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38화 (3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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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카일이 흐뭇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머금은 미소가 흐뭇하다 못해 얼굴 전체가 반질반질하다.

반대로 나는 더 썩을 수 없을 만큼 썩은 얼굴로 그를 한 번, 내 몸을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딸기.

딸기! 그놈의 딸기!

뜨개옷이었다.

실력이 더럽게 없어 포기한 줄 알았던 그 털옷이 지금 내 몸에 입혀져 있었다. 그것도 등짝과 가슴에 커다란 딸기를 달고서 말이다.

나는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퍽퍽 쳤다.

마음 같아선 아주 찢어발기고 싶은데, 좋다며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사이즈는 또 정확히 재서 옷은 내게 맞춤 정장인 듯 꼭 맞았다.

손재주의 문제가 아닌가?

그냥 센스가 더럽게 없는 건가?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일은 당장이라도 나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제발 그러지 마라. 햄스터도 체면이 있다.

[( ̄u ̄c)…….]

나는 웃음을 참는 듯한 시스템 창을 치우고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사고 회로를 돌렸다. 다섯 살 난 삼촌 딸도 안 입을 것같이 생겼지만, 그래도 이거,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옷이잖아.

그렇담 ‘불러오기’ 했을 때 알몸으로 있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 털옷이라서 따뜻하다. 잘 보니 옵션에 [온열 기능]도 붙어 있어서 그냥 털옷보다도 좋은 것 같다.

안 좋은 점이라고는 대문짝만하게 수놓은 딸기뿐이라는 거다.

[현재 보유 현황 | ❤×15]

[현재 보유 현황 | ❤×18]

[현재 보유 현황 | ❤×22]

……그렇게 좋냐?

어? 그렇게 좋아? 좋냐고!

카일이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면서 주접을 떠는 동안, 하트가 그야말로 눈처럼 쌓였다. 근데 초콜릿을 줬을 때보다 더 많이 쌓이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진짜, 망할 햄스터 오타쿠…….

계속 그렇게 좋아해 봐라. 하트 좀 많이 챙기게.

“원래는 그 녀석에게 먼저 알려 주려 했지만, 또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보이지 않더구나. 그러니 네게 먼저 알려 주마. 너도 센과 가깝게 지냈으니 들을 자격이 있지.”

―찍. 찍찍. (뭔 소리야? 갑자기 웬 센?)

그렇게 말한 카일은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나는 그가 내려놓은 편지 위에 올라가서 정갈하게 쓰인 글자를 한 자씩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약혼식 초대장이다.”

―찍찍찍. (그러네. 만물이 축복하는 계절에 황성에서…….)

“센과 벨리알의.”

―찍찍. (그래. 센과 벨리…….)

……뭐?

나는 작은 앞발로 눈을 벅벅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초대장을 읽어 보았다. 센, 그리고 벨리알. 두 이름 사이에 그려진 하트가 시뻘건 색이다.

‘……올 게 왔다.’

그래. 올 게 온 거다.

사실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던 전개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겨울의 심장>에서 센은 벨리알과 결혼하여 세레나가 되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처절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지 않던가.

알고 있음에도 생각보다 빨리 소식이 와서인지 콩알만큼 작은 심장이 살짝 팔딱거렸다.

햄스터가 되고 난 뒤부터 아무래도 심장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작은 것에도 펄쩍펄쩍 놀라기나 하고…….

아무튼 벨리알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일어나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 특히, <겨울의 심장>의 주연 인물인 센과 벨리알은 그 궤도를 벗어나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머리 위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의문의 괴한 무리에게 습격을 당한 벨리알도 그렇고, 센만 해도 어떻게든 벨리알과 엮여 황성으로 가지 않았던가.

물론, 센의 경우에는…… 말리려면 말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평생 복수하겠다는 마음만을 품고 살아온 그녀에게 그런 건 무용한 짓이며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을 뿐이라는 진부하고도 뻔한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카일의 삶만큼이나 센의 삶을 지켜 주고 싶었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었으므로. 결과적으로 벨리알과 함께 황성으로 가기를 결정한 것은 다름 아닌 센이 아니었나.

“식은 일주일 뒤라는군. 황성까진 거리가 멀어서 다녀오는 데에 꽤 시일이 걸릴 거다. 너를 두고 가려니 마음이 아프지만, 북부에서는 맛볼 수 없는 간식을 많이 사 올 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카일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벌떡 들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날 두고 가겠다고?’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등짝에 붙어서라도 어떻게든 따라가야 한다.

약혼식에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를 혼자 보내겠는가. 주연인 센과 벨리알, 거기다 로렌츠까지 있는 황성은 카일에게 그야말로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펑 터질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찍! 찍찍찍! (야! 나도 데려가! 혼자 가지 말고!)

나는 그의 손에 찰싹 붙어 몸을 비비적거렸다.

카일은 내가 애교라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샅샅이 핥다가, “그래, 그래. 네 마음 다 안다.” 같은 뻘소리만 내뱉은 후 나를 햄스터 집 안에다 다시 집어넣었다.

아.

인간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병으로 먼저 죽을 것 같다.

나는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톱밥 위에 벌러덩 누웠다.

망할 쥐생! 여기는 마수 말 알아듣는 인간도 없냐? 세상에 나쁜 마수가 없다고 해 주는 인간도 없냐고!

“우선 그 녀석의 방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군. 얌전히 놀고 있거라.”

―…….

그렇지!

캐슈넛으로 따라갈 수 없다면, 슈로 따라가면 된다.

나는 다시 몸을 벌떡 일으키고 서둘러 숨집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카일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불러오기’를 사용했다.

하얀빛이 내 몸을 감싸고, 눈을 떴을 때는 그가 마련해 준 내 방이었다.

“하……. 씨…….”

물론, 그가 떠 준 딸기 스웨터도 함께 말이다.

*

문을 나서려던 카일은 등 뒤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느끼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너무 찰나라서 잘못 보았나 싶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빛이 섬광탄처럼 팍 터졌다 사라지는 일이.

“…….”

잠시 방을 둘러보던 카일은 미간을 좁히고 문을 나서려던 걸음을 돌렸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점이 없으나, 혹시라도 마법사가 숨어들기라도 했으면 지금 발견해야 한다. 전에 서재까지 숨어 들어온 놈들이 캐슈넛을 훔쳐 달아나려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즈음이었지.”

여기. 햄스터집이 있는 근처.

카일은 햄스터 집을 반경으로 서재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책상 아래, 커튼 뒤. 심지어는 서랍 밑과 안까지 한 번씩 살펴보았으나 마법사는커녕 마법의 흔적조차 나오지 않았다.

‘착각이었나.’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햄스터 집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막으로 된 햄스터 집이 전등 아래에서 매끈하게 빛나고 있었다.

“캐슈넛.”

막상 햄스터 집 근처에 오니 한 번 더 보고 싶어진다.

카일은 헛기침을 하고 햄스터 집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밖에는 나와 있지 않으니 숨집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좁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미끄럼틀, 그네, 쳇바퀴, 그 외 기타 등등 조형물을 지나 숨집으로 손을 뻗었다. 보통 때면 엉덩이가 삐죽 나와 있을 텐데, 요즘 또 틈만 나면 쳇바퀴를 돌리더니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물론, 날렵해진 캐슈넛이 미끄럼틀에 끼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날이 갈수록 마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또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삶은 닭만 줄 게 아니라, 기름진 음식도 좀 줘야 하나. 북부 들쥐는 일단 잡식성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톱밥을 헤집고 있는데…….

“전하!”

벌컥!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재 문이 열렸다.

*

턱 끝까지 오른 숨을 채 갈무리하지 못한 채 서재 문을 박차듯 열자, 햄스터 집 앞에 서 있는 카일이 눈에 들어왔다.

“……슈?”

“네! 접니다!”

쓰러질 것 같지만, 어떻게든 우렁차게 대답했다.

카일은 숨집을 헤집던 손을 빼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피로도 잊고 그의 팔을 얼른 붙들었다.

“어쩐 일이지?”

“헉…… 허으으. 아니, 어우. 어쩐지, 큼, 전하가 절, 후우……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서.”

죽을힘을 다해서 뛰어온 탓에 단어가 드문드문 끊겼다. 거기다 비틀거리기까지 하기에 카일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내 허리를 붙잡아 단단히 지탱해 주었다.

아이고, 죽겠다.

나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하며 숨을 골랐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렇게 조금 쉬고 있으니 호흡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너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

“그쵸? 아! 제가 또 타이밍이 딱 좋았네!”

[(¬_¬ )]

너스레를 떠는 내 앞으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불만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알았다, 알았어. 이게 다 네 덕이다. 네가 알려 주지 않았으면 바로 달려올 생각도 못 했겠지.

‘불러오기’를 사용해서 인간이 된 직후. 그러니까, 딸기 털옷을 막 벗으려는 찰나에 눈앞으로 시스템 창이 떠올랐었다.

앞에 사이렌 모양 이모티콘을 붙이고 오타까지 내가며 전달받은 메시지는 [카이ㄹ 햄ㅅ터집 뒤지ㅗ 있음]이었다.

가운데 ‘ㅗ’는 실수인지 고의인지 좀 의심스럽지만, 아무튼 그 덕분에 옷을 갈아입고 바로 서재로 달려올 수 있었다.

보아하니 조금만 늦었으면 또 마수가 없어졌다고 성을 발칵 뒤집었을 것 같은데……. 한시도 눈을 못 떼겠다, 진짜.

“그래서, 저는 왜 찾으셨는데요?”

이미 알지만 모르는 척 웃었다. 그러자 나를 놓아준 카일이 품에서 악혼식 청첩장을 꺼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센과 벨리알의 약혼식 초대장이다. 너와 센은 친분이 있었으니, 함께 가면 좋을 듯해서 의사를 물으려던 참이었지.”

“당연히 가야죠! 대신!”

청첩장을 낚아챈 나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캐슈넛도 같이 가야 합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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