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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39화 (3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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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지? 황성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캐슈넛을 데리고 가기는 힘들 텐데.”

카일이 의외라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받으며, 나는 태연하게 입에다 기름칠을 했다.

“밤톨만 한 쥐…… 아니, 마수 데리고 가는 게 뭐가 어렵다고요. 이참에 황성에 있는 유명한 마수학자한테 데리고 가서 검사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하면 좋잖습니까. 전하도 캐슈넛을 몇 날 며칠 떼 놓고 있긴 불안하시면서.”

“흠.”

“대신 마력 주입은 절대! 안 되고, 그냥 검사나 받아 봐요. 어차피 한번 데리고 가실 거 아니었습니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동고동락 좀 했다고 이제는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된다.

그는 지금 캐슈넛을 어떤 우리에 담아, 어떤 쿠션을 깔고, 어떤 간식을 챙겨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미묘하게 누그러지는 눈매나 비죽 오르는 입매를 보면 십중팔구 그랬다.

‘좋아할 거면서 빼기는.’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일단 캐슈넛과 슈, 둘 다 황궁에 가는 마차에는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황성이 두어 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절대 아니라는 건데.

‘시스템. 상점 열어 봐.’

내 말에 반응하듯 파란색 시스템 창이 반짝 빛났다.

곧, 눈앞에 맛 좋고 예쁘게 생긴 아이템들이 주르륵 펼쳐졌다. 전부터 느꼈지만, 내가 하트와 기적 수치를 사용하면 할수록 상점이 더 화려해지는 모양이다.

‘너도 고생이 많다.’

업데이트할 때마다 날밤 지새우는 걸 보면 게임 만들 때의 내 모습이 겹쳐져 짠한 구석도 있다.

낮보다 밤과 더 친한 게 개발자라지만, 그런 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으니까. 사람이 빛도 좀 보고 살아야지. 그땐 몸에서 곰팡이가 피었대도 믿었을 거다.

근데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야행성 동물로 빙의해 버렸네. 인생이 참 내 마음 같지가 않다.

나는 한숨과 함께 잡생각을 털어 내고 손으로 상점 페이지를 넘겼다. 처음엔 고작 한두 페이지였던 게 이제는 네 페이지쯤 된다.

어디 보자. 기적 수치는 최대한 아껴야 하지만, 만들어 준 성의도 있으니 아이쇼핑부터 할까.

‘오. 맛있어 보이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견과류로 만든 디저트는 다 있는 것 같다. 음식이라곤 국밥이나 햄버거 같은 것에만 익숙해서 이렇게 대놓고 예쁘게 꾸민 음식엔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간다.

왜, 보기 좋은 음식이 맛도 좋다잖아. 물론 카일이 챙겨 주는 쿠키나 빵도 훌륭하지만, 보란 듯이 꾸며 놓은 디저트는 일단 입에 넣어 보고 싶은 충동이…….

‘잠깐.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 놨나?’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허공에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_⚆]

됐다, 됐어.

어차피 모양 보고 사는 건 아니니까.

나는 손을 대충 휘젓다가 문득 눈에 띄는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번에 업데이트한 모양인지 끄트머리에 [NEW!] 하는 요란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었다.

NEW! [비상등 토피넛 캔디x5 | 기적 수치 0.5% 소모 | 입에 사탕을 물고 있는 동안 다가오는 생명체를 감지합니다.]

기적 수치 0.5퍼센트에 캔디를 5개나 주는 은혜로운 아이템이다. 거기다 효과도 괜찮으니, 일단 사 두면 언제고 쓸모가 있을 것 같다.

나는 고민할 것 없이 바로 토피넛 캔디를 구입했다. 개별 포장이 된 작은 알사탕은 입에 넣으면 캐러멜 맛이 날 것처럼 생겼다.

당장 먹어 보고 싶어도 참는다.

“끝났나?”

“네?”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길래.”

“…….”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카일이 내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거다. 너도 이제 그러려니 하기로 했냐. 내가 하도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옷은 전과 같은 치수로 준비해 두겠다.”

“제 것까지 챙기시려고요? 괜찮은데.”

“황성에서는 차림새로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빈번하다. 북부에서 갖춘 옷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카일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없었다.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안다. 이건 카일이 직접 겪은 일이며, 황성의 귀족들이 북부의 일원들을 대하는 자세라는 것을.

원작을 떠나서 나 역시 그런 취급을 받은 적이 있다. 하여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것들이 별 같잖은 걸로.

나는 뒷머리를 벅벅 문지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스러워할 문제가 아니다. 이건 따지고 보면 카일의 체면과도 관련된 일이니까.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센과 벨리알의 약혼식까지 이주일.

채비를 하기에는 더없이 충분한 시간이었다.

*

“이건 저쪽에 싣고, 아, 저건 저쪽에 실으면 되겠군.”

“황성까지 가는 게 얼마만이야?”

“못해도 일 년은 못 갔을걸!”

“고삐를 잘 잡아라. 마차도 다시 점검해!”

이른 아침부터 블레이크 성은 그야말로 시장 통이었다. 웬만한 소리에는 잘 깨지 않는 나조차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쩍 떠졌으니 말이다.

나는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커튼 틈을 노려보았다. 아직 어스름한 것을 보니 여섯 시나 되었을까 싶다.

―찍찍. (오늘이구만.)

나는 반동으로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쭉 켰다. 그리고 정말 내키지 않지만, 숨집 저 구석에 넣어 두었던 카일의 수제 딸기 스웨터를 주섬주섬 입었다.

물론, 팔다리가 짧아서 톱밥을 몇 번 구른 뒤에야 겨우 입을 수 있었다. 근데, 다시 생각해도 사이즈는 진짜 기가 막히게 맞췄다니까.

―찍……. (에휴. 내 팔자야.)

너저분한 스웨터를 탁탁 털어 내고 ‘불러오기’를 사용하기 전에 잠시 문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카일은 아직 나를 챙길 겨를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햄스터 우리를 품에 안고 지휘하는 건 가오가 많이 떨어진다. 나한테도 곤란한 일이고.

‘자. 그럼…….’

나는 구석진 자리에서 ‘불러오기’를 사용했다.

밝은 빛에 눈을 살짝 감았다 뜨니, 익숙한 방 안이었다. 침대 위에는 카일이 준비해 둔 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스웨터를 벗어 인벤토리에 넣고, 그 옷으로 바꿔 입었다.

질 좋은 비단이 부드럽게 몸을 감싸며 아래로 고아하게 흘러내렸다. 화려한 장식은 없으나 확실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금실로 놓인 수조차 허투루 놓은 느낌이 아니었다.

‘바지도 허리에 딱 맞네.’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살피던 나는, 문득 스치는 생각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 사이즈는 어떻게 안 거야?”

진짜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자는 사이에 잰 것도 아닐 테고, 나한테 물어본 적도 없는데.

그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울렸다.

나는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바깥에는 익숙한 하인 한 명이 들뜬 얼굴을 숨기지 못한 채 앞에 서 있었다.

“카일 전하께서 마수학자님을 모셔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근데, 그 전에 들를 데가 있는데요.”

“네?”

나는 의아하게 눈을 깜빡이는 하인을 데리고 앞장서 서재로 향했다. 그리고 미리 챙겨 두었던 검은 천을 펼쳐 햄스터 집을 덮고 품에 안아 들었다.

이제 이건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적어도 반나절 정도는, 반드시.

“갑시다.”

고개를 쭉 빼고 나를 살피던 하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서둘러 발을 옮겼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내 기적 수치를 확인했다. 어제 쿠키 두어 개와 사탕을 샀더니 기적 수치는 딱 20퍼센트였다.

이것도 시스템을 쪼다 못해 탈탈 털어서 쿠키 가격을 깎은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쾌거였다. 덕분에 온종일 시스템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아야 했지만.

[( ̄へ ̄)]

야. 내가 나 좋자고 버냐?

……나 좋자고 버는 거긴 하지.

“이 마차에 오르시면 됩니다.”

나를 바깥으로 데려다준 하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걸음이 가볍다 못해 날아갈 것 같은 걸 보니, 아마 저 사람도 황성행 마차에 오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듣자 하니 1년 만에 가는 황성이랬다. 들뜰 만도 하지. 황성과 북부는 그 먼 거리만큼 기후나 분위기가 정반대라서, 꼭 이국에 온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었다. 물론, 카일이.

“슈.”

“와이씨!”

나는 그야말로 펄쩍 뛰었다. 가슴이 벌렁거리다 못해 살가죽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고개를 휙 돌렸더니, 카일이 망토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척 좀 내십쇼, 기척!”

“그렇게 높이 뛸 수 있는 줄은 몰랐군.”

“아! 진짜! 놀리지 마시고요.”

내가 소리를 죽여 투덜거리자, 그가 내 어깨에 망토를 둘러 주며 낮게 웃었다.

“불러오라 하긴 했지만, 성을 한두 바퀴쯤 돌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에 있었나?”

“누가 손수 옷까지 챙겨 주셨는데, 그럼요. 아. 제가 캐슈넛도 데려왔습니다. 서재에 갈 필요 없어요.”

나는 손에 든 햄스터 집을 눈짓하며 천 자락을 꽉 쥐었다. 절대 못 열어 본다. 걷어 볼 생각 마라.

“수고롭게 했군. 이젠 내가 가지고 가겠다.”

카일이 햄스터 집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슬그머니 그 손을 피하며 몸을 빙글 돌렸다.

“에이. 제가 안고 있어도 충분한데 뭘요. 가면서 놀기만 하시는 것도 아닐 텐데 캐슈넛은 저한테 맡기시고 일 보세요, 일.”

“그럼, 얼굴 한 번만…….”

“아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잠 방해하지 맙시다. 마수도 생활이라는 게 있어요.”

카일이 더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얼른 마차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햄스터 집을 신줏단지라도 되는 양 품에 끌어안았다.

뒤따라 들어온 카일이 그 모습을 보더니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안 뺏을 테니 힘을 풀어도 된다.”

“진짜죠?”

“……속고만 살았나?”

아무래도 그런 편이긴 한데요.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손과 어깨에 힘을 풀었다.

내내 긴장하고 있던 어깨가 좀 결린다. 끙, 하는 소리를 내며 풀어 보겠답시고 이래저래 움직이고 있자니 그가 돌연 부스럭거리는 봉지를 꺼내 들었다.

“그래도, 밥은 줘야…….”

“제가 줬습니다, 제가!”

나는 총알같이 창가 쪽으로 몸을 붙었다. 경계하는 눈으로 노려보자, 그가 웃음을 터트린다.

“……좋습니까?”

놀리니까 좋아, 이 자식아?

이내 잔잔한 미소만 남은 카일의 얼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턱을 괸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와 있을 때는 항상 기분이 좋아.”

때마침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살짝 열어 둔 조막만 한 창으로 실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턱을 괸 나는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귀 끝이 조금 뜨거웠다.

바람은 충분히 시원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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