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제현의 위에 올라타 엉덩이로 중심부를 누르자 제현이 몸을 움찔거렸다.
“형…… 제가, 제가 꿈꿔 왔던 일이긴 한데요…… 자극이 너무 과해서…….”
“싫으면 말고.”
일어나려는 내 허리를 잡아 눌렀다.
“누가 싫다고 했어요…….”
진득하게 내게 머무르는 제현의 눈빛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제현이 넥타이를 잡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입을 포개자 혀가 얽히며 살덩이가 섞이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하아, 하아…….”
키스 한 번에 완전히 달아올라서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자 제현이 나를 그대로 안아 침대에 던졌다. 이미 바지는 흘러내려 허벅지에 걸려 있었다. 벨트째로 잡아당겨 바지를 벗겨 냈다.
“으응…….”
거친 행동을 보고 제현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것을 속옷 위로 핥아 올렸다. 제현의 타액으로 젖어 든 속옷이 내 것에 달라붙었다. 제현의 머리를 잡아 쥐고 벌벌 떨었다. 더 핥아주기를 바라는 건지 그만해 주기를 바라는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한참을 빨리고 내 것인지 제현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흥건하게 젖은 속옷이 제현의 손에 벗겨졌다.
“형은 어떻게 여기도 예뻐요.”
내 것에 가벼운 입맞춤을 퍼붓는 통에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하지 마…….”
“오늘은 불량한 콘셉트 아니셨어요?”
“하지 마, 이 새끼야…….”
“와…….”
잔뜩 흐트러진 교복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달뜬 숨을 뱉으며 나직하게 욕을 뱉자 제현이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진짜 터질 것 같아요. 형이 욕하는 거 너무 자극적이에요…….”
“변태…….”
“그러니까요. 저도 제가 어디까지 변태인 건지 깜짝깜짝 놀란다니까요.”
언제부터 준비한 건지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더니 말아 끼웠다. 언제 봐도 참 적응되지 않는 사이즈가 꺼떡거렸다. 매번 보면서도 ‘저게 다 들어간다고? 저게?’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재킷을 벗으려는데 제현이 막았다.
“하…… 뭐 하세요?”
“벗, 벗으려고…….”
“입고 계세요. 보기 좋은데.”
젤을 듬뿍 바른 제현의 것이 슬금슬금 진입하자 숨이 턱 막혔다.
“아, 아아…… 옷 더러워지면…… 흐윽……!”
“신경 쓰지 마시고 마음껏 더럽혀 보세요.”
천상 서비스직과도 같은 말투로 말하더니 한 번에 뚫고 들어오자 넣는 것만으로 온몸의 쾌감이 느껴졌다. 제현이 양팔을 붙잡고 있는 바람에 감싸 쥐지도 못해서 검은색 조끼 위로 하얀 액체가 이리저리 튀었다.
제현과 할 때마다 거의 쾌락에 절여지는 것처럼 느끼기에 바빠서 앞쪽을 만지지도 않았는데 가 버리는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몰랐다. 사정감에 떨며 내벽을 있는 대로 조이고 쾌감에 떨고 있을 때면 제현은 제현 나름대로 시간이 필요했다.
“읏…….”
제현이 내 좁혀진 다리를 활짝 벌리고 꽉 물린 곳을 어떻게든 조금 더 풀어 내려 했다. 약간은 고통스러운지 미간을 좁히면서도 내 목덜미에 부드럽게 입 맞추며 내게 속삭였다.
“힘, 힘 좀 빼요…….”
“하, 하읏, 으…… 으응…….”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이미 했겠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렬하게 지나간 쾌감의 여운을 즐기며 신음이나 흘려 댈 뿐이었다.
“아, 흐응, 응…… 아직 움직이지…… 마…….”
“하아……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여요…….”
입술을 깨물자 손가락을 비집어 넣어 못 물게 하더니 넥타이를 물려 주었다.
“입술…… 제거니까 함부로 물어뜯지 마시고 이거나 물고 계세요.”
“읍, 흐응…….”
철썩거리며 살이 맞부딪혔다. 넥타이를 물고 있느라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갔다. 거의 끝까지 빠져나갔다가 강하게 안을 가득 채우자 쾌감도 같이 몰아쳤다.
하필 조끼며 재킷이 검은색이라 젖어 들 때마다 너무 적나라하게 보였다. 어쩐지 부끄러워져 얼굴을 가리고 싶은데 팔이 잡혀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돌리자 제현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형은…… 정말 이상한 곳에서 부끄러워하시네요.”
“흣, 흐윽…….”
물려 두었던 넥타이도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제현이 단단히 붙잡고 있던 팔을 놓아주었다. 젖은 넥타이를 뱉어 내고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아, 아아……!”
“읏…….”
제현이 짧게 몸을 떨며 절정을 맞는 것 같았다.
“더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내일 앓아누우시겠죠…….”
“하으, 응, 응…….”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목소리에 그냥 해 버리라고 하고 싶지만, 진짜 앓아누웠다간 곤란했다. 온몸이 땀과 체액으로 축축했다.
“내가…… 이래서 벗겠다고…… 한 건데…….”
“왜요? 더 보기 좋은데.”
부들부들 떨다가 어깨를 주먹으로 때리자 제현이 맞은 어깨를 감싸 쥐고 뒤로 넘어갔다.
“윽…….”
“엄살은…….”
“형 은근히 주먹이 센 거 알아요? 방배동 주먹왕 그거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헛소리 그만하고 벗겨 줘.”
“네, 네. 당연히 해 드려야죠.”
아프다고 엄살 부릴 때는 언제고 싱글벙글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더니 하나씩 벗겨 나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끔하게 씻겨지고 말려지고 옷까지 갈아입혀진다는 건 정말 중독되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로 편안했다.
“내 버릇은 네가 다 망쳤어.”
“음, 아직 덜 망쳤어요. 조금만 더요.”
“너 없으면 못살게 하려고 그러지.”
“들켰나요?”
그런 사악한 계략을 세우고 있는 것치고는 배시시 웃는 모습이 너무나 순수해 보여 할 말을 잃었다. 제현이 흘러내려 어깨가 다 보이는 티셔츠를 끌어 올려 주었다. 제현의 옷은 하나같이 다 너무 컸다.
“이것도 남친 셔츠인가 뭔가 그거야?”
“네.”
“좋아?”
“너무 좋아요.”
입고 왔던 유니폼을 다시 주워 입기는 뭐해서 주는 걸 얌전히 받아 입었는데 저 흡족한 미소를 보니 이것도 남친 셔츠의 연장선이었나 보다.
“내가 살다 살다 별짓을 다 한다.”
“저만 보는데 뭐 어때요. 제가 좋다잖아요.”
“말이나 못 하면.”
“그래도 저 없이 못 살겠죠?”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껏 귀여움을 뽐내며 하는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어, 못 살겠다. 내가 너 묶고 가두면 도망쳐.”
내 말에 제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묶고 가둬 주세요. 제발요.”
어쩌다 이렇게 해맑고 예쁜 애가 나한테 미쳐서 어딘가 고장이 난 사람이 된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
길다면 긴 휴가 동안 우리는 정말 말 그대로 24시간 동안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서 놀고먹었다. 둘이 붙어만 있어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컨디션 신경 쓸 필요 없이 격하게 뒹굴고 앓아누워도 어쩌면 그렇게 하루가 충만한지 몰랐다. 이제 즐길 만큼 즐겼으니 숙소로 복귀해서 윈터 시즌 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제현이 내일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지만 야속하게도 해는 어김없이 떴다. 윈터 시즌이 다가올수록 날씨는 점점 추워져 아침에 일어나면 다쳤던 발목이 다 쑤셨다.
내가 앓는 소리를 내자 제현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손으로 내 발목을 감쌌다. 발목이 사시사철 뜨거운 제현의 손에 감싸지니 통증이 점점 줄어들었다.
“좋은 아침.”
“네…….”
아직 졸린지 눈도 못 뜨고 머리는 산발인 상태인데도 내 눈에는 귀엽기 그지없었다.
“오늘은 숙소 복귀해야지.”
“네…….”
내 발에 이마를 대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황제현.”
“네……?”
“월드 시리즈 우승하고는 내가 네 소원 들어줬으니까 윈터 시즌 우승하면 내 소원 들어주라.”
“……그냥 말씀하세요. 뭐든 들어드릴게요.”
졸려서 이렇게 무방비 상태일 때 이것저것 달아 두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다 들어줄 거야?”
“네…….”
“뭐든?”
제현이 한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뭘 시키려고 그러세요?”
“음, 야한 옷 입히고 싶은데…….”
“입을게요…….”
너무 순순히 입겠다고 하는 말에 내가 더 놀랐다.
“내가 뭘 입힐 줄 알고 그렇게 덜컥 입는다 그래?”
“저야 뭐 형 건데 형 마음대로 하세요. 메이드 복이든 바니걸이든 코스프레든 원하는 거 말씀해 주시면 사 입을게요…….”
다 그렇게 취향은 아니지만, 제현이 입는다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비키니도 입어 줘.”
“……입을게요.”
“정장도.”
“네.”
“스리피스로.”
“정장은 안 그러셔도 입을걸요…….”
제현이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정장을? 언제? 왜?”
“동형 내년에 결혼하시잖아요.”
“아, 맞다…….”
“그리고 그거보다 먼저 연말이라 어차피 입잖아요.”
제현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12월쯤에 늘 연말 연기대상처럼 KKL에서 올해의 선수 시상식이 열려 초청받는 선수들은 어색하게 정장을 차려입곤 했다. 제현이 배시시 웃었다.
“올해 유력 수상자는 너라 이거지.”
“형이 이번 월드 시리즈 상금 싹쓸이해서 아마 형이 받을지도요.”
“그래도 신인 버프가 더 크지 않나.”
“어차피 월드 시리즈 우승한 우리 팀에서 나올 테니까 누가 받든 상관없어요. 하하, 저 매년 형 정장 입은 기사 사진 수집하고 그랬는데 올해는 직접 볼 수 있겠네요. 벌써 너무 좋다.”
정장이 없어서 매년 빌려 입었는데 팔에 맞췄을 땐 너무 컸고 몸통에 맞췄을 땐 기장이 짧아 지운이 매년 내 행색을 보고는 천재지변이라도 보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었다. 그런데 제현은 그마저도 좋았나 보다.
“이번에 정장 하나 맞출까 봐.”
“좋죠. 저도 하나 사야 하긴 해요. 같이 가요.”
제현이 몸을 가볍게 늘이고 일어나더니 자연스럽게 한쪽 팔에 나를 안아 올려 화장실로 향했다. 제현에게 안긴 채 함께 양치를 하는 게 우리 아침 루틴이나 다름없었다.
***
숙소로 돌아오자 못 보던 장식장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었다. 가장 왼쪽부터 팀 트라이앵글 시절의 KKCL 우승 트로피, 올해 KKL 서머 시즌 우승 트로피 그리고 나이츠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가 진열되어 있었다. 조명까지 따로 설치되어 있어서 정말 멋있었고 그동안 열심히 해 왔던 것이 느껴져 뿌듯하지만…….
“또 3이야……?”
이 소리가 나오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숫자 3과 무슨 악연인지 정신을 차리면 3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형 거기서 뭐 하세요?”
저 멀리서 제현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어, 트로피 구경해…….”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세 개라서 마음에 안 들어.”
탄탄한 제현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박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면 형 마음에 들게 이번에 윈터 시즌 우승해서 트로피 하나 더 들고 돌아와야겠네요.”
“이번에 엘리엇 엘리트가 리빌딩했잖아. 거기 탱커 랭킹전에서 만나 봤는데 진짜 미친놈이야…….”
“자꾸 제 자존심 건들지 말아 주실래요. 형 딜러 조커예요. 제가 제일 미친놈인데요.”
그건 또 맞는 말이었다. 우리 죽창 앞에서는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이었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거리니 제현이 마치 트로피를 들 듯이 나를 안아 올렸다.
“다음 트로피 생길 때까지 저까지 트로피 4개로 해요.”
조명을 받아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트로피들 앞에서도 그 빛이 전혀 죽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빛나는 건 역시 제현이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 5개로 만들어 줘.”
“좋아요.”
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고 있으면 뭐든 다 잘될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의 나에게 내년의 너는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면 딱 잘라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지금은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것 같고 현재고 미래고 온통 황금빛으로 보이는 게 역시 사람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인가 보다. 제현의 이마에 가만히 내 이마를 맞대고 속삭였다.
“내 트로피가 되어 줘서 고마워.”
대답 대신 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는 웃음을 지었고 나는 그보다 더 빛날 내일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부푸는 것을 느꼈다.
<끝> @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