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32화 (3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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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어흐. 어억. 죽겠다…….”

서재에서 나온 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었다. 젖 먹던 힘까지 더해, 아주 필사적으로 달렸다.

내 방까지 멀지 않아서 다행이지. 까딱하면 ‘불러오기’ 시간이 다 돼 복도에 옷만 남기고 사라지거나 체력 부족으로 숨이 꼴딱 넘어가, 그대로 두 번째 생을 마감할 뻔했다.

어쨌건 전력 질주한 뒤, 침대로 골인한 나는 이불을 덮고 바로 ‘불러오기’를 해제했다. 그리고 미리 지정해 두었던 톱밥 아래로 군더더기 없이 소환되었다.

―찍. (에휴.)

이렇게 지내다간 다시 살아나기도 전에 요절하겠다…….

나는 비틀거리며 햄스터 집 가운데로 걸어가, 그대로 대 자로 뻗어 버렸다. 하늘이 노랗다, 노래.

“운동이라도 했느냐. 힘들어 보이는구나.”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카일이 헉헉거리는 나를 들어 올려선 무작정 뽀뽀를 갈기기 시작했다. 앞발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나는, 그저 축 늘어져 그가 하는 모든 애정 행각을 무기력하게 받았다.

―찍……. (속 편한 새끼…….)

“그래, 그래. 나도 네가 좋다.”

―찍……. (눈치 없는 새끼…….)

“오늘은 내가 선물을 만들어 주마.”

나를 내려놓은 카일이 어젯밤 내게 깔아 주었던 손수건 안에 오리털 한 줌을 넣었다. 그러곤 아주 섬세한 손길로 누비를 뜨기 시작했다.

어딘가 어설프고 실밥이 삐죽 튀어나오긴 했지만, 전에 만들었던 털실 수세미보단 모양이 괜찮아 보였다. 그새 연습이라도 했나.

나는 가물가물 감기는 눈꺼풀을 애써 치뜨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끝없는 겨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냐.

그냥 마수 한 마리일 뿐인데.

소중한 것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얹어지는 손수건을 느끼며 나는 스르륵 눈을 감았다.

―찌……. (부지런하고, 눈치 없고, 다정한 새끼…….)

살아서 돌아가게 되면, 언젠가 이날의 일도 추억하게 될까.

그럼 그건, 분명 행복한 기억일 것이다.

*

―…….

“…….”

“…….”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었다.

나는 캐슈넛 한 알을 방패처럼 끌어안고 나를 내려다보는 카일과 마법사를 번갈아 눈에 담았다.

서재에 들어온 지 삼십 분째. 그들은 나를 실험용 쥐라도 되는 양 끊임없이 관찰 중이었다. 진짜 그만 좀 쳐다봐라. 아주 뚫어지겠다.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도 들렸다.

범인은 아까부터 카일의 옆에서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마법사였다.

“그,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야 결심이 섰는지, 중년쯤 되어 보이는 마법사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들어 올렸다.

승차감은 전혀 좋지 않았다. 내가 앉은 손바닥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미친 듯이 떨려 댔기 때문이었다.

―찍……. (저기요, 아저씨…….)

이게 놀이 기구야, 뭐야?

나는 덜덜 떠는 마법사의 손바닥에 앉아, 경계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카일이 찢어 죽일 듯 노려보고 있으니 긴장이 되기는 하겠지. 근데, 쟤가 나쁜 뜻으로 저러는 건 아니거든요? 다 걱정돼서 그래, 걱정돼서. 그냥 평범한 마수 애호가라고.

심드렁하게 올려다보고 있자니, 손등으로 땀을 훔친 마법사가 이내 내 몸에 대고 푸른빛의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꾹 감고 품 안의 캐슈넛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시스템도 모른다던 미지의 힘을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막을 방법이 없기에 지금으로서는 도박을 걸어 보는 게 최선이었다. 내가 자라지 않는 이상, 카일은 지금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이 방법을 썼을 테니까.

그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

퉁.

그런데, 무언가 둔탁한 것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조금 밀려났다.

나는 하마터면 놓칠 뻔한 캐슈넛을 더 꽉 끌어안으며 고개를 쭉 빼고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뭔데? 뭐가 날아왔었는데?

“……한 건가?”

“한 겁니다만…….”

말라비틀어질 듯한 침묵이 감돌았다. 마법사가 다시금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내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 이번엔 더 세게 해 보겠습니다.”

호기롭게 말한 것치고는 아직 덜덜 떨고만 있다.

댁 인생도 참 기구하다. 나는 앞발로 마법사의 손을 툭툭 두드려 주곤 짧게 심호흡을 했다. 와라, 준비됐다.

“……흡!”

마법사가 이상한 기합 소리를 내며 손바닥 가득 푸른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용맹한 기세로 쏘아져 온 마력이 내 몸에 닿는 순간.

팅.

팅.

톡.

내 몸이 두 바퀴 데구루루 구르다 벽에 부딪혀, 카일이 뜨다 만 털실에 파묻혔다.

“캐슈넛!”

카일이 재빨리 내 몸을 들어 올렸다. 나는 혼몽한 정신을 갈무리하며 전신을 관통하는 정전기 같은 느낌을 떨치기 위해 몸을 털었다.

‘대체 뭔데?’

이게 뭐야? 마력이 원래 이렇게 짜릿한 거야?

[부□절한 힘이 □지 되□습니□.]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글자는 픽셀 단위로 쪼개져 알아보기 어려우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았다.

‘내 몸이랑 이 세계의 마력이 충돌한다는 건가? 정찰 때, 예정에 없던 마수가 등장했던 것도 그렇고?’

내가 턱 밑을 문지르며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이, 카일은 내 몸 여기저기를 열심히 살피며 상처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전하. 그, 보통 마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때, 땀을 비 오듯이 흘리던 마법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조그만 게 보통 마수가 아니면 뭐냔 말이냐!”

카일이 손바닥으로 나를 가리며 소리치자, 멀거니 서 있던 마법사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야, 야. 너무 뭐라 하지 마. 쟤 잘못 아니래.

“그, 그렇지만 마력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튀, 튕겨 내는 것이…….”

마법사가 횡설수설하는 사이, 나는 저 멀리 날아갔던 캐슈넛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날아가면서 구르고 부딪혔는지 끄트머리가 조금 깨져 있었다. 먼지도 조금 묻어 있는 것 같고.

―…….

나는 손에 든 캐슈넛을 대차게 패대기쳤다. 에라, 안 먹어.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어. ‘불러오기’ 해서 밥이나 먹어야지.

나는 자리에 털썩 앉아 여전히 실랑이, 아니, 한쪽이 일방적으로 곤욕을 겪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런 몸이라서 말릴 수도 없고. 그냥 적당히 끝나길 기다려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글자가 어긋나 있는 시스템 창을 살피는데.

“전하!”

돌연 들려온 큰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벌컥 열리는 서재 문을 바라보았다.

아는 얼굴이다. 정찰대에 속해 있던 카일의 기사 중 한 명이었지.

“무슨 일이냐. 손님이 와 있는데, 이리도 급히.”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벨리알 황자님께서 피습을 당하셨다는 서신이 도착해서……!”

“……피습?”

……뭐? 피습?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카일이 마법사를 물리고 용맹하게 선 나를 잡아 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햄스터 집을 탁 닫아 버린 뒤, 문가에 있는 기사에게로 다가갔다.

얌마. 안에서 해! 나도 좀 듣자!

나는 투명한 막에 찰싹 붙어 귀를 쫑긋거렸다. 다행히 서재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어렴풋하게나마 대화를 훔쳐 들을 수 있었다.

요약하자면, 황성으로 돌아가던 벨리알이 의문의 괴한 무리에게 급습을 당했단다. 마차가 뒤집힐 정도로 큰 사고였지만, 위치가 황성과 더 가까웠던 탓에 당장 블레이크 영지까지 소식이 전해지기까지 시일이 좀 걸렸다고…….

나는 팔짱을 끼고 터벅터벅 햄스터 집 안을 걸었다.

<겨울의 심장> 소설의 초반부.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내가 아는 습격이라고 하면 카일이 오른팔에 상처를 입게 된, 북부에 숨어 있던 의문의 병사들로 인한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카일에게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벨리알이 습격을 당했다?

‘……뭔가 이상한데.’

그렇다면, 원작에서 카일을 기습했던 세력은 벨리알이 아니란 말인가? 나는 생각 그네에 앉아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지금 황성을 주름잡고 있는 세력이라 하면 단연 2황자, 벨리알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특출난 리더십에 사람을 홀리는 미소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수도의 모든 백성이 그를 잘 따르는 판국이었다.

그러니 황궁 내부라고 다를까. 내가 알기론 벌써 신하 중 몇몇은 대놓고 벨리알을 황제로 여기고 있다. 그의 손위로 1황자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근데 걔, 이름이 뭐였더라?’

그때, 허공에 반짝하고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로렌츠 세레나 마인하르트는 성정이 유약하고 비겁했다. 무력으로는 카일에게 이길 수 없고, 지력으로는 벨리알에게 이길 수 없으니, 남은 것은 자신이 1황자라는 자존심뿐이었다.]

‘맞다. 로렌츠.’

이름까지 재수 없어서 잊고 있었다.

나는 책에서 봤던 그의 묘사를 떠올렸다. 벨리알보다 옅은 색소의 머리칼. 일견 비추는 날카로운 인상은 그의 어머니 세레나를 닮았고, 짙은 눈썹이며 선명한 이목구비는 황제를 닮았다고 했었지.

[눈_눈]

그래. 그런 인상.

그러나 정통성을 중요시하는 황가에서는 사실 벨리알의 세력이 더 강하다고 한들, 그가 황제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1황자 로렌츠를 지지하는 세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황제 역시 장남에게 나라를 맡기고 싶을 테니까.

그래서 여태 벨리알이 아무리 활개를 치고 다녀도 로렌츠가 아무 간섭도 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어도 황제가 될 수 있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찍. (어렵다, 어려워.)

내가 습관처럼 손으로 쳇바퀴를 돌리는 사이, 조금 가라앉은 듯한 얼굴의 카일이 서재로 돌아왔다.

딱 봐도 침전한 것 같다. 그렇게 원수처럼 굴었는데 걱정이 되냐. 속도 좋은 새끼.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구석진 자리에서 ‘불러오기’를 사용했다. 햄스터 돌볼 정신도 없는 것 같으니, 슈가 되기엔 지금이 제격이다.

무엇보다 이 작은 몸으로는 그에게 필요한 위로도 건네지 못할 테니까. 지금은 인간으로서 카일의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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