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방에 도착하자마자 성급하게 입술부터 맞부딪히다 이가 부딪히고 난리였다.
“잠, 잠깐만…… 윽!”
몸이 기우뚱하다가 서랍장에 부딪혀 신음을 흘리자 제현이 더 당황해 서둘러 나를 내려놓고 살폈다.
“괜찮아요? 어디 안 부러졌어요?”
“그냥 부딪힌 거로는 안 부러져.”
“형이 보통 사람이랑 내구도가 비슷하다면 그렇겠죠.”
“날 얼마나 비실비실하게 보는 거야?”
과하게 걱정하는 얼굴에 웃으며 핀잔을 주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짙은 향이 풍겼다. 바닥에 손을 더듬거리니 축축했다.
“아……!”
손끝을 스치는 날카로운 느낌에 손을 뗐다. 작은 유리 조각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서랍장에 있던 진형이 선물해 준 향수병이 깨져 나뒹굴고 있었다.
“깨졌어요?”
“응.”
두꺼운 유리 재질이라 어지간하게 떨어뜨려서는 잘 깨지지도 않을 텐데 재수가 없으려니 병목이 부러져 나뒹굴고 내용물이 바닥에 죄다 쏟아져 있었다. 온 방을 가득 채우는 향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손 씻고 오세요. 제가 치울게요.”
“응, 좀 부탁할게. 나 머리가 아프네.”
한참 동안 손을 벅벅 씻고 나왔는데 제현이 어디서 테이프를 가져왔는지 바닥에 엎드려 꼼꼼하게 바닥을 훑고 있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어?”
“다 했어요.”
창문을 활짝 열어 놨는데도 냄새가 다 빠지려면 며칠은 걸릴 것 같았다. 잠깐 미쳐서 달려들던 제현도 짙은 향기에 할 마음이 사그라들었는지 내 옆에 앉았다.
“손 봐요. 아까 찔리지 않았어요?”
물이 닿을 때 조금 따끔거리긴 했지만 조그만 상처라서 상처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제현은 굳이 밴드를 가져와서 붙여 주었다.
“과해.”
“이게 얼마짜리 손인데. 좀 소중히 다뤄 주실래요?”
말로는 소중히 다뤄 달라면서 입으로 가져가 손바닥 부분을 잘근잘근 씹었다.
“너부터 좀 떼어 놔야겠어.”
“싫어요. 제현이 주세요. 그런데 형 향수 안 쓰지 않으셨어요?”
“어, 어…….”
“별로 형한테 어울리는 향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형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제현이 손을 킁킁거리며 향수 냄새를 맡는데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보니 별로 제현의 취향은 아닌 모양이었다.
“진형이 형이 선물해 줬어.”
잔뜩 찡그리며 나를 홱 쳐다보았다. 아차, 안 그래도 민감한 부분인데.
“더 안 물어봐도 각이 나오네요. 이거 자기가 쓰는 거 준 거죠? 그 인간 진짜 살벌하게 구네.”
제현이 헛웃음을 터트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좀 향수를 써 볼 걸 그랬어요.”
“써 본 적 없어?”
“향수는 잘 몰라요. 관심도 없고.”
생일에 팬들이 선물로 준 고가의 니치 향수들도 거의 장식품처럼 제현의 책상 위에 진열되어 있었다. 나라고 잘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제현은 원래 요리 쪽으로 가려고 해서인지 그 흔한 핸드크림도 잘 바르지 않는 사람이다 보니 향수를 잘 모르는 것도 의외는 아니었다. 어찌나 표정이 다양하게 바뀌는 건지 방금까지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도 못하고 있더니 이제는 시무룩해져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됐어. 향수 같은 거 쓰지 마.”
“지는 기분이라고요. 형은 어디서 저 냄새 맡을 때마다 권진형이 떠오르지 않겠어요? 허, 진짜 질투 나네.”
제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향수병을 싹 긁어모아 들고 왔다.
“형, 여기서 한번 골라 볼래요? 팬분들이 제 이미지랑 잘 어울린다고 보내 준 건데 이 중에 형 취향이 한 개쯤은 있겠죠.”
향수병에 코를 박으며 하나하나 맡는 제현이 귀엽기는 했으나 굳이 뭔가 더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무슨 향기가 나 봐야 나와 같은 샴푸나 보디 워시 향이 전부라서 그 깨끗한 느낌이 더 좋았다. 한 개를 골라서 내게 들이밀기에 받아 들면서 중얼거렸다.
“네 살냄새 묻히는 거 싫은데.”
“형은…… 형은 맨날 저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잘도 그런 부끄러운 소리를…….”
뭐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했다.
“너랑은 다르지 인마.”
“가끔은 형이 저보다 더해요.”
거의 자타공인 체크 메이트 처돌이가 저런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입을 가리고 앙증맞게 쳐다보는 모습에 한숨을 쉬고 일어났다.
“어디 가요.”
“연습실. 같이 랭킹전이나 돌리자.”
진형의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방에서 뒹굴고 싶은 맘은 없는지 제현도 순순히 나를 따라 일어났다.
“일단 창문은 다 열어 뒀는데 오늘 냄새 다 빠질까요?”
“며칠은 가겠지.”
“으으.”
방 밖으로 나오자 피로가 쌓인 코가 좀 해방된 것 같았다.
“다시는 그런 선물 받아 오지 마세요. 제가 다 버릴 거예요.”
“어떻게 그래. 물건에는 죄가 없어.”
내 대답이 마음에 차지 않았는지 제현이 팔짱을 끼고 툴툴거리며 따라왔다.
***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두통약을 야무지게 챙겨 먹던 찬희였다. 내내 창문을 열어 놔서 냄새가 좀 빠지긴 했지만, 방 안에 그 기분 나쁜 자식의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했다. 상대방이 사용할 향수도 아니고 본인이 사용하는 향수를 선물하다니 이 얼마나 음침하고 소름이 끼치는 일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얼마 만에 되찾은 에어컨인데 시원한 상태로 찬희를 죽부인처럼 껴안고 자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켰다. 내일은 편의점에서 양초라도 사다가 좀 켜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찬희는 신경이 예민해서 잘 잠들지 못하지만 한 번 저렇게 잠들면 잘 깨지도 않았고 술에 취했을 때보다 고분고분했다.
평소에는 누가 일부러 반듯하게 눕혀 놓은 것처럼 단정하게 자는데 오늘따라 피곤했는지 잔뜩 흐트러진 자세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기에 원래 잠옷도 야무지게 다 챙겨 입고 자는 사람이 바지도 안 챙겨 입고 팬티 바람이었다.
그간 내가 덥다고 더 이상 헐벗을 수 없을 때까지 헐벗고 자는 것에 조금 옮은 건가 싶어 앞으로도 좀 더 벗고 다녀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뼈에 가죽을 겨우 두른 것 같은 앙상하고 딱딱한 몸이었지만 찬희의 신체 중 거의 유일하게 살이 차올라 말랑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저 엉덩이였다. 과장을 좀 보태서 내 한 손에 다 잡힐 것 같은 작은 엉덩이는 온종일 붙잡고 늘어지고 싶을 정도로 만지는 맛이 있었다.
“형, 벌써 자요?”
냉방이 돌자 좀 추운지 몸을 웅크리길래 서둘러 달려가 누워 뒤에서 끌어안았다. 따듯한 기운에 이끌려 몸을 밀착해 오는 작은 몸짓 하나에 하반신에 열이 몰렸다.
‘자는 사람을 상대로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속으로 본인에게 한소리를 하면서도 손은 저절로 찬희의 속옷을 끌어 내렸다. 얇은 속옷이 손길에 내려가 말캉한 엉덩이가 단단한 중심부에 닿았다.
“음…….”
찬희가 잠결에 내는 소리에 신경을 쓰면서도 슬쩍 엉덩이 사이로 몸을 바짝 붙여 허리를 움직였다. 잔뜩 흥분해 흐르는 것이 윤활제 역할을 해 매끄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엉덩이를 잡아 벌릴 때마다 입구가 내 것을 당장이라도 물고 싶은 것처럼 오물거렸다. 그냥 그대로 뿌리까지 박아 넣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숨이 점점 거칠어지자 찬희도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아응…….”
그러고 보면 찬희와 뒤로하는 자세로는 해 본 적이 없는 게 생각났다. 뒤로 하는 게 무리가 덜 간다고는 하지만 흥분에 달뜬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다. 선단을 입구에 뭉근하게 문지르자 찬희의 것도 슬슬 흥분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넣었다간 형이나 나나 무사하지 못하겠지.’
내 것을 삼키고 싶어 움찔거리는 곳을 스치고 아래로 향했다. 목덜미에 숨을 내뱉으며 밀어 넣자 허벅지 살을 가르고 찬희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으, 으응, 형…….”
바로 허리를 빼고 몸을 일으켰다. 완전히 잠에서 깬 것은 아니었는지 허리를 움직여 시트에 제 것을 몇 번 비비다가 다시 쌕쌕거리며 고른 숨을 뱉었다.
“형이라고?”
주먹으로 벽이라도 내려치고 싶지만, 그저 조용히 머리를 쥐어뜯었다.
***
“너 요즘 왜 그러는 건데.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을 해 줘야 내가 알 거 아니야.”
“몰라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톤에 단답형으로 대답하고서 흡연 구역으로 도망쳤다. 찬희가 왜 답답할 때면 흡연량이 느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담배를 물고 있어야 그래도 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이후 자꾸만 말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찬희는 영문도 모르고 답답해 죽으려고 했지만, 좋아하면 닮아 간다고 찬희가 그랬듯 나도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고 세월이었다. 먼 타국 땅에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 같은 어떤 놈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젖어 들었다.
“형이라고…….”
처음이 진형이다 보니 찬희의 기본형은 죄다 진형이었다. 게임부터 해서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키스와 섹스까지도 진형이 기본형이었다. 뭘 하든지 그 인간과 비교되어야 하는 건 진짜 거슬리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당연히 내가 이기니까.’
그런데 한창 하는 중에 형 소리는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듣기로는 가벼운 행위만 했었던 거 같은데…….
“설마 뒤로만 했나.”
“뭘 뒤로만 해?”
깊게 생각하느라 누가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화들짝 놀라서 몇 번 빨지도 않은 담배가 재떨이에 떨어지며 치지직, 소리를 내며 꺼졌다. 날 붙잡아서 달래듯 타이르며 말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저기압이 된 찬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가 사실 얌전히 잠든 형을 덮치려다가 그만…….’
으로 시작하는 말을 하려니 그건 또 좀 그렇고.
‘형이 자다가 잠결에 형이라고 했는데…….’
라는 말은 또 내가 겪은 충격에 비해 너무 여상스럽게 느껴졌다.
“너 자꾸 그렇게 입 꾹 닫고 있을 거야?”
“…….”
“됐다. 더 이상 붙잡아 봤자 내 기운만 빠지지. 너 알아서 해.”
가만히 올려다보던 시선을 거두자 찬희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는지 작게 욕을 내뱉었다. 손에 힘도 없으면서 손쉽게 켜지는 터보 라이터 놔두고 작은 일반 라이터를 돌리겠다고 사서 고생이었다.
찬희 입에 물린 담배를 뺏어다 물고 라이터를 채간 뒤 불을 붙여 다시 물려 주었다.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다가 내 옆에 붙어 앉았다.
내 얼굴을 훑듯이 보는 시선에 당황스러웠다. 가끔 넋을 놓고 내 얼굴이나 몸을 몰래 구경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샅샅이 살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너 설마 다른 사람 만나냐?”
애써 시선을 피하던 노력을 산산이 부수는 질문에 찬희를 쳐다보자 담뱃재를 털면서 말을 이었다.
“얼굴 보니까 그건 아니고.”
“요즘 형이랑 저랑 진짜 24시간 붙어 있다는 건 아시는 거죠.”
시즌 중이라 내내 붙어 다니는 찬희와도 게임 외의 주제로는 제대로 된 대화를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이고 나발이고는 만날 겨를도, 생각도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럼 나한테 질렸어?”
이어서 더욱 처참한 질문이 쏟아져 정신이 아찔해졌다.
“…….”
“이거도 아니네. 뭐지…….”
찬희는 냉랭한 얼굴로 툭툭 뱉는 질문이었지만 듣는 나는 심장이 다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가끔 찬희가 저럴 때마다 어떻게 사고방식이 저렇게 흘러가는 건지 프로세스가 너무 궁금했다.
“너 혹시…….”
“형, 그만. 말도 안 되는 질문 그만……!”