 아무래도 저번에 마력을 튕겨 낸 것이 이상하니, 아주 잠깐만 검사하자꾸나.”

―찌이이익! (싫다니까!)

나는 그의 손을 콰득 깨물었다.

[인간적인 햄스터가 되어 보자! (งㅠ∇ㅠ)ว]

인간적인 햄스터는 개뿔! 마수학자도 아니고 마법사라잖아. 이러다가 밑천 다 털리고 잡혀가면 어떡해!

물론, 내 반항은 미약한 선에서 그쳐 버렸다. 카일이 어디에선가 작고 투명한 공을 꺼내더니 내 뒷덜미를 잡고 거기에 쏙 넣어 버린 것이다.

그대로 갇혀 버린 나는, 투명한 벽을 쾅쾅 두드렸다. 숨을 쉴 수 있게 뚫어 둔 구멍으로 주먹 쥔 손을 쑥 뽑아 휘두르기도 했다.

―찌직! 찍! (이거 안 풀어!?)

이 자식이, 이제 하다 하다 감금이냐? 확 ‘불러오기’로 도망가 버린다?

“나, 난폭한 겁니까? 마수라더니…….”

가까이 다가온 마법사가 나를 수상한 것 보듯 훑어보았다.

내 험악한 표정을 살피던 카일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난폭한 녀석은 아니다.”

“하지만, 방금 전하께서 물렸는데요…….”

“화가 나서 그렇다. 이대로 살펴볼 수 있겠나? 열지는 말고. 최대한 손대지 않고 살피는 쪽이 좋겠군.”

“……해 보겠습니다.”

의사에 수의사에 마수학자, 그리고 이제는 마법사까지. 대체 이 조그마한 몸에 검사할 게 뭐 있다고 마법사는 그야말로 보석을 감정하듯 내 몸을 샅샅이 살폈다.

세상천지 이런 수모도 없다. 건강 검진을 해도 의사가 내 엉덩이까지 들여다보지는 않는데!

내가 해탈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는 동안, 마법사는 검사를 끝냈다. 카일이 나를 넣었던 투명한 공은 마력을 한 겹 걸러 주는 용도였는지, 마법사가 공에 손을 대어도 이전처럼 튕겨 나가는 일은 없었다.

“검사가 끝났습니다만…….”

“그래. 어서 말해 보도록.”

“……전하의 애완 마수는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이질적이고 정교한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건…… 세상에 간섭해서는 안 될 힘입니다. 평생을 마법사로서 살아온 제 인생을 걸고 보증합니다!”

무려 인생까지 거셨다.

‘그래. 수도에서 이름깨나 날린다는 마법사가 하는 말인데 믿어야지.’

하지만 카일은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담긴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제 주먹보다 작은 생명체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질 수가 있냐고 따져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큼……. 혹시, 며칠이라도 두고 가실 수 있다면 제가 더 연구해 보겠습니다. 북부의 생명체는 수도에서도 연구가 더딘 편이라,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법사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결국엔 나를 데려가서 실험체로 쓰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어느새 탐구욕으로 빛나는 마법사의 시선을 외면하며 등을 지고 앉았다. 그리고 짧은 다리로 투명한 막을 툭탁탁 차 댔다.

빨리 안 여냐? 쟤가 나 데리고 간다잖아!

“거절하지.”

카일은 공에서 나를 꺼내 다시 햄스터 집 안, 그것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숨집 안으로 넣어 주었다. 엉덩이를 떠밀려 엉거주춤 들어간 나는, 고개만 빼꼼 내밀고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아, 아니. 전하! 이건 마수학 연구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나는 내 마수를 어디에도 보낼 생각이 없다.”

단호한 카일의 목소리에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다.

괜히 코끝이 찡해진 나는 앞발로 코를 쓱쓱 문지르며 흐뭇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저럴 때마다 괜히 더 잘생긴 것 같다니까.

[(~ ̄3 ̄)~]

……주접이 아니라, 진짜 잘생기기는 했잖아.

어쨌건 그 뒤로도 한참 열변을 토하던 마법사는 결국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를 보고 보고 또 보다가 카일의 기세에 못 이겨 방을 나갔다.

사람이 한 분야에 미쳐 있으면 겁이 없어진다더니. 감히 대공작의 애완 마수한테 침을 묻히려 할 줄은 몰랐다. 에라이, 상도덕 없는 놈.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카일이 숨집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캐슈넛. 이리 나오거라.”

―찌익. 찍! (왜, 인마. 왜.)

“잘 참았으니 간식을 줄까 해서. 싫으냐?”

그가 손에 네모난 큐브를 쥐고 말했다. 색을 보아서는 말린 고기를 먹기 좋게 뭉쳐 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맛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게 생겼다.

애당초 동물이 먹는 음식이라는 게, 간을 거의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지 않던가. 내가 ‘불러오기’ 했을 때 과식을 하는 이유는 다 평소에 먹는 게 맛이 없어서다.

[(≖_≖ )]

의심스럽다는 이모티콘 집어넣어라.

―찍. (에효.)

나는 슬금슬금 카일의 손바닥 위로 올라갔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햄스터 오타쿠의 심신을 위해서라도 내가 잘 먹고 잘 놀아야지.

나는 카일이 쥐여 준 소고기 큐브를 갉아 먹으며 띠링띠링 오르는 하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지금은 카일 블레이크가 이 마인하르트 제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일 것이다.

*

“티파티라고요?”

“그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라더군.”

“연회…….”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황태자가 아니긴 하다지만, 그래도 벨리알은 황후를 상징하는 현 ‘세레나’의 소생이다. 그런 황자의 약혼식을 앞두고 있으니 온 황성이 떠들썩한 것도 이해는 되지만…….

분명히 주워듣기로는 전례도 없이 화려한 약혼식을 준비한다고 했다. 외국 귀빈들을 초청하는 전야제도 열린다고 했고. 덕분에 황성 근처는 일주일째 축제 분위기다.

그런 상황에서 연회까지 또 한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내 표정을 빤히 쳐다보던 카일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먼 길을 온 지방 귀족들과의 친목을 다지고 싶다는 이유를 대기는 했지만, 기실 핑계에 불과하지.”

“그냥 돈 많다고 자랑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런 셈이지.”

카일이 눈을 내리깔며 조금 우울하게 대꾸했다.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빵 한 조각이 모자라서 배를 곯고 있을 텐데.”

북부 블레이크 영지는 일 년 내내 찬바람이 불고, 비도 잘 오지 않아 경작하기에 좋은 땅이 아니다. 마수 사냥으로 식량을 조달하는 데도 한계가 있겠지.

게다가 경제적으로 고립까지 되어 있으니, 카일은 영지 사람들이 굶주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보았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떤 위기도 없이 풍족하기만 한 이곳의 사치는 거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나 또한 지방 귀족에 해당하므로 초대는 받기는 했다만…….”

“가시려고요? 카일 전하는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아요.”

카일이 눈썹 한쪽을 찡그렸다. 기분이 별로 안 좋을 때, 혹은 비아냥거릴 때 보이는 습관이었다.

“벨리알 전하께서 나를 괴롭히시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지.”

싫은 기색이 가득하지만, 가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미 그는 티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채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초대장을 한 번, 그리고 어둑한 카일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에 빠지면 사교계의 예의도 모른다고 흠을 잡히니까, 그래서 가는 건가?

“본래는 무시하고 안 갔지만.”

하긴, 그런 평판 같은 건 카일에게 썩 중요한 게 아니었겠지.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블레이크 영지민의 안위뿐이니까.

“네 조언대로 움직이려 한다.”

“예?”

“지방 귀족들의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중에서 내게 호의적인 이들을 골라내야지.”

아, 그렇구나.

물물 교환이나 연합을 위해서라도 지방 귀족들과 적당한 관계를 맺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벨리알과 대립할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카일도 그 점을 알고, 지금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려는 거다.

“슈.”

생각에 빠진 내게 그가 고개를 숙였다.

“네 조언대로 하기로 했다.”

“네.”

“네 말을 잘 듣기로 했다니까.”

“……네.”

어쩌라고요, 전하.

입속에 불손한 문장이 맴돌았다. 다행히 밖으로 뱉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 더 해 줄 말은 없나?”

이쯤 되니 무슨 말을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별수 없이 웃으며 그와 눈을 맞췄다.

“잘했어요.”

그제야 그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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