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7화 (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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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오기’는 00시 기준, 1일 1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불러오기’의 지속 시간은 30분입니다.]

[‘불러오기’의 위치가 지정되지 않아, 가장 가까운 위치로 자동 지정됩니다.]

[행운을 빌어요! (ෆ`꒳´ෆ)]

순간,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약간의 두통이 있었으나 다행히 아주 잠깐이었다. ……문제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 그것뿐이라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불러오기’는 인간이 되는 스킬이었다. 시스템이 건넨 정보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 삼십 분의 제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

나는 차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내 몸뚱이를 내려다보았다.

“미친…….”

없다.

옷이 없다.

지금 나는 그야말로 홀딱 벗은 상태였다.

미친. 진짜 미친. 신이여. 어떻게 이딴…….

[๑‘͡o_‘͡o๑;;]

그때, 무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인기척이 느껴졌다.

끼익―.

욕실 문 열리는 소리가 이토록 공포스럽게 느껴진 적이 있던가. 나는 빳빳하게 굳은 채 30초 동안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출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도망가자.’

여기서 걸리면 끝이다. 겁도 없이 대공작의 서재에 쳐들어온, 그것도 속옷 한 장 걸치지 않은 신원 미상의 변태로 죽고 싶지는 않다.

그냥 수상한 사람도 아니고, 수상한 변태 새끼인 거잖아! 이전 생보다 더 불행하다. 비참하다 못해 수치스럽다. 차라리 햄스터가 나을 지경이다.

‘……옷! 옷 어디 있어!’

나는 의자에 걸린 검은 셔츠에 팔을 꿰고 허겁지겁 서재를 박차고 나왔다. 바지까지 챙길 정신은 없었다. 애초에 사이즈가 커서 맞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보다, 어떻게 옷 한 벌을 안 주냐!

“경비병!”

조금의 시간 차를 두고 서재 안쪽에서 카일의 고함이 들렸다. 나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되는 대로 달렸다. 인생에서 이렇게 열심히 달려 본 건 결단코 처음이었다.

“헉, 흐억…….”

나는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꺾어진 복도에 몸을 붙였다.

이럴 거면 카멜레온이나 치타 같은 걸로 빙의시켜 주든가! 쳇바퀴만 뒈지게 타게 하더니, 예행이었냐!?

시스템을 불러 울분을 토하고 있는데, 곧 반대편 복도에서 경비병들이 몰려왔다. 슬쩍 고개를 빼서 보니 때마침 카일도 방을 나서고 있었다.

“없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음산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눈치도 없이 뭐가 없어졌냐고 물었다가는 ‘네 목숨이 없어졌다’ 하고 머리와 몸통을 예쁘게 분리해 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병사들이 매서운 살기 앞에서 허둥거리자, 카일이 호통쳤다.

“캐슈넛이 없어졌단 말이다!”

……침입자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냐?

“캐슈넛이라면…… 그, 쥐…… 읍―.”

“마수가 나간 것을 보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어떻게 열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도망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홀린 것처럼 카일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와서 뛰어간다고 하더라도 귀 밝은 그에게 다 들킬 것 같다. 벽에 딱 붙어서 숨죽이고 있는 게 제일이지.

“없다. 사라졌어.”

“성의 문과 창문을 모두 닫고 찾아보겠습니다. 크기가 작으니 그리 멀리 가지 않았을 겁니다, 전하.”

“사단 소속 마법사들을 불러라. 서탑 맨 위층에 있을 거다.”

“……예? 손님들을요?”

“아직 어리긴 해도 마수지 않으냐. 마석이 생겼을진 모르겠지만, 흔적이라도 찾아봐야지.”

카일이 이를 갈며 말했다.

“값은 부르는 대로. 아니, 부르는 금액의 두 배를 준다고 해라.”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하…….”

뒤늦게 합류한 기사가 걸친 외투를 주섬주섬 벗더니 내미는 것이 보였다.

“왜 옷도 안 입으시고 계신 겁니까?”

……미안하게 됐다. 대공 전하께 새 셔츠 좀 갖다드려라. 이건 내가 좀 입어야겠다.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알몸으로 다닐 수는 없잖아.

[↓ᏊꈍꈊꈍᏊ↓]

아, 어쩌라고. 바지까지 싹 다 털어 입다가 그 자리에서 들키자고? 왜. 뭐. 왜. 하의 실종 패션 처음 보냐?

나는 깐족거리는 시스템을 무시하고 병사들의 반대편으로 조심조심 도망쳤다.

‘사람이 된 것까지는 좋은데…….’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발바닥이 시리다 못해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리는 물론이고 손, 귀도 얼얼하다.

‘대체 이 차디찬 성에서 사람이 어떻게 사는 거지.’

이게 사람 살라고 만든 곳이 맞나? 나는 입김을 호호 불어 대며 청소 도구 사이로 슬쩍 몸을 욱여넣고 잠시 기다렸다.

“창문! 창문부터 닫아!”

“아무리 마수가 지능이 없대도, 창문 너머로 그냥 떨어지겠어?”

“야. 모르는 일이다? 그러다 무슨 일 나면 우리 다 죽어.”

그래. 그 문제의 햄스터가 창문 너머로 몸을 내던지지는 않겠지만 좋은 자세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잖아. 지금의 나처럼.

“찾는 건 나중에 하고, 창문이랑 문부터 빨리빨리 닫아! 나가지만 않으면 가능성이 있겠지!”

“손님들에게 양해 구하는 건 내가 할게.”

“센, 그 녀석은 대체 어디 갔어? 그 녀석이 제일 발이 빠른데.”

“또 안 쓰는 방에서 쉬고 있는 거 아냐?”

“어휴!”

사람들이 와르르 지나갔다. 긴급한 상황 덕에 빗자루와 대걸레 사이에 몸을 숨긴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지?’

셔츠 하나 걸쳐 입고 나오기는 했지만, 대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20분 뒤 ‘불러오기’가 해제됩니다.]

‘그럼 햄스터로 돌아간다는 뜻이냐.’

[반경 10m 내로 ‘불러오기’의 위치를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 성이 발칵 뒤집혔는데 짜잔, 사실은 집에 잘 있었답니다! 할 수도 없다고.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잖아!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인간이 되었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고민거리만 산더미처럼 쌓이고 말았다.

“혹시, 전생에 꽈배기였는지…….”

팔자가 꼬여도 열심히 꼬인다.

그나저나, 인간 상태가 유지되는 시간이 너무 짧다. 30분이라니. 나머지 23시간 30분은 햄스터로 살라는 거잖아.

[기적 수치를 올리면 ‘불러오기’의 지속 시간이 점점 길어집니다!]

에라이.

일단은 햄스터로 돌아가고 나면 적당히 사람들 눈에 잘 띄는 데로 돌아다녀야겠다. 운 좋으면 누가 주워 줄 거고, 아니면 내 발로 찾아가야지.

딱히 반려 햄스터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같은 기적 수치로 햄스터와 사람을 오가 봤자 상황을 바꾸기는커녕 살아남는 것부터가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원작 내용을 알고 있든, 시스템이 도와주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재수 없어서 부츠에 차이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저승행이다.

[곧 ‘불러오기’가 종료됩니다!]

이제야 사람이 되었는데, 만끽하지도 못하고 30분이 흘러가 버렸다. 아쉬워 죽겠네.

그러고 보니, 원작에도 북부 축제에 관한 내용이 나왔다. 고아에 빈민이었던 여주인공 세레나가 빙의한 뒤, 2황자 벨리알을 만나는 때가 이때였던가?

그리고 이 시기에 어떤 사고가 일어나 벨리알과 카일의 사이가 원수만도 못하게 되는데, 그게 뭐였더라…….

―찍. (시간 더럽게 빠르네.)

고민하는 사이에 30분이 지났다.

파란빛에 휩싸여 본래대로…… 아니, 아니지. 내가 지금 무슨 망발을? 난 원래 사람이다. 햄스터가 아니라.

크흠, 다시.

파란빛에 휩싸여 햄스터가 된 나는 바닥에 떨어진 검은 셔츠를 입으로 물고 질질 당겼다.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인간이 될 수 있으니까, 그때 입어야 할 것 같은데…….

‘비싼 옷이려나?’

미안하다. 한 벌만 적선해라. 아무리 그래도 네가 내 3층 집에 쑤셔 넣은 으리으리한 가구들보다는 셔츠 한 장이 훨씬 싸지 않겠냐.

“마수가 없어졌다고? 우리에 넣고 키우신다며?”

“뭐, 우리를 뚫고 나오기라도 한 모양이지.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냥 그렇게 됐대.”

“마법사들은?”

“못 찾았대. 마력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더라.”

“……그게 말이 돼?”

그야, 내가 빙의하면서 마수가 아닌 일반 햄스터로 바뀌었을 테니까 마력의 흐름이 안 느껴지겠지.

신나게 헛다리를 짚고 있을 마법사들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돈은 대공이 섭섭지 않게 쥐여 줄 테니까 큰 걱정은 안 한다.

“작은 쥐랑 비슷한 크기라고 했지? 그럼 멀리 못 갔을 것 같은데.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 적당히 피했을 테니까…… 내가 이쪽을 둘러볼게. 네가 반대편을 찾아 줄래? 혹시, 창문이나 문 안 닫힌 곳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봐 주고.”

창고 구석에 옷을 쑤셔 넣은 뒤 물건 사이에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는데,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 누군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들켜 주자. 그럼 내가 성을 쏘다닐 겨를도 없이 알아서 카일에게 잘 데려다주겠지.

“여기 있었구나.”

나는 고개를 들고 때마침 나를 찾은 하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

차분한 갈색 머리칼과 맑은 녹색 눈동자. 그리고 코와 뺨을 수놓은 별자리 같은 주근깨. 얼굴을 절반이나 가리는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세레나.]

원작의 여주인공인 세레나였다. 시스템 창에서 본 적 있는 바로 그 얼굴이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고?’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수도에서 벨리알과 함께 있었어야 할 사람이 왜 북부에…….

‘아.’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내가 빙의하는 바람에 그녀가 빙의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원작의 세레나와 다른 사람일까?

어쩌면 이야기가 바뀌게 되어, 지금은 이름이 세레나조차 아닐지도 모른다. ‘세레나’는 황실의 여인으로 내정된 이를 부르는 호칭이니까. 이전에 어렴풋이 예상했던 대로다.

“센! 찾았어?”

그녀의 등 뒤에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뻗어진 그녀의 손바닥 위로 얌전히 기어 올라갔다.

‘좋아. 너로 정했다.’

나 때문에 팔자가 바뀌게 되었으니,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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