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95화 (95/100)

95화.

- 안 맞으면 안 죽는다.

- 아, 정말 감동적인 명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금 트릭스 게이밍의 시야가 워낙 좁은데 한 번도 죽지 않고 쑥쑥 성장하고 있죠!

- 지금 조금 싸하다 싶으면 구리 선수를 앞세워서 안전이 확인된 후에 들어가고 있어서 이거 기습, 매복 이런 게 통하질 않아요!

- 이번 세트 킬 스코어가 6:0입니다. 이거 뒤집을 수 있나요?

- MVP의 처지에서는 지금 그 무엇보다 체크 메이트를 자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죽으면 지고, 내가 죽지만 않으면 이긴다는 것은 상대도 우리도 알고 있는 점이었다. 상대의 주요 스킬이 나한테만 퍼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월계관 효과로 내가 스킬을 쓸 때마다 피가 쭉쭉 빠지고 있으니 힐을 넣는 준이 앓는 소리를 절로 냈다.

“와, 진짜 개빡세.”

“이제부터 나한테 힐 넣지 마.”

“예? 형 미쳤어요?”

나에게 힐 스킬을 아무리 써 봐야 어차피 빠질 체력인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현이 케어해.”

“형 죽으면 이 게임 날아간다니까요?”

“안 죽으면 돼.”

타락한 월계관 아이템을 보유 중일 때 스킬 사용할 때마다 5%씩 체력이 닳지만 1 미만으로는 내려가지 않고 10%의 피해량 증가 효과는 계속 발동되었다.

한때 꽂혀서 즐겨하던 탄막 슈팅 게임들이 생각났다. 화면 가득 빽빽하게 채워진 총알들을 그냥 움직여서 피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게임인데 내가 플레이만 했다 하면 클립 영상들이 여기저기 퍼져 나갔었다.

방향이나 속도가 예상되는 그 게임들과는 다르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예상할 수 없다는 건 달랐지만 한 대라도 맞으면 죽는다는 건 같았다.

- 체크 메이트 피가 지금 쭉쭉 닳고 있는데요!!!

- 어차피 월계관 때문에 체력이 계속 닳을 테니 전략적으로 조커에게 힐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 너무 위험합니다.

- 이거 평타 거리라도 한 번만 내주면 게임 끝날 거거든요.

- 멀리서 스킬로만 툭툭 치는데…… 와, 이거 버퍼의 딜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데요. 쿨 또 돌아요! 뻐어엉!

- 한방에 넝마가 되어 버린 빈터를 레모네이드가 살려 보려 했지만, 구리가 궁극기까지 쓰며 진입해 마무리합니다!!!

- 체크 메이트 독배 포인트는 이제 7!

- 체크 메이트 피가 1이거든요!!! 한 대만…… 한 대만 맞으면 되는데……!

- 기막히게 거리를 두고 주요 스킬을 정확하게 다 피하고 있어요!!! 마치 기계같이 정확하게 딱딱 피해 주고 있습니다!!!

회피기까지 쓰며 나를 잡으러 오는 진형을 피하느라 나도 회피기를 사용해 뒤로 빠진 순간 언제 뒤로 돌았는지 카니발이 회피기를 쓰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 카니발이 뒤에서 튀어나왔는데요!!! 아아악!!!

- 체크 메이트 죽으면 게임 끝나요!!!

“황제현, 믿는다.”

띠잉.

마치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경건하게 말하는 내게 카니발의 공격이 닿기 직전 경쾌한 소리가 들리며 화면이 붉게 변했다.

-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사용된 타락한 월계관!!!

- 이동 및 공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지만 2초간 무적상태가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 체크 메이트 하나 잡겠다고 적진 한가운데로 제 발로 뛰어온 카니발은 어떡합니까!!!

- 2초가 지나기도 전에 카니발 아웃!!! 조커의 궁극기가 힐하러 온 레모네이드에게도 정통으로 직격!!! 이거 어떻게 버팁니까! 레모네이드도 결국 아웃되고 맙니다!

- 화끈한 전투력의 트릭스 게이밍!!!

보통의 랭킹전에서도 그렇지만 프로 세계에서의 2초는 굉장히 길었다.

2초가 끝나고 붉게 물들었던 화면이 돌아오자 보이는 것은 4:1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진형이었다.

서로 피차 회피기도 빠진 탓에 쫓아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껴 두었던 내 궁극기로 진형을 깔끔하게 잡아내며 내 독배의 포인트도 10이 되었다.

서로 분주하게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이면서도 거친 숨이 느껴졌다.

“탱커 부활 3초 전. 몸 대가면서 몇 대 맞고 있으면 제가 처리합니다.”

빈터가 부활하자마자 나에게 달려오는데 제현이고 준이고 몸을 비벼 가며 방해했다. 그사이에 내가 스킬 하나를 썼을 뿐인데 킬 로그가 화면에 떴다.

- 아아악, 빈터 나오자마자 바로 돌려보내집니다!!!

- 체크 메이트 딜이 진짜 와, 시원하네요!!!

- 트릭스 게이밍!!! 이제 마지막 성문을 부수고 있습니다!!!

- 나이츠 월드 시리즈 우승컵의 주인공이 정해진 것 같은데요!!!

- 올해 초 스프링 시즌에 이 팀이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고 했다면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이 나이츠 리그의 정상, 세계 최정상의 월드 시리즈 우승팀이 됩니다!!!

[승리]

화면에 그렇게 기대했던 두 글자가 뜨자마자 옆에 있던 제현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마치 달리기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제현의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쿵쾅대고 있는 게 손으로 느껴졌다.

“제가 형 높은 곳으로 보내 줄 거라고 했잖아요. 어때요? 제일 높은 곳에 계신 느낌은.”

180을 훌쩍 넘기는 제현이 번쩍 들고 있으니 확실히 제일 높은 곳에 있기는 했다.

“이제 아시겠죠. 형은 저랑 제일 잘 어울려요.”

누가 속에서 막고 있는 것처럼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아 그냥 말없이 이마를 맞부딪혔다.

그대로 안긴 채 MVP 자리 코앞까지 이동한 후 내려와 MVP 선수들과 악수했다. 우승까지 한 계단 앞에서 패배한 여파가 여전히 느껴지지만 축하한다며 씁쓸하게 웃는 모습들이 참 고마웠다. 진형에게 손을 내밀자 진형이 씩 웃으며 맞잡아 끌어당겨 내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미쳤어?”

카메라도 있는데 정말 정신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당황해서 거의 뒤로 넘어가다시피 얼굴을 빼자 진형이 허리에 손을 감아 잡아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승컵도 뺏겼는데 이 정도는 봐줘.”

“아, 진짜…….”

“너랑 적으로 만나니까 정말 힘들다. 다시 한국 가야겠어.”

“한국 와도 적일 텐데?”

“그건 또 모르지.”

능글거리는 진형의 가슴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자 과도하게 가슴을 잡고 쓰러지는 척을 했다. 그 틈에 빠져나왔다.

“우승컵 들자!!!”

동진의 쾌활한 목소리에 준이 100m 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무대 중앙에 놓인 트로피 쪽으로 광속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심장이 주체가 안 되어서 심호흡을 한두 번 하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제현이 옆에 바짝 붙어왔다. 아까만 해도 온 세상 빛을 다 자기가 뿜는 것처럼 밝았던 애가 표정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래?”

“저요?”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데 눈이 안 웃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더니 진형이 입 맞춘 자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소독.”

제현은 총체적으로 잔망스럽게 굴더니 자리를 피하듯 나를 두고 무대 중앙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두 차례나 기습 뽀뽀를 받은 볼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황망하게 우뚝 멈춰 서 있었다.

‘이거 소독이 아니라 진형이 형이랑 간접 키스한 거 아니냐고…….’

망부석처럼 서 있으니 보다 못한 동진이 나를 질질 끌 듯이 트로피 앞으로 데려갔다. 모두 트로피에 손을 올리고 하나같이 가슴을 들썩이며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하나둘셋 하면 드는 거다.”

“하나…….”

“둘, 셋!!!”

간식을 앞에 둔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준이 동진의 셋을 기다리지 못하고 둘, 셋을 빠르게 외치며 번쩍 들었다. 웅장한 BGM과 터지는 폭죽에 마치 영화 속 클라이맥스 장면에 던져진 것 같았다.

-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만년 3등 자리를 박차고 올라오자마자 세계 1등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 이 팀 정말 우여곡절이 유독 많았던 팀 아니겠습니까!

- 네, 서머 시즌 우승해서 직행 진출권도 받았겠다 전년도 우승자, 그것도 같은 한국팀도 이기고 올라간 결승이니 지면 한국에 헤엄쳐서 돌아오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죠. 어깨 위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어마어마했을 겁니다!

- 그 부담감을 떨쳐 내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 하하하, 다들 서머 시즌에 최초로 우승 때는 대성통곡하느라 바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 지금은 저렇게 한껏 웃는 모습을 보니 더욱더 보기 좋은데요!!!

종이 꽃가루가 미친 듯이 쏟아지며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져나갔다. 각자 트로피를 손에 들고 키스하며 기자들 앞에서 개인 사진을 찍었다.

금빛의 월드 시리즈 트로피는 KKL 트로피보다 화려하고 사이즈가 커서 더 무거웠다.

“빨리 받아. 무거워서 떨어뜨릴 것 같…….”

팔을 파들파들 떨며 제현에게 넘겨주려고 건넸는데 제현이 나를 안아 올리는 바람에 엉겁결에 트로피를 껴안았다.

“뭐, 뭐 해…….”

“빨리 받으라면서요.”

“트로피를 들라니까 나까지 들면 어떡해.”

제현이 머리에 붙은 꽃가루를 흔들어 털고 눈을 반으로 접으며 웃었다.

“형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트로피라서요.”

“월드 시리즈 우승컵을 두고?”

“여기 형보다 예쁜 거 없어요.”

아무리 내가 가벼운 편이라지만 일단은 성인 남성인 데다가 쇳덩이같이 무거운 트로피도 들고 있는데 제현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안 무거워……?”

“형, 자꾸 절 과소평가하시는데 어디 오늘 형 발에 땅 안 닿게 해 볼까요.”

“네가 그러면 진짜 그럴 것 같아서 무서워.”

“저 가짜로 한 말 아닌데요.”

겁에 질린 사람처럼 고개를 도리질 치고 있으니 동진이 피식 웃으며 품 안에 들려 있던 트로피를 가져갔다.

“우리 단체 기념사진 찍고 나면 시상식 할 거야.”

“다들 모자 쓰자.”

지운과 감독님이 트릭스 게이밍 로고 자수가 놓인 하얀 모자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너희 그러고 찍을 거냐?”

“네.”

나는 나무늘보처럼 제현의 팔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는데 지운의 질문에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제현이 대답을 채 갔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그간 하도 안겨 다닌 터라 이젠 부끄럽지도 않았다.

“자, 카메라 보시고. 하나둘, 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

***

[나이츠] 나이츠 월드 시리즈 파리 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금일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이 MVP와의 결승전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하며 트로피와 우승상금 100만 달러의 주인공이 되었다.

‘Checkmate’ 서찬희는 버퍼 클래스의 선수로는 최초로 MVP 포인트 1위를 달성하며 MVP 상금을 획득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개인 상금을 획득하며 이번 월드 시리즈 최다 상금 수상자가 되었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선수들은 일주일간의 파리에서의 휴가 후 귀국 예정이다.

(Y 뉴스 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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