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설마 잠든 건 아니지?”
“…….”
내가 체력 방전으로 중간에 정신을 놓았을 때의 제현이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싶었다.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오늘만 날인 것도 아니고…….”
침대로 어떻게 옮길지 고민하는데 제현이 벌떡 일어났다.
“어, 어?”
나를 어깨 위로 들쳐 메더니 그대로 침대로 내던졌다.
“잠, 잠깐만……!”
힘 조절이 되지 않을 뿐 내던질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나를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더니 그대로 내 위로 올라탔다. 탄탄한 가슴이 제현이 숨을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했다. 완전히 품 안에 갇히니 새삼스럽게 우리의 체격 차이가 얼마나 큰지가 다시금 느껴졌다.
“아까 너한테 맞았으면 죽었겠지…….”
“…….”
웃음기가 한 점도 없는 제현의 얼굴은 너무나 차가워서 등줄기가 오싹해질 정도의 긴장감을 주었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마세요…….”
냉랭한 표정에 마른침을 삼켰다.
“……살인자가 되고 싶진 않아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눈빛의 제현이라면 죽이고도 남을 것 같았다. 졸음이라도 쏟아지는지 내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더니 한동안 잠잠했다.
‘술이 다 깨네. 내가 내 무덤을 팠지…….’
너무 조금만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거의 맨정신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만취 상태의 제현을 상대하려니 온몸이 긴장으로 뚝딱거렸다.
잠깐 조는 것 같아서 제현의 팔을 치우려 들자 귀신같이 고개를 들었다.
“어, 아니야. 더 자.”
“……안 자요.”
“어…… 그랬어? 하하.”
어색하게 웃다 낑낑거리며 빠져나오는데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다시 엎어졌다. 머리의 방향만 침대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바뀌었을 뿐 아까와 같았다.
‘무거워……!’
평소에도 치대고 뭉개는 게 일상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배려가 숨어 있었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자꾸 어디 가요…….”
“아니, 잠깐만…… 아윽!”
제현이 내 티셔츠를 들치더니 판판한 가슴에 이를 박아 넣었다.
“황제현 그만……!”
“그만?”
“아, 아니…….”
내 외침에 제현의 눈이 이글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는 소리를 두 번씩이나 들었다고 했던 녀석인데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뱉은 모양이었다. 더 강하게 나를 끌어당기더니 이를 박아넣었던 곳을 쪽쪽 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빨아 대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와중에 침대 밖으로 겨우 한쪽 팔을 뻗어 술병 하나를 간신히 잡았다. 무슨 술인지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단 입에 털어 넣었다. 거의 무슨 맨정신에 생살을 째야 하는 사람같이 각오를 다졌다.
그도 그럴 게 옷 아래에서도 흉흉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제현의 것이 내 허벅지에 닿고 있었다.
“아…… 응, 으윽…….”
입이 닿는 곳이라면 잘근잘근 잇자국이 남도록 깨물고 빨다가 결국 내 것을 아이스크림처럼 핥으며 동시에 손가락을 아래에 끝없이 쑤셔 넣고 있었다. 급하게 술을 마셔서 잘 서지도 않던 게 제현이 집요하게 핥고 빨아 대자 버티지 못하고 단단해졌다.
제현의 머리카락을 콱 붙잡아 당기자 살짝 찡그리면서 입을 떼는 제현의 입술과 내 것 사이에 타액이 길게 선을 이뤘다.
“그만…….”
“또 그만…… 그만 해요?”
“…….”
“정말?”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당황하고 있으니 제현이 피식 웃었다. 순식간에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변하더니 잡고 있던 내 다리에 입 맞추고 깨물었다. 버릇을 잘못 들여 매번 새로 산 슬리퍼를 작살내 놓는 강아지 같았다.
“나 먹고 싶죠.”
“…….”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순도 100%의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제현의 것이 내 몸에 닿을 때마다 저절로 내 몸이 열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장이라도 제현에게 먹혀 엉망진창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다.
“아, 아아…… 그만…….”
“또 그만이라고 하셨어요.”
“하으, 응…… 그만 넣어 줘…….”
“음, 그건 마음에 들어요. 참 잘했어요.”
부드럽기 그지없는 말과는 달리 단번에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에 숨을 멈추고 바르르 떨었다. 발끝까지 힘이 들어가 발가락까지 꽉 움츠러들었다.
“아, 아윽, 으…… 으흑…….”
“쉬, 괜찮아요…… 숨 쉬면서…… 힘 빼 보세요…….”
통증이라기엔 너무 강렬한 쾌감도 뒤따르고 있어서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무의식적으로 제현의 말을 따라 숨을 천천히 뱉으며 흐느꼈다. 제현이 어린애 달래듯이 가벼운 키스를 볼이며 목에 퍼부으며 슬금슬금 허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안, 안 돼…… 으, 으응……!”
“너무…… 좁아요…….”
내가 좁은 건지 제현이 무식하게 큰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기절하기 직전에서 겨우 버텨 낸 사람이 견디기에는 제현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너무나 과한 자극이 떨어졌다. 허리를 뒤틀며 침대를 기어 내려가려 하자 온몸이 번쩍 들려서 그대로 제현의 위로 내려앉았다. 내 무게만큼 제현이 깊게 들어오자 저절로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헉…… 어흐……으윽…… 하, 하아…….”
“읏……!”
내가 내벽을 꽉 조이자 제현도 신음을 흘렸다. 한 손으로는 내 것을 어루만지고 다른 손으로는 내 가슴을 주무르다 단단히 서 있는 유두를 튕기며 괴롭혔다.
‘술을 더 마셨어야 했어. 그냥 필름을 끊어 버렸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나 늦고 몸이 쾌감에 절여질수록 술기운에 흐렸던 정신이 점점 명료해졌다.
“아, 아읏, 응, 으응…….”
동시에 고통보다 쾌락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해 나가고 있었다.
“형이 움직여 봐요…… 네?”
귓가에 다이렉트로 꽂히는 제현의 속삭임에 척추까지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보채는 건지 명령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몸이 나보다 먼저 그 목소리를 거부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움직였다.
어느 정도 빠져나갔을 때 제현이 내 허리를 잡아 눌렀다.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하…… 안 되겠다.”
저절로 축 처지는 몸이 앞으로 쏟아지자 제현이 허리를 붙잡아 내 엉덩이를 조금 더 들게 했다.
“진짜…… 예뻐요.”
침대 끄트머리에 고개를 파묻고 무릎을 꿇은 채 엉덩이를 제현에게 완전히 보이고 있으니 부끄러울 만도 한데 그저 사라진 압박감에 한숨 돌리기 바빴다.
“힘들어요?…….”
“하아, 하아…….”
“어쩌죠…… 못 멈추겠는데…….”
“하흣, 으, 응, 으응…….”
제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또다시 안을 파고들어 내부를 조금 더 넓혔다. 몇 번을 안겨도 익숙해지지 않아 제현에게 안길 때마다 제정신인 적이 없었다.
“아……! 아흣, 아, 아응, 으응……!”
뒤에서 찔러 올 때마다 평소보다도 깊게 닿아 정말 제현이 내 몸을 관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시트를 마구 쥐어뜯으며 정신 줄도 함께 붙잡으려고 노력했으나 제현이 속도를 올리면서 감당할 수 없는 쾌감이 쏟아지자 결국 기절했다.
***
“…….”
“…….”
“야.”
“……네.”
“다시는 술 먹지 마. 내가 마시라고 해도 마시지 마.”
“넵…….”
내 몸은 거의 천재지변이 일어난 직후의 작은 시골 마을처럼 폐허가 되어 있었고 제현은 침대 아래에 팬티 바람으로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내가 미쳤지…….’
기절하고 일어났을 때도 제현은 여전히 내 안에서 머물고 있었고 심지어 내가 깬 것을 확인하더니 해맑게 웃으며 2라운드를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기절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고서 내가 두 번이나 절정을 맞는 동안 제현은 한 번밖에 가지 않았고 심지어 모자랐는지 내가 그만하라고 울며불며 빌 때까지 몰아붙였다.
“아…….”
“목이 완전히 가 버렸네요…….”
“목만 쉬었으면 다행이지.”
“……죄송합니다.”
숙취로 인한 두통에 간밤에 격한 운동 후의 전신 근육통, 그리고 약간의 열이 올라 병자처럼 쌕쌕거려야 했다.
그리고 제현은 머리는 까치집을 하고서 죄인처럼 나와 눈도 잘 못 마주쳤다.
누군 반쯤 시체 같은 낯빛을 하고 있는데 저쪽은 반질반질 빛이 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열받는 부분이지만, 마냥 열받아 있기에는 또 내 눈치를 살피는 제현이 너무 귀여웠다.
거기다 아무리 호텔 방에 카펫이 깔려 있다지만 맨바닥에 저렇게 오래 무릎 꿇고 있는 것도 좀 안 좋을 것 같았다.
“올라와.”
“네?”
“그러면 거기서 평생 그러고 있을래?”
“아니요.”
쭈뼛거리며 내 옆에 앉더니 내가 참지 못하고 실실 웃자 마음이 좀 놓이는지 날 끌어안고 누웠다.
“너 기억은 나?”
“음…… 형은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질문을 다시 나에게 되돌려주는 게 딱 봐도 하나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괴롭혀 놓고 기억을 못 한다고?’
그래도 뭐 제현의 손해였지 내 손해는 아니었다.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만 해도 몇 병이었다. 아무리 황제현이라도 저 정도 양에는 못 버텼던 모양이었다. 괜한 승리감에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제현의 이마에 내 이마를 갖다 붙이곤 속삭였다.
“비밀.”
“정말 이러실 거예요?”
“근데 한 일 년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형……!”
제현이 급기야 울먹거렸다. 근육통에 삐걱거리는 팔을 들어 배부른 짐승처럼 배를 쓰다듬었다.
***
제현은 물론 아주 선명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미친…….’
다만,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해서 그게 제정신이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찬희는 몸이 좋지 않을 땐 잔뜩 털을 곤두세운 사람처럼 시종일관 예민했는데 오늘은 꽤 온순했다. 기분도 좋아 보였고 밥도 약도 잘 챙겨 먹고 얌전하게 잠들어 있었다.
저렇게 단정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간밤의 일들이 더 꿈같이 느껴졌다.
‘꽤 참는다고 참은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찬희가 신경을 쓸 것 같았는지 뭔지 딱 반소매 티셔츠, 반바지 선을 경계로 그 안쪽 영역은 내가 물고 빨아서 아주 난리가 나 있었다. 찬희는 피부가 워낙 하얗고 살성도 약한 사람이라 마찰이 잦았던 엉덩이나 허벅지 안쪽은 붉게 부어올라 있어서 아까 씻길 때도 얼마나 경악했는지 몰랐다.
짐승이 마킹이라도 한 것처럼 빼곡하게 내 자국으로 가득한 찬희는 정말 야하고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나는 진짜 재갈을 물려야 해.’
한국의 숙소 침대 아래에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녀석이 참 그리워졌다.
***
그렇게 한 번의 도전 정신으로 인해 나는 파리에서 남은 날들을 거의 침대에서 머물렀고 죽어도 내 옆에 붙어 있겠다는 제현의 양심 가책을 몇 번 건드려서 밖으로 쫓아낸다고 쓰고 관광을 보낸다고 읽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내 배낭과 캐리어는 전부 제현이 들고 있어서 맨몸으로 털레털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밴 앞에 익숙하고 길쭉한 인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찬희야.”
그동안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진형이었다. 그래, 한 번은 봐야지 싶었다.
“네 말 듣고 생각을 많이 해 봤어.”
“응.”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널 사랑했던 것 같아.”
“형, 그거 사랑 아니야.”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픽 웃으며 대답하자 진형이 외투 주머니에 넣어진 내 손을 꺼내 잡았다.
“알아, 너한테 어떻게 들릴지. 지운이 형이랑도 얘기했는데……. 내가 너한테 상처를 많이 줬다고 하더라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응, 알겠어.”
“미안해, 진심으로.”
진형이라고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랑 안 맞았을 뿐인데 내가 멋대로 상처받은 것뿐이지.
“나한테 지운이 형이 그랬거든. 형 아는 형과 동생 사이로는 최고인데 좋아하는 순간 지옥이니까 접으라고. 그 말이 맞아. 우리는 그냥 아는 형 동생 하자.”
“그냥 아는 사이 말고 친한 사이는 안 돼?”
“형 하는 거 보고.”
진형의 손을 털어내며 나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
“살다 살다 권진형이 이렇게 매달리는 걸 다 보네.”
“넌 다른 사람이랑 다르니까.”
진형이 씁쓸하게 웃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영원히 네 편이야. 평생, 네 옆에 있을 거라는 거 진심이고 네가 원하면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
서로 묵은 감정을 덜어 내니 한결 편했다.
“또 봐.”
“응. 내년에 계약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니까.”
“또 적으로 만나. 형 잡는 거 재밌더라.”
“짓궂긴.”
터덜터덜 돌아와 눈에 거의 불을 켜고 우리를 지켜보던 제현의 옆에 섰다.
“무슨 얘기했어요?”
“왜 도청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래도 되나요?”
옆을 슬쩍 보니 여기서 ‘해 보든가.’ 한마디만 떨어져도 당장 어디선가 도청기를 사 올 기세였다.
“저거 또 질척거렸어요?”
“아니, 그냥 서로 이제 정리 깔끔하게 다 했어. 이제 너도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아니요.”
내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고 손을 탁탁 털며 제현이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자식이 에펠탑 아래에서 저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뭐야, 그 로맨틱한 빌드업은.”
내 말에 제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를 제외한 TGT 팀과 MVP 팀이 어제 모두 단체로 에펠탑을 보러 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차에 타기 전 진형이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제현이 혀를 찼다.
“저 형이 뭐라고 했는데?”
“비밀이에요.”
“뭐야, 사람 궁금하게 해 놓고. 둘이 눈 맞은 건 아니지?”
“형!!!”
원망을 가득 담은 제현의 가슴팍에 기대며 바보같이 웃었다. 연애하면 사람이 둥글둥글하게 변한다더니 나는 웃음이 너무 헤퍼졌다.
‘나는 찬희 옆에 항상 있을 거야. 그러니 아마 영원히 네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무슨 자격으로?’
‘글쎄, 찬희의 첫사랑? 서로의 첫 남자? 어떤 타이틀이 좋으려나.’
‘당신 진짜 짜증 난다.’
‘진짜 그 호칭 제발 좀 고치자. 얼굴 자주 볼 사이에.’
‘걸림돌 말고 그냥 돌대가리 해.’
‘여보 당신보다야 돌대가리가 나을지도.’
낭만의 도시 파리, 붙어 앉아서 숨만 쉬어도 로맨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에펠탑 아래에서 진형과 함께 서 있던 그날은 제현이 살면서 가장 걸쭉한 욕설을 진심을 담아 뱉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