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34화 (3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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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찰에는 먼 곳까지 둘러보고 올 거다. 최근에 처음 보는 마수가 나타나기도 했으니, 더 신중을 기하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기사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톱밥에 누워 한가롭게 전등 선탠을 즐기던 나한테까지 들릴 정도였다.

나는 귀를 후비적거리고 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정찰이라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랑 같이 갔던 날부터 대충 한 달쯤 흘렀으니, 확실히 그럴 시기긴 했다.

―찍찍. 찍. (근데 왜 나한테는 간다는 말도 안 해?)

나는 아몬드며 마카다미아, 그리고 카일이 가져온 딸기를 먹어 치운 배를 쓱쓱 문지르며 똑바로 앉았다. 그새 살이 약간, 아주 약간 더 붙었는지 숨을 쉬기가 좀 힘들었다.

아무튼 혼자 보내기는 영 불안하니까, 역시 이번에도 따라가 보는 게 좋겠다. 사고가 나더라도 내 앞에서 나는 게 낫다. 그래야 수습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구석 자리로 기어갔다. 그리고 ‘불러오기’를 사용하려는 순간―.

“잠시.”

카일이 문을 열고 서재로 들어왔다.

나는 시스템 창을 누르려던 손을 급히 거두고, 다시 햄스터 집 중앙으로 미끄러졌다.

“캐슈넛.”

카일이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삐딱하게 누워 어, 왔냐 하는 몸짓을 취했다.

그러자 그는 내 몸을 들어다 자연스럽게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찍……. (그래…….)

이 자식이 주접을 안 떨고 꺼지면 카일 블레이크가 아니지.

나는 세상을 통달한 얼굴로 그의 키스를 받아 내다가 다녀오겠다는 인사에 손을 휙휙 흔들어 주었다. 빨리 나가라, 빨리.

카일은 문 앞에 서서 나를 두 번 정도 돌아보고 나서야 서재를 나섰다. 나는 얼른 ‘불러오기’를 사용해, 허겁지겁 옷을 꺼내 입었다.

진짜 이쯤 되면 옷 정도는 자동으로 입혀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더럽게 비효율적이네!

[(´。_。`)]

……네 탓 하는 거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거 알아. 그냥 한탄, 비슷한 거지.

시무룩한 시스템을 달래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빨래 더미나 빗자루를 든 사용인들과 친근하게 인사하며 부지런히 성 밖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문을 밀자, 눈이 시릴 만큼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몸을 감싸는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자, 카일. 나를 데려가. 네가 필요할 때 나타나는 이 완벽한 타이밍을 보라고.

“전하! ……엥?”

나는 횅한 성 앞을 보고 잠시 얼빠진 얼굴을 했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정문인데? 분명 여기서 대열을 정비하고 산으로 올라갈 텐데?

나는 허둥지둥 성 주변을 살폈다. 화단, 수풀, 기둥까지 샅샅이 살폈으나 그 흔한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건데!”

수상하게 성 곳곳을 뒤지던 내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옆을 지나가던 사용인 하나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말했다.

“카, 카일 전하라면 뒷문으로 가셨습니다.”

“예?”

“겁 없는 누가 따라오려 할지도 모른다시면서…….”

나는 얼빠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치를 설설 살피던 사용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후다닥 사라졌다.

그러니까, 지금…….

“대놓고 피했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 있다가, 다시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성에 상주하는 마수학자도 없는데, 굳이 나를 빼놓고 정찰을 간 이유에 대해서.

아니, 사실 오래 생각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기는 하다. 그때, 내가 절벽에서 떨어졌기 때문이겠지.

지켜 준다고 했던 상대를 눈앞에서 그렇게 떠나보냈으니까 충격이 크기는 했을 거다.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다시 잡을 수나 있을까, 밤새 혼자서 했을 생각들이 눈에 훤했다.

그래도, 이놈아.

“지키고 싶은 상대는 곁에 두는 게 맞는 거라고.”

터덜터덜 복도를 걸으면서 뜻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그새 카일과 함께 있는 시간에 퍽 익숙해지고 말았나 보다.

갈 곳 없이 한참을 떠돌다가 주방에서 갓 만든 샌드위치 두 개를 얻어먹고, 디저트라며 내준 스콘과 쿠키를 홍차와 함께 먹어 치운 뒤에 방으로 돌아와 ‘불러오기’를 해제했다.

―찍. (에효.)

나는 벌러덩 누워, 어두운 서재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감상에 잠길 시간은 없었다. 카일 생각을 하며 성을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오히려 전보다 몸이 더 무거워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묵직하지?’

나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집었다. 그런데 그냥은 몸이 일으켜지지 않아, 바닥을 짚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찍찍. (……나, 살이 꽤 찐 걸지도?)

이제는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이대로라면 영락없이 비만 햄스터가 돼서 치커리나 상추 같은 것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갑작스럽게 위기감을 느끼며 비척비척 쳇바퀴로 걸어갔다. 다시는, 다시는 이 흉물스러운 물건을 타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 이참에 다이어트나 하자.

카일이 돌아왔을 때 깜짝 놀라도록.

*

정찰은 보통 나흘이나 닷새 정도 걸린다. 이번엔 더 먼 데까지 간다고 했으니, 일주일쯤 걸리겠지. 그리고 오늘이 그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사이 나는 인간으로서도 햄스터로서도 꽤 바쁘게 움직였다.

햄스터일 때는 쳇바퀴를 돌리며 물렁물렁한 뱃살을 혹사시켰고, 인간일 때는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짜내 블레이크 영지에 부족한 것들을 채워 주었다.

그때 만들었던 누비옷은 영지민들에게도 보급하는 게 좋겠다 싶어 대량 생산에 들어간 터라, 성에 남아 있던 기사들도 사냥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물론, 나도 바느질을 도우면서 주방을 맡는 사용인들에게 보신에 좋은 여러 요리법을 알려 주었다. 가장 맛있었던 건 역시 물고기 마수였지.

때마침 블레이크 성의 남쪽에 계절 없이 꽝꽝 얼어 있는 연못이 있기에, 얼음낚시 겸 사냥을 해서 마수를 싹싹 긁어모았다.

다 같이 모여 모닥불을 피운 뒤, 그야말로 광란의 만찬을 즐겼다.

향신료와 소스를 고르게 발라 바짝 구운 생선…… 아니, 마수는 내가 여태 먹었던 어떤 해양 생물보다 맛있었다.

그 결과로 장터 한편에 둘이 먹다 둘 다 죽어도 모를 물고기 마수 구이가 생겼으니까, 겸사겸사 좋은 일이 아닐까? 개체가 많으면 얼음을 뚫고 나온다기도 했고.

어쨌든 정신없이, 그리고 바쁘게 지냈다. 덕분에 기적 수치는 어느새 24퍼센트로 올라 있었다. 카일이 없는데 이 정도면 대단한 발전이었다.

그 뜻인즉.

‘이곳 사람들이 그만큼 나를 받아들였다는 증거겠지.’

북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패시브 효과’ 덕을 본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성안 복도를 걸으면 사용인들이 인사를 건네 오고, 기사들은 잡아 온 마물을 가지고 나를 찾기도 한다. 식당에 들르면 갓 구운 빵이나 쿠키를 선물 받는데, 심지어 어제는 성의 막내 사용인이 직접 만들었다며 타르트를 주기도 했다.

‘……아직은 좀 어색하지만.’

분명, 나쁜 기분은 아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계를 바라보았다. 째깍째깍 달리는 시곗바늘은 이제 막 점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찍찍. 찍찍찍. (카일, 이 자식은 대체 언제 오는 거야? 날씨가 좋아서 돌아오는 게 힘들지도 않을 텐데.)

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눈앞에 반짝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艸`❤)]

아니다. 남편 기다리는 조강지처처럼 쳐다보지 마라. 그렇게 낭만적인 관계 아니라고.

내가 시스템 창에 대고 발차기를 하자, 얄밉게 옮겨 간 창이 반대쪽에서 또 반짝 떠올랐다.

‘어쭈?’

나는 두더지 머리를 쥐어박는 비인도적인 게임을 떠올리며 시스템 창을 향해 열심히 발차기 했다. 어쩌나 몰두했던지, 서재 문이 열리는 소리도 전혀 듣지 못했다.

“춤도 출 줄 알았느냐.”

머리 위에서 다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카일이 잔뜩 흐트러진 몰골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래 자리를 비워 미안하구나. 걱정되어 바로 달려왔는데, 씻고 와도 괜찮을 뻔했어. 이런 손으론 널 들어 올릴 수조차 없으니.”

카일이 흙과 피가 엉겨 붙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연스럽게 따라간 내 눈도 그 꼴을 그대로 보았다.

―찍찌익! (인마! 손이 왜 그 모양이야!)

나는 투명한 막에 찰싹 붙어서 카일을 향해 찍찍거렸다.

카일은 그걸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 정도로 생각했는지,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금방 다시 오겠다며 서재를 나가 버렸다.

나는 가슴을 퍽퍽 치다 ‘불러오기’를 사용했다.

오늘 안 쓰고 아껴 두길 잘했지. 저 꼴을 보고 어떻게 참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몸뚱어리,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이쯤이면 됐나.”

나는 카일의 방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똑똑 가볍게 노크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일이 가운만 대충 걸친 채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팔, 다친 곳 없음. 다리, 두 쪽 다 멀쩡함. 가슴, 생채기 없음. 좋아. 그냥 꾀죄죄해진 것뿐이었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의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이번에는 오래 걸리셨네요.”

“전에 규격 외의 마수가 등장했었으니 멀리까지 다녀왔다. 확인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여.”

“같이 가자고도 안 하시고.”

“모든 정찰에 네가 따라다닐 필요는 없지. 바쁘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팔짱을 끼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붉은 눈동자는 그것만이 전부라는 양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숨겨 봤자 너를 너보다 더 잘 아는 건 나다.

“제가 죽을까 두려우신 건 아니고요?”

“…….”

카일이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곧 그렇노라는 대답과 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카일의 머리를 덮은 수건의 양 끄트머리를 부드럽게 쥐어 당겼다. 떨쳐 낼 법도 한데, 그가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나와 거리를 좁혔다.

“내일은 활을 알려 주세요. 저는 은근히 금방 배우는 편이니까, 전하께서 가르치는 보람도 있을걸요.”

“…….”

카일의 미간이 좁아졌다가, 짧은 한숨으로 느슨하게 풀어졌다.

일주일 동안 그리웠던 그와 그의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감아 당기고, 나는 거절 없이 그 품에 나를 맡겼다. 익숙한 체취가 코끝에 감돌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쥐고 있던 수건을 놓고 카일의 목에 팔을 둘렀다. 기꺼이 가르쳐 주겠노라고, 그리고 다녀왔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기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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