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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의 햄스터-3화 (3/129)

3

신이여, 이 빌어먹을 햄스터 오타쿠를 어떻게든 해 주세요, 예?

“지금 한쪽 털만 찌그러진 건가?”

모로 누워서 종일 잔 인간…… 아니, 햄스터 처음 보냐?

“충격적일 정도로 귀엽군…….”

야, 입술 치워라.

주둥이.

주둥이 좀…….

이 몹쓸 주둥아리 좀!

냉철하고 엄격한 북방의 패자, 마인하르트 제국의 최강자, 피의 대공작…… 은 개뿔. 눈빛만으로 사람 여럿 죽일 것 같은 인상으로 주접이 저세상 레벨이었다.

열 번 했으면 그만해라. 얼굴 좀 치우라니까!

“어디 아픈 줄 알았다, 캐슈넛. 오래 자더구나.”

유감스럽게도 아주 멀쩡합니다. 원래 햄스터는 오래 잔다던데요. 나도 이렇게까지 퍼질러 잘 줄은 몰랐다고.

상대가 카일이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웬만해서는 아프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침 한 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그날로 블레이크 성의 모든 창문이 잠기고, 공기가 절절 끓을 때까지 벽난로에 불을 땔 것만 같다.

내가 일어난 걸 확인한 카일은 나를 손에 올려 두고 미친 듯이 뽀뽀를 갈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딱 죽을 맛이었다.

―찍! (놔!)

놓으라고. 이거 안 놔? 확 깨물려 봐야 햄스터 무서운 줄 알……!

[퀘스트! 퀘스트! (⊙﹏⊙)!]

시스템이 허겁지겁 등장해, 나를 만류했다.

그를 깨물기 위해 검지를 양손으로 꽉 쥐었던 나는 멈칫한 채 허공을 가만히 응시했다.

‘……깜박했다. 인간의 좋은 친구가 되기로 했었지.’

너무 귀찮게 굴어서 반려 햄스터의 본분을 잊고 기똥차게 물어뜯을 뻔했다.

어쨌든, 나는 카일을 깨물지 않았다.

그래, 나름대로 지성인이라고. 어쩌다 보니 햄스터 가죽을 좀 뒤집어쓰게 되었지만, 알맹이는 고등 교육까지 받은 스물일곱 살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아무나 물어뜯으면 그게 짐승이랑 뭐가 다르겠는가.

나는 지성인, 지성인이다.

“지금…….”

카일이 조금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깨물려던 것을 들켰나? 나는 조금 무안해져서 그를 곁눈질했다.

‘뭐. 왜. 뭐.’

미수잖아. 물지는 않았다고. 입만 살짝 가져다 댔는데.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지? 실로 귀신 같은 육감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북부 대공…….

“내게 뽀뽀한 건가? 정말 귀엽군.”

에라, 곰보다 눈치 없는 놈……. 넌 북부대공이 아니라 북부대곰이다. 어쨌든, 큰 유혹을 참아 낸 만큼 퀘스트가 무사히 완료되었다.

[기적 수치, 현재 1.3%]

‘……이 숫자는 뭐냐.’

작은 기적이라더니 정말 작았다. 이래서 어느 세월에 되살아나냐. 앓느니 죽지.

[(ง°̀ω°́)ง 인간성을 살릴 기회!]

나는 카일의 주접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보상을 살폈다.

[인간적인 햄스터, 아니, 어쩌면 정말 인간일 수도!]

‘그래. 그거야! 잘한다!’

혹시, 진짜 인간으로 처지를 바꿔 주려는 건가?

그래, 진작 이랬어야지. 햄스터 빙의는 좀 그랬어. 카일을 안 살려내겠다고는 안 할 테니까, 일단 이 지긋지긋한 햄스터 팔자부터 어떻게 해 보고 좀…….

[천 리 길도 한 쳇바퀴부터!]

뭐?

[쳇바퀴 천 바퀴를 굴려 보세요.]

[보상 : ‘불러오기’.]

‘천 바퀴?’

지금 나랑 장난해? 불러오기는 무슨 불러오기야! 매를 부르냐? 막 부르네?

나는 허공에 주먹을 쥐어서 번쩍 들어 보였다. 자식아, 한 대만 맞고 시작하자. 딱 한 대만. 턱 대라.

[(˃̣̣̥᷄⌓˂̣̣̥᷅);;;]

울지 마라. 눈물 바람에 약해질 생각 없으니까. 게다가, ‘불러오기’가 뭔지 알고 쳇바퀴를 천 바퀴씩이나 돌리냐는 말이야. 곧장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 일단 들어나 보자.’

뭔지 들어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른 퀘스트 받게.

[좋은 거예요!]

나는 다시 주먹을 치켜들었다.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라. 난 웹사이트 회원 가입할 때도 필수 약관만 골라서 체크하는 사람이거든? 누굴 속여 먹으려고 들어.

[(́ඉ⌓ඉ);;;]

내가 시스템과 씨름하는 사이 카일은 그새 내 이마와 등, 귀 뒤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 됐다.

냅다 뽀뽀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건전하기도 하고.

[힌트를 드리는 게 최선이에요.]

시스템이 미안한지 몇 번인가 깜빡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보상 수령 조건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어요.]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긴, 거짓말할 필요가 있을까?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날 살려 보겠답시고 이것저것 알려 주고 있는데.

어디서 주워 온 건지 이상한 이모티콘까지 쓰면서 친근해 보이려고 애도 쓰고 있지 않은가. 다른 방법도 없고, 일단은 믿는 수밖에.

‘근데, 이놈의 기적이 대체 뭐길래 이 고생을 해야 하냐. 모세처럼 바다 가르는 것도 기적으로 쳐 주나?’

[10% 드릴게요! (✧•⌄•)]

바다씩이나 갈랐는데, 짜다…….

나는 내 앞발을 조몰락대는 카일을 뚱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어쨌든, 이 녀석을 살리면 뭐라도 될 것이다. 중간 하차자라지만, 그래도 카일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겨울의 심장>을 제법 열심히도 읽었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는 남주인공이자 마인하르트 제국의 2황자인 벨리알과 사이가 나빴다. 같은 여인을 마음에 두기도 했고, 그를 견제하던 벨리알이 툭하면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카일의 마음이 세레나에게 있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그를 노골적으로 적대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피도 눈물도 없는 대공작이라던 카일이 세레나를 정말로 사랑했을까? 원작의 여주인공인 세레나에게 집착하는 카일의 모습은 영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 조그만 코에 분홍빛 발가락. 정말이지 환상적이구나…….”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기도.

대공 전하, 어디 가서 이러지 마세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남쪽 땅끝마을까지 도망칠 겁니다. 댁은 그 뭐냐, 웃을 때 더 무서운 얼굴이거든요?

어쨌든, 이 햄스터 오타쿠께서 나를 조속히 놓아주었으면 참 좋겠다.

예. 그러니까, 제가 지금부터 쳇바퀴를 좀 타야 되겠거든요. 더도 덜도 말고 딱 천 바퀴만. ……신이여, 왜 저 같은 따뜻한 햄스터에게 이런 시련을.

“대공 전하. 안에 계십니까?”

그때, 누군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블레이크 영지 소속 기사인 듯했다.

카일이 나를 집 안에 조심스레 내려 준 뒤, 허리를 폈다. 창을 등진 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차갑게, 그리고 그보다 더 차갑게. 북방의 가장 차가운 바람으로만 벼려 만든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들어오도록.”

“전하. 내일 임무에 나서시기 전, 영지를 한번 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상인들도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고요.”

“음.”

낮고 진중한 목소리가 울렸다. 실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할 정도로 진지해 보였다.

카일은 업무용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서류를 건네며 부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던지, 조금만 긴장을 늦추어도 화제를 세 개씩 건너뛰었다.

물론, 일개 햄스터가 대공작의 업무를 알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을 보는 내내 감회가 새로웠다.

꾹 다물린 입술과 차분한 눈동자, 그리고 느긋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손짓이 카일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니, 저게 보통이겠지. 나한테 한 게…….’

……여러 의미로 인간미 있는 사람이었다.

“다녀와야겠구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카일이 나를 들여다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지루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리거라. 금세 다녀오마.”

아니, 영지 일인데 대충 하지 마시죠. 철두철미하게 확인하고 오시란 말입니다.

카일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으로 나를 봤지만, 오래 망설이지 않고 서재를 나섰다. 하긴, 그는 한창 바쁠 시기였다. 블레이크 영지가 안팎으로 시끌시끌할 때이니까.

땅은 척박하고, 1년의 절반이 겨울이나 마찬가지인 북부. 툭하면 마수가 범람하는 데다가 황실에서는 대공작이 된 카일을 제거할 만한 기회를 시시때때로 노리고 있다.

그러니 암살 시도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찍어 누르려는 사람이 많았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네.

‘벨리알이랑 싸우지 않게 도울 수는 있어도, 과로를 막을 방법은 없는데…….’

뭐, 아직 팔팔한 놈을 두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습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지금 누굴 걱정하냐.

나는 구시렁거리며 쳇바퀴에 올라탔다.

‘크기도 더럽게 크네.’

이게 쳇바퀴냐? 어? 이걸 쳇바퀴라고 불러도 되는 거야?

크기만 보면 대관람차와 진배없다. 햄스터는 고사하고 마수도 이만한 쳇바퀴를 타면 관절이 나가고 말 거다.

아니, 심지어 프레임에 도금……. 블레이크 대공작께서는 혹시 돈이 썩어나십니까? 사실 북부 사람들은 파스타에 치즈 대신 금가루 토핑을 한다던가…….

작은 쳇바퀴여도 천 바퀴는 힘들 판국에, 커다란 쳇바퀴를 돌려대자니 벌써부터 무릎이 쑤시는 기분이다.

[화이팅! (૭˙∇˙)૭]

아. 현실에서도 러닝 머신이 싫어서 헬스를 안 끊었는데. 간식을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운동은 절대 안 했다.

변명하자면 개발자라는 족속들이 다 그렇다. 운동도 게임 속에서 한다. 아니, 애초에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냐? 바빠서 가족 얼굴도 잊을 정돈데. 그런데 내가 자발적으로 발을 놀리게 될 줄이야.

‘주, 죽겠다…….’

아니나 다를까, 몇 바퀴 제대로 굴리기도 전에 숨이 찼다.

그렇지 않아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저질 체력인데, 햄스터의 하찮은 지구력과 합쳐져 그야말로 지구 최강의 약골이 된 기분이었다.

정확히 세 바퀴 돌고 뻗었다. 심지어 삐끗해서 넘어진 바람에 쳇바퀴에 납작 붙은 채로 반 바퀴쯤 함께 돌다가 데굴데굴 떨어졌다. 아, 못 해 먹겠네.

근데, 들어 보세요. 개발자는 원래 연약한 종족입니다. 내가 사지 튼튼하고 어깨 널찍할 것 같으면 왜 개발자를 하겠어? 아침저녁으로 단백질 셰이크 흔들면서 헬스 트레이너의 길을 걸었겠지. 우리 직종에서는 거북목만 안 와도 성공한 거라고요.

‘몰라. 안 해. 못해. 잡아 죽이던가.’

[☞☜☞불러오기☜☜☜]

얼마나 급하게 보냈는지 오타까지 났다.

모르겠다. 네가 급하든 말든, 어차피 카일이 돌아오려면 멀었는데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자.

빙의하고 나니 좋은 게 딱 하나 있다.

출근 안 하고 자는 낮잠은 정말…… 꿀맛이었다.

한쪽만 찌그러지면 꼴이 좀 우스워지니까, 이번에는 반대로 누워서 자야지. 나는 톱밥을 쿠션 삼아 몸을 말았다. 방해꾼이 사라진 방은 적막 그 자체였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여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간일 때는 느껴 보지 못한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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