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40화 (40/129)

40

마차는 쉼 없이 달렸다.

척박한 북부의 땅은 사람의 손이 닿은 곳보다 닿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길은 마차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넓이로, 방향을 조금만 틀어도 제멋대로 자라난 덩굴이나 수풀에 바퀴가 빠질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는데, 땅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바퀴가 모난 곳에 걸리면 그야말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우우욱.”

미친, 멀미.

배수현으로 살았을 때도 이만한 멀미를 느낀 적은 없다. 빌어먹을 말과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건지, 어떻게 말 타고 움직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린다.

나는 창백한 낯짝으로 벽에 기댔다. 그리고 눈을 굴려 내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천장과 바닥이 흔들리는 이 난장 속에서도 카일은 꿋꿋하게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만 거북이 등딱지 같은 길 위에 있고, 카일은 평지에 있는 건가? 그런 거야?

“……멀미 안 나십니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참 서류를 훑던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전혀. 많이 힘든가?”

“……죽겠네요.”

“한숨 자는 것은.”

“…….”

물론, 자고 싶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서 황성에 도착하면 깨워 달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망할 ‘불러오기’의 시간이 그만큼이 안 된다.

여기서 황성까지는 족히 사흘은 걸릴 텐데, 두 시간이 고작인 나로서는 반나절도 못 가서 햄스터로 돌아가 버리고 말 거다. 지금도 상점에서 산 쿠키를 먹어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거니까.

나는 눈만 굴려, 옆에 뜬 시스템 창을 노려보았다. ‘불러오기’가 해제되기까지는 고작 3시간 30분 남짓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가까운 마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도착하면 깨워 줄 테니, 일단은 눈을 붙여라.”

“으으…….”

더 고집을 부리고 싶어도 그럴 체력이 없다.

나는 햄스터 집 위에 팔을 교차하고 뺨을 기댔다. 그리고 나지막이 시스템을 불렀다. 야, 나와 봐.

[_:(´ཀ`」∠):_ ]

“…….”

……너도 멀미하냐?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잠시 그 이모티콘을 바라보다가, 마차가 한 번 더 덜컹거리는 통에 눈을 꾹 내리감았다.

‘야…… 시스템……. 두 시간 뒤에 알람 좀 해 줘. 부탁 좀 하자…….’

이대로라면 뭘 해 보기도 전에 멀미로 돌아가시겠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이모티콘과 함께 허공에 2시간짜리 타이머가 떠올랐다. 차칵차칵 차감되는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꺼내 두었던 [비상등 토피넛 캔디]를 입에 물었다.

그사이에 별일이 있겠냐마는, 이건 임시방편이었다. 내가 잠이 든 사이에 카일이 햄스터 집을 들춰 보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단단하고 달콤한 사탕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나는 캐러멜시럽으로 젖어 가는 달콤함을 느끼며, 살기 위해 잠을 청했다.

가물가물한 의식 너머로 바람이 머리칼을 넘기는 느낌이 든다.

모쪼록, 자고 일어나면 마을이기를…….

*

띠띠띠띠―.

머릿속에서 익숙한 기계음이 울렸다.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작은 소음은 내가 무시하기 시작하자 다른 변주로 바뀌었다. 마치 웅장하기까지 한 도입이 지나고, 굿모닝 하는 얄미운 소리가 들린다.

‘10분만 더 자자……. 아니, 5분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몸을 뒤척이며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 응. 그래. 이대로 조금만 더…….

그때, 생각지도 못한 오싹한 기운이 전신을 거칠게 훑고 지나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자, 카일이 거의 코가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뭐…… 뭐, 뭐 뭡니까?”

말이 고장 난 자동 응답기처럼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물리고 햄스터 집을 더 꽉 움켜쥐었다. 카일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불편하게 자기에 내려 주려고 했다.”

그의 시선이 내가 안고 있는 햄스터 집에 닿았다.

틀렸다, 이놈아. 불편한 건 햄스터 집이 아니라, 마차라고.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그보다…… 멈췄네요?”

덜컹거리는 움직임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잠잠한 바닥을 흘긋 일별하곤 창밖을 살폈다. 마차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들끼리 떠드는 것이 보였다.

“한번 쉬어 가는 게 좋을 듯싶어 잠시 멈추었다. 너 말고도 멀미를 하는 사용인이 몇몇 있더군.”

“멀미를 안 하는 게 더 신기한데요…….”

“……잠이 깼으면, 잠시 내렸다 오도록 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햄스터 집을 껴안은 채 엉덩이를 슬금슬금 밀어 가며 움직이자, 카일이 다시 손을 뻗었다.

“안 됩니다!”

“…….”

그가 다른 말을 덧붙이기 전에 얼른 마차에서 내렸다.

그래도 성에서 좀 멀어졌다고 불어오는 바람에 묘한 봄기운이 느껴졌다. 물론, 둘러보면 새하얀 눈밭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나저나…….’

방금 느꼈던 그 오싹한 기운은 토피넛 캔디의 효과인 모양이었다.

등 뒤에 귀신이 덩어리로 있었다 해도 그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을 거다. 놀라는 것은 둘째 치고 불쾌할 지경이었다. 어쩐지 기적 수치 0.5에 5개나 주더니만……. 남은 4개는 영원히 봉인이다.

“슬슬 다음 수를 내야겠는데.”

계속 쿠키를 먹으며 햄스터 집을 안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다간 기적 수치가 바닥나는 건 물론이고, 마차 안에서 햄스터로 변해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럼, 여태 쌓아 온 신뢰도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거고…….

‘분명 마법사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카일의 입장에서는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이 타당하다. 사람이 갑자기 햄스터로 변하는데 마법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겠는가. 아니, 마법이래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캐슈넛과 슈, 두 모습으로 그에게 접촉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들, 눈에 뻔히 보이는 증거가 있는데 누가 믿을까.

나는 고개를 내저어 잡념을 떨쳐 냈다. 그러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그 마을이지?”

“그렇지. 예전에 마수한테 습격당해서 반쯤 무너진 곳이었는데, 최근엔 그래도 활기를 좀 찾았다더군.”

“그것도 다 카일 전하께서 힘써 주신 덕분이지, 뭐.”

“맞아. 정말 대단하시다니까.”

나는 귀를 바짝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그것도, 마수 때문에 한 번 무너진 마을이라 이 말이지?

때마침 머릿속에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은근슬쩍 그들의 틈에 끼어들어 그 화제에 말을 얹었다.

“다행히 많이 재건된 모양이네요. 가족을 다 잃은 뒤로는 한 번도 들르지 못했었는데.”

“가족? 마수학자님의 고향이 그곳이었습니까?”

“네. 떠나온 지 좀 되었습니다.”

“가족을 다 잃었다는 말은…….”

“오래된 일이죠. 불행한 사고였습니다. ……여전히 비어 있을 테지만, 고향집이 그립네요.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싶고. 잠시 머무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사연이…….”

“전하께 말씀드리면, 분명 흔쾌히 도와주실 겁니다!”

“그럼요! 전하가 어떤 분이신데요!”

감동한 사용인들이 저마다 거들겠다며 눈을 빛냈다.

나는 검지로 눈가를 훔치는 시늉을 하고 카일의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기사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쪽은 신경을 못 쓰는 듯했다.

나는 사용인들이 입에 물려 주고, 주머니에 넣어 주고, 햄스터 집 위에까지 얹어 준 간식을 씹으며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그사이 카일도 기사와 이야길 마쳤는지 막 마차에 올랐다.

“그게 다 뭐지?”

“간식이요. 전하도 드실래요?”

그가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 없이 픽 웃었다.

요즘 종종 이럴 때가 있다. 카일이 나를 바라보면서 이유 없이 웃는 일. 내가 그를 찾아 고개를 돌리면, 어렵지 않게 눈이 마주치는 일.

‘……괜히 민망하게.’

나는 슬쩍 눈을 굴리고 비스킷의 포장을 풀었다. 그런 뒤, 그에게 한 조각을 내밀었다.

나를 바라보던 카일은 잠시 뜸을 들이나 싶더니, 곧 상체를 기울여 내 손에 들린 비스킷을 베어 물었다. 아니, 인마. 손으로 받으라고, 손으로.

“제 손으로 드시면 더 맛있으십니까?”

“꽤.”

“많이 부려 드십쇼, 많이.”

내가 투덜거리는 사이, 마차가 다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말들이 잘 쉰 덕분인지 길은 여전히 험한데도 마차는 쭉쭉 나아갔다.

덕분에 나는 다시금 죽을 맛이었다.

점차 창백해지는 내 안색을 지켜보다 못한 카일이 나를 제 무릎에 눕혀 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마을에 도착했을 즈음엔 여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도 구분 못 했을 거다.

그렇게 또 얼마나 달렸을까.

영영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으으어어어…….”

흡사 좀비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마차 밖으로 나섰다. 숲에 가까웠던 아까의 정착지와는 달리, 작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생각보단 번화한데.’

마수의 습격 때문에 거의 무너졌다더니, 몇몇 건물만 제외하면 블레이크 영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규모가 작은 것뿐이지 시장도 서 있는 것 같고.

뒤따라 내린 카일은 기사들과 사용인들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하곤 10분의 휴식 후, 곧장 떠날 거라고 말했다. 황성까지는 아직 한참이라 조금 서두르는 듯했다.

그렇게 카일이 말을 마칠 무렵, 나는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저는 여기 잠시 머무르다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지?”

“고향이 여기라서요. 간만에 왔으니, 좀 둘러보고 갈까 해서.”

“이탈은 어떤 이유에서건 용인할 수 없다.”

“걱정 마세요. 금방 따…….”

“고향이라잖습니까, 전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하인 한 명이 목청을 높였다.

“그래요. 가족을 다 잃고 블레이크 영지까지 흘러 흘러온 것 같은데, 이 마른 몸으로 영지까지 오는 내내 어찌나 고초가 많았겠습니까?”

“맞습니다. 제 얘기라고는 조금도 안 하던 놈이, 먼저 고향 이야기를 꺼내더라니까요?”

여기저기서 나를 거들기 시작했다. 가엾다느니, 말 한 필에 지도 한 장이면 알아서 올 거라느니 하는 주장들이 나왔다.

원칙상 불가능하기는 하지만, 전투 인원이 아니라면 고향에 들르는 일이 조금쯤 묵인되는 일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카일은 조금도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슈.”

그가 내 앞으로 무거워 보이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손이 없어 어떻게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데, 그가 결국 내 품에서 햄스터 집을 가지고 갔다.

“이 돈이면 마을에서 가장 좋은 마차를 탈 수 있을 테지. 전부 사용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나?”

머리 위에서 염려를 담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중얼거렸다.

“제가 애도 아니고. 오랜만에 오는 거니까, 단란하게 보고 싶어요. 가족끼리.”

“그래.”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지나 뺨, 그리고 목덜미에 닿았다. 연하게 무두질한 가죽이 살갗을 간지럽게 쓸고는 아쉽다는 듯이 멀어졌다.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약속 같은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으면 내가 안 될 것 같았다.

“금방 갈게요.”

그러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세요.

말을 끝맺자 카일이 웃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또 시선이 마주친다. 마치, 그가 내게서 단 한 번도 눈을 뗀 적이 없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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