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79화 (79/100)

79화.

코앞에서 넘어진 전적이 벌써 몇 번인지 셀 수도 없었다. 거의 서로의 뇌를 동기화시켜 놓은 것처럼 한 몸같이 움직일 수 있었던 진형과 함께했을 때도 할 수 없었던 우승이었다. 마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웃음이 실실 쏟아졌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내려놓으려는 제현의 손길에 더 붙어 있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리자 제현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넘어갔다.

“아……!”

바닥에 대자로 누워 버린 제현을 살피는데 잔뜩 흐트러져서 누워 있는 제현을 보면 볼수록 어딘가 스위치라도 눌린 사람처럼 점점 이성이 흐려졌다.

“형, 잠깐만…….”

몸을 살짝 떼면서 엉덩이를 제현의 중심부에 힘주어 뭉근하게 눌렀다. 사이즈가 사이즈인지라 발기하지 않아도 트레이닝복 바지 아래로 제현의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아…….”

숨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뱉고서 허리를 슬쩍 움직이자 제현이 날 떼어 내지도 못하고 허공에서 손을 놀리다가 자기 얼굴을 덮어 버렸다.

“왜 가려…….”

“윽…….”

얼굴을 덮은 손등을 가볍게 깨물다 놔주자 손가락 틈새만 벌어지며 열기가 가득 담긴 눈동자만 빼꼼 나왔다.

이제는 신이 나서 자기 가슴을 조물조물 만지고 있는 나를 보고 깊게 한숨을 쉬더니 날 들쳐 안고 침대에 가볍게 던졌다.

무슨 사람을 농구공 던지듯 던져 대는 것에 놀라기도 잠시 제현이 티셔츠를 거칠게 벗어 던지는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빗어 올리며 다가오다 멈춰서서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제현이 숨 쉴 때마다 가슴팍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눈이 부어서 시야가 좁은 게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이거 나만 이렇게 봐도 되는 광경인가? 나라에서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다가온 제현이 내 바지를 걷어 올렸다.

‘내리는 게 아니라 걷어 올려? 왜?’

의문이 다 스치기도 전에 제현이 무릎을 꾹 누르자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악……!”

“……누가 튼튼하다는 건지. 제가 잠깐 한눈팔면 아프거나 다치기 바쁘면서…….”

“그 정도는 아니야…….”

“……다신 술 안 마실래요.”

제현이 내 허리를 가볍게 쓸었다. 맨살에 닿는 제현의 손은 뜨거웠지만, 눈빛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틈에 티셔츠가 밀려 올라갔는지 아까 제현에게 잡힌 허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 아니야. 이건 그 넘어질 때…… 아무튼 별것도 아니고…….”

“제가 겨울에서 여름까지 형이랑 지내면서 알아낸 게 하나 있어요. 형이 저한테 뭔가 감추려 들면 어딘가 아프다는 거예요. 이제는 다 알아요.”

“아니야…….”

흥분에 눈 돌아가서 아픈 줄도 몰랐을 뿐이지 평소에는 어디가 아프다, 불편하다 잘 말하는 편인데도 제현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제가 형보다 형을 더 잘 알아요.”

“억울해. 나는 아직도 네 행동반경을 다 예측 못 하는데.”

내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제현이 해맑게 웃었다.

“제가 형을 더 오래 좋아했다니까요. 형이 절 모를 때부터요. 와, 세월로 앞서가는 기분은 또 처음이네요. 어때요? 저랑 뒤바뀐 기분은?”

“짜증 나.”

내가 분노하니 기분이 더 좋아 보이는 제현이었다.

“저에 대해 더 궁금해해 주세요. 부지런히 쫓아와 보세요.”

건방진 얼굴로 말하는데도 어딘가 간절해 보이는 제현을 보자 잠시 내려갔던 스위치가 슬쩍 다시 올라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황제현 씨.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겠는데요. 이쪽 분 생각은 좀 알 것도 같고.”

제현의 커다란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와 내 것을 움켜쥐었다.

“흐으…….”

표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신음을 줄줄 흘렸다. 제현의 입술을 가볍게 쪼듯이 입 맞추다가 깊게 탐했다. 맞닿은 입술이 떨어졌을 때는 둘 다 숨이 거칠어져 있었다.

“하, 하아…… 너도 가끔은 날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예?”

“아…… 내가 지금 그래…….”

누군가 공들여 만든 예술품과도 같은 이 얼굴이 쾌락에 젖어 무너지는 것만큼 짜릿한 게 또 없었다. 제현의 손에 추삽질이라도 하듯이 허리를 흔들어 움직이자 제현의 얼굴도 점점 흥분으로 물들었다.

“이상하다……. 앞으로 어디 박아 넣을 일도 없는 걸 왜 이렇게 잘 쓰시지…….”

“아읏, 으, 으응…….”

“좋아요. 오늘은 실컷 박아 보세요.”

말은 짓궂게 던지면서 긴 손가락을 휘감아 더 깊게 찔러 대도록 유도했다.

“……날이 갈수록 교태가 느시네요?”

“으, 응…… 누가 할, 흡, 소리인데…….”

요즘 아양 하면 제현, 제현 하면 아양이 아니던가. 애교가 철철 흐르는 녀석이 교태니, 뭐니, 헛소리를 다 한다. 내가 허리를 흔드는 속도보다 제현이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져 종래에는 제현의 어깨를 붙잡고 덜덜 떨고 있으니 고개를 처박고 아이스크림이라도 핥듯이 핥아 댔다. 제현은 내 것을 물고 삼키면서도 혀를 가만히 두지 않았고 살덩이가 서로 마찰하는 소리가 질척하게 들렸다.

“으, 으응, 흑……! 나, 나…… 갈 것, 같아……! 아, 아아!”

더 깊이 내 것을 품으려 드는 제현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겨우 빼내자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

“……미안.”

“…….”

“진짜 미안.”

시원하게 한 발 빼고 그대로 숙면한 죗값을 아침부터 여태 치르고 있었다.

따스한 아침 햇살에 퍼뜩 놀라서 경련하듯 눈을 뜨자 늘 옆에서 자던 제현이 자기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침 운동도 쉬고 점심때까지 늘어지게 자더니 까치집을 하고서 일어나긴 했는데 내가 아무리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말을 걸어도 시위라도 하듯 입을 꾹 닫고 버티고 있었다.

일어났더니 뽀송한 몸에 잠옷도 도톰한 재질로 입혀 놓고 이불까지 꼭꼭 덮어져 있는 데다가 어제 대차게 넘어져 까먹은 무릎에는 커다란 밴드까지 깔끔하게 붙어 있었으니 불편해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기억이라도 안 나면 모르겠는데 내가 취기를 핑계로 별 개수작을 부린 것은 잘도 기억났다.

“어떻게…….”

턱을 괴고 가만히 나를 보던 제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절 두고 자요?”

“내 말이…….”

웃음이 사라진 얼굴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항상 저 얼굴이었다면 아마 말도 제대로 못 붙였을 것 같았다. 제현의 옆에 쪼그려 앉아 턱을 허벅지 위에 올리자 제현의 입꼬리가 씰룩이더니 입가를 가렸다. 날 내려다보며 다른 손으로는 내 볼을 쿡쿡 찔렀다.

“잘못했어…….”

“잘못한 건 아시네요? 지은 죄가 좀 많으셔야죠.”

허벅지에 볼을 비비자 또 얼굴이 한결 풀렸다.

“화내지 마.”

“저 하나도 화 안 났어요. 화난 척하기도 힘들게 하시네. 숙취는 안 왔어요?”

“응. 나 주량 약하진 않아서…….”

“그래서 곤히 주무셨나 봐요?”

제현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내 볼을 잡아당겼다.

“저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는데 또 잠든 형 상대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더니 그게 고문해 주겠다는 뜻인 줄 알았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이아내…….”

“아, 죄송해요. 제 눈치를 보시는 게 너무 귀여워서 그러는 건데요. 어차피 제대로 할 생각도 없었어요.”

“왜?”

제현이 내 볼을 꾹꾹 눌러댔다.

“저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요.”

“안 서?”

간혹 술을 너무 마시면 안 서는 사람들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아닌데, 서던데.

“와, 저 어지간해서는 자존심에 스크래치 안 생기는데 방금 한 줄 쫙 생겼어요. 이걸 어떻게 증명해 드릴 수도 없고.”

“어, 어?”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달랑 들더니 자기 허벅지에 바싹 붙여 앉혔다. 엉덩이 아래로 묵직한 것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건, 건강하구나…….”

“네. 참고로 어제 형 대신 이쪽이 좀 수고했거든요. 형도 보내 드렸으니 하루에 두 탕이나 뛴 셈이에요.”

오른손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흠, 커흠…….”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시지? 어젠 그렇게 안아 달라 보채 놓고?”

“그, 그런 안아 달라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왜 제대로 할 생각이 없어?”

엉덩이를 쿡쿡 찔러와 조금 허리를 빼자 제현이 허리를 잡아당겨 원위치시켰다.

“하, 가뜩이나 취해서 힘 조절도 제대로 안 되는데 밤새 결승전 긴장된다고 뒤척이다가 새벽같이 일어나고, 오후부터 물도 입에 못 대고 병든 닭처럼 골골대다가 리허설하고 5세트까지 뛴 다음에는 회식에서 술까지 마신 사람이랑 제가 뭘 해요. 그렇게 달려드시다가 컴퓨터 절전 모드 들어가듯 푹 꺼질 줄은 몰랐지만요.”

그냥 어제 내 하루를 요약해 들었는데 왜 이렇게 뼈를 맞은 것 같이 들리는지 모르겠다.

“체력 기를게…….”

“암요. 그러셔야죠. 젊고 창창하실 나이에도 절 못 견디시면 앞으로는 절 어떻게 견디시려고요. 가라앉히는 것도 이젠 익숙하지만요.”

“그…… 지금이라도?”

“형은 진짜 무드가 없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금방 가라앉아요.”

깊게 숨을 내쉬며 잔뜩 긴장한 내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서른, 마흔쯤 되어도 제현의 체력은 꾸준히 상승할 것 같아 두려워졌다. 미래를 엿보고 온 것같이 제현과 똑 닮은 제현의 아버지 풍채가 대단하셨기에 더욱 그랬다.

고민에 빠진 나를 한쪽 팔로 안고 제현이 몸을 일으켰다. 내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팔에 핏줄이 불뚝 섰다. 나는 코알라처럼 제현에게 매달린 상태였다.

“내려 줘…….”

“언제는 안아 달라고 하시더니? 오늘은 내려갈 생각하지 마세요.”

분위기를 그렇게 잡길래 한판 하겠거니 했는데 세면대 앞으로 가더니 대뜸 세수를 직접 해 주었다.

“물 온도 어떠세요.”

“좋, 푸흡, 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일정도 없는데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연습실…… 푸헉.”

내 대답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제현이 물세례를 끼얹었다.

“지운이 형이랑은 바다도 놀러 가 주시더니 저랑은 연습실이 다예요?”

“아니…… 며칠 동안 랭킹전 못 해서 슬슬 돌려야 해.”

“형은 제가 더 좋아요, 게임이 더 좋아요?”

“너랑 하는 게임.”

“형……!”

八자를 그리는 눈썹에 소리 없이 몸을 다 떨어가며 웃다가 눈에 눈물이 다 맺혔다.

“아, 너무 웃겨……. 당연히 너지.”

“신빙성이 없어요.”

“뭐야, 자신감 어디 갔어. 이상하다. 황제현 아닌 것 같은데.”

“제현이 맞거든요.”

잔뜩 삐졌는지 내 귓불을 콱 깨물었다. 입술을 삐죽이는 것과는 별개로 식당에 들러 간단하게 아점을 먹고 얌전히 나를 연습실로 데려가 주었다.

***

[승리]

“아, 개운하다.”

마지막에 연속으로 세 판을 내리 이기니 더없이 상쾌했다. 이 정도 명성 포인트 차이면 시즌 끝날 때까지 적당히 돌려도 랭킹 1위 유지가 가능할 듯싶었다.

기지개를 켜고 옆을 보는데 제현이 심각한 얼굴로 게임 결과 창 화면에서 굳어 있었다.

“왜 그래?”

“아무래도 진 것 같아요.”

“이겼는데?”

그래프를 뒤적이자 상대 딜러와의 데미지 차이도 굉장했다. KKL을 갓 우승한 따끈따끈한 한국 최고의 딜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형은 몇 살 때부터 게임했어요?”

“어…… 중학생인가?”

“나이츠는요?”

“열일곱.”

제현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나이츠한테 밀린 것 같은데요.”

“하다 하다 게임에도 질투하는구나.”

“당연하죠. 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하세요?”

“조금? 아니, 안, 안 궁금할지도…….”

제현이 팔짱을 끼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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