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33화 (33/129)

33

똑똑.

짧고 분명한 노크 소리에도 카일은 답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셋을 센 후,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무언가 한참을 되새기는 듯했다.

방 안을 잠식한 정적이 어쩐지 그의 고독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카일의 근처로 다가가, 가까스로 마른 입술을 뗐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십니까.”

“……죽여 버리겠다고 했었다.”

“누구에게 말입니까.”

“형제에게.”

형제.

나는 그 단어를 입안으로 곱씹었다.

카일과 벨리알, 그리고 로렌츠는 어릴 적 황궁에서 같이 지냈었다.

물론 그때 사이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건 다 어른의 사정이었지 그 어린애들이 진실로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함께 목검을 맞대기도 하고, 탄생일을 축복하기도 했겠지.

그런데, 죽여 버리겠다고.

그 말은 언제 했을까. 그리고 그 말을 하기까지 어린 카일의 마음은 얼마나 뭉그러졌던 걸까.

내막은 알지 못해도, 어쩌면 그 말 때문에 북부로 쫓겨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인의 그러니까, 첩의 자식인 카일은 황궁 사람들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나는 카일의 옆에 앉아,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짙게 드리운 그의 그늘엔 후회와 회한 따위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보란 듯이 살아남고 싶었다. 세상일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고 싶었어. 그리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렇게 없애고 싶다고 해서 다 치워지는 목숨만 있는 것이 아님을. 때문에 살아남아서, 살아남아서, 기어코 살아남아서…….”

그에게 생존만큼 지긋지긋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건 숨을 쉬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때가 되면 먹을 음식이 필요하고, 해가 지면 몸을 눕힐 잠자리가 필요하다. 체온이 내려가면 옷을 더 입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하다.

그래. 그랬지.

내가 <겨울의 심장>에서 카일에게 감화되었던 이유. 북부로 내쫓긴 그의 삶이 내 삶과 닮아 있었기 때문에.

“…….”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말로도 그 목소리에 담긴 슬픔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다만 그 모든 시간을 견뎌 온 그가 고독했다는 것만큼은, 차마 이 북부의 추위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서늘하고 투박한 시간이었음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복수가 전부는 아니더군. 시간이 한참을 지나서야 깨달았다. 복수한다고 해서, 나와 나를 이루는 것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죽는 날까지 클라인 공작가의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겠지만, 그 복수에 내 삶을 다 바칠 생각은 없다.”

카일은 어느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그 붉은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뇌리에 깊이 박혀 들었다.

“……어째서요?”

겨우 짜낸 목소리는 형편없었다. 끝이 조금 갈라져서 내가 듣기에도 못나 보였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스템이 알려 줬던 카일의 목적은 분명 복수였으니까. 그리고 그 목적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한들, 아무도 그에게 손가락질하지 못할 인생이었으므로.

“사랑하는 것이 생겼어. 지키고 싶었고.”

그렇게 말하는 카일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어서, 그게 꼭 내게 하는 말처럼 느껴진 것은 비밀로 두고 싶었다.

나는 홧홧해진 목덜미를 문지르며 소파 팔걸이 쪽으로 몸을 물렸다.

“그래도 가끔은, 그 때문에 복수를 그만둔다면 내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서글프고 억울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덤덤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젖어 있지 않아 더 슬프게 느껴졌다. 나는 불에 덴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죠! 잘했다고 하실 겁…….”

그러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카일이, 한 팔로 내 허리를 감고 제 쪽으로 당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남은 말을 중얼거렸다.

“부모가 바라는 게 뭡니까.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거잖아요. 아, 태어나길 잘했다, 하고 살아남는…….”

눈가를 찡그리며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님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오른 탓이다.

눈과 코는 어떻게 생겼고, 웃을 때 어떤 표정을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어땠는지. 이젠 그릴 수조차 없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알 수 있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삼촌 집에서 착취당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정하고 부드러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셨을 거다.

꼭 카일, 너 같은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나는 팔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가 내 허리를 으스러지게 당겨 안았다.

“대단하다고 하실 겁니다. 잘 포기했다고 하시겠죠. 떠난 사람은 가슴에 묻고,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이 웃으라고 하실 겁니다.”

“신기하게도. 네가 그렇다 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어.”

빈말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 말에 내가 위로받는 것 같았다.

나는 웃음 섞인 숨을 흘리고 그를 몇 번 토닥였다. 그리고 뒤늦게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상체를 뺐다. 사실, 아까부터 숨 막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

“……저기.”

하지만 상체를 얼마나 빼든, 허리는 그의 품에 딱 붙어 있었다.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그를, 정확히는 완전무결한 척하는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차피 ‘불러오기’ 시간도 좀 남았으니까.

“놓기 싫으면 대답이나 더 해 보십쇼. 복수라는 건, 반란 같은 거였습니까?”

“그래. 내 어머니는 사실 세레나가 될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세레나인 클라인 공작가에서 누명을 씌워 억울하게 쫓겨났지. 차가운 뒷골목을 전전하며 혼자 힘으로 나를 기르셨어. 그녀가 죽고 내가 황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왕위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없고요? 일단, 명분은 있잖습니까.”

“그럴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깟 왕위 같은 건 저들끼리 알아서 했으면 좋겠군.”

카일이 심드렁하게 말하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여기가 내 고향이다.”

그런 것쯤 말로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이곳과 이곳의 백성들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외지인인 내가 잠깐 지내도 알 만큼 티가 났다.

그건 원작인 <겨울의 심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깎아지른 절벽과 눈밖에 없는 대지임에도 이곳에서 살아가는 백성의 행복한 얼굴은 오히려 황성보다 낫다고 했었지.

‘……그럼, 왜.’

대체 왜 원작의 흐름이 역모죄로 흘렀을까. 이대로라면 카일은 반란을 포기하고, 그저 영지민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바랐을 텐데.

이것도 벨리알이나 로렌츠가 쳐 놓은 덫일까? 하나도 머리가 아팠는데, 둘이 되니 더 대책이 없어진다. 어쨌든 주시하다 보면 뭐가 나오겠지. 당분간은 마주칠 일도 없을 거고.

나는 나름대로 정리를 끝마친 뒤, 카일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그럼, 그 고향 좀 더 키워 봅시다. 지금 블레이크 영지는 전하께만 너무 의지하고 있다고요.”

“……아니라곤 말 못 하겠군.”

“왕래도 드물고, 물자도 꽉 막혀 있어서 솔직히 어떻게 이만큼 성장했는지 의문이거든요. 그것도 다 혼자 해결하셨을 것 같지만.”

“……흠.”

“아무튼, 먹고사는 게 어려운 척박한 땅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고립돼 있어요. 전하가 자리를 길게 비우시면, 이 땅이 위험할 수도 있을걸요.”

“그렇겠지.”

카일은 제법 진지하게 내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열변을 토하며 그의 품에서 열심히 손짓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이루긴 힘들겠지만, 천천히 열어 보는 겁니다. 일단 정치적으로 고립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려면 아군. 아군이 있어야 한다.

카일은 유능하지만, 외골수적 성질이 강하다. 물론 북부 사람들과의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북부에 한정돼 있다.

‘딱히 영지 외부의 귀족들과 잘 지내는 꼴은 보지 못했지.’

그래서는 궁지에 쉽게 몰린다.

다행히도 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얘기해 보라는 듯, 어떤 말도 얹지 않고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리고 벨리알 전하를 공격한 세력이 누군지도 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전하의 아군은 아닐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고 손잡았다가 뒤통수 맞는 일은 피해야죠.”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하지 않던가?”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짚이는 데가 있나.”

“……글쎄요. 마수학적 기밀입니다.”

나는 그제야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카일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이제 그런 시선쯤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둘러대는군.”

“눈감아 주기로 하신 줄 알았는데요.”

나는 시스템 창에 뜬 5분이라는 시간을 곱씹으며 슬슬 돌아갈 채비를 했다. 카일의 눈치를 한 번, 햄스터 집의 눈치를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말을 한 번 더 덧붙였다.

“꼭 알아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좋습니다. 그럼, 이만…….”

“그렇게 사라져서 매번 어디로 가는 거지? 성안에선 통 보이지 않던데.”

“알려고 하지 마세요. 다칩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 또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이쯤 되면 카일이 신기할 지경이다. 신원도 불분명하고, 뭐 하나 제대로 알려 준 게 없는 나를 왜 가까이 두는 건지.

영지민에 대한 믿음일까.

아니면, 정말 내가 신경이 쓰여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는 고개를 휙휙 내젓고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쳇바퀴 돌렸던 게 다 도움이 되네. 그래도 생전보단 발이 빨라진 것 같으니까.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