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모두 헤드폰을 벗어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껴안기 바빴다. 마지막에 거의 숨 쉬는 것조차 잊고 매진했던 몸에 긴장이 쭉 풀리면서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옆을 보자 찬희가 키보드에 작은 머리를 박고 흐느끼고 있었다. 마른 몸을 그냥 호주머니에 넣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찬희의 의자를 끌어왔다.
눈물이 쉼 없이 뚝뚝 떨어지는 눈가를 마음껏 쓸다가 기도라도 하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서로의 이마를 맞부딪혔다.
“내가 더 높은 곳까지 데려가 준다고 했잖아.”
대답은 흐느낌뿐이었지만 내 등을 끌어안는 손길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렇게 평생이라도 멈춰 있고 싶었다.
빨리 나오라는 동진의 재촉에 찬희의 손을 잡아끌어 메인 스테이지로 나섰다.
폭죽이 펑펑 터지며 대형 스크린에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의 로고가 당당하게 띄워져 있었다.
팬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성덕이었다. 얼마나 염원했던 우승인가. 뜨거워지는 눈가에 괜히 얼굴을 닦아 대느라 바쁜 찬희를 재촉했다.
휘청거리며 트로피 앞에 선 찬희가 두 팔로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함성이 쏟아졌다.
금색 꽃가루가 잔뜩 쏟아졌다. 눈물로 젖어 있는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스치며 나에게 트로피를 건넸다. 그 얼굴이 가슴 가득 새겨졌다.
울렁이는 가슴에 팔을 쭉 뻗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사실은 트로피보다는 찬희를 이렇게 들어 올리고 싶었다. 아쉬움을 감추며 트로피가 찬희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입 맞추고 동진에게 넘겨 주었다.
돌아본 찬희의 얼굴에는 희미했던 웃음이 어느새 만개해 있었다. 큰 눈을 접으며 맑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을 보자 눈물이 울컥 쏟아져 달려가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았다.
- 창단 최초 우승!!! 매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남겼지만 단 한 번도 밟아 본 적 없었던 결승전에 입성하자마자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 맞습니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역대급 경기를 펼쳐 주었습니다!
“네, 정말 화려한 경기력으로 우승한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입니다. 먼저…… 아, 우리 선수들이 승리의 기쁨에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데요. 박수 부탁드립니다.”
네 명 모두 아직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어서 인터뷰를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네, 먼저 주장 구리 선수와 이야기 나누어 보겠습니다.”
“네, 네…….”
동진이 연신 코를 훌쩍이며 건네준 마이크를 잡았다.
“항상 든든한 큰 형의 모습으로 모두의 구심점이 되어 준 구리 선수인데요. 우승! 어떻습니까!”
“정, 정말 기쁘고 감독님과 코치님들, 트릭스 게이밍 프런트 분들과 시즌이 끝났는데도 함께 스크림해 준다고 쉬지도 못했던 스퀘어 선수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아, 눈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요. 그래도 조금 진정하신 것 같은 체크 메이트 선수에게 마이크 건네주시겠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거의 주먹을 입에 넣을 것처럼 흐느끼던 동진이 찬희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눈물은 멎어 있었지만, 눈가가 유독 붉어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모든 버퍼의 첫사랑, 버퍼들의 메시아! 체크 메이트 선수의 첫 번째 우승 축하드립니다! 항상 기복이 없는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 주셨기에 이번이 첫 우승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데요. 이번은 다르다! 항상 외쳤지만 정말 달랐거든요. 우승을 예상하셨나요?”
“네, 다들 열심히 했고 팀 컬러가 독보적으로 잘 잡힌 만큼 이번 시즌만큼 자신감 있었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만만한 모습 너무 보기 좋은데요. 지난 시즌에 부상으로 결장하시면서 이번 시즌 전의를 더 불태우셨을 것 같아요.”
질문이 끝나고도 쉽게 입을 떼지 못하던 찬희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지난 시즌에 부상으로…… 제 개인적인 아쉬움보다도 팀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이 괴로웠습니다. 제가 성격이 좋은 편이 아닌데 제 모난 성격을 늘 받아 주는 팀원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대답을 마치고 엷게 웃는데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찬희에게 다가가 눈가를 문질러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입술을 꾹 깨물며 내 손에 마이크를 넘겼다.
“네,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울컥한 것 같은데요. 자, 우리 조커 선수! 오늘 3세트 5세트 MVP, 승리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떨리지는 않으셨나요?”
“제가 떠는 게 티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들 너무 여유롭다고 한 소리 들었는데 사실 엄청나게 떨었거든요.”
“지금도 떨고 계신 건가요?”
“지금은 기뻐서 떨리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떨렸다는 사람치고 마지막 5세트 그 중요한 순간에 전멸을 내고 바로 성문으로 진격하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졌는데 KJ 스노우에게 0.1초만 있었어도 게임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습니다. 도대체 누구의 판단이었고 심정은 어땠나요?”
“찬희 형의 콜이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팀원이 한 명씩 죽어 나가고 한 대라도 계산이 틀렸다간 게임을 말아먹을 수도 있는 찰나의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경기 시작 전 찬희가 바꿔 준 마우스였다. 바로 그 순간, 마치 나에게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든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찬희 형이 원래 쓰던 마우스가 고장이 나서 KKCL 우승할 때 쓰셨던 예전 마우스로 교체했는데, 5세트에 제 마우스랑 바꿔 주셨어요. 그 기운을 받아서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찬희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슬쩍 이마를 찬희의 어깨에 부딪혔다가 떼었다. 관중석에서 박수 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사진 촬영과 각종 인터뷰를 소화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늦었다.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가족들과도 짧게 인사만 드렸다. 제현의 형과 누나는 다음에 식사를 함께하자는 소리를 연거푸 했고 그러겠다는 내 대답을 열두 번은 족히 듣고서야 만족하셨다.
자기만큼은 울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준은 인터뷰 도중에도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대성통곡하느라 애를 먹더니 회식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도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길게도 운다. 우리가 우승했지, 초상났냐.”
“형들한테 고맙고 미안하고요…… 제가 말은 틱틱거리면서 해도 우리 형들이랑 제현이 진짜 사랑하고…….”
“아, 황제현. 하지 말라고.”
우승 소감을 말하라고 들려준 마이크에 울음 섞인 목소리로 히끅거리며 겨우 말을 이어 가던 준을 똑같이 따라 하는 제현에게 뭐라 하면서도 준의 눈에서는 멈추지 않고 눈물을 뚝뚝 쏟아졌다.
내 눈은 벌써 퉁퉁 부어올라서 가는 동안 분명히 놀림당하겠거니 했는데 휴지 한 통을 다 쓰며 눈물을 뽑는 준이 덕분에 놀림거리가 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다.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고깃집으로 향했다.
애초에 영업 시간이 지난 시간이었지만 트릭스 게이밍에서 통째로 빌려준 고깃집에서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
우승 축하 기념 건배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도 모르겠다. 감독님을 포함해 테이블에 시체처럼 엎어진 만취자들도 꽤 됐다.
나도 이렇게 많이 마신 건 또 오랜만이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한 번 넘어졌던 터라 조심해서 걷는데도 자꾸만 비틀거려 나 못지않게 취한 제현이 잔뜩 긴장한 게 느껴졌다.
“형, 천천히…… 가요…….”
말꼬리가 질질 끌리는 제현은 지나치게 귀여웠다.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보는 것처럼 불안하게 나를 주시하는 제현을 두고 장난스러운 마음이 들어 몇 걸음 뛰다가 내 발에 내가 걸렸다.
놀란 제현이 거의 홈으로 들어오는 야구선수처럼 슬라이딩해 몸으로 내 몸을 받아 냈다. 제현의 위에 엎어진 채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심장 떨어지겠네…… 형은 취하면 진짜 진상이에요.”
제현의 얼굴을 쥐고서 뺨을 야무지게 주물럭거렸다.
“누구 건지는 몰라도 잘생겼네.”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더 잘생겼는데요.”
“좋은 말로 할 때 안과 가…….”
내 핀잔에 제현이 내 머리를 넘겨 이마를 드러나게 했다.
“어떻게 제가 이 얼굴을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네 입으로 내린 게 더 좋다며.”
“밖에서는 내린 게 더 좋죠…… 마음 같아서는 하이바 같은 거 씌우고 싶어요.”
평소 같았으면 날 들고 일어나고도 남았을 녀석이 누운 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자꾸만 앞으로 쏟아지는 내 머리카락을 연신 넘겨주며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방을 코앞에 두고서 어둑어둑한 복도에 같이 드러누워서 이러고 있으니 온 세상에 우리 둘만 남은 것 같았다.
“너 심장 소리가 너무 커.”
“형 때문이잖아요.”
상기된 얼굴을 보자 다정하게 트로피에 입을 맞추던 제현이 떠올랐다.
“너 내가 좋아, 트로피가 좋아?”
“형이요.”
“바로 답하면 진정성이 없어.”
“그럼 좀 고민해 볼게요…… 음, 역시 형이요. 그런데 뭐 빼먹으신 거 없으세요?”
술기운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탓도 있다지만 정말 뭘 말하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아 미간을 좁히자 검지로 제 볼을 톡톡 두드렸다.
“택시비 아직 미납하셨는데요.”
“아…….”
지난번에 약속한 볼 뽀뽀를 못 해 준 것을 야무지게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뭐 이런 깜찍한 녀석이 다 있지. 혹여 저번처럼 고개를 돌리는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빈약한 힘으로나마 얼굴을 꽉 붙들고 볼에 입을 맞췄다. 한번은 길게, 한번은 짧게. 제현이 가르쳐 준 그대로였다.
“배우는 게 빠르신데요. 완벽해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시시 웃더니 일어나 나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버티고 주저앉아 있자 제현이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약간은 원망을 담아 주절거렸다.
“왜 안 안아 줘?”
팔을 붙잡힌 채 흐느적거리며 묻자 제현의 눈이 흔들렸다.
“나도 안아 줘.”
그동안 결승전 준비한다고 제대로 된 스킨십은커녕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내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무거웠던 트로피는 번쩍번쩍 들고 여러 번 입 맞춰 준 것이 갑작스럽게 서운했다.
제현이 비장한 각오라도 하듯 정말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안아 올렸다. 평소보다 강하게 안고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 해.”
“……넘어지면 어떡해요. 사실 아까 저도 몰래 휘청거렸거든요…….”
“넘어지면 넘어지는 거지.”
“지금 제가 형 들고 있다는 건 아시는 거죠?”
“너는 가끔 날 유리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보더라.”
제현은 사실 가끔이 아니라 꽤 자주 나를 매우 덤벙거리는 사람 손에 들려진 크리스털 잔이나 경도가 낮아 쉽게 긁히고 부서질 무른 돌 같이 보았다.
“나 제법 튼튼해. 뭣하면 좀 던져 봐. 안 깨져.”
“싫어요…… 또 어디 부러뜨릴 일 있어요?”
눈을 감고 한숨을 푹 쉬던 제현이 내 허리께를 꽉 쥐고서 걸음을 옮겼다. 손자국이 남을 것 같은데 본인은 그렇게 힘주어 잡았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말하면 당장이라도 나를 내려놓을 것 같아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제현의 목에 팔을 단단히 감았다. 평소에 제현이 나를 대할 때 얼마나 세심하게 힘을 조절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얼마나 신중하게 걸음을 떼는지 방으로 도착하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잘생긴 머리통에 얼굴을 비비며 몇 번을 입 맞췄다.
“오늘…… 기분이 되게 좋으신가 봐요?”
“안 좋을 수도 있어? 네가 날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려다 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